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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황장애 후기 -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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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8-12-20 02:23:05

                 처음으로 공황 증상이 나타났던 것이 올해 4월이었습니다. 모르겠습니다. 제가 운이 좋은 건지 아니면 강인한 건지. 공황으로 길게는 몇 년씩, 짧게는 1~2년씩 고생하시던데 5개월정도 치료받고 (치료받았다기 보다 그냥 쉬었습니다.) 다시 9월에 복학해서 오늘 기말고사를 끝으로 학기를 마쳤습니다. 제 스스로도 제가 '완치'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사실상 이 병에 완치라는 개념이 존재하는지 조차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증상이 안 나타나길 바라면서 하루하루 학교를 나갔고, 다행히 무사하게 학기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올해는 다른 해와 다르게 참 길게 느껴졌습니다. 공황 증상을 처음 겪는 순간 진심으로 내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공포를 느꼈고, 아직도 그 당시 감각은 생생합니다. 숨이 목까지 차오르고 심장이 덜컹했던 그 순간. 그 일이 있고 난 후에 질병 휴학 후 집에서 쉬며 교회도 나가보고, 산책도 해보고 그저 시간을 빈둥빈둥 보냈습니다. 이건 다 제가 앞에 후기에 그 때 그 때 마다 적어놨기에 굳이 다시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비록 한시적이었지만, 병자의 입장에서 보는 세상은 사뭇 달랐습니다. 진심으로. 내가 당연시 여기던 것들. 아무 것도 아니라고 느꼈던 것들의 존재감 (소중함 아닙니다, 존재감) 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이러한 소회를 주위 사람들에게 많이 나누었는데, 다들 고개는 끄덕거리지만 그 순간에만 공감할 뿐 진심으로 제 감정을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하는듯 했습니다. 감정은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제가 질환을 겪으면서 느꼈던 소중한 감정들을 온전히 나눌 수 없다는 것이 아쉽긴 하지만 그러려니 합니다.

  

                 9월에 학교에 다시 복학할 때만 해도, 정말 즐겁게 학교를 다닐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너무나 학교가 가고 싶었고 동기들과 있고 싶었고 공부가 하고 싶었습니다. 마치 신입생이 된 듯 들 뜬 마음에 학교로 돌아갔지만 그러한 감정도 오래가지는 못했습니다. 머릿속을 다시금 현실적인 고민들이 차지하기 시작했고, 제가 병을 이겨내는 기간동안 얻었던, 간직하고자 했던 감정들은 조금씩 희미해지는 듯 했습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구나, 하고 한번 더 느낄 수 있었습니다. 글이 조금 중구난방이긴 한데,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때로는 잃는 것이 더 얻는 것이라고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는 겁니다. 저는 병으로 6개월을 잃었지만 (사실상 잃은 것도 아니지만) 그보다 값진 것들을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시각, 영구적 환자들에 대한 애도와 존경 그리고 나를 대하는 태도 등 다소 어린 나이에 이런저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오늘 기말 시험을 치루고 집에 편안히 누워서 제 오른손을 왼손으로 꽉 잡아주었습니다. 머리도 좀 쓰다 듬어주고. 고생했다고. 남들이 보기에는 당연하고, 쉬워보이는 일도, 누군가한테는 매우 소중한 일이고 어려운 일일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에 저 스스로에게 조금이나마 고생했다고 위로해주었습니다.

 

                온전한 행복은 시대가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언론에서 최악의 고용 위기, 고용 한파, 경제 위기가 어쩌고 하지만, 우리가 이런 환경에 있기 때문에 우리가 더 특별히 불행하고 운이 나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어느 시대에나 각기 다른 어려움이 있으니까요. 그저 오늘 하루 내가 어떤 태도로 삶을 보냈는 가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추면 더 좋은 삶이 되지 않을까 하는 사견이었습니다. 그동안 후기 읽어주시고 추천도 달아주시고 소중한 댓글 달아주신 분들 고맙습니다.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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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2018-12-20 09:05:32

사는건 즐거운게 아니지만
반드시 즐거운 순간이 오겠죠.
그 순간을 위해 기나긴 고통을 참는거겠죠. 사람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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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20 09:58:50

고생하셨습니다.

Updated at 2018-12-21 13:10:44

쓰신 글 완독했습니다. 간결하게 핵심을 써주셔서 읽기 좋았습니다.
저도 사회생활하며 힘들때 이따금씩 쓰신 글처럼 삶에 대한, 왜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이 강하게 들때가 있는데 작성자분의 글을 읽으며 뭔가 힘을 얻은 느낌입니다.
하루하루에 일희일비하며 살아가지만 또 금방 적응해버리고 잊어버리는게 사람인가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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