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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틀란타 호크스 프랜차이즈 포지션별 랭킹 Top28 - C편 (ver.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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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7-07-03 21:48:35



안녕하십니까, 이번에는 시리즈 마지막 연재물인 C편으로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지난 연재물인 PG편, SG편, SF편, PF편은 아래 링크해두었으니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PG편 : /g2/bbs/board.php?bo_table=maniazine&wr_id=165336

SG편 : /g2/bbs/board.php?bo_table=maniazine&wr_id=165390

SF편 : /g2/bbs/board.php?bo_table=maniazine&wr_id=165438

PF편 : /g2/bbs/board.php?bo_table=maniazine&wr_id=165541




범례 및 프랜차이즈의 간단 역사 등은 이미 지난 편을 통해서 소개해 드렸으나, 이번 편을 맨 처음으로 보시는 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덧붙였습니다.

 









범례

 

- 이 글의 랭킹은 기본적으로 아래 순위부터 역순으로 소개됩니다. 먼저 기본 랭킹 외의 선수들을 5명씩 소개하는 “Honorable Mention”이 등장하며, 이후 28위부터 역순으로 15위까지 마이너 랭킹”(14), 이어서 14위부터 역순으로 1위까지 메이저 랭킹”(14)의 순으로 진행됩니다.

 

- 위 글 내의 전반적인 스탯 정보(기본적인 신체 사이즈 포함) 등은 바스켓볼 레퍼런스(www.basketball-reference.com) 사이트가 제공하는 데이터를 준용하여 제시하였습니다.

 

- 스탯 정보는 주요 1차 스탯과 일부 2차 스탯을 기재하였습니다. 1차 스탯은 득점(PT), 리바운드(RB), 어시스트(AS), 블록슛(BK), 스틸(ST), 출장시간(MIN)의 총계 및 평균치, 그리고 야투성공률(FG%), 3점슛성공률(3PT%), 자유투성공률(FT%), 3점슛 성공개수(3PTM)까지 수록하였습니다. 턴오버, 개인파울, 오펜/디펜리바 등의 정보는 생략하였으니 이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2차 스탯은 가장 대표적인 PER와 윈쉐어(WS)만 수록하였습니다.

 

- 주요 스탯 외에 해당 선수의 신체 사이즈(키와 체중), 포지션, 연차(Yrs), 출장 경기 수(Games), 활동한 시즌 기간(Season) 정보도 수록하였습니다. 포지션별 랭킹인데 포지션에 대한 정보가 중복해 들어간 이유는 두 포지션을 넘나드는 경우를 표시하기 위함입니다. (즉 경우에 따라 세컨드 포지션까지 표기하였다고 보시면 됩니다.) 시즌의 표기는 파이널이 열린 해를 기준으로 하였습니다. (: 99-00시즌은 “00”으로 표기함)

 

- 선수들의 주요 수상경력도 기재하였습니다. , 올스타 MVP 등과 같이 직접적인 선수 평가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 수상 실적은 제외했습니다. 이밖에 올스타 선정 횟수, 우승 횟수도 병기하였습니다.

 

- 각 스탯의 해당 프랜차이즈 내 랭킹도 첨부하였습니다. 이번 애틀란타 호크스 프랜차이즈의 경우, 3점슛 개수 및 3점슛율은 Top12까지, 블락슛과 스틸은 Top15까지, 나머지 스탯들은 Top20까지 랭킹을 매겼습니다. (스탯 랭킹의 범위가 각각 차이가 나는 까닭은, 3점슛은 79-80시즌부터, 블락슛과 스틸은 73-74시즌부터 계산된 스탯임을 염두에 둔 것입니다.)

 

- 스탯 랭킹 내에 드는 평균 및 비율 스탯의 유효 기준은, 레퍼런스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프랜차이즈 커리어 최소 요구 수치를 준용하였습니다. 따라서 평균 득점 등 여러 스탯은 100경기 이상 출전을, FG%500개 이상 필드골 성공을, FT%200개 이상 자유투 성공을 기준으로 하였습니다. 다만 3PT%의 경우에는 현 레퍼런스 사이트의 기준이 50개 이상 3점슛 성공인데, 3점슛을 많이 쏘는 현재의 트렌드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기준입니다. 그래서 얼마 뛰지도 않은 전문 3점 슈터들이 상위 랭킹에 대거 포진하는 등의 기현상이 있어서 필자의 임의에 따라 94-95시즌 이전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기존대로 50, 94-95시즌부터 11-12시즌까지는 100, 12-13시즌 이후로는 150개를 랭크 기준으로 하였습니다.

(이는 리그의 3점슛 시도가 크게 늘어난 시점을 각각 지표로 삼았습니다. 94-95시즌에는 리그에서 3점슛 거리를 전체 22피트로 조정함에 따라 한 팀의 평균 3점슛 시도 횟수가 급증하였고, 처음으로 경기당 10개를 돌파했습니다. 이 거리 단축 조치는 3시즌 동안만 유지되었으나, 이후 3점슛의 비중이 커지고 선수들이 3점을 더 많이 던지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였습니다. 12-13시즌에는 한 팀의 평균 3점슛 시도 횟수가 처음으로 경기당 20개를 돌파하였으며, 또한 이 시즌에 스테판 커리가 레이 알렌이 가지고 있던 시즌 최고 3점슛 기록(269)를 간만에 경신하기도 했습니다.)

 

- 선수에 대한 소개는 해당 프랜차이즈 내에서의 활약상을 위주로 기술하였으며, 따라서 다른 팀에서의 활약상 등은 가급적 생략하거나 짧게 요약하였습니다. 또한 기본적으로 랭킹이 올라갈수록 선수 소개의 분량이 많고 자세합니다. 해당 프랜차이즈에서 드래프트 된 경우에는 드래프트된 연도와 그 순위까지 언급하였으며, 고인이 된 선수는 몰년과 향년을 기재하였습니다. 이밖에 명예의 전당 입성 및 해당 프랜차이즈 영구결번 여부 등도 밝혔습니다.




애틀란타 호크스 프랜차이즈의 간단 역사

  


  


호크스 프랜차이즈는 1946년에 NBL 리그에서 버팔로 바이슨즈(Buffalo Bisons)라는 이름으로 창단되었다가, 한 달 여 만에 연고지를 일리노이 주의 멀린(Moline)으로 옮기면서 트라이-시티스 블랙호크스(Tri-Cities Blackhawks)로 새롭게 단장하였습니다. “트라이-시티스란 미시시피 강 유역에 서로 인접한 멀린, 록 아일랜드(Rock Island), 데이븐포트(Davenport)의 세 도시에 속한 구역을 지칭하는 말이고, “블랙호크스는 과거 용맹했던 인디언 추장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죠. 장신 센터 돈 오튼을 주축으로 한 블랙호크스는 1949년에 NBLBAA 리그에 병합되어 새로이 NBA 리그가 출범함에 따라, 그 소속이 NBA로 바뀌었습니다. 이후 구단주 벤 커너는 1951년에 연고지를 대도시인 밀워키로 옮겼고, 팀 이름도 좀 더 간단하게 호크스로 바꿨죠. 하지만 밀워키 호크스는 성적이 계속 하위권에 머물면서 흥행이 신통치 않았고, 결국 1955년에 연고지를 다시 세인트루이스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엘리트 빅맨인 밥 페팃을 중심으로 차츰 전력을 강화한 호크스는 56 드래프트에서 빌 러셀을 뽑았지만, 흥행 때문에 세인트루이스의 지역 스타인 에드 마콜리를 영입하기 위해 러셀을 보스턴 셀틱스에 팔고 말았죠. 56-57시즌에 파이널에 진출한 호크스는 공교롭게도 러셀 트레이드의 상대였던 보스턴과 맞붙어 역대 파이널 사상 가장 치열했던 7차전 대접전을 벌인 끝에 아쉽게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이듬해인 57-58시즌에 다시 파이널에 진출한 호크스는 보스턴과 리매치를 벌였는데 이번에는 러셀의 부상을 틈타 4-2로 승리를 거두면서 리벤지에 성공, 프랜차이즈 첫 우승의 위업을 달성했죠. 이후 호크스는 밥 페팃, 클리프 헤이건 등을 앞세워 50년대 말~60년대 초에 서부를 대표하는 강자로 군림했으며, 라이벌 보스턴과는 두 번 더 파이널에서 맞붙었지만 아쉽게도 모두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64-65시즌을 끝으로 밥 페팃이 은퇴하자, 호크스는 선수 겸 감독인 리치 게린의 지도하에 레니 윌킨스, 젤모 비티 등의 흑인 스타들을 앞세워 꾸준히 중상위권 전력을 유지했죠. 게린의 시대에 호크스는 매년 빠짐없이 플레이오프에 진출했고, 67-68시즌에는 56승의 호성적을 거두기도 했습니다. 한편 홈구장 신축 문제로 골치를 썩이던 벤 커너 구단주는 1968년에 끝내 팀을 애틀란타의 부동산 재벌인 톰 커즌스 등에게 매각함에 따라, 호크스는 연고지를 애틀란타로 옮기게 되었죠.

 

이후 호크스는 루 허드슨, 피트 마라비치 등 재간 있는 스코어러들이 팀을 이끌었지만, 몇몇 주축 선수들을 경쟁 리그인 ABA에 빼앗기기도 하고 마라비치와 흑인 동료들 간에 갈등도 심했으며 ABA의 스타 쥴리어스 어빙을 영입하려다 실패하는 등 악재가 겹치면서 성적이 추락, 잠시 침체기를 걷게 됩니다. 그러다가 1977년에 MLB의 애틀란타 브레이브스의 구단주인 테드 터너가 팀을 사들이고 휴비 브라운을 감독으로 임명한 후에 댄 라운드필드의 영입 등으로 전력을 추스르며 다시 중상위권으로 도약하게 되었죠. 82-83시즌에는 조지아 주 출신의 지역스타인 도미닉 윌킨스를 운 좋게 데려온 호크스는 이후 엘리트 스코어러로 성장한 윌킨스의 활약과 명장 마이크 프라텔로의 지도력 등을 앞세워 80년대 말에 4년 연속 50승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하지만 플레이오프에서는 라이벌 보스턴 셀틱스, 디트로이트 피스톤즈 등의 벽을 넘지 못하며 잇달아 고배를 마셔야 했죠. 프라텔로 사임 후 애매하게 중위권에 머물던 호크스는 93-94시즌에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의 레니 윌킨스를 감독으로 선임했습니다. 윌킨스는 부임 첫 해에 도미닉 윌킨스를 트레이드하는 등 과감한 행보를 보이면서 57승의 호성적을 거두었으나,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도미닉을 트레이드한 데에 충격을 받은 다수의 홈팬들이 호크스에 등을 돌리는 좋지 못한 결과를 낳기도 했죠.

 

이후 윌킨스 감독은 마이애미 히트로부터 스티브 스미스를 영입하고, FA로 수비 대마왕 디켐베 무톰보를 영입하며 90년대 중후반에 공수 발란스가 훌륭한 호화 라인업을 구축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플레이오프에서는 마이클 조던이 이끄는 시카고 불스 등에게 가로막히며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죠. 99-00시즌부터 리빌딩에 들어간 호크스는 프런트의 잇따른 오판에 따른 선수 영입 실패로 인해 오랜 암흑기를 거쳐야 했습니다. 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무려 8시즌 연속으로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한 호크스는 그래도 그간 얻은 드래프트 픽 등을 통해 차츰 전력을 강화한 끝에 07-08시즌부터는 다시 플레이오프 권으로 복귀했죠. 이후 호크스는 조 존슨, 알 호포드 등을 앞세워 계속 중상위권 전력을 유지만 하다가, 13-14시즌에 마이크 부덴홀저 감독을 영입하며 새롭게 도약의 계기를 마련합니다. 샌안토니오 스퍼스를 벤치 마킹, 팀플레이 위주의 짜임새 있는 전력을 구축한 호크스는 14-15시즌에 프랜차이즈 역대 최다인 60승을 거두며 챔피언 컨텐더 급의 전력으로 올라섰죠. 하지만 무려 45년 만에 진출한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르브론 제임스가 이끄는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에게 속절없이 스윕당하고 말았습니다. 이후 다시 중상위권으로 내려온 호크스는 이번 시즌에도 동부의 다른 팀들과 치열하게 플레이오프 싸움을 벌이는 중이죠.

 

호크스는 70년 역사 동안 우승은 단 1회에 불과하지만, 47회나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등 꾸준히 중상위권 전력을 유지해 온 부지런한 프랜차이즈입니다. 90년대 말~2000년대 초의 8시즌 동안 외에는 뚜렷이 긴 암흑기도 없죠. 하지만 플레이오프에서는 번번이 1라운드 탈락, 2라운드 탈락 등의 성적에 그치며 플레이오프 진출 횟수에 비해 그리 큰 성과는 거두지 못한 편입니다.

 

그럼 이상으로 서설을 마치고, 본격적인 랭킹 소개에 앞서 28위 밖 선수들 중에서 나름대로 소개해줄 만한 선수들을 4명을 추려서 "Honorable Mention"이란 타이틀로 소개하고자 합니다. (28위 밖 선수들에게도 잠정적인 랭킹은 있지만 여기에서 소개하는 순서는 그 순위와는 무관하며, 그냥 시대순으로 정렬했습니다.) 타 포지션에서는 5명씩 소개했는데, 본편에서는 4명인 이유는, 랭킹 밖에 있지만 특별히 비중있게 언급해야 할 것 같은 선수가 1명 있어 따로 "Special Mention"이라는 타이틀로 소개하고자 해서입니다.




Honorable Mention


Bob Christian



ABA에서 먼저 데뷔해 잠시 뛰다가 70-71시즌에 팀에 합류한 밥 크리스챤은 세 시즌 동안 백업 센터로 활약했습니다. 


Rickey Brown


 
82-83시즌 도중 트레이드로 이적해 온 리키 브라운은 백업 빅맨으로 두 시즌 반 동안 뛴 후에 유럽에서 커리어를 보냈습니다.


Shelden Williams



듀크 대 시절 수비로 이름났던 쉘던 윌리엄스는 06 드래프트에서 전체 5번으로 지명되었으나 기대 이하의 활약만 보여주다가 마이크 비비 영입 때 새크라멘토 킹스로 트레이드되었습니다.


Mike Muscala



깔끔한 중장거리 슛을 갖춘 마이크 머스칼라는 13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에 뽑혔다가 바로 트레이드되어 온 이래, 지금까지 벤치 빅맨으로 꾸준히 활약 중입니다.




Special Mention


#_40 Jason Collier




휴스턴 로케츠에서 세 시즌을 뛰었으나 자리를 잡지 못한 제이슨 콜리어는 03-04시즌에 D-리그의 페이엇빌 패트리어츠(Fayetteville Patriots)에서 뛰다가 시즌 말미에 애틀란타 호크스와 10일 계약을 맺었습니다. 당시 호크스는 리빌딩 중이라 10일 계약자인 그에게도 제법 출장시간이 주어졌고, 그는 인상적인 활약으로 잔여 시즌 계약에 성공했죠. 그해 20경기에서 평균 11.3득점, 5.6리바운드를 기록한 그는 오프시즌에 호크스와 2년 3.2mil에 계약했습니다. 04-05시즌에 그는 44경기를 스타팅으로 출전했지만 출장시간은 13분 남짓에 불과했고, 평균 5.7득점을 올려주는 데 그쳤죠. 그는 7풋의 좋은 사이즈를 지녔고 빅맨임에도 정교한 중거리 슛 능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다만 운동능력이 그리 뛰어나진 않았고 보드 장악력과 수비력도 평범한 수준이었죠. 그런데 05-06시즌 개막을 앞두고 뜻하지 않은 불행이 이 젊은 선수에게 닥치고 말았습니다. 그는 갑작스런 심장 이상으로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안타깝게도 불과 28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죠. 이후 그가 달았던 등번호 #40은 공식적으로 영구 결번되지는 않았으나 구단 측에서는 그를 추모하는 의미로 다른 선수들이 달 수 없는 번호로 지정해 둔 상태입니다.




마이너 랭킹(28위~15위)


28위


#_6 Pero Antic



6-11, 260lbs  C  /  2시즌(14-15), 113경기 


6.3점, 3.5리바운드, 0.9어시스트, 31.4% 3점슛율


그리스의 명문 구단 올림피아코스에서 뛰던 마케도니아 출신의 베테랑 빅맨 페로 안티치는 13-14시즌을 앞두고 애틀란타 호크스와 2년 2.5mil의 계약을 체결하며 31살의 늦깎이 나이로 리그에 데뷔했습니다. 13-14시즌에 그는 주전 센터 알 호포드의 부상을 틈타 제법 출장시간을 받으며 평균 7득점에 4.2리바운드를 기록했으며, 올스타 주간 라이징 스타 챌린지에 루키 팀 멤버로 선발되기도 했지만 부상으로 출전은 못했죠. 그는 장신임에도 슈팅 레인지가 길어서 3점슛이 공격 루트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나, 그 성공률은 오락가락하는 편입니다. 그리고 허를 찌르는 과감하고 날카로운 인바운드 패스 능력을 뽐냈는데, 대 워싱턴 위저즈 전에서 알 호포드가 터뜨린 버저비터 위닝샷도 그가 만들어낸 작품이었죠. 한편 그는 14-15시즌에 3점슛 성공률이 겨우 3할에 턱걸이하는 등(30.1%) 여러 모로 한계를 드러냈고, 결국 오프시즌에 터키의 페네르바체 팀과 2년 계약을 맺으며 NBA를 떠났습니다. 




27위 


#_41 Blair Rasmussen



7-0, 250lbs  C  /  2시즌(92-93), 103경기

 

7.8득점, 4.3리바운드, 1.1어시스트, 0.6블록슛


덴버 너게츠에서 오랜 시즌 주전급 센터로 활약한 블레어 라스무센은 91-92시즌을 앞두고 삼각딜을 통해 애틀란타 호크스로 이적했습니다. 그는 7풋의 좋은 사이즈에 준수한 중거리슛 능력도 겸비하고 있었으나, 기량에 비해 연봉이 지나치게 높은 대표적인 오버페이의 사례였죠. 그는 2년 전 덴버와 7년 17.5mil의 거대 계약을 맺은 바 있는데, 지금으로 치면 거의 연간 24mil에 육박하는 엄청난 거액이었습니다. (당시는 샐러리캡이 10mil에도 채 못 미치던 시절임) 따라서 이미 백업 센터 존 콘캑에게 너무 많은 돈(6년 13.2mil)을 쓰고 있던 호크스 구단 입장에서 그의 영입은 무리수에 가까웠죠. 그는 전 시즌 덴버에서는 그나마 어느 정도 밥값을 했으나,(평균 12.5득점, 9.7리바운드) 91-92시즌에 호크스에서는 평균 9득점, 4.9리바운드에 그치며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그는 92-93시즌부터 고질적인 허리 통증에 시달리며 거의 경기에 출전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죠. 결국 그는 계약이 끝날 때 까지 세 시즌 넘게 내내 부상자 명단에만 이름을 올린 채 샐러리에 짐이 되고 말았고, 95-96시즌을 끝으로 은퇴했습니다.




26위 


#_42 / #_7 Elton Brand



6-8, 275lbs  C/PF  /  2시즌(14-15), 109경기 


4.7득점, 4.2리바운드, 0.9어시스트, 1.0블록슛(통산 11위), 51.8% 야투율


L.A 클리퍼스에서 전성기를 보낸 엘튼 브랜드는 한창 때에는 20-10을 밥 먹듯이 하던 엘리트 빅맨이었으나, 2007년에 아킬레스 건 부상을 당한 뒤로는 뚜렷한 하향세를 걸었습니다. 2012년에 필라델피아 76ers에서 사면룰로 방출된 후 달라스 매버릭스에서 한 시즌을 보낸 그는 13-14시즌을 앞두고 애틀란타 호크스와 1년 4mil의 계약을 체결했죠. 그는 13-14시즌 도중에 주전 센터 알 호포드가 부상으로 시즌-아웃되자 센터로 많은 시간을 소화하며 베테랑다운 노련함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전성기 시절의 발군의 득점력은 대부분 상실했지만 리바운드와 수비력은 여전히 쓸 만했고, 작은 키에도 빼어난 림 프로텍팅 능력을 보여주었죠. 오프시즌에 다시 호크스와 1년 4mil에 재계약한 그는 14-15시즌에는 줄어든 팀 내 비중으로 인해 인액티브 로스터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36경기 출전에 그쳤고, 시즌 종료 후 은퇴했습니다. 한편 그는 15-16시즌 도중에 베테랑을 원하는 필라델피아 76ers의 부름을 받아 현역으로 복귀했다가 이번 시즌을 앞두고 다시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25위 


#_6 / #_4 / #_33 Alex Hannum



6-7, 210lbs  C/PF  /  3시즌(55-56, 57), 161경기 


5.1득점, 4.8리바운드*, 2.1어시스트*, 20.7분 출전*


※ 56-57시즌에 호크스에서 뛴 37경기의 개별 스탯 정보가 득점, 자유투만 정확히 제공되어 있어, 그 나머지 스탯은 54-55시즌과 55-56시즌에 뛴 124경기의 값으로만 산출함


54-55시즌에 밀워키 호크스에 합류한 베테랑 빅맨 알렉스 해넘은 두 시즌 동안 백업으로 활약하다가 55-56시즌을 마치고 방출 당했습니다. 56-57시즌에 포트웨인 피스톤즈에 합류한 그는 22경기 만에 다시 방출되는 수난을 겪었으나, 다행히도 곧바로 친정팀 호크스에 재합류하게 되었죠. 그는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전형적인 블루칼라 워커로, 기량은 평범했으나 리더쉽이 뛰어나 팀원들의 신망이 두터웠습니다. 한편 잦은 감독 교체로 악명 높았던 호크스의 벤 커너 구단주는 56-57시즌 도중에 레드 홀즈먼 감독을 해임하고 슬레이터 마틴을 선수 겸 감독 자리에 앉혔으나, 선수 생활에 아직 미련이 남은 마틴은 8경기 만에 사의를 표했죠. 그러자 팀원들이 해넘을 임시 감독으로 적극 추천했고, 당장 대체자를 구할 길이 없던 커너는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남은 시즌 동안 호크스를 15승 16패로 이끈 그는 플레이오프에서 연승 행진을 달리며 감독을 맡은 첫 해에 호크스를 깜짝 파이널까지 올렸죠. 언더독 호크스는 동부의 강호 보스턴 셀틱스와 파이널에서 7차전까지 가는 치열한 명승부를 연출했습니다. 2차 연장까지 간 운명의 7차전 종료 직전, 호크스는 2점차로 뒤지고 있었고 선수들이 잇달아 6반칙 퇴장 당함에 따라 감독인 그마저 코트에 서야 했죠. 시간이 얼마 없자 그는 허를 찌르는 94피트짜리 장거리 인-바운드 패스를 던졌고, 백보드를 맞은 공은 그의 계산대로 밥 페팃의 손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페팃의 풋백이 림을 외면하며 호크스는 우승의 문턱에서 주저앉아야 했죠. 이듬해인 57-58시즌에 그는 호크스를 서부 1위(41-31)로 이끌었고, 파이널에서 다시 보스턴과 맞붙은 호크스는 리벤지에 성공하며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구단주 커너는 우승의 주역인 그를 경질하고는 앤디 필립을 후임 감독으로 앉혀버렸죠. 이후 감독으로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걸은 그는 윌트 체임벌린을 컨트롤할 수 있었던 유일한 지도자였으며, 67년에는 필라델피아 76ers를, 69년에는 ABA의 오클랜드 오크스(Oakland Oaks)를 우승으로 이끌었습니다. 그는 1998년에 감독으로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으며, 2002년에 7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24위 


#_25 Joe Meriweather



6-10, 215lbs  C  /  1시즌(77), 74경기 


11.1득점, 8.1리바운드, 1.1어시스트, 1.1블록슛, 52.6% 야투율


휴스턴 로케츠의 유망주 센터로 올-루키 퍼스트팀에 뽑힌 바 있는 조 메리웨더는 루키 시즌을 마치고 애틀란타 호크스로 트레이드되었습니다. 당시 호크스는 그를 얻기 위해 자신들이 갖고 있던 76 드래프트 1픽을 휴스턴의 9픽과 바꾸고, 빅맨 드와이트 존스까지 내주는 모험을 강행했죠. (휴스턴은 1픽으로 존 루카스를, 호크스는 9픽으로 아몬드 힐을 지명) 큰 기대를 받고 호크스에 입성한 그는 76-77시즌에 주전 센터로 기용되며 평균 11.1득점, 8.1리바운드로 어느 정도는 활약해 주었으나, 한편으로는 경기당 4.4개의 반칙을 범하며 파울-트러블로 고전했습니다. 그는 긴 팔을 보유한 깡마른 빅맨으로 기동력이 좋고 특히 블락슛 능력이 뛰어났지만, 파울 프론이라서 오랜 시간 경기에 뛸 수 없었죠. 결국 그의 활약에 성이 차지 않은 호크스 구단은 77 드래프트 1라운드에서 센터 트리 롤린스를 뽑았으며, 이어서 시즌 개막을 앞두고 1라운드 픽 하나를 받는 조건에 그를 뉴올리언스 재즈로 보냈습니다. 이후 그는 뉴욕, 캔자스시티 등지에서 뛰다가 말년에는 유럽에서 선수 생활을 마쳤죠. 은퇴 후에는 프로와 대학에서 여자 농구팀의 감독직을 역임한 그는 2013년에 5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23위 


#_34 Gene Tormohlen



6-8, 230lbs  C  /  6시즌(63-64, 66-68, 70), 271경기 


4.4득점, 4.1리바운드, 0.9어시스트, 41.1% 야투율


테네시 대학 출신의 진 토모렌은 59 드래프트 2라운드에서 시라큐즈 내셔널즈의 지명을 받았으나, NBA에서 뛰지 못하고 대신 NBIL, ABL 등 타 하부리그에서 커리어를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62-63시즌 도중에 세인트루이스 호크스와 계약하며 NBA에 첫 발을 내딛은 그는 63-64시즌을 마치고는 재계약에 실패했으나, 65-66시즌을 앞두고 트레이닝 캠프에 초청되어 다시 호크스 유니폼을 입게 되었죠. 이후 그는 3시즌 동안 백업 센터로 활약했고, 66-67시즌에는 평균 6.3득점, 5.5리바운드로 커리어-하이 활약을 펼쳤습니다. 다부진 체격으로 “Bumper(덩치)”란 별명이 붙었던 그는 리바운드가 뛰어난 수비형 빅맨이었죠. 한편 68-69시즌을 앞두고 신생팀 피닉스 선즈가 확장 드래프트에서 그를 지명하자 그는 미련 없이 은퇴한 후 어시스턴트 코치로 호크스에 재합류했고, 1년 뒤 호크스 구단이 그의 선수 권리를 사오자 69-70시즌에는 선수 겸 코치로 뛰었습니다. (2경기 출전) 그는 호크스에서 어시스턴트 코치로 있던 75-76시즌 말에 코튼 피츠시몬즈 감독이 파면되자, 남은 8경기 동안 임시 감독직을 맡아 1승 7패의 성적을 거두기도 했죠. 이후 그는 시카고 불스의 어시스턴트 코치, L.A 레이커스의 스카우트 직 등을 역임했습니다. 




22위 


#_12 / #_15 Lew Hitch



6-8, 200lbs  C/PF  /  2시즌(54-55), 129경기 


7.2득점, 9.6리바운드*, 2.0어시스트*, 34.1분 출전*


※ 54-55시즌에 호크스에서 뛴 57경기의 개별 스탯 정보가 득점, 자유투만 정확히 제공되어 있어, 그 나머지 스탯은 53-54시즌에 뛴 72경기의 값으로만 산출함


50년대 초반에 미네아폴리스 레이커스 왕조에서 두 시즌 동안 백업 빅맨으로 뛰며 두 번의 우승을 맛본 루 힛치는 53-54시즌을 앞두고 현금 트레이드를 통해 밀워키 호크스로 이적했습니다. 새로운 팀에서 그는 주전급 빅맨으로 제법 많은 출전 시간을 받으며 전 경기에 출장해 평균 8득점, 9.6리바운드를 올려 주었죠. 그는 득점력은 그리 뛰어나지 않았지만 리바운드를 잡는 능력 하나만큼은 탁월했습니다. 이듬해인 54-55시즌에 그는 밥 페팃과 척 쉐어를 두루 백업하며 벤치에서 활약하다가 시즌 도중에 바비 왓슨과 맞트레이드되어 친정팀인 레이커스로 복귀했죠. 이후 그는 레이커스, 필라델피아 워리어스 등지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며 56-57시즌까지 현역으로 뛰었습니다. 은퇴 후 그는 교사 겸 농구 코치로 아이들을 가르쳤으며, 2012년에 8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21위 


#_42 Lorenzen Wright



6-11, 225lbs  C/PF  /  4시즌(00-01, 07-08), 226경기 


6.7득점, 4.8리바운드, 0.7어시스트, 0.6블록슛


L.A 클리퍼스에서 뛰던 로렌젠 라이트는 99-00시즌을 앞두고 사인 & 트레이드를 통해 애틀란타 호크스와 7년 42mil에 계약했는데, 호크스는 그를 영입한 대가로 클리퍼스에 1라운드 픽 2개를 내주었습니다. 그는 99-00시즌에는 벤치에서 출전했으나, 00-01시즌 중반부터는 종종 주전 4번으로 기용돼 디켐베 무톰보와 더블 포스트를 이루기도 하면서 평균 12.4득점, 7.5리바운드를 올려주었죠. 그는 훌륭한 사이즈와 운동능력을 지니고 있었고, 보드 장악력과 세로 수비도 그럭저럭 괜찮은 편이었습니다. 또한 포스트 뿐 만 아니라 중거리에서도 종종 쏠쏠하게 슛을 던져줄 수 있었죠. 한편 01 드래프트에서 전체 3픽을 거머쥔 호크스는 밴쿠버 그리즐리스의 샤리프 압둘-라힘을 얻기 위해 3픽(파우 가솔 지명)과 라이트, 브레빈 나이트를 묶어서 그리즐리스로 보냈습니다. 이후 그리즐리스에서 5시즌 동안 주전급 센터로 활약한 그는 06-07시즌을 앞두고 호크스와 2년 6mil에 재계약하며 복귀했으나, 벤치를 전전하며 미미한 활약에 그쳤죠. 결국 그는 07-08시즌 도중에 마이크 비비를 영입하기 위한 카드 중 하나로 쓰이며 새크라멘토 킹스로 이적했고, 한 시즌을 더 뛴 뒤 은퇴했습니다. 그는 안타깝게도 2010년에 갑자기 실종되었다가 열흘 후 총상을 입은 변사체로 발견되어 34살의 짧은 삶을 마감했는데, 피살로 추정되는 이 사건은 아직도 영구 미제로 남아 있습니다.




20위 


#_2 / #_14 Nazr Mohammed



6-10, 221lbs  C  /  4시즌(01-04), 198경기 


8.3득점, 6.6리바운드, 0.4어시스트, 0.7블록슛


필라델피아 76ers에서 벤치를 전전하던 나지 모하메드는 00-01시즌 도중 티오 래틀리프 ⇔ 디켐베 무톰보 트레이드에 포함되어 애틀란타 호크스로 이적했습니다. 한편 당시 래틀리프는 손목 부상으로 이미 시즌-아웃된 상태였기에 무톰보가 떠난 호크스의 주전 센터 자리는 그의 차지가 되었죠. 그는 필라델피아 시절에는 출전시간이 평균 7분에도 못 미쳤으나, 호크스에서는 남은 시즌 동안 평균 25분 이상 출전하며 12.3득점, 9리바운드의 깜짝 활약을 보여주었습니다. 가능성을 인정받은 그는 오프시즌에 호크스와 5년 25mil에 재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죠. 그는 터프함이 넘치는 근성 가이로 특히 공격 리바운드를 잘 잡아주며, 대인 수비력도 준수한 편이었습니다. 다만 BQ가 그리 뛰어나지 않고 득점력도 대체로 평범한 수준이었죠. 01-02시즌에 그는 래틀리프가 불의의 엉덩이 부상으로 조기 시즌-아웃되는 바람에 다시금 주전 센터로 활약하며 평균 9.7득점, 7.9리바운드를 기록했고, 이후 래틀리프가 복귀하자 다시 벤치로 돌아갔습니다. 한편 리빌딩 실패로 전면적인 팀 개편에 나선 호크스 구단은 03-04시즌 도중 여러 빅딜을 단행했는데, 그 와중에 그 역시 삼각 딜을 통해 뉴욕 닉스로 이적했죠. 05년에는 샌안토니오 스퍼스에서 주전 센터로 활약하며 우승을 맛보기도 한 그는 디트로이트, 샬럿, 시카고 등지를 전전하며 가늘고 긴 커리어를 이어갔습니다. 그는 2015년에 은퇴를 선언했다가 지난 시즌 말에 오클라호마시티 선더와 계약하며 잠시 현역으로 복귀하기도 했습니다.




19위 


#_40 Mike Sojourner



6-9, 225lbs  C/PF  /  3시즌(75-77), 191경기 


8.7득점, 6.5리바운드, 0.9어시스트, 0.6블록슛, 48.0% 야투율(통산 20위)


마이크 소저너는 유타 대학을 2학년만 마치고 하드쉽 드래프트(대학 재학생의 조기 드래프트 신청을 허용한, 얼리 엔트리의 초기 형태)를 통해 74 드래프트에서 전체 10번으로 애틀란타 호크스의 지명을 받았습니다. 그를 뽑은 10픽은 호크스가 드래프트 얼마 전에 피트 마라비치를 뉴올리언스 재즈로 트레이드하고서 받은 여러 개의 픽 중 하나였죠. 당시 또 호크스의 주전 센터인 월트 벨라미가 뉴올리언스 재즈의 확장 드래프트에 뽑히면서 팀을 떠남에 따라, 루키인 소저너와 2년차 빅맨 드와이트 존스가 공석이 된 주전 센터 자리를 놓고 서로 경쟁했습니다. 그는 존스와 번갈아가며 스타팅으로 나오거나 때로는 함께 더블 포스트를 서면서 54경기에 주전으로 출전, 평균 11.7득점, 8.8리바운드를 기록했죠. 그는 빅맨이면서도 15피트 언저리에서 정교한 중거리슛 능력을 자랑했으며, 준수한 리바운더였습니다. 이듬해인 75-76시즌에는 존스가 붙박이 주전 센터로 자리 잡음에 따라 그는 벤치로 물러나게 되었죠. 그런데 그는 그만 안타깝게도 77-78시즌을 앞두고 연습 중에 덩크를 하다가 심각한 무릎 부상을 당하고 말았고, 설상가상으로 연이어 등 부상까지 겹치며 고작 세 시즌 만에 프로 커리어를 접어야 했습니다. 한편 그의 형인 윌라드 소저너는 ABA에서 백업 빅맨으로 활약한 바 있습니다. 




18위 


#_13 / #_14 Larry Foust



6-9, 215lbs  C  /  3시즌(60-62), 150경기 


9.1득점, 5.7리바운드*, 1.2어시스트*, 79.7% 자유투율


※ 59-60시즌에 호크스에서 뛴 25경기의 개별 스탯 정보가 득점, 자유투만 정확히 제공되어 있어, 그 나머지 스탯은 60-61시즌과 61-62시즌에 뛴 125경기의 값으로만 산출함


포트웨인 피스톤즈, 미네아폴리스 레이커스에서 활약하며 8번이나 올스타에 뽑힌 50년대의 간판 센터 래리 포우스트는 59-60시즌 도중에 척 쉐어, 닉 맨티스 등과 맞트레이드되어 세인트루이스 호크스로 이적했습니다. 한창 때 그는 걸출한 보드 장악력과 터프한 수비력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으며, 로 포스트 득점력도 준수한 편이었죠. 호크스에 와서는 이미 전성기가 지난 상태라 주로 백업으로 뛰었지만, 여전히 클래스는 남아있었기에 키 식스맨으로 호크스의 벤치를 이끌었습니다. 당시 서부의 강자였던 호크스는 그가 온 뒤로 2년 연속 파이널에 진출했지만, 아쉽게도 두 번 다 보스턴 셀틱스에게 덜미를 잡히며 준우승에 머물렀죠. 이미 3번의 준우승 경험이 있던 그는 호크스에서 마지막 불꽃을 태우며 우승을 노렸지만, 끝내 우승을 맛보지 못하고 5회 준우승에 그쳐야 했습니다. 한편 61-62시즌에 호크스는 팀 웍이 무너지며 성적이 급추락했고, 33살의 노장인 그도 결국 그 시즌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했죠. 그는 1984년에 56세를 일기로 암으로 세상을 떠났으며, 아쉽게도 명예의 전당에는 아직 입성하지 못했습니다. 




17위 


#_5 / #_15 Jack Nichols



6-7, 222lbs  C/PF  /  4시즌(50-51, 53-54), 108경기 


13.7득점(통산 10위), 7.9리바운드*, 2.7어시스트, 35.5분 출전


※ 53-54시즌에 호크스에서 뛴 15경기의 개별 리바운드 정보가 없어 이를 제외한 75경기(51, 53시즌)의 평균 리바운드 값을 산출함


49-50시즌 초반에 트라이-시티스 블랙호크스의 감독으로 부임한 레드 아워백은 시즌 도중에 장신의 주전 센터 돈 오튼을 워싱턴 캐피탈즈의 잭 니콜스와 맞트레이드 했습니다. 전 시즌에 워싱턴 감독으로 있었을 때부터 니콜스를 아꼈던 아워백은 그를 데려오기 위해 프랜차이즈 스타인 오튼을 내주는 것도 서슴지 않은 것이죠. 남은 시즌 동안 18경기에서 평균 13.1득점을 기록한 그는 앤더슨 패커스(Anderson Packers)와 맞붙은 플레이오프 1라운드 시리즈 3경기에서 평균 19.7득점을 넣으며 분전했습니다. 한편 그는 50-51시즌에 6경기만 뛰고서 해병대에 자원입대를 했는데, 2년 후인 52-53시즌에 돌아왔을 때에는 팀이 연고지를 밀워키로 옮긴 뒤였죠. 다부진 체격의 그는 오른손 훅슛이 장기였으며, 뛰어난 보드 장악력을 지닌 터프한 빅맨이었습니다. 52-53시즌에 그는 평균 15.8득점, 7.7리바운드를 기록하며 멜 헛친스와 함께 든든히 골밑을 지켰으며, 53-54시즌 초반에 보스턴에 재임 중이던 옛 스승 아워백 감독의 러브콜을 받아 선수 5명의 권리와 맞바꿔지며 호크스를 떠났죠. 이후 그는 57년에 보스턴이 우승할 때 백업 빅맨으로 활약하며 반지를 손에 넣기도 했습니다. 현역 선수 시절부터 틈틈이 치대 과정을 수료한 그는 은퇴 후에는 본격적으로 치과 의사로 활약했죠. 모교인 워싱턴 대학 및 시애틀 슈퍼소닉스의 치과 주치의를 역임하기도 한 그는 1992년에 6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16위 


#_42 Theo Ratliff



6-10, 225lbs  C  /  3시즌(02-04), 137경기 


8.5득점, 7.3리바운드, 0.9어시스트, 3.2블록슛(통산 2위), 총 436 블록슛(통산 8위)


00-01시즌에 필라델피아 76ers 소속으로 뛰며 동부지구 올스타 주전 센터로까지 뽑힌 블락슛의 달인 티오 래틀리프는 안타깝게도 시즌 도중 손목 부상을 당해 시즌-아웃되고 말았습니다. 당시 리그 1위를 질주 중이던 필라델피아는 눈앞의 우승 도전을 위해 애틀란타 호크스로부터 당대 최고의 수비형 센터 디켐베 무톰보를 영입하는 대신에 과감하게 래틀리프를 포기했죠. 반면에 한창 리빌딩 중이던 호크스는 팀의 미래를 위해 좀 더 젊고 포텐셜 있는 그를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호크스의 계획은 생각보다 쉽게 풀리지 않았죠. 부상에서 회복해 01-02시즌에 복귀한 래틀리프는 안타깝게도 시즌 초반에 엉덩이 부상을 당해 3경기만 뛰고 시즌-아웃되고 말았습니다. 1년 반을 거의 통째로 날린 채 02-03시즌에 복귀한 그는 다행히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며 평균 8.7득점, 7.5리바운드, 3.2블록슛(리그 1위)을 기록했죠. 그는 신장이 그리 크지는 않았으나 긴 윙스팬과 기막히게 정확한 블로킹 타이밍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다만 너무 블락슛에만 집착하는 경향이 강했고 보드 장악력도 다소 떨어졌기에 최고의 샷 블로커지만 최고의 수비수는 아니었죠. 또 필라델피아 시절에는 기동력도 뛰어나 속공 가담 및 받아먹기에도 능했으나, 엉덩이 부상 이후로는 기동력이 현저히 줄며 득점력도 다소 하락하고 말았습니다. 한편 당시 호크스는 샤리프 압둘-라힘, 글렌 로빈슨 등 스타 플레이어들을 여럿 데려오고도 성적이 신통치 않아 리빌딩에 난항을 겪고 있었고, 래틀리프의 영입 역시 그리 성공적이지 않아 보였죠. 결국 호크스 구단은 02-03시즌 도중에 그와 압둘-라힘을 함께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로 트레이드하며 리셋 버튼을 눌렀습니다. 이후 그는 여러 팀을 전전하며 10-11시즌까지 현역으로 뛰다가 은퇴했으며, 현재는 세미-프로리그인 WBA 소속의 로움 글라디에이터스(Rome Gladiators)의 구단주로 있습니다.




15위 


#_13 Dwight Jones



6-10, 210lbs  C/PF  /  3시즌(74-76), 215경기 


9.5득점, 7.8리바운드(통산 20위), 1.5어시스트, 0.8블록슛(통산 14위)


휴스턴 대학 출신으로 72년 뮌헨 올림픽 대표기도 했던 드와이트 존스는 73 드래프트에서 전체 9번으로 애틀란타 호크스의 지명을 받았습니다. 당시 호크스는 2년차 포워드 조지 트랩을 디트로이트 피스톤즈로 보내고서 받아온 픽으로 존스를 뽑았죠. 루키 시즌에는 4, 5번을 두루 백업한 그는 74-75시즌을 앞두고 주전 센터 월트 벨라미가 뉴올리언즈 재즈의 확장 드래프트에 뽑혀 이적함에 따라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는 루키 센터 마이크 소저너와 번갈아가며 스타팅으로 출전하거나 또는 함께 더블 포스트를 서면서 평균 10.4득점, 9.3리바운드를 올려주었죠. 그는 걸출한 운동능력을 지닌 터프한 빅맨이었으며, 특히 리바운드 솜씨가 뛰어났습니다. 75-76시즌에는 붙박이 주전으로 자리 잡은 그는 평균 10.1득점, 7.9리바운드로 전년도와 비슷한 활약을 보여주었죠. 한편 오프시즌에 그는 고향팀 휴스턴 로케츠로 이적하게 되었는데, 호크스는 존스 대신에 조 메리웨더와 거스 베일리를 받았고 로케츠와 1라운드 픽도 서로 맞바꾸었습니다. (1픽을 9픽과 맞바꾸고, 9픽으로 아몬드 힐 지명) 이후 그는 휴스턴, 시카고 등지에서 커리어를 이어갔고, 이탈리아 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마쳤죠. 그는 말년에는 심장병으로 고생하다가 2016년에 6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메이저 랭킹(14위~1위)


14위


#_28 Andrew Lang




피닉스 선즈, 필라델피아 76ers에서 뛴 바 있는 앤드류 랭은 92-93시즌을 마치고 FA가 되자 애틀란타 호크스와 6년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당시 호크스는 주전 센터를 맡아줘야 할 고액 연봉자인 블레어 라스무센이 허리 부상으로 은퇴 위기에 놓이자, 대신 랭을 영입해 그 공백을 메워보려 했죠. 93-94시즌에는 존 콘캑의 백업으로 출전한 그는 이듬해인 94-95시즌에는 콘캑을 밀어내고 주전 센터 자리를 차지하며 평균 9.7득점, 5.6리바운드, 1.8블록슛을 기록했습니다. 그는 7풋에 육박하는 좋은 사이즈에 길쭉한 팔을 지녔으며, 이를 바탕으로 한 블록슛 능력이 장기였죠. 다만 덩치에 비해 보드 장악력이 다소 아쉬웠는데, 특히 호크스와 장기계약을 맺은 후로 리바운드 수치가 현저히 떨어졌습니다. 그는 페인트 존에서 훅 슛을 즐겨 던졌으며, 가끔 중거리 슛을 쏘기도 했지만 그리 정확하진 못했죠. 95-96시즌에는 커리어-하이인 35분 전후의 출장시간을 부여받은 그는 시즌 중반까지 평균 12.9득점, 6.5리바운드, 1.7블록슛을 기록하던 중이었습니다. 하지만 호크스 구단은 이에 만족하지 않았고, 결국 트레이드 데드라인 때 그와 스퍼드 웹을 미네소타 팀버울브스로 트레이드하는 대신에 크리스챤 레이트너와 션 룩스를 데려왔죠. 이후 랭은 밀워키, 시카고 등지에서 평범하게 활약하다가 99-00시즌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했습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그는 이미 현역 시절에 전도사 자격증을 딴 바 있으며, 현재는 호크스 구단 내에서 채플린(특정 기관, 단체 등에 소속된 성직자)으로 활동 중입니다. 



 
13위


#_24 Jim Davis




짐 데이비스는 콜로라도 대학을 졸업하고 64 드래프트에서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에 4라운드 27번으로 뽑혔으나, 이내 방출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대신 3년간 하부리그인 EPBL의 선베리 머큐리즈(Sunbury Mercuries)에서 뛰다가 67-68시즌을 앞두고 세인트루이스 호크스에 입단하며 뒤늦게 NBA에 데뷔했죠. 젤모 비티의 백업으로 뛰던 그는 69-70시즌을 앞두고 비티가 ABA로 건너가 버리는 바람에 졸지에 땜빵으로 주전 센터가 되었습니다. 그는 개막전에서 깜짝 31득점을 넣는 등 기대 이상으로 비티의 공백을 잘 메워주며 제 몫을 다했죠. 다만 호크스 구단은 비티의 빈 자리를 좀 더 빅 네임으로 메꾸길 원했고, 결국 시즌 도중에 디트로이트 피스톤즈로부터 월트 벨라미를 영입했습니다. 벨라미가 오자 그는 다시 백업으로 돌아가야 했지만 시즌 전 경기에 출장해 평균 13.6득점 9.7리바운드를 기록하며 커리어-하이 시즌을 보냈고 리그에서 가장 많은 335개의 개인 파울을 기록하기도 했죠. 오프시즌에 FA가 된 그는 브레이크-아웃 시즌을 보낸 덕에 호크스와 재계약에도 성공했습니다. 그는 리바운드 능력이 뛰어났고 훌륭한 마인드를 지닌 성실한 빅맨이었죠. 이듬해인 70-71시즌에는 4, 5번을 두루 백업하며 식스맨으로 견실한 활약을 펼친 그는 71-72시즌 초반에 휴스턴 로케츠로 트레이드되며 호크스를 떠났습니다. 이후 다시 디트로이트로 트레이드 된 그는 남은 커리어를 디트로이트에서 보내며 말년에는 선수 겸 어시스턴트 코치를 지내기도 했습니다. 




12위


#_32 Jon Koncak




서던 메소디스트 대학 출신으로 84년 L.A 올림픽 대표기도 했던 7풋 센터 존 콘캑은 85 드래프트에서 전체 5번으로 애틀란타 호크스의 지명을 받았습니다. 픽 순위가 다소 높다는 우려를 받기도 한 그는 백업 센터로 20분 가량 출전해 평균 6개 안팎의 리바운드와 1개 가량의 블락슛을 기록, 수비에서는 나름 제 몫을 해줬죠. 성실하고 부지런한 빅맨인 그는 스크린, 리바운드 등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블루-칼라 워커였고, 몸빵 수비와 림 프로텍팅 능력도 제법 괜찮은 편이었습니다. 다만 간간이 중거리 슛을 던져줄 수는 있었지만 득점력은 전반적으로 많이 떨어졌으며, 파울 프론이기도 했죠. 한편 89-90시즌을 앞두고 그는 제한적인 FA가 되었는데, 놀랍게도 디트로이트 피스톤즈가 그에게 6년 13.2mil의 메가톤급 오퍼를 날렸습니다. 당시만 해도 샐러리캡이 10mil이 채 안 되던 시절이라 그의 연봉은 요즘으로 환산하면 20mil이 넘는 금액이었으니 일개 백업 센터에게는 너무나도 과한 오퍼였죠. 하지만 무엇에 홀렸는지 호크스는 이 오퍼에 매치하고 말았고, 콘캑은 마이클 조던, 매직 존슨 등 당대 슈퍼스타들과 연봉으로 어깨를 나란히 했습니다. 89-90시즌에 호크스 구단은 이미 모제스 말론이 버젓이 있음에도 비싼 돈 주고 잡은 그를 벤치에 썩혀둘 수 없어 말론과 나란히 스타팅으로 출전시켜봤으나, 여의치 않아 다시 벤치로 내려야 했죠. 이듬해인 90-91시즌에는 아예 대놓고 말론을 벤치로 내리고 그를 주전 센터로 밀어줬지만, 그는 평균 4.1득점에 4.9리바운드라는 초라한 스탯만 보여주고 말았습니다. 한때는 열심히 뛰는 모습 덕분에 팬들의 사랑을 받은 롤 플레이어였던 그는 과한 연봉 때문에 졸지에 천덕꾸러기로 전락해버렸죠. 실력에 비해 턱없이 높은 연봉 때문에 트레이드도 불가능했기에, 호크스 구단은 오랜 기간 동안 샐러리 압박 속에 그의 연봉을 떠안아야 했습니다. 결국 그는 6년의 계약기간을 다 채우고 나서야 호크스를 떠날 수 있었으며, 이후 올란도 매직에서 1년을 더 뛴 뒤 은퇴했습니다. 




11위


#_27 Zaza Pachulia




조지아 공화국 출신의 자자 파출리아는 04-05시즌을 마치고 애틀란타 호크스와 4년 16mil에 FA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그간 백업 센터로 뛰었던 그는 05-06시즌에 호크스에서 처음으로 풀타임 주전 센터 롤을 맡아 평균 11.7득점, 7.9리바운드를 올려 주었죠. 그는 이듬해인 06-07시즌에는 로렌젠 라이트와 번갈아가며 스타팅으로 출전해 평균 12.2득점, 6.9리바운드를 기록했습니다. 한편 07 드래프트에서 호크스가 3픽으로 알 호포드를 뽑음에 따라 백업으로 내려간 그는 벤치에서도 꾸준한 활약을 보여주었고, 간혹 호포드가 부상으로 빠질 때에는 땜빵 주전 롤을 잘 해냈죠. 그는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마당쇠 스타일의 빅맨으로, 특히 공격 리바운드를 잘 잡아냅니다. 다만 팔이 짧아서 블락 능력이 많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긴 한데, 대신 거칠고 끈적끈적한 대인 수비로 매치업 상대를 잘 괴롭혀주죠. 때로는 거친 파울도 서슴지 않는 더티 플레이어인 그는 보스턴 셀틱스와 맞붙은 08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케빈 가넷을 상대로 치열한 신경전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그의 득점 루트는 주로 풋백과 받아먹기지만 간간이 중거리 슛도 던질 수 있으며, 보기보다 센스가 있어서 패스와 스틸에도 능한 편이죠. 다만 운동능력과 공격 스킬이 부족해서 골밑에서 블락 당하거나 쉬운 샷을 놓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08-09시즌을 마치고 호크스와 4년 19mil에 재계약을 체결한 그는 이후로도 죽 백업 노릇을 하다가, 11-12시즌에 호포드가 흉부 근육 파열로 조기에 시즌-아웃되자 대신 스타팅 롤을 맡았습니다. 한편 12-13시즌을 마치고 다시 FA가 된 그는 밀워키 벅스와 계약하며 정든 호크스를 떠났죠. 이후 밀워키와 달라스에서 활약한 그는 이번 시즌에는 강력한 우승 후보인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에 합류하여 주전 센터로 출전 중입니다.





10위


#_10 Steve Hawes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에서 백업 센터로 활약하던 스티브 하즈는 75-76시즌을 마치고 트레이드를 통해 애틀란타 호크스에 합류했습니다. 당시 ABA가 NBA에 병합될 때 소속팀이 해체된 선수들을 대상으로 별도의 드래프트가 실시되었는데, 리그에서 뒤에서 두 번째 성적이었던 호크스는 2번픽을 손에 넣었으나 이를 포틀랜드에 넘기는 대신 올스타 출신 슈팅가드 제프 페트리와 하즈를 데려왔죠. 포틀랜드는 이 픽으로 모리스 루카스를 뽑아 77년 우승의 초석을 마련했으나, 페트리는 단 한 경기도 뛰지 못하고 무릎 부상으로 은퇴하는 바람에 호크스 관계자들을 울상 짓게 만들었습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이때 곁다리로 데려온 하즈가 오랜 시즌 호크스의 주축 센터로 활약하며 아쉬움을 조금 달래줬죠. 


호크스에 합류한 첫 해에는 부상으로 주춤했던 그는 이듬해인 77-78시즌에는 주전 센터로 자리잡으며 평균 12.7득점, 9.2리바운드를 올려주었습니다. 그는 센터임에도 훌륭한 슛 터치를 지녀 중거리 슛으로 많은 득점을 올려주었으며, 자유투도 정확했죠. 또한 리바운드에 늘 부지런히 참여했고 패싱 능력도 괜찮은 편이었습니다. 당시 호크스에는 슛이 좋은 하즈와 수비가 뛰어난 트리 롤린스, 두 센터를 서로 맞춤형으로 번갈아가며 가동할 수 있었죠. 79-80시즌에 그는 롤린스와의 주전 경쟁에서 밀려나 벤치로 물러났으나, 80-81시즌에 롤린스가 무릎 부상으로 주춤하자 다시 스타팅으로 올라서며 평균 12득점, 7.6리바운드를 기록했습니다. 한편 오프시즌에 FA가 된 그에게 고향팀 시애틀 슈퍼소닉스가 다년 계약을 오퍼했으나, 호크스가 이를 매치함에 따라 잔류하게 되었죠. 하지만 그는 다시 롤린스에게 밀려나 백업 신세가 되었으며, 결국 82-83시즌 도중에 삼각 딜을 통해 시애틀로 이적했습니다. 그는 은퇴 후 시애틀에서 어시스턴트 코치를 지냈으며, 이후 대학 및 고교에서 코치직을 역임했죠. 한편 현재 샬럿 호네츠에서 뛰고 있는 스펜서 하즈가 바로 그의 조카입니다.




9위


#_2 Moses Malone




세 차례나 시즌 MVP를 차지하며 한 시대를 호령했던 레전드 센터 모제스 말론은 88-89시즌을 앞두고 애틀란타 호크스와 3년 4.67mil에 FA 계약을 맺었습니다. 당시 말론은 비록 전성기는 조금 지나 있었지만 여전히 20-10은 충분히 올려줄 수 있는 올스타 센터였죠. 그동안 호크스의 주전 5번 자리는 수비형 센터 트리 롤린스의 몫이었는데, 호크스는 FA가 된 롤린스와의 재계약을 포기하는 대신에 말론에게 과감한 오퍼를 던졌습니다. 88-89시즌에 그는 평균 20.2득점, 11.8리바운드로 명불허전의 활약을 펼쳤으며, 12년 연속 올스타 선발 기록을 이어갔죠. 하지만 호크스는 말론의 가세에도 불구하고 주전 4번인 케빈 윌리스가 부상으로 시즌을 통째로 빠지는 등의 악재 속에 전년도 성적(50승)에서 2승을 더 거두는 데 그쳤습니다. 


그는 신체조건이나 운동능력은 그리 뛰어나지 않았지만 파워, 민첩성, 투지, 근성으로 골밑을 주름잡으며 보드를 장악했죠. 특히 그는 공격 리바운드의 달인이었는데, 자신이 실패한 슛을 기어코 다시 잡아내 풋-백 득점을 올리는 데 능했습니다. 그는 항상 저돌적으로 골밑을 공략하며 어떻게든 득점을 우겨넣었으며, 파울 유도에도 장인이었죠. 다만 호크스에서 뛰던 당시에는 나이도 들고 무릎 상태도 그리 좋지 못해 전성기 시절의 포스는 못 보여줬습니다. 89-90시즌에 그는 팀에서 오프시즌에 거액을 주고 재계약한 백업 센터 존 콘캑을 주전으로 기용하는 바람에 엉겁결에 잠시 스타팅 4번으로 뛰어야 했는데, 이 빅 라인업이 여의치 않게 되자 다시 주전 센터 자리로 돌아왔죠. 그 시즌에 그는 평균 18.9득점, 10리바운드로 다소 주춤한 모습을 보였으며, 연속 올스타 선발 행진도 마감해야 했습니다. 90-91시즌에는 급기야 신임 밥 와이스 감독이 그를 14경기 만에 백업으로 내리고 대신 콘캑을 주전으로 내세우고 말았죠. 그는 비록 기량이 좀 떨어졌어도 콘캑보다는 여전히 뛰어난 센터였지만, 벤치행의 수모를 당하며 우울하게 시즌을 마쳤습니다. 이후 그는 오프시즌에 밀워키 벅스와 계약하며 호크스를 떠났고, 94-95시즌까지 현역으로 뛰다가 은퇴했죠. 그는 2001년도에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으며, 2015년에 심장 마비로 6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8위


#_15 / #_14 Don Otten




※ NBL에서 뛴 168경기의 스탯은 득점, 자유투만 집계하였고, 나머지 스탯은 NBA에서 뛴 127경기 이내에서 집계하였음.


볼링 그린 주립대 출신의 돈 오튼은 당시 보기 드문 장신 센터로, 6-11에 육박하는 그를 당시 사람들은 “7풋 센터”로 인정해 주었습니다. 1940년대 들어서 대학 농구 무대에 6-10이 넘는 초장신 선수들이 속속히 등장해 골밑을 지배했는데, 오튼을 비롯해 드폴 대학의 조지 마이칸, 오클라호마 주립대의 밥 컬랜드 등이 대표적이었죠. 이들이 키를 무기로 상대의 슛이 골대에 들어가기도 전에 족족 쳐내버리자, 1944년에 드디어 “골 텐딩”이라는 룰이 생겨났습니다. 1946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프로 리그인 NBL의 버팔로 바이슨즈(이후 트라이-시티스 블랙호크스로 팀 개명)에 입단한 그는 루키임에도 높이를 앞세워 평균 12.9득점을 넣으며 팀 공격을 이끌었죠. 이듬해인 47-48시즌에 그는 평균 13.7득점(총 득점 리그 2위, 824점)을 기록하며 올-NBL 세컨드 팀에 뽑혔고, 블랙호크스를 서부 디비전 결승까지 올려놓았습니다. 그는 마이칸 만큼의 파워와 운동능력은 갖추지 못했지만 특유의 높이를 앞세워 자신보다 작은 여타 빅맨들을 제압할 수 있었으며, 탁월한 훅 슛으로 꾸준히 득점을 올려주었죠. 


한편 48-49시즌을 앞두고 조지 마이칸의 미네아폴리스 레이커스를 비롯해 로체스터 로얄즈, 포트웨인 피스톤즈 등 NBL의 명문 구단들이 BAA(NBA의 전신)로 넘어가 버리자, 마이칸이 떠난 NBL에서 오튼은 졸지에 리그 No.1 센터가 되었습니다. 그는 48-49시즌에 득점왕(평균 14득점), 올-NBL 퍼스트팀에 시즌 MVP까지 등극했지만, 라이벌 마이칸이 없어서 거둔 영광이라 다소 씁쓸했죠. 결국 NBL은 BAA에 흡수되어 새로이 NBA라는 리그가 출범했고, 자연히 블랙호크스도 NBA로 옮겨갔습니다. 새 리그에서 오튼은 첫 해에 다소 황당한 기록을 남겼는데, 대 쉐보이건 레드스킨스(Sheboygan Red Skins) 전에서 동료들이 잇달아 6반칙 퇴장을 당해 교체 선수가 아무도 남지 않게 되자 그는 6번째 반칙을 하고도 계속 코트에서 뛸 수 밖에 없었고, 결국 한 경기에 8개의 반칙을 저지르는 진기록을 세웠죠. 그해 46경기에서 평균 12.1득점을 넣어 주던 그는 시즌 도중에 워싱턴 캐피탈즈의 잭 니콜스와 트레이드되어 블랙호크스를 떠났습니다. 이후 그는 포트웨인 피스톤즈 소속으로 있다가 51-52시즌 초반에 백업 센터로 밀려난 후 방출되자, 밀워키로 연고지를 옮긴 친정팀 호크스로 돌아와 주전 센터로 활약했죠. 이듬해인 52-53시즌, 본래 주전 센터였던 니콜스가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오자 다시 벤치로 돌아간 그는 백업으로 24경기만 뛴 후 은퇴했습니다. 한편 그의 동생 맥 오튼도 49-50시즌 초반에 형과 함께 블랙호크스에서 잠시 뛴 바 있죠. 그는 1985년에 6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7위


#_34 Clyde Lovellette




미네아폴리스 레이커스 시절 두 차례 올스타에 뽑힌 바 있는 엘리트 센터 클라이드 로벨럿은 신시내티 로얄즈에서 뛰다가 57-58시즌을 마치고 세인트루이스 호크스로 트레이드되었습니다. 당시 호크스는 그를 영입하기 위해 웨인 엠브리를 비롯해 5명의 드래프트 지명자의 권리를 로얄즈에 내주었죠. 58-59시즌에는 척 쉐어를 백업하며 벤치에서 식스맨으로 출전한 그는 22분 가량만 뛰면서도 평균 14.8득점, 8.6리바운드의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습니다. 이듬해인 59-60시즌에는 쉐어를 밀어내고 주전 자리를 확보한 그는 밥 페팃, 클리프 헤이건과 더불어 막강한 프론트 코트를 구축했죠. 당시 이 트리오는 로벨럿(20.8득점-10.6리바운드)을 비롯해 페팃(26.1득점-17리바운드), 헤이건(24.8득점-10.7리바운드)까지 모두 평균 20-10을 기록했습니다. 그 중 로벨렛은 출전 시간이 30분이 채 되지 않았음에도(평균 28.7분) 그만큼의 스탯을 찍어주며 올스타에도 선발되었죠. 호크스는 이들의 골밑 파워를 앞세워 파이널까지 진출했지만, 아쉽게도 라이벌인 보스턴 셀틱스와 7차전까지 가는 접전을 벌인 끝에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빅맨이지만 부드러운 슈팅 터치를 지니고 있던 로벨렛은 상대 센터를 외곽으로 끌어낼 수 있는 능력이 있었고 자유투도 정확했는데, 특히 호크스에서 뛰던 시절에는 80%를 상회하는 자유투 성공률을 뽐냈죠. 또한 그는 페인트 존에서 뿐만 아니라 18피트 너머 중거리에서도 꽂아 넣을 수 있는 긴 레인지의 훅 슛을 필살기로 구사했는데, 얼핏 원-핸드 세트슛처럼 보일 정도로 폼이 독특하고 괴랄했습니다. 그는 신장은 그리 크지 않았으나 워낙에 힘과 등빨이 좋아서 리바운드 싸움에서도 상당한 위력을 보여주었죠. 한편 그는 거친 파울도 서슴지 않는 더티 플레이로 악명을 떨쳤는데, 코트에서 좀처럼 폭력을 쓰지 않는 윌트 체임벌린에게 주먹으로 얻어맞은 유일한 선수기도 합니다. 그는 더러운 성질을 코트 안에서 뿐만 아니라 밖에서도 종종 부리곤 했는데, 특히 시휴고 그린, 클레오 힐 등 같은 팀의 흑인 동료 선수들을 노골적으로 괴롭혔죠. 60-61시즌에도 그는 평균 20-10 이상(22득점, 10.1리바운드)을 기록하며 2년 연속 올스타에 뽑혔으나, 이듬해인 61-62시즌에는 발꿈치 부상에 시달리며 40경기 출전에 그쳤습니다. 한편 그는 오프시즌에 현금 트레이드를 통해 보스턴 셀틱스로 이적했으며, 이후 빌 러셀의 백업 센터로 두 시즌 간 뛰면서 두 번의 우승을 더 맛보기도 했죠. 은퇴 후에 그는 고향인 인디애나 주에서 보안관으로 활동하다가 이후 불우 청소년을 돕는 교육 사업에 헌신했습니다. 그는 1988년에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으며, 2016년에 86세를 일기로 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6위


#_13 / #_5 / #_70 Chuck Share




※ 59-60시즌에 호크스에서 뛴 38경기의 개별 스탯 정보가 득점, 자유투만 정확하게 제공되어 있어, 그 나머지 스탯은 58-59시즌까지 뛴 404경기의 값으로만 산출함


50년대 대표적인 몸빵 센터 중의 한 명이었던 척 쉐어는 포트웨인 피스톤즈 소속이던 53-54시즌 도중에 맥스 자슬로프스키와 맞트레이드되어 밀워키 호크스의 유니폼을 입었습니다. 곧바로 호크스의 주전 센터로 자리 잡은 그는 남은 47경기에서 더블-더블(평균 11.2득점, 10.5리바운드)의 활약을 펼쳤죠. 이듬해인 54-55시즌에 슈퍼 루키 밥 페팃이 팀에 합류했는데, 대학 시절 센터를 보았던 페팃은 베테랑 쉐어가 센터로 자리잡고 있었기에 포지션을 파워포워드로 변경하게 되었습니다. 55-56시즌에는 평균 13.6득점, 10.8리바운드로 커리어-하이의 활약을 펼친 그는 이후로도 팀의 주전 센터로서 든든한 존재감을 보여주었죠. 7풋에 육박하는 사이즈를 자랑한 그는 당시에는 리그에서 최고의 거구 중 한 명이었으며, 훗날 윌트 체임벌린도 그의 사이즈 하나는 인정한 바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큰 덩치를 바탕으로 리바운드와 골밑 수비에서 발군의 활약을 펼쳐주었으며, 팀을 위해 골밑에서 온갖 궂은일을 도맡았죠. 그는 강력한 스크린으로 동료들의 손쉬운 득점을 도와주었고, 간간이 포스트에서 훅슛으로 득점도 올려주곤 했습니다. 다만 워낙에 피지컬한 플레이를 일삼다보니 파울 트러블에 자주 걸려서 경기당 많은 시간을 소화하진 못했죠. 


56-57시즌에 파이널에 진출해 보스턴 셀틱스와 7차전 접전을 벌인 끝에 아쉽게 패한 호크스는 이듬해인 57-58시즌에 보스턴을 상대로 리벤지에 나섰고, 그는 팀의 주장으로서 리더쉽을 보여주며 동료들을 잘 이끌었습니다. 결국 호크스는 58 파이널에서 보스턴을 4-2로 꺾으며 전년도의 패배를 설욕, 프랜차이즈 첫 우승의 위업을 이룩했죠. 한편 그는 부상을 모르는 철인으로 4시즌 연속 전경기에 출장하는 등 346경기 연속 출장으로 프랜차이즈 기록을 가지고 있었는데, 59-60시즌 개막을 앞두고 그만 부상을 당하며 아쉽게 기록을 마감했습니다. 그해 부상으로 신음하며 현저한 하락세는 보인 그는 결국 시즌 도중 미네아폴리스 레이커스로 트레이드되어 잠시 뛴 후 현역 생활을 마쳤죠. 은퇴 후에 그는 사업가로 변신해 컨테이너 제조 회사를 운영했으며, 2012년에 8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5위


#_8 Walt Bellamy




60년대에 4번이나 올스타에 뽑힌 바 있는 스타 센터 월트 벨라미는 디트로이트 피스톤즈 소속이던 69-70시즌 도중에 애틀란타 호크스로 이적했습니다. 당시 그는 피스톤즈에서 실망스러운 플레이와 불성실한 태도로 눈 밖에 나며 벤치로 밀려난 신세였죠. 한편 호크스는 오프시즌에 간판 센터 젤모 비티가 ABA로 넘어가버리는 충격을 맛보았지만, 그나마 시즌 도중 벨라미를 거의 현금 트레이드로 데려옴으로써 그 공백을 어느 정도 메울 수 있었습니다. 동부 꼴찌 피스톤즈를 벗어나 서부 수위권인 호크스로 합류하여 신이 난 그는 이내 경기력을 회복, 남은 23경기 동안 주전 센터로서 평균 15.5득점, 13.5리바운드를 올려주었죠. 그 후 그는 4시즌 더 호크스의 주전 센터노릇을 해줬는데, 비록 전성기 시절만큼의 득점력은 보여주지 못했지만 거의 매 시즌 두 자릿수를 웃도는 리바운드를 잡아주면서 골밑에서 톡톡히 공헌해줬습니다. 


루키 시즌에는 평균 31득점 19리바운드를 기록했을 정도로 재능 있는 센터였던 그는 7풋에 육박하는 거구임에도 뛰어난 기동성과 빠른 몸놀림을 바탕으로 당대 빅맨 중 최고의 픽 & 롤 마무리 능력을 자랑했죠. 또한 포스트와 중거리를 가리지 않고 다양하게 득점을 올릴 수 있었으며, 받아먹기 득점에도 도사였습니다. 특히 그는 훌륭한 신체 능력을 바탕으로 한 보드 장악력이 일품이었고, 워낙에 강골이라 부상으로 빠지는 일도 거의 없었죠. 다만 근성과 열정이 부족해 타고난 재능을 다 발휘하지 못했고, 종종 무성의한 플레이로 코칭 스태프와 팬들의 머리를 아프게 했습니다. 이러한 태도 문제 때문에 그는 전성기 시절에도 자주 트레이드의 도마에 올라야 했으며, 갖은 구설수에 시달렸죠. 그래도 그는 호크스에서 뛸 적에는 비교적 안정된 모습을 보여주며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다 해 주었고, 71-72시즌에는 평균 18.6득점, 12.8리바운드, 54.5%의 야투율(리그 3위)로 호크스 합류 후 가장 좋은 활약을 펼쳤습니다. 한편 그는 73-74시즌을 마치고 신생팀 뉴올리언스 재즈의 확장 드래프트에 뽑혔는데, 멀쩡히 호크스에서 잘 뛰다가 별안간 신생팀으로 가게 된 것에 한사코 불만을 터뜨렸죠. 결국 그는 재즈에서는 1경기만 뛴 채 방출 당하고 말았으며, 이후 그대로 선수 커리어를 접었습니다. 본래 정치와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은퇴 후 인종차별 철폐를 표방하는 인권단체인 NAACP에서 활동했죠. 그는 1993년에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으며, 2013년에 7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4위


#_30 Wayne “Tree” Rollins




클렘슨 대학을 졸업한 트리 롤린스는 77 드래프트에서 전체 14번으로 애틀란타 호크스의 지명을 받았습니다. 1, 2년차 때에는 주로 스티브 하즈의 백업으로 출전한 그는 20분 초반대의 출전 시간에도 경기당 3개 안팎의 블락슛을 선보였는데, 이는 리그에서 Top3 안에 랭크될 정도로 인상적인 수치였죠. 3년차 때인 79-80시즌에 하즈와 치열한 주전 경쟁을 벌인 그는 끝내 스타팅 자리를 굳히며 평균 8.9득점, 9.4리바운드, 3블록슛(리그 3위)를 기록했습니다. 80-81시즌에는 무릎 부상으로 고전한 그는 이후 잠시 하즈에게 주전 자리를 내줬다가 이내 되찾아왔죠. “트리(Tree)”라는 별명에 걸맞게 막강한 높이와 덩치를 자랑한 그는 당대 최고의 림 프로텍터 중 한 명이었고 몸빵 수비에도 능했으며 보드 장악력도 수준급이었습니다. 다만 공격력이 빈약하고 기동성이 떨어졌으며, 너무 블락에만 집착하다가 파울-트러블에 걸리는 일도 잦았죠. 


첫 풀타임 주전이 된 82-83시즌에 그는 평균 7.8득점, 9.3리바운드에 리그 최고인 4.3개의 블록슛을 기록하며 올-디펜시브 세컨드 팀에 선정되었습니다. 한편 보스턴 셀틱스와 맞붙은 그 해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그는 보스턴의 가드 대니 에인지와 시비가 붙어 서로 코트 위에서 뒤엉키며 몸싸움을 벌였는데, 이때 그가 에인지의 손가락을 물어 다섯 바늘을 꿰매는 상처를 입혔죠. 그러자 다음날 보스턴 헤럴드 지에 “Tree Bites Man. (나무가 사람을 물었네.)”라는 기사가 헤드라인으로 실렸고, 그는 결국 다음 시즌 5경기 출장정지의 징계를 받았습니다. 83-84시즌에 그는 블락슛계의 신성 마크 이튼(평균 4.3개)에게 밀려 평균 블락슛 리그 2위(3.6개)에 그쳤으나, 대신 올-디펜시브 퍼스트 팀에 등극하며 최고의 골밑 수비수로서의 자존심을 지켰죠. 이후로도 그는 꾸준히 호크스의 골밑을 지켰으나, 기량이 약간 내리막을 걸으며 더 이상 디펜시브 팀 및 리그 블록슛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한편 87-88시즌을 끝으로 FA가 된 그는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와 계약하며 11년간 정든 호크스를 떠났고, 호크스 구단은 그 대신에 모제스 말론을 FA로 영입해 주전 센터 자리를 채웠죠. 그는 호크스에서 오랫동안 뛴 덕에 여러 누적 부문에서 상위권에 올라있는데, 특히 통산 블록슛과 개인 파울 부문에서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는 94-95시즌까지 현역으로 뛰다가 은퇴했으며, 이후 NBA 및 하부리그 등지에서 주로 어시스턴트 코치로 활약했죠. 그는 2015년까지 WNBA의 시카고 스카이(Chicago Sky)에서 어시스턴트 코치로 재임하다가 건강이 좋지 못해 사임했습니다.




3위


#_31 / #_14 Zelmo Beaty




흑인들만 다니는 프레리 뷰 A&M 대학을 나온 젤모 비티는 무명대 출신임에도 62 드래프트에서 전체 3번으로 세인트루이스 호크스의 지명을 받았습니다. 루키 시즌에 그는 처음에는 벤치에서 출전했으나 점차 두각을 보이면서 주전으로 올라섰고, 평균 10.2득점, 8.3리바운드를 올리며 올-루키 퍼스트팀에 선발되었죠. 커리어 초반에는 파울-트러블로 고생하기도 했던 그는 이후 매년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며 점차 엘리트 급 센터로 성장해 갔습니다. 키가 6-9에 불과한 그는 당시로서도 언더사이즈 센터였으나, 윌트 체임벌린, 빌 러셀 등 당대의 탑 센터들에게도 두려움 없이 맞섰죠. 그는 신장에서 오는 핸디캡을 탁월한 운동능력과 탄력, 그리고 어마어마한 투지와 집념으로 극복해냈습니다. 그는 15피트 안팎에서 매우 정확한 중거리 슈팅 능력을 바탕으로 상대 센터를 밖으로 끌어낼 수 있었으며, 자신보다 더 큰 상대들과의 리바운드 싸움에서 결코 물러서지 않았죠. 특히 거친 파울도 서슴지 않는 터프하고 끈적한 그의 수비력은 윌트 체임벌린마저 인정할 정도였습니다. 


64-65시즌을 끝으로 레전드 밥 페팃이 은퇴하자 명실상부한 호크스의 넘버원 빅맨이 된 그는 65-66시즌에 평균 20.7득점, 13.6리바운드를 기록하며 생애 첫 올스타에도 선발이 되었죠. 이듬해인 66-67시즌에는 무릎 부상으로 잠시 주춤했던 그는 67-68시즌에 다시 평균 20-10 이상을 기록하며(21.1득점, 11.7리바운드) 올스타 라인업에 복귀했고, 호크스를 당시 프랜차이즈 최다인 56승으로 이끌었습니다. 한편 68-69시즌에 호크스는 프랜차이즈를 애틀란타로 이전했는데, 불행하게도 새 연고지와 비티의 인연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죠. 당시 호크스는 리그에서 가장 짠돌이 구단이었고, 에이스인 그의 연봉도 3만 7천불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NBA의 라이벌 리그였던 ABA가 선수 수급을 위해 박봉에 허덕이던 NBA 스타들에게 거액을 오퍼하기 시작했고, 비티 역시 그 타겟이 되었죠. ABA의 L.A 스타스(L.A Stars, 훗날 유타 스타스)는 그에게 매년 25만불 이상의 연봉을 줄 수 있다고 큰 소리 쳤고, 결국 그는 그 제안을 받아들여 NBA를 등지고 ABA로 떠나버렸습니다. (최종 계약한 연봉은 그 절반인 4년 50만불 정도였는데, 그래도 원래 NBA에서 받은 연봉의 3배가 넘었죠.) 그는 릭 배리와 더불어 NBA의 스타 플레이어이면서 커리어 도중에 ABA로 넘어간 대표적인 케이스로 손꼽히죠. 두 리그간의 협의에 따라 1년을 통으로 쉬고 70-71시즌부터 ABA에서 뛴 그는 그해 유타 스타스(Utah Stars)를 리그 우승으로 이끌며 플레이오프 MVP까지 차지했습니다. 이후로도 그는 스타스의 간판스타로 활약하며 팀을 꾸준히 강호로 이끌었고, 홈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The Franchise”라는 영광스런 별명을 얻기도 했죠. ABA와의 계약이 끝나자 다시 NBA로 컴백한 그는 L.A 레이커스에서 1시즌을 보낸 뒤 74-75시즌을 끝으로 은퇴했습니다. 이후 그는 재무 설계사,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했으며, 2013년도에 암으로 인해 73세를 일기로 타계했죠. 그는 2016년에 베테랑 위원회의 추천으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기도 했습니다.




2위


#_55 Dikembe Mutombo




덴버 너게츠에서 수비형 센터로 이름을 떨치던 디켐베 무톰보는 95-96시즌을 마치고 FA가 되자 애틀란타 호크스와 5년 50mil이라는 당시로선 거액의 금액에 사인했습니다. 당시 호크스는 무톰보 영입 및 스티브 스미스 재계약을 위해 주전 포워드인 스테이시 오그먼, 그랜트 롱을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에 픽만 받고 넘기는 등 과감한 행보를 보여줬죠. 96-97시즌에 무톰보의 합류로 골밑 수비의 기틀을 잡은 호크스는 전년 대비 10승이나 향상된 56승을 거두고 팀 평균 실점을 8점 가까이 낮추는 등 무톰보 효과를 톡톡히 봤습니다. 그 해 평균 13.3득점, 11.6리바운드(리그 2위), 3.3블록슛(리그 2위)을 기록한 그는 올-디펜시브 퍼스트 팀에 오르고 “올해의 수비수” 상도 받았죠. 당시 호크스는 무키 블레이락-스티브 스미스-크리스챤 레이트너-무톰보가 포진한 발란스 넘치는 호화 라인업이었지만, 아쉽게도 플레이오프 동부 세미파이널에서 69승의 시카고 불스의 벽을 넘지 못하고 탈락하고 말았습니다. 이듬해인 97-98시즌에 호크스는 50승으로 전년에 비해 다소 주춤했으나 무톰보는 여전히 최고의 수비수로 위력을 떨쳤죠. 평균 13.4득점, 11.4리바운드(리그 4위), 3.4블록슛(리그 2위)을 기록한 그는 2년 연속 “올해의 수비수” 상을 차지했으며, 올-NBA 서드팀에도 선발되었습니다.


그는 센터 수비의 최고 덕목인 보드 장악력, 림 프로텍팅, 포스트 수비의 삼박자를 두루 갖춘 흠결 없는 최고의 수비수였죠. 7-2의 큰 키에 어마어마한 윙스팬을 바탕으로 한 그의 블락슛 앞에 어지간한 돌파는 쉽사리 저지당하고 말았습니다. 특히 그는 상대를 블락한 뒤에 손가락을 까닥하며 어림없다는 제스쳐를 취하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나중에 리그에서는 이 행위가 도발에 가깝다며 금지시키기도 했죠. 또한 그는 열정적인 리바운더였고 특히 수비 리바운드 단속에 능했는데, 블록슛이 장기인 선수들이 너무 블록에 집착하느라 리바운드를 등한시 하는 나쁜 경향은 그에게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다만 강력한 수비력에 비해 공격력은 다소 부족했는데, 포스트 무브가 너무 뻣뻣하고 훅 슛 마무리로만 일관하는 등 패턴이 단순했으며, 슈팅 레인지도 짧았죠. 또 코트 비전이 좋지 못해 동료들에게 피딩해주는 능력도 거의 없었습니다. 

이후로도 그는 변함없이 호크스의 포스트를 잘 지켜주었으나, 팀은 99-00시즌부터 이상한 리빌딩을 하면서 성적이 곤두박질쳤죠. 그해 그는 평균 14.1리바운드를 기록하며 리그 리바운드 왕까지 차지했지만, 팀 성적이 받쳐주질 못하며 올-디펜시브 팀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결국 다시금 대대적인 팀 재편에 나선 호크스는 00-01시즌 도중에 여전히 리그 리바운드 1위를 달리던 그를 동부의 강호 필라델피아 76ers로 트레이드하는 대신에, 부상으로 시즌-아웃된 올스타 센터 티오 래틀리프를 비롯해 토니 쿠코치, 나지 모하메드 등을 받았죠. 남은 시즌을 필라델피아에서 보낸 그는 그해 “올해의 수비수”로 뽑혔고, 팀의 파이널 진출에도 크게 공헌했습니다. 이후 그는 부상과 노쇠화로 다소 주춤했지만 꾸준히 긴 커리어를 이어갔고, 말년에는 휴스턴 로케츠에서 뛰다가 09년 플레이오프 도중에 무릎 부상을 당해 42살의 나이로 은퇴했죠. 콩고 민주공화국 출신인 그는 가난한 조국의 동포들을 위해 무료로 병원을 세워주는 등 온갖 선행을 실천하며 “콩고의 성자”라는 별명을 얻었고, 만인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죠. 여전히 활발하게 사회 활동에 헌신 중인 그는 2015년도에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으며, 그의 등번호 #55도 같은 해에 호크스에서 영구 결번되었습니다.  




1위


#_15 Al Horford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으로 플로리다 대학의 2년 연속 NCAA 우승의 주역이기도 했던 알 호포드는 07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전체 3번으로 애틀란타 호크스의 지명을 받았습니다. 당시 호크스는 3픽 이내에 들지 못하면 1라운드 픽을 피닉스 선즈에 내줘야 하는 상황이었으나, 운 좋게도 3픽에 당첨되며 그를 뽑을 수 있었죠. 그는 루키 시즌부터 팀의 붙박이 주전 센터로 자리 잡으며 평균 10.1득점, 9.7리바운드를 올려주었고, 올-루키 퍼스트 팀에 선발되었습니다. 그간 긴 암흑기를 거쳤던 호크스 구단은 호포드 지명과 베테랑 마이크 비비 영입 등으로 전환점을 맞이하며 리빌딩을 성공적으로 이끌게 되었죠. 이듬해인 08-09시즌에도 그는 변함없이 꾸준한 활약으로 팀 승리에 기여했으나, 플레이오프에서는 불의의 발목 부상으로 고전하기도 했습니다. 3년차 때인 09-10시즌에 그는 공격 면에서 한층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며 생애 첫 올스타에 선발되었고, 오프시즌에는 호크스와 5년 60mil에 연장계약도 체결했죠. 그리고 이듬해인 10-11시즌에 그는 평균 15.3득점, 9.3리바운드, 55.7%의 야투성공률(리그 5위)로 솔리드한 활약을 펼치며 2년 연속 올스타에 뽑히고 올-NBA 서드팀에도 등극했습니다. 


그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다채로운 공격 기술을 지닌 효율성 높은 득점원이죠. 그는 미드-레인지에서 매우 정확한 슈터이며, 페인트 존 내에서도 특유의 유연성과 영리함을 바탕으로 능구렁이처럼 골을 넣어줄 수 있습니다. 또한 종종 페이스-업으로 돌파할 때의 움직임은 마치 가드처럼 날카롭고 부드럽기도 하죠. 그는 수비 시에는 센터 치고 다소 작은 키 때문에 높이에 한계를 드러내기도 하지만, 본래 부지런한 리바운더였으며 무시 못 할 슛 블로커이기도 합니다. 이런 그의 플레이 스타일과 사이즈 때문에 그에게는 4번 포지션이 더 적합하다는 평을 많이 받았으나, 소속팀 사정으로 인해 줄곧 5번 포지션에서 뛰어왔죠. 한편 탄탄할 것만 같았던 그의 커리어는 11-12시즌에 암초를 만나고 말았습니다. 그는 흉부 근육 파열로 인해 시즌의 대부분을 결장해야 했고, 플레이오프 때 겨우 복귀했으나 팀의 1라운드 탈락을 막지는 못했죠. 이듬해인 12-13시즌에 그는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며 평균 17.4득점, 10.2리바운드로 활약했으나, 13-14시즌에 다시 흉부 근육 파열 재발로 조기에 시즌을 마감해야 했습니다. 같은 부위에 연달아 당한 큰 부상은 그의 플레이스타일에도 영향을 끼쳤는데, 이후 그는 골밑에서 예전처럼 적극적으로 경합하지 못하며 보드 장악력이 많이 떨어지고 말았죠. 


14-15시즌에 호크스는 60승을 거두며 정규 시즌에 동부 지구 1위에 올랐고, 그는 다른 주전 셋(제프 티그, 카일 코버, 폴 밀샙)과 함께 나란히 올스타에 올랐습니다. 또한 호크스가 1월 달에 전승(17승)을 거둠에 따라, 그를 비롯한 호크스의 주전 5인방이 모두 동부 지구 “이 달의 선수”로도 뽑혔죠. 이듬해인 15-16시즌에도 올스타에 선발된 그는 3점슛을 본격적으로 공격 옵션에 추가하기도 했습니다. 한편 오프시즌에 비제한적 FA가 된 그는 호크스와의 재계약이 여의치 않자 결국 9년간 몸담은 친정팀을 떠나 보스턴 셀틱스와 4년 113mil의 계약을 체결하여 이번 시즌부터는 보스턴의 주전 센터로 활약 중이죠. 한편 그의 부친 티토 하워드는 7-1의 장신으로 NBA에서 세 시즌을 뛴 바 있으며,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으로는 첫 NBA 리거이기도 합니다.




종합 랭킹





Epilogue


이번 센터편의 1위 선정은 다른 포지션과 다르게 논란이 많을 거라고 예상합니다. 아마도 무톰보가 1위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다수일 텐데, 호포드가 그를 제치고 1위를 차지한 것에 대해 많이 의아해 하실 듯 같네요. 저 역시 오랜 고민을 했습니다. 무톰보가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호크스에서 보여준 최강의 수비포스는 여전히 기억에 선하니까요. 다만 호포드가 지난 9년간 호크스에서 남긴 족적 역시 훌륭했고, 비록 임팩트는 무톰보만 못해도 그 꾸준함은 높게 평가해야 한다고 봅니다. 수비 공헌도에서는 단연 무톰보의 우위지만, 공격 공헌도에서는 호포드가 앞서며 또 그가 끼친 수비 공헌도 그리 적지 않았죠. 지금이야 리바운드도 제대로 못 잡지만 한창 때 호포드는 득점, 리바운드, 피딩, 수비까지 흠잡을 데가 별로 없는 팔방미인이었고, 그가 있던 시절 호크스는 매년 플레이오프에 갔으며, 애틀란타로 연고지를 옮긴 후 최고의 한 해였던 14-15시즌에 팀을 이끈 주역이기도 합니다.


아마 지난 오프시즌에 호포드가 친정팀을 떠나며 눈살 찌뿌려 지는 모습을 보여준 것에 정이 떨어진 팬 분들도 많으실 테죠. 하지만 그것이 호포드가 호크스에서 남긴 지난 업적들까지 끌어내릴 만큼 중대한 흠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무톰보를 1위로 보시는 분들의 의견 역시 충분히 공감하며, 3위인 젤모 비티까지 합쳐서 누구를 1위로 보던지 각자의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죠. 비티도 업적과 활약상만으로는 호포드, 무톰보에 뒤질 것이 없으나, 결국 프랜차이즈를 버리고 떠나버린 것이 종합 평가에서 큰 마이너스가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비록 원인 제공은 짠돌이인 구단측에서 한 것이지만, 어쨌든 남겨진 팬들 입장에서는 대못 박힌 거니까요. 


6위부터 9위까지 네 선수의 순위도 자주 엎치락뒤치락 했을 만큼 치열했는데, 이 역시 보는 관점에 따라 얼마든지 서로 바뀔 수 있는 순위라고 봅니다. 네 선수가 각기 개성도 각양각색이라서 더더욱 판가름하기가 어려웠죠. 보이지 않는 공헌도가 큰 쉐어, 스탯과 임팩트에서 돋보이는 로벨럿, NBL MVP 출신 & 원조 스타 타이틀을 지닌 오튼, 네임밸류가 압도적인 말론... 결국 쉐어를 가장 앞세웠는데 그 꾸준함과 코트 안팎에서의 숨은 공헌을 높이 샀습니다. 반면에 로벨럿은 라커룸에서 떨친 악명, 오튼은 MVP 타이틀이 NBL이 거의 반쪽 난 상황에서 받은 것이라는 점, 말론은 영입 당시 기대에 비해서 약간 실망스러웠던 점 등이 약간의 마이너스 요소가 되었죠.


호포드가 이번에 떠나서 프랜차이즈 센터 1위 논쟁은 당분간 계속되지 않을까 합니다. 그리고 새롭게 고향팀을 찾아온 드와잇 하워드가 랭킹 내에 이름을 올릴 날도 머지 않았을테구요. 하워드 외에도 아직 랭킹 밖이지만 마이크 머스칼라가 이번 시즌 상당한 선전을 보여주고 있는데, 다음 순위 소개 때에는 마이너 랭킹 진입이 확실해 보입니다.


사실 이번 호크스 편은 저에겐 매우 큰 의미가 있습니다. 10여 년 전 대학 졸업을 앞두고 백수같은 생활을 하면서 남는 게 시간이었는데, 문득 재미로 NBA 각 팀의 역대 선수들 스탯을 따로 정리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런데 여러 팀 목록 중에 애틀란타가 ‘A’로 맨 처음 올라와 있다 보니 별 생각 없이 애틀란타부터 시작했던 겁니다. 그때에는 레퍼런스 사이트가 지금만큼 방대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아서 각 팀별 선수 스탯은 따로 정리된 것이 없었죠. 그래서 스탯 정보를 일일이 손으로 쳐가며 엑셀에 입력을 하고, 이를 바탕으로 통계를 내곤 했습니다. 노가다에 가까운 작업이었으나 대강 50명이 넘는 선수들의 스탯 정보를 얻어냈고, 그걸 바탕으로 10th 팀까지 선정도 해보고 스탯 별로 통산 순위도 집계해가면서 놀았죠. 그 시시콜콜한 놀이가 바로 지금 이 연재를 시작하게 된 첫 계기였습니다. 나중에 레퍼런스 사이트가 진보하면서 팀별 선수 스탯이 한 눈에 제공되는 것을 보고, 참 허무감이 들면서도 기뻤습니다. 이제는 그런 노가다 안 해도 팀 별 선수 랭킹을 쉽게 매길 수 있겠구나 싶어서요.


이후 종종 시간 날 때마다 그냥 심심풀이로 가볍게 팀별로 역대 선수 랭킹을 정리했었고, 그러다가 문득 이걸로 아예 칼럼식의 연재를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보스턴 편부터 착수했던 게 본격적인 시작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뻘짓(?)의 첫 계기를 마련해 준 호크스 프랜차이즈 편을 이제야 끝낸 거구요.


시간은 많이 걸리면서 조회수도, 리플도 별로 없는 노잼 글을 꾸준히 연재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원체 제 주요 관심사가 사람들이 그리 흥미 없어하는 옛날 고릿적 NBA 이야기이고, 그런 이야기들을 그나마 이런 시리즈를 통해서라도 풀어본다는 것이 주요한 목적이니까 큰 상관은 없습니다. 그래도 지난 브루클린 편보다는 흥행 성적이 살짝 좋은 것 같기도 하구요. 애초에 NBA는 앞으로 내가 평생 즐길 컨텐츠인데 그냥 웹 커뮤니티 눈팅으로만 시간 보내지 말고 뭔가 의미 있는 작업을 해보자는 생각에 시작한 일이고, 또 이를 통해 정말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어서 나름 보람도 큽니다. 


다음 편은 달라스 매버릭스 편으로 준비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간 우연이지만 내리 동부의 팀만 3편을 했으니 균형을 좀 맞추기 위해서라도 서부 팀 하나는 해줘야 할 타이밍이고, 또 비교적 역사가 긴 세 팀을 하느라 좀 힘들었으니 역사가 좀 짧은 팀을 골라서 쉬엄쉬엄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만만한(?) 달라스를 택했죠. 달라스 편은 분량이 호크스 절반 정도 밖에 안 될 테니 다음 오프시즌 중에 반드시 런칭할 예정이구요, 전에 했던 프랜차이즈도 3년마다 업데이트를 하기로 했는데 마침 보스턴이 이번 해를 마치면 3년이 되기에 역시 오프시즌 중에 예전 글을 대대적으로 리모델링해서 함께 소개할 예정입니다.


연재를 성원해주신 여러 애틀란타 호크스 팬 분들께도 이 자리를 빌어서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그래도 글 올리면 이 분들은 봐주시겠지란 기대감이 제가 긴 작업을 하는 데 중요한 윤활유가 되주었습니다. 달라스 팬 분들께는 다음 오프시즌에 소소한 볼거리를 들고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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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17-01-26 22:10:57

일단 추천넣고 정독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호포드가 호크스의 프랜차이저로 남아줬으면 했는데 아쉽지만 그래도 랭킹 1위에 등극했군요.

WR
Updated at 2017-01-26 22:56:58

저도 호포드 이넘아가 계속 프랜차이즈에 남아줬으면 했는데 나갈때도 좀 깔끔치 못하길래 좀 실망스러웠죠. 나중에 말년에라도 컴백해 속죄하면서 커리어를 마감해주길 기대해봅니다. 그래서 당당히 결번도 받구요.

2017-01-26 22:20:47

얼마나 방대한 지식이 있어야 이런 글을 연재할 수 있을지.. 저로선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조회수와 추천수가 적은 노잼글이라고 하시지만 저에겐 정말 유익한 글이고, 항상 잘 챙겨보고 있으며 언제 올라오나 기대하게 되는 글입니다.
양질의 글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WR
1
2017-01-26 23:03:45

사실 연재를 좀 더 빨리빨리 했으면 싶은데 맘과 다르게 여의치가 않네요. 그래도 느린 대신에 포기하지 않고 달려보고자 합니다. 아직 손댈 엄두도 못내는 몇몇 프랜차이즈 팬분들께는 공연히 죄송하기도 하지만요.

2017-01-27 11:33:29

레이커스가 올라오는 그날까지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2017-01-26 22:54:20

순위 내리다가 왜 호포드가 없지?? 하다가 1위라서 깜짝 놀랐네요.


전 당연히 무톰보가 1위일 줄 알았거든요.


5년동안의 임팩트는 단연 무톰보이겠지만, 호포드도 애틀란타에서 9년이라는 긴 시간을 뛰었고 리빌딩의 주축이었으니 인정은 합니다.


그러나 마무리가 역대 1위에 센터로는 너무 안좋았어요. 셀틱 프라이드!!!


애틀란타편 고생많으셨습니다.

WR
2017-01-26 23:01:28

셀틱 프라이드 이 짓거리 때문에 저도 마지막까지 고민 많이 했습니다. 사실 기획 초기부터 줄곧 잠정 순위로 무톰보의 위였는데 마지막에 그런 짓을 하고 떠나버려서... 그래도 뭐 더이상 사태가 크게 불거지지 않았고 주변 가족들의 뻘짓 탓도 컸기에... 그정도 실수로 끌어내리기도 좀 그렇더군요.

2017-01-27 00:31:43

드와잇이 은퇴할때까지 홐스에서 뛰고 1위자리에 드와잇이 들어가있기를 바랍니다

2017-01-27 02:35:22

전 트리 롤린스를 참 좋아했었는데... 그시절 애틀이 호감이 많이 가더군요 닥감독에 롤린스 도미닠 통통 튀는 그 애틀란타가 기억나네요. 

2017-01-27 12:17:16

워싱턴 w가 올라올때까지 응원하겠습니다!! 그리고 전혀 노잼글 아니니 걱정마세요.
오히려 그냥 스탯만 있었다면 모를까글쓴이님의 친정한 설명에 필력까지!!
참으로도 번거로운작업을 이렇게 해주시니 감동 또 감동입니다!!
진정 매니아스러운 글에 저도 글쓴이님 처럼 이런 글을 쌓으려면 어느정도의 관심과 열정이 있어야할지 헤아리기 힘드네요. 정말 큰선물이였습니다.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2017-01-27 15:58:46

댓글달려고 몇년만에 로그인했습니다
계속 눈팅만 하다가 에필로그에 노잼글이라는 단어에 마음이 아파서요
사실 저도 이런 올타임 주제에 관심이 많아서 이런 프로젝트를 여러번 구상했지만 워낙 지식이 부족해서 막상 실행을 못했습니다
그런 저를 대리만족시켜주신 허슬님께서 혹시 힘이 빠지실까봐 조금은 걱정되는 맘에 이렇게 댓글을 답니다
절대로 노잼글이 아니니 힘 잃지 마시고 30개팀 모두 꼭 완성해주세요!!
그날까지 꼭 함께 응원하겠습니다

2017-01-27 19:22:43

허슬플레이어 님의 글에 코멘트를 달기 위해 로그인을 합니다.

세 번째 프랜차이즈가 끝이 났군요. 모두 잘 읽었습니다. 각 프랜차이즈를 사랑하는 팬 분들껜 크나큰 선물과 같은 글이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 각 팀 프랜차이즈를 알기 위해선 과거를 되짚는 것 만큼 좋은 것은 없죠.

그런면에서 이 시리즈는 언제가 되었건 꼭 모든 프랜차이즈가 완료 되었음 좋겠습니다. 매번 올라올 때 마다 빠짐없이 잘 보고 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17-01-27 19:22:45

멋진 시리즈 잘 보았습니다!

이 글은 허슬플레이어님이기에 가능한 글같아요.^^

항상 잘보고 있습니다.

2017-01-29 19:36:57

시리즈물 너무잘읽었습니다!!
친절한 설명이라던가, 옛날플레이어들 보는 재미도있고 굉장히 유익하면서도 재미진글이네요
업데이트된 스퍼스편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2017-02-01 13:34:41

2위까지 호포드가 없는 걸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어요. 

무의식적으로 PF에 호포드가 있겠지? 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네요;

진짜 호포드는 아무리봐도 4번 같은데 애틀 프론트진은 어째서 호포드를 보좌할 5번을 구하지 못한 걸까요. 플로리다 대학때 호포드-노아 라인업 생각하면 그 아쉬움은 더욱 커져요.
마치 파우 가솔 멤피스 시절에 제리 웨스트가 5번 구해주지 못한 거랑 여러모로 비슷하네요
WR
2017-02-01 17:28:24

호포드가 그 5번 포지션을 잘 소화해낸 탓이라고 봅니다. 높이의 한계는 어쩔 수 없었지만요.


그리고 조쉬 스미스가 떡하니 4번에 버티고 있었고 (얘는 역으로 3번으로 쓰면 안 되는 애...) 스미스와 함께라면 호포드는 결국 붙박이 5번이 될 수 밖에 없었죠.


그나마 호포드 보좌할 5번이라고 나중에 구해온 게 티아고 스플리터인데, 부상으로 자동 개점 휴업해버렸죠. 마지막으로 하워드를 데려오고 호포드 재계약하는 플랜도 꿈꿔봤지만 호포드가 보스턴으로 가버리며 무산됐구요.


4번 호포드는 결국 로망으로 남았지만, 한편으로는 5번 호포드도 그리 나쁘진 않았다고 봅니다. 

2017-02-01 17:59:33

악명높은 수학공식에 조쉬 스미스를 떡 하고 대입해버리니 문제가 쉽게 풀리는 군요

시리즈 잘 봤습니다 :)
특히 다음으로 예고하신 댈러스는 저의 페이버릿이 뛰었던 팀이라 더욱 기대가 됩니다. 그 선수가 랭킹이 몇일지도 괜히 모르게 설레구요 
WR
2017-02-02 08:54:00

페이버릿 플레이어가 누군지 살짝 궁금해지는군요. 달라스에서 역대 뛰었던 선수들은 죄다 저인망 식으로 파악하고 있으니 웬만하면 다 걸려들(?)겁니다.

bosm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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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ph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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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25
ny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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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23
nykp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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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ap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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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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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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