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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 살았던 집을 떠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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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0-02-22 20:43:09

30대 후반이 될 때까지 저는 부모님과 함께 살았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사는 것에 있어서 불편한 점 하나도 없었습니다. 가능하다면 계속해서 이렇게 부모님과 살아도 저는 너무 좋을 것 같다, 영원히 이렇게 부모님과 오래오래 함께 살고 싶다는 마음이었습니다. 저희 부모님께서도 당장 아들과 같이 살면 너무 좋지만 너무 부모님 그늘 밑에서 제가 성장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이만 많은 것이 아닌 혼자 스스로 살아나갈 수 있는 그런 어른이 못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늘 걱정을 해오셨습니다.

 

그래서 작년 연말부터 2020년에는 혼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해보자고 하여서 독립을 준비했는데요, 생각보다 정말 만만하지가 않았습니다. 저와는 상관도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부동산 시장의 빠듯함도 몇 개월 동안 체감했고, 23년 동안 이 집에 살면서 쌓여간 제 물건들이 짐을 싸보니 정말 많구나 하는 것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들께서는 어떤 식으로 독립을 하셨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결혼을 하시게 되시면서, 혹은 학교 및 직장이 다른 지방에 있어서 독립을 하셨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혹시 그때 어떤 기분이셨나요? 저는 이사를 해서 혼자 살아나간다는 것이 많이 두렵고, 기쁘고, 설레기보다는 걱정이 앞서고, 집에 부모님의 온기가 없이 혼자서 지내야 한다는 것이 많이 걱정됩니다. 

 

무엇보다 부모님께도 죄송한 것이 제가 결혼을 해서 나가는 것이면 부모님의 마음도 많이 놓이실텐데, 혼자 나가서 살게 되다보니 마음이 편치 않으신 듯 했습니다. 어쩌면 불효라면 불효를 하고 있는 셈이지요. 그래서 부모님한테 많이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항상 저는 무엇이든지 또래 친구들보다 많이 늦었습니다. 취업도 늦었었고, 여러가지 일들을 겪으면서 안정적인 삶으로 접어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아마도 결혼도 다른 사람보다 늦게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지만, 다른 것과 다르게 결혼이라는 것은 서로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건 못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솔직히 하고는 살고 있습니다.

 

2월초부터 짐정리를 하고 이것저것 하면서 드디어 이사 d-1까지 왔는데요, 오늘 제가 살 집에서 부모님들께서 먼저 하루를 보내러 가셨고, 정 들었던 우리집이라는 표현이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곳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고 있습니다.

 

혹시 프렌즈 시트콤 보셨는지요? 프렌즈 마지막 화에서 친구들이 커피를 다 마시러 나가고, 이제 비워지는 아파트 구석구석 나오면서 마무리가 되는데요, 제가 지금 이 집, 제 방을 보는 심정이 그런 심정입니다.

 

동물의 세계에서도 새끼들이 어미한테 사냥법을 배워서 나중에는 어느샌가 홀로서기를 해내고 하는데, 저도 그렇게 해내야합니다. 무섭고, 두렵지만 더 강한 사람으로 성장해나가고 싶습니다. 

 

분명히 좋은 일인데, 이상하게 홀로 남은 이 집에서 마지막 날 밤이라 그런지 눈물도 나고, 여러가지 생각이 드는 밤입니다.

 

매니아에 계시는 모든 분들 행복하셨으면 좋겠고, 우리모두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으로 언제나 효도하는 매니아인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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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20-02-22 20:53:51

결국에는 혼자 사시는데
빠르게 적응하시리라 믿습니다.
조금 더 빨리 걱정을 떨쳐보도록 노력하세요!
화이팅입니다!!

2020-02-22 20:58:05

축하드립니다. 아무래도 첫 독립이시라면, 나홀로 생활에 적응하는데 좀 시일이 걸릴 거에요. 화이팅 하시길!

저도 집을 알아봐야 하는데 코로나 때문에 무서워서 막 돌아다니질 못하겠네요...에고

2020-02-22 21:03:35

혼자 살다보면 가끔 힘든일이 있을때 엄마보고싶다.. 하고 멍한 혼잣말을 하게 되더군요

힘내시길 바랍니다!

2020-02-22 21:15:50

 유튜브는 자취생의 좋은 친구죠

2020-02-22 21:34:38

 새 보금자리로 떠나시는거 축하드립니다.

초반에 새 집 꾸미는 재미 솔솔하실꺼에요. (물론 지갑도 술술 털리고)

부산에 이케아도 생겼던데 하필 코로나 때문에 아쉬우시겠군요.

 

23년 거주시면 정말 오래 거주하셨네요. 

저는 여러 사정 때문에 같은 시에서만 

7번 이사를 했었고 살면서 총 기억상 10번정도 이사를 했네요........ (지금 집은 돌고 돌아 온 집이긴하네요.)

(이사 정말 힘들.......)

글에서 예전에 본 응답하라 1988의 마지막 장면이 떠오르네요.

새해 새집에서 좋은 출발 되실거에요.

 

여담으로 부산분들 코로나 조심하시길 아스카님(부모님분들도) 도 별일 없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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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2 21:43:47

아스카님 글 읽을 때마다 따뜻함과 함께 뚜렷함이 같이 느껴져서 넘 좋았습니다.
직접 뵌 적은 없지만, 글에서 느껴지는 아스카님을 생각했을 때, 아마 모든 일 잘 해내실 것 같고, 때로 힘드시더라도 승리하시길 응원합니다^^

2020-02-22 22:28:35

프렌즈 마지막회의 여운은.....

컨텐츠를 떠나보내는 슬픔? 서러움? 중에서

역대 최고였습니다... 그래서 n회차 정주행에는 시즌 10은 빼는 편입니다. 로스와 레이첼한테는 미안하지만요...

23년 사셨던 집과의 이별은 이보다 더 하겠죠 더욱이 홀로서기를 시작하시는 거니 오죽하겠습니까만은 다시는 볼수 없어진 프렌즈와 달리 아스카님의 새 인생이 시작되는 순간이기도 하니 너무 울적하지 않게 조금은 기쁘게 맞이하셔도 좋지 않을까 합니다.

축하드립니다.

2020-02-22 23:46:41

축하?드립니다!

혼자만의 새 보금자리를 꾸미는 재미가 또 생기실 거고 허전함을 채울 누군가와 좋은 시간과 공간을 만들 새로운 계기가 되실겁니다^^

2020-02-23 07:23:55

아스카님의 안정된 독립을 기도하겠습니다!

2020-02-23 11:57:28

글에서 엄청 따뜻함이 느껴집니다 

24-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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