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랜도 매직의 여섯 가지 이야기들
올랜도 매직이 동부 3위에 등극했습니다. 동부 2위부터 8위까지 승차가 순차적으로 이어지고 있어서 언제 미끄러져도 이상하지 않으나, 늘 로터리 순위에 목메다가 플레이오프 순위 경쟁을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참으로 생경합니다.
사람 마음이 참 야속하게도 시즌이 개막하기 전에는 플레이인 토너먼트에 들어가기만 해도 성공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패배 하나하나에 아쉬움이 너무 크게 느껴져서 때로는 분노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이런 희로애락을 거의 10년만에 느끼는 것 같아서 묘한 마음도 듭니다.
올랜도 매직이 도약하는 시즌에 글을 많이 썼다면 참 좋았을텐데... 내외적으로 여유가 너무 없어서 경기도 제대로 챙겨보질 못했습니다. 앞으로 자주 올리지는 못하더라도 꾸준히 글을 남겨보겠습니다.
오랜만에 글을 쓰니 서두가 다소 잡다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이번 시즌에서 꾸준히 보였던 모습들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밴케로의 인버티드 픽앤롤
파올로 밴케로가 이번 시즌을 기점으로 명실상부한 1옵션으로 등극했습니다. 힘과 높이 그리고 기술까지 모두 갖추고 있어 특히나 숏미드 구역에서 위력을 발휘하고 있으나, 볼핸들링이 안정적인 편은 아닙니다. 선입력된 판단은 바꾸지 않는(못하는) 경향도 강해서 상황대처가 유연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공격 전개가 크게 두 가지로 나뉘고 있습니다. 하나는 코너를 비워두고(엠티 사이드) 가드가 스크린을 서서 진행하는 픽앤롤(인버티드 픽앤롤)이고, 다른 하나는 주로 숏롤을 통해 엘보우/숏코너에서 공을 받아 진행하는 형태입니다.
두 장면 모두 밴케로(#5)가 개리 해리스(#14)의 스크린을 받아 베이스라인으로 파고들어가는 형태의 인버티드 픽앤롤입니다. 풋워크 재간이 좋아서 돌파, 포스트업, 점퍼까지 가능하니 전개 방식이 다양합니다. 게다가 선입력이 고정되는 경향이 있더라도 패스마저 선입력을 하는 편이라 그래비티를 활용한 킥아웃이 괜찮습니다.
밴케로가 경기를 잘 풀어갈 때는 밀고 들어가야할 때와 점퍼로 전환할 때의 판단이 좋은데, 그렇지 않은 날에는 질질 끌다가 어이없는 실책을 양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팬덤 내에서 밴케로에 대한 성토가 적지 않은 이유도 1옵션으로서 판단력이 실망스러울 때가 잦기 때문입니다.
아요 도순무(#12)와 미스매치 된 상황에서 어깨로 밀고 가지 않고 피해가다가 골밑에서 몰려서 '에라 모르겠다' 패스를 시전한 첫 번째 장면, 다 뚫어놓고도 아쉬운 마무리를 보여주는 두 번째 장면입니다. 밴케로가 자주 보여주는 아쉬운 모습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루키 시즌 대비 볼륨을 키우면서도 효율도 끌어올렸으니 성장세는 분명합니다. 괜히 올스타 팀에 선정된 것은 아니나... 그래서 그런지 더 아쉬운 마음도 듭니다. 더 잘하기를 바랍니다.
밴케로의 숏롤
밴케로의 주된 공격 전개 중 다른 하나인 숏롤을 통한 엘보우/숏코너 공략 장면들입니다. 미스매치를 유발하여 활용한다는 전제는 같습니다. 팀 공격력이 빈약함에도 성적을 낼 수 있었던 이유도 개인의 무력으로 그래비티를 만들 수 있는 덕이 큽니다.
이처럼 밴케로의 판단력이 평가하기가 참 애매한 면이 있습니다. 패스에 분명 신경을 쓰고 있고 이타적인데(평균 어시스트 5.3개) 직접 공격을 하겠다고 마음 먹으면 꼬라박거나 패스가 너무 늦을 때가 많습니다(평균 실책 3.1개). 어떻게 보면 러셀 웨스트브룩과 비슷한 느낌도 있습니다.
위 장면처럼 충분하게 힘으로 밀고 들어갈 수 있고 파울을 얻어내는 노하우까지 있는 선수가 아래 장면처럼 베이스라인으로 스스로 몰려서 아쉬운 마무리를 보일 때도 있습니다. 할 줄 아는 놈이 못하면 더 얄미운 것 같기도 합니다.
전통 파워포워드가 사라지고 빅윙과 3&B가 득세하는 시대에서 블레이크 그리핀, 줄리어스 랜들을 잇는 마지막 전통 파워포워드(?)가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듭니다.
석스, 이제는 3&D
올랜도 매직에는 슬픈 이야기가 있습니다. 1번 포지션의 세 선수가 저마다의 단점으로 볼핸들러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6'10의 포워드 둘과 6'9의 포워드가 볼핸들러를 맡고 있습니다. 팀의 색깔이자 장점이자 단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후술하겠으나 마켈 펄츠는 부침을 겪고 있고, 콜 앤서니는 식스맨 스코어러로 전업했습니다. 제일런 석스(#4)는 3점 능력을 개선하였으나(시즌 성공률 39.9%) 여전히 볼핸들링은 볼품없어서 픽앤롤을 직접 전개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위 장면처럼 코비 화이트가 첫 스크린에 걸리지 않고 두번째 스크린마저 피해내자 뚫어낼 엄두조차 못 내는 석스입니다. 스크린이 하드하게 걸어주지 못한 것도 없지는 않으나, 비단 위 장면만이 아니라 수비가 어느 정도라도 붙어있는 상황에서는 직접 전개를 못한다고 봐야 합니다.
다만 패스 자체는 엄청 잘 봅니다. 특히나 종 방향 패스가 일품입니다. 횡 방향은 안으로 진입하여 킵을 할 줄 알아야 하는데, 그 전제가 불가능하니 못한다고 봐야 합니다.
플레이를 잘게 쪼개거나 변칙적인 움직임을 가져가는 것은 갈 길이 멀어 보이는데, 그 우직함이 모여서 수비에서 장점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합니다.
석스, 수비와 허슬
올랜도 매직이 디펜시브 레이팅에서 리그 2위를 달성한 것에 대한 수훈 선수를 꼽자면 단연 석스와 조나단 아이작입니다. 특히나 석스는 지난 시즌들에 비해서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며 마음껏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습니다.
석스가 대인 수비는 물론하고, 빅맨과의 미스매치 상황에서도 포지션 탑급으로 잘 막아내고 있습니다. 가드임에도 골밑 헬프와 박스아웃처럼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고, 부상이 걱정될 정도로(실제로 부상요인이 되기도 하고) 몸을 아끼지 않습니다. 수비가 성공하면 환호하지만... 한켠으로는 조마조마하기도 합니다.
이런 허슬들이 모여 수비를 강조하는 분위기를 만들었고, 팀이 상승하는 요인이 된 것 같습니다.
석스의 머리숱이 사라지는 모습이 민들레 홀씨 같아서 마음 아팠는데, 농구의 신이 마냥 외면하지는 않은 것 같아 다행입니다.
주저하는 웬델 카터 주니어
웬델 카터 주니어(#34)가 골밑에서 곧바로 마무리하지 못하고 딜레이가 걸리는 모습은 비단 이번 시즌만의 일은 아닙니다. 기억이 맞다면 올랜도 매직으로 트레이드되기 전부터 지적받아왔던 사항이고, 드래프트 때도 언급되었을 겁니다.
올랜도 매직으로 트레이드 된 이후로는 조금씩 개선되는 듯했습니다. 바그너와 픽앤롤 호흡이 워낙 좋기도 했고, 랍 타게터로 성공률이 꽤나 좋았기에 단점이 드러날 빈도 자체가 적었습니다. 다만 이번 시즌부터는 밴케로가 탑에 자리하고 직접 골밑으로 공을 찔러주는 경우가 늘었는데, 여기서 단점들이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시즌 초반에는 극단적으로 마무리를 못했었고, 여기서 심적인 딜레마가 있었는지 여전히 망설이는 모습이 보입니다.
첫 번째 장면에서 열린 상황에서 공을 받았음에도 바로 올라갈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반사적으로 코너로 공을 빼주는데, 미스매치 상황에서 심지어 니콜라 부세비치가 백업이 아주 빠른 것도 아니었음에도 올라갈 엄두를 못 내었습니다. 두 번째 장면에서는 마무리에 성공하기는 하였으나 여전히 빠릿빠릿하지 못하고 눈치를 살피는 모습이 보입니다.
포지션 대비 키가 작은데(6'10) 얼굴까지 커서(...) 높이에서 약점이 있기는 합니다. 3점 성공률이 제법 올라가면서(시즌 성공률 37.7%) 감가를 생각하면 손해는 아닌데... 전투적이지 못한 경향은 다소 아쉽습니다.
펄츠의 빅맨화
위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펄츠(#20)가 꽤나 부침을 겪고 있습니다. 최근 반등하는 추세이기는 하지만... 지난 시즌 말미에 풀업 3점을 꽂아대었다가 도루묵이 되었던 점을 감안하면 신뢰도가 높지는 않습니다.
제가 꾸준히 펄츠를 지지했던 이유는 자력으로 플레이메이킹이 가능한 볼핸들러 자원이고, 3점이 없어도 개인능력으로 미드레인지 풀업점퍼부터 골밑 돌파까지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밴케로와 바그너를 부릴 수 있는 볼핸들러인 점은 특기할 만했습니다. 지난 시즌에 펄츠가 기량을 회복하는 시점부터 팀 승률이 꽤나 좋았기에, 이때의 상승세가 이번 시즌의 틀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문제는 이번 시즌에 미드레인지 풀업점퍼가 3점마냥 어깨에서 걸리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이건 올랜도 매직에서의 첫 시즌(19/20)에서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밴케로, 바그너, 조 잉글스가 팀 오펜스를 조립하기 시작하면서 역할 자체가 줄어들기도 했습니다.
상황이 이러하니... 펄츠가 거의 빅맨처럼 쓰이고 있습니다. 스크리너로서 포워드들을 보조하거나 아예 덩크 스팟에서 위치할 때가 대부분입니다. 코너에 두는 것도 스페이싱에 도움이 되지 않으니 아예 좁혀 들어왔는데, 슛이 없는 포워드들이 쓰이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지난 불스전에서는 트윈타워를 꺼내든 상대가 부세비치의 마크맨으로 펄츠를 낙점하는 일까지 일어났습니다. 펄츠의 3점이 전혀 위협적이지 않으니 대놓고 골밑을 막겠다는 셈이었습니다.
너무나 합리적인 판단이었으나... 불스 나름대로 억울할 만한 것은 시즌 3점 성공개수가 3개밖에 안되었던 펄츠가 이 날에만 2개를 꽂았다는 점입니다(1개는 선 밟으면서 2점 처리).
1순위 지명으로 주목받던 펄츠가 버려지듯이 트레이드되고, 올랜도 매직에서 기적처럼 반등하고 또 다치고, 다시 반등하고 또 부침을 겪는 흐름을 보니 우여곡절이 참 많은 선수입니다. 천재적인 플레이메이킹과 스타일리쉬한 드리블링으로 너무나 좋아하지만... 팀과의 동행은 이번 시즌이 마지막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무리하며
오랜만에 글을 적으니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서 다소 길어졌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올랜도 매직이 왜 팀 디펜시브 레이팅 2위인지 보여주는 로테이션 장면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항상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유익한 정보 덕분에 얻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