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p
자동
Free-Talk

삼국지 글 : 삼국지의 세력 판도는 셀럽들이 만들었다?

 
14
  3226
Updated at 2019-07-13 11:33:50

안녕하세요 히어로즈입니다.

정말 오랜만에 여유가 생겨 글을 쓰게 되었고, 워낙 오랜만인지라 약간은 도발적으로 제목을 준비해보았습니다.

 

 

I.들어가며

  “나의 자방”. 이는 조조가 원소를 버리고 자신을 찾아온 순욱에게 했던 말입니다. 순욱은 아직은 원소의 하위 세력권에 불과했던 조조의 밑에서 대전략을 세우고 결국 조조를 후한 말의 패자로 올리는데 가장 큰 공을 세웠습니다.

  순욱의 여러 역할 중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것이라면, 자신의 출신을 활용한 인재 피라미드 체계의 완성이었다 할 수 있습니다. 순욱은 예주 영천군 출신으로, 영천 순씨 일파의 일족이었습니다. 이런 순욱이 자리잡은 이후 순욱의 조카인 순유 또한 조조를 따르게 되었으며, 마찬가지로 영천 출신이었던 희지재, 곽가, 종요, 그리고 역사적으로 삼국시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게 된 진군까지 이 순욱을 통해서 조조를 섬기며 이들 영천계 그룹이 조조의 성장을 주도하게 됩니다.

 

  일본의 와타나베 요시히로 교수님 등 학자들은 이런 형태로 주군을 섬기는 연합집단을 명사 집단이라고 일컫습니다.

 

II.하북의 명사들, 원소를 지지하다.

 1.호족과 명사집단

  중앙의 귀족과 대비되는 용어로서 지방의 토착세력”, “지방에 있는 뛰어나고 우수한 친족집단”. 전자는 호족에 대한 두산백과의 사전적 정의이고, 후자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의 본질에 대한 정의입니다. 이런 호족에 대한 개념은 후한 말부터 쓰이기 시작하여 위진남북조 시대에 완성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명사 집단의 경우에는 곧바로 호족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지방의 친족집단으로 각 지방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습니다.

  형주에서 황제와 같은 위세를 떨치던 유표의 세력기반 또한 이 명사집단이었습니다. 유표는 형주에 부임한 이후 형주에서 세력을 떨쳤던 채씨(채모)와 괴씨(괴량, 괴월, 괴기 등), 그리고 군벌에 가까웠던 황조 등을 포섭하여 형주에 자리매김하였습니다. 명사 집단의 지지는 각 지역의 군벌들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2.원소와 공손찬

  (1)공손찬이 몰락하다.

  동탁 이후 조조의 성장 이전까지 가장 큰 라이벌리는 원소와 원술의 형제 싸움, 그리고 그 동맹세력인 원소+유표 vs 원술+공손찬+도겸의 구도였습니다. 결말은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귀신같이 오환 등 이민족들을 패고 다니고, 유우의 10만 대군을 박살 내버린 깡패 공손찬이 결국 원소에 의해 역경루에서 자결하는 것으로 끝이 났습니다.

  공손찬의 몰락은 계교 전투 등 중요한 전투에서의 패배도 한 요인이었지만, 무엇보다도 명성이 드높았던 황족, 유우를 살해한 이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유우의 명성이 드높았다는 것은 공손찬 본인도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유우를 살해한 직후, 공손찬은 유주의 관리들과 사대부들을 숙청하였습니다.

  이런 공손찬의 숙청행위에 대하여 유주의 명사 집단들은 공손찬을 따르거나 두려워하기는커녕 크게 반발하였습니다. 유우 밑에서 관리로 있던 선우보 등은 염유를 오환사마로 삼았고, 염유는 유주의 호족들과 백성들을 규합하여 공손찬의 장수였던 추단을 공격하여 살해하였습니다. 그리고 유우의 아들인 유화는 원소의 지원을 받아 공손찬에 대한 적대를 이어가는 등 공손찬은 유주의 명사들을 포섭하지 못하고 고립되었습니다. 결국 공손찬의 곁에는 유위대, 이이자, 악하당이라는 이름의 점쟁이와 상인들이 관료로 그를 섬길 뿐이었으니까요.

 (2)원소의 성장과 세력 내의 갈등

  반면 원소는 한복을 제거한 후, 한복을 섬기던 기주의 명사 집단들을 자신의 밑으로 끌어들이는데 성공했습니다. 원소는 본인의 출신부터 탑클래스의 집안인 여남 원씨의 일가로, 이미 예주 영천군 출신 명사들과(곽도, 신평, 순심 등) 순우경, 봉기, 진림 등 후한 말 관료들이 자신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원소는 하북의 세력권 확보를 위해 하북의 호족과 명사들을 포섭하는데 힘썼고 전풍과 저수, 심배, 그리고 이후 조조 밑에서 또 다른 피라미드를 형성한 최염까지 등용하여 하북 내의 지지를 강화해나갔습니다.

 

 

  원소는 초반 저수를 감군으로 삼았습니다. 군무에 있어서 저수는 가장 강력한 권한을 지니고 있었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팍팍 밀어주고 있었는데요. 저수의 협천자 제안을 원소가 무시하고, 이후 조조와의 관도대전 당시가 되면 다시 저수의 의견을 배제하면서 점차 신임을 잃어갔습니다. 나아가 곽도가 저수의 권한에 대해 참언하게 되면서, 감군의 권한은 세 명의 도독에 의해 운영되게 됩니다. 곽도와 저수의 대립은 둘 간의 대립이라고 볼 수 있으나 사실상 1세대 세력이자 창업 공신들이라고 볼 수 있던 영천 출신들과 2세대인 기주 출신들의 대립을 보여준다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이런 대립은 원소 사후에도 발생했습니다. 원상과 원담의 대립에서, 원상은 기주 출신 심배와 남양 출신 봉기의 지지를 받았던 반면, 원담은 곽도와 신평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결국 원소가 확실한 후계자 옹립에 실패했던 것에 더하여 이전부터 존재하던 세력 내 갈등이 하북을 제패했던 원씨 가문의 멸망을 불러오게 된 것입니다.

 

III.유비와 손권

 1.미축과 제갈량, 유비를 키우다.

  유비는 유협적 성격이 가장 강했던 인물입니다. 초기부터 유비를 따르던 관우, 장비, 조운, 전예, 간옹 등 역시 소위 말하는 명사 집단의 하나라고 보긴 어렵고, 다만 유비의 거병 때부터 함께 한 휘하 장수로서 끈끈한 의리로 이어져 있는 집단이라고 하겠습니다. 간옹의 경우에는 유비의 친구에 해당하고요.

  이런 유비 또한 그 대단한 영천 출신을 관료로 둔 적이 있었습니다. 바로 진군이었는데요. 도겸이 서주를 유비에게 물려주려 할 때 진군은 유비에게 서주를 취하지 말 것을 권유하였습니다. 물론 세력이 필요했던 유비로서는 피하기 어려운 제안이었고, 결국 유비는 어렵게 얻은 서주를 빼앗기고 진군 또한 유비를 떠나 조조를 섬기게 됩니다.

  도겸의 이양에는 서주 호족들의 유비에 대한 지지가 있었습니다. 미축과 진등은 유비를 섬겼습니다. 물론 이런 움직임에 반대하는 세력 또한 있었고, 결국 조표가 여포와 내통하게 되면서 유비는 다시 떠돌이 생활을 시작합니다. 이 떠돌이 생활을 미축이 함께 했습니다. 노숙, 조홍 등과 그 당시 최대의 갑부라고 할 수 있던 미축이 계속해서 유비의 떠돌이 생활에 함께 하면서 어느 정도 경제적 안정은 얻었다 할 수 있겠습니다.

  다시 서주를 빼앗고 빼앗긴 후, 유비는 유표의 객장이 되어 형북에 주둔합니다. 그리고 그 유명한 삼고초려를 통해 제갈량을 막하로 삼게 되었습니다. 이후 제갈량의 활약은 조조 아래 순욱이 했던 것을 방불케 합니다. 제갈량은 자신의 매형이 괴씨 집안의 괴기였고, 이때부터 형주의 명사들과 교류했던 것 같습니다. 이 제갈량의 라인을 통해 마량과 마속 등의 마씨들과 방통, 장완 등이 유비를 섬기고 형주 집단이 유비 세력 내 제 1기반이 됩니다. 익주 침공 후에도 유비는 제갈량이 형성한 형주 출신 세력들에 더하여 법정과 황권을 중용하고 오의의 여동생과 재혼하는 등 유언을 따르던 막료, 그리고 익주 출신들을 벼슬길로 들임으로써 연착륙하게 됩니다.

 

 2.손책과 손권, 명사들을 포섭하다.

  강동은 호족들의 세력이 매우 강대한 지역이었습니다. ‘동오의 덕왕킹덕왕 엄백호 역시 군벌이었으며, 육씨, 고씨, 장씨, 주씨 등 네 혈족은 양주 오군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자랑하던 친족 집단이었습니다.

  사실 손책은 원술의 명으로 육씨 집안인 여강태수 육강을 참하게 되면서 양주의 호족 집단들과 좋은 출발을 보였다고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손책이 양주에서 배척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주유의 힘이었습니다. 양주 여강군에서 엄청나게 유명한 집안의 잘난 아들인 주유의 지지를 통해 양주의 명사들이 손씨를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주유의 영향력을 단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손책 사후 손권의 일화입니다. 손책이 죽고난 후 손권의 지위는 토로장군이라는 잡호장군직에 불과하였습니다. 낮은 손권의 지위에 사람들은 손권을 무시했다고 합니다. 이런 손권에 대해서 주유는 솔선수범하여 존경을 표했고, 그때부터 손권에게 신하의 예를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주유의 존재는 양주 내의 불안했던 손씨 집안을 지탱하는 기둥이었다 할 것입니다. 주유의 역할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손권에게 자신의 친구였던 노숙을 천거하였고, 노숙은 천하삼분지계를 언급하며 손권의 대전략을 세우는데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주유가 양주 지역의 거점화에 가장 큰 역할을 했다면, 장소의 존재는 서주를 떠난 명사들을 초빙하고, 손씨 집안의 인재풀을 강화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우리에게 꼰대 이미지로 유명한 장소는 서주에서 피란을 온 명사였습니다. 이런 장소가 손책을 따름으로써 서주에서 탈출한 집안의 사람들이 점차 손씨 집안을 섬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앞서 언급한 노숙은 예외로 하더라도 보즐과 여대, 서성, 그리고 제갈근까지 손책과 손권의 대에 손씨 집안의 인재로 활약하여 나중에는 오나라를 지탱하는 명신들로 성장하게 됩니다.

  마지막은 오군의 토착 세력을 포섭하는 일이었습니다. 고씨의 고옹, 주씨의 주환 등이 손권의 대에 등용되었습니다. 그리고 육손 또한 손권이 등용하고, 손책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면서 오의 사성이 모두 하나의 세력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IV.마치며

  조조, 유비, 그리고 손권 이 셋 모두 출발은 달랐으나 결국 명사들의 지지가 없었다면 이후 황제로 등극하기까지는 매우 어려웠을 것입니다. 각자 지역에서 자리를 잡았어도 반란이 있었던 만큼, 당시 지역 사회를 통제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지지세력을 확보해두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후 조조나 손권 등은 다시금 이런 사람들과 대립하기도 합니다. 조조는 나름대로 구현령을 반포하고, 명성보다도 문학적 능력을 인재 등용의 기반으로 삼아 양수 등을 중용하기 시작하였으며, 나아가 순욱과 최염이라는 자신의 세력을 구축하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인재 피라미드의 두 완성자와 대립하였고, 결국 순욱은 자결을 택하고 최염은 사형을 당하기까지 합니다. 손권 또한 이후 이궁의 변으로 유명한 사건을 통해 오의 사성들이 박살나고 손권 자신이 그렇게도 아꼈던 제갈각마저 목숨이 위태로웠을 정도였고, 결국 제갈각은 아들을 희생하여 살아남았을 만큼 정계에 피바람이 불었습니다.

  제갈량이 완성한 인사체계 덕분에 큰 문제 없이 국정이 운영되고 있던 촉나라의 경우에도 상서령 동윤이 갑자기 죽고, 1인자였던 비의는 암살당하게 되면서 항장 출신 강유는 병권을 독차지하였음에도 정계 내의 세력 형성에 실패하였습니다. 이미 익주계의 초주는 강유와 대립하고 있던 상황에서, 계속되는 강유의 국정운영 태만과 너무도 큰 북벌 의지에 실망한 제갈첨과 동궐 등 형주계의 좌장들이 강유를 포기하고, 자신의 세력이라 할 수 있던 요화와 장익 등도 출신을 가리지 않고 반발하면서 강유는 더욱 세력을 잃고 둔전을 하게 됩니다.

  한편 위나라의 진군은 우리나라 세계사 수업 때도 배우는 그 유명한 구품중정제를 제안합니다. 이 구품중정제는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선진적이고 합리적일 수 있는 방식이었으나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지방의 호족들과 명사들의 정계 진출이 쉬워지고, 문벌귀족화되는 지름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구품중정제도를 가장 크게 지지했던 것은 또 다른 명사 집단의 일원, 바로 사마의였습니다.

10
Comments
2019-07-13 12:00:31

사실 삼국지로 유명하지만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은 후한 멸망, 조조의 북방원정, 사섭의 베트남 지배 정도라는 시대죠.^^;;

WR
Updated at 2019-07-13 12:09:58

그럼요. 저도 이 시기의 역사적 중요성은 그 주목도에 비해 크지 않다는 것은 압니다. 그래도 와타나베 요시히로 교수님 같은 학자분도 본인이 아예 삼국지학회 소속이셨는지 몰라도 이 시기에 대한 책에서 삼국지라는 표현 그대로 쓰시더라구요. 매니아 분들도 이 시기에 관해서 관심이 많고, 재밌어하십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구요.

2019-07-13 12:03:49

 이 글에 적극 동의합니다. 삼국지 시대는 호족과 명사의 시대죠. 심지어 삼국통일 후 서진 망하고 오호십육국시대가 와도 호족의 시대라고 볼 수 있는.

WR
2019-07-13 12:11:52

위진남북조, 특히 서진 이후로는 아예 문벌 사회화되었으니까요. 그 배경이나 대립 구도를 아주 간단히 언급해보고 싶었습니다.

2019-07-13 12:55:59

매니아에는 매일 여러번 방문하지만 로그인은 전혀 안하는 눈팅회원입니다.
하지만 이 삼국지 시리즈 글은 로그인해서 추천을 누르게 만드네요
이 시리즈 재미있게 보고있습니다

WR
2019-07-14 15:10:12

감사합니다. 덩쿨쟁이님 추천 덕분에 다음에도 쓸 용기가 생깁니다.

2019-07-13 13:52:10
글 잘일었습니다. 인간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유비는 대단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영토로 가정해보면 두만강인근에서 태어나 해남땅끝마을쯤에서 나라를 세우고 죽었으니까요. 실제 국토크기는 몇십배이니
WR
2019-07-14 15:10:53

열심히도 살았다..라는 생각이 들기는 듭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19-07-14 00:39:44

 잘 읽었습니다

WR
2019-07-14 15:11:04

감사합니다

글쓰기
검색 대상
띄어쓰기 시 조건








SERVER HEALTH CHECK: 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