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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생각난 군복무 시절 소초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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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9-04-27 00:55:24

언제였더라 여름이었나 가을이었나 아무튼 GOP에 있을 때 였습니다.

어느 날 우리 소초 한 간부가 덩치 큰 개를 데리고 왔습니다. 원래 시각 장애인 안내견었나 인명구조견였나... 아무튼 좋은 일을 하던 개였는데 늙어서 은퇴했고, 원래 개 주인이 데리고 가도 상관 없다고 하여 데리고 왔다는군요.

아무리 자신의 생을 인간을 위해 희생해온 녀석이라지만, 개털 알레르기(그리 심하진 않았지만)와 4~5살 때 개에게 물릴뻔한 기억이 있던 저는 그 개가 달갑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뭐 알레르기나 공포는 가까이 안 가면 그만이지요. 우리 소초에 개 좋아하는 애들 많아서, 그러니까 알아서 개를 챙겨주는 전우들이 있어서 제가 불가피하게 개 가까이 갈 일 자체도 없었으니 다행이었죠.

GOP 있는 내내 그 개에게 관심 끄고 살았습니다. 근데 소초견을 좋아하던 친구들도 점점 못 챙겨주기 시작하더군요. 근무 갔다오고 피곤하니, 당연히 잘 챙겨주기 어렵죠. 그러다보니 그 개에게 냄새가 심하게 나고 어딘가 무력해보일 때도 많았습니다.

저는 그 개에게 심한 냄새가 나도, 무기력하게 주저 앉아 있어도 관심 없었습니다. 다른 날에는 얼핏 봤는데 눈꼽이 너무 많이 끼었고 눈이 심하게 충혈되어 있어 상황실에 계시던 부소초장님이었나 소초장님이었나 아무튼 간부님에게 보고 한 적은 있었으나, 개에 대한 애정이나 연민에서 우러나온 행동이 아닌 소초 내 위생이 걱정되어서 한 행동이었습니다. 아니, 핑계입니다. 그냥 제가 그 냄새를 불쾌하게 여겨 참다 못해 보고 했습니다.

아무튼 잘 못 챙겨주기 시작하니 소초견도 늙어가는 몸을 어찌할 수 없었나봅니다. 간부들이 휴가 때 동물병원 가서 검사 받고 치료도 받고 그랬죠. 다행히 그리 심하게 아프진 않았나봐요. 한 두번 병원 왔다갔다하니 생기가 돌더군요. 소대원들도 노견이 병원 왔다갔다 하는 거 보더니 경각심이 생겼는지 다시 열심히 챙겨줬고요. 그러나 GOP 철수할 때까지 챙겨준 건 2~3명뿐이었고 그들의 상당한 애정과 노력이 무색하게 소초견은 가끔이라면 가끔, 생각보다 자주라면 자주 아팠지만요. 참고로 그 2~3명에 저는 없었습니다.

이후 GOP 철수, 전역, 복학 등등등의 사건이 저에게 일어났습니다. 그 삶의 과정 속에 그 개를 생각할 겨를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갑자기 그 개가 생각나네요. '알레르기와 공포 때문에 만지지는 못해도 가끔 멀찍이서 밥이라도 챙겨줄 걸...'하는 약간의 후회와 함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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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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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9-04-24 08:29:32

나이가 들어가면서 종교는 없지만 한가지 기도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나와 인연이 닿은 모든 것들에게 최선을 다할 힘과 용기가 주어지기를..
지금까지의 삶에 그러지 못한 모든 생명, 인연들을 떠올리면 눈물 날 것 같은 때가 있으니까요.
저 자신을 더 상처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나와 인연이 닿은 모든 것에 모순과 부조리함이 있더라도 최선을 다할 용기와 힘이 있길 바랍니다.

WR
2019-04-27 00:52:19

그 "최선을 다할 용기와 힘"을 실천항 수 있는 사람이 제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그리고 감동적인 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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