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추천 - 테드 창 <숨>
2016년 저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컨택트>를 봤습니다. 와, 좋다. 엄청 좋다. 가 그 때 당시의 제 감상이었습니다. 시각적으로도 만족스러운 작품이었고, 청각적으로도 좋은 사운드트랙을 갖춘 작품이었습니다. (결국 저는 정식 개봉 후 한번 더 봤었습니다.)
그렇지만 가장 좋았던 점은 역시 독특하고 강력한 '이야기'의 힘이었습니다. 언어학과 시간 개념을 쥐고 흔드는 강렬한 SF였습니다. 저는 그날로 테드 창의 단편집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샀습니다.
그리고 <컨택트>의 원작이었던 <네 인생의 이야기>와 다른 단편들을 읽고, 저는 딱 한권의 책 만으로 테드 창의 팬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테드 창의 (국내 출판 기준) 3번째 책이면서 2번째 단편집(중간에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라는 중편이 있습니다만... 이번 <숨>에 포함되어있습니다) <숨>이 출간 되었습니다.
제 기대치는 틀리지 않았습니다.
테드 창의 소설은 SF와 스페이스 오페라의 구별이 불분명한 한국에서는 물음표가 띄워질만한 작품입니다. 우주 배경 거의 없구요. 우주 전쟁 그런거 없고요. 오히려 (괄호 안의 단편은 전작 수록작)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 (바빌론의 탑)의 경우는 중동 배경의, 아라비안 나이트에 들어갈법한 이야기고, (일흔 두글자)나 <데이지의 자동 보모 기계>는 산업화-빅토리아 시대 즈음의 영국이 배경입니다. 몇몇 이야기는 연금술의 향기가 짙고, 어떤 이야기는 천사 강림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우주를 배경으로 삼아놓고 있어요.
근데, 테드 창이 뛰어난 'SF' 작가인 이유는 이 독특한 세계관을 인상적으로 '과학적'으로 설득력있게 바꿔놓고, 이 이야기를 통해 인간적인 화두를 던져놓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서 판타지 내지 종교적인 설정을 끌고 오더라도, 그 세계관을 (짧은 단편이지만!) 단단한 기반에 올려놓고, 그 안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솜씨가 뛰어납니다. 이 이야기 능력이 최대로 구성된 작품을 뽑으라면 저는 (지옥은 신의 부재), <옴팔로스>를 뽑고 싶습니다.
SF 작가로서 테드 창이 자주, (라기엔 총 17편의 중단편이 끝이지만) 천착하는 소재는 '인공지능' 내지 인간의 지성에 관련된 내용이 아닐까 싶습니다. 더 넓은 의미의 '인간성'이라고 해야할까요. 향상된 인간과 그렇지 못한 인간이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인류 과학의 진화), AI의 개별적 성장과 그에 따른 자립권에 대한 탐구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짧고 강렬하게 자유의지와 결정론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우리가 해야할 일> 같은 작품들이 그런 맥락에서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두편의 단편 모두 첫 작품이 정말 좋았네요. 환상 소설과 모험 소설, 그러면서도 인상적인 SF의 모습을 보여줬던 (바빌론의 탑),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이 개인적으로 두 권에서 각각 베스트 단편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개별 소설은 다 좋았지만, 출판물은 제가 중간에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를 따로 구매했던 터라 구성 측면에서 좀 아쉬움이 남긴 합니다. 만약 제가 이걸 가지고 있지 않거나 읽어보지 않았다면 상관 없겠지만, 이미 인상적으로 읽어봤던 이야기라 중간에 살짝 책을 건너뛰면서 띄엄띄엄 읽어버렸거든요.
테드 창의 유일한 아쉬움은 테크니컬 라이터라는 본업 때문에 작품 수가 많이 없고, (아마도 높은 확률로) 장편 소설을 볼 가능성이 낮다는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애초에 단편이라도 1년 1편이 안될겁니다. 그렇지만 한편 한편의 완성도가 매우 높고, 곱씹어볼 거리가 넘쳐흐르는 작품이기에 저는 만약 우주, 광선총 없는 하드 SF를 접해보고 싶다면, 그리고 내가 SF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색다른 작품을 접해보고 싶다면, 저와 함께 테드 창의 단편집을 읽으면서 신작을 기다리는건 어떨지 권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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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충도 이런 재능충이 없는듯요. 당신 인생의 이야기 속 단편 중에 천사?가 나오는 내용의 무척이나 암울한 이야기가 기억이 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