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커리를 힘들게 할까
무엇이 커리를 힘들게 할까? 질문을 바꾸면 답이 보인다. 무엇이 커리를 즐겁게 할까?
커리를 2타임 MVP로 만든 것은 골든스테이트의 런앤건 볼무브먼트였다. 예컨대, 속공 시 측면으로 벌어지며 던지는 속공 3점, 그린과 보것 등의 하이스크린, 하이포스트에서 동료슈터들과 스크린-컷을 활용해 3점과 백컷을 동시에 창출하는 ‘스플릿 액션’. 그리고 페인트존과 베이스라인을 돌아나오며 던지는 캐치앤샷은 워리어스 모션오펜스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하던 장면들이다.
그리고 바로 이 볼무브먼트의 반대편에 놓인 것이 정적인 미스매치 농구, 즉 아이솔레이션이다. ‘커리는 왜 부진할까’라는 질문의 답을 찾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위의 장점과 단점을 그대로 뒤집으면 올시즌 MVP를 기정사실화한 제임스 하든이 된다. 리그 트렌드의 중심에 섰던 커리가 벌써 트렌드의 반대편으로 넘어가는 것일까.
내 생각에 커리는 포인트가드 전성시대의 끝자락에 위태롭게 서 있는 것으로 보인다. 뜬금없는 말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이에 대해 살펴보기 위해 잠시 우회가 필요하다.
슬래셔의 시대를 위협한 2014~2016년
현지 전문가들 사이에서 2014~15시즌은 새로운 리그 트렌드 형성의 분기점으로 간주된다. 당연히 이 시즌은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가 혜성처럼 나타나 리그 우승을 이끈 시즌이다. 많은 이들이 업템포 경기운영, 3점 중심 농구에 주목했으나 이러한 사실들은 워리어스의 등장 이전에 이미 진행되던 흐름이다.
워리어스 이전과 이후는 어떻게 달라질까. 우선 우리는 그 이전 10여 년의 슬래셔(돌파형 선수) 시대를 경험한 바 있다. 2000년대 핸드채킹 룰의 완화로 돌파 중심의 윙맨 에이스들의 공격 인플레가 가파르게 진행되었다. 2005~06년에 코비 브라이언트가 시즌 평균득점 35점을 기록했고, 득점 3위 르브론 제임스의 평균득점이 31점을 상회하며 모두를 놀라게 했다.
그 즈음을 전후로 토니 파커, 르브론 제임스, 드웨인 웨이드가 전성기를 구가하며 슬래셔 시대의 기운을 달구었다. 이른바 ‘돌파 후 킥아웃’은 에이스 스코어러의 전매특허가 되었고, 이 흐름 속에 NBA 최연소 MVP 데릭 로즈가 등장한다.
이들에게는 어떤 공통점들이 더 있을까. 그중 하나는 본인들의 보조옵션으로 3점 캐치앤슈터를 필요로 했다는 것이었다. 로즈에게는 코버가 르브론에게는 레이 알렌, 제이알 스미스, 케빈 러브, 카일 코버 등등이 있었다. 이후 하든과 웨스트브룩에게도 동일한 2~3옵션 슈터들이 적극 수반된다. 요컨대 메인옵션은 슬래셔, 보조옵션은 캐치앤슈터라는 공식이 형성된 셈이다.
이러한 흐름은 적어도 2014년까지는 아무 무리 없이 유지되었다. 문제는 그 이후에 등장한 스테픈 커리와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였다. 워리어스의 지난 몇 년간의 상승세를 결정한 일부 특징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먼저 리그에서 드라이브인이 가장 적은 팀, 픽앤롤도 적고, 패스는 가장 많으며, 경기 템포는 가장 빠른 팀이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였다. 득점 시 오프스크린과 컷 활용도는 가장 높았고, 자연스레 캐치앤슛 빈도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모든 것이 슬래셔 시대의 농구와 상충했다. 워리어스는 에이스의 피지컬적 재능보다는 볼무브먼트를, 한번의 공격보다는 세분화된 스크린 세팅을 더 선호했다. 슬래셔를 위해 완벽한 세트오펜스 전술을 찾으려 했던 여타의 팀들과 달리, 그들은 일단 달리기를 원했고, 달리면서 슈터들이 좌우 윙으로 퍼져나가 상대 수비를 다각적으로 교란하는 농구를 추구했다.
사실상 이 모든 것들은 공격의 메인 옵션들이 볼을 들지 않고도 위협적인 움직임을 전개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보조옵션이던 슈터가 메인 옵션으로 올라가고, 슬래셔가 주도하던 게임메이킹은 달리는 포인트포워드가 대체한 것, 이것이 워리어스의 등장이 가져온 오펜스 패턴의 한 반향이었다. 그러나 커리와 탐슨의 슛감을 직접 복제할 수 없듯, 이러한 경향은 리그 내에서도 여전히 이례적인 모습으로 남는다.
드레이먼드 그린을 복제하다
오펜스에서 일어난 충격은 사실 트렌드 그 자체를 바꾸었다고 하기는 쉽지 않다. 커리를 전후로 포인트가드 전성시대를 주도한 이들의 면면을 봐도 이는 확실하다. 로즈, 웨스트브룩, 월은 전형적인 슬래셔 농구의 대가들이다. 어빙, 릴라드, 워커, 라우리 등은 오프볼액션보다 직접적인 하이픽앤롤이나 아이솔레이션을 선호하는 슈터들이다. 하든은 이 두 경향을 모두 흡수한 최강 테크니션으로 부상했다.
많은 팀들이 워리어스를 따라한다고는 하나, 아무리 해도 커리와 같은 1옵션 오프볼 슈터를 찾기는 힘들 것이다. 그 대신 코치진들에게 유혹을 불러온 선수는 바로 드레이먼드 그린이었다. 게임메이커이자 수비트렌드의 이정표가 된 새로운 빅맨의 등장이 가져온 반향은 대단했다. 2014~15년도에 워리어스의 스크린 대비 스위칭율은 대략 19% 정도(리그에서 두 번째로 많은 수준). 그리고 이듬해에는 무려 1.5배가 증가해 29%로 리그 1위의 스위칭율을 기록한다.
2015~16시즌으로 와서 리그 전반에서 스위칭율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스위칭율을 주도한 것은 2미터 안팎의 윙맨 포워드들이 모든 스크린을 아이솔레이션으로 쪼개고, 어떤 미스매치의 리스크도 제거하는 (드레이먼드 그린을 키플레이어로 하는) 스몰라인업의 등장이었다. 2014~15시즌 워리어스의 성공에 감화받은 스카우터들은 그린을 빼어닮은 언더사이즈 빅맨 윈슬로우에 큰 관심을 드러냈다.
잠시 2015년 파이널로 돌아가 보자. 이 파이널 시리즈 이전까지 많은 이들의 뇌리에 새겨진 편견 중 하나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르브론 제임스를 꺾으려면 뛰어난 림프로텍터가 필요해.’ 2009년의 드와이트 하워드, 2011년의 타이슨 챈들러, 2014년의 팀 던컨이 르브론의 팀을 무너뜨리며 이러한 편견 형성에 큰 기여를 한다. 그렇다면 2015년 워리어스의 파이널 승리를 견인한 이는 누구일까. 당해 디펜스 세컨팀의 센터 보것의 빅라인업이었을까, 그린을 5번으로 하는 스위칭 스몰라인업이었을까.
스몰라인업의 정의란 무엇일까. 먼저 2010년대 초 스몰라인업 농구의 컨셉을 주도한 팀이 마이애미 히트였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빅3 시절의 히트의 수비를 특징지은 개념들은 더블팀, 온볼 프레싱 등이었고, 이들이 일정하게 통합되어 표현된 것이 바로 스와밍 디펜스라는 것이었다. 스왐(swarm), 즉 벌떼를 연상케 하듯, 수비수들의 움직임은 볼이 있는 구간 쪽으로 공격수를 몰이하듯 들러붙는 컨셉을 취한다.
간단히 그림을 그려보자. 상대 가드의 픽앤롤에 찰머스와 보쉬가 더블팀으로 압박을 나간다. 상대 가드는 뒷걸음을 치며 측면으로 볼 돌릴 공간을 찾을 것이다. 그러나 더블팀으로 강한 프레싱이 걸리기 때문에 가드 공격수에게 볼을 돌릴 공간적 여유는 많지 않다. 르브론 제임스는 많은 경우 프리롤처럼, 2선의 패싱레인을 끊는 수비를 펼쳤다. 가드가 압박을 당하며 패스구간이 읽히는 틈을 타서 르브론이 스틸을 하는 장면은 히트 시절 흔하게 나타난 장면이다. 혹은 코너에서 깊은 수비를 오며 헬핑 블록을 선사하기도 한다.
르브론 제임스, 그리고 히트의 수비 컨셉을 이어받아 2014~15시즌에 밀워키 벅스의 수비가 큰 이슈를 몰고왔다. 이때 벅스의 아테토쿰보가 높은 운동량을 활용하며 (마치 르브론처럼) 이 수비시스템의 키플레이어로 작용한다. 스와밍 디펜스의 기본 컨셉을 지탱하는 것은 앞선의 더블팀, 그리고 2선의 운동능력과 사이즈가 되는 4번 수비수의 존재였다.
그러나 이러한 수비는 히트의 빅3 해체와 더불어 서서히 흔들렸고, 밀워키 벅스의 2014~15시즌 이후의 2년을 경과하며 점차 지지기반을 잃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확고부동하게 부상한 것이 바로 스위치 디펜스다. 먼저 스위치 디펜스가 힘을 발휘하는 장면들에 주목해 보자. 스위치 디펜스가 가장 파격적인 힘을 발휘한 부분은 기존의 슬래셔 시대의 에이스들을 상대로 한 것이었다. 가장 상징적인 상대는 르브론 제임스였다.
요컨대, (커리를 제외하면) 탐슨, 이궈달라, 반즈, 그린 등 모두가 르브론과 매치업시 버틸 수 있는 수비재능을 갖추고 있다. 스위치가 자유롭다는 것은 스크린이 걸릴 때 오픈공간 창출의 리스크 없이 모든 상황을 아이솔레이션으로 쪼갤 수 있다는 뜻이 된다. 미스매치가 나면 도움수비가 커지겠지만, 반대로 미스매치만 피할 수 있다면 도움수비의 부담을 최소화한 채 슬래셔들을 고립시키는 것이 가능하다. 자연스럽게 슬래셔들의 전매특허인 ‘돌파 후 킥아웃’의 파생효과가 축소되고, 에이스들의 고득점과 팀의 패배가 병행되는 기현상이 나타난다.
그러나 스위치 수비의 두 번째 효과는 훨씬 충격적이고 아이러니한 것이었다. 시점은 2016년 플레이오프 OKC와의 대결이었다. 팀을 73승으로 이끈 데쓰라인업(스몰라인업의 별칭)을 벼랑으로 몰고 간 것은 놀랍게도 이바카를 센터로 두는 OKC의 또 다른 스몰라인업이었다.
OKC의 수비는 워리어스를 만나며 스위칭의 기어를 급격히 올리기 시작한다. 대체로 정규시즌 대비 2배가량의 스위칭율 상승을 일으켰는데, 이 수비변환의 직격탄을 맞은 이가 바로 스테픈 커리였다. 어떤 것이 결정적이었을까. 아래는 이번 서부컨퍼런스 결승의 2차전 장면으로, 커리가 베이스라인을 돌아 오픈 3점을 노리는 동작을 담고 있다.
수비의 키포인트는 카펠라의 스위치였다. 기존의 커리 수비수들은 미스매치가 없도록 저 베이스라인 동선을 그대로 따라와 커리에게 붙는 수비방식을 취했다. 대체로 커리의 루프 컷 동선에서 마지막 스크린을 걸어주는 선수는 빅맨일 때가 많았고, 따라서 스위치가 일어나면 자연스레 미스매치의 역풍을 맞을 것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스위치 수비는 미스매치의 리스크를 최소화하며 오프볼액션에 재앙과 같은 역할로 다가왔다. 다시 2016년 서부컨퍼런스 파이널로 돌아가보자. 커리는 4차전까지 극악의 부진에 빠지다 5차전부터 서서히 살아나기 시작한다. 이유는 뭐였을까. 여러 디테일의 우연과 필연들이 작용했겠지만,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커리가 아담스, 듀란트, 이바카를 상대로 한 아이솔레이션에서 주도권을 되찾아갔기 때문이다. 듀란트는 피하고, 아담스와 이바카를 공략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결코 탑에서 진행되는 이 정적인 미스매치 농구가 커리의 리듬을 살리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커리는 파이널에서 다시 트리스탄 탐슨과 러브의 미스매치 수비를 넘지 못하고 무너진다.
스위치 수비로부터 자유로운 이 누구인가
스위치 수비로부터 자유로운 이 누구인가. 답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르브론 제임스는 30점대 중반의 평균득점을 올리지만 근 10년 이래 가장 힘든 플레이오프를 보내고 있다. 제임스 하든의 41득점은 팀의 승리와 무관한 결과를 수반했다. ‘사기 캐릭터’의 찬사를 받는 듀란트의 두 경기 어시스트 총합은 1개, 2차전은 아이솔레이션 빈도상승과 맞물리며 아리자와의 매치업 시에만 4개의 실책을 범한다.
잠시 휴스턴 로케츠의 2차전 오펜스에 주목해보자. 무엇이 바뀌고 어떤 것이 유의미했던 것일까. 먼저 속공이 크게 증가했다. 패스는 간결했고, 스크린은 상대 수비에 혼란만 주고 빠지는 방식으로 다양한 변칙을 섞었다. 대부분은 플레이오프에서 지금까지 상대 팀들이 휴스턴을 상대로 해오던 것들이다. ‘이번 스위치는 처음이라.’ 아마 1차전 워리어스의 거대한 수비 플옵 모드를 경험한 댄토니의 마음은 이랬을 것이다. 아래 영상에서 볼움직임에 주목해 보자.
위 영상에서 공격의 기본 패턴은 1차전에서는 빈도수가 크게 줄었던 휴스턴의 딜레이 오펜스다. 탑에서 선수들이 (핸드오프 등으로) 볼을 주고받으며 볼전개를 우회하다가, 순간 카펠라의 미스매치(리빙스턴과 림쪽에서 생긴 미스매치)를 유인책으로 활용해 고든이 숏드라이브인을 하며 터커의 코너 3점을 유발한 것이 핵심이다. 대체로 숏드라이브인은 코너 3점 유발에 유용한 과정으로 활용된다.
이날의 또 다른 핵심 중 하나는 터커의 3점 폭발이었다. 흥미로운 점 터커의 3점 적중도가 아니라 그의 시도수다. 1차전은 2개, 2차전은 6개. 터커의 일반적 거점을 이해한다면, 대부분이 코너 3점일 거라는 점도 추측할 수 있다.
씰스크린 후 아리자의 움직임에서 또 하나 주목할 부분은 롤링의 폭이다. 상식적으로 스크리너는 스크린 후 림으로 빠지며 볼을 받는 동작을 취한다. 그러나 위 영상에서 아리자는 애초에 림으로 대쉬할 생각이 없다. 롤링을 짧게 하고 패스를 받아 전개하는 일종의 숏 픽앤롤이 전개된 셈인데, 이것이 역시 코너 수비수의 도움수비를 견인하며 코너의 오픈 3점 찬스를 유발하고 있다.
1차전 후 현지에서 나온 비판적 평가 중 하나는 하든의 볼키핑 시간이었다. 많은 경우 샷클락이 임박할 때까지 드리블을 한 점, 샷클락 바이올레이션에 몇 차례 걸리기도 한 점 등은 개별 사안의 중요성을 넘어 이날 휴스턴 오펜스 컨셉의 문제가 무엇이었는지를 상기시켜 주는 것이었다.
1차전 휴스턴 오펜스의 기본 기조는 미스매치를 활용해 하든이 커리와 루니를 공략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먼저, 하든과 폴의 커리 매치업 성적을 보도록 하자. 커리를 향한 노골적인 공격은 과연 얼마나 성공적이었을까. 아래는 커리 매치업 시 하든과 폴의 스탯을 간략히 정리한 것이다.
1차전
하든: 총 13포제션, 야투 2/6개, 자유투 3개 성공, 본인 득점 8점. 커리 매치업 시 파생된 팀의 총득점(본인득점 포함)은 12점.
폴: 총 3포제션, 야투 1/2개. 본인 득점 4점. 자유투 없음. 커리 매치업 시 파생된 팀의 총득점은 4점.
2차전
하든: 총 12포제션, 야투 1/2개, 자유투 5점. 본인득점 7점. 커리 매치업 시 팀득점 14점.
폴: 총 9포제션, 야투 0/2개. 본인 득점 없음. 커리 매치업 시 팀득점 9점.
두 번의 대결에서 하든과 폴이 커리를 매치업한 빈도는 총 37포제션이고, 커리 상대 야투율은 33.3%였다. 이때 폴과 하든의 득점을 포함해 팀 전체로 파행된 효과를 보기 위해 커리 매치업 시 팀 전체가 올린 득점을 보면 되는데, 이는 39점이다. 100포제션을 기준으로 커리에 대한 공략 시 팀득점율은 105점이다.
휴스턴의 이번 서부결승 공격효율을 고려하면 매우 저득점인데, 이미지와 상충되는 이런 결과가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다른 곳에서 나는 커리의 수비문제를 다룬 바 있다(https://blog.naver.com/dongdong79/221279002914). 피지컬적인 약점은 새로운 아이솔레이션 시대에 큰 한계로 작용할 수밖에 없고, 커리의 다른 수비장점이 있어도 당장의 이 시대는 피지컬적 한계를 갖는 커리가 공략당할 수밖에 없는 시대라는 점이 핵심이다.
그럼에도 휴스턴의 커리 공략은 직접적 생산성에서 결코 효과가 좋지 못했고, 파생효과 역시 미미했다. 1차전과 2차전의 차이점들도 눈에 들어온다. 하든이 커리를 상대로 6개의 야투를 시도했던 1차전은 커리 매치업 시 팀득점율도 좋지 못했고, 팀 역시 저조한 공격으로 패배한다. 반면, 커리를 상대로 야투가 2개뿐이던 2차전은 매치업 시 팀 득점율이 미세하게 회복되었고, 전체 팀의 오펜스 기조가 변경되며 승리한다.
다시 앞의 스위치 수비의 효과 부분으로 돌아가 보자. 스위치 수비는 크게 두 가지의 파생효과를 가져왔다. 하나는 슬래셔 에이스들의 ‘돌파 후 킥아웃’ 동선을 고립시키는 것이었다. 하든과 르브론이 아무리 많은 득점을 올려도 팀승리로 견인되지 않는 것, 에이스들의 고군분투는 실상 상대 팀의 플랜 안에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후반에 방전된 르브론, 볼키핑시간으로 샷클락에 쫓긴 하든의 모습은 40득점 폭발의 에이스 모드와 동전의 양면을 구성한다.
다른 하나는 커리의 공격 부진 등으로 외화되는 스크린 파생효과의 위축이다. 어느 쪽으로 어떤 스크린을 받으며 돌아도 다른 수비수가 매치업을 변경하며 패싱레인을 끊어버리고, 픽앤롤을 하면 역시 다른 매치업 수비수가 또 다른 일대일을 강제하는 수비가 스위치 수비다. 듀란트가 커리에게 픽앤롤을 걸면 이제 커리는 아리자와 매치업될 것이고, 볼은 폴을 미스매치한 듀란트에게 넘어가게 될 것이다. 아래는 서부결승 이전에 커리와 듀란트가 실시한 픽앤롤 훈련 영상이다.
https://youtu.be/dv2CuSXn7cU
영상에서 볼 수 있듯, 스크린 후 듀란트가 취하는 포지션은 일반적인 림대쉬가 아니라 포스트업인데, 이는 스위치 수비를 연두에 둔 컨셉이다. 그렇다면 커리는? 커리의 동작을 보면 대부분이 슬립 스크립(Slipped Screen) 형식으로 수비수를 스치듯 빠져나가는 동선을 이루고 있다. 스위치 수비를 통해 아리자와 또 다시 일대일 매치업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스위치의 매치업 변경 타이밍을 뺏으며 빠르게 빠져나가는 동선이 필요하고, 이를 통해 얼마나 적절한 타이밍의 3점슛 찬스를 잡느냐가 관건이다(사실 핵심은 상대 수비수들의 커뮤니케이션 완성도에 있을 가능성이 더 높다).
다시 돌아와 하든과 커리의 매치업을 보자. 하든의 커리 상대야투가 많았던 1차전에 비해 야투가 적었던 2차전에 팀전반의 효율이 상승한다. 이는 하든이 커리를 미스매치하지 말라는 말일까. 그렇지 않다. 그 반대로 미스매치는 많을수록 좋다. 미스매치가 될수록 수비진의 도움수비 동선이 커지고, 그로 인한 다양한 파생옵션들이 활용될 여지가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슬래셔 하든이 스스로 고립되는 길을 택했던 1차전이 사실상 워리어스의 디펜스 플랜을 돕는 것이었다는 점에 있다.
스위치 수비를 공략하는 데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 1차전에서 휴스턴은 미스매치라는 가장 단순하고도 정규시즌에 본인들이 이미 효과를 봤던 옵션에 올인했다. 결과는 플레이오프 수비모드의 골든스테이트의 승리. 원정경기였다는 점, 경기플랜의 주도성 부분들을 고려하면 점수차 이상의 훨씬 유의미한 승리였다. 적어도 정적인 단순 미스매치 농구를 통해 서구파이널의 승리가 견인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렇다면, 어떤 농구가 필요할까? 아래는 커리의 또 다른 일대일 미스매치 장면으로 2차전에서 나온 영상이다.
그런데, 위 장면과 기존 워리어스 스플릿 액션의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바로 위 장면에서 그린의 위치는 보통 탐슨이나 듀란트가 왔다는 점이다. 스플릿 액션은 슈팅능력이 되는 선수들이 할 때, 수비 커뮤니케이션을 무너뜨리는 효과가 배가된다. 반면, 위 영상은 상대 스위치 수비를 고려한 것으로 보이고, 카펠라를 커리에 순간 스위치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미스매치가 만들어졌는데, 오프볼 액션이 연속되는 순간에 매치업이 변경되면서 카펠라의 움직임이 흔들린 것이 주효했다. 이것이 커리의 순간 일대일 돌파 효과를 높여 주었다.
스위치의 다른 말은 매치업 변경이다. 정적인 미스매치 농구는 매치업 변경 과정에 아무런 혼란을 부과하지 않는다. 결과는 에이스들의 능력에 모든 것을 올인하는 흐름으로 귀결되는 것인데, 앞서 봤듯 이러한 고립된 흐름이야말로 스위치 수비가 주도하는 플랜이기도 하다.
따라서 핵심은 이런 것이다. 매치업 변경에 얼마나 유의미한 혼란을 부과할 수 있는가. 일대일 농구를 피할 수는 없지만, 정직하게 일대일에만 올인하는 팀에게 승산이 높지 않다는 것도 이번 플레이오프에서 두드러지는 현상이다. 아래 영상은 커리의 무브를 살리는 또 다른 동선이다. 이번에는 1차전 장면으로 하든을 공략한 것인데, 역시나 매치업 변경의 역동성을 그대로 살리면서 돌파가 진행된다는 것이 핵심이다.
샌안토니오 스퍼즈가 자주 사용했던 ‘모션 위크’라는 오펜스로, 그린과 커리의 픽앤롤 과정에서 하든이 커리와 매치업 변경을 하게 된 장면이다. 이 장면은 사실 공격수와 수비수를 그대로 뒤집어도 유의미한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물론, 팀과 선수마다 잘하는 농구가 다르고, 추구하는 스타일이 다르기에 이와는 다른 다양한 바리에이션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2차전에서 휴스턴은 숏드라이브인을 최대한 섞고, 스크린 세팅에서 상대 스위치 커뮤니케이션에 혼란을 주는 농구를 하며 승리를 가져왔다. 속공이 배가된 것도 주요 포인트였다. 3차전에서 양팀은 어떤 전략을 펼치게 될까. 혹은 커리에게 다시 행복농구의 시간이 돌아올 수 있을까.
대단한 글이네요.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