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모적 분쟁을 피하기 위한 몇 가지 용어 정리
사실 전에도 한번 쓰려고 했던 글인데 괜히 파이어 나는데 부추길 거 같아서 말았습니다만 한번쯤은 정리를 하고 넘어 가는 게 무의미한 분쟁을 피할 수 있을 것 같아 써 봅니다.
농구를 보면서, 혹은 선수를 평가하면서 우리는 다양한 용어를 씁니다. 1옵션, 에이스, 코어, 리더 등등.. 그런데 가끔 보면 선수를 평가하는데 쓰는 일부 용어를 ‘개개인이 규정하는 의미’가 달라서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ex 댄토니 선즈의 에이스는 내쉬다. 아니다 득점이 더 많은 아마레다. 2012년 드림팀의 1옵션은 르브론이다 or 듀란트다” 등.
물론 ‘실력’을 평가하는 개인의 주관의 차이로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가 더 많지만 간간히 보면 용어 자체를 다르게 정의 하거나 잘못 알고 있어서 발생하는 경우도 꽤 많습니다. 실력을 평가하는 개인 주관이야 제가 어쩔 수 있는 부분이 아니지만 잘못 사용되고 있는 용어의 정의만 제대로 해도 불필요한 분쟁을 피할 수 있을 것 같아 써 봅니다.
1. 1 옵션
농구라는 스포츠는 실시간으로 굉장히 다양한 선택지를 가지고 있는 게임입니다. 볼을 쥐고 있는 한명의 플레이어로 한정해도 슛, 패스, 드리블의 선택지가 있고 어떤 슛을 할 것이냐, 누구에게 패스 할 것이냐, 어디로 드리블 할 것이냐 등등 세부 선택지는 더욱 많죠.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옵션은 선택, 혹은 선택지라는 뜻입니다.
이를 팀 차원으로 확장해 봅시다. 한 번의 공격 포제션에서 공격팀에는 5명의 선수가 있습니다. 팀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선택(옵션)은 굉장히 다양합니다만 결론적으로 최종 선택(옵션)은 어떤 방식으로 공격이 전개 되었든지 누군가가 슛을 쏘는 것으로 마무리 됩니다. 즉 해당 포제션에서 공격을 마무리하는, 즉 슛을 쏘는 선수가 해당 포제션의 최종 옵션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1옵션을 이를 게임 전체로 확장 했을 때 즉 가장 많이 선택된(가장 많이 슛을 쏜) 선수가 First option이 되는 것입니다. 그냥 문자 그대로의 의미입니다. 다른 뜻이 (실력 가장 뛰어난 등등) 없어요. 그냥 슛을 가장 많이 쏜 (혹은 가장 많이 성공시킨) 선수가 1 옵션, 그 다음은 2옵션 인 겁니다.
이 1옵션이라는 용어는 농구를 포함해서 ‘공격 측이 공격을 마무리 할 선수를 선택 할 수 있는 스포츠’에서 쓰입니다. 야구에서 1옵션이라는 용어를 쓰는 건 본적이 없으실 겁니다. (있다면 잘못 쓰인 거겠죠) 왜냐하면 야구는 누가 공격을 마무리 할지를 선택(옵션) 할 수 없습니다. 타순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죠. 대타를 낸다 해도 수비가 거를 수 (고의사구 등) 있습니다. 그래서 야구에선 1옵션이라는 단어를 안 쓰죠. 수위타자, 강타자, 장타자, 교타자, 클러치히터 등을 써도 1옵션이란 단어를 안 씁니다. 공격을 누가 마무리 할지에 대한 선택권이 공격 측에 없으니까요.
위에 정의에 따라서 1옵션은 그냥 슛을 가장 많이 쏜, 혹은 많이 성공시킨 선수가 됩니다. 따라서 누가 1옵션인지에 대한 분쟁을 할 필요가 전혀 없어요. 스코어박스를 보면 단박에 해당 경기의 1옵션이 누구였는지 알 수 있고 시즌 기록을 보면 해당 팀의 1옵션이 누군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니까요.
예를 들어 (간단한 비교를 위해 전부 2점 슛이라 가정하고) 한 팀에 25개의 슛을 던져 40%의 확률로 성공 시켜 평균 20점을 넣는 선수 A와 16개의 슛을 던져 50%의 확률로 성공시켜 16점을 넣는 선수 B가 있다고 가정해 봅니다.
1) A는 1옵션이고 B는 2옵션이다 -> 참
2) 사실상 B가 1옵션이다 -> 거짓
3) B가 성공률이 더 높으므로 1옵션이 되어야 한다 -> 논의 해볼 문제
가 되는 겁니다. 이미 스탯지에 나와 있는 ‘사실’을 가지고 ‘누가 1옵션이냐?’ 라는 논쟁은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사실이 이미 나와 있으니까요. 대신 ‘누가 1옵션이 되어야 하냐?’ 는 논의를 해볼 수 있는 문제겠죠.
1992년 오리지널 드림팀의 1옵션은 마이클 조던이 아닌 찰스 바클리입니다. 평득 18.0으로 14.9의 조던보다 유의미 하게 높죠. 저 개인적으로는 92 드림팀의 리더 이자 최고의 선수는 조던이라는 ‘의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92 드림팀의 1옵션이 바클리 였다는 건 ‘사실’입니다.
마찬가지로 2012 드림팀의 1옵션은 가장 많은 101개의 슛을 쏴 49 성공시키고 평득 19.5점을 올린 케빈 듀란트입니다. 간간히 르브론이 1옵션이란 주장을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르브론은 13.3점으로 16.3점을 올린 카멜로에 이은 3옵션입니다.
르브론이 리더다, 르브론이 에이스다는 주장은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1옵션은 스텟에서 바로 확인 할 수 있듯이 아닙니다.
다시 한번 정의 하지만 1옵션은 가장 많은 슛을 던진/혹은 성공시킨 선수 일 뿐입니다. 더 실력이 뛰어난, 더 나은, 더 핵심의 이런 의미는 없어요. 옵션은 그저 선택지 일 뿐이고 얼마나 많이 선택 되었는지는 스텟을 확인하면 바로 나오는 부분이니까요.
때문에 1옵션은 경기에 따라 바뀌기도 합니다. 최근 골스에서 볼 수 있듯이 핫핸드인 플레이어에게 선택(옵션)을 밀어줘서 해당 경기의 평소엔 1옵션이 아니었던 선수가 1옵션이 되기도 하고 상대 매치업상 우위인 선수에게 밀어주는 경우도 있죠.
2. 에이스
그렇다면 에이스는 무슨 뜻일까요? 에이스는 트럼프 카드에서 첫 번째 카드인 A를 의미하며 여기서 유래된 의미로 첫 번째 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스포츠 쪽에선 야구에서 쓰이는데 위의 의미에서 유래되어 팀의 로테이션상 1번째 선발 투수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전투기 파일럿 중 높은 격추수를 가진 최고의 파일럿을 칭하기도 합니다.
갑자기 왠 카드에 야구에 파일럿 얘기냐 하실 수 있는데... 농구에서는 Ace의 뜻이 정의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정확히는 정의 되지도 않았지만 거의 쓰이지 않습니다. 일본과 우리나라를 제외하구요.
NBA 영어 중계를 들으실 때 Ace, 혹은 Ace player 라는 표현을 들으신 적이 있으신가요? 아마도 별로 없거나 전혀 없으실 겁니다. 대신 Best player, Best player in the team, Best offensive player, Best defensive player 라는 표현은 굉장히 자주 들어 보셨을 겁니다.
물론 Ace는 첫 번째, 혹은 최고의 라는 의미가 있긴 합니다. 하지만 정작 농구의 종주국인 미국에선 그 단어를 잘 쓰지 않습니다. ‘첫 번째 선발 투수’ 라는 명확한 의미가 있는 야구와 달리 정확한 의미가 정의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죠.
우리가 Ace라는 표현을 대중적으로 야구가 아닌 다른 스포츠에 많이 쓰는 이유는 아무래도 우리나라 최고 인기 스포츠가 야구 인게 크고 더 올라가면 일본의, 그리고 일본 만화의 영향이 큽니다. 일본 역시 야구가 최고 인기 스포츠가 그렇기 때문에 야구에서 유래된 용어를 다른 스포츠에도 많이 씁니다. 그리고 당연히 그 영향이 만화로도 가는데.. 우리가 가장 큰 영향을 받은 만화가 어떤 만화인지는 말을 안 해도 아시겠죠?
“니가 북산의 에이스다”
“산왕의 에이스 정우성”
“역시 네놈이 에이스다”
등등... 네 슬램덩크죠.
그런데 정작 농구의 종주국인 미국에선 농구에 에이스란 단어를 많이 사용하지 않습니다. 야구가 제1 인기 스포츠가 아닌데 굳이 야구에서 쓰는 용어를 가져와서 써야 할 이유가 없으니까요. 야구는 풋볼, 하키, 농구와 함께 4대 스포츠로 묶이는데 이중 1위는 풋볼이며 최근의 MLB는 오히려 젊은 층에게 어필하지 못해 NBA 보다 미국 내에서 대중적 인기가 떨어진다고 평가되죠.
얘기가 길어졌는데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농구에서 Ace라는 표현을 쓰지 말자’ 가 아닙니다.
‘농구에서 Ace의 의미는 정의된 것이 없다’입니다.
물론 Ace란 단어 자체에 첫 번째, 혹은 최고의 라는 의미가 있긴 합니다. 그런데 농구에서 최고의 선수는 어떤 선수일까요? 최고의 득점력을 가진 선수? (1옵션) 혹은 최고의 수비력을 가진 선수? (Best defensive player) 혹은 공격력과 수비력을 총합해서 최고의 선수? (이것도 명확한 단어가 없습니다만 이련 경우 보통 Best player 란 단어를 씁니다) 아니면 전술의 핵심인 선수? (댄토니 피닉스의 내쉬, 보통 Core 란 표현을 많이 쓰죠)
단어의 의미가 같아도 논쟁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누가 최고다’ 라는 건 개인적인 의견이 포함될 수 있으니까요. 간간히 누가 에이스냐 라는 논쟁을 보면 개개인이 단어에 대한 정의부터 다른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은 득점력이 뛰어난 선수를 에이스라고 정의하시고 어떤 분은 득점력은 좀 떨어져도 리딩을 포함한 공격력이 뛰어난 선수를 에이스라고 정의하시고, 어떤 분은 공수가 다 뛰어난 선수를 에이스라 정의하시고..
단어의 정의를 ‘실력’으로 통일해도 ‘실력’ 은 주관이 포함 될 수 있는 잣대입니다. 하지만 단어의 정의조차 통일 되어 있지 않아요. 그러니 누가 에이스냐? 라는 논의가 산으로 가는 걸 본적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개인적으로는 에이스란 단어를 쓰는 것 자체가 틀렸거나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논쟁을 불러올, 혹은 논의나 하고 싶으신 어떤 주장을 펼치기엔 기왕이면 의미가 명확히 정의된 다른 단어를 사용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합니다.
이외에도 특정 선수를 칭하는데 다양한 용어를 사용합니다. (리더, 코어, 기타 등등) 하지만 위의 2단어가 가장 많은 논쟁을 불러 온다고 생각해서 글을 써 봤습니다. 하나는 단어의 정의를 잘못 알고 있어서, 그리고 하나는 정확한 정의 자체가 없어서.
이왕이면 용어의 혼란에서 오는 무의미한 논쟁보단 더 건설적인 토론이 오고갔으면 하는 마음에 써 봤습니다.
좋은글이네요..
에이스를 안쓴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