한 여름밤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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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5-07-05 08:42:59
꼭 그렇게
다 가져가야만 속이 후련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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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드리지를 처음 보게 된 건 다름 아닌 그의 데뷔전이였습니다. 당시만 해도 농구는 그저 간간이 보던, NBA보다는 NFL에 비교도 안될 만큼의 애정을 가지고 있었던 저를 '무려 2픽이다. 한 번만 같이 보러 가자.'며 로즈가든으로 끌고 갔던 친구. 팀은 패배했지만 알드리지는 19분 동안 10점을 올리며 강렬하게 데뷔전을 마쳤고 그렇게 답없는 제 농덕생활이 시작됐습니다.
그리고 2007년 전설의 1픽 오든이 팀에 합류했습니다. 오든, 로이, 알드리지. 새로운 왕조의 시작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흘러 오든이 가고 로이도 가고 알드리지만 남았습니다. '강한 자가 살아 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 남는 자가 강한 자다'란 말과 같이 오랜 시간 동안 무럭무럭 성장해 어느덧 팀의 에이스이자 리그를 대표하는 파워포워드로 성장했습니다. 사생활을 중요시하는 조용조용한 성격 때문인지 항상 로이, 릴라드에 가려 자신의 가치를 모두 인정받지 못하는 느낌이었으나 누가 뭐래도 그는 팀 최고의 선수였습니다. 9년간 영욕의 세월을 오로지 블레이저스에서만 보내며 다치기도 많이 다치고 지기도 많이 졌습니다. 한 때 팀을 떠나고 싶다는 의중을 밝히기도 했었지만 다시 한번 팀을 믿고 남아주어 긴 시간동안 팀을 지탱하며 수 많은 프랜차이즈 기록을 세웠고 팀 역사상 몇 안되는 All-NBA Team Player가 되어 팬들의 어깨를 으쓱하게 해주었습니다.
로이 ERA를 지나 알드리지 ERA로 오기까지 수많은 선수들이 오고 갔지만 2008년 바툼, 2010년 매튜스, 2012년 릴라드 그리고 2013년에 로페즈가 팀에 합류하면서 비로소 지금의 (이젠 과거겠죠..) 블레이저스가 완성이 되었습니다. 네 선수 모두 알드리지와 함께 팀의 핵심 조각들로 성장했고 어느덧 서부의 강자로 자리잡았습니다. 1등팀 아니 2.3등팀도 아니였지만 어느팀보다도 매력적인 농구를 했고 어느팀보다도 색깔있는 농구를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승승장구할 날만을 기다렸지요.
그게 독이 됬을까요. 가치가 오를 대로 올라버린 선수들은 타팀들의 위시리스트에 이름을 하나 둘씩 올리기 시작했고 바툼 트레이드로 시작, 매튜스, 로로 오늘은 알드리지 까지 주전 5명 중 무려 4명이 다른 팀으로 둥지를 옮기게 되었습니다. 지금 블레이저스 팬들의 기분은 말 안해도 다들 아시리라 생각됩니다. 아직도 포틀랜드에 살고있는 친구에게 새벽같이 영상통화가 걸려왔습니다. 그래도 한동안 말 없이 서로의 못생긴 얼굴을 쳐다보고나니 조금은 기분이 풀리더군요. 현지는 그야말로 초토화가 됬다고 합니다. 안그래도 날씨도 우중충 한데라 우울한 곳인데 시 전체가 장례식 분위기라고 하네요.
사실 바툼이 떠날 때만 해도 '아무리 그래도 알드리지랑 매튜스는 잡겠지.'란 생각이였는데 FA시장이 열리고 기사들과 트윗들이 하나 둘씩 쏟아져 나오며 모두가 떠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점점 들기 시작했습니다. 트윗 하나하나에 일희 일비하며 결과를 기다렸고 물론 워스트 케이스 시나리오로 블레이저스의 오프시즌은 끝이 나는 모양새입니다.
이제 블레이저스는 오로지 릴라드의 것이 되었습니다. 이젠 자신보다 어린 선수들을 이끌고 나아가야겠죠. 지난 시즌 주전들의 줄부상으로 홀로서기 쇼케이스를 마쳤기에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릴라드 자신이 가장 잘 알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든든한 형들 다 떠나고 소년가장이 되서 힘들겠지만 그가 팀을 이끌 수 있는 선수라는 것에 대해선 추호의 의심도 하지 않습니다. 5년 125m에 달하는 큰 계약은 팀이 얼마나 현재와 미래의 그를 신뢰 하는지를 잘보여주는 한 대목이겠지요. 다행히도 팀엔 앞길 창창한 젊은 선수들이 많이 있습니다. 부디 그들과 함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길 바랍니다.
'Heart and Soul' 매튜스, 짱구머리 바툼, 벤치만 가면 눕는 로페즈 그리고 내 맘속의 MVP 알드리지.
달콤했던 여름밤의 꿈에서 깨 현실을 마주할 때가 됬습니다.
험난한 길이겠지만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 처럼 블레이저스로 계속 살아보려고 합니다.
뜨거웠던 13-15년의 그들을 잊지 않겠습니다. 모두 건승하길 바랍니다. 고마웠습니다.
# 비몽사몽 + 감성이 믹스되 두서없는 글을 썼습니다. 양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스퍼스, 매버릭스, 닉스, 호네츠팬들 다시 한번 축하드리고 정말 좋은 선수들 얻으셨습니다. 특히 스퍼스는 부디 포틀랜드에서는 맛보지 못했던 우승의 맛을 알드리지에게 선물해 주시길 바랍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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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진실된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