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p
자동
NBA Maniazine
/ / / /
Xpert

어떤 천재의 비극

 
4
  8194
2008-09-14 01:25:37

(평어체 양해바랍니다.)

보 킴블이란 선수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들어본 적이 없다고? 그게 정상이다. NBA에서 달랑 3시즌, 다 합쳐서 105게임에 나왔던 선수였으니까. 트위너였기 때문이다. 물론 이 선수는 대학 때는 상당한 기량의 소유자였다. 로욜라 메리마운트 대학(LMU) 4학년이던 90시즌에는 평균 35.3점을 넣을 정도의 득점기계였다. 그런데 까놓고 말해서 로욜라 메리마운트라는 대학의 존재를 아는 사람도 별로 없을 듯 하다. 역사상 NBA에 진출시킨 선수가 7명에 불과하고 지금은 NCAA 디비전 2에 소속되어 있는 무명 대학이다. 이 대학을 나온 사람 중 우리에게 익숙하고 유명한 사람은 단 한 명, 바로 릭 아델만 휴스턴 감독이다.

갑자기 왜 이 선수 얘기를 꺼냈냐고? 지금 말하고자 하는 선수는 킴블이 아니다. 이 선수와 가장 친했던 선수였다. 80년대 후반 이 대학에는 엄청난 천재가 있었다. 대학 무대를 호령했던 포워드 LJ나 데릭 콜먼에 버금가는, 어쩌면 그들 이상일 지도 모르는 선수가 말이다. 하지만 이 선수는 경기 도중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 더 이상 볼 수 없는 선수다. 빛도 제대로 못 보고 세상을 뜬 선수라면 렌 바이어스를 떠올릴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선수는 NCAA 경기 도중 사망했고 드래프트조차도 받을 수 없었다. 사상 최고의 포워드가 될 수도 있었던 천재였지만 너무 빨리 하늘의 부름을 받았던 남자. 이 선수의 이름은 바로 행크 개더스(Hank Gathers:1967 ~ 1990)이다.


천재의 성장

개더스는 필라델피아 토박이이다. 원래부터 농구선수를 꿈꿨던 꿈나무는 아니었다. 그렇게 체격이 큰 편도 아니었기에 평범한 남자로 살아가기를 원했던 아이였지만 농구의 메카인 필라델피아에서 농구를 접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중학교 때부터 시작한 농구. 하지만 그 농구는 개더스를 확 사로잡아 버렸다. 농구를 계속 하기로 결심한 그는 필라델피아의 Dobbins Technical High School로 진학해서 선수생활을 계속했다.

킴블과는 고등학교에서 만난 사이. 킴블은 그보다 1살 위였지만 개더스의 입학 당시에 같이 입학했던 단신 가드였다. 킴블은 개더스의 첫 자체 연습 경기에서 개더스와 같은 팀에서 뛰었는데 그 연습 경기에서 둘의 시너지는 상당히 위력적이었다. 둘은 그 때부터 급속도로 친해졌다. 항상 같이 학교에 다녔고 같이 체육관에서 연습했다. 개더스와 킴블은 나날이 실력을 향상시켜 나갔고 1985년에 필라델피아 시 대회인 Public League City Championship에서 둘은 우승을 거머쥐었다. 그들의 모교는 유명한 학교가 아니었지만 둘의 명성은 이 대회를 계기로 높아졌고 러브콜이 쇄도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고민끝에 선택한 학교는 USC. 당시 트로잔스의 감독이었던 스탠 모리슨은 Public League를 유심히 지켜보았고 거기서 두각을 드러낸 개더스와 킴블을 트로잔스의 선수로 리쿠르트하게 된다. 개더스는 꿈을 안고 킴블과 함께 캘리포니아로 떠났다.


천재에서 스타로

USC에서도 두 사람은 거침이 없었다. 개더스는 첫 해인 86시즌에 16.4점 7.5리바운드를 기록하며 겁없는 1학년의 전형을 보여주었고 킴블도 12.1점 2.1어시스트로 무난하게 데뷔했다. 그러나 USC는 토너먼트에 오르지 못했고 모리슨 감독도 해임되고 말았다. 개더스는 전학을 결심했다. 은사가 떠난 마당에 더 팀에 있을 까닭이 없어졌기 때문. 망설이던 킴블을 설득하여 둘 다 1년 공백을 무릅쓰고 전학을 가기로 결심했다. 두 사람이 전학을 간 곳은 바로 그들의 이름을 드높였던 LMU 대학이었다. 두 사람이 LMU를 택한 이유는 단 하나, 바로 폴 웨스트헤드가 있었기 때문이다. 둘 다 공격적인 플레이를 좋아했고 웨스트헤드는 80년에 이미 쇼타임 레이커스를 엄청난 공격농구로 우승으로 이끌었고 소속 대학도 극단적인 런앤건 팀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들의 공격력을 보장할 수 있는 대학이 바로 LMU였던 것이다.

전학생 규정상 1년을 쉰 개더스와 킴블은 88시즌부터 본색(?)을 드러냈다. 전학 첫 해에 개더스는 22.5점 8.7리바운드를 기록하며 NCAA를 놀래켰고 킴블도 이전보다 훨씬 성장한 모습을 보였다.(평균 22.2점. 참고로 출장시간은 달랑 25분이었다) 소속 컨퍼런스였던 WCC 컨퍼런스에서도 중하위팀이었던 LMU는 둘의 가세로 순식간에 WCC의 강자로 탈바꿈했다. 그 다음 해는 역사적인 해였다. 사상 두 번째로 전미 득점왕-리바운드왕을 석권하는 선수가 나온 것. 그 선수가 바로 개더스였다. 무려 평균 32.7점 13.7리바운드를 기록한 것이다. NCAA에서 전미 평균 30-10을 기록한 선수는 최근 30년을 통틀어 개더스가 유일하다. 더구나 전미 득점왕-리바운드왕 석권은 4학년이 아닌 선수로는 최초였다. 최초는 Wichita University시절에 자비에르 맥다니엘이 4학년이던 85시즌에 기록한 것이다. 이 기록은 역사상 단 세명만 기록한 대기록이다. 그 뒤로 이 기록을 수립한 선수가 지금 산왕에서 뛰는 베테랑 빅맨 컷토다.

그 해에 올 아메리칸팀에까지 뽑히며 개더스의 주가는 폭등했다.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WCC 컨퍼런스였지만 개더스는 1라운드 상위픽 지명감이라고 스카우터들은 입을 맞춰 말했다. 개더스가 이끈 LMU는 리그에서, 아니 역사를 통틀어서도 가장 공격적인 팀으로 모든 팀들에게는 경계대상이었다. 심지어 당시 대학 최고의 포워드였던 캔사스의 대니 매닝(88년 1순위)보다 그를 위로 보는 사람도 있었을 정도다. 개더스는 큰 키는 아니었지만(6-9)위력적인 운동능력과 넓은 공격범위, 어디서든 적중률이 높은 슈팅으로 각광을 받았고 그의 성공을 의심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재앙은 그 뒤에 서서히 개더스를 엄습해왔다.


심장, 그리고 죽음

이제 그의 운명을 바꾼 심장병에 대한 슬픈 이야기를 해 보겠다.

그의 심장이 처음 이상징후를 보인 건 UCSB와의 경기가 있던 1989년 12월 9일이었다. 후반전이 6분을 경과하고 개더스가 자유투를 던지던 때였다. 그는 갑자기 심장에 이상함을 느꼈다. 심장이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박동한 것. 심장에 통증이 느껴왔지만 참고 던졌다. 1구가 림을 맞고 나오는 순간 개더스는 쓰러졌다. 진찰 결과 개더스가 exercise-induced ventricular tachycardia, 즉 운동성 심박 급속증을 앓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는 박동 조절제를 처방받고 약물치료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 약은 살이 찌는 약이었다. 살이 찌면서 개더스의 몸은 둔해졌다. 심장은 순해졌지만 체력도 같이 떨어졌고 플레이도 눈에 띄게 굼떠졌다. 이전보다 더 피곤함이 잦아지기까지 했다.

개더스는 이런 현실에 거부감을 느꼈다. 당시에는 UNLV에 래리 존슨이 입학, 1학년 시즌부터 리그를 강타하기 시작했다. LJ에게 뒤지기 싫었던 그는 예전처럼 플레이하고 싶었고 자신의 약 투약에 대해 코치진과 의료진에게 양해를 구하고 결국 투약을 줄이기 시작했다. 예전 몸을 되찾기 위해 극단의 승부수를 둔 것이다. 결국 그는 예전 기량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1990년 3월 4일, 포틀랜드 대학과의 WCC 컨퍼런스 토너먼트 4강전이 홈 구장 게르스턴 파벌리언에서 벌어졌다. 개더스는 그날도 킴블과 함께 준비운동을 하고 스프린트를 했다. 그리고 경기 시작. LMU가 초반 경기를 리드해 나갔다. 초반 페이더웨이와 풋백을 성공시키며 득점포를 발동한 개더스는 속공 상황에서 팀의 포인트가드 터렐 로우리의 로빙 패스를 그대로 앨리웁 덩크로 꽂았다. 경기장은 환호로 뒤덮였고 개더스는 킴블과 들뜬 표정으로 하이파이브를 했다. 그리고 포틀랜드 대학의 공격이 시작되고 LMU대학이 프레스 작전을 쓰려는 순간 그는 쓰러졌다. 그와 매치업되던 상대 선수가 그의 손을 흔들며 깨웠지만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의료진들이 급히 뛰어나와 소생을 시도했지만 이미 그의 심장은 멈춰 있었다. 개더스는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영원한 개더스의 흔적

개더스의 죽음으로 토너먼트는 취소되었다. NCAA 당국은 이런 상황을 감안해 WCC 정규시즌 우승팀인 LMU에게 전미 토너먼트 자격을 부여했다. 하지만 웨스트헤드 감독은 고민했다. 개더스의 죽음으로 대학 전체 분위기가 다운되었기에 불참까지 생각했다. 하지만 당시 팀의 캡틴이었던 킴블은 라커룸에서 감독에게 말했다.

"죽은 개더스를 또 슬프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를 위해 우리는 뛰어야 합니다."

그의 말에 팀원들은 비장해졌고 그들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우생순이 오버랩되는 순간.

90년 토너먼트에서 LMU는 남부지구 11번 시드를 받았다. '개더스를 위해 이기자'라는 목표 아래 킴블과 동료들은 배수진을 치고 경기에 임했다. 기적의 결과였던가? LMU는 첫 상대였던 뉴멕시코 대학을 꺾더니 32강전에서는 미시간 대학마저 물리치며 감동의 이변을 연출해냈다. 16강전에서는 스프리웰이 뛰던 앨라배마마저 제압하고 Elite 8에 진출했다. 개더스를 위해 뭉친 LMU의 투혼은 전미 최고의 관심사였다. 사실 진짜 명장면은 바로 킴블의 왼손 자유투였다. 킴블은 왼손잡이였던 개더스를 기리기 위해 항상 자유투 1구를 왼손으로 던졌다. 그리고 그 자유투는 한번도 림을 벗어나지 않았다. 성공 여부를 떠나 개더스의 가는 길을 위해 왼손 자유투를 던진 킴블의 모습은 감동 그 자체였다.

LMU는 안타깝게도 8강에서 멈췄다. 하필 상대가 당대 최강 UNLV였던 것. LJ와 그렉 앤쏘니, 스테이시 어그먼이 포진한 UNLV는 전미 최강팀 중 하나였고 LMU는 이들에게 무릎을 꿇어야했다. 하지만 전 세계 농구팬들은 그들의 투혼과 우정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어찌 보면 그 시즌의 주인공은 개더스의 LMU대학이었던 것이다. 물론 그의 죽음이라는 비극이 낳은 것이었지만 말이다.


개더스는 갔다. 그리고 잊혀져 갔다. 하지만 그의 흔적은 살아있다. 현재 LMU 대학의 체육관 이름은 그의 이름을 따 Hank's House라고 명명되었으며 그의 등번호 44번은 영구결번되었다. 사실 무명 대학의 천재를 기억하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더구나 프로도 못 밟은 천재라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너무도 아까운 재능과 동시에 목숨과 자신의 꿈을 맞바꾼 열정을 지닌 개더스는 분명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름 중 하나가 아닌가 생각한다.

12
Comments
2008-09-14 02:27:43

아주 예전에 AFN에서 Final Shot 이란 영화를 본 적이 있습니다. 행크 개더스에 관한 영화였었죠. 건강하게 NBA에서 뛸 수 있었으면 데릭 콜먼 정도의 선수가 될 수 있었다는 평가를 본 적이 있는데 참 아쉽게 되었네요.

2008-09-14 03:18:48

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새로운 사실을 또하나 알고가네요.

2008-09-14 08:47:31

잘 보았습니다. 가슴이 뭉클해지네요

2008-09-14 11:29:26

아 .. 이선수 .. 올해 루키 4월호인가 5월호에 나와있더군요 .

정말 아쉽습니다 ..

2008-09-14 12:06:17

정말 안타까운 일이군요,.

2008-09-15 08:15:48

이런 선수가 있었군요. 행크 개더스. 정말 스포츠인으로써의 열정을 훌륭히 보여준 분이시네요.

좋은 글 잘봤습니다. 그 열정에 그저 찬사를 보냅니다.

2008-09-15 19:33:36

"죽은 개더스를 또 슬프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를 위해 우리는 뛰어야 합니다."


감동이네요

2008-09-15 22:03:05

이 선수를 모델로 영화가 제작되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십 몇여년 전에 afkn시절에 방송해줬었죠.

무슨 말인지 모르고 그냥 화면 자체만으로 끝까지 봤는데 마지막에 정말 찡했던 기억이 나네요.

2008-09-17 01:50:14

아....정말 좋은 글이네요. 잘 봤습니다.

2008-09-17 14:57:55

SBS에서도 한 번 해줬더랬죠.. 실화하고 하던데.. 행크 개더스의 이야기였군엽..ㅡ.ㅡ;;

2008-09-17 16:50:38

추천합니다, 그런데 사진이 안보이는데요...

2008-09-20 00:42:58

영화로 본 적 있었습니다.
참 우울해졌던 기억이 나네요.

여담인데 전 보 킴블이라는 이름을 잊어버렸어서 보 아웃로가 당시 친구로 나왔던 선수였다고 약 10년간 믿었었습니다.

bosmia
82
5451
24-04-25
minphx
35
3771
24-04-25
nyk
65
5427
24-04-23
nykphi
32
3698
24-04-21
miaphi
42
7692
24-04-18
bos
80
10180
24-04-16
min
84
15252
24-04-16
atlbkn
41
6791
24-04-13
por
69
16685
24-04-12
hou
33
12190
24-04-08
orl
43
8123
24-04-10
dalsac
48
8541
24-04-05
dal
57
20310
24-04-04
gswind
89
11403
24-04-02
hou
62
11168
24-03-23
bos
126
31465
24-03-18
atlgsw
91
23097
24-03-18
bosden
59
7863
24-03-16
den
125
26229
24-03-14
검색 대상
띄어쓰기 시 조건









SERVER HEALTH CHECK: 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