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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오줌 좀 쌀 수도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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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9-12-13 13:51:23

 

우리집 세 식구 중 제일 늦게 일어나는 사람은

우리 7살 아들입니다.

보통 제가 출근할 때까지 자고 있거나

혹은 출근 직전에 일어나서 배웅인사를 해줍니다.

 

가끔 일찍 일어나는 날이 있기도 합니다.

보통은 아침에 TV로 만화를 보고 싶은 마음에 일찍 일어나는 건데요,

어제도 그렇게 조금 일찍 일어난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TV소리는 안나고(그래도 엄마아빠 아침잠 방해 안한다고 아주 작게 틀고 봅니다)

와이프랑 두런두런 무슨 얘기를 하길래

아침잠이 많은 편인 저는 그런가보다 하고

조금 더 잔 후 평소 시간에 맞춰서 일어나 출근했습니다.

 

 

그리고, 어제 귀가해서 같이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자기방에서 자는 연습을 하는 중이라

아직 저와 와이프가 잠들 때까지 옆에 있어주는 중입니다.

 

그렇게 잠들 때까지 여러가지 이야기를 합니다.

오늘 어린이집에서 어떤 친구랑 어떤 놀이를 했는지,

체육관에서 줄넘기를 몇 개나 했는지 얘기를 나누고

요즘 한참 재미들린 마법천자문 덕에 한자퀴즈도 아빠에게 내달라고 합니다.

그러다보면 스르르 잠이 들면서 도로롱~하고 코를 곱니다.

 

 

어젯밤에도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는 중에

제가 아무 생각없이 그냥 일상얘기한다고 물어봤어요.

 

"재혁이, 오늘은 아침에 일찍 일어났더라?"

 

그랬더니 와이프하고 아이가 같이 작게 웃는거에요.

뭔가 공범의 냄새가 나는?

 

왜 일찍 일어났을까아~?”

 

하하하

 

그러더니 계면쩍은 웃음 끝에 아이가 말을 잇네요.

 

사실으은~... 오줌을 쌌어요. 하하하하~”

 

저도 같이 하하하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지!”

 

 

어릴 때 소변을 잘 가리게 된 후에도

뜬금없이 잠자리에 오줌을 싸기도 하죠.  

저도 초등학교 2학년 때인가 오줌을 쌌던 적이 있어요.

 

주변머리가 없어서 어찌 감춰볼 생각도 못하다가 그대로 두고

그냥 학교에 갔습니다.

학교 마치고 돌아와보니 제 요가 아파트 베란다에 걸려

햇볕에 말려지고 있는거에요.

 

어린 맘에 걸리는게 있었던 저는

저도 모르게 자연히 어머니께 여쭤보게 되었습니다.

 

엄마, 왜 내 이불 저기 걸어놨어요?”

 

, 이불이 젖어서

 

누가 물을 엎질렀나봐요. 하하~”

 

계면쩍은 제 말에 어머니는 잠깐의 틈도 없이 자연스럽게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말씀해주셨어요.

 

그러네~”

 

 

저는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큰 마음의 위안을 그 날 받았습니다.

내가 어떤 실수를 해도

우리 부모님은 나를 인정하고 그대로 받아주실거고,

감출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제가 어머니께 받은 매우 큰 교육 중 하나였습니다.

사람을 무조건적으로 포용해준다는 것이 얼마나 큰 것인지에 대해서요.

 

물론 어머니께서는 별다른 생각을 가지고 하신

말씀과 태도는 아니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아주 작은 일에 불과하니

그렇게 받아주실 수 있었을 겁니다.

다른 경우에는 작은 일로도 많이 혼난 적도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그 날 제가 느끼면서 배운 것의 크기는 참으로 컸습니다.

나중에 나도 저렇게 누군가를 대할 수 있는

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제가 결혼하기로 마음먹은 사람은 정리와 청소가 주특기인 사람이었습니다.

실제로 결혼해보니 요리가 주특기인 우리 어머니와는 다른 사람이었어요.

 

결혼 전에는 집에 오면 항상 맛있는 음식이 있었습니다.

다른 집에서는 한번 만들기도 힘들어하는 음식들을

어머니는 매일같이 하나 이상씩 만드셨어요.

저는 모든 집이 항상 우리집처럼 매일 잘 차려먹는 줄 알았습니다.

대신 청소나 정리는 상대적으로 조금 덜 하셨죠.

 

결혼 후에는 집에 오면 항상 집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다른 집에서는 철마다 한번씩이나 할지 싶은 이불 빨래가

거의 매일같이 걸려있습니다.

저는 TV세트장처럼 정돈되어 있는 집이 실제로 있는 줄은 몰랐어요.

대신 맛있는 요리는 조금 덜 올라오긴 합니다만.

 

그래서 사실 작은 걱정이 하나 있었습니다.

집안 정돈에 많은 신경을 쓰는 주부들 중에

아기가 태어나면 집안을 어지르는 걸 못견디는 분들도 있다고 하더군요.

과연 우리 와이프는 아이가 집 안을 어지럽히는 걸 짜증스러워하지는 않을까.

 

 

아이가 태어나 처음에는 아기 침대에서 재우다가

그 다음부터는 큰 침대에서 셋이 같이 잤습니다.

저와 와이프 사이에서 아이를 재웠죠.

 

기저귀를 떼면서 소변가리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당연히 처음에는 실수를 많이 하지만,

당연히 실수가 예상되는만큼

침대 위에 방수요를 미리 까는 등 대비를 하기 때문에

보통 별문제가 없습니다.

 

오히려 문제는 기저귀 떼기가 되었다고 생각한 이후인데요,

당연히 그 후로도 가끔 예상치 못한 실수가 있습니다.

그런 때는 방수요도 없기 때문에 소변이 그대로 침대에 다 스며듭니다.

이불이야 빨면 되지만 침대는 별방법이 없어요.

휴지로 최대한 흡수해서 빼내고 말리는 수 밖에요.

 

 

사실 이불 빠는 것도 보통일 아니고,

매트리스에 소변 스며드는 것 찝찝하게 생각될 수도 있는 일입니다.

그리고, 사람이 아무리 자식일이라도

자다가 갑자기 소변으로 젖은 채 새벽에 잠이 깨어

침대보 벗기고 이불보 벗겨 물에 헹구고 아이 씻기고 난리치면

피곤한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제 염려와 달리

제 와이프는 한번도 이런 일로 화를 낸 적이 없어요.

한번도 아이에게 화를 내거나

짜증난 표정을 지은 적도 없었습니다.

항상 그럴 수도 있지라는 표정과 태도였죠.

 

저는 아이가 안정된 정서를 갖는데

이런 태도가 큰 도움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항상 그에 대해 생각만 하다가

일년 전인가 그 이야기를 처음 해줬어요.

내가 사실 이런 염려가 있었는데 잘 해줘서 고맙게 생각한다구요.

와이프가 그랬어?” 하면서 웃더군요.

 

 

저는 아이가 독립적인 인격체로 자라기 위해서는

일정 나이까지는 믿는 구석이 확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에게 어떤 일이 있든 내 편이 되어줄 확고하고 강한 존재가 있다고

믿을 수 있어야 한다구요.

그런 믿음과 자신감을 기반으로 아이가 바르게 성장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런 확고하고 강한 존재는 저와 와이프가 되어야겠죠.

그리고 저를 그런 존재로 여기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는 포용력을 기반으로

신뢰감과 유대감을 형성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와 함께 할 아이엄마도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기를 바랬죠.

 

적어도 지금까지는 와이프는 저와 같은 길을 걸어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와이프가 많이 감상적이고 여리기만 한 사람이라고

내심 걱정하던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염려했습니다.

 

인생의 가장 힘든 순간에도 함께 힘을 모아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일까?

나와 같은 길을 끝까지 걸어갈 수 있을까?

 

와이프에게는 조금 미안하지만

사실 아직 그런 순간을 겪어보지는 않았기에

그에 대해 100% 확신을 갖고 있다고 말을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네 살이던 어느 날,

와이프와 아이가 놀이터에서 노는 뒷모습을 보는 순간

저는 분명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 저 아이가 이제는 엄마가 되었구나하구요.

 

그에 대해 정말 고맙게 생각하고,

좋은 아이엄마가 될 수 있는 사람이라는데 대해서는

이제 100%의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제 아이가 자라서

자기 아이가 새벽에 오줌을 싸서 매트리스가 누렇게 변색된 것을 보았을 때

그게 뭐 어때서? 아이가 그럴 수도 있지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아빠가 되기를 바랍니다.

 

 

 

PS: 와이프님이 오줌에만 관대하고 다른 것으로는 화를 잘 내시는 것은 안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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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2019-12-13 10:51:59

아빠미소가 절로 지어지네요. 너무 좋은 글입니다. 와이프한테도 보여줘야겠어요.

WR
2
2019-12-13 10:57:19

스스로 말하자니 좀 주책스럽긴 한데,

이 글을 써놓고 스스로 읽고 있는데 왜 눈물이 나려고 하는지 모르겠네요.

제가 나이를 먹었나 봐요. ㅎㅎ

좋은 말씀주셔서 감사합니다.

5
2019-12-13 10:54:18

역시 한국어는 미괄식이죠 PS 잘 읽었습니다  

WR
1
2019-12-13 10:56:23

주제는 거기 있습니다!

1
2019-12-13 10:56:55

공감합니다ㅎㅎㅎㅎ멋진 부모시군요

1
2019-12-13 10:59:27

 너무 좋은 글이네요 !

2
2019-12-13 11:00:35

와이프님께서 정말로 오줌에 관대한지는 케이치님께서 직접 한 번 싸보심이...

농담입니다~ 훈훈한 글 잘 읽었습니다 덕분에 기분 좋게 주말을 맞이합니다

WR
Updated at 2019-12-13 11:03:58

음, 시도해보고픈 욕망이 0.1초나마 들었던 것을 부인할 수 없군요.

6
2019-12-13 11:20:17

다녀오겠습니다.

1
2019-12-13 11:23:11

나에게 어떤 일이 있든 내 편이 되어줄 확고하고 강한 존재가 있다고

믿을 수 있어야 한다구요.

그런 믿음과 자신감을 기반으로 아이가 바르게 성장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이부분이 마음에 와 닿네요! 저희 아이도 이제 곧 기저귀를 뗄 시기가 다가오는데, 저도 케이치님처럼 그럴수도 있지! 하는 아빠가 되도록 노력해야겠네요.

WR
2019-12-13 11:24:41

분명히 멋진 아빠시고, 더 멋진 아빠가 되어가실 겁니다.

저도 계속 아빠로 성장하는 중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모든 아빠들 화이팅! 입니다.

1
2019-12-13 11:31:41

 저도 애기 아빠 인데요

PS 잘 읽었습니다 힘내세요 케이치님!!

1
2019-12-13 12:15:56

마지막에 편-안해졌네요.  별개로 너무 좋은 부모님이십니다.  저도 그리 되고 싶네요

1
2019-12-13 12:26:39

마음이 따뜻해지는 글이네요. 좋은 글 잘 봤습니다.

1
2019-12-13 12:39:43

멋진 인생, 멋진 글 입니다.

응원드려요~

1
2019-12-13 13:12:07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1
Updated at 2019-12-13 17:33:16

PS. 에 공감합니다

저희 와이프도 역시 청결에 민감하고 꽤나 스트레스에 약한 편인데...

큰 일에 대해선 아주 관대하나 작은 일에 민감하게 반응을 하네요 ㅠㅜ

WR
2019-12-13 17:50:49

뭔가 마음을 탁 건드리는 포인트가 사람마다 참 다른게 아닌가 싶습니다.

생각해보면 저도 그런 부분이 있는 것 같구요.

그런 것을 이해하고 맞춰가는게 같이 사는 일인 것 같기는 한데,

참 쉽지는 않죠?  ㅎㅎ

2019-12-13 22:31:43

아이와 함께 성장을 하는거겠죠 ㅠㅜ

24-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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