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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 리- 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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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6-06-29 13:17:05

늘 외국 컨텐츠를 원서 그대로 해독하여 읽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그 아쉬움이 정말 진했던 책을 딱 한 권만 꼽으라면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가 쓴 《롤리타(Lolita)》를 선택하겠습니다.

"롤리타, 내 삶의 빛, 내 몸의 불이여. 나의 죄, 나의 영혼이여.
롤-리-타. 혀끝이 입천장을 따라 세 걸음 걷다가 세 걸음 째에 앞니를 가볍게 건드린다. 롤.리.타.
그녀는 로, 아침에는 한쪽 양말을 신고 서 있는 사 피트 십 인치의 평범한 로. 그녀는 바지를 입으면 롤라였다. 학교에서는 돌리. 서류상으로는 돌로레스. 그러나 내 품안에서는 언제나 롤리타였다."
(《롤리타》의 유명한 첫문장과, 소설 전개가 어떻게 될지 완벽하게 보여주는 첫문단)


《롤리타》는 책 제목 그대로 '롤리타 콤플렉스'라는, 미성숙한 소녀에 대한 성애를 일컫는 말로 쓰일 정도로 유명한 소설입니다. 소설은 주인공 'Mr. 험버트 험버트'의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전개되는데 Mr. 험버트 험버트가 자신의 의붓딸을 사랑하는, 그러나 결코 소유는 하지 못하는 지난함에 대한 이야기(라 저는 생각)입니다.


소설의 내용만큼 가치있는 것이 기발한 영어 표현입니다. 《롤리타》는 한국 정식 번역본으로 500페이지가 넘는 장편 소설인데, 그 긴 내용 모두가 시적인 언어유희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한 번 '험버트 험버트'를 발음해보셔도 좋습니다. 등장 인물의 이름 하나도 범상하지 않은, 언어유희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렇듯 역자께서 최선을 다해 언어유희도 느낄 수 있도록 각주와 미주를 가득 활용하여 번역했으나...... 아무래도 영어 그대로 읽는 것에 비해서는 그 맛이 떨어집니다. 사실 어떤 책이든 그 책을 쓴 저자가 사용한 언어 그대로 읽는 편이 좋죠.



지리한 영어 공부를 하다가, 중1 때부터 받았던 영어 교육이 문장 독해 하나를 제대로 못하니 한심하다는 생각을 하다가, 결국은 원어로 읽지 못 해 가장 아쉬웠던 소설을 하나 꼽으며 망상을 마무리합니다. 다시 공부하러 가야겠네요. 시간 나시면 인간이 내세울 수 있는 고전 중 하나가 된 소설 《롤리타》를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지금 당장 읽진 못하시더라도, 이 글을 읽으시면 한 번 '롤-리-타'를 발음해보세요. 정말 혀끝이 입천장을 따라 여행하다 '타-'에서 앞니를 가볍게 건드리는, 그런 경험을 하시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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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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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6-06-29 14:43:00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글을 읽는 것은 일반적인 독서 행위와 분명 조금 다릅니다. 많은 문학 작품들이 보편적인 인류의 가치를 밀접한 거리에서 재조명하여 새로운 시각 혹은 깊은 공감을 이끌어냄을 통해 독자의 마음에 울림을 남긴다면, 그의 작품은 글쓰기라는 craft가 극한의 기술력에 도달했을 때 그 기술력의 완성도 하나 만으로도 경외심을 자아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합니다. 고등학교 때 그의 자서전, Speak, Memory를 통해 그의 문장을 처음 접하며 나름 영어에 재능이 있다고 느꼈던 제 믿음이 산산조각 났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살면서 그렇게 눈꼴 시려울 정도로 구김없고 의도되지 않은 자기자랑으로 가득찬 자서전은 처음 보았는데, 문장을 하나하나 읽어 내려갈때마다 그의 단어선택, 배치, 운율, 흐름에 감탄하여 탄복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내용과는 별개로 prose만으로 감동을 자아내던 작가는 그가 처음이었고, 제가 한글보다 영어로 더 글을 잘 쓰고싶도록 원하고 노력하게 만든 사람이기도 합니다. 중학교때 주석으로 가득찬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한호흡에 읽어내려가지 못할 때 느끼던 감정이 눈 앞에 히말라야를 마주하고 있는 탐험가의 마음과 가까웠다면, 나보코프를 통해 경험한 경외감은 17세기 유럽인들이 동양문화를 조우했을 때 느낀 신비함이 더해진 놀라움같은 감정이 아니었나 생각해봅니다. 원어로 읽게 될 기회가 생기신다면 Speak, Memory도 꼭 읽어보실 것을 적극적으로 추천합니다. 롤리타에 대한 글을 읽으며 너무 반갑고 즐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WR
Updated at 2016-06-29 14:47:25

제가 생각하는 글이란 글 자체가 목적이 아닌, 자신의 생각을 담아내는 도구였습니다. 그런데 《롤리타》를 읽으며 글 그 자체가 목적인 글도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지요. 아마도 아가페 님께서 말씀하신 《Speak, Memory》는 그 극한에 닿아있는 책이라 짐작합니다. 읽을 실력을 쌓아 나중에라도 꼭 읽어봐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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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29 14:16:35

얼마 전에 첫 도입구가 유명한 소설 탑10을 꼽았던 게시글을 보았었는데, 그 책들 모두 훌륭한 책이지만 전체 소설 속에서 느껴지는 문장의 미려함만을 놓고 보면 그 중에서도 최고라고 생각하는 문학 작품입니다.

Agape님이 추천해주신 책도 꼭 한 번 도전해봐야겠습니다.
2016-06-29 16:12:24

책을 미친듯이 읽었던 시절도 있었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거진 손을 놨었는데요.. K2님이 올려주신 글을 보니 탐독의 즐거움이 무엇인지 다시금 깨달을것도 같습니다
해지기 전에 도서관이나 다녀와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WR
2016-06-29 17:38:07

읽는 즐거움을 다시 찾는다는 건 좋은 일이죠.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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