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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국으로 끝난 두 천재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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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5 01:44:56

유로화로 통합되기 직전 독일의 5마르크(약 3천원) 지폐의 인물은 우리에게는 거의 생소한 베티나 폰 아르님(Bettina von Arnim, 1785-1859)이라는 여성입니다. 오늘의 글은 베티나와 괴테 그리고 베토벤에 대한 것입니다.

 


독일의 거장 요한 볼프강 폰 괴테(1749~1832)는 자신의 경험을 작품화하는 데 탁월한 작가로 자신의 중요한 경험은 거의 모두 문학화했습니다. 스물다섯의 괴테를 전 유럽에서 유명인사로 만든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도 괴테가 베츨러에 머물면서 친구의 약혼녀인 샤를로테 부프에게 사랑에 빠졌던 경험에서 출발한 작품입니다. 괴테는 샤를로테 부프에게 실연당한 후 예전부터 친분이 있던 라 로슈 부인의 집을 찾아왔다가 라 로슈의 장녀 막시밀리아네와 또 다시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막시밀리아네 역시 사업가 브렌타노와 약혼한 몸이어서 괴테는 또 한번 실연의 아픔을 겪었습니다.  바로 그 해에 완성된 괴테의 작품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여주인공 샤를로테는 그가 사랑에 빠졌던 샤를로테 부프와 막시밀리아네 라 로슈를 섞어 놓은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샤를로테 부프와 달리 막시밀리아네 라 로슈는 결혼 후에도 괴테를 못 잊었고, 그녀의 결혼생활은 그다지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37살에 사망한 막시밀리아네는 남편 브렌타노 사이에 열두 명의 자녀를 가졌는데, 베티나(Bettina)는 일곱째였습니다. 여덟 살 때 엄마를 잃은 베티나는 외할머니 댁에서 소녀 시절을 보내면서, 괴테가 어머니인 막시밀리아네에게 보낸 여러통의 러브레터를 발견했습니다. 베티나는 외할머니에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여주인공이 자신의 어머니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녀의 나이 22살이던 1807년에 베티나는 괴테를 찾아갔습니다. 괴테는 당시 58살이었고 결혼한 상태였으나 옛 연인 막시밀리아네의 딸 베티나를 환영했습니다. 하지만 괴테의 아내 크리스티아네는 수시로 자신들의 집을 드나드는 베티나를 못마땅해 했습니다. 괴테는 천진난만하면서도 영민한 베티나를 좋아했으나 가정의 평화를 위해 아내의 편을 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베티나는 괴테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관계를 이어갔습니다. 3년이 지난 1810년 오랫동안 머뭇거리던 괴테는 베티나의 매력을 물리칠 수 없어서 결국 그녀에게 푹 빠져들었습니다. 괴테는 베티나의 사랑을 갈구했으며 그녀의 편지를 한시도 손에서 놓지 않고 여행을 떠날 때도 지니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해 1810년 베티나는 다른 사람에게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음악회에서 베토벤이 직접 연주했던 월광 소나타를 들은 후 그 음악에 빠져버린 베티나는 베토벤을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을 떨쳐버릴 수 없었습니다. 베토벤의 집을 찾아낸 베티나는 무작정 그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베토벤은 처음에 그녀를 무시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베티나에게 매혹되었습니다. 베티나는 괴테에게 보낸 편지에서 ‘베토벤을 만난 순간 온 세상이 바뀌었고, 나는 이 남자를 평생 사랑하겠다고 결심했다’라고 썼습니다. 베티나는 베토벤을 수시로 방문했고, 그 외의 시간에는 그와 편지를 주고받았습니다. 그녀는 한동안 베토벤을 제외한 세상의 모든 사람과 모든 일들을 잊고 지냈습니다. 베토벤은 평생 동안 여덟 명의 여성과 불같은 사랑을 나눴는데, 베티나도 그들 중 하나였습니다. 1810년 베토벤은 창작의 고통 속에서 정열의 위기를 겪으면서 주변의 많은 친구들을 잃은 해였습니다. 마침 그때 다가온 베티나는 베토벤의 유일한 친구이자 연인이 되었습니다.

 

베티나는 베토벤과 함께 지내면서 베토벤이 괴테를 깊이 존경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당시 나이 40살의 베토벤은 전 유럽에서 천재 작곡가로 추앙받기 시작했고, 61살의 괴테는 셰익스피어 이후 가장 높은 명성을 지닌 유럽 문학의 거장이었습니다. 괴테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타고난 재능과 부모의 교육열 덕분에 유럽의 모든 언어에 능통하였고, 성서, 역사, 지리, 과학, 음악과 그림까지도 모두 섭렵한 르네상스 적 인간의 전형이었습니다. 그의 다른 업적에 가려져서 괴테의 삶 속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은 항상 과소평가되어 왔습니다. 괴테는 작곡도 했고, 평생에 거쳐 다양한 성부의 오페라 대본도 썼습니다. 괴테는 매년 여러 번씩 자신의 집에서 음악회를 열었고, 42살부터 무려 26년 동안 연극과 오페라를 공연하는 바이마르 극장의 총감독이라는 직책을 맡았습니다.

 

베토벤은 어린 시절부터 자신보다 21살 위인 괴테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했습니다. 그는 괴테의 작품들을 읽으며 그것을 순수한 음악으로 표현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혀왔습니다. 그는 베니타를 만나기 한해 전에 괴테의 비극 「에그몬트(Egmont)」를 주제로 하여 에그몬트 서곡을 작곡해서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악보를 괴테에게 보냈지만 괴테로부터 답장을 받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베토벤의 에그몬트 서곡은 현재까지도 베토벤의 작품 중에서 가장 많이 연주되는 걸작에 속합니다. 자신의 연인 베티나가 괴테와 각별한 친분이 있다는 것을 안 베토벤은 괴테가 자신의 작품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베티나를 통해 알고 싶었습니다. 베티나는 베토벤이 괴테를 무척이나 존경하며 그와 만나고 싶어 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괴테에게 보냈습니다. 그 당시 괴테도 베토벤의 음악에 관심을 보였으나, 그가 느낀 베토벤의 음악은 너무 시대를 앞서가는 파격이었습니다. 베티나는 두 거장의 만남을 주선하려고 온갖 애를 썼지만 괴테가 큰 열정을 보이지 않았기에 두 사람 사이에서 일정을 만들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해인 1811년 베토벤과 괴테는 오스트리아 프란츠 황제와 젊은 황후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황제와 황후는 독일 전체에서 가장 이름을 날리는 두 예술가를 테플리츠로 초대했습니다. 그곳에 머무는 동안 두 사람의 거처는 떨어져 있었지만 베티나가 편지를 통하여 두 사람의 전령이 되었습니다. 당시 테플리츠는 프란츠 황제와 황후, 오스트리아와 프랑스의 왕자와 공주들, 작센 지방의 대공 부부 그리고 궁정 가족들 등 눈부시게 찬란한 인물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베티나의 종용과 인간의 성격을 다루는 문학가의 호기심의 발동으로 괴테는 갑자기 베토벤에게 마음이 쏠렸습니다. 베티나를 통해 베토벤이 머무는 곳을 알아낸 괴테는 1811년 7월 19일 아침 베토벤을 방문했습니다.

 

베토벤을 만난 괴테는 베티나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처럼 곧바로 그에게 사로잡혔습니다. 바로 그날 괴테는 아내에게 편지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나는 지금껏 베토벤보다 더 집중력이 강하고, 정열적이며, 내면적으로 확신에 찬 예술가를 한 번도 못 봤어요.” 그의 전 생애를 통틀어 괴테는 다른 누구에게도 이 같은 찬사를 보낸 적이 없었습니다. 베토벤과 괴테는 순식간에 오랜 친구처럼 가까워졌습니다. 그들은 다음날 긴 산책을 같이 했고, 또 다음 날인 21일에도 괴테는 베토벤을 찾아왔습니다. 7월 23일 목요일에 베토벤은 괴테를 위해서 자신의 피아노 작품을 연주했습니다. 그것이 파국의 시작이었습니다. 베토벤과 괴테가 함께한 나흘간은 너무 많은 편지와 자료들이 서로를 교차증언하고 있어 그곳에서 벌어진 일들의 전말은 지나칠 정도로 자세히 알려져 왔습니다.

 

베토벤은 하이든이나 모차르트와 같은 그 이전의 작곡가들과 여러 면에서 달랐습니다. 무엇보다 베토벤은 선배 작곡가들과 달리 교회나 귀족에게 경제적으로도 신분상으로도 예속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시대상황이도 했지만 그보다는 베토벤이 스스로 쟁취해서 얻어낸 환경이었습니다. 귀족의 후원을 받았지만 귀족들과 대등하거나 그들의 스승으로서였습니다. 그러한 독립은 베토벤을 당시의 귀족들에게 익숙한 관례적인 음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게 했습니다. 베토벤의 음악은 후견인으로부터 벗어난 미학적으로 자율적인 음악의 원형이 되어 낭만주의 음악의 문을 열었습니다.

 

7월 23일 베토벤의 에그몬트 서곡을 편곡한 피아노 연주를 들은 괴테는 감격해하면서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그러면서도 구체적인 평을 하지 못하고 조심스러워했습니다. 그런 괴테에게 베토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선생님의 고귀한 작품을 완전히 음악으로 표현하지 못했습니다. 만일 그런 수준에 이르렀다면 지금처럼 연주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내 음악의 부족한 부분을 지적하는 대신 눈물을 보이셨습니다. 그런 선생님의 반응은 연주회에서 내 음악을 들은 후 아무것도 몰라 어쩔 줄 모르며 예의상 눈물을 흘려대던 고상한 귀족 나부랭이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아픈 곳을 찔린 괴테는 베토벤의 말에 크게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 다음날 두 사람이 산책을 나간 것은 둘의 관계를 돌이킬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베토벤은 괴테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주인공처럼 귀족의 거만함을 경멸하는 줄 알고 있었습니다. 괴테가 다른 작가들과 다른 점은 평민 출신이라는 것을 제외하면 성공적 배경 뒤에 가려진 불운한 과정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그는 나이 들면서 귀족과 동일한 대우를 받았고 평민출신임에도 훗날 바이마르 공국의 재상까지 올랐던 사람입니다. 베토벤의 기대와 달리 당시 61살의 괴테는 군주제와 사회적 신분 질서의 옹호자가 된지 오래였습니다.

 

두 사람이 테플리츠의 길을 산책 하면서 여러 귀족이나 왕족을 마주쳤습니다. 그럴 때마다 괴테는 격식을 차려 정중하게 인사를 했는데, 베토벤은 그런 태도에 감정이 상했습니다. “선생님이 그래서는 안 되는 겁니다. 선생님은 저 자들보다 훨씬 뛰어난 천재입니다. 선생님의 위치에 맞는 면모를 저들에게 확실히 보여주셔야 합니다. 저는 음악을 가르칠 때 상대가 귀족이라도 지각하거나 연주를 못하면 손가락을 잡아 비틀어버립니다. 그들이 내게 왜 그랬느냐 하고 물으면 내 시간과 재능을 허비하게 만드는 자는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한다고 답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들은 저를 업신여길 겁니다.”

 

그 직후 베토벤은 괴테의 팔을 붙잡고 걸었습니다. 마침 그때 대공이 왕비와 수행원들을 대동하고 그들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베토벤이 괴테에게 말했습니다. “이대로 걸어갑시다. 우리가 길을 비키지 않으면 저들이 비켜야 할 겁니다.” 그런데 괴테는 베토벤의 팔을 뿌리치고 모자를 벗어 손에 든 채 길 가장자리에서 고개를 숙였습니다. 반면에 베토벤은 팔을 휘저으며 대공 일행의 한복판을 뚫고 지나가다 가벼운 인사를 취했을 뿐입니다. 그러자 대공 일행은 베토벤이 길을 지나가도록 공손하게 길을 터주며 모두들 다정하게 인사했습니다. 베토벤은 저 멀리서 괴테를 기다렸는데, 괴테는 대공 일행이 다 지나갈 때까지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헤어지고 괴테는 친구에게 이런 내용의 편지를 썼습니다. “베토벤의 재능은 놀라울 정도지만 불행하게도 그는 자신을 전혀 제어할 줄 모르는 사람이네. 그런 행동은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게 불행만 가져 온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좋겠네. 그는 세상을 혐오스럽게 생각하는데, 귀가 어두워지고 몸이 망가져가는 상황에서 어쩌면 납득이 갈 만한 태도라네.”

 

그 이후 두 사람은 다시 만나지 않았습니다. 괴테는 남은 인생동안 베토벤이라는 단어를 거의 입에 올리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베토벤의 음악을 무시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의 집에서 열린 연주회에는 베토벤의 음악이 꾸준히 올라왔고, 어린 멘델스존에게 베토벤의 악보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만년의 베토벤이 정중히 그리고 간절하게 괴테에게 도움을 청했을 때에도 괴테는 답장조차 보내지 않았습니다. 베티나는 괴테와 베토벤이 만난 직후 유서 깊은 명문가 출신 시인 요아힘 폰 아르님과 결혼했습니다. 베티나는 결혼 후에도 그림 형제에게 도움을 준 것을 비롯해서 슈만, 리스트, 브람스 등 시대를 이끌던 음악의 거장들과 교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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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19-02-15 02:00:34

괴테와 베토벤을 제치고(?) 그 둘 사이를 이어줬던 이 여인이 화폐 주인공이 된게 재미있군요.

그나저나 저 여인은 어장관리(?)는 최고였네요. 

친하게 지낸 사람들이 괴테, 베토벤, 슈만, 리스트, 브람스라니.... 

평생 한번 만나기도 힘든 시대의 거장들을 들었다 놨다하는 친화력이라.... 

엄청난 매력을 가지고 있었던 여인임에는 틀림이 없는 듯 합니다. 

오늘도 흥미로운 이야기 너무 감사드립니다. 

WR
2019-02-15 02:15:20

친화력만큼이나 예술적인 재능도 있었으니까 가능했겠지요.

그래도 일곱 아이의 엄마였습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1
2019-02-15 02:07:39

너무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한편으로는 이 이야기에서는 괴테와 베토벤의 여인일 뿐인 베티나가 독일 지폐의 주인공이 된 연유가 무엇인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분명 예술사에 이름을 남길 정도의 사람이었으니 지폐의 주인공까지 되었을텐데요. 글 말미에 적어주신 부분들 때문일까요. 

WR
5
2019-02-15 02:21:30

베티나는 이런 책을 썼는데 당시에 베스트셀러 였습니다.

http://used.kyobobook.co.kr/product/viewBookDetail.ink?cmdtBrcd=7296127731610&orderClick=LIP&Kc=SEBLBkusedsearch

 

저도 베티나가 독일 지폐의 인물이 된 것에 의아했습니다. 제가 미국에 유학갔을 당시 독일 지폐였습니다.

5 마르크는 베티나, 10 마르크는 가우스 ... 가우스 화폐에는 정규분포 확률밀도함수도 있었습니다.

 https://nbamania.com/g2/bbs/board.php?bo_table=freetalk&wr_id=1871291

 

 제 생각에 베티나가 독일 지폐의 인물이 된 것은 시대를 앞서가는 여성의 상징으로서였을 거 같습니다.

 훗날에는 정치적 진보주의로도 이름을 날렸습니다.

2019-02-15 02:28:07

흥미로운글 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WR
2019-02-15 02:46:27

감사합니다. 편한 밤 되세요^^

2019-02-15 02:37:20

베토벤은 개성이 정말 강했네요.
개강했네요..

WR
2
2019-02-15 02:48:39

내가 본글에서는 안적었지만 저 정도로 끝낸 게 아니었습니다.

베토벤은 괴테의 행동을 비판하는 편지를 자신의 악보 출판사는 물론 생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곳에 보냈습니다. 괴테는 그 때문에 절망에 빠졌을 겁니다. 여튼 그 사건이 알려진 이후 베토벤은 귀족 후원자를 대부분 잃었습니다.

2019-02-15 03:42:29

불멸의 천재들 둘의 만남이네요 항상 좋은글 잘 읽고갑니다!

WR
2019-02-15 09:35:32

감사합니다.

2019-02-15 07:21:35

괴테의 여성 편력도 대단하네요. 막시밀리아네가 사망한 이후라지만 베티나에게까지 사랑에 빠지다뇨

WR
2
2019-02-15 09:38:33

괴테의 여성편력은 유명하고도 악명이 높습니다. 심지어 괴테는 75살 때 19살의 소녀 울리케 폰 레베초프와 깊은 사랑에 빠졌고, 그녀에게 청혼했습니다. 주변에서 간곡히 말리지 않았다면 둘은 정말로 결혼했을 겁니다.

2019-02-15 08:01:12

너무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WR
2019-02-15 09:38:50

고맙습니다^^

2019-02-15 08:25:44

좋은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오늘 하루..올려주셨던 글 정주행하면서 월급루팡짓 할까합니다

WR
2019-02-15 09:39:10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2019-02-15 08:29:19

자강두천...
죄송합니다

WR
2019-02-15 09:40:26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네요^^

2019-02-15 09:45:50

자존심 강한 두 천재의 줄임말인데
일종의 인터넷 드립입니다
좋은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WR
2019-02-15 09:47:10

아하~ 재미있는 거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Updated at 2019-02-15 08:50:24

밀란 쿤데라의 소설 <불멸>에도 나오는 내용이네요.

책은 베티나가 (명성으로) 불멸로 남기 위해 괴테를 이용하는 듯한 뉘앙스를 남겼는데(자세히 기억은 안 나지만 그래서 저 베스트셀러가 된 책에 담긴 편지들도 조작되었다는 식의 내용이었죠), 읽을 당시엔 몰랐는데 이 글을 읽고 나니 지극한 작가의 관점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항상 양질의 글 감사합니다.

WR
2019-02-15 09:44:41

말씀 감사합니다. 베티나가 자신의 책에서 소개한 괴테와 주고받은 편지들은 조금씩 내용이 바뀐 것이 맞습니다. 특히 괴테가 베티나를 얼마나 사랑했는가에 대해서는 베티나의 책을 전적으로 믿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베티나는 책에서 소개한 편지들의 원문을 모두 보관하고 있었고, 그녀의 사망 후 책과 원본 편지가 대조되었을 때 많은 윤문이 있었다는 것이 발견되었습니다. 특히 괴테의 의례적인 인사말을 연인을 그리워하는 표현으로 바꾼 것들이 제일 많았습니다. 괴테가 어정쩡한 태도를 취한 데에는 베티나와의 관계에 대해 예민했던 그의 아내 크리스티아네 때문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크리스티아네이 사망 후 괴테는 유부녀이던 베티나에게 다시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기 때문입니다.


베티나의 편지 조작은 내용까지 통채로 바꾼 것은 아니고 실제보다 괴테가 베티나를 더 좋아했다고 독자들이 느끼게 의도였던 것은 맞을 겁니다. 밀란 쿤데라의 소설은 그런 쪽에 크게 초점을 맞춰진 것입니다. 베티나가 편지들을 자신의 책으로 문학화하는 과정에서 별 죄책감을 안느낀 것은 분명합니다. 정말 감추고 싶었다면 원본 편지들을 고스란히 보관해서 후에 들통나게 놔뒀을 리가 없었을 테니까요. 베티나는 괴테와 베토벤 말고도 당대 최고의 문학인과 예술인들 곁에 계속 머물었습니다.

 

베토벤과 괴테가 만났을 때의 일화들은 베토벤이 베티나에게 보낸 편지의 원본 말고도 여러 곳의 다른 편지들에서도 똑같이 실려 있습니다. 괴테가 첼터에게 보낸 편지, 베토벤이 브라이트코프 사에 보낸 편지 말고도 베토벤은 테플리츠에서만 지인들에게 여러 통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 정도가 아니라 베토벤은 괴테와의 이야기를 그가 가는 곳마다 퍼트렸습니다.
2019-02-15 10:11:55

자세한 설명 감사드립니다.

2019-02-15 09:12:59

고전주의 음악에서 역시 가장 낭만파에 가까운 베토벤의 곡은 역시 저런 면에서 기인한 것이겠죠. 저는 그래서인지 베토벤의 곡이 참 좋습니다. 이번에 괴테와 저리 깊이 엮인 것에 자세히 알아갑니다.

WR
2019-02-15 09:45:39

말씀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2019-02-15 09:39:30

베일리 님의 독서량에 늘 감동을 받습니다.
얼마나 많은 책을 읽으셨길래 이런 고퀄의 글을 쏟아내시는지 궁금하고 감동적입니다.

WR
2019-02-15 09:46:19

감사합니다. 음악과 문학은 제가 아주 어릴적부터 가까이하고 동경해 왔습니다.

2019-02-15 10:39:01

베일리님께서 포스팅해주시는 양질의 글 덕분에 요즘 읽기의 즐거움을 새롭게 느끼고 있습니다.

오히려 제가 더 감사합니다.

2
Updated at 2019-02-15 12:23:12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예술성(음악,문학 등)에 매료되어 스스로가 거부할수 없을 정도로 빠져든다면

그것은 그 예술성을 사랑하는 것일까요,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일까요

 

평생 한 사람을 사랑해도, 그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예술가들의 여성편력과 사랑에 관련한 이야기를 보고 있노라면 흥미롭지만 불편할 때도 있습니다.

 

과거로 돌아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제겐

단연코 괴테가 빠질 수 없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WR
2019-02-15 20:35:59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2019-02-15 18:28:23

루 살로메 급의 천재 편력이군요^^
글 잘 보았습니다.

WR
2019-02-15 20:37:14

루 살로메의 원조격이었죠^^

2019-02-15 19:08:54

 대략은 알고 있었지만 더 자세히 보니 재미있네요. 감사합니다.

WR
2019-02-15 20:37:27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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