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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쇼트트랙의 완성, 김기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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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9-02-19 05:56:12

 

김기훈-김동성-안현수로 이어진 쇼트트랙 올림픽 에이스 라인의 시초. 세계 정상급을 자랑하는 한국 쇼트트랙 신화의 시초를 장식한 인물이다.

 

이승훈과는 반대로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쇼트트랙으로 전향한 케이스에 속한다. 스피드 스케이팅 장거리 선수로 활동하던 고등학교 시절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발전에 출전했다가 덜컥 국대로 선발된 것. 참고로 이 때 1984년에 열린 국가대표 선발전은 최초로 시행된 국가대표 선발전으로, 김기훈은 선발전을 거쳐 선발된 최초의 쇼트트랙 국가대표 멤버이기도 하다.

 

종목을 바꾼 데 대한 어려움도 있었으나 태릉선수촌에서의 혹독한 훈련과 당시 정상급 쇼트트랙 선수들의 비디오를 구해 분석하는 각고의 노력 끝에 1988 캘거리 동계올림픽에서 1500미터 금메달을 획득하며 세계 쇼트트랙계에 화려하게 우뚝 선다. 이어 이듬해 소피아에서 열린 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 금메달 3개를 쓸어담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J76AcsClw0w

 

잠시 인대 부상으로 쇼트트랙 대표팀 에이스 자리를 이준호에게 넘겨주기도 했었으나 지독한 의지로 재활에 매진한 끝에 다시 국가대표에 선발되고, 1992 알베르빌 동계올림픽에 출전하게 된다. 이 대회 1000미터에서 김기훈은 선배이자 라이벌인 이준호와의 맞대결에서 승리하며 정식종목 기준으로 대한민국 최초의 올림픽 쇼트트랙 금메달리스트가 되었다. 5000미터 릴레이에서는 에이스의 상징인 마지막 주자로 출전하여 이후 김기훈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날내밀기로 극적으로 캐나다를 꺾고 팀에 금메달을 안겼다.

  

당시는 개인전이 1000미터 한 종목밖에 없었긴 하지만 나름 전종목 석권. 5000미터 릴레이 결승전 마지막 코너에서 인코스의 좁은 틈을 파고들고 날내밀기로 역전하는 마지막 장면에선 소름이 돋지 않을 수가 없다. 당시 릴레이에 출전한 국가대표 멤버들은 김기훈을 비롯 이준호, 모지수, 송재근으로, 공교롭게 넷 모두가 이후 국가대표 지도자를 거친다는 공통점이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eCODd5Vzrbs

 

올림픽 이후 미국 덴버에서 열린 세계선수권에서 전종목을 석권하며 5관왕이라는 금자탑을 쌓으며 '덴버의 연인'이라는 별명도 얻은 김기훈은 2년 뒤 1994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에도 출전했다. 이 때 당시 몸상태가 썩 좋지 않아 세대교체론까지 제기되고 있었던 상황이었는데 김기훈은 보란 듯이 1000미터에서 신예이자 자신을 이을 차세대 에이스 채지훈을 꺾고 금메달을 획득, 올림픽 쇼트트랙 최초의 한종목 2연패의 주인공이 된다. 1000미터 결승전 영상 이후 1998년까지 선수생활을 하다 은퇴하는데 이 때 나이는 31세였다.

 

은퇴 이후에는 울산과학대학교 교수와 국가대표팀 코치를 맡았다. 안현수의 부재로 전력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높던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남자대표팀이 상당히 좋은 성적을 냈던 뒤에는 김기훈의 지도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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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모로 현대 쇼트트랙의 발전에 지대한 공로를 끼친 인물로, 과장 약간 보태서 오늘날 우리가 보는 형태의 쇼트트랙은 직간접적으로 김기훈이 완성했다라고 해도 된다.

 

예컨대 쇼트트랙 하면 떠오르는 장면 중 하나인, 왼발을 빙판에서 떼고 오른발만으로 코너를 도는 자세를 처음 고안한 것이 김기훈이다. 아웃코스 추월만이 일반적이던 당시 쇼트트랙계의 상식을 깨고, 코너를 돌자마자 인코스로 추월한 후 아웃코스로 빠지며 코너를 돌고 다시 인코스를 차지하는 소위 호리병 주법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지금은 정석이지만 당시에는 혁신적인 발상으로, 끊임없이 연구와 자기발전에 힘썼기에 가능했다.

 

이에 대해 부연하자면 원래 쇼트트랙 초창기에는 추월하면 당연히 아웃코스 추월 뿐이었다. 뒤처져 있는 선수가 주행거리상의 손해를 감수하면서 폭발적인 스피드로 아웃코스 추월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 구도였다. 그러나 김기훈이 '호리병 주법'이라는 혁신적인 전술을 들고 나오면서 인코스 추월의 개념을 도입하였다. 1)앞선수를 쉽게 제낄 수 있고 2)추월 후 아웃코스를 방어하면서 자리를 지키기도 용이하고 3)주행거리도 단축시킬 수 있는 '호리병 주법'은 이후 한국선수들의 주무기가 되었고, 서양선수들에 대한 피지컬 열세를 극복하고 한국이 세계 쇼트트랙을 제패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이었다.

 

또한 선수들이 코너링시에 빙판에 짚는 왼손과 빙판 사이의 마찰력을 늘리기 위해 장갑에 에폭시수지를 부착하는데, 이것도 이준호와 김기훈이 선수시절 장갑에 본드를 붙인 것이 시초이다. 피니쉬라인 통과시에 양 스케이트날이 빙판에서 떨어지면 안된다는 규정에도 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쳤다고 보기도 한다.

 

※ 출처: 나무위키 (하단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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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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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9 06:00:22

이준호, 모지수, 김기훈...처음으로 숏트랙의 정상을 밟았던 한국 선수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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