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솔을 위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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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1-05-09 22:20:20
평어체 양해부탁드립니다.
이번 세미파이널에서 가솔이 부진한 모습을 보이자 집중적인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하지만 나의 눈에는 고갈된 체력의 끄트머리를 붙잡고 최선을 다하는 그의 모습이 보인다. 그게 안타까워 그를 위한 조그마한 변명의 글을 남겨보고자 한다.
가솔은 재작년부터 지금까지 출전한 경기는 모두 주전으로 뛰었으며 평균 37분을 소화했다. -_-;;; 그 뿐인가. 플옵에서는 과거 2년간 평균 40분을 소화했다. -_-;;; 이 정도면 노예라고 불러도 좋은 수준이다. 아무리 가솔이 30살, 전성기의 빅맨이라고는 하지만 가드들도 소화하기 힘든 플레잉타임을 빅맨이 그것도 무려 3년간 소화하면 방전될 대로 방전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매치업은 노비츠키다. 신인시절에야 수비가 형편없다고 욕을 바가지로 먹던 노비지만 지금은 얘기가 다르다. 가솔이 스피드로도 힘으로도 기술로도 쉽게 제압할 수 있는 매치업이 아닌 것이다.
무엇보다 레이커스의 오펜스게임에 있어 스페이싱의 중심이 되는 것은 가솔이 아니다. 코비다.
여기서 잠깐 오해가 없도록 밝혀두는데, 코비가 까임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_-;;;; 우리는 왜 그리도 일점사의 대상을 찾아헤매는 것인가......나는 이 글을 까임의 대상을 찾기 위해 쓰지 않았음을 여기 엄숙히 선언해둔다. ;;;;;;;;
혹자는 작년 재작년 두 번의 우승의 공헌으로 따지면 가솔이 코비보다 못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렇게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코비가 매치업 상대를 제압하면서 수비를 교란한 다음 연결되는 엔트리패스가 레이커스 스페이싱의 중심이었다. 나는 그런 점에서 스탯으로 보여지는 가솔의 효율성이 더 나을지 몰라도 과거 2년간 레이커스가 리그를 제패했던 것은 코비의 공헌이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했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각설하고, 오덤이나 가솔이 하이에서 컷으로 뛰어들며 코비에게서 받는 엔트리패스는 그대로 인사이드 득점으로 연결되었고 이는 레이커스가 과거 3년간 리그 어느 팀에도 꿇리지 않는 공격효율성을 보여준 원동력이었다. 지역방어가 허용된 이후의 2000년대 농구에서 단순히 높이에 의존하는 더블포스트는 과거 같은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스크리너와 커터로서 훌륭한 움직임을 보여주는 오덤과 가솔의 링커로서의 무브먼트가 있었기에, 또 스페이싱의 시작점으로서 항상 자신의 매치업 상대를 제압해주었던 코비가 있었기에 레이커스는 높이를 이용한 농구의 진가를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 1번자리가 거의 스팟업슈터로만 활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팀어시스트의 비중이 높았던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 기인했다. 바이넘이 합류하면서 더블포스트를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지만, 사실상 트라이앵글 모션오펜스의 완성도로만 따진다면 오덤-가솔의 포스트가 훨씬 움직임도 좋았고 변화도 다양했다. 모든 모션이 다 그렇지만 특히 트라이앵글은 모든 선수들의 포지션 진퇴가 자유로울 때에 진가가 발휘되는 오펜스다. 로포스트지역에 한정된 움직임을 보여주는 선수가 하나라도 포함될 경우 그렇지 않아도 원체 다른 모션오펜스에 비해 비교적 변화가 적은 트라이앵글 모션은 그 변화가 제한되어 버린다. 과거 오닐-코비 쓰리핏 시절의 트라이앵글 모션도 그러했다. 지역방어가 없었고 워낙 오닐이 도미넌트한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별다른 문제는 되지 않았지만, 강력하긴 했어도 조던-핍의 불스 트라이앵글만큼의 아름다움은 없었다.
이야기가 조금 샜는데, 바이넘이 들어오며 트라이앵글의 변화가 적어지면서 가장 활동량이 늘어난 선수가 바로 가솔이다. 오덤-가솔의 포스트일 때는 오덤이 맡았던, 하이와 로우를 넘나들며 계속 스크린을 서고 수시로 컷을 들어가며 중거리에서 볼을 받아 점퍼를 꽂아넣어야 하는 바로 그 역할을 가솔이 맡게된 것이다. 게다가 바이넘은 상당부분의 플레잉타임을 로포스트에 자리잡고 있으니 더더욱 스페이싱을 위해 많이 뛰어다녀야하는 것이 가솔이었다. 올해는 과부하가 더 걸렸다고 보는데, 코비의 스텝스피드가 예전 같지 않아지면서 계속 하이로 나와 스크린을 서줘야 했기 때문이다. 가솔을 보면 오픈코트 때는 속공가담하랴, 하프코트 때는 하이에서 스크린서고 컷으로 뛰어드랴 정신이 없다. 수비도 마찬가지다. 센터도 그렇지만 4번포지션에서 이제는 퓨어 로포스트플레이어를 보기가 어렵다. 가솔은 수비에서도 계속 인사이드와 아웃사이드를 넘나들어야 한다. 세븐푸터가 그렇게 뛰어다니기를 37분씩 한다고 생각해보라. 사실 부상 당하지 않고 뛰고 있는게 용하다고 생각될 지경이다.
그리고 변화가 적어진 현재 레이커스 트라이앵글에 설상가상으로 문제가 생긴 것이 코비의 스텝스피드 저하다. 스페이싱의 시작점이 되어주어야할 코비가 수비수를 떨궈내질 못하니 코비에게서 죽은 패스가 나가는 비중이 높아졌다. 처음 가솔이 합류하면서 오덤-가솔 라인일 때를 돌이켜 생각해보라. 아름다운 트라이앵글 모션오펜스를 구사하던 팀이었다. 인사이드 아웃사이드에서 오픈찬스를 수도 없이 만들어내지 않았나. 이번 시리즈에서 오픈찬스가 얼마나 났었는지 한번 생각해보라. 3년전 가솔이 처음 합류했을 때 레이커스의 팀어시스트가 리그 4위, 재작년에는 리그 2위였다. 그것이 작년에는 15위, 올해는 13위에 머물러 있다. 바이넘-가솔 더블포스트로 인해 인사이드에서의 슛찬스는 늘어났지만 팀오펜스의 변화가 단순해지면서 수비수를 달고 쏴야 하는 슛의 비중도 더불어 늘어난 것이다. 이것이 스페이싱의 난제다. 림에 가까울 수록 확률은 올라가지만 스페이싱은 어려워진다. 현대농구에서 로포스트 중심의 팀오펜스 운영을 하자면 빠른 포지션 확보와 엔트리패싱레인의 확보가 필수적이다. 멤피스가 대표적인 예라고 보면 된다. 빠르게 로포스트 포지션을 확보할 줄 아는 랜돌프의 움직임, 그리고 마크가솔을 엔트리패서로 적극활용하면서 두 가지 난점을 해결하며 얼리오펜스를 정통 인사이드 하프코트게임으로 소화해내는 특이하고도 강력한 팀이 되었다. 반면 레이커스는 코비의 예전 같지 못한 스텝스피드로 인해 엔트리패싱레인을 열기도 어려워졌고, 로포스트플레이어인 바이넘은 민첩성이 랜돌프처럼 좋지 않아 로포스트포지션 확보에 시간소요가 많다. 그 결과가 공격효율성 감소로 나타난 것이다. 레이커스는 공격효율성으로 상대팀을 제압하는 것이 특기인 팀이다. 공격효율성의 감소는 팀경기력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다 준다. 그 결과가 이번 시리즈에 극단적으로 나타난 것일 뿐이다.
바이넘을 빼고 로포스트게임을 포기하자니 댈러스 프런트코트의 높이를 생각하면 그것도 좋지 않고, 바이넘을 넣고 로포스트게임을 하자니 효율성이 예전 같지 않은 진퇴양난의 상황에 처한 것이 바로 지금의 레이커스다. 3차전에서는 코비가 아닌 오덤이 윙에서 볼을 잡고 엔트리패싱레인을 여는 움직임이 보였는데, 이런 변화에서 필잭슨의 고민을 엿볼 수 있었다.
여튼 결론적으로 가솔 혼자서만 모든 책임을 져야할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열심히 뛰고도 너무 안타까울 정도로 욕을 먹는 그를 위해 변호를 해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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