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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king Of An MVP' 챕터 6-'The Jordan Influ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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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11 13:48:51

브라이언 윈드호스트와 테리 플루토가 쓴 브롱의 전기 'The Making Of An MVP' 번역 아홉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브롱의 성장기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 마이클 조던과 브롱의 관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브롱이 어떻게 조던의 팬이 될 수 있었는지, 어째서 클리블랜드 스포츠 팬이 아닌지, 얼마나 조던을 존경하고, 심지어 조던처럼 되고 싶어했는지 소개됩니다.

먼저 소개드린 내용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챕터 1

챕터 2

챕터 3

챕터 4

챕터 5

챕터 7

챕터 8

챕터 12



르브론 제임스는 마이클 조던의 팬으로 자랐고, 어쩌면 NBA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일지도 모르는 조던과 그 자신의 비교에서 단 한번도 자유로워본 적이 없다. 직접적으로 말한 적은 없지만, 르브론은 많은 측면에서 'Be like Mike'를 원했다.

먼저 역사를 복습해보자. 르브론은 1984년 12월 30일에 태어났다. 조던이 (야투성공 갯수와 같은 5개의 턴오버를 저지르며 그의 커리어에 비하면 저조한 16점을 올렸던)그의 첫 정규시즌 경기를 치른 지 3개월 4일이 지난 날이었다. 르브론이 10살이 됐을 무렵, 조던은 3년 연속 NBA 타이틀(1991-93년)과 3개의 MVP를 그의 이름 뒤에 붙이고 있었다. 래리 버드는 은퇴했고 매직 존슨은 선수생활의 마지막을 보내고 있었다. NBA는 단 하나의 이름만이 존재했는데, 그것은 조던이었다. 농구화 쪽에서는 단 하나의 브랜드 이름만이 있었는데, 그것은 나이키의 에어 조던이었다. 1990년대 대부분의 아이들이 원하는 단 하나의 NBA 저지가 있었는데, 그것은 조던의 23번이었다.

어떤 북동부 오하이오 팬들은 어째서 르브론이 클리블랜드 스포츠 팀들의 팬이 아닌지 의아해한다. 그들은 자신의 경험을 기준으로 르브론을 재단하고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클리블랜드 스타디움에 그들을 데려가서 경기를 보여줄 아버지, 할아버지, 아주머니, 어머니가 있었다. 클리블랜드 스포츠 팬인 어떤 가족들의 응원 역사는 인디언스가 아직도 리그 파크에서 경기를 치르던 1930년대나 클리블랜드 브라운스의 폴 브라운 감독이 프로 풋볼팀을 꾸려나가던 2차대전 직후 1940년대로 거슬러올라간다. 어떤 팬들은 캐벌리어스가 창단됐던 1970년을 기억하기도 한다. 그 익스팬션 프랜차이즈는 유클리드 애비뉴의 옛 클리블랜드 아레나에서 경기를 치렀다(그 경기장은 원정팀들이 (낡고 비위생적인)라커룸을 이용하기를 꺼리는 곳이었다. 그들은 거리 건너편에 있던 호텔에서 옷을 갈아입은 후 유니폼 차림으로 경기장에 걸어들어가곤 했다). 아니면 그들은 그들을 옛 리치필드 콜로세움에 데려가 캐벌리어스를 응원할 수 있도록 입장권을 사줄 가족이 있었다. 클리블랜드의 많은 가족들에게 펠러, 콜라비토, 샤보뉴, 맥도웰, 로즌, 그리고 보드루라는 이름은 한때 인디언스에서 뛰었던 선수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가족 사이에서 전해져오는 제2의 가족과도 같은 것이다. 폴 브라운, 짐 브라운, 프랭크 라이언, 개리 콜린스, 르로이 켈리, 브라이언 사이프, 버니 코사르, 레지 러커 등 클리블랜드 브라운스를 거쳐간 여러 이름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르브론이 자랄 때는 그런 이름을 전혀 가질 수 없었다. 경기장에 데려가줄 아버지가 없었던 것이다. 그 대신 르브론에게는 내년에도 같은 집에 살기 위해 악전고투하는 10대의 어머니가 있을 뿐이었다. 그의 집에는 클리블랜드의 스포츠 팀이나 그들의 게임이 가족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말해줄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르브론이 스포츠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던 1990년대 초반의 클리블랜드 스포츠 팀들은 그리 인상적이지 못했다. 인디언스는 30년 이상 동안 끔찍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브라운스는 젊고 경험 없는 빌 빌리칙 감독이 이끌고 있었는데, 대부분의 클리블랜드 지역 팬들은 그를 싫어했다. 팀의 상징이었던 쿼터백 버니 코사르는 팀을 떠났고, 구단주 아트 모델은 실패중인 그의 프랜차이즈를 볼티모어로 옮길 궁리를 하고 있었다. 가족의 역사 속에 그 팀들이 없다면, 어째서 르브론이 당연스레 그 팀들의 팬이 돼야겠는가? 오직 캐벌리어스만이 위닝팀이었지만, 그들은 문제거리가 있었다. 그리고 그 문제거리는 23번을 입고 시카고 불스에서 뛰고 있었다. 무려 4번의 플레이오프 시리즈(1988, 89, 92, 93년)에서 캐벌리어스를 무너뜨린 마이클 조던이었다. 르브론은 텔레비전 시청을 통해 스포츠 팬이 됐고, 불스, 댈러스 카우보이스, 플로리다 주립대 세미뇰스 풋볼팀, 그리고 뉴욕 양키스를 응원팀으로 삼았다. 그가 스포츠 팬이 될 무렵의 강팀들이었다.


클블팬의 악몽 마사장...


다른 많은 아이들처럼 르브론도 에어 조던 농구화를 원했다. 글로리아 제임스는 100달러에 달하는 농구를 사줄 여유는 없었다. 하지만 아들에게 조던이 나온 포스터와 잡지를 사다줄 수는 있었다. 르브론은 조던에 관한 것이라면 뭐든지 모아서 그의 침실 벽에 붙여나갔다. 조던 사진은 르브론이 살았던 여러 장소를 집처럼 느끼도록 해줬다. 그들이 옮겨다님에 따라 벽은 계속 바뀌어갔지만, 그의 주위를 가장 좋아하는 사진들로 둘러쌀 수는 있었다. 1995년 워커 가족을 떠나게 됐을 때, 팸 워커는 글로리아 제임스가 애크런 인근의 웨스트 힐에 있는 스프링 힐이라는 임대아파트를 얻을 수 있도록 도와줬다. 글로리아는 그곳이 몇 년간은 '집'이 될 수 있는 곳이라 믿었고, 아들에게 따로 방을 마련해줄 수 있어서 흐뭇해했다. 르브론은 리딩거 중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풋볼이 가장 좋아하는 운동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방 벽은 마이클 조던으로 도배되어있었다. 조던과 그의 농구화가 나오는 사진, 포스터, 나이키 광고 등이었다. 한 치의 여유도 없이 도배된 사진 중 대부분은 조던 관련 사진들이었다. 그 사진들은 르브론이 매일밤 눈을 감기 전 마지막으로 보는 것이었고, 매일아침 눈을 뜰 때 처음으로 보는 것이었다.

따라서 세인트 빈센트-세인트 메리 고등학교에 진학했을 때 23번 유니폼을 입기로 한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가장 좋아하는 선수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선언이기도 했다. 그는 목표를 높이 잡고 있었고 최고가 되고자 하는 단호한 결의를 지니고 있었다. 그렇다, 그는 또다른 마이클 조던이 되고자 했다. 르브론이 공식적으로 선언한 적은 없지만 말이다.

"사실 르브론이 1학년 때는 32번을 달아야 했습니다. 다른 선수가 이미 23번을 달고 있었거든요." 르브론의 고등학교 첫 감독이었던 키스 댐브럿의 회상이다. "하지만 23번이 비자마자 르브론이 나꿔챘죠."

이리내, 이 빵꾸똥꾸야!

르브론은 16살때 조던을 처음 만났다. 그는 3학년 시즌에 임하려 하고 있었다. 7월에 명성 높은 ABCD 캠프에서 MVP에 선정됐을 때였다. 그는 미래의 NBA 선수들인 리온 포우나 캔드릭 퍼킨스가 소속된 오클랜드와 캘리포니아의 강팀들과 함께 많은 AAU 토너먼트에서도 스타덤에 오른 상태였다. 조던은 불스에서 은퇴한 상태였지만 워싱턴 위저즈로의 복귀를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었다. 그는 몸을 만들기 위해 시카고에 개인 워크아웃을 열고 있었다. 조던은 워크아웃에 참가시키기 위해 몇몇 프로 및 대학 선수들과 르브론 제임스라는 소년을 시카고로 초청했다. 르브론이 보스턴 셀틱스의 스타 선수였던 앤트완 워커와 친해진 것도 그 무렵이었다. 워커는 시카고 출신이었고 아디다스 농구화의 특급 모델 중 한 명이었다.
그것은 조던과 잘 아는 사이며 아디다스에서 일하고 있던 소니 바카로가 워커를 르브론에게 소개시켜줬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워커는 오프시즌에 시카고에서 살고 있었고 지역 체육관에서 다른 대학 선수들과 함께 조던과 훈련하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르브론에게 초청장이 날아왔다.

르브론은 그때 조던과 뛰어보지는 못했지만, 다른 프로 및 대학 선수들과는 뛰어볼 수 있었다. 그 무렵 르브론은 SLAM 지에 짧은 일기를 연재하고 있었는데, 다음과 같이 적었다. "근사한 시간이었다. 다른 많은 NBA 선수들과 뛰었고 조던과 잠시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진짜 아무 충고도 해주지 않았다. 한눈 팔지 말고 꾸준히 가라고만 말했다."

2001년 여름 조던이 르브론의 경기를 보러 왔고 르브론은 매우 좋은 경기를 했다. 르브론은 경기가 거의 끝날 때까지 조던이 와있는 줄 모르고 있었다. 그는 나중에 기자에게 말했다. "그분이 제게로 걸어오기 시작했을 때는 믿을 수가 없었어요. 꿈인지 생신지 알 수 없었죠. 마이클 조던이었다고요! 그저 '와우!'였죠. 그분은 그냥 제게 와서 손을 내밀며 '이봐, 어린 친구. 오늘 썩 괜찮아보이더군.'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제 평생 가장 기억에 남을 순간이었죠."

몇 달 후, 조던은 워싱턴 위저즈의 일원으로 클리블랜드를 찾았다. 르브론은 조던부터 NBA 및 대학 일류 감독, 농구화 회사 사장까지 친분이 두터운 농구계의 마당발 웨스 웨슬리가 마련해준 코트사이드 좌석을 얻을 수 있었다. 웨슬리는 르브론같은 어린 스타들과도 친분이 있었다. 그는 경기 후 르브론이 조던과 만날 수 있도록 주선해줬다. 시즌 말미에 조던이 위저즈와 함께 클리블랜드를 다시 찾았다. 그는 마지막 순간 위닝 점퍼를 꽂아넣었고, 르브론은 그때도 경기장에서 그 모습을 봤다.

입꼬리가 얼어붙은 어린 트못쓰...

르브론이 3학년때 시카고에서 열린 여름 농구 캠프에서 손목이 부러졌을 때는 조던이 손목 전문의를 볼 수 있도록 도와줬다. 르브론은 나중에 시카고로 돌아와 조던이 소개해준 같은 의사에게서 깁스를 제거했다.

1년 후 르브론이 4학년 시즌을 마친 뒤, 그는 워싱턴 D.C.에서 열린 조던 캐피틀 클래식에 출전했다. 그때는 르브론과 계약을 맺으려는 나이키, 아디다스, 리복 사이에 르브론 쟁탈전이 벌어졌을 때였다. 르브론, 글로리아, 그리고 르브론의 새 에이전트인 애런 굿윈은 워싱턴에 도착해서 조던과 개인적인 만찬 자리를 가졌다. 그것은 나이키의 르브론 스카우트 작전으로 보였다. 조던은 경기에 초대된 모든 올스타들에게도 같은 말을 했다. 르브론은 MCI 센터(훗날 버라이즌 센터로 개명)에서 벌어진 경기에서 MVP에 선정됐다.

르브론은 마침내 나이키와 농구화 계약을 맺었는데, 7년/1억 달러 범위의 숫자는 그 이유의 일부에 불과했다. 리복도 경쟁자와 같은 조건을 제시했던 것이다. 중요한 요인은 나이키가 조던 브랜드를 개발하고 있었고, 어린 르브론이 자기 방 벽을 온통 조던의 나이키 포스터로 도배했다는 것이었다.

르브론이 조던과 똑같이 23번을 달고 조던이 처음 계약했던 회사의 농구화를 신기만 한 것은 아니다. 르브론이 중계석으로 와서 손에 송진 가루를 뿌려 손뼉을 치고 팔을 머리 위로 올리는 경기전 의식이 있다. 그 의식은 하얀 먼지구름이 떨어져내리는 모습을 연출한다. 팬들은 그 의식을 기다리고, 텔레비전 카메라는 초점을 맞춘다. 르브론은 이 의식을 그의 트레이드마크로 삼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조던도 그 의식을 했고, 아마도 처음으로 한 사람일 것이다. 어린 르브론 제임스는 또한 조던의 인터뷰를 보면서, 조던이 보통 어떻게 잘 차려입고 인터뷰에 임하는지 알아차렸다. 조던은 논란의 여지가 많은 대답은 하지 않았고, 본인이 특별히 즐기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보통 기자들의 공동 인터뷰가 가능하도록 해줬다. 조던은 그것을 자기 업무의 일부로 생각했고, 그의 농구와 팀, 그리고.... 그렇다, 그 자신과 그의 농구화를 홍보할 수 있는 좋은 방법으로 여겼다. 그는 질문에 허둥개지도 않았고, 언론인들을 몰아세우는 일도 거의 없었다. 그는 공손하고 인내심 있는 모습을 유지했다. 이런 많은 자질들은 르브론에게서도 볼 수 있다.

르브론과 조던은 한 번도 절친한 관계였던 적이 없었다. 두 사람이 지나가다 이야기를 나눈 것이 사실이라 해도 말이다. 하지만 조던이 코트 안에서나 밖에서나 르브론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쳤음은 의문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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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10-03-11 23:33:24

편집의 힘은 위대하군요...

NBA에 갓 입문한 사람이 두번째 영상보면 르브론과 조던이 비슷한 플레이를 하는선수처럼 생각할 것 같습니다...

2010-03-12 09:42:22

아 르브론은 정말... 저는 조던의 플레이를 하던 시절에 농구를 좋아하지 않아서 그런지

조던보다 르브론이 더 애착이 가네요.

위엣분 닉네임이 참 좋으시네요 벤 월라스를 말하시는건지 모르겠지만

제가 제일 좋아하는 두 선수를

2010-03-12 10:34:24

안녕하세요 아프로킹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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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2010-03-12 18:22:11

맨 마지막 mix는 정말 쵝오네요~

2010-03-13 00:40:48

아.. 감사합니다. 그런데 자음어가 뭐죠?

2010-03-13 04:26:29

ㅋㅋ, ㅎㅎ, 이런거 등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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