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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촉오 삼국은 왜 망했는가? -1(위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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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9-02-25 18:05:27

 

사마의 존버글을 읽고 댓글을 남기다 문득 생각이 들어 적어 봅니다.

위촉오 세 나라의 문제점은 무엇이고, 왜 망했는가에 대해 적어보려 합니다.

틀린 부분이나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위는 하북과 중원을 모두 점거했으며, 거기에 형주 북부, 양주 북부(흔히 회남이라 부르는 지역)

서북 일대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영역을 확보하고 있었으며 낙양, 장안, 허도, 업군 등 대도시

다수에 많은 인구, 뛰어난 인재풀, 강력한 경제력과 물자 생산력을 가진 삼국 중 최강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사마의에 의해 너무도 허무하게 넘어가게 되고 마는데............

연의에서 매번 제갈량에게 당하는 호구와는 달리, 사마의는 정말 치밀하면서도

무서운 인물이었고, 존버코인을 활용할 줄 아는 동시에 타이밍 러쉬의 천재였습니다.

 

위가 망하게 된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 가장 큰 요인을 뽑으라 하면 조예의 죽음

이후 후계 문제가 매끄럽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조조-조비-조예까지 이어지는 3대 라인은

다들 인성에는 결함이 있었지만 능력은 출중했고, 일국의 군주로서 모자람이 없었는데,

조예는 제갈량 사후 촉의 북벌이 잠잠해지고, 오의 습격도 여러번 격퇴하며 정세가 안정화

되자 본격적으로 주색에 빠져들며 탱자탱자 놀기 시작했는데, 놀면서도 군주로서 자신의

권위와 힘만큼은 그대로 잡고 있었지만 딱 하나 문제점이, 왕조 국가에서 왕의 안위

다음으로 중요한 후계 문제에 대해 신경을 쓰지 못했다는 점이었습니다.

 

조예는 본인이 그리 빨리 갈 것이라고 예상을 못한 듯 싶지만.........

주색잡기에 빠져서 몸을 해치다가 뜬금없이 죽음을 맞게 되는데, 이 당시 조예의 후계는

불안정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후계자 조방은 정실의 자식이 아닌, 조예가 어디선가

데려온 양자였기 때문에 누구의 혈통인지 모른다는 심각한 정통성의 결함이 있었고

이는 왕조국가의 위신과 왕의 권위에 치명상이 되는 일이었음에도 조예 사후 대안이

없었기 때문에 조방의 왕위 승계가 이루어지는데, 조예는 어린 조방이 왕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아버지인 조비가 조진, 진군, 사마의로 하여금 탁고대신이 되어

어린 자신을 보필하게 한 것처럼, 원래는 연왕 조우를 불러들여 이를 맡기려 했고

하후헌, 조상, 조조(조휴 아들), 진랑 등 친족을 중심으로 내세우며 조우를 대장군으로

삼았는데 이는 조방의 방패로 세우는 동시에, 요동에서 공손연의 난을 진압하고 귀환중인

사마의가 혹여 딴 뜻을 품지 못하도록 견제하기 위한 방법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인 점이, 조예가 조우를 대장군에서 해임한 것이었습니다.

사흘밖에 되지 않은 짧은 시간에 조예의 마음이 변한 것인데, 한진춘추에서는 조예가

가장 믿고 부리는 측근이던 유방과 손자가 조우를 음해하여 벌어진 일이라고 기록하고

있고, 정사에서는 조우 역시 이를 꺼렸다고 알려져 있는데, 저는 전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 유방과 손자는 조상을 밀어주며 후에 조상이 실권을 장악하기 때문에 이쪽이

신빙성이 더 크다고 봅니다. 조우는 조조의 아들이기에 정통성도 충분하고 옛 연나라

지역을 위임받은 실권자였기에 힘도 있었던 인물이었고 만일 조예가 조방이 아닌

조우에게 황위를 물려줬다면 한방에 해결날 일이었지만, 반대로 말하면 조우는

조방의 우군이 될 수도 있지만 잠재적인 왕권 위협 상대로 볼 수도 있는 것이었고

유방과 손자는 이 점을 우려하는 동시에 외척 세력에 의해 정권이 장악되는 것을

피하고자 조예의 결정을 만류하고 조상과 사마의가 상호견제를 통해 균형을 유지

하도록 유도했다는 것이 진수의 평인데, 조예는 자신의 양자인 조방에게

왕위를 넘길 뜻이 강력한 상태였기에, 조방 위로 형이 있었음에도 강행되었습니다.

의도는 괜찮았고, 유방과 손자는 이 때문인지 훗날 고평릉 사변 이후에도 생존하여

고위직을 역임한 뒤 관직에서 명예퇴직하는데 성공합니다.


 어쨌거나 조예는 조우의 관직을 박탈하라 하고, 유방과 손자는 조상과 사마의에게 탁고하라고

조언하니 조예는 그 의견을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조휴의 아들 조조(조휴 아들)가

눈물로 호소하며 막으니 조예는 조우의 관직 박탈을 취소합니다. 그러자 또다시 유방과 손자가

호소했고 조예는 또다시 조우의 관직 박탈 취소를 취소하고.......... 심지어 조예가 스스로 칙서를

쓸 힘조차 없다고 하자 유방은 조예의 손에 붓을 쥐어준 후 그 손을 잡고 스스로 글씨를 써서는

자기가 옥새를 찍고 황명을 내린다. 결국 조우, 조조(조휴 아들), 진랑, 하후헌은 모두 벼슬을

박탈당한 후 울면서 집으로 돌아가게 되는 이런 개판오분전인 상황이 전개되고 맙니다.

 

조예는 병으로 죽어가느라 정신이 혼미한 상황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면서 결국 조상과

사마의가 탁고대신이 되어 조방을 보필하게 되고 조방이 조예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르게

되는데, 조방은 어린데다 힘이 없었기에 조상과 사마의 두 탁고대신이 사실상의 실권자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늘에 두 태양이 있을 수 없는 법, 조상은 처음에는 사마의에게

깍듯이 대했으나 뒤로는 유방과 손자, 그리고 자신의 조씨 친족들과 공모하여 사마의를 견제,

본인들이 권력을 장악할 의도를 품고 사마의에게 태부라는 작위를 하사하게 유도합니다.

 

태부는 황제의 스승인, 관직 중 최고위 랭크의 작위지만 사실상 늙거나 나라에 큰 공로가

있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명예직인데 즉, 늙은이는 명예퇴직 하라는 이야기를 돌려서

표현한 것으로, 사마의가 그 뜻을 알아차리지 못할 리가 없었습니다. 사마의는 조상 일파와

정면승부하지 않고 뒷방 늙은이로 물러나 집안에서 유유자적 칩거하거나 자연을 벗삼는등

정치와 멀어진 태도를 보였고, 조상 일파는 그렇게 위의 실권을 완벽하게 장악합니다.

 

역사와는 달리 조상이 완벽히 호구는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대목인데, 사마의가

전쟁영웅이면서 엄청난 명성과 권위가 있었음에도 그를 큰 저항 없이 밀어내면서

실권을 장악했고, 사치와 향락을 부리긴 했으나 고평릉 사변 이전까지는 저항없이

실권을 유지하고 있었다는 것은 그가 그냥 단순한 노답만은 아니라는 것이죠.

조상은 이와 같은 자신의 권위를 본인이 계획한 대삽질 끝에 말아먹고 맙니다.

바로 밑에 나올, 삼국지연의에는 통편집되는 낙곡대전을 계기로...........

 

정권을 장악한 조상 일파는 자신들의 권위를 다지고 명분을 쌓기 위한 실적이 필요했고

그 때문에 사방을 살펴보던 중 제갈량 생전 자국에 끊임없이 침범해 온 촉을 주목합니다.

제갈량 사후 위에는 촉을 무시하는 경향이 팽배했고, 조상은 이 정벌을 계기로 사마의가

가지고 있던 군부의 영향력을 자신에게로 돌려놓으려는 의도를 가지고 출병을 계획했는데

거기에 마침 촉의 최고 실권자인 장완이 지병으로 드러눕는 호재마저 겹친 상태였습니다.

거기에 결정적으로, 한중에 주둔한 촉의 병력이 3만 뿐이라는 첩보마저 들어옵니다.

(3만인 이유는, 장완이 상용 정별을 위해 준비하던 중 중병으로 드러누웠기 때문)

 

조상은 항상 촉을 호구로 보고, 촉 공격을 노래부르고 있던 상황이었는데 그의 레이더망에

이만한 기회는 없었습니다. 매번 촉 공격의 어려움을 주지시키며 만류하던 사마의조차

뒷방 늙은이로 물러난 마당에 최고의 찬스라고 봤던 조상은 출병을 준비하는데 뒤로

물러나 있던 사마의가 한중을 두번이나 공격했어도 전혀 성과가 없었다며 출병을 만류

하지만 조상은 이를 무시하고 강행하면서 그렇게 위의 올스타 군대가 출동합니다.

 

장안에서 징집한 관중군이 7만이었고 대촉전에서 잔뼈가 굵은 곽회의 병사가 3만,

10만에 이르는 군대였으며 정서장군이던 하후현이 총지휘를 맡고, 그 휘하에 사마의의

둘째아들인 사마소 역시 종군했으며, 훗날 촉에 투항하는 하후패, 누구보다 촉에 대해

빠삭한 곽회까지 동원되며 당시 사마의를 제외하면 위에서 대촉 전선에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전력을 쏟아부은 올스타 부대였고, 자신들의 측근들 역시 대거 동원했습니다.

 

대장군 조상과 정서장군 하후현이 이끄는 본대 6만과 다수의 이민족 보급부대가 당락도로 진격하며,

조공으로 하후패가 이끄는 1만이 자오도로, 곽회가 이끄는 옹주군 3만이 기산로로 진격해 세 갈래

길으로 한중을 압박한다는 3면 공격 전략이었는데, 주공은 조상과 하후현의 당락도 방면이었고

곽회와 하후패 역시 이를 잘 알고 있었기에 여기까진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한중의 수비대장이던 진북장군 왕평은 한중에 눌러앉아 적을 끌어당긴 뒤에

낙성, 한성, 양평관의 험준한 요새를 이용해 적을 막아내며 성도에서의 지원군을 기다리자는

주위의 의견을 물리치고 고지대에 병력을 배치하는 한편 지형적인 이점을 활용하여 위군을

막을 계획을 짰으며, 자신의 호군인 유민(장완의 조카)를 낙곡의 길목인 흥세산으로 보내

100리에 걸쳐 군기를 꽂아놓는 허장성세를 지시하고 자신은 낙곡의 출구에 위치한 황금성에

1천의 정예군과 함께 주둔하여 위군의 움직임에 대응할 태세를 갖췃습니다.

 

사마의는 촉 땅이 얼마나 험하고 위험한지 알고 있었기에 이 정벌을 바보짓이라 했는데,

그 말대로 조상의 군대는 촉 특유의 험준한 지형에 군대의 이동에서조차 제약을 겪으며

고전을 면치 못했고, 그 와중에 지형의 이점을 활용한 촉군의 대응과, 밤을 틈탄 소규모의

야습이 이어지며 위군의 멘탈은 가루가 되다시피해서 본격적인 전투 시작 전부터 아예

전투 의지를 상실해 간 상황이었고, 그나마 3갈래 진격로 중 자오도로 향한 하후패의

1만 별동대 역시 한중에 제일 먼저 도착하긴 했지만 본대도 아직 도착하지 못한 상황에,

길고 험한 자오도를 통과하느라 지치고 힘든 상태에서(자오도는, 옛 한고조 유방이 그

길을 통과하면서 차라리 항우와 싸우다 죽겠다며 울분을 토했던 길이기도 함.........)

왕평이 직접 군대를 이끌고 영격에 나오면서 탈탈 털리면서 군대는 대패하고 하후패는

가까스로 목숨만 건져 도망가며 이미 한 갈래의 진격로가 막혀버리고 맙니다.

 

곽회는 한중에서 진령산맥을 넘는 길 중 기산로로 3만의 별동대를 이끌고 진격했는데, 이미

촉군이 기산로를 막고 있던 데다가 기산로의 출구는 천험의 요새인 양평관이 떡하니 위치해

막고 있었고, 양평관은 '1명이  막아도 능히 만명을 막을 수 있는' 막강한 요새였기 때문에

돌파가 불가능할 뿐더러 설사 돌파한다 한들 촉의 대군에 고립되어 버리는 상황에 놓이기 

때문에 괜히 돌파할 이유가 없는 상황이었고, 신중론자인 동시에 대촉 전선에 잔뼈가 굵은

곽회는 본진이 낙곡을 뚫었다는 소식이 들리기 전엔 군대를 움직이지 않을 뜻을 밝히면서

그곳에 눌러앉아 대치를 유지하면서 결국 당낙도의 조상과 하후현에게 모든 것이 걸립니다.

 

그러나 조상과 하후현은 당낙도에서 지옥을 체험중이었는데, 진격 속도가 엄청나게 느린

상황에 험준한 지형&촉군의 습격으로 심각한 군량 부족 사태에 처하게 되었고 결국

조상은 위에 복속되어 있던 이민족 강족과 저족에게 군량 수송을 맡겨 독촉하는데

이민족이라고 한중의 무지막지한 지형을 바꿀 수는 없었고 결국 희생자만 계속

속출하는 사태가 벌어집니다. 자치통감과 조진전에 부속된 '조상전'의 묘사를 예로 들면,

군량 수송 중에 소, 말, 노새가 죽은 것이 헤아릴 수 없이 많으며, 울부짖는 백성이

길을 가득 메웠다고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답이 없는 상황이 찾아왔고, 결국 수뇌부는

퇴각을 논의하게 되는데 이마저도 결정하지 못하며 시간을 질질 끌었고..................

 

그 사이, 왕평의 구원 요청에 성도에 있던 비의가 신속하게 응답하며 빠르게 지원군을

이끌고 오면서 상황은 더더욱 답이 없어졌고 곽회는 소식을 듣자마자 답이 없다고 판단,

군대를 이끌고 철수해 버렸습니다. 하후패는 대패하여 퇴각, 곽회는 싸우지 않고 퇴각.

촉군의 군대는 낙곡만 막으면 되는 쉬운 선택지 하나만 있었고, 촉군만이 아닌 샛길을

활용해 위군을 가로질러 곳곳에서 습격해왔고, 위군은 굶주리고 지친 상황에서 촉의

군대에게 끊임없이 습격당하며 탈탈 털린 끝에 조상을 비롯한 수뇌부만 간신히 살아남아

도망가면서 낙곡대전은 촉의 대승으로 끝났고, 조상은 체면을 완전히 구기고 맙니다.

 

《자치통감》의 기록에서는 잃고 죽은 자가 많았고 관중이 텅 비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조진전〉에 부속된 〈조상전〉에서는 동관 오른편으로는 인적을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

기록하는데 이는 군대가 패주한 것이 아니라 전멸했다는 뜻으로, 10만에 달하는 병력이

허공으로 승천하는 동시에 이민족인 강, 저족은 부려먹히며 온갖 희생을 감수한 탓에

위에 대한 반감이 매우 커져 협력이 어려워지면서 너무나 큰 피해를 입고 맙니다.

 

이 전투 이후, 훗날 사마소가 정촉을 결심하고 정벌할 때까지 20년간, 위와 진은 촉의

공격에 수세로만 몰두하게 되는데, 그 원인이 바로 이 낙곡대전의 대패 때문이었습니다.

이 대패는, 결국 군부 장악을 위해 촉 정벌을 결심했던 조상의 의도가 대실패로 끝나는

동시에 조상의 권위가 떨어진다는 뜻과 같았습니다. 그러자 조상은 패배의 원흉으로

조롱받는 것을 막고자 더욱 더 정권을 장악하며 반대파를 탄압하며 전횡을 일삼았고

사마의는 아예 벼슬에서 물러나 중병에 걸린척 하며 존버하면서 타이밍을 재고 있었습니다.

 

사마의의 동태를 계속 살피던 조상 역시, 사마의의 신들린 듯한 연기대상급 중병 연기에

경계를 풀었고(사실, 사마의의 나이를 고려하면 죽는게 당연할 나이였다.......) 249년

환범이 예전에 형제 중 한 명은 남겨두라고 조언한 적이 있었음에도 조상은 황제 조방을 모시고

세 아우 조희, 조훈, 조언과 심복 하안, 어림군 등을 거느려 명제의 무덤인 고평릉으로 참배를

떠났고, 그러자 사마의는 번개같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자신의 두 아들과 함께 비밀리에

양성한 사병 3천명을 거느리고 쿠테타를 일으켰고, 사도 고유와 태복 왕관에게 각각 조상과

조희의 진지를 점거하게 하는 한편 황태후(명원황후)를 찾아가 태위 장제와 상서령 사마부를

시켜 표문을 작성하게 하는 동시에 낙양성을 완벽하게 장악합니다. 환범의 말대로 형제들

중 한 명이라도 남아 있었다면 낙양의 군영을 그리 쉽게 장악당하지는 않았을 것인데,

낙양 안에 위치해 있던 조상의 군대는 사마의의 손에 너무나 쉽게 떨어지면서 조상이

직접 통솔해 끌고 나간 어림군과 분리되어 전력이 크게 약화되고 맙니다.

 

사마의는 '꾀주머니' 라 불리는 환범이 조상에게 합류하지 못하도록 먼저 불러들이는데,

이를 눈치챈 환범은 낙양성을 가까스로 빠져나가는 동시에 대장군의 인장을 들고 나가

조상에게 달려갑니다. 그러자 환범을 놓친 소식에 사마의는 탄식하며 일이 어그러질

것을 걱정했으나, 조상은 저항할 위인이 못된다는 말에 허윤과 진태로 하여금 병권만

거두겠다는 뜻을 전달하게 하는 동시에 윤대목에게도 똑같은 말을 조상에게 전하게 합니다.

 

이 무렵 조상은 깊은 고민에 빠졌는데, 황제는 본인들이 모시고 있고, 거기에 환범이

대장군의 인부를 들고 탈출해 왔기에 군권 역시 아직 본인의 손에 있었습니다. 환범을

비롯한 수하들 중 일부는 옛 수도인 허도로 가서, 대장군부가 있는 허창으로 가서 황명을

앞세우고 비상명령을 발동하면 낙양만을 점거한 사마의에 반격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허윤, 진태, 윤대목이 연이어 병권만을 거두겠다는 뜻을 전달하자, 쫄보 조상은

결국 병권을 넘기는 선택을 하는데, 자신도 사마의를 뒷방 늙은이로 만들었을 뿐 해치지는

않았고, 거기에 설마 조씨 인척인 자신을 죽이겠는가 하는 생각이었던 걸로 보이며, 또한

백전노장에 군사를 부리는 실력이 탁월한 사마의에 대한 두려움 역시 컸을 것이라 봅니다.

이 결정에 환범은 조자단(조진)은 천하에 뛰어난 장군이었거들, 그 자식들은 돼지새끼

다를 것이 없다며 하늘을 우러러 깊게 탄식했고, 다 죽게 될 것을 예언합니다.

 

그런데 만일 여기서 정말 조상이 싸울 것을 결의했다면, 황태후를 끼고  조상을 역적으로

선포한 동시에 낙양 일대를 장악한 사마의 VS 황제를 끼고 있으며 대장군의 인장을

들고, 군대를 합법적으로 동원 가능한 조상이 격돌해 위나라가 두 조각으로 갈라질

가능성도 있었는데, 이렇게 되었다면 촉과 오에게도 기회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조상이 저항없이 항복하면서, 싸움 없이 내전은 일어나지도 않고 종료됩니다.

조상이 싸우지 않은 이유에 이 점도 있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마의는 조상을 살려둘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환범의 말대로, 사마의는 환관 장당을 고문해 조상 일당이 반역을 꾀했다는 증언을 받아내

조상의 세력을 멸족시켰고( 열녀 문숙의 아내만 살려 양자를 두어 조씨의 대를 잇게 함)

사마의는 조방에 의해 승상에 봉해지고 구석의 예우가 내려지면서 병권을 완전히 장악했고

이렇게 사마씨가 사실상 조위의 모든 실권을 장악하게 되는데, 사마의는 구석을 사양하여

자신은 순수한 선의로 사변을 일으켰다는 의도를 내보이는데, 이미 자신은 죽을 날이

가까워 오는 만큼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는 동시에, 정권을 장악한 채 아들인 사마사에게

후일을 기약하게 하려는 의도로 후세 사람들은 평가하고 있습니다.

 하후패는 군권을 빼앗기자 촉으로 망명했고, 하후현에게 같이 갈 것을 청했지만

하후현은 위에 남아 끝까지 최선을 다했으나 결국 숙청당하고 맙니다.

 

사실상 이때부터, 조위는 사마씨에 의해 먹힌 상태였고, 이후 관구검과 문흠이

회남 일대를 바탕으로 사마씨에 저항하기도 하였으며, 이들은 동오와 결탁해

동시에 군대를 일으키는 등 등 사마씨에 대항하려는 시도는 좋았으나 결국 실패했고

의문의 1승을 거둔 것이 진압 과정에서 무리한 사마사가 여파로 사망하면서 자신의 뒤를

동생인 사마소에게 맡기게 되었는데 이 때가 사실상 조위가 사마씨를 몰아낼 마지막

기회라고 여긴 조모는 사마사의 군대를 통솔해 돌아오는 사마소에게 군대는 밖에

두고 혼자만 입궐할 것을 명령했는데, 고심하던 사마소에게 휘하에 있던 종회가

혼자 들어가면 신변에 문제가 있을 것임을 주지시키자 황명을 무시하고 군대를 이끈채

입성하면서, 사마소가 혼자 들어오면 사로잡으려던 조모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갑니다......

이후 제갈탄마저 사마소에 의해 진압되면서 사실상 저항 세력은 사라지고 맙니다.

 

그러자 조모는 꼭두각시로 있을 수는 없다며 왕침, 왕업, 왕경에게 뜻을 밝히고

친위 쿠테타를 계획하는데, 왕경의 만류에도 조모의 뜻이 확고하자 왕침과 왕업은

그대로 사마소에게 이 사실을 일러바쳤고;;; 그렇게 조모의 쿠테타는 진압됩니다.

조모는 가충의 지시를 받은 휘하 장수 성제에 의해 국왕이면서도 시해되었으며

정작 배후가 가충인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상황에서 사마소는 그저 성제만을

처벌하면서 눈가리고 아웅했고, 끝까지 가충의 처벌을 주장하던 진태는 의문사..........

 

그렇게 조모마저 죽고 조환이 허수아비 왕위에 올랐으나 오래 가지 못하고, 사마소가

왕위를 탍취하면서 위는 멸망하고 진(서진)의 시대가 열리고 맙니다.

 

조예가 주색에 빠져 후계를 확고히 하지 못한 채 일찍 사망한 스노우볼이 굴러갔고,

조상이 대삽질의 향연을 벌이면서 사마씨가 정변을 일으키는 명분을 제공했으며

명문가 출신으로, 공적도 높고 명성도 높아 힘, 명성, 권위, 거기에 탁월한 실력마저

갖춘 능구렁이 늙은이의 타이밍 러쉬 한방으로 조위는 무너졌고, 사마의가 정권을

장악한 당시에는 또 하나 사마의에게 유리한 이점이 있었으니........................

 

위의 중신들인 왕랑, 진군, 화흠, 신비, 위진 등의 신하들은 대부분 정말 오래 살았고

사마의도 이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요절 징크스가 따라다니는 손오에 비하면 재상급들이

오래 살아 나라에 오래 기여한 조위는 축복받은 케이스였지만 한편으론 재양의 씨앗

이기도 했는데, 이들이 나이가 들어 거의 비슷한 시기에 순차적으로 죽으면서

세대교체를 하지 못하고 진행되면서 사마씨를 막을만한 중신이 부족해진것.

 

거기에 조위는 진군의 건의를 받아들여 9품 중정제를 실시했는데, 초기에는 고른

신료를 뽑는데 유용하게 쓰였으나 점점 변질되어 문벌 귀족화되며 귀족의 세습제에

가까운 모습으로 변해가게 되는데 이는 종회가 등애를 천한 신분 출신이라며

무시하는 것으로 보아 이전부터 이런 경향이 나타났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인데

(사실, 이 경향이 완전히 고착화된건 서진 이후이지만) 이것의 문제는, 그 문벌

귀족화된 가문 몇몇만 휘어잡거나 그들끼리 연합하여 파벌을 이루면 대응책이

없어진다는 점인데 사마씨는 이점을 이용해 유력 가문들을 장악했고 결국 견제

세력은 상실된채, 조위가 그렇게 무너지는 것에 원인 중 하나가 되고 맙니다..........

 

위나라는 거대한 영토와 막강한 군사와 경제력을 가졌음에도, 외부의 침략이 아닌

내부에서 수뇌부부터 썩어들어가기 시작하면서 결국 무너졌는데, 수뇌부가 썩어

멸망한 것은 촉이나 오 역시 똑같지만 외침이 아닌 내부에서 서서히 반대파들이

제거되면서 무너지게 되었는데 이는 사마씨가 얼마나 철저하고 치밀한 일족이며,

명문 귀족이면서 수재가 넘쳤던 일족의 특성을 잘 활용하는 동시에 한 나라를

큰 저항 없이 삼키는 것을 통해 그들이 스스로 뛰어나다는 것을 입증했다고 봅니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라 했거늘, 자신의 몸도 집안도 보살피지

못해 스노우볼의 원인을 제공한 조씨 가문의 삽질이 빚어낸 결과이기도 하겠죠.

 

- 존버의 승리. 오래 버티면서 잘 살아남았다

- 타이밍은 생명이다. 늦으면 어시없다

- 가문빨 인맥빨 혈연빨 지연빨은 만고의 진리

- 자식 농사는 잘 짓고 봐야 한다

- 산전수전 다 겪은 경험치는 어디가지 않는다

- 각을 잘 재서 행동하자

- 유리할 때 확실히 굳히고 눌러버리면 된다

 

........농담으로 웃기게 쓰긴 했지만 실제로 현대에서도 통용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훗날, 이 뛰어난 인재풀이 넘치는 명문가에서도 사마충이란 돌연변이 한 명이 튀어나와

왕이 되었고, 그것이 서진의 멸망을 불러오게 되는 것이 역사의 아이러니랄까........

 

 

다음은 삼국지를 읽는 사람이라면 다들 탄식해 마지않는, 촉의 멸망으로 찾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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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19-02-25 18:18:42

우와 재밋어요
다음편 궁금하네요

Updated at 2019-02-25 18:26:32

사마충이 돌연변이이긴 했지만 어차피 사마의 이후 갈수록 더 못난 사람들이 대를 이었죠.

1
2019-02-25 18:37:10
역사에 if는 없고 계승 이후 정통성 문제로 난리가 났을 가능성도 꽤 높긴 합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조조가 조식을 끝까지 밀어붙였다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조비는 무능하지는 않은데 결국 내치든 외치든 아웃풋을 보면 굉장히 초라한 편이고 인격적으로도 문제가 많았죠.
좀 생뚱맞은 면은 있어도 당시 기준으로 꽤나 상식적이었던 조식이라면 역사가 바뀌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2019-02-25 20:42:40

조비도 일찍 죽은 편이죠.

2019-02-25 18:45:46

아이돌글도 그렇고 삼국지도 그렇고 정말 박학다식하네요.

중화tv에서 방영해준 사마의 미완의책사&최후의 승자도 다 보셨을듯

재밌게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1
2019-02-25 18:50:55

재밌게 잘읽었습니다 사마의 드라마 보다가 후반부에 접었는데 결말을 듣게된거같아 개운하네요 다음편도 기대하겠습니다

6
Updated at 2019-02-25 19:02:41

조위가 사마씨에게 허무하게 나라를 뺏길 수 밖에 없었던 요인 중의 하나로, 각 지방을 다스리던 조씨 왕(王)들의 실권이 너무 약했습니다. 바로 조비가 형제들과 왕위 다툼을 하면서 조식을 비롯한 동생들을 가혹하게 탄압했던 결과인데요, 조씨 왕들은 봉지에서 함부로 이동하는 것도 금지되었고 벼슬도 할 수 없었죠. 조식은 이렇게 연금에 가까운 왕노릇을 하느니 차라리 조정에 벼슬해서 자신의 재주라도 펼치고 싶었지만 (왕 자리마저 내놓으려 함...) 조비가 끝내 막아서 실패로 돌아갔죠.

 

이렇게 각 지방에 흩어져있던 왕들이 명맥만 왕이지 빛 좋은 개살구들이니... 중앙의 황제에게 대들 수 있는 힘이 전혀 없다는 점에서 어쩌면 황제와 중앙의 권한을 더욱 강화하는 긍정적 요소도 있었죠. 하지만 이런 지방 왕의 권력이 약하다고 해서 조씨 종친들의 권한이 결코 약한 것은 아니었죠. 조조대부터 이른바 군권은 조씨, 하후씨 등 종친들이 다 장악하게 함으로써 몇몇 권력자들은 그야말로 막강한 권한을 휘둘렀습니다.

 

즉 조씨 종친들은 거의 대부분은 힘 없는 개살구들이지만, 군사력을 쥔 몇몇들은 나라를 쥐고 흔드는 권병(權秉)을 맘대로 휘둘렀던 거죠. 근데 이 군권을 종친들이 계속 쥐고 있다면 모르되, 타 성씨가 군권을 쥐는 순간 조씨들은 그야말로 개살구들밖에 남지 않는 거였죠.

 

그래서 사마의의 조상 쿠데타가 엄청난 전환점이 된 거죠. 조씨 종친의 마지막 권력자였던 조상의 축출로 인해 조씨들은 죄다 개살구밖에 남지 않게 되었고, 사마씨는 아주 공고하게 조위를 장악했죠. 사태가 이렇게 되니 각 지방의 왕들이라도 들고 일어나 뭔가 사마씨에게 저항하고 그래야 하는데... 군사력도 가신도 뭣도 개뿔도 없이 명맥만 왕인 자들 뿐이니 뭐...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릉, 관구검, 제갈탄 등이 조위를 위하여 사마씨에게 반기를 들어봤지만, 결국 명분도 잃고 각개격파되고 말았죠. 말마따나 이들 반란의 중심이 유력한 지방의 조씨 모모왕이라면 꼭두각시 황제를 끌어내리고 새로운 황제를 옹립한다는 명분으로 뭔가 세력도 더 모아보고 전국적인 봉기를 해볼텐데, 그냥 왕씨 따로, 관구씨 따로, 제갈씨 따로 반기 드는 건 걍 당시 조위 조정에 대한 공식적인 반역 밖에 되질 않았죠. 결국 이런 충신들을 그나마 하나로 엮을 구심점이 종친 중에 전혀 없었기에 이런저런 반란은 다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사마씨들은 조씨들이 이렇게 해서 망했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았기에, 딱 그 반대로 해서 종친인 사마씨 왕들에게 아주 막강한 권한을 부여했죠. 이 왕들이 거의 지방의 군벌처럼 군사력을 쥐고 움직였기에 세상 천하에 막강한 사마씨들이 아주 여럿이 되었는데... 이게 오히려 역효과가 나서 이른바 중국 역사상 가장 개판 오분전 중의 하나인 "팔왕의 난 "이 발생해 서진은 스스로 망하고 말았습니다.

 

조씨는 종친왕들의 권한을 너무 축소시켜서, 사마씨는 반대로 종친왕들의 권한을 너무 확대시켜서 결국 둘 다 단명 왕조로 끝나고 말았던 게 참 아이러니하죠. 역시나 세상 모든 일에는 중용(中庸)이 제일 중요한 것 같습니다. 

WR
2019-02-25 22:24:00

제가 놓친 부분을 완벽하게 적어주셨네요.

위와 진은 정말 정반대의 선택을 했고, 양측 다 너무 과도했던 탓에 망해버렸죠.

한고조 유방이 군현제와 봉건제를 섞어 군국제로 나라를 안정화시키면서 장기

왕조의 발판을 마련한 것(물론 오초칠국의 난 이후 군현제로 확립되지만......)이

떠오르는 대목입니다.

2019-02-25 20:01:36

등산... 강유... 크흠...

Updated at 2019-02-25 22:01:47

다음 편과 다다음 편이 벌써 기대됩니다!
조식의 경우 조카한테까지 계속 자신을 등용해줄 것을 어필하고, 나름대로 군사적 식견까지 보였지만 결국 배척되었죠. 군벌 쪽에서도 그렇지만 정권 내부에도 조씨-하후씨 일가를 좀 더 적극적으로 활용했다면 정권 유지는 더 잘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WR
Updated at 2019-02-25 22:25:32

제 생각도 비슷합니다. 다만 조비가 형제들에게 가졌던 어찌보면 편집증에 가까운

견제를 생각하면 그것이 가능할까 의문이기도 하고요. 거기에 히어로즈님이 연재한

글에도 나오듯, 아버지 세대인 1세대가 워낙 능력자들이었던 탓인지 조씨, 하후씨의

2,3 세대들은 기대치보다 성과를 낸 인물이 많지 않고 하후무같은 노답도 나오고..........

 

저는 오히려 조비보다 더 정통성있던 조앙이 완성에서 살았다면 어땠을까 생각합니다.

아무리 싸이코인 조비라도 조앙은 조조의 유일한 정실의 자식이고(변씨는 사실 첩 출신이니....)

인품도 능력도 뛰어난 편이었다고 하고 조비도 형을 잘 따랐다고 하던데 조앙이 왕위에

올랐다면 조비처럼 인척들을 대놓고 견제하며 배척하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궁금합니다.

역사에 만약은 없는 거지만요

2019-02-25 23:53:56

가후가 위에 형도 제거하고 떡하니 왕위를 만들어 주네요
제대로 조비 킹메이커..
조조 이후 왜이리 다들 단명하는지..

2019-02-26 00:18:40

위나라도 우여곡절이 많았네요... @@ 관우장비 죽고 유비가 오나라 공격하려고 할 때 손권이 형주도 돌려주고 손부인도 돌려보내주겠다면서 화해하자고 했었는데 그때 제안을 촉이 받아들였으면 역사가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하네요...

2019-02-26 01:18:18

사마씨가 천하를 잡는것으로 마무리되는 연의를 보면서 터졌던 울화통이 팔왕의 난을 알게 되면서 가라앉았던 기억이 나내요.
삼대째는 바보가 나온다는 말이 있는대 바보는 커녕 뛰어난 인물이었지만 조예도 사마염도 단점이 너무 커보이내요.
삼대째는 가보지도 못한 촉한은... 크흑

24-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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