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안토니오 vs 포틀랜드 시리즈 리뷰
저는 시리즈가 시작되기 전 이렇게까지 경기가 잘 풀릴꺼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알드리지는 그의 데뷔 이후 스퍼스를 상대로 가장 높은 승률을 가지고 있는 선수이고, 이번시즌 제가 쓴 글에서처럼 포틀랜드는 스퍼스가 싫어할만한 요소를 상당히 많이 가지고 있는 팀이었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정규시즌은 정규시즌일 뿐!이라는 진리는 다시한번 통했습니다. (공교롭게도 이번 시즌 브루클린에게 시즌 4경기를 모두 패배한 마이애미 또한 4-1로 시리즈를 잡았네요.) 스퍼스는 컨퍼런스 파이널에 진출함으로써 3년연속 컨퍼런스 파이널에 진출하는데 성공했고 97년 이래로 9번째 컨퍼런스 파이널에 진출하게 되었습니다.(이 기간에서 최다)
Gentleman's Sweep (n.)
진 팀의 팬들이 들으면 조금 기분나쁠지도 모르지만, 첫 3경기를 잡은 뒤 4번째 원정경기에서 (자비롭게) 패배한 후, 홈에서 시리즈를 끝내는 모습을 gentleman's sweep(신사의 스윕;)이라고 부릅니다. 쉬워보이지 않았던 포틀랜드의 시리즈를 이렇게 일방적으로 잡아낸 비결은 무엇인지 살펴봅시다.
포틀랜드가 이번 시리즈에서 못한 두 가지 : 수비 & 공격
포틀랜드가 이렇게 공격에서 고전한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제 1옵션인 알드리지가 철저하게 봉쇄당했기 때문입니다. 포포비치는 알드리지가 웬만큼 핫해지지 않는 이상 더블팀을 붙이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수비를 준비해왔는데 스플리터가 이 수비를 매우 잘 해줬습니다. 1라운드에서 아식과 하워드를 상대로 29.8점을 맹폭했던 알드리지는 스퍼스를 상대로한 5경기에서 41.7%의 성공률로 21.8점을 득점하는데 그쳤습니다. 이 득점들도 그나마 가비지타임이 된 이후(1차전)거나, 스플리터가 아닌 디아우를 상대로 했을 때 점수를 쌓아서 이 정도였던 것이지, 스플리터가 1:1로 막을 때는 점점 더 어려운 슛을 쏘면서 고전하는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저는 1라운드에서 알드리지의 컨디션이 너무나 좋았던 것이 2라운드에서 독이 되어 돌아왔다고 보고 있습니다. 스퍼스가 막기 정말 힘들어 하는 것은 알드리지의 1:1보다도 릴라드와 알드리지의 2:2였는데, 포틀랜드는 너무 알드리지의 1:1에 집착한 느낌이 있습니다.
(스플리터의 알드리지에 대한 수비는 다음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watch.nba.com/nba/video/channels/originals/2014/05/09/20140509-aldridge-splitter.nba)
또 알드리지가 이렇게 고전할 때 풀어줘야 하는 선수가 릴라드인데, 릴라드 또한 심각하게 부진했습니다. 릴라드는 5경기에서 23개의 3점슛을 시도해 단 4개만 성공시키는 최악의 슈팅난조를 겪었습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파커의 공이 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파커가 만약 릴라드를 제대로 따라다니지 못했다면 포포비치는 분명히 레너드나 그린을 릴라드에게 붙였을 것이고 파커쪽에서 미스매치가 발생, 여기서부터 포틀랜드가 공격의 실마리를 찾아갈 수 있었을겁니다. 하지만 파커는 스크린에 걸린 이후에도 릴라드를 끈질기게 쫓아가면서 릴라드를 수비해줬고 이는 전체 수비가 잘 되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포포비치 또한 인터뷰에서 파커가 매우 수비를 열심히 해줬다면서 칭찬해줬습니다.
※ 사실 최근 몇 년간 파커의 공격비중이 높아지면서 파커는 예전만큼 수비를 열심히 하지는 않았습니다. 심지어 1라운드 초반에도 칼데론을 대충 수비하다가 주지 않아야 할 점수를 상당히 많이 줬었죠. 하지만 파커가 수비에 힘을 쏟을 때 파커는 그렇게까지 나쁜 수비수는 아닙니다. 특히 스크린을 빠져나가는 능력도 꽤 갖추고 있어서 내쉬나 폴과 같은 유형의 선수는 곧잘 수비하곤 했죠.(물론 승부처에는 포포비치가 매치업을 바꿔버리긴 했지만...) 파커가 진짜 부담스러워하는 류의 선수는 빌럽스나 키드처럼 포스트업을 끊임없이 시도하거나(이젠 이런 류의 가드는 앙교수님만 남아있으니 패스..) 데릭 로즈처럼 미친 피지컬과 운동능력으로 몰아붙이는 선수였는데, 어머 이 분야에서 리그 최강인 선수와 다음 시리즈에서 만나는군요...ㅠ)
게다가 원래 리그 평균수준의 포틀랜드의 수비는 샌안토니오의 공격을 전혀 제어하지 못했습니다. 특히 던컨과 스플리터의 명품 스크린을 받아 이어지는 파커와 레너드의 공격을 전혀 막지 못했는데, 포틀랜드의 백코트진 선수들의 스크린을 빠져나가는 능력이 좋은것도 아니고, 그것을 보완하기 위한 수비전략이 잘 짜여진 것도 아니어서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인 상황이었죠. 릴라드는 던컨과 스플리터의 품이 그렇게 좋았는지 연신 부비부비를 시전....
스플리터 엉아...(므흣)
이번엔 던컨형 품에 안겨야지...
게다가 위 두 장면에서 각각 알드리지와 로페즈의 위치를 주목하면 모두 볼 핸들러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페인트존을 사수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미드레인지를 강요하고자 하는 포틀랜드의 정해진 수비 전략입니다. 이 전략 자체는 나쁘지 않았는데 가장 큰 문제는 때때로 수비전략을 바꿀 수 있는 "패" 자체가 포틀랜드에게는 절대적으로 부족했다는 점입니다. 샌안토니오가 이와 같은 수비를 한두번 겪은 팀이 아닌데 이에 대한 해법을 찾아내지 못할리 만무하죠. 그리고 이 "패"의 부재는 소금은 못통과시켜도 용매는 통과시키는 반투명막과 같이 얇디얇은 포틀랜드의 벤치에서부터 출발합니다.
220 : 77
위의 스코어는 5경기동안 스퍼스와 블레이져스의 벤치득점 합계입니다. 포틀랜드의 구성 자체가 벤치의 비중이 매우 낮다는(반대로 이야기해서 주전의존도가 매우매우 높다.) 점은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더 중요한 사실은 1라운드 내내 잠잠했던 샌안토니오의 벤치멤버들이 완전히 살아났다는 점입니다. 벤치멤버들이 제 몫을 해줘야 한다는 사실은 모든 스퍼스의 선수들과 코칭스텝들이 잘 알고 있죠. (포포비치는 이 선수들이 없었다면 결코 홈 코트 어드벤티지를 따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이야기했고, 1차전을 승리하자마자 경기장에서 한 인터뷰에서 파커가 한 말은 벨리넬리가 돌아와서 기쁘다는 말이었습니다.) 스퍼스 벤치의 핵심은 Foreign Legion(외인부대)로 불리는 지노빌리(아르헨티나), 디아우(프랑스), 벨리넬리(이탈리아), 밀스(호주) 4인방입니다. 롤 플레이어들을 철저하게 봉쇄한 칼라일의 전략에 휘말려 전혀 감을 잡지 못하던 이 선수들(마누 제외)은 1라운드 7차전(perfect wake-up call!)에서부터 감각을 찾아서 4차전을 제외한 시리즈 내내 포틀랜드를 맹폭했습니다. 특히 극도의 부진을 겪었던 벨리넬리와 밀스는 2라운드에서 각각 42.9%와 57.1%(!!)의 3점 성공률로 경기당 2.8개의 3점슛을 성공시켰고 20.8점을 합작했습니다.
이 경향에 유일하게 역행한 선수가 지노빌리인데 마누 자신은 1라운드와 정 반대의 상당한 부진(필드골 28.6%, 3점 14.3%면 말 다한거죠;;;)을 겪었습니다. 포틀랜드는 철저하게 마누의 돌파만 막았고 계속해서 슛이 들어가지 않는 지노빌리는 상당히 고전했습니다. 썬더와의 시리즈에서도 지노빌리가 이러한 상태라면 스퍼스가 이기기는 매우 힘겨울 겁니다.
여기에 간혹 던컨이나 스플리터의 휴식이 필요할 때는 베인즈가 나와서 비교적 훌륭하게 자리를 메꿔주었습니다. 다음은 1차전에서 베인즈가 깜짝 활약을 펼치자 TNT에서 실제 방송에 내보낸 화면입니다.
합성아님...
MVP : 카와이 레너드
이번 시리즈에서 스퍼스는 레너드가 뛰지 않을 때 총 -3의 득실 마진을 기록했습니다. 이 수치에서 샌안토니오 선수 중 유일하게 -를 기록한 선수가 바로 레너드입니다. 또 레너드는 2014 플레이오프에서 전체 선수들 중 득실마진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선수(+7.8)입니다. 숫자놀이를 좀 더 해보자면, 레너드는 이번 시리즈에서 평균 17.0점(팀 2위), 7.6리바운드(2위), 2.8스틸(1위), 필드골 성공률 56.1%(2위), 3점 성공률 52.9%(2위)를 기록해 전방위적인 활약을 펼쳤고, 스퍼스는 레너드가 코트 위에 있을 때 100포제션 당 단 91.5점만을 실점(9명 로테이션 가운데 1위)했습니다. 게다가 레너드는 무실책 152분 연속기록을 이어가는 중입니다. 조던의 비디오를 보면서 연구한다고 알려진 레너드는 조던의 포스트업 기술 뿐만 아니라 이런 더블펌프 덩크까지 눈으로 훔쳤죠.
레너드는 이미 공수 양면에서 스퍼스 시스템의 핵심입니다. 스플리터가 상대 가드의 3점슛까지 체크하러 적극적인 퍼리미터 수비를 할 수 있는 배경에는 빅맨과의 리바운드 싸움에서도 전혀 밀리지 않는 레너드의 리바운드 능력이 있고, 레너드는 이제 더 이상 코너에서 3점만을 기다리다 간혹 컷인을 하는 유형의 선수가 아닙니다. 파커가 막힌다 싶으면 이제 볼 핸들링을 하면서 빅맨들을 불러내 스크린을 받아 미드레인지 점퍼를 쏘기도 하고, 미스매치 상황이 왔다 싶으면 선수들에게 위크사이드로 빠지라는 지시를 하면서 적극적으로 공격하고 있습니다. 레너드는 인터뷰에서 "점프샷만 쏘는 선수가 되고 싶지 않아요. 페인트존으로 달려들어서 파울을 얻어내고 싶죠."라고 인터뷰하며 자신의 롤이 늘어나는 것에 대해 많은 준비가 되어있음을 드러냈습니다. 크리스 폴이 단 한번도 밟지 못한 컨퍼런스 파이널 무대를 데뷔이후 3년 연속으로 밟는 레너드는 지금까지보다도 더 큰 임무를 짊어져야만 합니다. 이제 남은 다른 3팀의 에이스는 각각 르브론, 듀란트, 죠지로 모두 스몰포워드 포지션의 선수들이고 이 선수들을 상대로 레너드가 제 몫을 해주지 못하면 샌안토니오는 절대로 우승을 할 수 없을겁니다.
샼도 레너드의 상품성을 직감한 듯 레너드에게 Sugar K라는 별명을 지어줬습니다. (하지만 이미 팀원들 사이에서 불리는 The Hand(또는 The Claw)라는 별명보단 훨씬 멋이 없네요..)
WCF : SAS vs OK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