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인지 오브 페이스, 디렉션
평어체 양해 부탁드립니다. 이렇게 안 쓰면 도저히 글을 못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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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와 철지난 얘기를 해 무엇하냐만은 지난 여름 ABC 대회에서 우리 가드진의 볼처리는 실로 경악을 금치 못할 수준이었다. 무한 백드리블. 뒤에 팀 던컨이나 케빈 가넷 혹은 전성기 벤 월러스를 데리고 있는 것도 아닌데 자기가 공격인 것 마냥 달려드는 상대팀 가드들을 보면 그저 한숨만 나왔다. 그만큼 한국 가드들의 공 처리가 수준 이하였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는 사실 우리가 항상 지적해오던 문제-개인기가 없다-의 차원을 넘어선 수준이었다. 아마추어 레벨에서 익혔어야 할 기본기의 실종 문제였는데, 체격과 스피드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드리블을 통한 전진에 있어 기본적인 부분들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모두가 알고 모두가 배운 것임에도 불구하고
체인지 오프 페이스. 말그대로 페이스를 조절하는 것이다. 야구에서는 구속을 조절한다면 농구에서는 드리블의 페이스를 조절하는 것이다. 상대 예상보다 한 템포 빠르게, 혹은 한번씩 타이밍을 죽였다 다시 나가는 그런 기본적인 동작. 르브론 제임스가 다소 높아 보이는 볼핸들링을 가졌고 다소 직선적인 움직임 때문에 돌파 루트가 수비수 입장에서 예측가능한데도 불구하고 그의 전진을 막기 어려운건 압도적인 체격 탓도 있지만 생각 이상으로 페이스 조절에 능하기 때문이다. 6-9에 가까운 대형 선수가 순간적인 페이스 조절만 제대로 해내도 상대 입장에서는 참으로 괴로운 일이다
농구는 앞으로 전진하는 운동이다. 그리고 상대는 그 전진을 저지하고 골대를 수호해야 하기 때문에 당연히 뒤로 물러나는 운동을 한다. 상식적으로 순방향의 운동을 하는 공격 쪽이 역방향의 운동을 하는(사람의 일반적 보행 기준으로) 수비보다 근본적으로 유리할 수 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정도의 페이스 조절만 잘 이뤄져도 드리블을 통한 전진은 훨씬 쉬워진다. 이러한 페이스 조절은 타고난 순발력이나 체력과는 크게 관련이 없다. 연습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특히 농구 선수라면 말이다
체인지 오프 페이스의 요지는 결국 상대방의 타이밍을 빼앗아 내 공간을 만들어내는 농구의 기본에 맞춰 드리블을 하라는 것이다. 굳이 탑 스피드에서 조절할 필요도 없고 적절한 타이밍에 약간씩의 스피드 조절만으로도 내 공간은 확보되고 뒤로 물러나는 운동을 하는 수비수는 공간을 내줄 수 밖에 없다
여기서 잠시 백드리블 얘기를 하자면-항상 우리 가드진이 지적받아 왔던 문제이기에- 백드리블을 꼭 나쁘다고는 할 수 없다. 백드리블로 수비수로부터 공간을 확보하고 대신 상대의 타이밍을 뺏어 다시 전진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가치 있는 일이다. 문제는 그러한 백드리블을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가 아니고 지속시키기 시작하면 그것만으로도 수비수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뒤로 물러나는 불리함을 벗어나 수비수가 앞으로 나올 여지를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우선은 앞으로 나가야 한다. 앞으로 나가다가 다시 뒤로 가든 옆으로 가든 드리블의 기본은 항상 앞으로 나간다는 것이다
물론 체격이나 타고난 운동능력의 문제가 발목을 잡는 경우도 있다. 모두가 알렌 아이버슨 같은 가속력을 가지고 있다면 두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가도 순식간에 튀어나갈 수 있겠지만 문제는 그러한 수준의 운동능력을 갖추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역으로 말하면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이런 페이스 조절에 신경 써야 한다는 것이다. 탑 스피드에서의 페이스 조절을 잘 해낸다면 탑 스피드가 다소 떨어지는 편이라도 상대에게는 혼란을 줄 수 있다. 스탁턴이나 내쉬가 아이버슨, 웨이드처럼 빨라서 상대를 잘 떨궜던 건 아니었지 않는가
더해서
체인지 오브 디렉션도 마찬가지다. 비록 앞으로 전진하는 직선 운동을 기본으로 하는 게 농구이지만 직선적인 움직임만 이뤄질 경우 상대 수비수가 공격수의 루트를 쉽게 예상하고 미리 경로를 점하는 효과를 낳게 된다. 내 공간 확보를 위해서는 결국 횡으로도 움직임이 필요하다
아까 말한 수비수가 움직이는 방향을 생각하면 간단하다. 수비수는 원칙적으로 뒤로 물러난다. 농구에서 축구에서처럼 옆에서 붙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좁은 공간을 커버해야 하고 한번 뚫리면 그 다음 여파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무조건 정면에서 막아서야 한다. 그리고 공격수의 움직임에 맞춰 뒤로 물러나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수비수가 뒤로 물러나는, 상대적으로 불리한 운동을 하는데 여기에 좌우 움직임까지 더해지면 어떨까
렉스루나 크로스오버 모두 결국 체인지 오브 디렉션에 뿌리를 둔 것들이다. 조금 더 고민해서 조금 더 강하게 바꾸었을 뿐. 그 뿌리를 살펴보면 똑같다. '드리블 중 방향을 바꿔서 수비수에게 혼란을 주고 내 공간을 확보하여 제 2의 플레이를 좀더 수월하게 해낸다'라는 기본적인 원칙에 근거한 드리블인 것이다
톡 까놓고 말해 모두가 르브론 제임스 같은 체격과 운동능력을 갖췄다면 방향 전환에 관해 많이 고민할 필요가 없다. 아니면 전성기 티맥 수준의 퍼스트스텝을 갖췄다면 약간의 페이스 조절만으로도 기본 이상은 충분히 해낼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저 친구들도 방향 전환은 한다. 그것도 매우 넓은 간격으로 수비수를 혼란시키면서. 저런 능력이 있는데 왜?? 뚫어야 할 사람이 한둘이 아니니까!! 어느 구기스포츠가 안 그렇겠냐만은 농구도 경우에 따라서 자기 매치업 상대가 아닌 여럿을 뚫어야 할 때가 있고 공간이 좁아 단순히 스피드만으로 제치기에는 가속을 붙이기가 어렵다. 그래서 페이스 조절과 방향 전환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결국 내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수비수에게 불리한 움직임을 강요해야 한다. 그러한 강요의 기본이 되는 게 바로 앞서 말한 체인지 오브 페이스와 체인지 오브 디렉션이고 말이다. 운동능력과 별개다. 잘만 익히면 운동능력을 극복할 수 있는 방편이 될 수 있다.그런데 문제는 사실 모두가 알고 있는 이 얘기를 대부분의 사람들이 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당신이 동네 농구 플레이어이든 아니면 최고의 자리를 노리는 프로 선수이든 다 똑같다. 동네 농구 플레이어라도 조금 더 잘하면 좋을 것이고 프로 선수라면 말할 것도 없다. 최고로 올라가야 하고 그렇다면 무엇보다 중요한 게 올바른 습관을 키우는 것이다. 습관이란 한번 들이면 다시 바꾸는데 수배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에 습관을 잘 들여야 한다. 오늘 주구장창 얘기한 체인지 오브 페이스와 디렉션은 드리블에 관해선 올바르게 들여야 할 습관 중에도 가장 중요하다. 잘못 됐다고 느끼면 바로 깨닫고 고쳐야 한다. 특히 자기 발전을 끊임없이 요구받는 프로 선수라면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잠시 딴 소리지만 항상 우리 국대 선수들에게 개인기가 없다거나 득점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없다 이런 얘기가 나오는데 내가 보기엔 이미 기본기 레벨에서부터 다시 점검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외국인 선수 영입이 국내 선수들에게 한정된 롤을 강요하다 보니 각 포지션에서 갖춰야할 기본기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고, 벌써부터 프로 걱정하는 아마추어 레벨에서까지 하나에 집착하여 둘을 못보는 우를 범하는 느낌이다. 스크린 없이는 3점라인 밖에서 미드레인지 진입조차 어려운 현실에 처한건 단순히 노력 부족이라고 보기엔 어렵다. 이건 분명 가르치는 시스템의 구조적 문제이다
자, 딴 얘기는 접고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존 스탁턴이 무지막지하게 운동능력이 좋아서 NBA 역사에 길이남는 선수가 된 건 아니었다. 스티브 내쉬?? 결코 빠르지도 않고 그렇다고 엄청나게 큰 크로스오버 스텝을 갖추지 않았지만 단지 약간의 페이스 조절만으로도 상대를 가볍게 떨궈낸다. 기본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열광하고 닮고 싶어하는 아이버슨이나 웨이드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의 크로스오버의 근간에 무엇이 있나 살펴 보면 간단하다. Back to the basic
모범답안: 스탁턴은 케빈 존슨만큼의 가속력은 갖지 못했지만 전혀 밀릴 이유가 없었다
p.s 스카티님 쪽지를 받긴 했지만 제가 직접 매니아진에 올리려니까 어찌나 민망한지...다들 아시는 얘기로 쓴 허접글인데 말이죠. 그리고 sports-talk에 올렸던 글을 지우는 바람에 댓글까지 지워졌네요. 댓글 써주신 8분께 감사와 함께 사과를...죄송합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