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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욕쟁이 친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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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9-03-23 22:51:39

응사의 배경보다도 2년 빠른 1992,

조만간 충격적인 서태지의 데뷔가 있게될 것을 아직 몰랐던 그해의 시작 무렵,

남중남고라는 암흑기를 건너 

저는 심리학과라는 약속의 땅(이라고 생각했던 곳)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에는 젖과 꿀이 흐르고,

나와 운명적인 사랑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밖에 없는

미모의 여대생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여기는 여학생도 많고 낭만이 흘러야할 것만 같은 심리학과니까요.

 

대학생활이라곤 당시 캠퍼스 드라마인 '우리들의 천국'이나 '내일은 사랑'을 통해 본 것 밖에 없었기에

저의 이러한 기대는 허황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우리들의 천국'의 장동건이나 '내일은 사랑'의 이병헌'에 비해

제 얼굴이 허황되었을 뿐.

  

 

그런데, 입학해서 처음 만난 동기라는 녀석은 여대생조차도 아니었습니다.

오티에서 만난 이 녀석은 지금 생각해도 좀 묘한 몰골을 하고 있었습니다.

일단 양팔이 상당히 긴 편이었고,

걷는 자세도 약간 구부정하게 허리를 약간 숙인 듯한 자세여서

누가봐도 유인원과의 무엇인가를 떠올리게 하는 자세로 보행하는 묘한 녀석이었습니다.

 

거기에다 신입생 녀석이 입에서 담배가 떨어질 새가 없었고,

담배를 잠시 안물고 있으면 대신 욕이 달려있었습니다. 

친근함을 표시하는 방식의 적절한(?) 방식의 욕의 용례에서 벗어나진 않았기에

기분이 나빴던 적은 없었지만, 

남중남고를 나온 저로서도 저렇게 인간이 쉬지 않고

말에 조사보다 욕을 더 많이 섞을 수 있다는 것은 놀라웠습니다.


술은 선배들을 능가하는 말술을 말아먹었으며,

술을 마신 후 퍼포먼스는 선배들을 이미 능가했습니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들이 있었습니다.

허리띠 뽑아서 노를 저으며 '두만강 뱃사공' 노래 부르기,

담배연기를 양콧구멍으로 쏟아내며 달려가는 거북선 퍼포먼스,

지금같으면 한소절만 흘러나와도 학내 사과 대자보을 붙여야할

온갖 야성미 넘치는 개사 노래들까지~

어느 과에나 신입생 들어오면 하나씩은 보이는 그런 명물이었습니다.


 

사실 이 명물은 샌님과에 가까운 저와는 그다지 어울릴만한 놈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뭔가 인생의 변화를 결심한 저는

과내 인싸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 학내 활동과 인간관계에서

모두 잇쇼켄메의 자세로 달리고 있었고,

태생적 인싸인 이 녀석과는 항상 어울려 다니게 되었습니다.

 

이 놈은 보면 볼수록 더 신기한 놈이었습니다.

술 먹고 담배 피고 놀 때 보면 이런 막장 러너가 없는데,

알고 보니 입학장학금도 받은 넘이었습니다.

입학 등수로 과 3.

놀자 동아리도 아닌 전공학회 들어가서 실제로 학회활동도 열심히 했고,

누구나 제일 힘들어 하는 교수님 수업도 맨 앞자리에서 척척 대답해가며 들었습니다.

 


더 신기한 건 여자들한테도 인기가 좋았습니다.

여자들 앞에서라고 욕을 아끼지는 않았지만 다 같이 있을 때나 그런거고,

개인적으로 여자를 챙길 때는 세상 이보다 세심하고 다정다감한 녀석이 없었습니다.

그게 무슨 흑심을 가지고 그러는거면 밝히는 쉑이럴건데,

이 녀석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그냥 천성이 인간에게 관심이 많고 다정다감한거에요.

너무 가까운 인간관계를 부담스러워하고 피하고 어쩔 줄 모르는 저같은 인간과는

그냥 태생부터가 다른 거였습니다.

 

항상 웃는 상에, 유쾌하고, 세심하기가지 하니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제가 이 친구의 여자친구로서 얼굴을 직접 본 여자만 지금 기억나는게 5명입니다.

말로만 들었던 여자친구의 숫자가 기억도 안나게 더 많았고,

사실 이 친구를 일방적으로 좋아했던 여자들은 더 많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 녀석에게 붙여준 캐치프레이즈가

남자인생 다시 태어나면 이처럼이었습니다.   

이 말은 우리과에 유행어로 자리잡았고, 지금도 조금씩 변형해서 쓰이고 있습니다.

   

톡까놓고 속으로 질투도 조금 했습니다.

 아니, 이 긴팔원숭이에 얼굴은 천호진님의 퇴보 버전인 넘이 대체 왜 인기가 좋은거야?’

 

물론 이 친구의 진가를 제 스스로 인정하게 되면서

그런 질투심은 서서히 없어지게 되었습니다만~

  

하여간 앞에서 항상 어울려 다녔다고 했는데, 사실 그보다 더 찰떡처럼 붙어다녔었습니다.

매일 같이 술 먹고, 학과 활동, 학회 활동,

지금은 보기 힘든 일이겠지만 집회시위 나가서 같이 최류탄 엎어쓰기도 하고,

방학기간에도 출근도장 찍듯 매일 학교에서 봤고,

같이 자고 같이 학교에 가는 날도 많았습니다.


 

그렇게 알게된 이 넘의 형님도 괴랄한 분이셨습니다.

그 당시 그 넘 집이 꽤 살았습니다.

아버님 하시던 사업이 잘 되시던 때라 넓은 마당있는 이층집에

마당엔 사브 한 대와 이빨 한 개가 부러진 개가 한 마리 있었습니다.

 

이 개가 무슨 종인지 모르겠는데 하여간 엄청 덩치가 컸고 좀 무섭게 생겼었습니다.

무섭게 생겼던데 비해서 매우 순했는데, 사실 원래 순하진 않았다고 합니다.

주인도 몰라보고 짖고 심지어 덤비기도 했던 녀석이었답니다.

 

어느날도 주인을 몰라보는 걸 넘어 이빨을 드러내고 덤벼들어 물어뜯으려는 찰라,

형님께서는 조금도 피하지 않고 천근추의 자세로 곧추서신 채

정의의 주먹으로 집채만한 개의 아구지를 돌리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 개의 이빨을 헌납한 그 개는 이후 세상없는 순둥이가 되었다고 합니다.

진정 개를 사나이대 사나이로 동등하게 대우해준 분이었습니다.

 

놀랍지요? 거짓말 같지요?

전 그 형님 자주 뵈었기 때문에 전혀 의심하지 않고 지금도 그 이야기 믿습니다.

개 아니라 늑대라도 아마 그렇게 하실 수 있었을 겁니다. 암요.

우리 친구들은 술자리에서 그 집에서 벌어지는 다이내믹한 일화들을 들으며

시트콤으로 찍으면 대박날 거라고 맨날 떠들어댔습니다.


시트콤 ○○이네 집, 이거 죽이지 않냐? ㅋㅋㅋㅋ

         

 

하지만, 그 녀석 인생이 시트콤에, 남자라면 이처럼 같은 인생만은 아니었습니다.   

어머니께서 꽤 이른 연세에 와병에 들어서 상당히 오래 고생하셨습니다.

오랫동안 고생하시다가 우리가 졸업하고 직장생활 시작한지 오래지 않아 돌아가셨습니다.

 

그 긴 시간 동안 이 녀석은 효자이기까지 했습니다.

이 녀석 집에 갔을 때 밥을 차려줘서 먹은 적이 있었는데 불고기 맛이 기가 막혔습니다.

 

, 이거 죽인다. 네 여동생이 양념해서 재운거냐?”

지랄, 내가 한 거다.”

  

앞에 왜 욕이 붙어야 하는건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불고기 양념은 기가 막혔고            

그것은 그동안 어머니를 대신해 이 녀석이 긴 시간 닦아온 요리솜씨를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님이 돌아가시게 된 즈음하여 더 이상 이 넘의 인생은 시트콤은 아니었습니다.

사양산업 분야였던 아버님의 사업은 급격히 적자를 일으켜 가세는 기울었고,

이 넘은 사회생활 첫발을 정부기관 계약직으로 시작했습니다.

형과 동생, 아버지 모두 수입이 없거나 원활치 않는 상황에서 많은 짐을 지고 가야겠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즐거웠습니다.

아마 대학동기들끼리 졸업해서도 그렇게 매일이다시피 술 퍼먹고, 같이 여행다니고,

이야기하고, 많은 것을 공유하는 경우가 그렇게 많지는 않을거에요.

그리고, 언제나 유쾌한 이 녀석은 자신의 힘듦을 내색한 적이 없었습니다.

 

언제나처럼 우리한테 욕을 해줬고, 같이 술을 퍼 먹었습니다.

다만, 언젠가부터 점차로 술에 취해버리는, 술에 지는 일이 잦아지기는 했습니다.        

전에는 술대장이었는데요.         

 

 

그러면서 우리들은 점차로 사회에서 자리를 잡아갔습니다.

이 넘도 이후 어떤 중견기업 인사부로 입사했고, 몇 번의 이직을 거쳤습니다.

이 넘이 몇 년간 지방 근무할 때는

최소한 철마다 한번 이상은 이 넘이 사는 기숙사 아파트로 찾아가 밤새도록 퍼마시고 놀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거쳐 이 넘은 마지막에는

지금 우리들이 하루에 가장 많이 이용하는 IT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의

인사팀 차장까지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여전히 즐거웠습니다.

하나씩 결혼하면서 서로 보는 시간은 조금 줄었지만,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습니다.

정기적인 모임은 당연하고, 틈만 나면 번개 때려 술을 퍼마셨죠.

언제까지나 우리는 지금과 같을 것이라고, 단 한번도 의심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 녀석이 전화해 와서 전해온 첫마디는 이해하기 힘든 말이었습니다.

 

형이...... 없어졌다.”

 

지금도 그 형님이 왜 돌아가셨는지 그 이유는 아무도 모릅니다.

 

이 친구의 짐은 조금 더 무거워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자신의 힘듦을 표현한 적은 없었습니다.

다만, 술에 취해 정신을 놓는 날이 조금 더 많아졌습니다.

그저 이제 나이를 좀 먹어서 술을 이기기엔 체력이 떨어졌기에,

삶이 힘드니 술을 통해서 정신을 풀어주는 일이 많아졌기에 라고만 생각했었습니다.

 

 

우리들은 점차로 가정적으로도 자리를 잡아갔습니다.

친구들 중 저와 이 넘, 그리고 다른 한 넘까지 비교적 늦게 결혼을 했습니다.

저는 아들을 얻었고,

제가 아들을 얻은 두 달 후 이 넘은 딸을 얻었습니다.

             

우연찮게 이름 가운뎃자로 같아요, ‘.

무슨 친한 친구끼리 나중에 사돈 맺자고 약속하고 이름지은 것도 아닌데

우연히 그렇게 되었습니다.

카톡 프사와 페이스북은 모두 아이 사진으로 채워지고 있었습니다.

 

우리 인생은 나름 순항하고 있었습니다.

점차로 소위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지만,

그래도 우리 스스로는 달라진 건 없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잘 살고 있었습니다.

아직도 우리는 서로 인사말로 욕도 잘 했으니까요.

 

 

그러던 어느날 그 녀석이 전화해 와서 전해온 첫마디까지는 맨날 하던 말이었습니다.

 

나 오늘 너희 회사 앞에 간다. 잠깐 보자.”

ㅇㅋ

 

그런데 보자는 장소가 좀 이상했습니다.

우리 회사 정문 앞이 아닌 그 바로 맞은 편에 있는 대학병원에서 보자고 했습니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 니가 보기엔 내가 암환자 같냐?”

 

이 넘은 이미 간암 확진 판정을 받았고, 항암 치료를 시작하려는 찰라였습니다.

더 이상 감추기는 어렵다고 생각하고 친구들 중 저에게 제일 먼저 얘기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일년간 벌어진 일들은

그 친구와 저의 이십 몇 년을 천찬히 정리해 보려는 이 글에서도 쓰기가 힘드네요.

어쩌면 너무 가까운 곳에서 계속 지켜봤기에,

그리고 너무 자세한 것들을 보고 들었기에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병원이 회사 코 앞이니 입원 중에도 수시로 봤고, 통원치료 하던 때도 틈틈이 봤습니다.

그 짧은 기간에 벌어진 급격한 변화를 저는 매순간 가장 가까이서 지켜봤습니다.

 

이 넘은 마지막까지도 자기가 끄떡없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나 봐요.

아파서 바짝 마른 녀석 주제에 나보고 힘내라고 내 팔뚝을 잡는데

온힘을 다해서 악력을 주었던 걸 기억합니다.

친구들이 마지막으로 다 같이 찾아갔을 때 식당에서 밥 한그릇을 고추장 비벼서 급하게 비우더니

집으로 가자마자 다 토했다고 합니다.

이 넘은 변함없이 그런 놈이었어요.

자신에게 주어진 삶이 너무 거칠다고 한번쯤 불평할만도 했는데,

그래도 되는건데 한번도 그러지 않았습니다.



처음 저에게 그 사실을 말했던 정확히 딱 일년만에

구는 그 대학병원 장례식장으로 왔습니다.

당시 본사에 있었던 제 사무실 책장에서 고개를 왼쪽으로만 돌려 창 밖을 내다보면

바로 그 장례식장이라는 글자가 보이는 곳으로 왔습니다.

세상일이 참 얄궂어요.

 

그 넘은 어머니, 형님과 함께 수목장을 치른 산기슭의 한 나무 아래서

이제는 아프지 않게 쉬고 있습니다.

 

초여름이 오면 벌써 2주기가 됩니다.

이번에도 친구들 다 같이 그 날 갈 겁니다.

그리고, 이 넘의 예쁜 딸래미, 이제 내년에 초등학교를 갈 겁니다.

저희 애도 초등학생이 될 때가 되었으니까요.

그때는 가방 하나 사서 가서 삼촌 노릇을 하고 싶은데,

제수씨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 아직 친구들도 결정을 못한 상황이긴 합니다.

         


전 이 친구 아팠을 때는 잘 기억 안하려고 노력합니다.

물론 그 기억이 너무 강해서 사실 지워지진 않습니다만 하여간.

전 사람이 이 세상을 떠났어도 그 사람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다 떠나기 전까지는

그 사람이 세상에서 없어진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친구에 대한 좋은 기억만 계속 하려고 해요.

그러면 그 친구는 아프지 않고 지금도 내 옆에 계속 있는 거와 다름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친구가 지방 근무해서 자주 볼 수 없었던 때와 별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보는 주기가 전보다 좀 더 길어진거라고 그렇게 생각하려 합니다.

 

그래서 전 지금도 이 친구가 거기에 정말로 있다고 생각합니다.

언제나처럼 쭈그리고 앉은 자세로 입에 담배 하나 물고서

내가 가면 “X댕이, 이제 왔냐라고 할 거라고 생각해요.

 

 

이제는 아프지 말고 편히 쉬어라.

내가 한 번도 말 못했는데 너 내 생전에 만난 중에 가장 멋진 놈이었어.

니가 내 친구였어서 난 자랑스러웠다.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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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0
Updated at 2019-03-23 22:28:17

천천히 끝까지 읽고 갑니다.

좋은 친구를 두셨네요. 그리고 그만큼 글 쓰신 분도 좋은 친구였을껍니다.

4
2019-03-23 22:32:43

즐겁게 읽고 있었는데, 스크롤을 내리다 보니 역시 인생 속에 영원한 즐거움은 없었네요.
그래도 좋은 친구셨고 지금도 좋은 친구이십니다.

3
2019-03-23 22:35:11

비록 이른 나이에 떠나셨지만
이렇게 친구가 멋진 기억을 가지고 추억을 한다는것은 그분의 삶 또한 멋지고 훌륭했던 삶이겠죠.

12
2019-03-23 22:35:28

글을 읽고 느껴지는 감정을 표현하기엔 표현력이 부족하기에 추천누르고 갑니다

3
Updated at 2019-03-23 22:50:58

진정 친구분을 사랑했기에 적을 수 있는 글이라고 느낍니다.

3
2019-03-23 22:55:11

애 부분에서 울컥했네요
멋지십니다

3
2019-03-23 23:15:01

아름다운 우정입니다..

4
2019-03-23 23:27:14

먼저 간 제 친구가 생각나서 감정이입이 되네요. 저도 그 친구를 대학에서 만났죠. 잊고 살다가도 문득문득 그 녀석과 놀던 때가 떠오릅니다.

3
2019-03-23 23:29:47

친구분께서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또한 그 아내분과 따님의 삶에 축복을 바랍니다.

WR
8
2019-03-23 23:34:58

보통 댓글을 주시면 가급적 저도 다시 대댓글을 달아 감사의 표시를 하는 편입니다.

다만, 이번에는 글을 적기도 힘들었지만, 댓글을 뭐라 달아야할지 몰라 어렵네요.

제 친구의 평안을 빌어주신 모든 분들께 머리숙여 깊이 감사드립니다.

3
2019-03-24 00:02:47

친구에 대한 애정과 우정이 느껴져 먹먹하네요. 친구분의 가족들도 행복하게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3
2019-03-24 00:49:20

너무 재밌게 읽으면서도 스크롤 바가 아직 많이 남아...약간 슬픈 예감이 들었는데...끝이 예상을 빗나가지 않아서 먹먹합니다...

저에겐 감히 여기서 본 수 많은 글들중에 최고의 글이었네요..
이렇게 글로나마 케이치님과 친구분을 만나뵙게 되어 너무 반가웠고..
친구분이 이 글을 보면서 하늘에서 웃고 계실 것 같습니다...친구분에겐 최고의 선물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너무나 감사히 잘 읽었지만.. 따로 드릴거는 없어 추천하나로 대신합니다...

3
2019-03-24 01:17:16

너무 진정성있고 가슴 아리는 글입니다
참 슬프네요..
위로는 안되시겠지만 이런진심가득담은 친구분두신 고인께서는 힘들었을지언정 정말 깊고 의미있는 삶을 사셨습니다

2
2019-03-24 07:31:29

라디오나 시청자 사연 방송하는 TV프로에
보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뭉클하고,슬프고..그럼에도,
묘한 웃음이 남습니다.
소중한 기억을 글을 통해 공유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아직 죽은 이는 없지만,
이래저래 소원해지며,
많지 않은 남은 친구들 만나
진짜 비뚤어지게 마시고 싶어지는 글입니다.

2
2019-03-24 10:12:00

저보다 훨씬 형님이시라,

(제가 대학교 들어갔을 때,

군대 다녀와서 취업 앞두고 있던 4학년 형들..

이미 취업해서 가끔 동방 놀러오던 누나들 나이..) 

글에 대해 평가하는 말을 하는건 주제 넘은 것 같지만..

 

이번 글이 너무 좋아서,

과거에 올리신 글들도 찾아보니..

아들과의 레슬링..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

회사에서 국 떠주는 후배들 못하게 하기..등등

다시 보니,기억 나는 글들 써주신 분이시네요..

 

제 주위의 심리학과 나온 사람들한테 물어봐도,

심리학과 나왔다고 사람 심리 꿰뚫어보고,

기분 파악하고 그런거 절대 없다..라고 하지만..

그들도 그렇고..배운 전문 지식과 기술이 있어선지,

사람들의 심리나 마음에 대해서,비전공자에 비해

차근차근 분석적으로 생각하는 능력과 기술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글을 대단히 재밌고 읽기 편하게 쓰시는게,

그런 능력과 기술이 몸에 배어서 나타나는게 아닌가 싶어요..

전부를 의도해서 그런건 아니시라도,단어 하나하나..띄어쓰기 하나하나..

보는 이를 불편하게 하지 않고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읽는 이가 풋웃음 한번이라도 짓고,조금이라도 기분 좋은 느낌을 받게 하기 위한

배려나 존중이 글에서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또한 그런 배려나 존중이 과할 때 느껴지는,

지루함,딱딱함,심심함...단 일도 없이

시종 재미있고 술술 읽히니...

 

단순히 친구 한 명이 부럽다기 보다는,

삶에 대한 관점..지향..

많은 것들이 공감가고 부럽습니다..

저도 한 7년 후에는 그런 경지에 오를 수 있으면 좋겠구요... 

2
2019-03-24 10:52:06

하마터면 엉엉 울뻔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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