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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브론의 히트 빅3 이모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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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8-06-14 10:08:56

시즌이 종료되고 여러 이슈들이 본격화되기 전인 지금 팬 분들은 자연스레 여러 이슈들로 갑론을박을 펼치시는 것 같습니다. 보면서 이건 이렇지 않았는데, 이 땐 이랬었고, 이 경기는 이랬었고, 이건 이런 상황인데...하는 글들을 사실 꽤나 많이 접했지만 시간적인 여유가 많이 없던 터라 과거처럼 되짚어본다라거나 하는 글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그건 아마 앞으로도 그럴 듯 싶구요. 다만 어제, 오늘 게시판을 보다 최고 많은 댓글을 달린 글을 보니 과거 히트의 빅3에 대한 글이더군요. 그 글로 여러 글들이 또 파생되어 나오기도 하고....비교도 되어지기도 하면서...사실 요즘 NBA 인기가 높아지면서 거리에 저지나 NBA관련 의류를 입으신 분들도 많이 보이고, 매력을 느끼는 분들도 많이 계시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최근 흐름에서 조금만 더 거슬러 올라가면 당시 상황과 괴리가 있는 글들이 나오기 마련이라고도 생각이 들구요. 그래서 이 글을 쓸까 합니다.

뭐 르브론 관련 스토리에 대한 부분은 워낙 매니아에 르브론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기도 하고 해서 과거에 여러차례 작성하였었는데 어제 이슈가 된 만큼 정리해 당시를 되짚어볼까 합니다.

 

 


 

일단 먼저 히트의 빅3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기 위해선 2005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합니다.
05년 3월 캐브스는 구단주가 댄 길버트로 바뀌면서 대대적인 개편에 착수합니다. 길버트는 르브론과 함께 팀을 이끌 새로운 코칭 스텝 체재를 원했고 스퍼스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있던 마이크 브라운이 선택되죠. 그리고 얼마 후 스퍼스에서 브라운과 한솥밥을 먹었던 대니 페리가 짐 팩슨 후임 단장으로 선임되면서 새로운 체제를 구축합니다. 데니 페리 단장은 르브론이 좀 더 본인의 기량을 펼 수 있는 라인업 및 환경을 갖추어야 겠다라고 생각하고 더 그 중심의 팀을 만들기로 다짐합니다. 마이크 브라운 역시 같은 생각이었고 르브론을 주장으로 선임하면서 젊은 리더로 만들어주죠. 물론 그만한 가능성을 르브론이 보여주었기 때문이기도 하구요. 캐브스 입장에선 어쩔 수 없던 것이 르브론과의 재계약 문제가 걸려 있던 터라 좀 더 그의 구미가 당길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만 했습니다. 그렇기에 거액을 들여 연습구장을 새로 짓고 르브론 스스로가 원하는 스쿼드 강화에 많은 힘을 기울입니다. 그 결과 르브론의 파트너로 앞선 수비를 강화키 위해 래리 휴즈를 워싱턴에서 영입해왔고 이어 3점 라인 밖에서 지원 사격을 해 줄 도니엘 마샬과 데이먼 존스를 영입하죠. 휴즈야 당시도 오버페이란 말을 많이 들었었지만 르브론의 마음을 잡아야 할 그들 입장에서 앞선에서 안정된 수비를 보여 줄 수 있는 자원이자 서브 득점원은 필수요소였습니다. 그래서 투자를 할 수 밖에 없었고 캐브스는 사실 매력적인 프랜차이즈는 아니었기에 선수들을 영입하면서 공을 좀 더 많이 들여야 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휴즈의 경우도 르브론이 직접 가 서로 대화 후에 캐브스 합류를 결정하죠. 이는 당시 CBS 스포츠 라디오 프로그램인 데이먼 아멘돌라라 쇼에서 휴즈가 직접 밝힌 내용이기도 합니다. 르브론이 결정적이었으며 그 때 이적을 결심했다라고 말이죠. 또한 3점이 터지면 무섭게 터지던 도니엘 마샬이나 데이먼 존스는 르브론의 농구엔 딱 맞춤형 플레이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도니엘 마샬이야 꾸준한 득점자원이었고 캐브스 합류 전 3시즌간 3점 40%이상을 기록한 선수였으며, 데이먼 존스는 합류 전 시즌 마이애미에서 30분 이상 플레잉 타임을 가져가며 두자릿 수 득점에 43%가 넘는 삼점 성공률을 기록하던 준수한 자원이었습니다. 래리 휴즈 역시 이적 전 시즌 디펜시브 퍼스트 팀에 스틸왕까지 거머쥐었을 뿐 아니라 20득점 이상 올리던 당시 기준으론 괜찮은 자원이었습니다. 일단 수비 전술에 일가견이 있던 브라운 체제의 앞선 수비를 강화시켜 줄 자원으로 딱이라고 생각을 한 듯 싶었죠. 사실 그럴만 했습니다. 당시 휴즈는...오버페이다란 말도 많았지만 그가 시즌 중 보인 모습은 르브론의 공,수 부담을 덜어내 줄 수 있는 자원임엔 틀림이 없다란 생각이 들만 했습니다. 특히 시즌 마지막 캐브스와의 경기에서 굉장히 강한 인상을 남기며 팀을 승리로 이끌기도 하구요. 4쿼터에만 16점을 넣으며 팀 승리에 기여하는데 앞선에서 보여 준 수비도 상당한 인상을 줍니다. 어찌되었건 캐브스는 그 시즌 세미컨파에서 디트로이트에게 비록 7차전 접전 끝에 무너졌지만 시리즈 한 때 3대2로 앞서기까지 했을 정도로 큰 가능성을 보여주며 시즌을 마감합니다. 그는 바로 르브론과의 재계약으로 이어졌고 르브론은 우승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단 포부와 함께 새 시즌을 준비합니다.
 
르브론이 새 계약을 맺기 전 바로 그 여름에 르브론, 웨이드, 보쉬 03 드래프티 3인방의 계획은 시작됩니다. 이는 그 어느 누구보다 르브론에 대해선 신뢰할 수 있는 기자인 브라이언 윈드호스트가 직접 밝힌 내용으로 앞으로의 내용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당시 3인방은 대표팀에 차출되어 일본에서 열릴 피바 바스켓볼 월드컵 준비를 같이하게 되는데 여기서 본격적으로 합을 맞춘 것이 결국 그들 서로의 니즈를 충족시키는 계기가 됩니다.
기억하시는 분들 많으실겁니다. 일본 가기 전 우리나라에 들러 월드바스켓볼챌린지에 참가했던 그들을...우리나라와 경기 또한 했었으니까요. 공교롭게도 당시 대표팀 직원으로 히트 오너인 미키의 아들 닉 애리슨이 참가를 했었고, 르브론, 보쉬, 웨이드 3인방은 같은 시기 재계약을 맺으며 성사될 지 모를 프로젝트의 퍼즐을 하나씩 끼워넣습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1년 전 그러니까 05년 르브론은 전 미 최고의 매니지먼트 회사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CAA의 리온 로즈를 고용했단 사실입니다. CAA는 이미 그가 15세 시절부터 그를 캐어해 오던 매니지먼트 쪽에선 상당히 큰 손이자 르브론이 자신의 롤모델이라 칭했을 정도로 영향을 끼친 World Wide Wes 윌리엄 웨슬리가 속한 회사로 히트의 빅3가 탄생하는데 큰 기여를 한 회사이기도 하죠. 08년 올림픽 금메달을 통해 가능성을 재확인한 그들은 한 팀이 되는 프로젝트에 조금씩 더 발을 가까이 하고 있었습니다. 그 무렵 CAA는 세 선수가 소속된 회사들을 모두 사들이면서 이러한 계획의 방해가 될만한 요소를 제거시켜 주었었죠. 히트에 합류한 이 후 르브론은 2012년 또 다시 에이전트를 교체합니다. 그것이 자신의 유년 시절 친구인 리치 폴이 대표로 있는 클러치 스포츠 그룹이었죠. 리치 폴은 07년 르브론 자신이 직접 차린 LRMR의 공동 설립자이기도 했습니다. LRMR은 매니지먼트 회사로 저 둘 말고도 르브론의 절친인 매버릭 카터와 랜디 밈스 역시 참여를 하였었는데 르브론의 오랜 팬 분들이시라면 이름을 한 번쯤은 들어 보셨을 겁니다. 르브론의 친구들은 대부분 그가 고교시절 뛰었던 세인트 빈센트-세인트 메리의 팀원들이었으니까요.
 
차치하고 브라운 체제의 캐브스는 연일 성공가도를 내달리고 있었습니다. 07년엔 컨파에서 전 시즌 그들을 탈락시킨 디트로이트를 시리즈 초반 르브론의 부진으로 2게임을 먼저 내주고도 이 후 3,4차전 홈경기를 내리 잡아내고 5차전 르브론 팬 분들에게 오래 기억되고 있는 경기 종반 그리고 연장 르브론의 원맨쇼로 인한 승리에 6차전 부비 깁슨의 크레이지한 활약이 더해져 파이널을 경험하기도 하며, 08 09 시즌엔 시즌 전 기대 승수였던 46승에 20승이 더 추가된 66승을 거두며 우승후보로 우뚝 올라섰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성공가도의 중심에 있던 두 인물인 르브론과 마이크 브라운은 4월엔 빌 피치 이 후 두번째로 캐브스 소속으로 COY를 마이크 브라운이, 5월엔 당시 기준 웨스 언셀드, 모제스 말론에 이어 역사상 3번째로 어린 르브론이 모교에서 MVP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우승에 대한 기대를 한껏 끌어 올리고 있었죠. 아시다시피 동부 컨파에서 올랜도에게 무너지지만 르브론 커리어에 첫 60승 그리고 첫 MVP까지 이룬 것이 많았던 시즌이었습니다. 시즌 중 델론테 웨스트, 빅 벤이 연이은 부상도 있었고 그로 인해 샤크 트레이드를 고민하기도 했지만 그런 와중에도 르브론을 비롯한 바레장, 모 윌 등의 활약이 더해져 시즌을 잘 마무리 할 수 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샤크는 오프시즌에 결국 영입을 하죠.) 사실 당시 샤크는 전성기 기준으론 기량이 많이 떨어졌지만 여전히 골밑에선 위협적인 옵션이었습니다. 이적 전 시즌 피닉스에서 활약이 이를 말해주기도 하구요. (샤크 야투율 커리어 하이 시즌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오프 시즌에 샤크가 트레이드 되었을 때 지금처럼 전성기 선수들이 뭉치는 것을 상상할 수 없던 당시로선 관계자들을 큰 충격에 몰아 넣기도 했었죠. 66승 팀에 샤크의 가세라니, 르브론에게 샤크가 더해 지다니 사실 이것도 꽤나 충격적이었습니다. 각 언론은 당장 캐브스를 강력한 차기 우승후보로 거론했고 르브론도 미디어 데이에 기대감을 감추질 못했습니다. 구단의 무브에 크게 기뻐하는 모습을 언론에 비친 르브론의 포부는 다른 이들로 부터 올 시즌은 반지를 따낼 수 있을 듯 하다란 말을 많이 나오게끔 만들었었죠. 캐브스 구단의 무브는 연일 찬사 일색이었습니다. 사실 오닐 협상 과정도 페리의 노련함이 없었다면 더 지체가 되거나 쉽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페리는 당시 선즈 단장이던 스티브 커와의 협상에서 원하던 부분을 모두 획득하게 됩니다. 당초 선즈 측은 델론테 웨스트를 넣으려 했지만 캐브스는 극구 반대했고 언론에 타 빅맨 영입설을 흘려가며 선즈를 흔든 결과 샤크를 라인업에 추가할 수 있었죠.  웨스트, 힉슨, 1라운드 지명권의 출혈 없이 얻어낸 결과물이란데서 큰 의미를 둘 수 있던 무브였습니다. 하워드에게 영혼을 탈탈 털려 버린 그들은 이제 샤크를 주전으로 Z맨을 벤치로 기용할 수 있는 폭을 가지게 되어 팬들의 기대를 증폭 시킬 수 밖에 없었습니다. 뒤이어 윙맨들인 앤서니 파커와 자마리오 문을 영입하고 리온 포우를 미니멈으로 가세시키면서 팬들의 기대는 극에 달했었죠. 시즌 중 안투안 재미슨까지 가세하면서 모든 부분을 다 갖추었다라고 평가를 받던 라인업이었습니다. 시즌 초 들쑥날쑥하기도 했고, 오닐이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시즌이 흐르면서 빅네임의 영입은 진가를 발휘했습니다. 모 윌과 웨스트가 부상 아웃 되자 오닐은 완벽한 2옵션으로서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고 공격 뿐 아니라 수비에서도 캐브스에 큰 도움이 되고 있었습니다. 캐브스의 페인트존 실점률이 이를 대변해주고 있었죠. 뿐 아니라 그들의 실질적 라이벌이라 할 수 있던 레이커스와 매직 전에서 지난 시즌관 다른 결과물을 얻어내며 캐브스 팬 분들에게 올 해는 다르다란 인식을 강하게 심어줍니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결과는 르브론에겐 지옥과도 같았던 셀틱스에게 무너지며 61승을 거두고도 컨파 진출 실패라는 최악의 결과물을 안고 말죠. 전 시즌 시리즈 종료 후 상대 선수와의 악수와 포스트게임 기자회견을 거부해서 말을 들었던 것 보다 더 거세게 많은 말들이 들려왔습니다. 그리고 르브론의 이적에 대한 구체적 말들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기 시작했죠.

다시 시즌 중으로 거슬러 올라가 르브론이 마이애미에 원정 경기를 온 날 라일리는 조던을 대동하고 르브론과 함께 자리를 가졌습니다. 조던은 나이키 관련 사업차 방문한 상황이었고 이 자리에서 라일리는 조던에 대한 리스펙을 확실히 르브론에게 보여주며 자신의 구장에 영구결번된 조던의 23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눕니다. 르브론 입장에선 챔피언의 자리가 얼마나 오르기 힘든 것인지 새삼 느끼고 있던 터라 더 와 닿았을 테지요. 그날 밤 게임은 히트가 졌지만 진정한 승자는 따로 있었습니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르브론은 조던에 대한 존경심으로 내년 시즌부터 23번 저지를 입지 않겠다라 밝혔고 전 구단 영구결번이 되어야 한다란 자신의 의견 또한 밝힙니다. 라일리는 자신이 르브론과의 협상에서 그를 컨트롤 할 수 있겠다란 자신을 얻었고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합니다. 얼마 후 라일리는 클리블랜드로 르브론에게 플로리다란 도시의 이점(세금)을 설명해 줄 법률가와 알론조 모닝 그리고 자신이 따 낸 챔피언 링 7개를 가지고 갑니다. 그리고 캐브스에서 르브론의 지인들에게 해주었던 모든 대우들을 히트에서도 그대로 해주겠다라 약속을 하죠. 거기엔 고연봉의 구단 직책에 르브론 측근을 앉히는 것 또한 포함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니즈가 맞아 떨어지자 세 선수가 한 팀이 되는 프로젝트는 마무리 단계에 돌입합니다. 마이애미 해럴드의 댄 르 바터드는 히트에서 세 선수가 뭉치는 것을 처음 계획한 이는 르브론이었다라 밝힌 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2006년을 말하는 것이겠죠. 그리고 2010년 세 선수가 모두 시장에 나올 수 있었을 때 세 선수는 클리블랜드에서 르브론의 주최로 모임을 갖습니다. 르브론은 캐브스가 보쉬 영입을 위한 무브를 보였을 때 보쉬에게 의사를 물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보쉬는 클리블랜드라는 도시에 매력을 느끼지 못했고 마이애미 혹은 뉴욕 등 대도시에서 모이길 원했습니다. 사실 시즌이 시작할 무렵 많은 이들은 르브론의 잔류를 예상하면서도 이적을 한다면 뉴욕 혹은 뉴저지(브루클린)가 유리할 것이라 내다보기도 했었습니다. 팀이 본인에게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고 본인 위주의 모든 시스템을 만들어 주었는데 떠난다라는 걸 쉽사리 예상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또 다시 플레이오프에서 실패를 맛 볼 경우 나이키의 보너스, 르브론의 양키스 사랑, 친구인 제이 지 그리고 사바시아의 추천, 언론에 밝힌 뉴욕이란 도시의 호감도 등을 볼 때 떠난다라면 뉴욕이 되지 않을까 예상하기도 했었죠. 공교롭게도 르브론, 웨이드, 보쉬는 모두 연장 계약을 거부하면서 2010년 이 후의 거취에 대해선 함구하는 스탠스를 취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르브론이 캐브스를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단 기사를 쓰게 끔 만들었고 여러 도시들이 더 열정적으로 뛰어들게끔 만들었죠. 르브론에겐 세 가지 조건이 필요했습니다. 우승가능성, 본인 위주의 팀, 경제적 이익 이는 본인이 밝힌 사실로 위 조건을 충족 시킬 수 있는 구단은 캐브스와 뉴욕 밖에 없다란 얘기들이 돌기도 했었죠. 그렇지만 마이애미 행 그리고 르브론의 옆에 웨이드가 필요하다라는 말을 아무도 꺼내지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크리스 브루사드는 09 10 시즌 시작 무렵 칼럼에 만약 르브론이 떠난다라면 마이애미가 될 것이라 쓰기도 했었고 그의 파트너는 웨이드가 되어야 할 것이다라 하기도 했었죠. 당시엔 워낙 얼토당토 않은 생각이라 여겼기에 스쳐 지나갔었지만 뒤에선 이 프로젝트가 조금씩 현실화 되고 있었습니다. 크리스는 클리블랜드 출생으로 자연히 친르브론 성향의 기자로 유명한 분입니다. 당시 크리스는 르브론이 반지를 얻기 위해선 웨이드가 필요 할지도 모른다란 구절을 썼었는데 이는 캐브스의 시즌이 종료가 되고 현실화 되어 버렸죠.
 
르브론은 몇 시즌 전 빅3를 만든 가넷관 여러 부분이 달랐습니다. 일단 나이가 그러했고, 구단의 스탠스가 달랐으며, 이로 인한 주위의 반응이 달랐죠. 가넷의 경우 바클리나 레지 밀러가 TV에 공공연히 트레이드를 빨리 요구하라고 말 할 정도로 구단과 힘든 관계를 지속 중이었습니다. 투자에 대한 부분, 본인 상의 없이 일처리를 하는 부분 등 너무나 힘든 순간을 보내고 있었죠. 본인 스스로가 마크 스타인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들입니다. 프런트가 샘 카셀과 스프리웰을 보낼 때 너무 힘들었으며, 코치 문제, 새로운 파트너 문제 등 너무나 많은 부분에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라 말이죠. F워드까지 써가며 만약 구단이 자신을 트레이드 하지 않는다라면 많은 변화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흥분하기도 했었습니다. 본인 스스로가 미네소타를 너무나 사랑하고 팬들을 아끼기에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떠나라 함에도 그러지 못했지만 커리어가 점차 쌓여만 가면서 결정을 내려야만 했었죠. 구단이 르브론에게 총력전을 보이는 캐브스완 전혀 상반된 상태였었습니다. 사실 샤크가 밝힌 것 처럼 너무 휘둘린다란 느낌을 많이 받긴 했지만 본인들 스스로가 만든 일이니 캐브스 입장에선 누구를 탓할 순 없었을 겁니니다.
 
다시 당시 상황으로 돌아가 플레이오프가 한창일 당시 NBA TV 인터뷰에서 르브론은 클리블랜드에서 챔피언십을 이룰 때 까진 떠나지 않겠다라 밝히며 캐브스에서 우승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겠다란 인터뷰를 합니다. 그러자 많은 이들은 반지를 얻고 난 후는? 이라며 반문을 던지기도 했었죠. 당시 캐브스는 강력한 우승후보였기 때문에 우승을 하면 떠나겠단 말이냐라고 하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그러나 셀틱스에게 무너지며 시즌이 종료되고 히트 행이 결정되면서 모든 스토리의 조각이 하나, 둘씩 들어 맞아가기 시작했죠. 모두를 충격에 빠뜨리게 했고 너무나 강력한 조합에 이들이 몇 번을 우승 할 지에 대한 얘기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기도 했습니다. 실제 당시 설문에서 NBA 최대 이슈로 백 투 백을 거머 쥔 레이커스를 제치고 이 세 선수가 뭉친 사건이 뽑히기도 했었죠. 당시 레이커스는 파이널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클래식 라이벌인 셀틱스를 꺾고 우승하면서 수 많은 스토리를 만들어 냈었음에도 이 세 선수가 뭉친다라는 소식에 파급이 길게 가진 못했었습니다.
 
2010년 7월 9일 방송을 통해 히트 행을 발표하고 NBA 팬 모두가 패닉에 빠져있는 가운데 11일 AAA에서 본인들 입으로 한,두차례 우승을 위해 뭉친 팀이 아니며 매 경기 올스타전이 될 것이라고 밝히기도 합니다. 역사를 쓰겠다란 의미로 르브론은 히스토리라 쓴 문신을 세기기도 했구요. 뭉친 본인들 스스로가 이 정도의 반응을 보였다라면 어느 정도의 파급력이었는 지 대략 짐작이 되시리라 생각합니다. 전미 최고 일간지인 USA 투데이에선 이례적으로 3페이지에 걸쳐 특집 기사를 실었고 또 설문에서 30% 이상의 사람들은 이 세 선수가 우승을 하더라도 우승의 정당성이 떨어진다란 반응을 보이기도 했었죠. 물론 50%는 이적을 신경 쓰지 않는다라 밝혔지만 기대감을 나타낸 응답자는 전체 19%에 불과했었습니다. 전 지금까지 NBA를 봐 오면서 선수들이 이적한 것을 두고 우승의 정당성을 운운하며 설문을 한 경우를 이 때 빼곤 본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이렇듯 과정도 상황도 지금껏 NBA의 여타 다른 스타들관 다른 충격적인 라인업이 형성된 것이었습니다. 이미 세 선수는 대표팀에서 본인들의 합을 맞추어 본 상황이었고, 드래프티 동기로 교감이 있던 상황이었으며, 장기간에 걸쳐 준비를 한 실패를 할래야 할 수가 없던 조합이었던 것이죠. 그러나 첫 파이널에서의 실패 그리고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들려오는 여러 말들...이는 다음 시즌 히트가 파이널에 올랐음에도 서부의 썬더보다 평론가들에게 낮은 평가를 받게끔하는 주요 원인이 됩니다. 스타파워로 본다면 당시 기준 누가보나 히트의 손을 들어주겠으나 전 시즌의 잔향들 그리고 큰 무대에서 보이던 모습들은 전문가들을 매버릭스, 레이커스, 스퍼스를 차례로 꺾으며 파죽지세로 올라온 썬더의 손을 들어 줄 수밖에 없게끔 만들었죠. 실제 시즌 승수 차이는 1승 밖에 나지 않았지만 플레이오프에서 히트가 보여준 모습은 불안불안 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7차전 접전 끝에 이겼던 셀틱스도 당시는 줄부상으로 40승도 못 거두었던 팀이었고(단축시즌으로 총 66경기) 주전 센터가 빠졌음에도 7차전 끝에 파이널로 올라갈 수 있었죠. 결국 두 차례의 우승 그리고 또 다시 실패 그리고 르브론의 이적...아시다시피 캐브스로의 컴백이 이루어지며 지금까지 오게 됩니다. 성공이냐 실패냐 의견이 분분한 히트의 빅3는 어찌되었든 좋지 못한 마무리로 여정이 종료되죠.
 
르브론은 캐브스로의 이적 결정 후 케빈 러브에게 전화해 같이 뛸 것을 제안했고 러브는 이를 승낙하며 새로운 빅3를 형성하게 되죠. 많은 분들이 보쉬의 이적 당시 위상에 대한 토론을 하시던데 전 이적 전 케빈 러브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PER 1,2,4위가 뭉친 것을 많이들 강조하시는데 당시 러브도 PER 3위 시즌이자 올 NBA 세컨팀 멤버이기도 했습니다. 퍼스트 팀 멤버가 듀란트, 르브론이었으니 포워드로서 당시 시즌 위상이 어느 정도 였는지 짐작이 되실겁니다. 두 선수 모두 시즌 한 때 MVP 컨텐더 소리를 듣기도 했을 만큼 훌륭한 시즌을 보인 선수들이었습니다. 보쉬가 히트에서 얼마나 힘들어 했으며 얼마나 희생했었는 지를 보았기에 러브는 이적 후 본인은 스트레치 포워드가 아니라며 그러한 말들에 강한 부정적 반응을 보이기도 했었죠.
 
이제 새로운 라인업과 새로운 시즌을 시작할 수도 있는 이 때 르브론은 2010년 보다 더 많은 것을 고려해야 할 겁니다. 아무쪼록 무엇보다 르브론 최고의 강점이라고 생각하는 내구성을 유지하며 오래간 뛰는 그의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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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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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4 06:48:59

언제나 그렇지만 대단한 빅3이였죠

 

우승에 대한 정당성이 표명 될 정도의 압도적인 이름값

 

중요한 건 그 전성기의 기준의 나이대가 현재 진행되는 시점에 모였다는 것이였죠

 

다 늙어 병든 상태의 호랑이들이 아니라

 

이제 성체가 되서 전성기를 달리는 범들이였으니까요

 

보쉬의 이미지가 어찌했든, 웨이드와 르브론이 뭉친다는것 자체가 당시 리그 최강의 창들이 

 

한 팀에 뭉친다는것이였으니 여기에 어쨌든 한 팀의 에이스인 보쉬

 

교집합적인 부분에서 상대적으로 먹히는 부분이 있고 볼륨스텟이 다는 아니지만

마이애미의 헷지 디펜스를 함에 분명히 보쉬의 공도 있었을겁니다. 

 

다만, 이 조합을 만들고나서 꾸준하게 3선수가 정규시즌을 기복없이 오래 뛴 것도 아니고

 

정규시즌은 정규시즌대로 플옵은 플옵대로 년차 별로 기복과 부상으로 계속가지 못했다는것들이

 

더 높은 성공을 이루는데 문제가 되지 않았나 싶네요

 

덕과 댈러스의 11년우승에 한없는 존경심을 보내지만, 마이애미빅3가 그 해 우승을 놓친건

 

어떤 이유로나 여전히 많이 아쉽네요 

 


2018-06-14 07:16:26

정성스런 글
잘읽고 추천합니다

2018-06-14 07:36:28

슈퍼팀이 늘어난 지금 마이애미 빅3가 모일 때의 느낌을 받게 하려면 커듀갈 정도는 모여야겠죠.

우승정도는 당연하다고 생각되고 과연 얼마나 오래 리그를 지배할지 궁금해지는 팀이었습니다.

비록 처음의 기대감에 비하면 실패로 평가받을 만한 결과를 남겼지만, 그 당시는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2018-06-14 10:23:26

듀란트가 골스로 갔을 때와 비슷한 느낌? 저 팀이 무조건 우승이네 느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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