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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were fated to pretend-늦은 기생충 리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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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0-03-05 14:31:21

 

 

기우(최우식)는 대학생인 척 가장하여 동익(박사장, 이선균)과 연교(조여정)의 집에 딸의 과외선생으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합니다. 그는 대학생인 척 서류를 위조하고, 최대한 멀끔한 옷을 입습니다. 기우가 높은 계단을 올라가 본 집은 크고 밝고 아름답습니다. 그곳에서 기우를 반겨준 것은 문광(이정은)입니다. 문광은 부자집 사모님처럼 보입니다. 문광은 기우에게 자신은 집주인이 아니고, 집주인은 따로 있다고 말합니다. 집주인인 연교는 마당에서 낮잠을 자고 있습니다. 문광이 깨워도 좀처럼 일어나지 않습니다. 연교는 자신을 숨기고 꾸며야 하는 기우나 문광과 달리, 있는 그대로 보여도 괜찮습니다. 그녀는 있는 그대로도 괜찮으니까요.

 

 

 

기우의 가족인 기정(박소담), 기택(송강호), 충숙(장혜진)은 차례로 동익의 집에서 일자리를 찾습니다. 기정은 명문 미대생인 척을 하여, 기택은 경력 많은 운전기사인 척을 하여, 충숙은 프리미엄 가정부 서비스 업체의 직원인 척을 하여 한자리를 차지합니다. 그 과정에서 기택의 가족은 문광을 모함하여 일자리를 잃게 만듭니다. 동익의 가족이 여행을 떠난 뒤, 그 좋은 집을 차지한 기택의 가족들은 부자놀이를 합니다. 마치 자신의 집인 것처럼 양주를 마시고, 거품 목욕을 하고, 어느 방을 내 방으로 하면 좋을까 상상하기로 합니다. 반면 기택의 가족이 부자놀이를 하고 있는 집에 찾아온 문광은 전과는 크게 다른 모습입니다. 더 이상 그는 집주인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주인조차도 모르는 그 집 지하실에 숨겨둔 자신의 남편을 찾기 위해서 그는 동익의 가족은 결코 맞지 않던, 그리고 동익의 집에선 맞을 일은 없었던 비를 맞으며 그 집에 다시 찾아왔습니다.

 

 

 

기택의 가족과 문광의 가족은 대립합니다. 두 가족 모두 얼마전까지는 부자인 것과 같은, 적어도 부자들의 집에서 일해도 무방할 것 같은 모습이었지만, 이내 드러난 본 모습은 이 집과도, 동익의 가족들과도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들은 코스프레를 벗고, 적자생존을 위해서 싸웁니다. 그 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기택의 가족의 문광의 가족을 제압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동익의 가족이 집으로 돌아옵니다.기택의 가족은 황급히 집을 치우고 바퀴벌레처럼 거실 탁자 아래로 기어들어갑니다. 그들의 부자놀이는 자신들의 자리를 처절하게 깨닫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기택은 그 탁자 아래서 자신의 아들, 딸과 함께 동익과 연교가 사랑을 나누는 것을, 그리고 그들의 자신의 냄새를 욕하는 것을 소리도 내지 못하고 듣습니다. 그리고 집을 기어서 빠져나와서 흐르는 빗물처럼 한없이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서, 침수되어버린 자신의 집으로 갑니다.

 

 

 

위 시점을 기준으로 그들의 부자놀이는 실패로 끝납니다. 기택의 가족은 더 이상 동익과 연교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때부터 기택에게 동익은 더 이상 친구가 아닙니다. 원래 아니었지만, 이젠 정말 아닙니다. 기우는 연교의 호출에 따라 행운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 수석을 가지고 다시 그 집을 방문합니다. 아마도 기우가 말하는 해결이란, 수석으로 문광과 근세를 죽이는 것으로 보입니다. 기우는 수석으로 문광과 근세를 죽여서라도 동익과 연교의 옆자리를 지키려고 합니다. 별 다른 계획은 없습니다. 그리고 그 계획은 처참하게 실패합니다.

 

 

 

지하에서 이 난리가 벌어짐에도 불구하고, 정원은 아들의 생일파티로 평화롭고 행복해 보입니다. 하지만 그 곳에서도 균열은 일어납니다. 동익은 지금껏 젠틀한 태도를 버리고 기택에게 이것도 일니까 지시에 따르라고 합니다. 둘은 친구가 아니라는 것은 다시 한 번 분명해졌습니다. 그리고 근세가 나타나 기택의 가족들을 공격하고, 동익에게는 리스펙을 외칩니다. 여전히 근세는 동익이 자신의 편이라 느낍니다. 근세의 가족들은 그를 귀신이라고, 아님 고장난 전구라고 생각하는데도요. 아수라장이 된 생일파티 현장에서 기정과 근세는 흉기에 맞아서, 동익의 아들은 귀신이라 생각한 근세를 보고 놀라서 쓰러집니다. 동익을 근세 옆에 떨어진 차키를 주우려고 가면서 코를 막습니다. 그 모습은 결국 기택의 트리거를 당기고, 기택이 동익을 죽이게 합니다.

 

 

 

위와 같은 시각에서 영화를 볼 경우, 영화의 키워드는 ‘pretend’입니다. 영화에서 기택의 가족들은 끊임없이 내가 아닌 다른 누구인 척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가난하지 않은 척합니다. 그러한 척을 유지시켜 주는 것은 부자들의 젠틀한 태도와 허황된 희망입니다.

 

 

 

부자들의 젠틀한 태도는 우리는 모두 동등하다는 생각, 우리들은 인간적인 관계라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사실 선을 조금만 넘어도 깨져버릴 젠틀한 척을 하면서, 마치 우리가 자신들과 동등하고, 친구인 것처럼 얘기를 합니다. 그들은 사실 맘에 안드는 구석이 있으면 어떤 핑계를 대서든 가족과 같은가정부와 운전수를 해고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가정부와 운전수에게 직업은 곧 생계인 것을 알면서도,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그렇게 부자와 가난한 사람은 다르고, 또 인간적인 관계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들의 가식적인 젠틀함에, 우리는 동등하며 인간적인 관계라고 착각하고, 스톡홀름 신드롬에 걸린 것처럼 부자들의 편을 들고, 코스프레를 넘어 그들과 동일시 합니다.

 

 

 

또 하나는 허황된 희망입니다. 영화에서 수석이 상징하는 것이자, 마지막 기우의 모습을 통해 뼈저리게 느끼게 되는 그 허황된 희망입니다. 수석이 자신을 부자로 만들어 줄 것이라 믿고 기택의 가족은 코스프레를 시작했지만, 결국 남는 것은 그대로인, 아니 전보다 더 나빠진 현실뿐입니다. 로또를 매일 사봐야 부자는 되지 못하고, 잔고만 줄어드는 것처럼요.

 

 

 

이러한 불편한 동거가 끝났을 때, 영화에서 일어나는 것은 결국 파국입니다. 아니 어쩌면 언젠가는 혁명일 수도 있을까요. 하지만 영화에선 허황된 희망 없는, 그리고 부자 코스프레도 없는 파국입니다. 결국 그 파국은 원래 기우와 충숙을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 놓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저는 스스로 부자인 척을 하지 않고 산다고 생각했습니다. 근데 생각해보니 전혀 아니더군요. 부자인 척하기 위해서 전 얼마나 많은 돈을 쓰고 있을까요. 월세를 내면서 넓은 아파트에 사는 것도, 아내의 명품 가방을 사는 것도, 3,000cc 세단을 산 것도, 호캉스를 가는 것도 모두 pretend입니다. 루이비통을 사러간 매장에서 굽신 거리는 직원을 보고, 호텔 수영장에서 모히토를 마시면서 부자가 된 양 생각하지만, 결국 그건 착각일 뿐입니다. 어쩌면 매일, 매시간 부자인 척을 하면서, 그런 부자인 척을 유지하기 위해 살고 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모두를 pretend라고 하면 너무 가혹할까요. 하지만 어느 정도는 척임을 부인할 순 없네요. 나를 그대로 인정하고 드러낼 수는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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