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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버의 검 알렉스 잉글리쉬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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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723
2008-09-03 17:44:38

#제가 예전에 네이버에 남긴 글을 조금 수정해서 올립니다. 원문은
http://news.naver.com/nboard/read.php?board_id=sports_dis06&page=3&nid=25594&st=writer_name&sw=kiddnolook
여기 있습니다.


다음 표현들은 모두 같은 인물을 지목하고 있습니다.

USC 출신 NBA 선수중 유일한 명예의 전당 멤버, 덴버 프랜차이즈 최다 득점자, 원조 런앤건 덴버의 선봉장...

딱 보면 화끈하고 공격적인 선수가 떠오르실 법도 합니다. 그런데 오히려 이 선수는 팀 던컨과 조금 닮은 면이 있습니다. 바로 묵묵히 자신의 커리어를 쌓아간다는 것이죠. 조용히 그리고 표정없이....^^ 그런데 차이가 있다면 우승반지가 없다는 것이죠. 이 선수는 커리어내내 파이널에 오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80년대 NBA하면 누가 떠오릅니까? 특이한 지역 광팬이 아닌 이상 리그를 양분한 두 남자 매직과 버드를 먼저 떠올릴 것이고 셀틱 프라이드와 쇼타임 레이커스가 떠오를 겁니다. 이들 외에도 대표적인 80년대 선수하면 필라델피아의 듀오 모제스 말론과 닥터 J, 휴먼 하이라이트 필름 다미닉 윌킨스 등이 생각나실 겁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80년대하면 딱 떠오르는 스타들 중에 득점기계가 거의 없습니다. 떠올려봐야 조던과 다미닉 정도입니다. 분명 이들 외에도 득점 기계는 당시에 꽤 있었는데 말이죠. '80년대 NBA!'할 때 당대 득점 기계들을 떠올릴 팬은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워낙 매직과 버드가 찬란했기에 그럴 수밖에 없겠네요. 뉴욕의 버나드 킹이나 올해에 명전에 헌액된 아드리안 댄틀리, 스퍼스의 아이스맨 조지 거빈 등을 비롯해 이 선수도 그러한 유형 중 하나죠. 이 선수가 바로 "The Blade" 알렉스 잉글리쉬입니다.

Alexander English는 1954년 1월 5일에 사우스 캐롤라이나 주 콜럼비아에서 태어났습니다. 여느 흑인들처럼 그의 어린 시절도 그리 넉넉하지는 않았습니다. 그가 어렸을 당시에는 흑인 인권 운동이 미국 전역에 퍼지고 있었고 흑인들, 특히 미국 중남부 지역의 흑인들은 그 때문에 피해를 입어야 했습니다. 알렉스도 어린 시절 백인들에게 집 부근에서 린치를 당하는 등 여려 안 좋은 일을 겪었지만 그는 콜럼비아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가 고락을 같이 한 흑인 친구들과 헤어지기 싫어서였다고 합니다. 하다 못해 그는 하루의 대부분을 집에서 보내면서도 고향을 떠날 생각은 하지 않았죠.

이런 잉글리쉬의 인생을 바꾼 것은 농구였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신체가 보통 이상이었던 잉글리쉬는 중학교 때부터 농구에 전념하였고 콜럼비아의 Dreher High School에서는 평균 38점 14리바운드를 기록하는 괴물이 되어 지역구 스타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농구의 인기가 이웃 동네인 노스 캐롤라이나 주에 비해 적었던 사우스 캐롤라이나에서의 그의 존재는 충분히 주목받을만 했죠. 하지만 여러 러브콜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농구에 전념하게 해준 부모님과 친구들과 헤어지기 싫었던 잉글리쉬는 USC로 진학을 합니다.


NBA에 첫 발은 딛었지만..


잉글리쉬는 대학 4년동안 총 1972점을 넣었고 이는 사우스 캐롤라이나 대학 최다 기록으로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습니다. 대학시절 신장 201에 체중이 85키로밖에 안되면서도 골밑을 자유자재로 넘나든 잉글리쉬는 그야말로 대학에서도 보석이었습니다. 대학 4년간 평균 17.8점 9.6리바운드를 기록한 잉글리쉬는 1976년 드래프트를 신청합니다.

그러나 프로는 잉글리쉬의 생각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76년에는 훗날 보스턴 왕조의 핵심이 되는 로버트 패리쉬를 비롯해 올해 2007년에 유타에서 영구결번되고 올해 명전에 헌액된 아드리안 댄틀리, 정통 포인트가드이자 80년대에 휴스턴 트윈타워를 보조하게 되는 존 루카스 등 만만찮은 월척들이 드래프트에 참여했기 때문이죠. 현 레이커스 GM인 미치 컵책도 이 드래프트 출신이었고 현재 샬럿에서 뛰는 숀 메이의 아버지인 스캇 메이도 이 드래프트에 참여했습니다. 게다가 알렉스는 대학에선 괴물이었지만 프로에선 트위너였습니다. 호리호리한 체격도 문제였지만 그 체격에 퍼리미터 슛이 약했기 때문이었습니다. 20피트 밖에서 슛 정확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알렉스의 약점이 그의 발목을 잡은 것이죠. 결국 알렉스는 2라운드 6번, 전체 23순위로 밀워키에 입단했습니다.

당시 밀워키는 카림이 빠져나간 후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카림이 나간 첫 시즌인 75-76시즌에는 38승밖에 거두지 못하는 등 성적이 하락세였습니다. 알렉스의 데뷔 첫 해에는 시즌 초반 3승 15패밖에 거두지 못하는 등 대책이 없었죠. 결국 구단은 팀을 우승으로 이끈 바 있었던 래리 코스텔로를 해임하고 보스턴에서 은퇴한지 얼마 안 된 돈 넬슨을 새 감독으로 선임합니다. 코스텔로 밑에서 별로 중용되지 않던 알렉스는 젊은 감독 돈 넬슨이 자신을 중용해 주길 바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넬슨 감독 역시 알렉스에게 큰 기대를 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여전히 10분 출장하고 폭풍 5점 넣던 식스맨에 불과했습니다. 트위너 기질이 다분했던 알렉스가 넬슨 눈에는 마음에 들 리 없었습니다. 넬슨 감독은 알다시피 올라운더는 기용해도 트위너는 웬만해선 기용 안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스몰라인업을 구상하던 넬슨 감독은 알렉스를 3,4번 포지션으로 쓰려 했는데 그게 영 안 되었던 겁니다. 당시 밀워키에 스몰라인업에 적당한 선수는 없었고 알렉스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2년차까지도 후보 신세였던 알렉스는 결국 77-78시즌을 끝으로 밀워키를 나오게 됩니다.

알렉스가 밀워키를 떠나 정착한 곳은 인디애나였습니다. 알렉스는 당시 팀의 주전 파워포워드였던 제임스 에드워즈(배드보이즈의 그 선수 맞습니다)와 포워드라인을 구축하여 비로소 자리를 잡은 모습을 보였습니다. 에드워즈와 알렉스 모두 그 해에 평균 8개 이상의 리바운드를 잡아내며 제법 견실한 포워드라인을 구축하는데 성공하죠. 하지만 그 둘을 비롯해 조니 데이비스같은 걸출한 가드를 두고도 인디애나는 ABA에서 옮겨온 후로 도통 업그레이드를 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알렉스도 계속 인사이드 스몰포워드로 뛰는 것을 만족해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원하는 플레이는 내외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플레이였는데 인디애나에선 그게 가능하지 않았던 거죠. 팀은 계속 그가 인사이더처럼 뛰기를 원했습니다.

결국 2시즌도 못 버티고 알렉스는 79-80시즌 도중 덴버로 트레이드 됩니다. 벌써 3번째 팀이었습니다. 이대로 저니맨이 될 거라는 예상이 주를 이뤘지만 알렉스는 덴버에서 남은 24게임동안 평균 21.3점, 9.4리바운드라는 좋은 기록을 남기며 희망을 보였습니다. 비록 덴버는 플옵에서 탈락했지만 알렉스로서는 충분히 희망을 보여준 시즌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그랬던 그에게 드디어 아버지와 같은 사람이 나타납니다.


더글러스 모를 만나 극강의 런앤건을 이루다


1980년 여름, 덴버 프론트는 드래프트에서 UCLA의 스코어러인 키키 밴더웨이를 지명했습니다. 그리고 그해 12월에 도니 월쉬를 해임하고 더글러스 모를 감독으로 선임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덴버에 빛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덕 모의 농구는 세 어절로 "조낸 달리는 거다"였습니다. 기존의 센터 댄 이셀과 원조 스카이워커 데이비드 톰슨에 알렉스과 신인 밴더웨이가 합류한 덴버는 공격농구에 적합한 라인업을 갖췄고 그해 경기 평균 121점을 넣는 괴력을 선보였습니다. 톰슨과 이셀, 알렉스 셋이서 평균 70점을 합작했고 밴더웨이도 평균 25분동안 11점을 기록했습니다. 비록 플옵엔 또다시 실패했지만 그것은 단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81-82시즌, 덴버의 공격농구는 드디어 빛을 발하기 시작합니다. 모 감독은 이셀과 밴더웨이, 알렉스를 프론트에 세우는 극단적 라인업을 세웠고(지난 06-07시즌에 스티븐 잭슨을 파포로 세운 돈 넬슨 감독 이상의 극단행위였습니다. 밴더웨이는 포워드였지만 골밑에서 비비는 능력은 전무하디시피 했습니다.)톰슨을 식스맨으로 돌렸습니다. 이는 예상 외의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알렉스가 평균 25.4점, 이셀이 22.9점, 밴더웨이가 21.5점을 넣었습니다. 잉글리쉬를 제외한 나머지 출장시간이 34분 아래였다는 걸 감안하면 엄청나죠. 톰슨은 단 20분 뛰고 15점을 넣는 폭발력을 과시했고 팀의 나홀로 수비수인 T.R.던은 재빠른 백코트 능력으로 팀의 수비 공백을 줄여주었습니다. 덴버는 이 시즌 무려 평균 126.5점을 넣었고 최초로 한 시즌 전경기 세자리수 득점이라는 기록도 세웠습니다. 알렉스는 이 해에 처음으로 올스타에 선정되는 기쁨도 누렸습니다. 덴버는 이 해 46승을 거둬 플옵에 진출합니다. 비록 올스타 스윙맨 월터 데이비스의 피닉스에게 1라운드에서 패하지만 전년도에 비하면 상당한 성과였습니다.

다음 시즌에도 극단의 런앤건은 계속되었습니다. 알렉스-키키-이셀의 3인방은 평균 75.7점을 합작하여 극강의 득점력을 과시했고 알렉스는 이 해에 생애 유일한 득점왕을 차지합니다. 알렉스에게는 칼날이란 뜻의 "The Blade"라는 별명이 붙여졌죠. 공격 기회에서 상대를 순간적으로 베어버리는 사무라이처럼 알렉스는 폭발적인 득점으로 상대를 칼질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해 득점 2위는 팀 동료 키키였으니 덴버는 리그 1,2위 득점기계를 보유한 최고의 공격농구 팀이었습니다. 포인트가드 T.R.던도 생애 처음으로 디펜시브 팀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덴버는 경기 평균 123점을 넣어 리그 득점 1위를 수성하는 데 성공합니다. 그리고 이 해 45승으로 1라운드에서 피닉스를 꺾으며 리벤지에 성공하지만 2라운드에서 '아이스맨' 조지 거빈의 샌안토니오에게 패하고 맙니다.

'대체 무슨 농구를 하길래'라고 궁금하실 지 모르겠지만 앞에서도 말했듯이 덴버의 농구 모토는 3어절로 "조낸 달리는 거다"였습니다. 수비하는 선수라곤 가드인 T.R.던밖에 없었고 그나마 유일한 수비수인 이 선수도 달릴 때는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리바운드를 잡았다 싶으면 5명이 일제히 상대편 코트로 달려서 득점하고 오는 팀이었던 겁니다. 수비 공백 같은 건 염두에 두지 않고 달리는 거죠. 알렉스는 최상급 운동능력을 지니진 않았지만 정확한 미들슛과 뛰어난 1대1능력, 재빠른 속공 피니쉬로 덴버의 속공농구를 이끌었습니다. 이셀은 특유의 사이즈와 준수한 스피드와 슛으로 상대 골밑을 휘저었고 밴더웨이는 셋 중 퍼리미터 슛이 가장 정확했습니다. 아마 3인방이 공격 다하는 농구로만 따지면 90-91시즌의 Run TMC보다 이 때의 덴버가 최강일 겁니다.


런앤건으로 우승에 도전하다


그 다음인 83-84시즌에도 덴버의 공격농구는 계속되었지만 팀은 도통 진보를 하지 못했습니다. 성적이 38승으로 하락한 것이죠. 플옵에서도 1라운드에서 아드리안 댄틀리와 대럴 그리피스의 유타에게 패하고 말았습니다. 셋이서 팀 공격을 다하는 덴버의 공격농구에는 한계가 있었던 겁니다. 더 큰 문제는 노쇠화를 겪는 이셀이 홀로 버티는 골밑이었고(덴버는 리바운드 마진에서 계속 리그 하위권을 맴돌았습니다.) 이를 절감한 덕 모 감독은 팀 로스터에 변화를 주기로 결심합니다. 이 때 포틀랜드가 덴버의 제안을 수락하게 됩니다.

덴버는 1984년 여름, 키키 밴더웨이와 1라운드 지명권 2장을 포틀랜드에 주고 캘빈 냇, 웨인 쿠퍼, 팻 레버를 영입했습니다. 캘빈 냇과 웨인 쿠퍼는 다소 작은 신장에도 리바운드 능력과 공격력이 뛰어난 포워드였고 레버는 다방면으로 뛰어난 올스타 가드였습니다. 밸런스를 강화한 덴버는 84-85시즌 52승을 거두며 중서부 디비전 1위를 차지하는 최고의 성적을 거뒀습니다. 76년에 NBA에 가입한 후 최고의 성적이었습니다. 경기 당 득점은 120점에 불과(?) 했지만 120점을 넘기던 평균 실점을 117점까지 줄이며 공수 밸런스가 강해진 게 큰 요인이었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덴버의 공격농구 색채가 옅어졌느냐, 그건 아닙니다. 여전히 '조낸 달리는' 덴버식 농구는 변함없었습니다. 알렉스는 평균 27.9점으로 여전히 팀내 리딩 스코어러이자 리그 탑 스코어러였습니다. 하지만 덴버는 여섯 명의 선수가 두자리 득점을 기록하는 균형 잡힌 오펜스를 자랑했습니다. 셋이서 다해먹던 이전과는 크게 달라진 거죠.

85년, 덴버는 샌안토니오와 유타를 차례로 물리치고 NBA 편입 후 처음으로 콘퍼런스 파이널에 진출했습니다. 특히 레버는 2라운드에서 윌트 체임벌린 이후 처음으로 한경기 15점 15리바운드 15어시스트를 기록하는 위력을 발휘하며 알렉스를 든든히 뒷받침했습니다. 콘퍼런스 파이널 상대는 쇼타임 레이커스였습니다. 공격농구 팀간의 대결이 드디어 펼쳐진 겁니다. 요즘이라면 피닉스 대 골든스테이트라 할까요? 하지만 매직으로부터 시작해서 카림, 워디, 스캇, 맥아두, 쿠퍼 등으로 이어지는 레이커스의 쇼타임은 알렉스에겐 너무 버거운 상대였습니다. 알렉스는 시리즈 평균 29점으로 활약했지만 덴버는 1승 4패로 무릎꿇고 말았습니다. 특히 5차전에는 153-109, 무려 44점차로 완전히 짓밟히고 말았죠.

이듬해 덴버는 47승을 거두며 다시 플옵에 올라왔습니다. 센터 댄 이셀이 은퇴했지만 잉글리쉬가 커리어 하이인 평균 29.8점을 넣었고 팀의 수비도 전년보다 한층 강화되었습니다. 덴버는 1라운드에서 드렉슬러와 키키의 포틀랜드를 3승 1패로 누르고 2라운드로 올라왔지만 또다른 난적을 만났으니 바로 휴스턴의 트윈타워였습니다. 84년 신인왕이자 85년 올스타 MVP였던 원조 사기유닛 랄프 샘슨과 '드림 쉐이크' 하킴 올라주원은 냇과 쿠퍼, 알렉스의 프론트코트를 농락했고 알렉스는 2라운드에서 꿈을 접어야 했습니다. 85년과 86년이 덴버가 우승에 가장 근접했던 때라는 것을 생각하면 알렉스에겐 너무나도 아쉬운 순간이었습니다.


재도전, 그러나 어김없이 지는 태양

덴버는 86-87시즌부터 서서히 내리막길의 조짐을 보였습니다. 그 시즌에 캘빈 냇이 개막전에서 무릎 부상을 당해 시즌을 통째로 마감하는 날벼락을 맞았던 것입니다. 그 해 37승을 거둬 어떻게 플옵에 가기는 했지만 그 해 65승으로 절정에 달한 레이커스에게 1라운드에서 3-0으로 스윕당하고 맙니다.

그러나 하늘이 덴버를 완전히 버리지는 않은 모양이었습니다. 덴버는 87-88시즌 아이버슨 이전 최고의 단신 득점원이었던 마이크 애덤스를 영입하여 백코트를 강화했습니다. 잉글리쉬-애덤스-레버의 새로운 삼각 편대는 프랜차이즈 최다인 54승을 올리며 마지막 우승을 노리게 됩니다. 1라운드에서 슈터 데일 엘리스의 시애틀을 꺾으며 희망을 놓지 않았지만 2라운드에서 마크 어과이어, 롤랜도 블랙맨, 데틀렘프 슈렘프 등 올스타로 구성된 댈러스에게 2승 4패로 좌절하고 말았습니다.

88-89시즌 피닉스에게 수비수 T.R.던을 내주고 스윙맨 월터 데이비스를 영입한 덴버는 가공할 백코트진을 앞세워 44승을 기록, 도전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 해는 알렉스에게 뜻깊은 해인데 알렉스는 이 시즌 역대 최초로 8년 연속 한 시즌 2000점 이상이라는 대기록을 세우게 됩니다. 덴버에 있는동안 단 한번도 부상치레를 하지 않은 알렉스의 꾸준한 득점력이 드디어 빛을 발한 것이죠. 윌트, 다미닉 등이 세운 7년 연속 2000점의 기록을 그가 최초로 넘어선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개인기록을 팀의 우승으로 기념하기에 덴버는 너무 약했습니다. 결국 1라운드에서 톰 챔버스와 KJ, 제프 호너섹의 피닉스에게 3-0완패를 당하고 맙니다.

알렉스도 서서히 지쳐갔습니다. 그도 어느덧 30대 중반이었고 팀의 입지는 점점 좁아졌습니다. 이미 서부에는 레이커스를 비롯해 댈러스, 피닉스, 유타 등 강호들이 즐비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89-90시즌 알렉스는 덴버에 온 후 최저인 평균 17.9점에 그칩니다. 팀에 마이클 애덤스와 월터 데이비스같은 득점원들이 있긴 했지만 그가 평균 20점을 못 넘긴 건 덴버에 온 이후 처음이었습니다. 그만큼 그도 세월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콜로라도의 칼날, 허무하게 지다

1990년 알렉스는 FA로 풀렸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덴버는 그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그의 노쇠화도 한몫하긴 했지만 구단이 애덤스를 중심으로 팀을 리빌딩하고 스윙맨 올랜도 울리지를 잡아보기 위해 그를 버렸던 것입니다. 알렉스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다."라는 표현으로 충격을 표현한 그는 댈러스로 팀을 옮깁니다. 하지만 정신적 충격이 컸던지 그는 마지막 시즌인 그 해에 평균 9점에 그쳤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덕 모를 해임하고 LMU 대학의 폴 웨스트헤드를 선임한 덴버도 그해 20승에 그치는 암담한 성적을 거뒀습니다. 물론 댈러스도 그 해 28승에 그쳤죠. 루즈-루즈(lose-lose)였던 겁니다.

사실상 정든 팀에서 쫓겨난 상황에서 마지막 커리어를 초라하게 마감한 잉글리쉬는 91년 초가을에 전격 은퇴를 선언합니다. 그 해 그의 나이 37세였습니다. 언론에선 "알렉스가 정신적 쇼크를 이기지 못했다."며 덴버를 간접적으로 꼬집었고 덴버 팬들도 그의 은퇴를 전후로 구단 프론트진을 비난했습니다. 초라한 은퇴였지만 모두가 그의 편이었으니 알렉스도 그리 허전하지 않게 은퇴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알렉스는 91년 이탈리아 데피 나폴리 팀에서 18경기 동안 평균 13.9점을 기록하고 선수생활을 완전히 접었습니다.


조용한, 그러나 위대한 '검객'

80년대에 가장 많은 득점을 올린 선수는 누구일까요? 바로 알렉스 잉글리쉬입니다. 그는 80년부터 89년까지 총 19862점을 기록했습니다. 이는 조던과 다미닉의 기록을 훨씬 뛰어넘는 것입니다. 또, 통산 25613점을 올려 NBA 역대 12위에 올라있으며 올스타에 8회 선정되었고, 올NBA 세컨드 팀에 3번 올랐습니다. 또, 덴버 프랜차이즈 역사상 최다 득점(21645점), 최다 어시스트(3679개), 최다 출장시간(29893분)에서 1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히나 8년 연속 2000점은 칼 말론(11년 연속)만이 깬 위대한 기록입니다. 현역 득점기계들 중 이에 근접한 선수는 3년 연속 2000점 이상을 기록중인 코비와 르브론이 유일합니다. 소리없이, 군더더기없이 상대를 제압하는 검객처럼 알렉스는 소리없이 자신의 커리어를 쌓았던 것입니다.

그의 공로를 인정하여 덴버는 92년 10월 사과의 의미에서 그의 등번호 2번을 영구결번 시킵니다. 비단 사과의 뜻이 아니더라도 그의 업적은 마땅히 높게 평가받아야 할 것입니다. 영구결번은 당연한 보답이라는 거죠. 잉글리쉬는 이날 영구결번식에서 "항상 무언가 빠져 있었다는 느낌이었는데 그것이 오늘 사라졌다. 새로운 시작이 될 것이다."라며 기쁨을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알렉스는 97년 무난히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습니다.

혹시 자신이 주목받지 못해서 좌절하고 계십니까? 자신의 커리어가 잊혀질까봐 걱정하는 분도 많을 겁니다. 하지만 꼭 누구한테 비춰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언제든 누군가는 알아줄 것이며 이를 알렉스 잉글리쉬가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매직, 버드, 다미닉, 닥터 J 등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빼앗겼지만 그의 커리어는 여전히 높이 평가되고 있습니다. NBA 스카우터계의 살아있는 전설인 마티 블레이크는 "알렉스의 사소한 문제는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가 내가 만난 명예의 전당 멤버 18명 중의 한 명이라 의심치 않는다."라며 그를 높이 평가했죠. 화려함이 아닌 실속으로 레전드가 된 잉글리쉬는 분명 NBA에서 빠져선 안될 중요한 인물일 것입니다. 그가 남긴 말 중 한마디를 인용하며 이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나는 화려하지도 않고 활기차지도 못하다. 내가 할일은 내게 주어진 일을 하는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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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08-09-03 18:28:12

와 .. 잘봤습니다.
그런데 120점에 불과(?)라니 ..
내년에 네네-멜로-아이버슨이 위의 3명처럼 엄청난 공격력을 보여주면 참 재미있을것 같네요 ..
jr도 톰슨이라는 선수처럼 엄청난 득점력을 ..
GO GO 덴버 너겟츠

2008-09-03 21:27:31

좋은글 잘 봤습니다.

2008-09-04 03:22:23
우리 어시스턴트 코치님
bosm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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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83
24-04-29
cleorl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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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28
cleo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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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27
dengs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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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26
bosm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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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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