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섯 개의 시선 』 - 로니 튜리아프, 리차드 해밀턴이 과소평가 받고 있는 플레이
전혀 연관관계가 없는 선수들을 엮어서 제목을 지었습니다. 제목에 언급한 두 선수는 너무 특출난 장기 때문에 또 다른 능력이 다소 과소평가 받고 있는 선수들입니다. 이러한 판단은 순전히 경기를 보고 느낀 제 개인적인 시각이기도 한데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 지도 무척 궁금하네요. 그럼 튜리아프부터 먼저 알아보겠습니다. 육중한 체구와 더불어 활력 넘치는 플레이로 LA 레이커스 벤치를 달구는 튜리아프는 전에도 그랬지만 언제나 '지엽적인 사기진작용 플레이어' 로 수식되었습니다. 시즌을 거듭하면서 제법 슛거리도 길어지고 다른 면모를 보여주면서 발전폭이 상승하고 있지만 평가가 크게 달라지고 있진 않습니다. 역할 자체가 고정적이고, 선수층이 두껍다 보니 눈에 띌만 한 구석을 찾는 것도 쉽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뜻밖에 많은 사람들이 튜리아프의 패싱력을 눈여겨 보질 않습니다.
투박해보이는 외형에 시끄러운 이미지가 너무 또렷하게 각인이 되어서 그렇지, 장담하건대 튜리아프의 패싱력은 평균 빅맨 그 이상이라고 봅니다. 라마 오돔조차도 처음에는 잘 적응하지 못했었던 트라이앵클 오펜스도 (코트에 있는 시간이 한정적이긴 하지만)비교적 잘 소화해내고 있고, 가드들과의 픽-앤-롤, 픽-앤-팝을 구사할 때도 어느 타이밍에 빠져나와야 하는 지, 패스를 주고 받아야 하는 지를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튜리아프의 이러한 준수한 전술 이해 능력은 한층 넓어진 슛거리 덕분에 더욱 큰 효과를 나타내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부분에 있어서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팬들이 레이커스를 바라볼 때 트라이앵클 오펜스라는 독특한 중추 때문에 비범한 패싱력을 갖춘 선수가 아니면 인색한 평가를 내리는 경향이 있는데 여기서 튜리아프는 상대적으로 손해를 보고 있습니다. 튜리아프가 루크 월튼의 코트 비전을 못 따라가는 건 자명한 사실이지만, 팀에 보탬이 될 만 한 '알토란' 패스를 해주고 있다는 사실도 자명합니다. 앤드류 바이넘 만큼의 수직상승은 아니지만, 스크린 위치 선정에 관한 의견 충돌로 샤샤 부야시치와 언쟁을 벌이고, 벤치에서의 보컬 리더를 마다하지 않는 튜리아프 역시 꾸준한 성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보통 BQ가 부족한 선수들은 아무리 주위에 센스 좋은 팀 동료를 배치시켜도 제자리 걸음인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튜리아프는 적어도 이런 타입은 아닌 듯 싶습니다. 찬스 메이커들 사이에서 본인의 시야도 한층 넓히는 긍정적인 결과를 얻고 있습니다. 수비력은 여전하고, 공격에선 패싱 로테이션의 일원으로 충분히 어울리는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계속 높아져만 갔던 건 그의 목소리만은 아니었습니다.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의 립 해밀턴은 리그에서 가장 움직임이 좋은 선수입니다. 스크린을 타고 빠져 나가는 능력, 순간적으로 타이밍을 뺏는 스피드, 빠른 몸놀림을 페인트 모션에 응용하는 능력까지 단연 첫 손가락에 꼽을 만큼 대단합니다. 하지만, 해밀턴 역시 튜리아프와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포스트 업 능력이 그것입니다. 이 얘기를 들었을 때 다소 의아해 하시는 분들도 계실거라 생각되지만 해밀턴의 포스트 업 루트는 제법 쓰임새가 좋은 공격 중 하나입니다. 해밀턴의 포스트 업이 더욱 돋보이는 것은 해야 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를 정확히 파악하고 가려내줄 아는 '셀렉션' 이 뛰어나다는 것입니다. 해밀턴은 체격은 결코 포스트 업을 할 만큼 단단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리그 2번들 중에 가장 왜소한 체격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건 해밀턴 역시 이러한 자신의 핸디캡을 잘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해밀턴은 자신보다 더 큰 선수를 상대로 등을 돌려 플레이하지 않습니다. 디트로이트의 시스템은 해밀턴이 그런 무리를 하지 않아도 될 만큼의 패턴과 능숙한 1번이 존재합니다. 이미 정평이 난 팀 오펜스와 스크리너, 그리고 첸시 빌럽스의 경기 운영으로 해밀턴은 미스매치 된 상대와 마주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을 수 있습니다. 빅맨과 매치업 되었다면 기브 앤 고 플레이나 돌파를 시도하겠지만, 자신보다 작은 선수와 매치업 되었다면, 또 그 위치가 골밑과 근접한 거리라면 해밀턴은 여지없이 포스트 업을 시도합니다. 디트로이트를 상대하는 팀에만 국한된 얘기는 아니지만, 보통 이런 위기를 맞으면 위크 사이드에 있는 선수들이 또 어떤 공격을 전개할 지 모르기 때문에 경계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나 디트로이트 선수(& 빌럽스)은 이런 상황을 처리할 줄 아는 좋은 판단력을 지녔기 때문에 더 그렇습니다.
이 점에 있어서는 해밀턴도 간접적으로 나마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해밀턴은 포스트 업 플레이를 할 때 공을 높게 움켜 쥔 자신의 슛폼과 높은 타점을 적극 활용합니다. 여기에 신속한 스텝도 빠질 수 없죠. 상대에 따라 해밀턴은 여러가지 선택을 하게 됩니다. 상대가 쉽게 밀리면 투 스텝으로 저돌적으로 들아가 마무리하고, 이 과정에서 헬핑이 들어오면 침착하게 펌프 페이크를 한 다음 슈팅 파울을 유도합니다. 아무래도 골밑에 가까울수록 플레이가 한결 수월해지기 때문에 이 경우에는 더욱 많은 공격이 파생됩니다. 커트 인 하는 선수에게 패스해 이지슛을 만드는 장면이 가장 일반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상대가 제법 잘 버티고 있으면 어느 정도 공간을 잰 후 페이더어웨이에 가까운 슛을 던집니다. 슛에 있어서는 일가견이 있는 해밀턴이기에 완벽하게 견제하지 않고서는 막아내기가 어렵습니다. 가끔 트랩 디펜스를 당할 때도 있는데 거리 감각과 집중력이 좋다보니 몸에 접촉이 생겨도 즉, 밸런스가 깨져도 신기하게 들어갈 때도 많습니다.
우리가 선수를 평가할 때, 가장 특징적인 면을 부각하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잘 뜯어보면 자신이 알고 있지 못하는 뜻밖의 사실이 존재하기도 합니다. 어쩌면 본 칼럼에서 다뤘던 튜리아프, 해밀턴 말고도 더욱 많은 선수들의 가치를 놓치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꼭, 그것을 알아야 하는 필요까진 없지만 새로운 발견은 농구 보는 재미를 더 높여주기 마련입니다. 다음에도 기회가 닿는다면 이런 재미를 매니아 여러분들과 함께 공유해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