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의 수치(South Korea's shame)라는 어제 CNN 톱 기사
미국의 뉴스 전문 매체인 CNN은 어제 온라인 톱기사에 남한의 수치(South Korea's shame)라는 제목으로 1987년에 세상에 드러난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을 집중 조명했습니다.
http://edition.cnn.com/2016/10/25/asia/south-korea-brothers-home-abuse/
29년 전에 터진 일이라 우리나라의 젊은 사람들에게는 생소할 수도 있고, 연배가 있는 분들도 이름은 들어봤지만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답변하기 일쑤인 사건입니다.
하지만 형제복지원 사건은 소설과 영화 ‘도가니’로 인해 발생 후 7년 만에 사회문제화 되었던 광주 인화학교 사건이나 전라도 섬지역에서 현재도 성행하고 있는 섬노예 사건보다 훨씬 극악무도한 한국판 아우슈비츠 사건입니다. 당시의 피해자 중 일부는 부산 형제복지원에서 발생했던 감금, 학살, 노예화에 대한 진상규명을 지금까지도 원하며 각종 인권단체와 인권변호사들을 찾아다녔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들은 대답은 너무 오래 전에 발생했고 대법원 판결이 난 사건이라 획기적으로 새로운 증거가 나타나지 않는 한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말 뿐이었습니다. 2~3년 전에 한겨레신문과 뉴스타파에서 한동안 재조명을 시도했지만 별로 바뀐 것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형제복지원 사건이 어제 CNN에서 집중 보도된 것입니다.
사건의 발단은 서슬 퍼런 유신정권이 1975년에 제정한 내무부 훈령 410조에서 비롯됩니다. 이 훈령의 목적은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 데 지장을 주는 전국의 거지와 부랑인들을 연고자 및 보호자가 나타날 때까지 복지원 같은 시설에 무기한 감금해 둔다는 것입니다. 그 훈령은 5공화국으로 정권이 바뀐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고 적극적으로 시행되었고, 그 덕분인지 올림픽이 치러진 1988년에는 전국에 거지와 부랑인들이 거의 사라진 상태였습니다.
부산 형제복지원은 이른바 부랑인 보호시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버스나 길에서 껌을 팔거나 걸식을 하는 사람, 공원에서 잠을 자는 사람, 술에 취해 길에 쓰러진 사람들을 무더기로 감금한 곳이었습니다. 지금 우리의 생각으로는 가난과 무능력에 대해 국가가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처벌을 한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울 수도 있으나 30년 전 우리나라는 상식에 벗어나는 일들이 공공부문에서도 흔히 벌어지던 시절이었습니다.
부산 형제복지원은 내무부 훈령 410조에 따라 거지와 노숙자, 가출인, 떠돌이 고아들은 물론 길 잃은 어린이 등 멀쩡한 사람이 부랑인 취급을 당하여 유인 약취 또는 폭행 납치를 당한 경우까지 포함해 3000여명이 수용되어 있었습니다. 형제 복지원에서는 수용자들을 장기간 감금하면서 노임도 주지 않은 채 강제노역을 시켰습니다. 형제복지원은 군대식으로 운영되는 하나의 작은 왕국이었고, 박인근 원장은 왕이었습니다. 수용자들은 군번 같은 수용번호를 부여받아 내무반 생활을 하였으며 소속 소대장과 중대장의 명령에 절대 복종해야 했습니다. 조금이라도 반항의 여지를 보이는 경우에는 갖가지 이유를 만들어내 매일 구타를 가했습니다. 10세 이하의 아동이라 할지라도 예외는 없었고, 여성의 경우에는 구타 이외에도 성폭행이 더해졌으며 거의 모든 수용자들에게는 제대로 된 식사조차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수용자들은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각자 봉제공장, 목공소, 철공소 등의 작업장에 배치되어 쉴 새 없이 일해야 했습니다. 도망치려 했거나 명령에 반항한 수용자들에게는 엄청난 형벌이 가해졌습니다. 수용자들은 툭하면 얻어맞아 죽어갔습니다. 의사들은 얻어맞아 죽은 수용자들이 자연사했다고 진단서를 끊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시체는 의과대학에 실습용으로 3백~5백만원 가량에 팔려갔습니다. 형제복지원에서는 이런 일이 1976년부터 1987년까지 지속되어 그 사이에 죽어나간 사람만 513명이라는 공식 통계가 있습니다.
이런 일을 자행하면서도 형제복지원 박인근 원장은 매년 20억 원에 가까운 돈을 국가 및 부산시로부터 지원받았고, 1981년 4월 국민포장, 1985년 5월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상하였을 뿐만 아니라 평통 상임위원에도 임명되어 있을 정도로 국가적 거물이었습니다.
부산 형제복지원은 1987년 3월 원생 35명이 탈출하면서 인권 유린 실태가 세상에 드러났지만 부산시와 정부의 고위층들은 진상을 숨기기에 바빴습니다. 박인근 원장은 오랜 법적 투쟁 뒤 마침내 기소됐으나 횡령 등 가벼운 혐의만 적용되어 고작 징역 2년을 살고 출소해 또 1천억원대의 재산으로 해외 골프장과 고층건물을 소유하고 다른 복지원들을 멀쩡히 운영했습니다. 박인근씨는 올해 6월에 사망했고 현재는 가족들이 그의 사업을 물려받아 운영하고 있습니다.
형제복지원 폐쇄이후, 완전히 잊혀졌던 그 사건은 2012년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 한종선씨가 국회 앞 시위와 책 출간으로 세상에 알렸습니다. 어제 CNN의 보도 역시 한종선씨와 당시 사건담당 검사였던 김용원씨의 증언을 통해 이뤄진 것입니다.
당시 전국에는 부산의 형제복지원과 같은 이른바 부랑인 보호시설이 여러 곳에 있었습니다. 대전 성지원, 인천 삼영원, 해남 희망원, 수원 성혜원, 서울 경생원, 동두천 광혜원, 마산 경남종합복지원 등이 그런 시설이었는데 이런 시설들의 사정도 부산 형제복지원의 경우와 대동소이했습니다. 그러나 전국의 다른 어느 검찰청에서도 이들을 손대지 않았고, 다른 복지원 수용자들은 석방되지도 않았습니다. CNN의 기사가 저의 아픈 기억을 되살려 이 밤을 우울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글쓰기 |
슬픈 과거네요...30대 중반인 저도 잘 모르는 내용입니다. 더 슬픈건 지금의 현실도 그렇게 다르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