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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황장애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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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8-10-08 21:49:25

         이따금씩 우리와 친숙한 연예인들이 공황장애 진단을 받고 방송에서 하차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으실 겁니다. 저도 그와 비슷한 진단을 받았고 비단 공황뿐이 아닌 불안, 강박장애 진단을 같이 받았습니다. 의사 선생님 말씀으로는 공황이나 불안, 강박 증세는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구분지어 볼 것이 아니라 셋을 한 번에 치료해야한답니다. 정신 질병의 삼위일체를 달성하기까지 고작 24년이 걸렸습니다. 진단을 받은지는 한 달 반 정도 되었습니다. 대학 수업 중 공황 증세로 구급차 침대에 누워 응급실로 이송되며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신은 없구나. 정말로. 대단한 성공을 바랐던 것은 아닌데. 그저 대학 졸업하고 근근히 일하며 가끔씩 글도 쓰고 농구도 하고 책도 읽으며 간소하게 내 몫만 하면서 살고 싶었는데. 자본주의 정신에 매몰되어 누굴 짓밟고 올라가고 싶지도 않았고 돈이 전부라고 생각한 적도 없었는데. 혹여나 내가 성공한다면 작은 고아원을 운영하고 싶었는데. 그냥 그랬었는데. 신은 그마저도 허락하지 않는가. 덜덜 떨리는 손을 부여잡고 질병 휴학계를 내고 집에 와 방 침대에 누워 천장을 멍하니 올려다보았을 때의 느낌. 당장 내일 가야할 곳이, 해야할 일이 없어진 사람의 느낌. 정신적 무(無)의 상태. 이런 상태에서 약 한 달 반 정도를 지내며 느꼈던 소회를 이 곳에 남겨봅니다.

 

1. 정신이 아프면 답이 없다. 그러니 아프지 마세요. 

 

         약을 복용한지는 한 달 정도 되었는데 저의 상태가 호전 된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정확하게 얼마나 호전된 것 같으냐 퍼센트로 하자면 몇 퍼센트 정도 호전된 것 같으냐 물으신다면 대답하기가 굉장히 곤란합니다. 호전의 상태를 단순히 감각적으로 느끼기만 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공황 증세가 사라진 것을 제외하고는 명확하게 무엇이 나아졌다고 말해야 할 지 잘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의사 선생님의 호전이 된 것 같으냐는 질문에도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 대답이 가장 솔직한 답변인 거 같아서요. 정신 질환의 어려움이 이런 것 같습니다. 본인이 치료의 어느 부분까지 왔는지, 얼마나 나아졌는지 명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무슨 일을 해도 망설이게 됩니다. 버스 타도 될까. 농구 해도 될까. 책 읽어도 될까. 커피 마셔도 될까. 그나마 즐기던 일상들도 고민의 대상으로 바뀌게 됩니다. 공황에서 조금씩 벗어나는 과정에 있는 저로서는 지금 마치 신생아와 같은 기분이 들어요. 와, 오늘 버스 탔다. 와, 오늘 친구랑 게임 했다. 와, 농구 했다. 잘 했다. 좋아지고 있다. 병에게 빼앗긴 일상들을 하나 하나 되찾아가면서 모든 것들이 새로운 관점으로 보입니다. 그렇게 가기 싫었던 학교가, 아무 생각없이 마시던 아메리카노 한 잔이 나에게 이렇게 소중했구나. 여튼, 참 골치 아픈 병입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강박 증세가 오래 전 부터 있었음에도 방치해두다 이렇게 되버렸습니다. 아프지 마세요. 

 

2. 종교에 대한 소고

 

         한 2주 정도를 집과 집 앞 공원만 왔다 갔다 하는 생활을 하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선택한 곳이 교회였습니다.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이 앞섰습니다. 어두컴컴한 반 지하 방에서 하루종일 박혀있다보면 다시금 증세가 올라올 것 같아 지인 소개로 교회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저는 원래 무교였구요. 철저한 이성론자라 종교 이런 거 안 믿었습니다. 미신도 안 믿었고 과학적이고 통계적으로 근거가 있는 것들만 믿었습니다. 그런데 아프니까, 그것도 마음이 아프니까 과학이고 뭐고 뭐라도 의지할 곳이 필요하더라구요. 처음에 딱 예배를 드리러 갔는데 청년 예배 시간이었어요. 제 또래의 사람들(20대)과 30대 직장인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다들 무언가 간절한 표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찌나 예배에 집중을 하던지 설교중에 계속 중얼중얼 혼잣말을 하며 하느님과 소통하려고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도 내면에 무언가 의지해야할 만한 구실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처럼 자기 자신이 아프거나 아니면 가족중에 누군가 아프거나 아니면 태어날 때 부터 장애인이거나 아니면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거나 아니면 누군가 죽었거나 아니면 남편과 사이가 안 좋거나 수 많은 경우의 수들이 있겠죠. 젊은 사람들만 있는데, 다들 이렇게 간절하구나. 혼자는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배 후에는 지인 소개로 성경 공부 모임도 가고 이것 저것 하다보니 교회 사람들과도 친해져서 매 주 다니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나갈 것 같아요. 논리고 뭐고 잘 모르겠어요. 그냥 나가면 좋더라구요. 새로운 사람들이랑 얘기할 수 있다는게 좋고 그랬습니다. 아프신 분들은 종교도 돌파구로 찾는 것도 괜찮을 거 같아요. 불교건 기독교건 천주교건 그냥 마음가는대로요. 논리와 과학이 지배하는 세상이지만 우리네 인생은 절대 논리와 과학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즉 인륜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고 이번에 느꼈어요. 종교의 부정적인 부분도 많지만 좋은 부분을 조금이라도 얻어갈 수 있다면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3. 결국은 가족이 답이다.

 

         저는 한 7년 정도를 가족들과 이야기를 안 하고 지냈던 거 같습니다. 고등학교 때 부터니까 7년 쯤 되겠네요. 학교 갔다오면 방 안에 박혀서 안 나오고 그냥 혼자 있었어요. 이유는 뻔하죠. 전형적인 콩가루 집안이었고 가족 중에 이혼은 부지기수로 일어나고 감옥 갔다온 사람도 생겨나고 그랬었습니다. 가족이 싫었고 차라리 고아였다면 하고 생각했던 적도 많습니다. 웃긴 게 이번에 아프면서 예전부터 같이 살던 큰 고모 딸과 처음으로 소통하기 시작했습니다(고모는 이혼하시고 저희 가족과 살고 있고 고모 딸은 지금 초등학생입니다). 제가 아파서 방에만 있다보니 불쑥불쑥 방에 들어오더라구요. 문을 살짝 열고 '오빠 뭐해? '하는데 아 내가 이 아이랑 같이 살았었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친구랑 7년을 살았는데. 이 아이가 기어 다니고 유치원도 졸업하는 동안 같이 사는 것도 몰랐을 정도로 가족에게 무지했구나. 제가 제일 싫어하던 사람이 엄마였는데 엄마랑도 이번 기회에 정말 이야기 많이했습니다. 아마 제가 엄마랑 평생했던 대화보다 아팠던 한 달반 동안의 대화가 더 많았던 거 같아요. 할아버지랑도 얘기하고, 할머니랑도 얘기하고. 조카랑 슈퍼도 갔다 오고. 조카가 학교에서 그린 그림도 구경하고. 아이랑 같이 그림도 그려보고. 그러다보니 조금씩 화가 사라지더라구요. 우리 가족은 경제적으로 학업적으로 모든 부문에서 부족하고 내세울 거 하나 없지만 그래도 다들 마음만은 착한 사람들이구나. 그거면 됐다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것이 제일 중요한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착하면 됐다. 이제 그래서 가족들과 나름대로 터놓고 지내고 있습니다. 아플 때 간호해준 사람들도 다 가족이죠 결국. 병에서 나아 다시 학교로 돌아가도 가족들과 잘 지낼 생각입니다. 집에서 불행하면 답이 없어요. 우리는 뭘 하던 어쨌든 다시 집으로 돌아와야합니다. 집과 가족이 우리의 알파이자 오메가입니다. 

 

4. 사람은 결국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된다. 아니 그렇게 될 것이다. 

 

         이렇게 병으로 고통 받는 와중에도 터덜터덜 자리에 일어나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제가 1년 전에 매니아에 작가가 되고싶다는 글을 썼던 적이 있었는데 많은 분들이 응원의 메세지도 보내주시고 그랬었는데요. 결국 그 1년동안 글은 커녕 사회가 요구하는 스펙과 학업에 열중하느라 글에 ㄱ자도 못 꺼내고 지냈습니다. 강박증은 더 심해지고 결국 이렇게 되버렸는데. 학교도 휴학하고, 다니던 봉사도 그만두고, 연애도 그만두고 모든 걸 내려놓고 보니까 남는 건 결국 이거 하나더라구요.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 일. 그냥 집중하게 되는 일. 저한테는 게임이랑 농구 빼고는 글쓰기가 유일한 것 같아요. 글쓰기로 때로는 위안을 주고 싶고 때로는 영감을 주고 싶고 때로는 감동을 주고 싶고 때로는 절망을 주는 것이 저에게는 즐거운 일인가 봅니다. 조금은 힘 빠지기도 합니다. 글을 쓰는 것이 예술의 거의 전부이던 시기에 태어났다면 좋았을텐데. 이미 종이 문학의 가치가 쇠퇴할 만큼 쇠퇴해버린 이 시대에 글을 쓰는 작가가 될 운명이라니. 신이 있다면 신은 참 재밌는 분이시구나 라는 생각을 합니다. 저는 물론 다시금 문학의 가치가 상승하게 될 거라는 믿음을 굳게 가지고 있지만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거죠. 아직은 단순히 위대한 작가들의 책을 호흡하고 읽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조금은 벅차기도 합니다. 잘 안 읽히기도 하고. 그래도 다시금 글을 쓰게 될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래서 소설가로서 등단하게 된다면 매니아를 꼭 언급하고 싶네요. 

 

5. 저는 24살입니다. 


         당신이 젊건 늙었건 아픔은 우리가 모두 공유하고 있는 감각입니다. 이 글을 보는 누군가가 어떤 아픔을 지니고 있던 간에 이 글이 조금이나마 위안을 주었다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감사해요. 그리고 아프지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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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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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05 02:17:36

어울리는 답글인지 모르겠지만 공황장애에 관련된 글이라는걸 알고 봐서 그런지 몰라도 '이사람 공황장애라면서 글을 진짜 잘쓰네'하면서 봤습니다. 그러다 작가가 꿈이라는 대목을 보면서 '아~!!'했네요. 누가 이렇게 자신의 공황장애라는 질병에 관한 주제로 글을 근사하게 쓸 수 있을까요? 당신의 시련조차 사람들을 치유하는 좋은 글감이 될거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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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05 04:20:42

글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지나칠뻔했는데 읽어보길 잘한것 같아요
빨리보단 잘 나으시길, 가족과의 관계회복도, 좋아하시는 글쓰기도 응원하겠습니다
그리고 문득 또 생각이나면 그때도 응원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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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05 06:47:27

저는 글 이런거 잘 모르지만 읽는 내내 감탄하면서 읽었습니다.
흔히 말하는 필력이 좋다는 것이 이런거구나하고 말이죠.
좋은 글 잘 읽고 가며, 앞으로도 종종 글 남겨 주세요.
그리고 화이팅입니다.
제일 중요한 것이 가족이라 하셨죠?
매니아도 좋은 가족이 될 수 있습니다.
한번 만난적도 없는 사람들이지만 때로는 따뜻하게 격려하고, 때로는 따끔하게 충고도 해 주는 곳이거든요.
뭐 가끔은 별거 아닌 일로 얼굴 붉히는 글도 올라오긴 하지만 그래도 뭔가 소통이 꾸준히 일어나고 사라지고 하니까요.
이게 제가 매니아를 15년동안 찾아오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작성자님께서도 종종 글도 써주시고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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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05 07:32:05

저도 무교지만 힘들 때 의지할 수 있는 어떤 절대적 존재라는건 정신건강을 지켜줄 수 있는 방법인 것 같습니다.
앞으로 건강관리 잘 하시고 좋은 글 볼 수 있기를 기대하겠습니다. 즐거운 나날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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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8-06-05 09:26:10

저도 3년째 유학후 군대를 위해 휴학후 현재 귀국후 입대를 기다리는중인데

생각보다 어렵고 다른 시스템의 미국 대학에 적응하지 못하고 무조건적으로 비싼 등록금 대주시는 부모님을 만족시켜드려야한다는 생각 결국 제대로 나오지도 않는 학점 그로인해 졸업 고민 미래에 취업고민 등 때문에 저도 모르는 어느새 불안장애 증세를 앓고 잇더라구요. 마치 절벽 끝에 혼자 서있는듯한 느낌 숨도 못쉬겟고 정말 고통스럽습니다. 다행히 휴학 후 특별한 증세는 보이지 않아서 다행이긴한데 정말 정신이 아프면 답도 없다는 라는 말이 맞습니다. 약도 들지 않고 온전히 혼자 이겨내는 그 시간이 정말 고통스럽거든요.

저랑 비슷한 나이신데 하시는일 정말 잘 되셧으면 좋겟습니다. 화이팅! 

2018-06-08 03:43:58

응원합니다. 1-4번까지 다 공감가고 잘하고 계신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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