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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틀랜드의 2000년대 - (4) Celebration and Wai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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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16 16:37:27


원문


Blazer's Edge의 Dave씨가 지난 10년간의 포틀랜드를 간략하게 회고한 글입니다.

포틀랜드 팬들에게 유익한 자료가 되지 않을까 싶어서 번역을 해봤습니다.

번역이 매끄럽지 못한 점과 본문의 평어체에 대해서는 양해 부탁드립니다.






2007-2008


Record : 41승 41패


감독 : 네이트 맥밀란


IN : 스티브 블레이크, 채닝 프라이, 타우린 그린, 제임스 존스, 조쉬 맥로버츠, 그렉 오든, 본 웨이퍼


OUT : 댄 디카우, 후안 딕슨, 스테판 그래험, 프레드 존스, 자말 맥글로어, 잭 랜돌프, 제레미 리차드슨, Luke Schenscher, 이메 우도카


드래프트 : 그렉 오든(1번픽), 조쉬 맥로버츠(37번픽), 데릭 바이어스(42번픽), 타우린 그린(52번픽), 드미트리스 니콜스(53번픽)

Leading Scorer : 브랜든 로이 (19.1 득점)


Leading Rebounder : 조엘 프리즈빌라 (8.4 리바운드)


Most Minutes : 브랜든 로이 (37.7분)



데이빗 스턴이 2007년 드래프트의 승자로 포틀랜드를 발표하면서, 포틀랜드에게 행복한 시대는 성황리에 시작했다. 이 드래프트의 정상에는 두명의 '거인'이 있었는데, 하나는 문자 그대로였고 하나는 스코어러였다. 그렉 오든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스타덤이 예정된 정통 7풋 센터였다. 케빈 듀란트는 놀라운 득점기계로, 일부에서는 차세대 득점왕으로 불렸다. 지난 몇년간 경기에 대한 실용적 혹은 미적 감각을 가진 모든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았던 포틀랜드는 이제 농구계의 중심으로서, 놓칠 수 없는 유망주 두명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포틀랜드는 한때 땅바닥까지 떨어진 대중적 이미지를 크게 호전시킬 기회를 잡았고, 시 전체의 게시판은 "Oden or Durant?"로 도배되었다. 지역과 전국의 관찰자들은 선두주자인 오든이 선택될지 아니면 떠오르는 듀란트가 부름을 받을지 궁금해했고, 그에 따라 드래프트날이 가까워질수록 열기는 뜨거워졌다.


결국, 포틀랜드는 오든을 선택했고, 그 움직임은 여러 면에서 이치에 맞았다. 포틀랜드에는 이미 브랜든 로이와 라마커스 알드리지라는 득점원이 있었다. 둘다 공을 갖고 플레이하는 타입이었고, 로이는 탑에서, 알드리지는 포스트에서 플레이를 시작했다. 듀란트는 플레이하기 위해 볼터치와 공간을 필요로 할 것이었다. 듀란트가 탑에 있으면 로이의 공간을 잡아먹을 것이다. 스트롱사이드 윙에 있으면 알드리지의 공간을 잡아먹을 것이다. 의미있는 유일한 시나리오는 듀란트를 위크사이드에 놓거나 트레이드하는 것인데, 어느 쪽도 전체 1번픽이라면 주어야 할 엄청난 활력에 비하면 뛰어난 스코어러의 낭비이거나 증분의 이익에 불과했다. 반면 오든은 로포스트에서 놀았는데, 로포스트를 활용하는 사람은 잭 랜돌프 뿐이었고, 그마저도 랜돌프는 페이스업이 더 늘어나고 있었다. 또한 오든은 리바운드와 수비를 주었다. 공을 만지지 않고 공헌하는데는 오든이 듀란트보다 훨씬 더 가능성이 많았다. 선택은 절대 명명백백하지 않았다. 모든 곳에서 온 전문가들이 이 문제를 가지고 지겹도록 논쟁을 벌였다. 그러나 최후에 오든은 포틀랜드 유니폼을 입게 되었고, 듀란트는 북쪽의 라이벌 시애틀로 가게 되었다.


그러나 그날의 비즈니스는 끝나지 않았다. 이전 시즌 후반기에 알드리지가 강력한 모습을 보였고 오든이 와서 포스트를 차지하게 되자, 포틀랜드는 랜돌프에 대한 필요성이 훨씬 더 줄어들었다. 화려한 스탯에도 불구하고, 랜돌프는 코트 밖에서 골칫거리이자 라커룸에서는 까다로운 동료임을 계속해서 증명해왔다. 랜돌프는 맥밀란 감독과 전혀 의견이 많지 않았고, 브랜든 로이와 다툼을 벌여왔다. 늘어나는 부상, 출전정지, 소프트해지는 플레이는 방침을 굳혔다. 포틀랜드는 랜돌프에 프레드 존스와 댄 디카우를 끼워서 뉴욕으로 보내고 채닝 프라이와 스티브 프랜시스를 받아오는 것으로, 프리차드 시대 이전의 것들을 거의 정리했다. 프랜시스는 절대 포틀랜드 유니폼을 입지 않을 것이었다. 프라이는 결코 포틀랜드의 계획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지 않을 것이었다. 이것은 샐러리와 personality의 처분이었고, 현재의 유망주들과 추후에 있을 움직임을 위한 정지 작업이 된다.


드래프트의 주도와 실행으로 시끌벅적한 와중에 동급의 중요성을 갖는 또다른 발표는 잊혀졌다. 구단주 폴 앨런은 채권자로부터 로즈가든을 재매입했다. 연고지 이전의 위협과, 팀에 대한 앨런의 연관성과 열정에 대한 의문은 단번에 해소되었다. 포틀랜드 팬들에게는 좋은 시절이었다.


나쁜 과거와 작별하는 마지막 주요 순서로, 팬들은 자신들의 지역 영웅들을 위해 부끄럼없이 정착할 준비가 되어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줬다. 오든이 포틀랜드 시민들에게 소개될 때, PIonner Square에서 열린 시가 행진에는 수천명의 팬들이 몰려들었다. 팬부터 선수들과 경영진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새로운 (잘하면 궁극적인) 지배의 시대에 항해를 시작하고 싶어 안달난듯 했다. 상승세가 유성만 못하다고 생각할 이유가 없었다.


선수들은 일찌감치 모였고, 다가올 시즌을 위해 가장 열심히 연습하기 시작했다. 훈련장에서 "오든에게 뭔가 일어났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한 것은 트레이닝 캠프를 2주 앞둔 비공식 연습 도중이었다. 이 "뭔가"는 오른쪽 무릎의 연골 손상으로 밝혀졌고, 시즌아웃이 되는 마이크로프랙쳐 수술을 필요로 했다. 지배적 시즌을 향한 포틀랜드의 희망은 시범경기 한번 치르기도 전인 9월 14일에 끝이 났다. 이제 포틀랜드는 공백을 메워야 했다.


밝혀졌듯이, 포틀랜드의 Plan B는 'B'가 'Brandon'을 나타내듯 아주 괜찮았다. 로이는 루키 시즌보다 더 간강하고, 더 자신감 넘치고, 더 많은 시간을 뛰었으며, 평균 19득점 5리바운드 6어시스트를 기록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로이는 팀을 등에 지고, 몇번이고 4쿼터에 팀을 이끌었으며, 필요할때마다 위닝샷을 꽂아넣었다. 같은 2년차 동료 알드리지는 PF와 C를 오가면서 랜돌프와 오든의 공백을 메울 필요가 있을 때마다 포스트로 들어갔고, 평균 18득점 7.5리바운드를 기록했다. 알드리지가 센터를 보는 동안은 아웃로가 PF로 나왔고, 아웃로는 PF에서 자신보다 느리거나 민첩성이 떨어지는 수비수들을 상대로 잘해내기 시작했다. 아웃로는 팀에서 3번째로 많은 슛을 시도했고, 종종 로이의 4쿼터 쇼에 합류했다. new/old pick-up도 거들었다. 돌아온 스티브 블레이크는 팀동료들의 공격이 이루어질때 로이에게 결정을 맡기고 오픈 외곽 슛을 성공시킬 수 있는 PG의 역할에 적임자였다. 늠름한 조엘 프리즈빌라는 2년전 테오 래틀리프 때처럼 한결같이 센터 자리를 지켰다. 베테랑으로서 또다른 인상적인 활약은 제임스 존스였다. 존스는 전문 3점슛터로서 조용히 활약했고, 매일 밤 상대팀이 주득점원을 막으려고 할때마다 대가를 치르게 했다.


주 로테이션의 두명의 선수 중 한명은 은총을 받았고, 다른 한명은 은총에서 멀어졌다. 마텔 웹스터는 수비가 없다는 평판을 극복하고, 발을 움직이는데 전념하면서 상대팀에서 가장 뛰어난 윙 스코어러를 막는데 도전했다. 선천적으로 스카티 피펜이나 루벤 패터슨 같은 유형은 아니었지만 필요한 것은 해냈다. 반면 재럿 잭은 자신을 득점원으로 구상하고 열심히 노력했지만, 로이만이 공을 배급하는 백코트에서 결실을 얻기 어려운 구상이었다.


시즌의 하이라이트는 말할 것도 없이 12월 3일, 트래비스 아웃로의 버저비터로 멤페스에게 1점차 승리를 거두면서 시작한 13연승이었다. 연승은 덴버와 유타에게 승리를 거두며(각각 2번씩) 계속되었고, 12월들어 유타와의 3번째 맞대결이 된 유타 원정에서 패하며 끝이 났다. 포틀랜드는 이후로도 4연승을 달렸고(그 중에 유타를 다시 한번 이겼다), 최종적으로 18경기 중 17경기를 승리했다. 지난 수년간 winning month를 기록해본적이 없었기 때문에(11월에는 5승 10패를 기록했었다), 이는 설레는 일이었다.


불행하게도 기쁨은 계속되지 못했다. 스케줄이 어려워지고 플레이오프를 향한 경쟁을 해본 적이 없는 이 어린 팀에게 피로가 몰려왔다. 포틀랜드는 41승 41패로 시즌을 마쳤고, 월러스 시절 이후 처음으로 non-losing year를 보냈다. 9승이 향상된 것은 얕볼만한 성과가 아니었고, 포틀랜드의 상황은 좋아지고 있었다.


2008년 4월, 대리우스 마일스는 부상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이로서 팀에서 물의를 빚는 최후의 선수가 사라졌을뿐 아니라, 포틀랜드의 샐러리캡에서 마일스의 샐러리가 사라져 2005년의 끔찍한 계약 실수의 흔적이 지워지게 되었다.


오든은 가을에 돌아올 예정이고, 팀의 나머지는 계속 성장하고 있었으며, 가까운 미래에 캡의 유동성이 생길거라는 희망이 있었다. 프랜차이즈의 미래는 이보다 더 밝아보일 수 없었다.








2008-2009


Record : 54승 28패


감독 : 네이트 맥밀란


IN : 니콜라스 바툼, 제리드 베일리스, 아이크 디오구, 루디 페르난데즈, 샤블릭 랜돌프, 마이클 러핀


OUT : 타우린 그린, 재럿 잭, 제임스 존스, 조쉬 맥로버츠, 대리우스 마일스, 본 웨이퍼


드래프트 : 브랜든 러쉬(13번픽), 조이 돌시(33번픽), 오마 아식(36번픽), 마이크 테일러(55번픽)

Leading Scorer : 브랜든 로이 (22.6 득점)


Leading Rebounder : 조엘 프리즈빌라 (8.7 리바운드)


Most Minutes : 브랜든 로이 (37.2 분)



2008년 오프시즌, 포틀랜드의 프런트는 영광에 안주하지 않았다. 포틀랜드는 다시 한번 드래프트에서 수완을 발휘하여, 강인하고 강력한 돌파형 PG 제리드 베일리스를 브랜든 러쉬와 재럿 잭을 주고 데려왔다. 두번째로, 포틀랜드는 피닉스에게서 픽을 사서는 그것을 스페인의 스타 루디 페르난데즈를 얻는데 이용했다. 또한 포틀랜드는 샌안토니오의 코앞에서 니콜라스 바툼을 채가면서 1라운드에서 3번째로 픽을 행사했고, 드래프트를 통해 리빌딩하는 패턴을 계속했다.


팬들은 제리드 베일리스가 서머리그에서 날라다니는 것과 루디 페르난데즈가 올림픽에서 스페인 대표팀으로 출전하여 훌륭한 퍼포먼스를 펼치는 것을 보았고, 트레이닝 캠프로 들어가면서 기대는 치솟았다. 팀은 이제 재능으로 넘치고, 우승을 향해 치고나가는데 약간의 융합 시간만이 필요한듯 했다.


기대에 대한 첫번째 타격은 초가을에 일어났다. 포틀랜드는 다시 한번 주전 한명을 시즌 통째로 잃었다. 마텔 웹스터는 발에 골절이 생겼고, 당초에 두달로 예정되었던 복귀는 시즌 아웃으로 변했다. 이것은 포틀랜드에 여유가 없는 포지션에서 선수가 부족하게 만들었다. 대리우스 마일스와 제임스 존스는 떠났다. 트레비스 아웃로는 자신이 SF보다 PF쪽에 훨씬 더 가까움을 증명했었다. 난국을 해결해줄 선수는 니콜라스 바툼이었다. 바툼은 7월 서머리그에서 형편없는 성적을 내서 많은 사람들은 바툼이 공헌하기까지 몇년이 걸릴거라 생각했었다.


기대에 대한 두번째 타격은 서부 최강이자 영원한 눈엣가시인 LA 레이커스와 엄청난 기대 속에 벌인 개막전이었다. 코비 브라이언트와 동료들은 포틀랜드를 주목해야할 팀으로 꼽은 신문기사를 읽었음이 분명했다. 이런 상황을 잘 다룰 줄 아는 레이커스에게 포틀랜드는 자멸했다. 설상가상으로 그렉 오든이 이번엔 발 부상으로 쓰러졌다. 포틀랜드는 첫 4경기 중 3경기를 패배했고, 계속되는 지옥 스케줄로 인해 로켓은 발사대를 벗어나지 못할듯 했다.


그리고 포틀랜드의 5번째 경기이자 팀 역사상 기억에 남을만한 경기 마무리에서, 브랜든 로이는 위닝샷을 터뜨리면서 영웅이 되었다가, 뒤이은 인바운드 플레이에서 야오밍에 대한 파울로 휴스턴에게 역전을 허용해서 역적이 되었다가, 종료와 함께 장거리슛을 터뜨려 팀을 승리로 이끌면서 슈퍼히어로가 되었다. 감동적인 승리는 팀의 자신감을 갑자기 상승시켰다. 포틀랜드는 이후 15경기 중 12경기를 승리했고, 결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대개 로이, 알드리지, 아웃로의 플레이가 승리행진에 박차를 가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두명의 깜짝스타도 합류했다. 하나는 mild 했고, 하나는 severe 했다. 루디 페르난데즈는 리그와 리그의 스타일, 특히 수비에 적응하는데 시즌을 보내고 있었지만, 그러면서도 루키 3점슛 성공갯수에서 신기록을 세웠다. severe surprise는 니콜라스 바툼이었다. 바툼은 포틀랜드 최고의 수비수이자 수년만에 팀에서 발견한 가장 보완적인 선수 중 하나로 빠르게 평판을 높이고 있었다.


그러나 포틀랜드에게 모든 것이 장미빛이지는 않았다. 대리우스 마일스는 보스턴에서 시범경기 6경기를 뛴 이후 멤피스에서 두어번 최소한의 출전을 했고, 이제 다시 포틀랜드의 샐러리캡에 포함되었다. 예전에 더 서툴렀던 포틀랜드 경영진을 떠올리게 하는 움직임으로, 팀은 이 사태의 와중에 마일스와 계약하는 팀에게는 법적 대응이 따를 것이라고 위협하는 메모를 리그 전체에 발송했다. 쟁점은 곧 멤피스에 의해 의미가 없어졌지만, public relations에서의 파라다이스는 타격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오든이 복귀했을 때, 오든이 작년에 재활을 하면서 심폐 운동보다 역기를 드는데 시간을 보냈음이 분명해졌다(누군가가 무릎과 발 문제를 예견했듯이). 오든은 거대했다. 오든의 힘은 인상적이었으나, 불행히도 힘이 자리잡은 것만큼이나 많은 파울을 안겼다. 오든은 코트 위에서 육중했고, 팬들이 기대했던 샷블락 괴물보다는 훨씬 더, 노쇠한 아비다스 사보니스 같아보였다. 오든은 봄에 또다른 부상을 당했고 - 이번엔 왼쪽 무릎 -, 오든의 공헌은 건강할 때조차도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오든은 다시 한번 아주 작은 압력만 받았다. 남자가 다른 100명과 데이트를 하는걸 봐도 필요할 때면 항상 곁에 있는 "친구 사이'의 여자처럼, 프리즈빌라는 포틀랜드를 구원하기 위해(save Portland's bacon) 나섰다.


그 'bacon'은 포틀랜드가 정규시즌 상승세를 타면서 지글지글거렸다. 포틀랜드는 시즌 마지막 16경기 중 13경기를 승리하면서 54승 28패로 시즌을 마쳤고, 노스웨스트 디비전 공동1위이자, 단 한경기 차이로 분리된 서부 2~5위팀 그룹 안에 들어갔다. 수년 간의 슬럼프와 고통 끝에, 포틀랜드는 플레이오프에 돌아왔고 화려하게 그것을 해냈다. 3년만에 포틀랜드는 리그 최악의 공격을 엘리트급으로 끌어올렸다. 포틀랜드의 수비는 대단치는 않았다. 그러나 평균이라도 역시 엄청난 향상이었다. 한때 리그 꼴찌였던 관중수는 이제 전체 3위로 올라섰다. 바랄 수 있는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


말하자면, 거의 모든 것이었다.


불행히도, 포틀랜드는 곧 플레이오프에 대한 가혹한 교훈을 얻게 된다.


1. 최고의(그리고 거대한) 퍼리미터 수비수와 막을 수 없는 센터를 가진 휴스턴은 끔찍한 매치업이었다.


2. 다른 팀들이 플레이오프에서 아군을 잡으려고 할때는, HARD하게 한다.


3. 플레이오프에서 실수할 여지는 놀라울 정도로 적다.


레이커스와의 정규시즌 개막전과 똑같이, 경험이 부족한 포틀랜드는 교활하고, 동기 부여가 되어있으며, 굶주린 휴스턴에게 홈에서 27점차의 대패를 당했다. 비록 시리즈 2차전에서 반격에 성공했고 원정에서 접전을 벌였으나 - 원정에서 각각 3점차, 1점차로 패배 -, 포틀랜드가 할 수 있는건 6차전까지 끌고 가는 것이었고, 6차전은 휴스턴에게 유리했다. 1차전 결과가 달랐다면 시리즈 역시 다르게 흘러갔을지도 모르지만, '만약'이란건 승자는 신경쓰지 않는 패배자들의 합창임을 포틀랜드는 배웠다. 시리즈에서 유일하게 긍정적인 면은, 포스트에서의 오든의 플레이였다. 오든은 손을 뻗어 거대한 야오밍을 상대로 자신의 자리를 잘 지켜냈다. 다음시즌에 대한 전망으로 희망은 다시 타올랐다.


처음에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듯, 이렇게 10년이 끝났다. 1999년의 1라운드 탈락은 평범해보였다. 2009년에는 그동안 팀이 걸어온 길을 생각하면 축하할만한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 어떤 스포츠의 연보에서도 포틀랜드가 2000년에서 2005년 사이에 겪은 완전하고 급격한 몰락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포틀랜드 팬들은 2006년에 시작한 회생이 2011년이나 2012년까지는 극적인 것으로 입증되길 바라고 있다. 지난 10년은 기억할 것들과 잊고 싶은 것들을 많이 주었다. 지난 10년은 프랜차이즈와 펜들을 시험에 들게 했고, 어떤 면에서는 우릴 단련시켰고, 또 다른 면에서는 상처를 남겼으며, 여러 가지로 우리를 더 낫게 만들었다. 지난 10년은 극적인 면에서 빠지는게 없었다. 그러나 결국은 오히려 잘 된 것으로 밝혀졌다.


10년 후에는 다시 회고를 하게 될 것이다. 그때는 흥분되는 소식이 더 많고, 가슴아픈 일은 더 적기를 바란다.


* pnics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10-05-17 06:06)
3
Comments
2010-05-16 17:24:30

1,2,3, 4 모든 글 잘봤습니다.

2010-05-17 09:20:29

예전 레이커스에서 허무하게 역전 당했을때부터
지난 시즌 멋지게 부활하는것 까지 생생하게 생각이 나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WR
2010-05-17 12:15:27

본문에는 미처 적지 못했지만, 그간 격려해주신 분들 덕분에 많은 힘을 얻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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