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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황장애 후기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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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8-10-08 21:49:44

         저번 후기를 작성하고 어느덧 한 달이 지났습니다. 지난 글을 쓸 때의 마음가짐과 지금 글을 쓸 때의 마음가짐은 사뭇 다릅니다. 지난 글을 쓸 때는 다소 감정적인 태도로 글을 토해내듯 뱉어냈다면 지금은 다소 차분한 마음으로 글을 쓰려고 합니다. 저번 글을 쓸 때도 그랬지만 진정성을 위해 퇴고 없이 글을 쓰기로 했기에 문법적으로 다소 어색할 수 있어요. 

 

1. 가지각색 환자들

 

         공황 증세로 인해 뜻하지 않게 대학병원 정신과에서 정기적으로 진료를 보게된 저는 처음 정신과에 발을 들였을 때 막연히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내가 왜 여기 와있지 싶은 마음. 다른 환자들도 고개를 푹 숙이고 조용히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평소에 중증 환자들이나 장애인을 보면서 항상 이유 모를 경외감을 느끼곤 했는데, 막상 공황 장애로 정신과 환자 대기실에서 진료를 기다리고 있는 입장이 되보니 느낌이 사뭇 달랐습니다. 아픔을 멀리서 그저 막연히 지켜 보는 것과 비슷한 수준의 아픔을 지닌 상태로 아파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은 다르구나. 한 여학생이 기억이 납니다. 모두들 자리에 앉아 가만히 진료 대기를 하고 있는데 한 고등학생 쯤 되보이는 여학생이 세상 해맑은 웃음을 한 채 핸드폰을 두 손에 꽉 쥐고 대기실 앞을 쉬지 않고 계속 서성거렸습니다. 같이 기다리던 사람들이 수근거립니다. 저 아이 왜 저래? 간호사들도 힐끔힐끔 그 친구를 경계의 눈빛으로 쳐다보기 사작합니다. 그 친구는 고민하는 몸짓을 보이다 일순간 간호사실 옆에 서있던 남자 레지던트에게 큰 걸음으로 다가갑니다. 그러고는 '오빠 저 번호 좀 알려주세요'라고 강요 같은 부탁을 하더랍니다. 간호사들이 아이를 제지했고 아이는 왜 그래요 번호 좀 받겠다는데 하며 간호사들의 손길을 뿌리칩니다. 사무실에 있던 한 간호사가 경비원들을 호출합니다. 여 간호사와 여자 아이가 실랑이를 벌이던 중 건장한 남자 경비원 두 명이 정신과 대기실로 올라옵니다. 경비원을 발견한 여자 아이는 어디론가 무작정 뜁니다. 경비원 두 명은 쫓아갑니다. 몇 초 되지도 않아 여자 아이는 잡히고 정신과 진료실 구석의 어느 방으로 잡혀 들어가듯 끌려갑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친구, 정신 병동 입원 대기 환자였더군요. 지금도 그 여자 아이를 생각하면 이유 없이 머리가 지끈거립니다. 수근 거리는 사람들과 번호를 추궁하는 여자 아이. 당황한 젊은 남자 레지던트. 그 여자 아이를 끌고 가던 두 경비원. 그 아이, 행복할 수 있을까요? 그 아이,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소동이 있은 뒤 조용히 진료를 받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짧게나마 그 친구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잘 치료받고 행복하길. 그 친구도 그저 사랑받고 싶고 멋진 남자 친구도 만나고 싶은 그저 어린 아이일 뿐 인데. 그 친구가 보이던 웃음과 언행으로 보아 상태가 쉽지는 않아보였습니다만, 그저 기도할 뿐입니다. 

 

2. 무엇을 위해 사는가?

 

         모든 걸 접어 두고 쉬고 있어 시간이 많다 보니 이런 저런 사람 많이 만났습니다. 저번 글에 썼듯 교회에서 만났던 사람들, 잠시 일했던 회사의 사람들, 안 본지 좀 된 친구들 그리고 상담가 선생님. 사람들 만나면서 많은 이야기를 듣다 보니 비단 공황 장애뿐 아니라 이런 저런 병으로 아픈 사람들 많더라구요. 한 가지 인상 깊었던 이야기가 있었는데요. 제가 알던 회사 지인 분이 이직을 하셔서 새 회사에서 일을 시작하셨는데 사원 수에 비해 업무가 굉장히 많은 회사였대요. 그래서 야근은 기본, 걸핏하면 주말에도 나갔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웃긴 것이 제 지인 분 양 옆에 앉아 있는 선배 사원 두 분이 모두 공황 장애 환자였대요. 한 분은 심지어 야근중에 호흡 곤란으로 응급실로 실려간 적도 있다더군요. 그래놓고 제 지인한테 이렇게 말했답니다. '일단 버텨. 버티라고. 힘들어도 버텨야지. 그게 사회 생활이지'. 멋지다고 해야할까, 바보같다고 해야할까 뭐라 말하기가 굉장히 곤란했습니다. 응급실에 실려갔다온 사람이 후배에게 그저 버티라고 조언을 해주다니.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걸까요. 아니면 몸은 못 버티고 마음도 못 버티는데 살아남아야 한다는 이성만 버티고 있는 건가요. 씁쓸했습니다. 무엇을 위해 사는 거야, 도대체 우리는. 의식주를 해결하고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먹고 사길 위해서 하는 일이라면 취미와 사랑과 같은 행복들을 모두 포기하고 야근 중에 응급실에 실려가도 모든 것이 용서되는 거야? 제 지인분은 얼마 후 회사 그만두었답니다. 말하다가 그러더군요. 자기 이제 백수라고. 잘했다고 말해줬습니다. 그냥 한 동안은 백수로 사시라고 농담아닌 농담도 해주었습니다. 매니아 여러분은 무엇을 위해 일을 하세요? 살아남기 위해서? 그 선배의 말처럼 버텨내기 위해서? 여러분의 생각도 궁금하네요. 

 

3. 이겨낼 수 있을까?

 

         정신과에도 가보고 비슷한 증세를 겪으며 힘겹게 사회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듣고 접하며 마음 한 켠이 쓰라렸습니다. 왜 이렇게 다들 슬퍼. 조금만 더 행복하자. 열심히 하는 것 좋은데 일단 아프지는 말자. 아프지는 말자. 이게 제일 강렬했던 생각인 거 같아요. 뭘하든 상관없는데 아프지는 말자. 이제 공황 3개월차인데 평균적으로 병에서 벗어나는데 9개월에서 1년까지 걸린대요. 이제 3분의 1 정도 왔는데 아직까지 좋습니다. 증세도 많이 사라졌고 대부분의 일상을 되찾았습니다. 그러나 아직 큰 관문이 남아있어요. 과연 이 병을 지니고 학교도 다니고 일도 할 수 있을까?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다음 학기 복학하고 올해 말 쯤에 공황장애 마지막 후기글을 하나 남기려고 해요. 어떻게 한 학기를 잘 버텨냈는지 못 버텨냈는지에 대해. 병을 이겨내고 나서 조금은 더 행복에 가까웠는지에 대해. 돌아오는 월요일 모두 화이팅입니다. 비는 내리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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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18-07-02 03:09:29

어느 순간부터 무뎌지기 시작할 겁니다. 그러실 겁니다. 다 괜찮으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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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2 03:53:31

제 x랄 친구녀석이 28세부터 32 까지 4년간 혼자 끙끙 앓다가 저에게 처음으로 얘기를 하고 저는 그친구를 설득해서 모든 친구들에게 알렸습니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호전이 되었구요 약도 약이지만 주변환경이 참 중요하다고 합니다 별거 아니다 힘들면 얘기해라 이런것들이 도움이 됐다고 합니다 열심히 잘 치료하셔서 안정적인 하루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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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8-07-02 05:16:07

참 현명하십니다 그래도..
4년전쯤 아버지돌아가시고 결혼까지생각한 여자와 헤어지고 자의반타의반 직장그만두고 옵션으로 15년키우던 강아지 진돗개가 물어죽인적이 있는데 그게모두 한달여동안 벌어져서 완전망가지고 멘탈삭살나며 바닥에바닥뚫고 거의 암흑시기가있었습니다
그때이후 서너달동안 집안이든 자동차든 실내에 있으면 숨이안쉬어지고 진짜속이 막혀서 하루수백번 큰숨몰아쉬고 바깥 몇시간을 걷고 안정되면 들어오고 또그러고 또나가고 지쳐겨우 잠들고 그런적이있었습니다 몇달을 매일그리살았는지..

지금 생각함 왜 그때 병원을가지않았을까싶더군요 한심했습니다
문제점 파악하고 현명한 대처와 마음가짐가지신거보니 꼭 좋은결과 있을겁니다!

2018-07-02 08:51:34

조금전 (1)을 먼저 읽고
이번 후기도 잘 읽었습니다
올해말쯤 올라올 마지막 글에는
지금보다도 더
행복에 아주 많이 가까워졌기를
기대하면서 기다릴께요..
항상 힘내시구요
오늘부터 계속 파이팅입니다!^^

2018-07-02 14:18:32

제가 '나의 아저씨'의 이지안은 아닙니다만

이지안식 '파이팅' 입니다.

주변에 조현병 환자도 있고, 제 딸래미도 어릴적 불안장애가 왔었는데..극복이 되더라구요.

힘내십쇼 그리고 주변에 이야기할 사람들 있으면 이야기하시는게 좋을듯 해요.

혼자서 끙끙 앓아도 극복이 쉽지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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