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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틀란타 호크스 프랜차이즈 포지션별 랭킹 Top28 - PG편 (ver.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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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7-01-13 08:49:06

Prologue

 

안녕하십니까, 16-17시즌이 한창인 시점에 뜬금없이 애틀란타 호크스 프랜차이즈 포지션별 랭킹 시리즈로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지난 시즌 초에 브루클린 네츠 편을 연재한 이후로 만 1년이 넘었는데요, 이렇게 진행이 너무 지연되어 저 스스로부터 답답한 심정입니다. 하지만 개인 사정에 따라 어떤 때는 몇 달 동안 작업을 못하게 되고, 또 기본적으로 시간적 여유가 없는데다가, 이번에는 매너리즘(?)까지 겹치면서 진행이 더더욱 지지부진해졌습니다. 이제는 10년 만에 30개 팀 다 끝낸다... 이런 소리도 못하겠고, 그냥 살아있는 동안 계속 하다보면 언젠가는 다 하는 날도 있겠지... 이런 마음가짐입니다.

 

뭐 어쨌든 NBA는 제가 평생 즐길 컨텐츠이고, 개인 취미 차원에서 시작한 일이니 앞으로 계속 시리즈는 진행해 볼 예정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가급적이면 오프시즌에 연재를 해서 한가로울 때 심심풀이로 글을 열람해보실 수 있도록 할 계획입니다. (장담은 못 드립니다. 본 편도 본래 계획은 오프시즌 때 와이드 릴리즈였습니다. )

 

시리즈는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아래 랭킹부터 선수를 죽 소개하는 방식이고요, 역시 5개 포지션 별로 나누어 연재가 진행 됩니다. (PG > SG > SF > PF > C 순입니다.)

 

지난번 브루클린 네츠 시리즈와 같은 패턴으로 진행되어 (각 프랜차이즈의 총 연차 / 5)까지 순위의 선수들을 메이저 랭킹이란 명목으로 소개하고, 메이저 랭킹과 동수(同數)만큼 그 아래 순위의 선수들을 마이너 랭킹이란 명목으로 소개합니다. 말이 메이저, 마이너지 두 랭킹 간에 스탯 정보의 편집방식 외에 별다른 차이는 없습니다. 그리고 본 랭킹 밖의 선수들을 일부 소개하는 기존의 “Honorable Mention”의 내용을 좀 더 강화하고(이름 외에 사진 및 간단한 프로필 추가), 그 위치도 본 랭킹의 앞쪽으로 바꾸었습니다.

 

순위 매기기라는 것 자체가 필자의 주관이 많이 개입될 수 밖에 없으며, 포지션 규정 역시 기본적으로 모호한 부분들이 많다보니 글 안에 잘못된 내용, 타당치 못한 주장들이 산재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오류 및 부족한 부분들에 대해서는 아무쪼록 가감 없이 지적해주시면 적극적으로 피드-백 해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애틀란타 호크스 프랜차이즈는 NBA 기준으로는 49-50시즌부터 역사가 시작되지만, 그 전에 맨 처음 NBL이란 리그에서 46-47시즌부터 출범했습니다. 따라서 NBL 3+ NBA 67년 해서 총 70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기에, (이번 16-17시즌 제외) 70 나누기 5를 해서 1위부터 14위까지는 메이저 랭킹으로, 15위부터 28위까지는 마이너 랭킹으로 구분해 선수를 소개하겠습니다.

 

그럼 본격적으로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본 시리즈의 간단한 범례 및 호크스 프랜차이즈의 간략한 역사 소개를 통해 글을 처음 보시는 분들의 이해를 돕고자 합니다.

 


       


범례

 

- 이 글의 랭킹은 기본적으로 아래 순위부터 역순으로 소개됩니다. 먼저 기본 랭킹 외의 선수들을 5명씩 소개하는 “Honorable Mention”이 등장하며, 이후 28위부터 역순으로 15위까지 마이너 랭킹”(14), 이어서 14위부터 역순으로 1위까지 메이저 랭킹”(14)의 순으로 진행됩니다.

 

- 위 글 내의 전반적인 스탯 정보(기본적인 신체 사이즈 포함) 등은 바스켓볼 레퍼런스(www.basketball-reference.com) 사이트가 제공하는 데이터를 준용하여 제시하였습니다.

 

- 스탯 정보는 주요 1차 스탯과 일부 2차 스탯을 기재하였습니다. 1차 스탯은 득점(PT), 리바운드(RB), 어시스트(AS), 블록슛(BK), 스틸(ST), 출장시간(MIN)의 총계 및 평균치, 그리고 야투성공률(FG%), 3점슛성공률(3PT%), 자유투성공률(FT%), 3점슛 성공개수(3PTM)까지 수록하였습니다. 턴오버, 개인파울, 오펜/디펜리바 등의 정보는 생략하였으니 이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2차 스탯은 가장 대표적인 PER와 윈쉐어(WS)만 수록하였습니다.

 

- 주요 스탯 외에 해당 선수의 신체 사이즈(키와 체중), 포지션, 연차(Yrs), 출장 경기 수(Games), 활동한 시즌 기간(Season) 정보도 수록하였습니다. 포지션별 랭킹인데 포지션에 대한 정보가 중복해 들어간 이유는 두 포지션을 넘나드는 경우를 표시하기 위함입니다. (즉 경우에 따라 세컨드 포지션까지 표기하였다고 보시면 됩니다.) 시즌의 표기는 파이널이 열린 해를 기준으로 하였습니다. (: 99-00시즌은 “00”으로 표기함)

 

- 선수들의 주요 수상경력도 기재하였습니다. , 올스타 MVP 등과 같이 직접적인 선수 평가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 수상 실적은 제외했습니다. 이밖에 올스타 선정 횟수, 우승 횟수도 병기하였습니다.

 

- 각 스탯의 해당 프랜차이즈 내 랭킹도 첨부하였습니다. 이번 애틀란타 호크스 프랜차이즈의 경우, 3점슛 개수 및 3점슛율은 Top12까지, 블락슛과 스틸은 Top15까지, 나머지 스탯들은 Top20까지 랭킹을 매겼습니다. (스탯 랭킹의 범위가 각각 차이가 나는 까닭은, 3점슛은 79-80시즌부터, 블락슛과 스틸은 73-74시즌부터 계산된 스탯임을 염두에 둔 것입니다.)

 

- 스탯 랭킹 내에 드는 평균 및 비율 스탯의 유효 기준은, 레퍼런스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프랜차이즈 커리어 최소 요구 수치를 준용하였습니다. 따라서 평균 득점 등 여러 스탯은 100경기 이상 출전을, FG%500개 이상 필드골 성공을, FT%200개 이상 자유투 성공을 기준으로 하였습니다. 다만 3PT%의 경우에는 현 레퍼런스 사이트의 기준이 50개 이상 3점슛 성공인데, 3점슛을 많이 쏘는 현재의 트렌드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기준입니다. 그래서 얼마 뛰지도 않은 전문 3점 슈터들이 상위 랭킹에 대거 포진하는 등의 기현상이 있어서 필자의 임의에 따라 94-95시즌 이전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기존대로 50, 94-95시즌부터 11-12시즌까지는 100, 12-13시즌 이후로는 150개를 랭크 기준으로 하였습니다.

(이는 리그의 3점슛 시도가 크게 늘어난 시점을 각각 지표로 삼았습니다. 94-95시즌에는 리그에서 3점슛 거리를 전체 22피트로 조정함에 따라 한 팀의 평균 3점슛 시도 횟수가 급증하였고, 처음으로 경기당 10개를 돌파했습니다. 이 거리 단축 조치는 3시즌 동안만 유지되었으나, 이후 3점슛의 비중이 커지고 선수들이 3점을 더 많이 던지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였습니다. 12-13시즌에는 한 팀의 평균 3점슛 시도 횟수가 처음으로 경기당 20개를 돌파하였으며, 또한 이 시즌에 스테판 커리가 레이 알렌이 가지고 있던 시즌 최고 3점슛 기록(269)를 간만에 경신하기도 했습니다.)

 

- 선수에 대한 소개는 해당 프랜차이즈 내에서의 활약상을 위주로 기술하였으며, 따라서 다른 팀에서의 활약상 등은 가급적 생략하거나 짧게 요약하였습니다. 또한 기본적으로 랭킹이 올라갈수록 선수 소개의 분량이 많고 자세합니다. 해당 프랜차이즈에서 드래프트 된 경우에는 드래프트된 연도와 그 순위까지 언급하였으며, 고인이 된 선수는 몰년과 향년을 기재하였습니다. 이밖에 명예의 전당 입성 및 해당 프랜차이즈 영구결번 여부 등도 밝혔습니다.




 

애틀란타 호크스 프랜차이즈의 간단 역사






    

호크스 프랜차이즈는 1946년에 NBL 리그에서 버팔로 바이슨즈(Buffalo Bisons)라는 이름으로 창단되었다가, 한 달 여 만에 연고지를 일리노이 주의 멀린(Moline)으로 옮기면서 트라이-시티스 블랙호크스(Tri-Cities Blackhawks)로 새롭게 단장하였습니다. “트라이-시티스란 미시시피 강 유역에 서로 인접한 멀린, 록 아일랜드(Rock Island), 데이븐포트(Davenport)의 세 도시에 속한 구역을 지칭하는 말이고, “블랙호크스는 과거 용맹했던 인디언 추장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죠. 장신 센터 돈 오튼을 주축으로 한 블랙호크스는 1949년에 NBLBAA 리그에 병합되어 새로이 NBA 리그가 출범함에 따라, 그 소속이 NBA로 바뀌었습니다. 이후 구단주 벤 커너는 1951년에 연고지를 대도시인 밀워키로 옮겼고, 팀 이름도 좀 더 간단하게 호크스로 바꿨죠. 하지만 밀워키 호크스는 성적이 계속 하위권에 머물면서 흥행이 신통치 않았고, 결국 1955년에 연고지를 다시 세인트루이스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엘리트 빅맨인 밥 페팃을 중심으로 차츰 전력을 강화한 호크스는 56 드래프트에서 빌 러셀을 뽑았지만, 흥행 때문에 세인트루이스의 지역 스타인 에드 마콜리를 영입하기 위해 러셀을 보스턴 셀틱스에 팔고 말았죠. 56-57시즌에 파이널에 진출한 호크스는 공교롭게도 러셀 트레이드의 상대였던 보스턴과 맞붙어 역대 파이널 사상 가장 치열했던 7차전 대접전을 벌인 끝에 아쉽게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이듬해인 57-58시즌에 다시 파이널에 진출한 호크스는 보스턴과 리매치를 벌였는데 이번에는 러셀의 부상을 틈타 4-2로 승리를 거두면서 리벤지에 성공, 프랜차이즈 첫 우승의 위업을 달성했죠. 이후 호크스는 밥 페팃, 클리프 헤이건 등을 앞세워 50년대 말~60년대 초에 서부를 대표하는 강자로 군림했으며, 라이벌 보스턴과는 두 번 더 파이널에서 맞붙었지만 아쉽게도 모두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64-65시즌을 끝으로 밥 페팃이 은퇴하자, 호크스는 선수 겸 감독인 리치 게린의 지도하에 레니 윌킨스, 젤모 비티 등의 흑인 스타들을 앞세워 꾸준히 중상위권 전력을 유지했죠. 게린의 시대에 호크스는 매년 빠짐없이 플레이오프에 진출했고, 67-68시즌에는 56승의 호성적을 거두기도 했습니다. 한편 홈구장 신축 문제로 골치를 썩이던 벤 커너 구단주는 1968년에 끝내 팀을 애틀란타의 부동산 재벌인 톰 커즌스 등에게 매각함에 따라, 호크스는 연고지를 애틀란타로 옮기게 되었죠.

 

이후 호크스는 루 허드슨, 피트 마라비치 등 재간 있는 스코어러들이 팀을 이끌었지만, 몇몇 주축 선수들을 경쟁 리그인 ABA에 빼앗기기도 하고 마라비치와 흑인 동료들 간에 갈등도 심했으며 ABA의 스타 쥴리어스 어빙을 영입하려다 실패하는 등 악재가 겹치면서 성적이 추락, 잠시 침체기를 걷게 됩니다. 그러다가 1977년에 MLB의 애틀란타 브레이브스의 구단주인 테드 터너가 팀을 사들이고 휴비 브라운을 감독으로 임명한 후에 댄 라운드필드의 영입 등으로 전력을 추스르며 다시 중상위권으로 도약하게 되었죠. 82-83시즌에는 조지아 주 출신의 지역스타인 도미닉 윌킨스를 운 좋게 데려온 호크스는 이후 엘리트 스코어러로 성장한 윌킨스의 활약과 명장 마이크 프라텔로의 지도력 등을 앞세워 80년대 말에 4년 연속 50승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하지만 플레이오프에서는 라이벌 보스턴 셀틱스, 디트로이트 피스톤즈 등의 벽을 넘지 못하며 잇달아 고배를 마셔야 했죠. 프라텔로 사임 후 애매하게 중위권에 머물던 호크스는 93-94시즌에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의 레니 윌킨스를 감독으로 선임했습니다. 윌킨스는 부임 첫 해에 도미닉 윌킨스를 트레이드하는 등 과감한 행보를 보이면서 57승의 호성적을 거두었으나,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도미닉을 트레이드한 데에 충격을 받은 다수의 홈팬들이 호크스에 등을 돌리는 좋지 못한 결과를 낳기도 했죠.

 

이후 윌킨스 감독은 마이애미 히트로부터 스티브 스미스를 영입하고, FA로 수비 대마왕 디켐베 무톰보를 영입하며 90년대 중후반에 공수 발란스가 훌륭한 호화 라인업을 구축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플레이오프에서는 마이클 조던이 이끄는 시카고 불스 등에게 가로막히며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죠. 99-00시즌부터 리빌딩에 들어간 호크스는 프런트의 잇따른 오판에 따른 선수 영입 실패로 인해 오랜 암흑기를 거쳐야 했습니다. 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무려 8시즌 연속으로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한 호크스는 그래도 그간 얻은 드래프트 픽 등을 통해 차츰 전력을 강화한 끝에 07-08시즌부터는 다시 플레이오프 권으로 복귀했죠. 이후 호크스는 조 존슨, 알 호포드 등을 앞세워 계속 중상위권 전력을 유지만 하다가, 13-14시즌에 마이크 부덴홀저 감독을 영입하며 새롭게 도약의 계기를 마련합니다. 샌안토니오 스퍼스를 벤치 마킹, 팀플레이 위주의 짜임새 있는 전력을 구축한 호크스는 14-15시즌에 프랜차이즈 역대 최다인 60승을 거두며 챔피언 컨텐더 급의 전력으로 올라섰죠. 하지만 무려 45년 만에 진출한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르브론 제임스가 이끄는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에게 속절없이 스윕당하고 말았습니다. 이후 다시 중상위권으로 내려온 호크스는 이번 시즌에도 동부의 다른 팀들과 치열하게 플레이오프 싸움을 벌이는 중이죠.

 

호크스는 70년 역사 동안 우승은 단 1회에 불과하지만, 47회나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등 꾸준히 중상위권 전력을 유지해 온 부지런한 프랜차이즈입니다. 90년대 말~2000년대 초의 8시즌 동안 외에는 뚜렷이 긴 암흑기도 없죠. 하지만 플레이오프에서는 번번이 1라운드 탈락, 2라운드 탈락 등의 성적에 그치며 플레이오프 진출 횟수에 비해 그리 큰 성과는 거두지 못한 편입니다.

 

그럼 이상으로 서설을 마치구요, 본격적인 랭킹 소개에 앞서 28위 밖 선수들 중에서 나름대로 소개해줄 만한 선수들을 5명을 추려서 "Honorable Mention"이란 타이틀로 소개하고자 합니다. (28위 밖 선수들에게도 잠정적인 랭킹은 있지만 여기에서 소개하는 순서는 그 순위와는 무관하며, 그냥 시대순으로 정렬했습니다.)







Honorable Mention

    

 

Win Wilfong



호크스가 57 드래프트에서 전체 4번으로 지명한 저돌적인 가드 윈 윌퐁은 57-58시즌에 팀이 우승할 때 백업 1번으로 활약했습니다.

 

Bimbo Coles



영리한 베테랑 가드 빔보 콜스는 99-00시즌에 주전 1번으로 뛰다가 시즌 후반에 루키 제이슨 테리에게 그 바통을 넘겼습니다.

 

Brevin Knight



    
뛰어난 플레이메이커였던 브레빈 나이트는 00-01시즌 도중에 합류해 주전 1번으로 활약했으며, 샤리프 압둘-라힘 트레이드 때 밴쿠버 그리즐리스로 이적했습니다.


 

Jacque Vaughn



 


리더쉽이 뛰어났던 베테랑 가드 쟈크 본은 2000년대 초반에 두 시즌 간(01-02, 03-04) 백업 가드로 뛰었습니다.

 

Royal Ivey



 


탄탄한 수비력을 자랑한 로얄 아이비는 05-06시즌에 비록 출전시간은 짧았으나 스타팅 포인트가드로 66경기를 출전하기도 했습니다.

 




마이너 랭킹 (28~15)

    

 

28

 

#_24 / #_8 Anthony Johnson

 



 

6-3, 190lbs PG / 5시즌(99-00, 01, 07-08), 181경기

 

4.9득점, 1.6리바운드, 2.9어시스트, 0.7스틸

 

앤써니 존슨2년차 때인 98-99시즌에 FA로 애틀란타 호크스에 합류해 두 시즌 가까이 백업으로 활약하다가 99-00시즌 후반에 미래의 2라운드 픽과 맞바꿔져 올란도 매직으로 이적했습니다. 그는 오프시즌에 다시 FA로 호크스에 합류했으나, 시즌 도중에 브레빈 나이트 영입 딜에 끼어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로 이적하는 등 굴곡을 겪었죠. 그로부터 6년이 지난 06-07시즌, 호크스는 가드진 보강을 위해 달라스 매버릭스에서 뛰던 그를 2라운드 픽 하나를 주고 다시 영입했습니다. 비교적 안정적인 플레이메이커이자 평균 가량의 슈터였던 그는 07-08시즌에는 팀의 붙박이 주전 1번으로 기용되며 42경기에서 평균 6.7득점, 4.8어시스트를 기록 중이었죠. 하지만 보다 수준급인 1번의 보강을 원한 구단은 시즌 도중에 새크라멘토 킹스로부터 마이크 비비를 데려왔고, 그는 비비 딜에 포함되어 킹스로 트레이드되었습니다. 09-10시즌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한 그는 뉴올리언즈 펠리컨즈에서 스카우터로 활동했습니다.

 




 

27

 

#_5 Eldridge Recasner



 


6-3, 190lbs PG/SG / 2시즌(97-98), 130경기

 

7.3득점, 2.0리바운드, 1.6어시스트, 41.7% 3점슛율(통산 2), 91.2% 자유투율

 

언드래프티 출신으로 하부리그인 CBA에서 뛰면서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온 슈터 엘드리지 레카스너96-97시즌을 앞두고 FA로 애틀란타 호크스에 합류했습니다. 그는 1-2번을 오가며 벤치에서 간간이 외곽포를 터뜨려주곤 했는데, 97 플레이오프 2라운드 4차전에서는 시카고 불스를 상대로 3쿼터에만 폭풍 11점을 몰아넣기도 했죠. 그러자 그를 저지하기 위해 마이클 조던이 전담 마크맨으로 붙었고, 그의 득점 행진은 그대로 멈췄습니다. 그는 다른 능력은 돋보이지 않았으나 외곽 슈팅력만큼은 일품이었고, 한 번 터지면 못 말리는 폭발력을 지니고 있었죠. 97-98시즌에는 팀의 핵심 식스맨으로 중용된 그는 평균 9.3득점에 41.9%3점슛 성공률을 기록하며 커리어-하이 시즌을 보냈습니다. 한편 오프시즌에 FA가 된 그는 샬럿 호네츠와 4년 계약을 맺으며 호크스를 떠났죠. 그는 1999년에 교통사고를 당한 후로 기량을 회복하지 못하다가 01-02시즌을 끝으로 은퇴했으며, 이후 하부리그에서 어시스턴트 코치직을 역임했습니다.

 




 

26

 

#_8 Shelvin Mack



 


6-3, 203lbs PG/SG / 4시즌(13-16), 172경기

 

6.0득점, 1.7리바운드, 3.0어시스트, 80.9% 자유투율

 

워싱턴 위저즈에서 방출되자 D-리그에서 뛰던 쉘빈 맥12-13 시즌 막판에 애틀란타 호크스와 10일 계약을 체결,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잔여계약 획득에 성공했습니다. 그는 다른 능력은 평범한 편이지만 부지런한 수비력이 돋보이며, 사이즈가 좋아서 백코트 두 포지션을 모두 막을 수 있죠. 13-14시즌에 그는 제프 티그를 훌륭하게 백업하며 평균 7.5득점, 3.7어시스트를 기록했고, 오프시즌에는 호크스와 37.3mil에 재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그러나 14-15시즌 이후로 유망주 데니스 슈뢰더가 급성장을 보이자 호크스에서 그의 입지는 점점 좁아졌고, 간혹 출전해도 본 포지션이 아닌 2번으로 뛰어야 했죠. 결국 그는 15-16시즌 도중에 유타 재즈로 트레이드되었는데, 이렇다 할 포인트가드가 없던 유타에서는 일약 스타팅 1번으로 중용되기도 했습니다. 한편 이번 오프시즌에 유타가 조지 힐을 영입함에 따라, 현재 그는 유타에서 백업 가드로 활약 중입니다

 


 


 

25

 

#_7 Dean Meminger



 


6-0, 175lbs PG / 2시즌(75-76), 148경기

 

7.1득점, 2.5리바운드, 4.2어시스트, 1.2스틸

 

뉴욕 닉스에서 주로 백업 가드로 활약한 딘 메밍거74-75시즌을 앞두고 신생팀 뉴올리언스 재즈의 확장 드래프트 때 뽑혀서 닉스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뉴올리언스는 애틀란타 호크스로부터 슈퍼스타 피트 마라비치를 영입하는 대가로 각각 2장의 드래프트 1라운드 픽과 2라운드 픽, 그리고 확장 드래프트 시 2, 3라운드 지명 선수를 호크스에 넘기기로 합의했기에, 그는 호크스의 유니폼을 입게 되었죠. 그는 74-75시즌 초반에는 스타팅 1번으로 기용되었으나, 나중에는 득점력이 좋은 루키 톰 헨더슨에게 밀려나고 말았습니다. 그는 득점력은 그리 뛰어나지 않았지만 강력한 수비수였으며, 빠른 발과 준수한 볼-핸들링 기술을 갖추고 있었죠. 이듬해인 75-76시즌에도 벤치에서 활약한 그는 오프시즌에 FA가 되자 친정팀 닉스로 돌아갔습니다. 은퇴 후에는 지도자의 길을 걸은 그는 WPBL(여자 프로농구 리그)과 하부 리그, 대학 등지에서 코치로 활동했으며, 2013년에 6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24

 

#_1 Wes Matthews



 


6-1, 170lbs PG / 5시즌(81-84, 90), 152경기

 

8.2득점, 1.5리바운드, 4.1어시스트, 1.2스틸

 

80 드래프트에서 워싱턴 불리츠가 1라운드(14)으로 뽑은 웨스 매튜스는 루키 시즌 도중에 드래프트 동기(19)인 돈 콜린스와 맞트레이드 되어 애틀란타 호크스로 이적했습니다. 마침 주전 포인트가드 자리가 비어있던 호크스는 루키인 그에게 선뜻 그 자리를 내주었고, 그는 남은 34경기에서 평균 12.5득점, 6.2어시스트의 인상적인 활약을 펼쳐줬죠. 그는 탁월한 운동능력과 스피드를 바탕으로 전광석화처럼 코트를 누비는 터프한 가드였습니다. 그는 2년차인 81-82시즌부터는 벤치로 물러나 로리 스패로우, 조니 데이비스 등의 백업으로 활약했죠. 한편 83-84시즌을 앞두고 그는 샌디에이고 클리퍼스로 트레이드되었다가 이내 방출, 하부리그인 CBA로 내려갔다가 도중에 친정팀 호크스와 10일 계약을 맺고 6경기를 뛰기도 했습니다. 이후 저니맨의 삶을 산 그는 L.A 레이커스에서 매직 존슨의 백업으로 뛰며 두 차례 우승(87, 88)을 맛보았고, 89-90시즌에도 호크스와 10일 계약을 맺어 1경기를 뛰기도 했죠. 한편 그는 현재 달라스 매버릭스에서 뛰고 있는 웨슬리 매튜스의 생부이기도 한데, 웨슬리가 3살 때 버리고 떠난 채 양육하지 않았기에 웨슬리는 편모슬하에서 자랐습니다.

 




 

23

 

#_22 Rumeal Robinson



 


6-2, 195lbs PG / 2시즌(91-92), 128경기

 

10.3득점, 2.3리바운드, 4.5어시스트(통산 16), 1.1스틸

 

1989년도에 미시간 대학을 우승으로 이끈 주역 중 하나인 루밀 로빈슨90 드래프트에서 전체 10번으로 애틀란타 호크스의 지명을 받았습니다. 루키 시즌에는 주로 벤치를 전전했던 그는 호크스가 91-92시즌을 앞두고 베테랑 포인트가드인 닥 리버스, 스퍼드 웹을 잇달아 팔아버리자 일약 주전 포인트가드 자리를 차지, 평균 13득점, 5.5어시스트로 커리어-하이 시즌을 보냈죠. 출중한 운동능력을 자랑한 그는 종종 놀라운 덩크슛을 터뜨리곤 했고, 돌파력도 준수한 편이었습니다. 하지만 볼-호그 기질이 강했고 리딩과 볼-핸들링이 불안했으며, 가드임에도 자유투가 5~60%대에 그치는 등(통산 61.1%) 단점도 많았죠. 결국 새로운 주전 포인트가드 감을 물색한 호크스는 92-93시즌을 앞두고 그를 뉴저지 네츠의 주전 포인트가드인 무키 블레이락과 맞바꾸었는데,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이후 그는 여러 팀을 전전하며 저니맨 신세가 되었고, 96-97시즌을 끝으로 NBA를 떠난 후로는 하부리그와 유럽 등지에서 뛰었죠. 그는 은퇴 후 부동산 업종에 뛰어들었으나 여러 건의 금융사기를 저지르는 바람에 체포되어 66개월 형을 선고받고 현재 복역 중입니다.

 




 

22

 

#_2 Rory Sparrow



    


6-2, 175lbs PG / 2시즌(82-83), 131경기

 

11.2득점, 2.8리바운드, 5.1어시스트(통산 12), 1.2스틸, 50.7% 야투율(통산 10)

 

뉴저지 네츠 소속이던 로리 스패로우81-82시즌을 앞두고 4라운드 픽과 맞바꿔져 애틀란타 호크스로 이적했습니다. 당시 호크스의 감독은 바로 전 시즌까지 네츠 감독을 지냈던 케빈 로우리였는데, 그는 네츠 시절부터 눈여겨봤던 스패로우에게 파격적으로 주전 포인트가드 롤을 부여했죠. 스패로우는 이전까지는 고작 백업으로 15경기 출전이 경력의 전부였을 정도로 무명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로우리 감독의 기대에 십분 부응하며 그해 전 경기에 선발로 출전, 10.5득점, 5.2어시스트의 준수한 활약을 보여주었죠. 그는 빠른 발과 정교한 슈팅 능력을 지녔으며, 항상 코트 위에서 최선을 다하는 부지런한 수비수였습니다. 82-83시즌에도 그는 주전 포인트가드로서 꾸준한 활약을 보였으나, 호크스 구단은 시즌 초에 인디애나 페이서스로부터 영입한 조니 데이비스를 미래의 1번 감으로 낙점했죠. 결국 스패로우는 올스타 브레이크 도중에 스캇 헤이스팅스+현금과 맞트레이드 되어 뉴욕 닉스로 이적했습니다. 이후 그는 뉴욕, 시카고, 마이애미 등지에서 꾸준히 커리어를 이어갔으며, 선수 생활 도중에 재단을 설립해 사회봉사에 헌신하는 등 선행에도 힘썼죠. 그는 은퇴 후에는 NBA 사무국에서 일하며 주로 선수 관리 프로그램들을 담당했습니다.

 




 

21

 

#_8 Billy Hassett



    


5-11, 180lbs PG / 4시즌(47-50), 165경기

 

8.1득점, 3.8어시스트*, 1,330득점, 71.6% 자유투율

 

평균 어시스트 값은 NBA 리그에서 기록한 18경기의 평균 기록

 

노틀담 대학 출신의 빌리 하셋46-47시즌에 NBL의 버팔로 바이슨즈(이후 트라이-시티스 블랙호크스로 팀 개명)에 입단하며 프로 커리어를 시작했습니다. 블랙호크스에서 주전급 가드로 3시즌을 뛴 그는 47-48시즌에는 평균 10.7득점을 넣기도 하였죠. (그때 당시에는 두 자릿수 득점만 해도 준수한 스코어러로 대접받았습니다.) 그는 키는 작았지만 빠르고 패스에 재간이 있었으며, 중장거리 슈팅 능력도 갖추고 있었습니다. 당시 NBL1946년에 출범한 신생 리그 BAA와 경쟁 관계에 있었는데 48-49시즌에 미네아폴리스 레이커스 등 주요 3개 팀이 NBA로 합류함에 따라 힘을 잃었고, 결국 49-50시즌부터는 완전히 BAA에 흡수 합병되었죠. (NBL을 합병한 BAA는 이후 NBA란 명칭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새 리그로 적을 옮기게 된 하셋은 49-50시즌 도중에 미네아폴리스 레이커스로 현금 트레이드되며 블랙호크스를 떠났습니다. 그는 레이커스에서는 벤치를 전전하며 활약이 미미했지만, 대신 그 해 레이커스의 우승으로 행운의 반지를 차지할 수 있었죠. 50-51시즌을 끝으로 은퇴한 그는 1992년에 7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20

 

#_20 John Barnhill

 



   


6-1, 180lbs PG/SG / 4시즌(63-66), 223경기

 

8.7득점, 3.1리바운드, 2.8어시스트, 24.8분 출장

 

테네시 주립대학을 졸업한 존 반힐59 드래프트에서 겨우 11라운드 전체 79번으로 세인트루이스 호크스의 지명을 받았으나 로스터 합류에는 실패했고, 결국 하부리그인 ABL의 클리블랜드 파이퍼스(Cleveland Pipers)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1962년에 ABL 리그가 파산하자, 그는 과거 자신을 지명했었던 호크스와 계약하며 뒤늦게 NBA에 진출했죠. 그는 루키 시즌에는 레니 윌킨스와 호흡을 맞추며 주전 2번으로 출전, 평균 11.7득점, 4.7리바운드, 4.2어시스트를 기록했습니다. 그는 1-2번을 두루 소화할 수 있는 듀얼가드로, “래빗(Rabbit)”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걸출한 스피드와 운동능력으로 코트 위를 누볐으며, 수비력도 준수한 편이었죠. 그는 63-64시즌부터는 주로 벤치에서 윌킨스를 백업했으며, 65-66시즌 도중에 조 칼드웰과 맞트레이드 되어 디트로이트 피스톤즈로 이적했습니다. 이후 여러 팀을 떠돌다 마지막에는 ABA로 진출한 그는 69-70시즌에 ABA의 인디애나 페이서스 소속으로 우승을 맛보기도 했죠. 은퇴 후에는 지도자의 길을 걸은 그는 70년대 L.A 레이커스에서 빌 샤먼 감독을 보좌하며 어시스턴트 코치로 활약했고, 2013년에 7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19

 

#_17 Dennis Schroder



    


6-1, 172lbs PG / 3시즌(14-16), 206경기

 

8.9득점, 2.1리바운드, 3.7어시스트, 0.7스틸

 

독일 출신의 데니스 슈뢰더13 드래프트에 참가해 전체 17번으로 애틀란타 호크스의 지명을 받았습니다. 루키 시즌에는 미미한 활약에 그친 그는 2년차 때인 14-15시즌부터는 본격적으로 로테이션에 합류했죠. 벤치에서 평균 20분 미만(19.7) 출장했음에도 10득점, 4.1어시스트의 알짜배기 활약을 보여준 그는 주전 1번인 제프 티그가 종종 부상으로 빠졌을 때 땜빵 주전을 맡아 10경기에서 평균 14.1득점, 7.7어시스트를 기록하며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날다람쥐처럼 빠른 스피드를 자랑하는 그는 포인트가드로서의 재간과 코트비전이 뛰어나며, 어린 나이임에도 보통이 아닌 깡다구와 근성, 악착같은 수비력을 지녔죠. 주전 못지않은 실력을 지닌 슈뢰더의 존재 덕에 호크스는 1번 스팟에서 48분 내내 꾸준한 경기력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15-16시즌에도 그 활약을 이어간 그는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와 맞붙은 플레이오프 2라운드 1차전에서 27득점, 6어시스트를 올리며 분전하기도 했죠. 결국 호크스 구단은 오프시즌에 티그를 트레이드하였고, 대신 그와 470mil의 연장계약을 체결하며 그를 미래의 주전 포인트가드로 낙점했습니다.

 




 

18

 

#_15 Johnny McCarthy



    


6-1, 185lbs PG/SG / 3시즌(60-62), 169경기

 

7.9득점, 4.0리바운드, 4.9어시스트(통산 14), 31.0분 출전

 

59-60시즌을 앞두고 3:1 트레이드를 통해 세인트루이스 호크스에 합류한 조니 맥카시는 기존의 주전 가드인 슬레이터 마틴과 잭 맥맨이 노쇠화와 부상으로 내리막을 걷자 일약 주전 가드 자리를 꿰찼습니다. 터프한 수비가 돋보인 그는 득점력은 그리 뛰어나지 않았지만 다방면에서 활약이 좋은 살림꾼 스타일이었죠. 그 해 처음으로 플레이오프 무대를 밟은 맥카시는 플레이오프 데뷔전에서 트리플-더블(13득점, 11리바운드, 11어시스트)을 기록하였는데, 이는 리그 역사상 그와 매직 존슨, 르브론 제임스, 3명만이 달성한 진기록입니다. 그는 그해 플레이오프 시리즈에서 또 다른 젊은 가드 시휴고 그린과 호흡을 맞추며 평균 8.1득점 7어시스트로 분투했으나, 호크스는 아쉽게도 파이널에서 숙적 보스턴 셀틱스와 7차전 접전 끝에 패배하고 말았죠. 이듬해인 60-61시즌에 그는 마틴의 은퇴로 주전 1번 바통을 물려받으며 평균 8.3득점, 5.4어시스트를 올려주었으나, 기량이 일취월장하는 루키 가드 레니 윌킨스가 그의 자리를 계속 위협했습니다. 이듬해 심각한 다리 부상으로 15경기 출장에 그친 후 호크스를 떠난 그는 63-64시즌에는 보스턴 셀틱스에서 벤치 멤버로 뛰며 행운의 반지를 획득하기도 했죠. 은퇴 후에는 지도자로 활동한 그는 버팔로 브레이브스(Buffalo Braves)에서 한 시즌 동안 감독직을 맡기도 했습니다.

 




 

17

 

#_16 Johnny Davis



    


6-2, 170lbs PG/SG / 3시즌(83-84, 86), 155경기

 

11.3득점, 1.8리바운드, 4.9어시스트(통산 15), 82.9% 자유투율(통산 17)

 

인디애나 페이서스에서 주전 가드로 활약하던 조니 데이비스82-83시즌 초반에 2라운드 픽+현금과 맞트레이드 되어 애틀란타 호크스로 이적했습니다. 처음에 그는 로리 스패로우의 백업이었으나, 스패로우가 올스타 브레이크 도중에 트레이드되어 본격적으로 주전 1번 자리를 맡은 뒤로 32경기에서 평균 16.4득점을 올려 주었죠. 폭발적인 스피드와 민첩성을 자랑한 그는 베테랑 에디 존슨과 함께 볼 소유를 나누며 호크스의 주전 가드 스팟을 지켰습니다. 그런데 83-84시즌에 루키 가드 닥 리버스가 두각을 보이자 호크스는 오프시즌에 데이비스를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로 트레이드하고, 대신 리버스에게 주전 1번 자리를 맡겼죠. 그는 85-86시즌 도중에 과거 백코트 콤비였던 에디 존슨과 맞트레이드 되어 다시 호크스로 컴백, 벤치에서 활약했습니다. 시즌을 마치고 은퇴한 뒤 호크스에서 프런트 및 어시스턴트 코치를 지낸 그는 이후 본격적으로 지도자의 길을 걸으며 리그에서 주로 어시스턴트 코치로 재임했고, 필라델피아, 올란도 등지에서 감독직을 맡기도 했습니다.

 




 

16

 

#_10 Tyronn Lue



    


6-0, 175lbs PG / 4시즌(05-08), 189경기

 

11.0득점, 1.8리바운드, 3.6어시스트, 39.4% 3점슛률(통산 4), 87.0% 자유투율(통산 5)

 

L.A 레이커스 시절에 01 파이널에서 앨런 아이버슨을 막는 수비로 이름을 알린 터란 루는 휴스턴 로케츠 소속이던 04-05시즌 초반에 존 배리와 맞트레이드 되어 애틀란타 호크스의 유니폼을 입었습니다. 당시 호크스에는 변변찮은 포인트가드가 없었기에 그는 곧바로 주전으로 발탁되어 49경기에서 평균 13.5득점, 5.4어시스트를 올려주었고, 오프시즌에는 호크스와 310.5mil에 재계약을 체결했죠. 그는 키는 작았지만 빠른 스피드를 자랑했으며, 중장거리슛이 상당히 정확했습니다. 05-06시즌에 그는 전문 수비수인 로얄 아이비에게 스타팅 자리를 내주고 식스맨으로 보직을 변경했으며, 리그 3점슛 성공률 2(45.7%)에 오르기도 했죠. 이후로도 주로 벤치에서 활약한 그는 07-08시즌 도중 마이크 비비를 영입할 때 트레이드 카드로 쓰이며 호크스를 떠났습니다. 은퇴 후에는 지도자의 길을 걸은 그는 현재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의 감독으로 재임 중이며, 지난 시즌 감독으로 처음 데뷔하여 클리블랜드를 우승으로 이끌기도 했습니다.

 




 

15

 

#_13 Frankie Brian



    


6-1, 180lbs PG/SG / 1시즌(51), 68경기

 

16.8득점, 3.6리바운드, 3.9어시스트, 82.3% 자유투성공률

 

뛰어난 득점력을 자랑했던 공격형 가드 프랭키 브라이언50-51시즌을 앞두고 소속팀 앤더슨 패커스(Anderson Packers)가 파산함에 따라, 시카고 스택스(Chicago Stags)로 이적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50 드래프트에서 밥 쿠지를 지명했지만 그와 계약 협상에 난항을 겪고 있던 트라이-시티스 블랙호크스가 스택스에 쿠지의 지명권을 넘기는 대신에 브라이언을 영입했죠. “플래쉬(Flash)”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전광석화처럼 빨랐고 운동능력도 뛰어났던 그는 특유의 스피드로 매치-업 상대를 농락하며 코트를 헤집었고, 파울 유도에도 매우 능했습니다. 50-51시즌에 그는 리그 총 득점 3(1,144득점/평균 16.8)에 올랐고, 올스타 및 올-NBA 세컨드 팀에도 선발되었죠. 이로 인해 그는 프랜차이즈 사상 첫 올-NBA 팀 수상자 및 올스타로 이름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올스타전은 그해 처음 열렸으며, 팀 동료 다이크 에들먼과 함께 선발됨) 그는 블랙호크스에서 단 한 시즌만을 뛴 뒤, 오프시즌에 딕 메헨+하위 슐츠+현금과 맞트레이드 되어 포트웨인 피스톤즈로 이적했죠. 이후 그는 피스톤즈에서 다섯 시즌을 더 뛰었으며, 은퇴 후에는 고향인 루이지애나에서 목장을 운영했습니다.

 




메이저 랭킹 (14~1)

    

14

 

#_7 Bob Harrison

  




  


어메리칸 원주민 혈통이기도 한 밥 해리슨50년대 초반 미네아폴리스 레이커스 왕조의 일원으로 활약하며 3차례나 우승을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53-54시즌 들어 출장시간이 15분 남짓에 그치는 등 팀 내 입지가 급감했고, 결국 시즌 도중에 현금 트레이드를 통해 밀워키 호크스로 이적했죠. 그런데 당시 서부 최강이었던 레이커스에 비해 서부 꼴찌 호크스의 선수층은 한결 빈약했고, 그는 레이커스 시절보다 팀 내 비중이 한층 높아지며 남은 24경기에서 평균 34.3분을 출전했습니다. 이듬해인 54-55시즌, 그는 본격적으로 팀의 주전 포인트가드 역할을 맡으며 평균 10.1득점, 3.5어시스트로 활약했죠. 그는 뛰어난 득점원이나 플레이메이커는 아니었지만 레이커스 시절부터 인정받은 탄탄한 수비력을 바탕으로 팀에 기여했고, 종종 외곽에서 장거리 슛들을 터뜨려주곤 했습니다. 그는 호크스가 세인트루이스로 연고지를 옮긴 55-56시즌에는 생애 첫 올스타에 선발되는 감격을 맛보기도 했죠. 그러나 그는 56-57시즌을 앞두고 구단에게 올스타 급에 맞는 처우를 요구했다가 거절당하자 잠시 팀을 이탈하기도 했으며, 시즌 개막 후 다시 돌아왔으나 10경기 동안 미미한 출전시간만 받다가 결국 시라큐즈 내셔널즈로 트레이드되고 말았습니다. 현역 은퇴 후에는 지도자의 길을 걸은 그는 하버드 대학 등지에서 감독직을 역임했습니다.

 




 

13

 

#_14 Charlie Criss

  




  


키가 5-8에 불과했던 뉴멕시코 주립대 출신의 찰리 크리스70 드래프트에 참가하여 NBA의 문을 노크했지만 끝내 드래프트 되지 못하였고, (당시는 드래프트가 19라운드까지 펼쳐졌고, 239명이 뽑혔습니다.) 또 다른 프로 리그인 ABA도 그를 외면했습니다.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하부리그인 이스턴 리그(Eastern League)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한 그는 평균 30득점 이상을 넣고 2년 연속 이스턴 리그 MVP에 오르며 자신의 존재를 어필했죠. 76-77시즌을 앞두고 고향 팀 뉴욕 닉스와 계약했다가 열흘도 못 되어 방출되는 아픔을 겪기도 한 그는, 77-78시즌을 앞두고 애틀란타 호크스와 계약하며 끝내 자신의 꿈을 이루고야 맙니다. 28살의 나이로 늦깎이 데뷔를 한 그는 루키 시즌에 키 식스맨으로 활약하며 11.4득점, 3.8어시스트를 기록, 자신이 NBA급임을 당당히 입증하였죠. 그는 키는 몹시 작았으나 엄청난 스피드로 코트를 헤집을 수 있었고, 수준급의 점프슛 능력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는 비록 신장의 한계로 인한 수비 문제 때문에 주로 벤치에서 출장해야 했지만, 뛰어난 1:1 능력으로 벤치 득점의 활로를 열어줄 수 있었던 훌륭한 식스맨이었죠. 호크스에서 4시즌 반 동안 주요 벤치 자원으로 활약한 그는 81-82시즌 도중에 샌디에이고 클리퍼스로 트레이드되며 호크스를 떠났습니다. 커리어 말년에는 엉덩이 부상에 시달리며 장기인 스피드를 잃어버린 그는 자신에게 기회를 주었던 친정팀 호크스로 돌아와 몇 차례 10일 계약을 맺으며 13경기를 더 뛰고 난 뒤에 은퇴했죠. 이후 그는 제2의 고향이나 다름없는 애틀란타에 정착하여 지역 방송 해설가, 유소년 농구 코치 등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12

 

#_14 Tom Henderson

  




  


72년 뮌헨 올림픽 대표기도 했던 하와이 대학 출신의 톰 헨더슨74 드래프트에서 전체 7번으로 애틀란타 호크스의 지명을 받았습니다. 한편 74-75시즌 초반에 호크스의 에이스 루 허드슨이 부상으로 아웃되는 등의 사태로 팀 공격이 슬럼프에 빠지자, 코튼 피츠시몬즈 감독은 득점력이 약한 베테랑 포인트가드 딘 메밍거 대신에 루키 헨더슨을 주전으로 발탁했죠. 루키 시즌에 그는 득점에서 약간의 기복을 보여주었지만 14차례나 20득점 이상을 기록하며 평균 11.4득점, 4어시스트로 기대에 부응하였습니다. 이듬해인 75-76시즌에는 풀타임 주전으로 자리 잡은 그는 평균 14.2득점, 4.6어시스트를 올리며 활약했죠. 가드임에도 상대방 빅맨들과의 신경전도 불사할 정도로 터프하고 저돌적이었던 그는 공수를 두루 갖춘 준수한 볼 핸들러였으며, 이타적인 팀 플레이어였습니다. 76-77시즌, 그는 플레이메이커로서 한층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며 시즌 중반에 리그 평균 어시스트 2위에 랭크되기도 했죠. (초반 46경기에서 평균 8.4어시스트) 그런데 당시 호크스는 로스터에 변변찮은 빅맨이 없어 골밑이 허약했고, 반면에 워싱턴 불리츠는 플레이메이커의 부재로 곤란을 겪고 있었습니다. 결국 두 팀은 상호 약점 보완을 위해 딜을 단행, 헨더슨은 워싱턴으로 가게 되었고 대신 파워포워드 트럭 로빈슨이 호크스에 합류했죠. 그는 이듬해인 77-78시즌에 워싱턴이 우승을 차지함에 따라 반지를 획득하기도 했으며, 이후 휴스턴 로케츠에서 백업 가드로 활약했습니다. 그는 은퇴 후에는 휴스턴 지역에서 청소년 보호 시설을 운영하며 청소년 복지에 헌신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11

 

#_24 Armond Hill

  




  


아이비 리그의 프린스턴 대학 출신의 아몬드 힐76 드래프트에서 전체 9번으로 애틀란타 호크스의 지명을 받았습니다. 원래 당시 9픽은 휴스턴 로케츠가 가지고 있었는데, 드래프트를 앞두고 1픽을 쥐고 있던 호크스가 휴스턴의 유망주 센터 조 메리웨더를 영입하면서 서로 1라운드 픽을 바꾸게 되었죠. 그는 루키 시즌 초반에는 벤치에서 출격했지만, 시즌 도중에 주전 포인트가드인 톰 헨더슨이 트레이드 되자 본격적으로 많은 출전시간을 받게 되었습니다. 6-41번치고 사이즈가 좋았던 그는 득점력은 그리 뛰어나지 않았지만 패스-퍼스트 마인드를 지닌 이타적인 플레이메이커였으며, 수비력도 탄탄했죠. 2년차 때인 77-78시즌부터 풀타임 주전 포인트가드로 자리 잡은 그는 평균 9.7득점, 5.2어시스트를 올려주었고, 이듬해인 78-79시즌에는 10.2득점, 5.9어시스트로 커리어-하이의 활약을 펼쳤습니다. 한편 호크스는 80-81시즌 초반에 10연패를 당하는 등 부진에 빠졌고, 주전 포인트가드인 힐은 3할대 초반의 야투율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었죠. 결국 호크스는 시즌 도중에 그를 미래의 2라운드 픽 두 개를 받는 조건으로 시애틀 슈퍼소닉스로 트레이드하고 말았습니다. 이후 시애틀, 클리퍼스, 밀워키 등지를 전전한 그는 83-84시즌에 친정팀 호크스로 돌아와 백업 가드로 뛰었으나 15경기 만에 방출 당했죠. 은퇴 후 지도자의 길을 걸은 그는 03-04시즌에는 호크스에서 어시스턴트 코치로 재임하기도 했으며, 이후로는 보스턴 셀틱스에서 오랫동안 어시스턴트 코치를 지냈습니다. 닥 리버스 사단의 일원이기도 한 그는 현재 L.A 클리퍼스의 어시스턴트 코치로 재임 중입니다.

 




 

10

 

#_10 Mike Bibby

  




  


2000년대 새크라멘토 킹스에서 오랫동안 밀레니엄 킹스의 주역으로 활약했던 마이크 비비2000년대 후반 이후에 팀이 리빌딩을 단행하자 입지가 애매해졌습니다. 한편 07-08시즌, 8년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 실패로 기나긴 암흑기를 걷고 있던 애틀란타 호크스는 특히 변변한 포인트가드가 없어 애를 먹고 있었고, 그 타개책으로 비비 영입에 착수했죠. 결국 트레이드 데드라인에 두 팀 간의 딜이 성사되었는데, 호크스는 비비 하나를 영입하는 댓가로 앤써니 존슨, 터란 루, 쉘든 윌리엄스, 로렌젠 라이트 및 082라운드 픽을 내줬습니다. 호크스는 비비 영입 효과를 톡톡히 보며 그 해 8번 시드로 오래간만에 플레이오프에 진출했고, 1라운드에서 3”의 보스턴 셀틱스를 맞아 7차전까지 가는 선전을 보여줬죠.

 

이듬해인 08-09시즌, 비비는 영리한 플레이메이킹과 위력적인 외곽포를 앞세워 호크스를 진두지휘했고, 평균 14.9득점, 5어시스트, 39%3점슛 성공률을 기록했습니다. 이러한 그의 활약에 힘입어 호크스는 전년 대비 10승이 향상된 47승을 기록하며 당당히 동부지구 상위시드(4)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죠. 그간 침체기에 허덕였던 호크스 입장에서 그의 합류는 그야말로 리빌딩의 화룡점정이나 다름이 없었고, 오프시즌에 기꺼이 그와 318mil에 재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그러나 09-10시즌 들어 비비는 급격한 노쇠화를 보이며 기량이 크게 줄어들었고, 특히 느려진 발은 수비에서 큰 문제점을 노출했죠. 결국 그는 10-11시즌 도중에 워싱턴 위저즈로 트레이드되며 호크스를 떠났고, 워싱턴과 바이-아웃한 뒤 곧바로 르브론-웨이드-보쉬 트리오가 뭉친 마이애미 히트에 합류해 파이널 무대까지 경험했습니다. 11-12시즌을 끝으로 은퇴한 그는 현재 그의 부친이자 오랜 코칭 경력을 자랑하는 헨리 비비 밑에서 지도자 수업을 받고 있습니다.

 




 

9

 

#_3 Herm Gilliam

  




  


71-72시즌을 앞두고 주전 가드인 월트 해저드와 피트 마라비치간의 불화로 골머리를 앓던 애틀란타 호크스는 오프시즌에 해저드를 버팔로 브레이브스로 트레이드하는 대신에 다재다능한 가드 험 길리엄을 영입했습니다. 6-3의 다부진 체격을 지닌 길리엄은 1-2번 포지션을 모두 소화할 수 있었으며, 이타적인 성향의 좋은 팀 플레이어였기에 볼 소유욕이 심한 마라비치와 궁합이 잘 맞았죠. 72-73시즌에 길리엄은 평균 14득점, 5.3리바운드, 6.3어시스트를 올리며 다방면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빼어난 돌파력을 지니고 있었고, 가드이면서도 리바운드 가담이 좋았으며, 수비에서도 제 몫을 다 해주었죠. 이듬해인 73-74시즌에도 그는 평균 14.1득점, 5.7어시스트로 제 몫을 다했습니다. 한편 동료들과 불화가 끊이지 않았던 마라비치가 오프시즌에 결국 뉴올리언스 재즈로 트레이드되는 바람에 호크스의 로스터는 약간의 재편을 겪어야 했죠. 74-75시즌을 앞두고 그는 무릎 부상으로 수술대에 오르는 바람에 한 달 가량 늦게 팀에 합류했는데, 그 사이에 팀의 포인트가드 스팟은 마라비치 트레이드 때 합류한 딘 메밍거와 1라운더 루키 톰 헨더슨의 차지가 되어버렸습니다. 슈팅가드로 보직을 옮기며 팀 내 비중이 줄어든 그는 결국 75-76시즌을 마치고 시애틀 슈퍼소닉스로 트레이드 되었죠. 그는 76-77시즌에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에서 백업 가드로 활약하며 팀의 우승에 일조하기도 했습니다. 은퇴 후에는 택배 회사인 UPS에서 근무한 그는 2005년에 심장마비로 인해 5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8

 

#_4 Anthony “Spud” Webb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 출신으로 키가 5-6(168cm)에 불과한 초단신 가드 스퍼드 웹은 키 때문에 85 드래프트에서 4라운드 전체 87번으로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에 지명되었다가 끝내 방출되었으나, 이내 애틀란타 호크스와 계약하며 겨우 리그에 입성했습니다. 그는 키는 작았지만 특유의 스피드와 민첩성, 운동능력을 바탕으로 코트를 누볐고, 안정성은 약간 떨어졌지만 재간 있는 플레이메이커였죠. 한편 평범한 후보 선수에 불과하던 그는 86 슬램덩크 컨테스트를 통해 그 이름을 세상에 널리 알리게 되었습니다. 덩크가 가능할까 싶은 단신의 키로 버젓이 덩크 컨테스트에 도전장을 내민 그는 놀랍게도 더블펌프 덩크, 360도 덩크, 원맨 앨리-훕 리버스 덩크 등 고난이도 묘기를 잇달아 선보이며 사람들을 깜짝 놀래켰죠. 급기야는 결승전에서 팀 동료이자 전년도 덩크왕인 도미닉 윌킨스까지 누르며 우승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당시 그의 깜짝 우승과 놀라운 퍼포먼스들은 덩크 컨테스트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들이었죠. 역대 덩크 컨테스트 우승자 중 최단신이기도 한 그는 이후 두 차례 더(88, 89) 컨테스트에 참가했으나 86년 이상의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습니다.

 

그는 호크스에서 오랜 기간 동안 주전 포인트가드 닥 리버스를 백업하며 벤치 멤버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죠. 그리고 89-90시즌에는 리버스가 부상으로 자주 빠지자 종종 스타팅으로도 활약하며(선발 출장한 46경기에서 평균 11.3득점, 7.2어시스트) 리그에서 주전으로도 뛸 수 있는 기량임을 입증했습니다. 급기야 그는 이듬해인 90-91시즌에는 리버스와 나란히 스타팅으로 출장하며 평균 13.4득점, 5.6어시스트를 기록하기도 했죠. 하지만 호크스는 드래프트 데이 때 리버스를 트레이드하는 등 본격적인 백코트진 물갈이에 나섰고, 결국 그 역시 새크라멘토 킹스로 트레이드되고 말았습니다. 이후 그는 새크라멘토에서 4시즌 동안 주전 포인트가드로 좋은 활약을 펼치다가 95-96시즌을 앞두고 타이론 코빈과 맞트레이드 되어 친정팀 호크스로 복귀했죠. 하지만 백업 1번으로 뛰며 평범한 활약에 그친 그는 시즌 도중에 미네소타 팀버울브스로 트레이드고 말았습니다. 은퇴 후 조용히 살던 그는 2006 슬램덩크 컨테스트에 게스트로 깜짝 등장해 단신(5-9)인 네이트 로빈슨이 그를 뛰어넘는 덩크 퍼포먼스를 펼칠 수 있게 도와주었고, 그 덕분에 로빈슨은 덩크 컨테스트 우승의 감격까지 안은 바 있죠. 현재 그는 달라스 매버릭스의 D-리그 팀인 텍사스 레전즈(Texas Legends)에서 프런트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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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42 Walt Hazzard

  




  


UCLA 대학 시절 팀을 전미 우승으로 이끈 바 있는 월트 해저드67-68시즌에 신생팀 시애틀 슈퍼소닉스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평균 24득점, 6.2어시스트를 기록, 올스타에도 선발되었습니다. 한편 세인트루이스에서 애틀란타로 연고지를 옮긴 호크스는 오프시즌에 팀의 간판스타 레니 윌킨스와의 재계약이 난항을 빚었고, 결국 윌킨스를 시애틀의 떠오르는 스타 해저드와 맞트레이드하고 말았죠. 호크스 입장에서는 프랜차이즈 스타 윌킨스를 버리는 강수를 두어가며 세대교체를 단행한 셈인데, 이는 결국 악수(惡手)가 되고 말았습니다. 68-69시즌에 윌킨스는 시애틀에서도 그 클래스를 입증하며 여전히 올스타 급 활약을 펼쳤지만, 해저드는 이전보다 평균 득점이 2배 이상 하락하는 등(평균 24득점11.2득점) 부진한 활약에 그쳤죠. 그 이유는 그리 뛰어난 동료들이 없어 본인이 1옵션을 맡았던 시애틀 시절과는 달리, 호크스에는 젤모 비티, 루 허드슨, 조 칼드웰 등 올스타 급 동료들이 즐비하여 3~4옵션 급으로 롤이 줄어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비록 그는 애초의 기대에는 못 미쳤지만 그래도 플레이메이커로서 자신의 몫은 그럭저럭 잘 수행해 주었죠. 그는 뛰어난 볼-핸들링 스킬을 바탕으로 업-템포 농구에 강점을 보여줬고, 탁월한 패싱 감각으로 동료들의 득점을 잘 도와줬습니다. 69-70시즌에 평균 15.3득점, 6.8어시스트로 지난 시즌보다 향상된 모습을 보여준 그는 시카고 불스와의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평균 21.8득점을 올리며 팀의 1라운드 통과에 일익을 담당했지만, 안타깝게도 L.A 레이커스와 맞붙은 디비전 파이널 2차전에서 손목 부상을 당해 아웃되고 말았죠. 이듬해인 70-71시즌에도 그는 평균 16.5득점, 6.3어시스트를 올리며 제 몫을 다 해줬지만, 팀의 슈퍼루키 피트 마라비치와의 불화 때문에 결국 시즌 종료 후 버팔로 브레이브스로 트레이드되고 말았습니다. 한편 그는 선수 생활 도중에 이슬람교로 개종하며 이름을 마디 압둘-라만(Mahdi Abdul-Rahman)으로 개명하기도 했죠. 은퇴 후에는 모교인 UCLA의 감독, L.A 레이커스의 프런트 등을 역임한 그는 1996년에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병상을 전전하다가 2011년에 6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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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31 Jason Terry

  




  


애리조나 대학을 졸업한 제이슨 테리99 드래프트에서 전체 10번으로 애틀란타 호크스의 지명을 받았습니다. 당시 호크스는 팀의 주전 포인트가드인 무키 블레이락을 트레이드한 댓가로 얻은 픽을 통해 그를 지명할 수 있었죠. 루키 시즌에 주로 베테랑 빔보 콜스의 백업으로 출전한 그는 시즌 마지막 두 달 동안은 콜스를 제치고 스타팅으로 나오기도 했으며, 평균 8.1득점, 4.3어시스트로 올-루키 세컨드 팀에 선발되었습니다. 2년차 때인 00-01시즌에는 주로 슈팅가드로 출전해 놀라운 성장세를 보여준 그는 평균 19.7득점을 올리며 팀의 에이스급 선수로 급부상했죠. 그는 1번과 2번을 모두 소화할 수 있는 전천후 듀얼가드로 정교한 슈팅 능력을 지니고 있었으며, 특히 중거리 풀-업 점퍼의 달인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소 기복은 있지만 한번 터지면 못 말리는 폭발력을 지니고 있었고, 클러치에도 강했죠. 한편 단신 2번인 앨런 아이버슨이 리그를 호령하자, 호크스 구단은 01-02시즌에 그를 아이버슨같은 득점형 단신 2번으로 키워보려는 시도를 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버슨을 보좌하던 에릭 스노우처럼 2번 수비까지 맡아 줄 장신 포인트가드 수급이 쉽지 않았고, 아쉬운 대로 6-4의 임마누엘 데이비스를 써봤지만 여의치 않았죠.

 

호크스는 01-02시즌에는 샤리프 압둘-라힘, 02-03시즌에는 글렌 로빈슨 등 올스타급 포워드들을 잇달아 영입하며 성적 반등을 노렸습니다. 02-03시즌에는 다시 포인트가드 롤로 돌아간 테리는 볼 배급에 치중하면서 평균 17.2득점, 7.4어시스트(커리어 하이)로 활약했죠. 하지만 이러한 그의 헌신에도 불구, 호크스의 팀 성적은 하위권을 벗어날 여지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한편 02-03시즌을 마치고 제한적 FA가 된 그에게 유타 재즈가 322.5mil의 계약을 오퍼했으나, 호크스가 이를 매치함으로써 팀에 잔류하게 되었죠. 하지만 그의 활약과 별개로 호크스의 성적은 여전히 바닥을 기었고, 결국 타개책을 고심하던 팀은 03-04시즌을 마치고 올스타 포워드 앤트완 워커를 영입하기 위해 그를 달라스 매버릭스로 트레이드하고 말았습니다. 이후 그는 달라스에서 수년간 핵심 멤버로 활약했으며, 10-11시즌 달라스의 우승에 일익을 담당하기도 했죠. 어느덧 39살의 노장이 된 그는 현재 밀워키 벅스에서 백업 가드로 활약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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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22 Slater Martin

  




  


50년대 미네아폴리스 레이커스 왕조의 주전 포인트가드로 활약하며 4번의 우승을 맛본 슬레이터 마틴50년대 최고의 백코트 수비수로 손꼽혔습니다. 그는 5-10의 작은 체구에 불과했지만 빠른 스피드를 바탕으로 매치-업 상대를 끈덕지게 쫓아다니며 밀착 수비를 펼쳤고, 큰 선수들 앞에서도 굴하지 않는 강인한 근성과 투지를 자랑했죠. 한편 베테랑들을 영입해 전력 보강에 힘쓰던 세인트루이스 호크스는 56-57시즌 초반에 뉴욕 닉스에서 뛰던 그를 데려오면서 우승 도전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영입 당시 그는 구단주 벤 커너에게 호크스를 1, 2년 내로 우승시켜 놓겠다고 호언장담을 하기도 했죠. 그런데 구단주 커너는 팀 성적이 예상보다 좋지 않자, 시즌 도중에 섣불리 레드 홀츠먼 감독을 해고해버리고는 마틴에게 감독직 겸임을 제의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선수 생활에 미련이 많이 남아 있던 그는 선수로서의 플레이에 집중하기 위해 8경기 만에 사의를 표명했고, 결국 팀의 백업 빅맨이자 최고참인 알렉스 해넘이 대신 지휘봉을 잡게 되었죠. 56-57시즌에 호크스는 감독이 두 번이나 바뀌는 어수선한 분위기 가운데 5할 미만의 성적(3438)에 그쳤으나, 플레이오프에서 분전하며 파이널까지 진출해 강호 보스턴 셀틱스와 7차전까지 가는 명승부를 펼쳤습니다. 운명의 7차전에서 그는 당대 최고의 포인트가드 밥 쿠지를 1할 대 야투(2-20)로 꽁꽁 묶었으나, 호크스는 2차 연장까지 가는 접전 끝에 끝내 보스턴에게 석패하고 말았죠. 그러나 호크스는 이듬해 58 파이널에서 보스턴과 다시 맞붙어서 리벤지에 성공했고, 그는 2년 내에 팀을 우승시키겠다는 약속을 지켜냈습니다. 당시 호크스와 셀틱스는 파이널에서 4번이나 격돌하며 세기의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고, 최고의 공격수인 쿠지와 최고의 수비수인 마틴은 마치 창과 방패처럼 만날 때 마다 용호상박의 혈투를 벌였죠.

 

58-59시즌에 호크스는 정규 시즌 서부 1위를 차지했으나, 플레이오프 첫 경기에서 마틴이 심각한 다리 부상으로 아웃된 여파로 파이널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이듬해 복귀한 그는 이미 34살의 노장인데다가 햄스트링 부상으로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고, 설상가상으로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또 다시 다리 부상을 당하고 말았죠. 그는 도저히 뛸 수 있는 몸 상태가 아니었지만 국소 마취제까지 맞아가며 출전을 감행했다가 끝내 목발 신세를 져야 했습니다. 그의 부상 투혼에 힘입어 호크스는 서부지구 결승전을 승리로 이끌고 파이널까지 진출했지만 아쉽게도 보스턴과 7차전 접전 끝에 패배했고, 무리한 출전으로 부상이 악화된 마틴은 결국 은퇴하고 말았죠. 그는 호크스에서 4시즌을 뛰면서 스탯은 그리 돋보이지 않았으나, 당대 최고의 수비력을 인정받아 3차례 올스타 및 올-NBA 세컨드팀에 선발되었습니다. 은퇴 후 ABA에서 잠시 감독직을 맡기도 한 그는 1982년에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으며, 2012년에 8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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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0 Jeff Teague

   




 


웨이크 포레스트 대학을 2학년만 마치고 09 드래프트에 참가한 제프 티그는 전체 19번으로 애틀란타 호크스의 지명을 받았습니다. 당시 드래프트에서는 1라운드 17번부터 21번까지 다섯 번 연속 포인트가드가 뽑혔는데, 티그도 그 중 한명이었죠. 그런데 동기생 포인트가드들이 각자 팀에서 자리를 잡아가는 데 비해, 그는 2년차 정규시즌 까지는 벤치를 전전하며 기대 이하의 활약에 그쳤습니다. 그러다가 11년 플레이오프 도중에 주전 포인트가드 커크 하인릭이 부상을 당해 2라운드 출장이 어려워지자, 애송이인 그에게 기회가 돌아왔죠. 어찌어찌 땜빵 주전으로 출전한 그는 시카고 불스와 맞붙은 2라운드 6경기에서 14.8득점, 4.2어시스트의 깜짝 활약을 펼치며 자신의 가능성을 충분히 어필했습니다. 플레이오프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그는 11-12시즌부터 팀의 주전 포인트가드로 자리 잡으며 꾸준히 성장해 나갔죠. 그는 전광석화같은 스피드와 탁월한 운동능력을 바탕으로 코트를 누비는 위력적인 슬래셔이며, 돌파로 수비를 헤집은 뒤 외곽의 동료들에게 킥-아웃해주는 능력도 뛰어납니다. 또한 빅맨을 잘 활용할 줄 알아 2:2 공격에 능하고, 끈기 있는 수비수기도 하죠.

 

그는 12-13시즌을 마치고 제한적인 FA가 되었는데, 밀워키 벅스가 432mil의 계약을 오퍼했으나 애틀란타가 이를 매치함으로써 팀에 잔류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13-14시즌에 애틀란타는 동부 8위로 겨우 플레이오프에 진출해 1라운드에서 동부 1위 인디애나 페이서스와 맞붙었는데, 이때 티그가 돌격대장으로 나서며 인디애나의 강력한 수비를 헤집고 다녔죠. 시리즈 평균 19.3득점에 세 경기나 20득점 이상을 올려준 그의 분전 속에 시리즈는 혼전을 거듭하며 7차전까지 갔고, 비록 업셋은 일어나지 않았으나 1번 시드 인디애나는 1라운드부터 진땀을 빼야 했습니다. 이듬해인 14-15시즌에 애틀란타는 60승을 기록하며 당당히 동부 1위를 차지했고, 평균 15.9득점, 7어시스트로 활약한 그는 다른 주전 3(카일 코버, 폴 밀샙, 알 호포드)과 함께 올스타에도 선발되었죠. 또한 애틀란타가 1월 달에 전승(17-0)을 거두며 리그를 호령하자, 그를 비롯한 애틀란타의 주전 전원이 이 달의 선수로 뽑히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15-16시즌 들어 그의 활약은 전년도에 비해 약간 주춤했고, 백업인 데니스 슈뢰더가 무서운 성장세를 보이며 그의 자리를 위협했죠. 결국 그는 오프시즌에 삼각딜을 통해 인디애나 페이서스로 이적했으며, 현재 인디애나의 주전 포인트가드로 활약 중입니다. 한편 그의 동생 마퀴스 티그도 NBA 경력이 있으며, 현재 이스라엘 리그에서 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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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25 Glenn “Doc” Rivers

  




  


닥 리버스는 마켓 대학을 3학년만 마치고 83 드래프트에 참가하여 2라운드 전체 31번으로 애틀란타 호크스의 지명을 받았습니다. 루키 시즌부터 1-2번 포지션을 오가며 더러 스타팅으로 기용되기도 한 그는 2년차인 84-85시즌부터 붙박이 주전으로 올라서며 평균 14.1득점, 5.9어시스트로 활약했죠. 이후 팀의 확고한 리딩 가드로 자리 잡은 그는 86-87시즌에는 평균 12.8득점 10어시스트(리그 4)로 더블-더블의 활약을 펼치며 팀이 당시 프랜차이즈 역대 최다인 57승을 거두는 데 힘을 보탰고, 이듬해인 87-88시즌에는 평균 14.2득점, 9.3어시스트(리그 5)를 올리며 올스타에 선발되기도 했습니다. 포인트가드로서 훌륭한 신체 조건에 준수한 운동능력까지 갖춘 그는 열정적으로 코트 위를 누비며 공수에서 두루 활약해주었죠. 그는 탁월한 패싱 센스를 지닌 영리한 플레이메이커이자 탄탄한 수비수였으며, 뛰어난 리더쉽을 바탕으로 코트 안팎에서 야전 사령관 노릇도 톡톡히 해주었습니다. 또 그는 본래 그리 뛰어난 슈터는 아니었지만, 커리어 중반 이후로는 슛이 향상되어 외곽에서 간간이 활약하기도 했죠.

 

89-90시즌에 그는 등 부상으로 고생하며 48경기 출전에 그쳤는데, 그가 빠진 동안에 그간 오래도록 백업 신세였던 스퍼드 웹이 주전으로 발탁되어 좋은 활약을 펼쳐 주었습니다. 그러자 이듬해인 90-91시즌에는 웹이 주전 1, 그가 주전 2번으로 기용되며 백코트를 이끌기도 했죠. 한편 오프시즌에 호크스 구단은 주전 1번에서 밀려난 그를 L.A 클리퍼스로 트레이드하는 대신에 91 드래프트 9픽으로 뽑은 스테이시 오그먼과 미래의 2라운드 픽 2개를 받는 딜을 단행했습니다. 이후 그는 뉴욕, 샌안토니오 등지에서 백업 가드로 활약하다가 95-96시즌을 끝으로 은퇴했죠. 호크스에서 8년간 활약한 그는 현재 프랜차이즈 통산 어시스트 1위에 랭크되어 있기도 합니다. 은퇴 후 지도자로 변신한 그는 감독 데뷔 첫 해인 99-00시즌에는 언더독 팀 올랜도를 5할 승률로 이끌며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하기도 했고, 보스턴에 재직 중이던 07-08시즌에는 폴 피어스-케빈 가넷-레이 알렌의 3”를 앞세워 리그 우승을 거머쥐는 등 성공적인 코칭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죠. 현재 그는 L.A 클리퍼스의 감독으로 재직 중인데, 그의 아들 오스틴 리버스 역시 클리퍼스에서 뛰면서 리그 역사상 최초로 부자가 한 팀에서 감독-선수로 활약하는 케이스가 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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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10 Daron “Mookie” Blaylock

  




  


뉴저지 네츠에서 주전 포인트가드로 활약하던 무키 블레이락92-93시즌 개막을 앞두고 루밀 로빈슨과 트레이드되어 애틀란타 호크스의 유니폼을 입게 되었습니다. 곧바로 팀의 주전 1번으로 자리 잡은 그는 스테이시 오그먼과 함께 강력한 백코트 수비진을 구축하며 평균 13.4득점, 8.4어시스트, 2.5스틸(리그 2)로 활약했죠. 오프시즌에 호크스와 5년 계약을 체결한 그는 이듬해인 93-94시즌에 평균 13.8득점, 9.7어시스트(리그 3), 2.6스틸(리그 3)을 기록하며 올스타에 뽑히고 올-디펜시브 퍼스트 팀에도 등극했습니다. 그는 특유의 빠른 손을 바탕으로 상대 가드로부터 전광석화처럼 볼을 뺏어낼 수 있었고 패싱 레인 차단에도 능한 스틸의 귀재였죠. 공격에서도 그는 외곽에서 슛 쏘기를 주저하지 않는 위협적인 3점 슈터였으며, 빠른 스피드를 바탕으로 오픈 코트에서도 강점을 보여 주었습니다. 94-95시즌부터 3년간 리그에서 3점슛 라인을 22피트(6.7m)로 줄이자 블레이락은 3점 시도를 크게 늘리면서 리그에서 가장 많은 3점슛을 던지는 선수 중의 하나가 되었고, 평균 득점도 17점대로 약간 올랐죠. 한편 96-97시즌에 수비형 센터 디켐베 무톰보를 보강한 호크스는 백코트에서는 블레이락, 골밑에서는 무톰보를 중심으로 한 철옹성 같은 수비 진용을 갖추며 56승의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또한 블레이락은 대도(大盜)라는 별명에 걸맞게 96-97시즌(평균 2.7)97-98시즌(평균 2.6)2년 연속으로 리그 스틸왕에 등극하기도 했죠. 그런데 3점슛 라인이 97-98시즌부터 다시 늘어나자, 그의 외곽슛 성공률은 그만 20%후반~30%초반대로 뚝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한편 호크스는 98-99시즌을 마치고 다소 섣부른 리빌딩을 선언했고, 그 신호탄으로 드래프트-데이를 하루 앞두고 여러 해 동안 팀의 터줏대감 1번 노릇을 해준 그를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로 트레이드해버렸죠. 호크스는 그 댓가로 워리어스로부터 빔보 콜스, 듀안 페럴을 영입하고, 1라운드 픽도 서로 맞바꾸어 로터리 픽(10, 제이슨 테리 지명)을 얻어냈습니다. 그는 호크스에서 7시즌 동안 뛰며 6차례나 디펜시브 팀에 올랐는데,(퍼스트 2, 세컨드 4) 비록 게리 페이튼과 마이클 조던의 존재 때문에 퍼스트 팀에는 많이 뽑히지 못했지만 페이튼과 더불어 당대 최고의 수비력을 갖춘 1번이었음은 부인할 수 없죠. 또 그는 7시즌 내내 평균 2개 이상씩의 스틸을 기록했으며, 현재 호크스 프랜차이즈 통산 스틸 및 3점슛 성공 개수에서 1위에 랭크되어 있습니다. 그는 워리어스에서 3시즌을 더 뛴 후 01-02시즌을 끝으로 은퇴했는데, 안타깝게도 2013년에 음주 운전으로 사망 사고를 내는 바람에 법원에서 15년 형을 선고받고 현재 복역 중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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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14 / #_32 Lenny Wilkens

  




  


레니 윌킨스는 프로비던스 대학을 졸업하고 60 드래프트에서 전체 6번으로 세인트루이스 호크스의 지명을 받았습니다. 루키 시즌에 그는 처음에는 백업 신세였으나, 점점 그 실력을 인정받아 주전 가드로 자리 잡으며 팀의 파이널 진출에도 일익을 담당했죠. 이듬해인 61-62시즌, 그는 군복무 관계로 20경기밖에 출전하지 못했지만 18.2득점, 5.8어시스트를 올려주며 팀의 차기 주전 1번으로서의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주었습니다. 62-63시즌에 평균 11.8득점, 5.1어시스트를 올린 그는 스탯 자체는 그리 돋보이지 않았으나 발군의 수비력과 플레이메이킹 능력을 인정받아 생애 첫 올스타에도 선발되었죠. 그는 이후 거의 매 시즌 올스타에 선발되었으며, 호크스의 야전 사령관으로서 팀을 꾸준히 플레이오프에 올렸습니다. 늘 동료들을 위해 헌신하는 이타적인 팀 플레이어였던 그는 64-65시즌 이후부터는 득점에도 보다 적극적으로 기여하며 공수겸장으로서의 면모도 보여주었죠. 그는 외곽슛은 그리 뛰어나지 않았지만 탁월한 스피드를 바탕으로 한 돌파력이 일품이었고, 플로터의 원시적 형태라고 할 수 있는 러닝-훅슛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코트를 누볐습니다.

 

67-68시즌에 그는 평균 20득점, 5.3리바운드, 8.3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절정의 기량을 뽐냈고, 호크스를 당시 프랜차이즈 역대 최다인 56승으로 이끌며 그 해 MVP 투표에서 필라델피아 76ers의 윌트 체임벌린에 이어 2위에 랭크되기도 했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당시 세컨드 팀까지 선발하던 올-NBA 팀에 드는 데에는 실패했습니다. 한편 시즌 후 구단주 벤 커너가 팀을 매각함에 따라, 호크스는 연고지를 세인트루이스에서 애틀란타로 옮기게 되었죠. 당시 재계약을 앞두고 있던 윌킨스는 새 구단 측과 연봉 협상을 벌였지만 난항에 빠졌고, 결국 구단은 그를 시애틀 슈퍼소닉스의 젊은 올스타 가드 월트 해저드와 맞트레이드 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후 윌킨스는 소닉스에서 선수 겸 감독으로도 활약하며 절정의 기량을 뽐냈고, 그의 트레이드 상대였던 해저드는 상대적으로 평범한 활약에 그치며 두 팀의 명암이 엇갈렸죠. 소닉스에서 4년간 간판스타로 뛰며 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그는 은퇴 후 소닉스 프랜차이즈에서 영구 결번되기도 하였습니다.

 

74-75시즌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한 후 지도자의 길을 걸은 그는 78-79시즌에 소닉스를 우승으로 이끌기도 하는 등 감독으로서도 성공적인 커리어를 이어갔죠. 그러다가 93-94시즌부터 애틀란타 호크스의 지휘봉을 맡으며 친정팀에 복귀한 그는 팀의 레전드 스타 도미닉 윌킨스를 트레이드하는 등 과감한 행보를 보이며 팀을 당시 프랜차이즈 역대 공동 최다인 57승으로 이끌었고, 올해의 감독상도 수상했습니다. 이후 호크스를 꾸준히 동부의 강호로 이끈 그는 1995년에는 통산 938승의 레드 아워백을 제치고 당시 역대 최다승 감독이 되기도 했으며, 1996년에는 리그 최초로 감독 통산 1,000승을 기록하기도 했죠. 7년간 호크스의 감독으로 재직한 그는 이후 토론토, 뉴욕 등의 감독직을 역임했으며, 그가 기록한 감독 통산 1,332승은 2010년에 돈 넬슨에 의해 경신될 때 까지 역대 최다승 기록으로 남아있었습니다. 그는 호크스에서 선수로 뛴 8시즌 동안 5번 올스타에 올랐으며, 선수로서 감독으로서 모두 프랜차이즈에 큰 족적을 남겼죠. 그는 1989년에는 선수로서, 1998년에는 감독으로서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였는데, 선수 자격과 감독 자격으로 모두 명예의 전당에 오른 인물은 그를 포함해 총 4명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셋은 존 우든, 빌 샤먼, 톰 하인슨) 04-05시즌을 끝으로 코치직에서 은퇴한 그는 현재 자신의 이름을 내건 복지 재단을 운영하며 사회봉사에 헌신하고 있습니다.

 




종합 랭킹






 






   

Epilogue

 

호크스의 포인트가드 랭킹 매기기는 대체적으로 무난한 편이었습니다. 1위인 윌킨스 옹이야 뭐 이론의 여지가 없었구요, 개인적으로는 제프 티그가 좀 더 호크스에 남아서 블레이락, 리버스 등의 아성에 도전해봤으면 더 재미있었을 텐데 이번에 호크스를 떠나며 좀 아쉽게 되었네요.

 

5위에 랭크된 슬레이터 마틴은 워낙 옛날 선수인데다가 스탯도 보잘 것 없지만, 호크스의 유일한 우승에 큰 공헌을 했고 스탯 만으로는 평가할 수 없는 당대의 레전드죠. 제가 예전에 어떤 외국 사이트에서 호크스의 프랜차이즈 랭킹을 포지션 구분 없이 매긴 것을 보았는데, 전반적으로 공감하기 어려웠지만 가장 충격적인 건, 6~70위 정도까지 매긴 랭킹에 (정확한 숫자는 기억이 잘 안나는데 제법 많긴 했습니다.) 마틴의 이름조차 없는 거였습니다. 이런 엉터리에 무심코 속을 팬들을 생각하니 안타까웠고, 또 이런 것들이 판치지 않도록 뭔가 조치를 해야겠다는 다짐이, 바로 제가 처음에 이 시리즈물을 기획하게 된 중요한 계기 중의 하나가 되었죠. 그런 의미에서 호크스 편에서 마틴 옹의 활약상을 소개하는 것은 저에게는 남다르게 큰 의미가 있습니다.

 

13위에 랭크된 찰리 크리스는 이번 연재를 준비하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선수였습니다. 사실 그전에 저도 크리스는 키 작고 폭발력 있는 식스맨 정도로만 알았지 그의 자세한 농구 스토리는 몰랐는데, 정말 마치 한 편의 영화와 같은 인간승리의 삶을 살았더군요. 이렇게 잘 알려지지 않은 선수들의 이야기를 많은 분들에게 소개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시리즈를 준비하면서 제가 느낀 큰 보람 중의 하나입니다. 또 개인적으로 농구 고대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으로서, 예전 NBL에서 주로 활약했던 빌리 하셋같은 선수를 소개할 수 있어서 기쁘기도 합니다. 사실 4~50년대 농구 이야기는 너무 옛날이라 단독으로는 소개해드릴 엄두조차 나지 않거든요. 그래서 부끄럽지만 제 전공이라고 자부하는 이 시대의 이야기를, 이러한 시리즈를 통해서 그나마 조금이라도 풀어볼 수 있다는 것이 제게는 개인적으로는 큰 의미가 있습니다.

 

지난 시즌까지의 활약상만 포함시켰기에 데니스 슈뢰더의 순위는 아직 19위에 머물고 있지만, 앞으로 메이저 랭킹 진입은 물론이요 Top5 진입도 충분히 노려볼 만한 재능이라고 생각합니다. 과연 슈뢰더가 다음번 소개 때에는 얼마만큼 순위가 상승할 수 있을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참고로 앞으로 프랜차이즈 별 랭킹 소개는 3년마다 한 번 씩 할 예정입니다. 처음에는 매년 소개할 까 했는데, 1년 단위로는 랭킹 변화가 별로 없어서 그저 전의 글 재탕에 가깝고 매년 그렇게 준비할 시간적 여유도 없는 것 같아 3년에 한 번으로 정했습니다.

 

현재 호크스 소속 중에서는 랭커가 슈뢰더뿐인데, 이번 시즌 루키인 말콤 델라니가 앞으로 얼마나 꾸준한 모습으로 살아남아줄 지도 지켜봐야겠습니다. 이 친구도 한 세 시즌 이상 꾸준히 벤치에서 활약해준다면 마이너 랭킹 끝자락쯤에서 그 이름을 찾아보게 될 수 있겠죠.

 

이것으로 시리즈 첫 글인 포인트가드 편 랭킹 소개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그 다음 슈팅가드 편은 다음 주 초쯤에 업데이트할 예정입니다.

 




 

Special Thanks

 

www.basketball-reference.com (레퍼런스는 언제나 사랑입니다)

 

en.wikipedia.org/wiki

 

www.prosportstransactions.com/basketball

 

www.nba.com

 

peachbasketsociety.blogspot.kr

 

(이 사이트는 개인 블로그인데, 다른 데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4~50년대 고대 선수들에 대한 소중한 정보들을 많이 수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도움을 많이 받았으며, 앞으로도 계속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www.google.com

 

그 외 일일이 열거하지 못하는 여러 사이트들, 그리고 도서들...

 

 

14
Comments
1
2017-01-12 15:01:02
보스턴-브룩클린에 이어 애틀란타편이 드디어 연재되는군요.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야 이런 글이 나올지 상상이 안됩니다.
정독하기전에 이런 글을 보게 해주셔서 감사하단 인사 먼저 남깁니다.
1
2017-01-12 15:58:49

당연히 블레이락이 1위라고 생각했는데 옛날에도 훌륭한 선수가 있었군요.

WR
1
Updated at 2017-01-12 18:47:17

네 사실 전 애초부터 레니 윌킨스 > 블레이락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서 고민의 여지 없이 윌킨스를 부동의 1위로 뽑았는데, (어찌 보면 오래된 고정관념?) 블레이락을 높게 보시는 분들의 의견도 꽤 많은 것 같습니다.


사실 블레이락이 누적 스탯이 훌륭하고, 윈쉐어도 좀 더 높고... 충분히 1위를 다툴만한 요소가 있네요. 근데 윌킨스가 워낙 스탯만으로 평가하기 힘든 장점이 많은 타입이고, 당대의 위상도 더 높았다는 점을 높게 보았습니다.


60년대 윌킨스하면 세인트루이스 호크스를 대표하는 간판이자 리더였으니... 이렇게 좋은 선수가 전성기가 막 닥쳤음에도 많은 돈 주기 싫다고 다른 팀 보내버린 호크스 프런트의 오판이 너무나도 뼈아프네요.

1
2017-01-12 16:06:58

엄청납니다. 잘 읽었습니다!

1
2017-01-12 17:02:53

잘보고갑니다~

1
Updated at 2017-01-12 17:47:59

잘봤습니다. 역시 1위는 예상했던 그분이군요.

양질의 글 감사드립니다.

1
2017-01-12 17:58:27

스퍼드 웹 덩콘 기억나네요. 댈러스 D-리그 쪽에서 일하고 계셨군요.

단언컨데 이 사이트에서 읽은 글들중 이게 제일이네요. 덕분에 엄청난 글 잘 읽고 갑니다. 
1
2017-01-12 19:24:30

돈주고봐도 아깝지않을 글을... 감사합니다

1
2017-01-12 23:13:14

와 대박!
정성 및 시간이 어마어마하게 들어갔을듯..
추천을 1개밖에 드릴수없어서 아쉽네요

1
2017-01-14 21:20:04

양질의 글 너무 감사합니다! 잘읽고갑니다

1
Updated at 2017-01-15 19:09:57

스포 기대되네요...호크스의 미래였던 3인방이 과연..


그리고 다음편 슈가에 워낙 다재다능?한 인재들이 많았던지라 어찌나올지도 궁금합니다 
보리스 디아우도 슈가였고..칠드레스도 슈가로 기용됬었고..
WR
1
2017-01-16 09:23:44

네 보리스 디아우의 이름도 다음 편에서 살짝 만나보실 수 있을겁니다.


근데 칠드리스는 종종 슈팅가드 스팟에서 뛰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따지면 스몰포워드로 더 많은 시간을 플레이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데뷔 초에는 2번으로 많이 뛰다가 점점 3번으로 뛰는 시간이 늘어났죠. 그래서 칠드리스는 그 다음편인 스몰포워드 편에서 소개가 될 예정입니다. 

1
2017-01-16 14:10:54

슛만 좋았더라도 장신2번으로 멋진 모습을 보여줬을텐데..

WR
1
2017-01-16 14:41:10

네, 그리고 한창 때 그리스를 가지 않았다면... 하는 생각도 많이 드네요. 그리스에서 뭔 일 있었는지 기량이 급퇴보해서 오는 바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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