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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황장애 후기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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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16 23:5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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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계획대로라면 이번 학기 끝나고 마지막 후기를 남기려고 했었는데, 생각보다 치료의 진전이 빨라서 중간에 하나의 후기를 더 작성하기로 했습니다. 이전 글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간단히 소개를 드리자면 저는 올해 4월에 공황 증세로 인하여 학교를 휴학했었고, 약 5개월 가량 치료에 집중한 뒤 한 학기만에 다시 학교를 다니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아프기 전과 아픈 후의 제가 삶을 바라보는 방식이 많이 달라졌기에, 그에 대한 소고를 남기기 위해 애틋한 매니아 사이트에 후기글을 올렸었습니다. 이번 글이 마지막이 될지 또 몇 번의 후기를 남기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제 글이 어떤 방향으로나마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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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행복은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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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학한지가 벌써 2개월가량 지났습니다. 마치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학교로 돌아와 수업을 듣고 과제도 내고 중간 시험도 치뤘습니다. 첫 한 달은 혹시나 또 증세가 올까 불안한 마음이 있었으나, 그냥 그러려나 말거나 반 쯤 포기하고 다니다보니 오히려 큰 문제 없이 다닐 수 있었습니다. 이전에는 정말 생존의 문제를 가지고 하루 반나절을 넘게 누워서 고민하고 했었는데, 이제는 조금씩 일상적인 또는 진로에 관련한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다 무슨 의미가 있나 싶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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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 휴학하고 첫 한 달간 매일 하루 10시간 이상씩 누워 있을 때, 정말로 다시 학교가 가고 싶었습니다.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경쟁의 방식들. 나이, 학년, 학점, 돈; 지긋지긋한 숫자들의 논리. 그렇게 싫었었는데. 낙오자가 되보니 다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진심으로. 이제는 공부 하기 싫다는 생각 안 해야지. 감사한 줄 알고 살아야지. 그러나 학교에 다시 와보니 그런 생각들이 또 다시 사라집니다. 공부, 스펙; 지긋지긋한 워딩들. 이 사회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가 없구나, 나는. 다만 조금 달라진게 있다면 공부에 대한 강박이 이전에 비해 조금은 사라졌다는 점입니다. 이는 제가 그냥 심적으로 모든 걸 놔버려서 그런 것일 수도 있습니다. 변호사 되면 어쩔건데? 대기업 가면 뭐 어쩔건데?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에 둥둥 떠다닙니다. 그럼 혹자는 또 말하지요. 현실은 그렇지 않아요. 알지요. 알지. 학창시절 우등생 이었고, 지금도 나름대로 그렇습니다. 현실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잘 알고, 이런 생각이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것 누구보다도 잘 알아요. 그런데. 한 번 아파보니까, 어쩔 수 없답니다. 이렇게 포기라도 해야 살아지더라구요. 어설픈 희망과 주제에 맞지 않는 바램이 얼마나 사람을 옥죄는지 알아버렸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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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제 헌법 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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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학한 뒤 또 드는 생각 중 하나는, 우리는 생각보다 자유롭지 않다는 겁니다. 어설픈 자유가 더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것 같기도 해요. 멋진 신세계라는 소설은 미래의 사회를 그린 작품인데, 거기에 보시면 5가지 계급이 있습니다. 알파, 베타, 감마, 델타, 엡실론. 쉽게 말해서 감마, 델타, 엡실론 계급은 지적 교육을 받지 못합니다. 모두 일정 나이가 되면 노동자가 됩니다. 그들의 생은 태어나기 전 부터 결정되있고, 정부는 아주 어렸을 적부터 세뇌 교육을 통해 그들에게 계급 의식을 심어놓습니다. 그들은 그냥 노동자로서 살다가 죽습니다. 반대로 알파 계급은 사회의 브레인들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온갖 지식 교육을 받고, 하위 계급을 통솔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들도 하위 계급과 마찬가지로 태어나기 전부터 상위 계급으로 태어나도록 결정되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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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상황 설정은 마치 지금의 흙수저니 금수저니 하는 논쟁과 비슷한데, 그 양상은 사뭇 다릅니다. 소설속의 노동자 계급은 그냥 그들 나름대로 잘 살아갑니다. 오히려 본인들이 단순히 사회의 부품중 하나인 것을 비판없이 인정해버리고, 정부가 제공하는 문화 활동에 만족해가며 살아갑니다. 계급 역전의 기회는 제로에 수렴합니다. 그러니 그냥 그 상황에 대강 만족해가면서 사는거죠. 우리 사회는 어떤가요. 유튜브와 같은 매체가 발달하면서 하루에도 수십명의 계급 역전 사례들이 소개되고는 합니다. 굉장히 자극적인 방식으로요. 지금의 힙합문화가 특히 그렇다고 생각해요. I started from the bottom and I am now at the top. 힙합에 자주 쓰이는 문구죠. 나는 가난했지만, 이제 나에겐 몸매 잘 빠진 여자친구가 있고 비싼 외제차가 있어. 비싼 시계도 있어. 비단 힙합 뿐아니라 사업, 창업, 고시 합격 등 뭐 여러 방식으로 크고 작은 계급 역전이 이루어지는 경우를 아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질투심에 불타고, 마치 화가 난 것처럼 성공을 향해 달려가죠. 나도, 나도, 나도 저렇게 되고 싶어! 이것이 광고와 마켓팅이 작동하는 방식이죠. 그리고 이것이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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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황장애 후기라면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냐 싶으시겠지만, 공황을 갖기 전 저는 딱 저런 부류의 사람이었습니다. 항상 화가 나있었어요. 나보다 한 10살 쯤은 어리고 엄청 예쁘고 몸매 좋은 여자 만날거야. 비싼 시계 찰거야. 돈 벌어서 허세 부릴거야. 그런 생각들이 항상 은연중에 있었어요. 그럼 지금은 어때? 지금도 저의 생각은 크게 변한 것이 없다는 게 이 글의 논점입니다. 질병에서 벗어나니 재사회화가 금방 되버린거죠. 이런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하면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제가 무슨 특별한 사람도 아니고 오히려 불우이웃에 가깝죠. 모든 일에 여유를 가지고 싶습니다. 차분해지고 싶어요. 욕속부달. 여러분은 어떻게 살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후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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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Updated at 2018-11-17 11:19:30

저도 공황장애를 겪었고 1년간 약 복용을 했습니다. 현재는 약을 먹고 있지 않습니다. 약을 먹을 때도 끊은 후에도 저는 항상 불안했습니다. "과연 지금의 내가 병 이전의 나와 같은 사람일까?" , "예전의 저로 돌아갈수 있을까" 하는 생각들 때문이었습니다. 신체적 증상은 사라졌지만 기저에 깔린 불안은 약으로 사라지지 않더라구요. 일상으로 돌아가 부딪혀 보기로 하고 3개월이라는 시간동안 지금은 글쓴이님 말처럼 여전히 마음에 여유를 갖는 연습을 하는 중입니다. 글쓴이님도 항상 마음에 여유가 가득하셨으면 좋겠습니다.

2018-11-17 12:11:24

저도 공황과 우울증을 2년 가까이 겪고 있는 사람으로서 공감이 많이 가네요
참 지독한 싸움이고 아무 것도 아니었던 일상들이 소중해지는 지점들이 굉장히 많은 거 같아요 전 매일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 오리무중인 느낌이 강한데 잘 해쳐가고 계신거 같습니다 건승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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