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을 놓친 여성과학자 그리고 명왕성
태양정도 크기의 별은 자신이 지닌 수소를 헬륨으로 핵융합을 마친 이후에 탄소 핵융합에 이르지 못하고 백색왜성으로 변하게 됩니다. 백색왜성의 최종질량은 태양의 1.4배를 넘지 못하며 내부는 헬륨, 탄소 등 무거운 원소입니다. 참조 : https://nbamania.com/g2/bbs/board.php?bo_table=freetalk&wr_id=1869346&sca=&sfl=mb_id%2C1&stx=kormhs&page=3
핵의 질량이 태양의 약 1.4배~ 2.1배인 경우는 자체 중력으로 인하여 전자들까지도 원자핵에 밀려들어가서 모든 물질이 중성자로 바뀌는 중성자별이 만들어집니다. 중성자별은 반지름이 고작 10km 정도이지만 반지름이 70만km인 태양보다 무겁습니다. 대략 계산하면 중성자별은 물의 밀도에 무려 1조 배정도 이고, 한 숟가락 분량의 중성자별의 물질은 그 무게가 수천만 톤이나 됩니다.
중성자별은 1967년 케임브리지 대학의 24세인 여성 대학원생 조셀린 벨(Jocelyn Bell)에 의하여 발견되었습니다. 빠르게 회전하는 중성자별은 강한 자장을 가지고 있으며, 이 회전하는 파장에서 발생한 전파가 조셀린 벨이 발견한 펄서의 전파였습니다. 하지만 1974년도 노벨 물리학상은 그녀의 지도교수 안토니 휴이시(Antony Hewish)가 받았고, 벨은 수상에서 제외되었습니다. 조셀린 벨은 리제 마이트너, 로절린드 프랭클린, 우젠슝과 함께 과학적 업적에 대한 정당한 명예로서의 노벨상을 받지 못한 대표적인 여성 과학자로 꼽힙니다.
조셀린 벨은 글래스고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후 전파 천문학을 박사과정의 연구주제로 선택하고, 1965년에 케임브리지 대학의 휴이시 연구팀에 합류했습니다. 그녀는 본격적인 연구에 참여하기에 앞서 자신이 사용하게 될 거대한 전파망원경을 만드는 데 2년을 투자했습니다. 시스템이 완성된 1967년에 이 전파망원경은 4일마다 한차례씩 하늘 전체를 휩쓴 후에 수백 미터가 넘는 도표를 만들어냈는데, 조셀린 벨은 연구실 신참답게 별들의 전자신호와 지구의 인간 활동으로부터 방출되는 인공 전자신호를 구별해 내는 일을 맡았습니다. 1967년 벨은 도표의 130미터 부분에서 1센티미터 정도의 작은 신호를 발견했고, 자신이 발견한 사실을 가지고 휴이시와 토론했니다. 휴이시 교수는 그것을 배경의 소음이나 인공적인 신호로 간주하고 간단히 처리해 버렸지만, 그녀는 그것을 계속 연구하기로 작정했습니다.
벨은 12월 어느 날 밤늦도록 도표를 분석한 결과 1.3초 간격으로 아주 규칙적으로 오는 진동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등대가 회전하면서 보내는 빛과 같이 5분 동안 1.33초 간격으로 일련의 정확한 진동이었습니다. 벨이 자료를 손으로 분석하지 않고 오늘날 보편적으로 행하듯이 컴퓨터로 분석했더라면 펄서의 방사를 전혀 알아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많은 관찰자들은 전파원에서 나오는 잡음을 나타내는 것 같은 신호를 그냥 지나칩니다. 하지만 벨은 그 이상한 신호를 더 깊게 조사했고 신호의 양상이 알려진 어떤 전파원과 관계가 있는지 여부를 체크했습니다. 그리고 그 신호와 지구의 전파 방해 사이에 어떤 연관도 없었고, 그 기록이 그때까지 알려진 별의 복사 형태에 전혀 맞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아냈습니다.
벨은 다시 지도교수 휴이시에게 그 사실을 알렸고, 이번에는 휴이시도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벨과 휴이시는 그 신호가 지구와 교신하기를 바라는 외계문명이 보낸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고, 그 수수께끼의 신호에 LGM-1이라는 명칭을 붙였습니다. LGM은 Little Green Men의 약칭으로 외계인을 뜻하는 명칭입니다. 벨은 그녀가 관찰한 모든 기록을 휴이시에게 넘겨주고 크리스마스 휴가를 떠났습니다. 휴이시는 벨의 자료를 검토하면서 자신들이 급격히 회전하는 항성을 다루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습니다. 벨의 자료는 직경이 약 10km의 작은 크기이지만 밀도가 극도로 높은 중성자별의 발견으로 이어졌습니다. 중성자별의 존재에 대해서는 이미 1930년대에 특정 상황에서 중력에 의한 붕괴를 맞은 별의 결과로 나타난다는 이론적 배경이 있었습니다. 휴이시는 후에 펄서(pulsar)로 이름 붙여진 이 별을 pulsating star, 맥동변광성으로 불렀습니다.
벨의 자료와 휴이시의 펄서에 대한 설명은 곧바로 네이처지에 실렸고, 휴이시는 그 업적으로 1974년에 마틴 라일과 함께 노벨상을 수상하게 되었고 현재까지도 전파천문학의 아버지로 불리고 있습니다. 벨이 노벨상 수상에서 제외되었을 때 수많은 천문학자들이 벨도 수상자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지도교수인 휴이시가 다른 문제에 대한 관찰을 시켰음에도 벨이 자발적으로 끈질기게 변칙적인 복사자료를 추적하여 발견을 이뤄낸 것이므로 펄서의 발견에는 벨의 역할이 가장 컸다고 학자들은 의견을 모았습니다. 자타공인 당대 가장 유명한 천문학자인 프레드 호일(Fred Hoyle)은 휴이시가 제자의 업적을 가로챈 것이고 1974년의 노벨상은 두고두고 스캔들로 남을 것이라며 독설을 퍼부었습니다. 프레드 호일은 우주에서의 핵합성 이론을 창시했고, 천체물리학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B2FH 논문의 주저자였으나 후에 1983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에서 제외되어 또 한번의 소동이 있었습니다.
조셀린 벨이 노벨상 수상에서 제외된 것은 그녀가 대학원생이었고 여성이었기 때문이라고 사람들은 입을 모았습니다. 조셀린 벨은 결혼 후 남편의 성을 따라 조셀린 벨 버넬로 불리고 있습니다. 노벨상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조셀린 벨 버넬은 학자로 매우 성공적인 커리어를 이어갔고 10개가 넘는 큰 상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배스대학교 자연과학대 학장과 영국 왕립천문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작년까지 영국물리학회장을 지냈습니다.
조셀린 벨 버넬은 2006년 3월에 연세대학교에서 ‘여성천문학자들을 기리며‘라는 타이틀로 강연했는데, 저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태양의 구성 물질을 밝혀낸 세실리아 페인, 천왕성을 발견했음에도 그 업적을 오빠에게 양보한 캐롤라인 허셜 등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그들에 비하면 자신은 축복받은 환경이었다고 버넬 교수는 말했습니다. 강연 끝나고 노벨상 수상에서 제외된 것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이 나오자, 그녀는 여태까지 자신의 특강에서 한번도 안 빠지고 나온 질문이라고 하면서 자신의 노벨상 탈락이 세계적으로 과학계의 페미니즘 운동의 물결을 일으켰고, 자신도 노벨상 대신 다른 상들을 많이 받고 유명해졌기 때문에 더 잘된 거라고 답했습니다.
조셀린 벨 버넬 교수가 연세대에서 특강을 했던 그해 2006년 여름 8월 14일부터 25일까지 체코의 프라하에서 국제천문연맹(IAU) 총회가 열렸습니다. IAU 총회는 천문학계에서는 가장 큰 국제 학술대회로 3년마다 열리는데, 2006년 프라하 총회에서는 행성의 정의를 내리는 과학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결정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동안 행성(planet)이라는 말은 엄밀한 과학적 정의 없이 관습적으로 사용돼왔고, 태양계에는 9개의 행성(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 명왕성)이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이 중 명왕성은 1930년에 미국의 클라이드 톰보가 발견한 행성으로서 당시 9개의 행성 중에서 유일하게 미국인이 발견한 행성이었습니다.
하지만 명왕성은 다른 행성들과 뚜렷하게 다른 점을 가지고 있었는데, 첫째 태양계에서 화성 궤도 밖에 있는 행성들은 지구보다 매우 큰데, 명왕성은 지름이 2300 km로서 지구의 달보다도 작으며 질량은 지구의 1/500에 불과합니다. 둘째, 화성과 명왕성 사이에 있는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은 기체 상태의 행성이지만, 명왕성은 지구와 같은 고체형 행성입니다. 셋째, 명왕성은 상대적으로 매우 큰 위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명왕성의 위성 중 하나인 카론은 명왕성과 극단적으로 근접해 있으며 그 크기가 명왕성의 반이나 됩니다.
넷째, 명왕성의 궤도는 이심률 0.2488로 행성 중에서 가장 많이 일그러져 있으며, 경사각 17도로 궤도면이 황도면에서 가장 크게 기울어져 있습니다. 궤도가 얼마나 찌그러진 타원형인지를 나타내는 이심률은 0에 가까울수록 완전한 원형으로 행성마다 다른데, 행성들의 공전궤도 이심률은 수성(0.2056)을 제외하면 모두 0.0068(금성)~0.0934(화성)로 비교적 원에 가까운 반면 명왕성의 공전궤도는 0.2488로 심하게 찌그러진 타원형입니다. 이 때문에 명왕성은 태양에서 가장 멀리 있으면서도 태양을 한 바퀴 도는데 걸리는 249년 중 20년은 해왕성보다 태양 가까이 위치하게 됩니다. 명왕성 공전궤도가 해왕성 공전궤도를 가로질러 안쪽을 지나가는 것입니다. 실제로 1979년 2월 7일부터 1999년 2월 11일까지 태양에서 가장 먼 행성은 해왕성이었습니다. 이런 점들 때문에 명왕성은 일찌감치 일부 천문학자들로부터 행성에서 제외돼야 한다는 지적을 받아왔습니다.
그런 논란 속에서도 명왕성이 행성으로 남아있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명왕성의 독보적 위상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행운은 2003년 10월 미국 칼텍의 마이클 브라운 교수가 해왕성 밖에서 명왕성보다 큰 천체 UB313 Xena(현재 이름은 에리스)를 발견하면서 끝났습니다. UB313은 발견된 후 줄곧 명왕성과 비교되면서 명왕성이 행성이면 UB313도 행성이 돼야 한다는 공감대를 넓혀 왔습니다. 이에 따라 IAU도 2006년 총회에 UB313과 소행성 중 가장 큰 세레스, 명왕성 위성 중 가장 큰 카론 등 3개 천체를 행성으로 격상시키는 내용의 행성 정의 초안을 제출했습니다. 그러나 이 초안은 IAU 총회 토론에서 강력한 반발에 부딪혔고 결국 투표 끝에 명왕성이 행성에서 탈락하고 세레스 및 UB313와 함께 왜행성이라는 새 범주로 분류됐습니다.
2006년 8월 24일에 IAU 총회 표결에 부쳐진 안에 포함된 행성의 새로운 정의는 두 가지였습니다. 첫 번째 정의에 따르면, 명왕성을 제외한 8개의 행성만이 행성이 되고, 명왕성은 행성이 아닌 왜행성(dwarf planet)이 됩니다. 두 번째는 행성의 정의를 약간 넓게 정하고, 그 속에 고전 행성(classical planet)과 왜행성을 각각 정의하는 것인데, 이에 따르면 명왕성은 행성의 위치를 고수하면서 왜행성에도 속하는 것이 됩니다. 이 안건에 대한 토의와 표결은 1967년에 펄서를 발견한 영국의 조셀린 벨 버넬 교수가 맡아서 진지한 상황임에도 매우 유머러스하게 진행했습니다. 벨 버넬 교수는 파란 풍선을 기존의 행성으로, 디즈니 캐릭터로 플루토(명왕성과 같은 이름)라는 이름의 개는 왜행성으로 묘사하면서 행성을 우산과 같이 폭넓게 정의하면 명왕성은 행성 대열에 남아있을 수 있었습니다. (사진 참조).
첫 번째 안을 지지하면 노란 카드를 들고, 두 번째 안을 지지하면 파란 카드를 드는 방식으로 표결한 결과 약 2:1 정도로 첫 번째 안이 채택되었습니다. 벨 버넬 교수도 투표해 참가해서 노란 카드를 들었습니다.
이날 IAU 결의안에 따르면 태양계의 행성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범주에 따라 정의됩니다.
(a)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하며,
(b) 자체 중력이 강체력을 극복함으로써 둥근 모양을 가질 정도로 충분한 질량을 가지며,
(c) 그 공전 궤도 주변의 물질을 모두 흡수해야 합니다. (It must have cleared the neighbourhood around its orbit)
기존 행성 9개 가운데 명왕성을 제외한 8개는 세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시킵니다. 하지만 명왕성은 주변 천체를 흡수하지 못해 세 번째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것입니다. 명왕성은 카이퍼 벨트 안의 다른 물질들과 궤도를 공유합니다. 지구의 질량은 궤도 내 다른 물질 질량의 170만 배인데 반해 명왕성의 질량은 궤도 내 다른 물질 질량의 고작 7% 정도입니다. cleared the neighbourhood 의 자세한 정의는 아래 링크를 참조하기 바랍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Clearing_the_neighbourhood
앞으로 태양계에서 새로운 행성이 발견될 가능성은 아예 없으므로 행성의 정의가 바뀌지 않는 한 태양계의 행성은 현재의 8개로 남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관측기기와 관측기술이 계속 나아지고 있으므로 명왕성과 비슷한 왜행성은 적지 않게 발견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아래 영상은 조셀린 벨 버넬 교수가 직접 설명하는 행성의 정의입니다. 이틀 전에 유튜브에 올라온 BBC 영상인데 예전에 연세대에서 강연할 때와 거의 같은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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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엔 밤하늘 이야기만큼 좋은 것도 없는 것 같아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