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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ntland칼럼] 군인에서 농구선수로, 버나드 제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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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3-02-10 23:22:44
안녕하세요 마누트볼 입니다
어제 마이어스 레오나드에 이어 오늘은 댈러스 매버릭스 소속 
버나드 제임스에 대한 글을 올려드리고자 합니다.
2012년 NBA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로 뽑힌 선수입니다. 무려 27살의 나이로 말이죠.
이 글은 한때 군인이였던 그가 어떻게 늦은 나이에 농구라는 길을 택했는지에 관한 글입니다.
본문은 Grantland라는 블로그에 올라온 글인데요, 이 블로그는 여러분들에게 친숙하실 수도 있는
Bill Simmons가 설립한 블로그입니다. 농구 이외에도 각종 스포츠와 팝 컬쳐에 대한 글들도
자주 올라오니 한번 방문해보셔도 좋을 듯 싶네요


이 영상은 버나드 제임스가 드래프트되었을 당시, 미국인의 애국심을 상징하는 
USA 챈트를 받는 장면입니다.
이제 본문으로 넘어가겠습니다.
(본문은 2012년 8월 14일 Jonathan Abrams에 의해 작성된 글입니다. 퍼가실 수 있도록 해놓았습니다.)


버나드 제임스는 어머니의 부탁을 거절했습니다. "가지 않을꺼에요." 그가 말합니다.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거라고요." 그는 올 4월 플로리다 주립대학에서 열리는 그의 졸업식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어머니께 말씀드렸습니다. 그는 이미 6년동안 공군에 제직하며 많은 상단들을 오르락 내리락 했습니다. 그에게는 이러한 졸업식같은 행사들은 몇달에 한번씩 꼭 일어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 너는 이제 다 큰 모양이구나." 베벌리 쿡이 고집센 아들한테 말합니다. "그냥 그러려니 해야겠구나. ('I guess I'll just have to deal with it.')"

그는 어머니로부터 친숙한 체념과 능동적이지만 공격적인 모습을 느꼈습니다. 그는 전화를 재빠르게 끊었습니다. "저는 좀 언짢았어요." 어머니가 회상하며 말했습니다. 그는 조금 다르게 회상합니다. "어머니는 아주 화가 나있었어요. ('Peee-iiii-sssed.')" 그가 말했습니다. 사실 쿡은 제임스의 고등학교 졸업식에조차 가보지 못했습니다. 그가 10학년 때 학교를 그만 두었기 때문입니다.

두 달후, 그녀는 또다른 행사에 참여하는 것에 대한 매우 큰 의지를 보였습니다. 6명의 아들들을 포함한 그녀의 가족은 뉴어크에서 열린 2012년 NBA 드래프트 현장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그 일로 하여금 몇 년만에 처음으로 온 가족이 한자리에 있게 되었습니다. 제임스는 보통은 이런 파티에 참석하지 않습니다. 파병을 나가 -카타르, 쿠웨이트, 이라크-국방의 의무를 다했던 것을 포함, 정말 빙빙 돌아서 NBA로 향하게 되는 그이기 때문입니다. NBA는 매년 최고의 유망주들의 꿈이 현실이 되는 장면을 직접 볼 수있도록 그들을 이 현장에 초대합니다. 허나 제임스는 관중들 사이에서 가족들과 함께 자리하였습니다.

첫번째 라운드가 끝났지만, 그의 이름은 지명되지 않았습니다. 그의 형제중 한명인 쉐라드 레딕은 이 장면이 얼마나 묘한가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한때 NBA에서 뛰는 것을 꿈꿔왔던 그는 현재 ABA에서 활약중입니다. 그는 지금, 그를 위한 것이 아닌, 하지만 그의 엉뚱하고 냉담하고 투박하며 농구에는 관심조차 없었던 동생을 위한 드래프트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게 얼마나 말도 안되는 상황이야. ('Surreal')' 레딕은 생각했습니다.

두번째 라운드, 전체 33번째로 버나드 제임스는 후에 댈러스 매버릭스로 넘어가게될 클리블랜드 케벌리어스의 픽에 의해 지명되었습니다. 팬들은 보통 야유하기 위해 NBA 드래프트에 참석합니다. 그들은 총재 데이빗 스턴에게 야유를 던집니다. 그리고 팀들의 지명에요. 또한 다른 팀들의 지명에도. 그들은 야유를하기 위해 야유합니다.

그들은 버나드 제임스를 야유하지 않았습니다. 끊임없이 U-S-A를 외쳤을 뿐이죠.

쿡은 쉽게 우는 편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커다란 스크린으로 상황을 지켜보면서도 울지 않았습니다. 이 모든 일이 진짜처럼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치 다른 사람의 모습을 보는 것처럼 말이죠.

여러분은 요근래의 NBA 선수들을 마치 조립 라인 ('Assembly line')의 부품처럼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초등학교때부터 알려지고 랭크되는 선수들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입술 위에 살짝난 수염을 제외하면 다를바없는 그들이 중학교 때부턴 전국 투어를 시작하고요. 마지막으로 여러분은 이미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고등학생과 그 학생이 자신이 응원하는 대학교에 진학하기로 하면 자신의 아내를 빌려주겠다고 말하는 '열성적인' 팬을 떠올립니다. (주: 현재 켄터키대학에서 뛰고있는 널렌스 노엘에게 어떤 팬이 실제로 이러한 제안을 했었습니다. 실제로 노엘은 켄터키로 향했는데 어떻게 되었을까요?  http://www.lostlettermen.com/uk-fan-offers-wife-to-top-recruit-noel/) 

당신은 버나드 제임스를 떠올리지 않습니다.

제임스는 16살의 나이에 고등학교를 그만두었습니다. 그리고 17살의 나이에 공군에 입대를 하게 됩니다. NBA에 드래프트되었을 때의 그의 나이는 27살입니다. 그의 일화들은 마치 예전에 프로무대에 데뷔하기전에 군대를 다녀왔었던 이전 세대의 선수들을 떠올리게끔 합니다. (주: 제가 처음으로 떠올리게 되는 선수는 역시 테드 윌리엄스네요. http://en.wikipedia.org/wiki/Ted_Williams#1942_and_Baseball_during_the_War) 하지만 제임스의 세대는 다르죠. 아주 많이.

"제가 이 자리에 오기까지 일어났었던 수많은 일들은..." 4주후 그의 NBA 커리어가 공식적으로 시작되었던 라스베가스에서의 썸머리그에서 제임스가 말했습니다. "제가 여기까지 오기위해 정말 많은 일들이 정확탄 타이밍에 일어났던 거에요."

(본문에는 없지만 임의로 사진 추가합니다. http://www.baltimoresun.com/media/photo/2011-02/59632166-22170601.jpg)

에릭 듀마스는 청년 시절 공군에 입대하였으며 첫 파병을 필리핀으로 나갔습니다. 듀마스의 농구 실력은 보잘것없었지만 농구를 아주 잘 이해하였습니다. 그의 소대 ('Squadron') 팀 감독은 그의 그러한 재능을 알아보고 그와 함께 코치를 해볼 것을 권했습니다.

그 이후 듀마스는 몇 년후에도 켈리포니아에 위치한 Beale 공군기지의 소대 팀을 감독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내와 함께 쇼핑을 하고있던 그에게 팀의 한 선수가 전화를 걸어와 신병을 살펴볼 것을 원하는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키가 아주 큽니다. ('A tall drink of water')." 그가 말했죠. 듀마스는 기지로 달려갔고 거기서 마르고 홀쭉한 십대 소년을 마주칩니다. 그의 엄청나게 큰 신발은 그가 아직도 성장중임을 암시했고요.

"자네 농구하나?" 듀마스는 물었습니다.

"거의 안합니다." 제임스가 답했습니다.

제임스는 군인 가족의 일원입니다. 그의 양아버지 데릴 쿡은 육군으로 입대하였으며 후에는 공군이 되었습니다. 그의 가족은 조지아 주 사바나에서 독일로, 뉴욕 주 북쪽으로 그리고 다시 사바나로 옮겨다녔습니다. 제임스는 전형적인 중간으로 태어난 아이였습니다. 그는 모든 것들을 내면화하였습니다. 그는 어떤 날은 성숙해보였고 어떤 날은 장난꾸러기 같았습니다. 몇 년동안 그의 가족은 그가 아우토반을 달리던 베벌리 쿡의 차의 시트를 잡아당겼던 일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뒤로 완전히 꺾여버렸죠. 쿡은 마치 차에서 떨어져나갈꺼라 생각하며 크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는 무책임하고 사실 좀 얼간이같았습니다." 레딕이 말했습니다.

제임스의 형제들은 사바나에 위치한 Windsor Forest 고등학교의 스타급 선수들이었지만 제임스는 너무 크기 때문에 본인 또한 가끔 걸려서 넘어지곤 했던 자신의 발은 그들의 발걸음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모든 팀들의 최고의 선수들이었어요." 제임스가 말했습니다. "저는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저는 그들을 뛰어넘거나 해왔던거 만큼 하는 건 하고싶지 않았어요. 전 독자적인 길을 가고싶었다고요."

하지만 제임스는 어떻게 해야 그 길을 갈 수 있을지 몰랐습니다. 미식축구 경기 중 낙다운이 되고 그 스포츠와는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단지 친구들이 권유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약간의 기대를 받으며 9학년 농구팀에 도전해보기도 했습니다.

"고등학교가 어떤 곳인지 잘 아시자나요." 제임스가 말했습니다. "친구 간의 이해관계가 얽혀있다고요. ('Peer pressure')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싶죠. 왕따가 되고싶지 않고요. 잘나가는 친구의 놀림을 받는 것은 원치 않습니다. 여러분이 그러한 압박 속에 놓여있다면 그저 삶을 조금더 편안히 만들기 위해 하기 싫은 일들도 억지로 하게 되죠. 저는 바깥에서 안쪽을 들여다보며 그런 친구들과 어울린다는 것이 어떤건지 느껴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제임스는 처음 10일은 달리기 훈련만 있다는 것을 깨닫고 트라이아웃을 떠났습니다. 그는 온코트 훈련들이 시작되었을 때 다시 돌아갔지만 감독은 그에게 퇴짜를 놓았습니다.

감동적인 이야기에서 멘토가 등장하는 건 바로 이 순간입니다. 제임스의 형제들을 보며 그도 아마 그들과 똑같은 유전자를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누군가. 아니면 조금의 격려만 있다면 훌륭한 학생이 될만한 인물을 발견한 선생님이나요.

하지만 멘토는 없었습니다. 제임스는 그 누구에게로 달려가지 않았습니다. 대신 모든 것들로부터 도망쳤습니다.

"사바나가 어떤 곳인지 살짝 알려드리죠: 80에서 90퍼센트의 젊은 흑인 남자들은 맥도날드나 슈퍼마켓처럼 장래성없는 곳들에서 장래없는 일들을 하며 시간을 허비합니다." 제임스가 말했습니다. "아니면 문제를 일으키고, 마약 장사를 시작하며, 감옥에 들어가거나 어리석은 행동으로 인해 죽기도 하고요. 많은 친구들이 그런 길에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제 생각엔 그 나이대가 사람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결정하게 되는 나이대인거 같아요. 올바르게 사느냐 아니면 나쁜 길에 빠져드느냐 말이죠. 10학년 때쯤 말이에요. 제가 아는 많은 사람들이 나쁜 길을 택했지만 저에게는 맞지 않았죠. 저는 감옥에 가고싶지 않았어요. 마약을 팔고 싶지도 않았고요. 저는 그저 그 모든 것들로부터 멀어지고 싶었습니다."

제임스는 점점 신경을 끄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이 수업에 별 관심 안가져. 어느 날 그는 생각했습니다.너무 쉽고 시험은 쉽게 통과할꺼야. 그의 일주일에 두 세번씩 결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번씩만 얼굴을 비치길 시작했습니다. 제임스는 좋은 학생이었습니다만 오직 비행 ('Delinquents')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학교를 그만둔 것이었습니다.

"전 그저 모든 것들로부터 도망치고 싶었어요." 제임스가 말했습니다. "저는 제가 새로 나온 조던 신발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제 가치가 떨어지고 부적격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싫었습니다. 그 것이 첫번째 동기였습니다. 저는 제가 가치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고 싶었습니다. 저는 고작 정서적으로 피해받기 위해 매일 학교에 나가야 한다는 사실이 싫었습니다."

그는 우주 탐사에 대해 공부하는 것을 즐겼으며 매일 책방에 가서 책을 읽으며 시간을 떼우곤 했습니다. 그의 가족은 이를 몰랐죠.

"그들이 나쁜 부모는 아니었습니다." 제임스가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저를 정서적으로 지원해주지는 않았어요. 군인 스타일같았죠. 말하자면 참고 할 일 해라 ('Suck it up and get the job done') 랄까요. 그게 우리가 자라온 방식이었습니다. 감정에 대한 대화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안아주거나 편안하게 해주는 일들은 잘 없었어요." 하지만 베벌리 쿡은 자신이 알지 못했던 것과는 맞서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걔는 나나 아버지한테 한마디도 없었어요." 쿡이 말했습니다.

학교 측은 쿡에게 전화를 걸어 그녀의 아들이 지속적으로 학교에 빠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당연히 죽도록 혼났죠. ('Of course, I got my butt whooped')" 제임스가 말했습니다.

가족은 딜레마에 봉착했습니다. "저는 엄한 엄마 스타일이었어요." 쿡이 말했습니다. "저는 '싫어. 나는 야만인들은 기르지 못해. 난 너를 단단히 가르쳐서 좋은 미국 시민으로 만들꺼야.' 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게 저의 좌우명이었어요." 제임스는 학교에 돌아가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는 10학년을 반복해야 했으며 그랬더라면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을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가진 선택권들을 돌아보았습니다. 그는 이미 군인 가족의 일원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이미 그에서 무엇 무엇을 하라고 명령을 내리고 있엇습니다. 그러니 그런 것들로 돈이라도 벌어야죠. 17살의 제임스는 어머니와 양아버지에게 그가 공군에 입대할 생각이라는 것을 밝혔습니다.

17살에 육군에 입대한 후, 그의 형 데릴은 걸프전에 참전했었습니다. 제임스는 매일 밤 어머니가 혹시 전화는 오지 않을까, '잘못된' 전화가 오지는 않을까 하시며 걱정하셨던 모습들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난 매일 밤 잠을 자지못하고 걱정했던 것들을 다시 반복할 수는 없어." 쿡은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제임스는 단호했습니다. 데릴 쿡 또한 말이죠. "제가 해냈어요." 데릴이 베벌리한테 말합니다. "그러니까 걔도 괜찮을 꺼에요. 걘 똑똑하고 쉽게 배우잖아요. 걔가 살면서 무엇을 하고싶을지 생각하는 동안,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하고 여행도 다니면서 돈도 벌잖아요. 군대에선 걔가 잘 수 있는 곳을 배정해주고 걘 나라를 위해 봉사하는 거죠."

베벌리 쿡은 자신의 의견이 과반수에 못 미친다는 것을 깨달았고 곧 보내주어야 했습니다. 제임스가 18살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문자 그대로 제임스가 공군에 입대할 수 있도록 보내주어야 했습니다 ('Sign off'). 그는 Youth Challenge Program을 통해 입대했고 GED를 얻었습니다. (주: GED는 General Educational Development의 약자로 한국의 검정고시와 같은 것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제임스는 샌안토니오에서 기초 훈련을 마친후 Beale 기지에서 듀마스를 만났습니다. 그가 농구를 하고 있었을까요?

"넌 이제 시작한다." 듀마스가 말했습니다.

(본문에는 없지만 임의로 사진 추가합니다. http://a.espncdn.com/media/motion/2012/0115/dm_120115_ncb_bernard_james.jpg)

"페인트존 안에 서서 샷들을 블락해봐." 듀마스가 제임스를 가르쳤습니다. "리바운드. 수비 해."

그는 익숙한 선수들이 활용했던 것처럼 게임의 안팎이나 밀고 밀치는 것들에 대해 잘 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열심히 들었고 가르쳐서는 배우지 못하는 타고난 감각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듀마스에게는 제임스보다 키가 크면서도 외곽에서 플레이하며 공을 소유하기를 원하는 선수들이 많았습니다. 제임스는 달랐습니다. 능력보다는 노력으로 성공할 수 있는 내각에서의 플레이를 선호했죠.

그는 부대에서의 마음가짐과 마찬가지로 농구 코트에서의 모습들을 보여주었습니다. 달리기가 싫어서 농구 트라이아웃을 그만 두었었던 그 아이가 지시에 따르고 있었습니다. "선택이 없었죠." 제임스가 말했습니다. "해야만 했죠."

제임스는 2003년, 방어선 경계와 비행기 보안 등을 담당했던 카타르로 첫 파병을 나가게 됩니다. 온도는 보통 50도 가량 높으면서 밤에는 20도 정도로 떨어집니다. (주: '120 degrees'와 '70 degrees.' 소숫점은 편의상 0으로 맞췄습니다.) 고운 모래가 햇빛을 반사하기 때문에 선글라스없이는 앞을 보기 힘들었습니다. 조금 큰 부대같은 경우에는 45분 걸리는 거리에 맥도날드가 있기도 했습니다. 장병들은 한번 방문할 때마다 100달러씩 쓰기도 했고요. "여러분이 누군가의 사물함 안에서 2주정도 된 오래된 치즈버거를 본다고 하더라도 '나 저거 그래도 먹을꺼야.' 하고 생각할꺼에요." 제임스가 말했습니다.

카타르에서의 제임스는 부대 내 3대3 토너먼트들에 참가하며 부대 내 상점에서 사용 가능한 1000달러짜리 상품권을 획득하기도 했습니다. 그가 농구를 통해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은 전에는 들지 않았던 생각들이었습니다. 그는 10달 후 Beale 기지로 돌아갔습니다. 그의 총명함에 대한 이야기들은 부대 내를 떠돌았습니다. 어느 날, 제임스와 같은 조에 속한 롭 그레이 하사는 그가 보아왔던 최고의 농구를 보게 됩니다. 제임스는 공을 잃었고 작은 싸움들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어디선가, 그는 공을 가지고 관중들 속에서 나와 림이 부서질 것만같은 투 핸드 덩크를 선보였습니다. "그는 말그대로 부대 내에서 샤킬 오닐과 같은 존재였어요." 그레이가 말했습니다. "그 누구도 그를 막을 수 없었죠."


제임스는 통관 관리자로써의 훈련을 마치고 2005년 쿠웨이트로 파병을 나가게 됩니다. 그가 황금색 무기들, 황금색 변기나 크롬 칠된 자동차와 같이 몰수 조치되는 사담 후세인의 물건들을 지켜보고 있지 않았을 때엔 또 다른 농구 리그에 참가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매달 토너먼트를 개최했습니다. 그는 또 몇 인치가 자라 6' 6"이 되었습니다. 그의 지휘 하에 그의 팀은 절대로 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미국에 돌아오고 나서도 계속해서 발전해나갔습니다. 제임스가 참가했던 토너먼트에서 심판을 보고 있었던 한 ACC 심판은 그의 플레이에 놀란 나머지 코치들에게 전화를 걸어 그를 당장 스카우트하라고 말했습니다. (주: 심판이 특정 ACC 학교들을 밀어준다는 논란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에 이 칼럼을 위해 인터뷰한 그 누구도 그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고 하는군요.) 플로리다 주립대학의 레오나드 해밀턴은 그를 계속해서 주시해왔고 2005년 U.S Armed Forces 올스타 토너먼트에 그가 플레이하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ACC 학교들의 구애가 끊이지 않게 되자 (주: 제임스에 의하면 듀크와 UNC를 제외한 모든 학교가 그에게 연락했었다고 합니다.), 그는 장병들이 주어진 기회를 얻게 되었을 때 현재의 근무에서 제외될 수있는 Palace Chase 프로그램에 지원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못했고 결국 2007년 이라크의 Bucca 캠프로 마지막 파병을 나가게 됩니다. 제임스는 이번 파병에는 더 많은 돈이 주어지지만 그가 살아남기 위해 모든 것을 알고있는가에 대해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Bucca 캠프에는 약 11개의 그룹으로 이루어진 2만명의 정치범들이 있었습니다. 고작 철로 만든 펜스들만이 제임스과 그들을 떼어놓았을 뿐입니다. 그들은 도망가고 싶으면 언제든지 도망갈 수있어. 제임스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각 그룹에는 매일 장병들과 협의하여 폭동을 막는 역할을 하는 종교적 지도자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임스는 계속해서 정치범들 사이에서 칼부림이 일어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어느 날-"제가 살면서 경험해보았던 가장 건조했던 날이었어요." 당시 Bucca 캠프에 함께 있었던 듀마스가 말했습니다.-로켓이 캠프를 강타했습니다. 그 로켓은 제임스가 아침에 머릿수를 세는 일을 담당하고 있었던 그룹 8을 강타하여 6명이 사망하고 68명이 부상을 입게 되었습니다. 펜스에는 구멍이 생겼습니다. 카오스가 시작되었습니다. 정치범들은 도망가려는 생각들보다도 살기 위해 구멍을 통과하기 시작했습니다. 듀마스는, 사실 이 공격이 있기 2개월 전 마쳤어야 했던 제임스가 걱정되는 마음에 빠르게 침대 밖으로 뛰쳐나갔습니다. 제임스는 위험에서 벗어나 정치범들을 다스리고 부서진 펜스를 지키는데에는 성공했지만, 그의 귀는 폭발음으로 며칠 간 울렸습니다.

그 사이, 플로리다주립대의 해밀턴은 계속해서 최선을 다해 제임스를 쫓았습니다. "제가 전화를 하고싶다고 해서 통화가 바로 가능한 것도 아니잖아요." 해밀턴이 말했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제임스에게 소식을 전해주었던 베벌리 쿡과 대화를 나눴습니다. 크리스쳔이었던 해밀턴은 계속해서 옳은 말을 했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그가 만약 플로리다주립대를 선택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대학 교육을 받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한다고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제임스는 거의 9개월을 이라크에서 보낸 후 Beale 기지에 다시 정착하게 됩니다. 대학은 그를 유혹하고 있었습니다. 감독들은 계속해서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이 모든 것들은 그저 '꿈'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공군의 보호를 받고 있었고 계속해서 진급하고 있었습니다. 왜 이 모든 것들을 포기합니까?

"전 이 모든 것들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제임스가 말했습니다. "전 아직까지도 공군에 재입대해서 나가지 않고 대학에 진학하지 않는 길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군대라는 곳이 말이죠, 당신이 군대에 있는 동안엔 [금전적으로] 안전하고 안정적이라고 믿게 하죠. 당신이 돈을 받을 것이라는 것을 알죠. 그리고 항상 직업이 있을거고요. 사실 이런 것들이 이러한 안정성이 없는 바깥 세상을 무서워 보이게 만들죠. 많은 사람들이 전역을 하고싶어하지만 직장을 구하지 못하거나 빈털털이가 되는 것을 두려워해서 재입대하곤 하죠. 지난 4-6년 동안 알고 지냈던 모든 것들을 버리고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는 것은 정말 무서운 상상이죠."

그의 친구들은 왜 그가 포기하려 하는지 물었습니다. 그들은 그에게 뒷걸음질치는 일이라면서 말리려고 했습니다. 그는 다시 한번 그의 친구들이 권했기 때문에 농구 팀에 도전했던, 친구 간의 이해 관계에 민감한 어린 아이처럼 느껴졌습니다. "전 사실 굉장히 무서웠습니다." 제임스가 고백했습니다. "전 진짜 재입대의 문턱까지 갔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몇 년간 계속 성장하면서, 그의 결심은 굳어졌습니다. 이건 그의 선택이었으며 그 자신의 성공이자 실패였습니다. "전 그저 제 심장이 말하는 길을 택했고 제 본능은 바깥 세상으로 나가 교육을 받는 것에 도전해보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본문에는 없지만 임의로 사진 추가합니다. http://www.blogcdn.com/www.aolnews.com/media/2010/05/bernardjamessplit-1273534896.jpg)

제임스의 커리어는 사실 시작하기도 전에 끝날뻔했습니다. 23살에 그는 논-퀄리파이어로써 탈러하시 커뮤니티컬리지에 진학했습니다. (주: NCAA가 말하는 논-퀄리파이어는 고등학교에서 13개의 주요 수업들을 마치지 못해서 NCAA의 기준에 맞지 않는 선수입니다. 논-퀄리파이어가 대학에 가게되면 1년간 장학금을 받을 수 없으며 1년간 연습에 참여할 수 없고 4년이 아닌 3년간만 선수생활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제임스가 커뮤니티칼리지에 먼저 간 것 같네요. http://grfx.cstv.com/photos/schools/sacl/genrel/auto_pdf/ncaa-requirements.pdf 를 참고하세요.) 그가 성공적으로 그 곳에서 2년을 보냈더라면 플로리다주립대로 가기 전의 좋은 정착이 되었겠죠. 하지만 그는 첫 몇번의 연습 중 슬개골 ('Patella')을 접지르고 말았습니다. 그는 그의 몸이 이미 그를 배신하고 있다고 두려워했고, 거의 포기할 뻔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등학교를 마치고 진학하는 대학교에 6년간의 '근무'를 마치고 온 청년이에요." TCC의 감독 에디 반스가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재능이 있었고 대학교에서 통할지 자신의 실력을 시험해보고 싶었죠."

제임스는 학교에 남았고 재활에 전념했습니다. 그는 그보다 한참 어린 팀 동료들의 성질에 맞추기 위해 크게 노력했습니다. 그는 이따금씩 그들을 '자만한 애들 ('Snooty-nosed kids')라 부르곤 했습니다. 그는 한번 지시가 내려지만 모두가 따르는 군대에서부터 소수만 따르는 곳으로 간 것입니다. "하지만 가 말할땐 모두가 잘 들었지요." 반스가 말했습니다.

2년간 TCC에서 활약하면서 제임스는 13.6점과 9.6리바운드를 기록했습니다. Northwest Florida State College와의 시합에선 무려 38점과 16리바운드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그가 좋은 선수라는 것을 알았어요." 반스가 말했습니다. "우리는 그저 그가 이렇게까지 잘할 것이라는 것은 몰랐을 뿐입니다-그는 좀 더 높은 곳을 바라볼 수있는 자격이 있다는 것 말이에요."

TCC를 FCCAA 결승전에 올려놓은 그는 플로리다주립대학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오카로 화이트 (주: http://espn.go.com/mens-college-basketball/player/_/id/51354/okaro-white) 는 같은 해에 진학합니다. 그들은 함께 훈련했고 많은 수업들을 함께 들었습니다. 화이트가 그에 관한 루머들을 듣기 시작하기까지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당신 몇 살이야?" 어느 날 화이트가 물었습니다.

"Oh my goodness," 제임스가 26살이라고 말하자 그가 말했습니다. "당신하고 나하고는 9살이나 차이나."

그의 새로운 동료들은 그를 "병장님 ('Sarge')," "할아버지 ('Granddad')," "아빠 ('Pops')," 그리고 "늙은 시민 ('Senior citizen')" 등으로 장난스럽게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제임스는 남들과는 다르게 행동했죠. 예를 들어서 자신의 머리를 혼자 자르는 것과 같이 말이죠. 한 번은 제임스가 실수로 머리에 구멍난 자국을 만들자, 동료들은 몇 주간 그 자리에는 이제 다시 머리가 자라지 않을 것이라고 놀렸습니다. 그들이 같이 식사를 하러 나갈 때면 제임스는 뒷자리에 벽을 기대고 앉아 모든 통로들과 출입구를 숙지하려 한다는 사실도 깨달았습니다.

제임스는 North Florida 대학을 상대로 한 첫번째 NCAA 경기에서 15점을 기록했습니다. 그 다음 9경기에선 단 한번만 두자릿수 득점을 올렸으며 전미 2위 오하이오주립대와의 경기에선 한점도 넣지 못했습니다. 경기장은 팬들로 가득찼고 경기는 전미로 방송되었습니다. 해밀턴은 제임스가 처음으로 이러한 환경에서 경기를 한다는 것을 알았죠. 그는 제임스의 망설임을 느꼈습니다. 그 순간조차도, 제임스는 자신이 ACC에서 경기를 할만한 실력이 되지 않는다고 믿었습니다. 그와 형제들이 자라면서 봐왔던 그 컨퍼런스말이에요. 그가 거기에 있을만한 자격이 있었을까요?

"넌 이 경기장에 있는 누구와 비교해도 손색없는 실력을 가지고 있어." 해밀턴이 제임스에게 말했습니다. "사실 넌 어느 누구보다도 낫다고. 긴장 풀고 잘해봐." "Yes, sir." 제임스가 대답했습니다.

그 날 오하이오주립대는 플로리다주립대를 꺾었지만 (주: http://espn.go.com/ncb/boxscore?gameId=303340052), 경기가 시작되자 해밀턴은 제임스의 눈에서 더 이상의 불확실함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버나드, 너가 왜 플로리다주립대에 왔는지 말해봐." 부코치 스탠 존스가 몇 경기후 제임스에 물었습니다.

"코치님, 전 그저 졸업장을 받고 장교로써 군대에 돌아가고 싶습니다." 제임스가 말했습니다.

존스는 항상 해밀턴과 함께해 왔습니다. 2001년 워싱턴 위자즈에서도 말이죠. 그는 유망주들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버나드, 나는 너가 국가를 섬긴다는 사실이 정말 멋있고 자랑스러워. 하지만 내가 농구하는 너의 모습에 대해 알려주지." 존스는 그에게 말했습니다. "너가 정말로 열심히, 그리고 농구에 모든 것을 바친다면, 6년 가량은 농구로 돈 많이 벌고 군대로 돌아갈 수 있다고. 금전적으로 어떠한 스트레스도 받지 않을꺼야."

그거 괜찮네. 제임스는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곧이곧대로 믿은 것은 아닙니다. 코치가 할 일은 선수의 자존심을 비현실적인 높이까지도 끌어올리는 것이니까요.

그는 계속해서 지시에 따랐습니다. 그는 한 번은 존스에게 조금 더 많이 소리를 질러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제가 36년간 코치로써 활동하면서 저에게 그런 부탁을 했던 선수는 단 한 명도 없었어요." 존스가 말했습니다. 제임스는 조용한 편이었고 어린 선수들에게 결정을 맡기는 편이었습니다. 그가 10년정도 나이가 많았다고 하더라도, 다른 선수들이 농구로 따지면 더 성숙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존스는 제임스가 다른 방식으로 팀을 이끌어나간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가 지시를 너무 잘 따랐기 때문에 다른 선수들도 하는 수 없이 그래야만 했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는 다른 선수들과 잘 어울렸습니다. 제임스는 다른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는 삶에 대한 관점을 제공했습니다. "그는 제가 정말 존경하는 사람이에요." 화이트가 말했습니다. "이런 말하기에는 부끄럽지만 전 정말 그를 친형처럼 생각하고있어요. 장난스럽게 저는 그에게 아버지같다고 말하기도 해요."

그의 능력은 2010년 크리스마스 날 터졌습니다. 그가 15점 10리바운드를 기록하는 덕분에, 플로리다주립대는 전미 15위 베일러대학을 꺾을 수 있었습니다. (주: http://espn.go.com/ncb/boxscore?gameId=303590052) 그는 수비의 핵이 되었고 골밑에서 믿을 수 없이 부드러운 터치를 선보였습니다. (주: 아래의 동영상 참고.) 아쉽게 진 NCAA 토너먼트 16강전에서 그는 후에 4강까지 진출하는 VCU를 상대로 8점, 9리바운드 그리고 5개의 블락을 기록했습니다. (주: http://espn.go.com/ncb/boxscore?gameId=310840052) 

봄이 오자, 그는 ACC에 자신을 위한 자리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처음으로 농구를 통한 미래에 대해 생각해보기 시작했습니다. "존스가 저에게 말한 후, 저는 어쩌면 내 보트는 이미 떠났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제임스가 말했습니다. "저에게는 재능이 있었어요. 그 당시에 저는 오직 저의 과거가 조금만 달랐더라면, 제가 NBA에 있었을 수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을 뿐이었어요. 그 정도만 했어도 괜찮았을꺼에요. 전 괜찮았을꺼라고요. 과거로 돌아가서 실수를 바로 잡을 수는 없는거죠. 일어난 일은 이미 일어났다고요. 저에게 가능성이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는 것만으로도 저는 괜찮았을꺼에요."

더 이상 그렇진 않았습니다. 그는 4학년 시즌 두번째 경기였던 Central Florida를 상대로 18점 11리바운드를 기록했고 (주: http://espn.go.com/ncb/boxscore?gameId=313180052 참고로 UCF에는 조던의 아들 중 한 명인 마커스가 뛰고있었습니다.) 그 다음 경기였던 Stetson을 상대로는 15점 11리바운드를 기록했습니다. (주: http://espn.go.com/ncb/boxscore?gameId=313200052) 이 두 경기에서 그는 17번의 슛을 던져 15번을 성공시켰습니다. 그는 연장전에서 패했던 전미 4위 코네티컷과의 경기에서 14리바운드를 기록했고 (주: http://espn.go.com/ncb/boxscore?gameId=313300041) 3위 UNC를 90 대 57로 대파했을 땐 8점 9리바운드를 기록했습니다. (주: http://espn.go.com/ncb/boxscore?gameId=320140052) 플로디다주립대는 비록 NCAA 토너먼트 32강전에서 떨어졌지만 (주: 신시네티와의 경기였네요. http://espn.go.com/ncb/boxscore?gameId=320780052) 첫번째 ACC 토너먼트 우승컵을 차지했습니다. (주: UNC와의 경기였고요. http://espn.go.com/ncb/boxscore?gameId=320710153) 제임스는 시즌동안 10.8점, 8.1리바운드 그리고 2.3블락을 기록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끝난 후 저는 '좋아, 다음은 뭐야?' 하고 생각했습니다." 제임스가 말했습니다.


제임스는 댈러스 매버릭스와 워크아웃을 하지 않았습니다. 인터뷰 또한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6월 NBA 대리 총재인 아담 실버와 악수를 하기 위해 상단에 오를때만 하더라도 그 곳으로 가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지난 며칠간 그는 드래프트되지 않으면 어떻하나 하냐는 생각에 두려웠습니다. 그에 따르면 그가 커뮤니티칼리지에 있었던 시절 다쳤던 무릎 때문에 히트와 위자즈는 그를 부적격하다고 판단했다고 합니다. 이 사실은 그를 당황하게 만들었습니다. 지난 4년간 그 무릎을 가지고 잘만 해왔기 때문입니다.

제임스는 먼 길을 왔지만 확정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는 아직 매버릭스에서 한 자리를 얻기 위해 싸워야하며 그는 그럴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매버릭스도 그가 그러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가 트래이닝 캠프에 도착하자마자 그 자리를 위해 싸울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까지 보아왔던 것에 의하면, 그가 그 자리를 얻지 못할 것으로 생각할 이유는 절대로 없습니다." 댈러스의 GM 도니 넬슨이 말했습니다.

감독 릭 칼라일은 매버릭스가 라스베가스에서 가진 몇 번의 연습에서 제임스가 보여주었던 것들에 굉장히 놀랐다고합니다. 제임스는 5번의 썸머리그 경기들에서 그가 대학에서 기록했던 스탯과 비슷한 10.2점, 9리바운드 그리고 2.6개의 블락을 기록했습니다.

"우리는 그가 플로리다주립대에 있을 때 지켜보았고 그의 팬입니다." 칼라일이 말했습니다. "그는 깁니다. 샷블락커이고요. 열정을 가지고 경기에 임합니다. 그건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것이에요. 또한 그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락커룸 내에서의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매우 성실한 남자에요. 그에게는 돈을 주고는 사지 못할 경험들이 있고 우리는 그게 그에게 좋게 작용할 것이라고 보고있습니다." (주: 많은 팀들이 그의 나이때문에 그를 패스했다고 하지만 칼라일은 그를 즉전감으로 보고있다고 하네요. 자세한 것은 본문 참조.)

댈러스는 2013년 드와잇 하워드를 얻기 위해 프론트 코트를 재정비했습니다. 라마 오돔, 브랜든 해이워드 그리고 이한 마힌미는 팀을 떠났습니다. 엘튼 브랜드와 크리스 케이먼이 새로 합류했습니다. 이 팀은 2년 우승을 차지했던 그 팀이 아닙니다. 그들은 아직 프로젝트형이 아닌 바로 합류 가능한 선수들을 찾고 있습니다. 칼라일이 말하듯 "27살은 아직도 젊은 나이입니다." 제임스의 다리는 아직 싱싱합니다. 그가 계속해서 성장한다면 기회가 부여될 것입니다.

"성숙함은 중요합니다." 마크 큐반이 이메일을 통해 말했습니다. "그는 아주 성숙합니다. 그가 열심히 할 것이란건 말할 것도 없지요. 2라운드 픽으로써, 우리는 나이와는 상관없이 기여를 할 수있는 선수를 원합니다. 우리는 그가 합류한다는 것에 매우 들떠있어요."

제임스의 가족은 아직도 그가 너무 많은 것들을 속으로만 생각한다고 걱정합니다. "제가 과거에는 알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최근에서야 알게 됐어요." 레딕이 말했습니다. "제가 큰 형으로써 들어줄 수 있었던 그런 것들 말이에요. 그러한 그의 성격은 그가 저에게 털어놓을 수도 있었던 시간들을 바꿔놓았던 것 같아요." 그가 기자들에게 고백하는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가족에 대한 발견들입니다. "그건 절 걱정하게 만들어요. 누구든지 누군가에게는 표현을 할 수 있어야 하거든요." 베벌리 쿡이 말했습니다. "그가 그러고 있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그녀의 아들은 삶 속의 시간이 얼마나 지나갔냐 하더라도 꿈은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산 증인이자 자극제입니다. 쿡은 학교에 돌아가 가스펠 엘범을 녹음하는 것을 끝마칠 계획이라고 말합니다. "차트 꼭대기에 올라가느냐가 중요한게 아니에요." 쿡이 말합니다. "중요한 건 제가 하고싶은 일을 하는 것입니다. 저는 해낼꺼에요."

플로리다주립대에서 제임스의 부코치였던 존스는 그도 언젠가 다른이들에 좋은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믿습니다. "자신이 이 행성에 속할 자격이 있는지도 몰랐던 따분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존스가 말했습니다. "그가 어렸을 땐 학교가 그에게 중요하지 않았죠. 하지만 군대는 그에게 방향과 훈육을 제시해주었고 그의 유전자는 그가 더 큰 무대에 설 수있는 기회를 마련해주었습니다. 그가 어떻게 플레이할 것인가는 아직 보여지지 않았지만 좋은 시작이라고 봐도 될 것 같군요."

그가 NBA로 가기까지, 그는 카타르, 쿠웨이트, 이라크 그리고 탈러하시를 거쳤습니다. 여러분은 NBA 선수를 떠올릴 때 버나드 제임스를 떠올리지 않지요. 아마 곧 그렇게 되리라 믿습니다.

생각보다 글이 길어서, 그리고 박스 스코어들 일일이 찾아서 같이 올리느라 오래 걸렸네요.
그래도 번역하면서 다시 한번 느낀게, 참 배울 것들이 많은 선수가 바로 버나드 제임스라는 겁니다.
특히나 요즘같은 세상에서 꿈을 찾아 떠나는 일이 쉽지만은 않은데 참 존경스럽네요.
끝으로 NBA Care에 올라왔던 그의 영상 올리면서 마칩니다. 좋은 명절 보내세요
(P.S: 버나드 제임스는 태그가 없다니요 댈러스 매버릭스 태그로 대체합니다.)

6
Comments
2013-02-11 00:09:43

이런 스토리가 있는 선수였군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2013-02-11 00:52:16

이 선수는 정말... 멋지네요!

2013-02-11 02:33:19

나의 최면에 빠져주셔서 이렇게 좋은 글 계속 남겨주시니 넘 반갑고 고맙습니다
계속해서 최면에 빠져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특히 이런 선수들의 비하인드 스토리 넘 좋아요

2013-02-11 02:39:45
현 달라스 주전 센터입니다.
좋은 선수죠.
2013-02-11 13:20:31
군인에서 농구선수로....
제독이 생각나네.
2014-09-05 00:30:53

이런 좋은 글 번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조만간 공부삼아서

좋아하는 선수 얘기들 번역하고 싶은데

이런 소스는 어디서 찾으시는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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