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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에 원한을 품은 여성 반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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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20 01:01:08

그녀의 본명은 배분남(裵粉男)인데, 일본식 이름인 배정자(裵貞子)로 불리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배정자는 1870년 김해 관리인 배지홍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가 세 살이던 1873년 대원군이 실각한 후 배지홍은 민씨 정권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사형 당했습니다. 가족들은 가까스로 사형을 면했지만 전 재산을 몰수당한 채 연좌제에 의해 모두 천민으로 격하되었습니다. 어머니는 그 충격으로 장님이 되었고, 배정자는 밀양 관청에 기생으로 팔려갔고 그녀의 오빠와 동생은 머슴으로 팔려갔습니다. 그때부터 배정자는 자신이 태어난 나라인 조선에 큰 원한을 품었습니다.


배정자는 12살에 관기에서 탈출해 통도사에서 3년간 여승으로 수도활동을 하다가 아버지와 친분이 있던 밀양부사 정병화의 주선으로 1885년 일본으로 건너가게 됩니다. 그녀는 당시 갑신정변 실패로 일본에 망명해 있던 안경수의 도움으로 여학교에 다녔고, 안경수로 인해 김옥균을 알게 되었습니다. 안경수와 김옥균에 의탁해 생활하면서 여학교를 마친 1887년, 17살의 배정자는 김옥균의 주선으로 일본의 총리대신이던 이토 히로부미의 양녀가 되었습니다. 이토는 그녀에게 전산정자(田山貞子, 다야마 사다코)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는데, 배정자의 정자는 여기서 유래했습니다.


빼어난 미모의 배정자는 이토 히로부미의 총애를 받고 일본 상류층의 예절은 물론 승마, 사격, 수영, 서양예절 등을 배웠습니다. 그즈음 그녀는 일본 유학생이던 전재식과 결혼해서 아들을 낳았으나 남편의 병사로 인해 평범한 삶에서 영원히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남편과 사별 후 배정자는 이토에게 돌아가 그에게서 배운 승마, 사격, 수영, 서양예절에 변장술까지 익히고 철저한 정보원 교육을 받은 후 1894년 스파이 임무를 띠고 하야시 공사의 통역으로 조선에 입국하여 고종에게 접근했습니다.


당시 24살의 배정자는 타고난 미모와 애교에다 품격 있는 국제예절이 더하여 그야말로 최고의 지성미를 갖춘 여인이었습니다. 유교식 예절 교육만을 받아온 딱딱한 궁중 여인들만 보다가 웃음을 지으며 접근하는 미녀 배정자를 보자 고종은 그녀에게 빠져들었습니다. 고종을 손아귀에 넣은 배정자는 조선의 최고기밀을 빼내 이토에게 건네주는 등 일본의 특급 스파이 역할을 쉽게 해낼 수 있었습니다.


을미사변 직후 배정자는 일본 공사관의 조선어 교사였던 현영운과 재혼했습니다. 현영운은 소설가 현진건의 숙부입니다. 현영운은 딸 현송자를 얻은 후 배정자와 이혼했지만, 이혼 후에도 배정자의 도움을 받고 고속 승진하여 10년 만에 육군 참장 및 농상공 차관까지 올랐습니다. 현송자는 모친 배정자를 닮아 미인에다 일본 유학을 통해 지성미를 갖춘 사교계의 꽃으로 학무국장 출신 윤치오와 결혼하게 됩니다. 아래 사진은 현송자의 30대 모습입니다.



 윤치오 가문은 우리 현대사에서 대표적인 명문가입니다. 윤보선 대통령을 비롯해 3대에 걸쳐 장 차관급 이상만 15명을 배출했고, 의사를 무려 60명이나 배출한 불가사의한 가문입니다. 윤치오는 윤보선의 백부였으니까, 배정자는 윤보선 전 대통령의 큰할머니가 되는 셈입니다.




배정자는 현영운과 이혼 후 일본의 고급 스파이 역할을 계속 해왔습니다. 1905년에 이토의 밀서를 고종에게 전달한 사건으로 체포되기도 했으나, 을사조약이 체결된 후 이토가 한국통감으로 부임하자 배정자는 인생 최대의 전성기를 맞았습니다. 천민으로 격하된 후 머슴살이를 했던 그녀의 오빠 배국태는 한성판윤(서울시장)으로, 동생은 경무감독관(경찰청장)으로 벼락출세했습니다. 배정자는 1907년 헤이그 밀사 사건을 이토에게 전달하고 고종에게 퇴위 압력을 넣을 정도로 권세가 막강했으나, 1909년 이토가 하얼빈에서 사살된 이후 며칠간 식음을 전폐하고 이토와 함께 순사할 생각까지 했습니다.


1910년 한일병탄 후 배정자는 헌병사령관 아카시의 촉탁으로 매달 월급을 받고 만주로 가 독립운동가 체포를 위한 일본군 스파이 활동을 했습니다. 만주의 항일 독립운동 조직에서 배정자를 암살 대상자로 지정하자 그녀는 신변의 위협을 느껴 조선과 상해 등을 다니면서 일본제국을 위한 스파이 활동을 계속하였습니다. 조선 총독부는 그녀에게 6백여 평의 토지를 주고 해방이 될 때까지 매월 급여를 지급했습니다. 아래 사진은 50대 중반의 배정자 모습입니다.




1941년 태평양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당시 나이 71살의 배정자는 일본군부와 조선총독부의 뜻에 따라 업자로부터 금품을 받고 100여명의 조선여인들을 송출하여 남태평양의 섬까지 데리고 가서 일본군의 위안부를 시켰습니다.


1945년 해방 후 배정자는 경기도 고양군의 야산에 숨어 지내다가 1949년 반민특위가 구성되자 특위에 의해 체포, 구속되었습니다. 그녀는 남녀 통틀어 1급 친일파에 속하는 인물로 분류되어 반민특위 활동 초기에 검거되어 마지막까지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재판에 끌려온 79세의 그녀는 어떤 벌을 내린다고 해도 달게 받겠다고 자신의 지난 죄를 후회했습니다.


그러나 반민특위는 곧바로 해체되었고 배정자는 풀려 나와 한국전쟁 중인 1952년 83세의 나이로 서울시 성북구 자택에서 사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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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16-07-20 01:50:26


뭐랄까? 이해가 되는 친일파라고 해야 할지
1
2016-07-20 01:55:46

저도 어느정도 공감을 합니다. 그래서 어렸을때는 '친일파'라는 단어만 들어도 그냥 무조건 적으로 적개심이 강하고 그랬는데, 요즘은 친일파 청산 문제에 대해서, 조금은 신중함이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정말 지우지 못할 우리 민족의 아픔이지요....
WR
2016-07-20 15:14:05

호의호식 하던 사람이 그걸 이어가려고 앞장서서 친일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친일이라는 말 대신에 현실을 따라갔다고 말했지만요. 그런데 그보다 훨씬 많은 경우는 헬조선을 외치다 친일하는 경우였습니다. 실제로 그들에게 당시 조선을 헬이었고, 일본은 구원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실제는 구원이 아니라 똑같은 헬이었지만요.)

19
2016-07-20 02:09:11

격동하는 역사의 희생자 입장으로 품은 증오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똑같이 억울한 피해자를 양산했다는 점에서 동정할 필요는 느끼지 못하겠네요.

자세히는 몰랐던 인물인데 좋은 글 감사합니다.

WR
2
2016-07-20 15:14:50

말씀에 공감합니다. 고맙습니다.

2016-07-20 03:52:18

사실 이런 사례처럼 원한을 가지게 된다면 변절, 반역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장담하기 힘들겠습니다.

당장 저라도 원한을 가진다면 어떻게 할지 답이 없어보입니다.
성인군자가 아닌 저는 증오와 원한을 가지고 있겠지요.
많은 생각을 하게 되고 현재에도 원한과 증오를 가지게 된 사람들이 없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언젠가는 원한과 증오들이 비수가 되어 돌아올 날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WR
2
2016-07-20 15:15:59

배정자의 삼남매는 장님이 된 모친의 생사조차 끝까지 몰랐습니다. 충분히 원한이 맺힐 만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행동은 경계를 한참 넘은 것이었지요.

2016-07-20 15:31:55

물론 선을 넘었지요.

그러나 증오와 원한이 얼마나 사람을 크게 변화시키는지 보여주는 것 같아 불편하기도 한 진실인 것 같습니다.
WR
1
2016-07-20 15:34:35

재미있는 건 배정자 스토리가 우리나라의 톱스타가 대거 출연한 가운데 두번 영화화 된 것입니다. 그런데 두 영화 모두 줄거리가 아주 엉뚱합니다. 그러고 싶었을까요?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22418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22419

1
2016-07-20 16:19:06

민족적 양심을 되찾고?
안 그러고 싶었을 거 같아요.

WR
1
2016-07-21 00:54:55

그러게요^^

두 영화 포스터 올려드립니다.


http://i.imgur.com/mqc7dytl.jpg


http://i.imgur.com/W8s3apyl.jpg

9
2016-07-20 04:59:56

어차피 저는 국가같은 개념은 개인이 선택할 수 있고 자유롭게 이동하는 개념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조선을 등지고 일본을 선택한거 자체는 별 감정 없는데,

일본의 제국주의와 군국주의 만행에 동참한건 어떤 이유로도 용서될 수 없다고 생각해요.

WR
2
2016-07-20 15:16:55

제 생각과 일치합니다.

2016-07-20 19:44:47

...............

2
2016-07-20 06:15:50

일본에 가서 평범하게 살면 몰라도 조국을 피로 물들이는것에는 용서하기 힘드네요. 새로운 인물, 좋은글 감사합니다

WR
1
2016-07-20 15:17:42

그녀의 행동은 이해할만한 범주의 경계를 넘어섰다고 저도 생각합니다.

2016-07-20 07:31:57

반민특위가 아무것도 못한게, 우리나라가 친일파를 청산 못한게, 이나라를 이렇게 만들었다는 얘기가 떠오르네요.

오늘도 감사합니다.

WR
2016-07-20 15:21:58

반민특위 자체가 모순이 많았습니다. 특위 재판소에서 사형1명, 무기징역1명, 징역 13명을 선고했는데, 사형과 무기징역은 모두 고등계 형사이고, 13명의 징역선고자 중에 7명이 고등계 형사였습니다. 고등계 형사는 생계형 하수인이지 반민족 행위(그런게 있다면요)의 주범과는 아주 거리가 멀었습니다.

2
2016-07-20 07:55:31

저 정도면 친일할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며 읽다가 위안부 부분에서 반전.. 저건 도무지 용서가 안되네요

WR
2016-07-20 15:22:26

그렇습니다.

4
Updated at 2016-07-20 09:04:57

뭐 갠적으로 나라를 바꾼것까지는 이해를 하겠는데

같은 여자이면서 위안부 사업 주도했다는 점에서
빼박... 그냥 무조건 욕먹어야겠네요.

WR
1
2016-07-20 15:22:52

행동의 정도가 한참 지나친 게 맞습니다.

2016-07-20 08:13:29
글 잘 봤습니다.
1910년 이전 중요한 역사적 순간에 배후에는 그녀가 있었다 라는 말이 무리는 아닐 정도군요.


그런데, 저는 이 배모씨는 아예 몰랐던 사람이라 배모씨 보다도 윤보선 대통령 가문이 일본제국주의에서
귀족작위를 받고 녹을 받으며 일을 했다는게 더 놀라웠습니다. 
WR
3
2016-07-20 15:07:23

윤보선 가문은 친일인명록에 무려 7명이나 올라와 있습니다. 정말 많은 고관대작과 학자를 배출했지만 후대에 전해지는 애국지사는 한 사람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런 것 때문에 윤보선 일가를 명분가라고 부르기를 거부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명문가가 아니라 세도가였다고 하면서요.

Updated at 2016-07-20 12:45:10

궁금한게 이 사람의 재산이 많았을 것 같은데 다 국고로 환수가 되었나요, 아님 그 자식들이나 다른 사람이 물려받아 대대손손 잘 살고 있나요? 저 시기가 격동의 시기라 배신자가 참 많은데 그 사람들의 재산이 확실히 몰수가 되었는지 항상 궁금합니다. 

반민특위가 사라지면서 대부분은 되지 않았지만요. 
왠지 성북동 집에서 눈을 감았다는 거 봐서는 이 사람도 안됐을 거 같긴 합니다만..
WR
1
2016-07-20 14:55:50

성북동인지는 모르겠고, 성북구의 자택에서 사망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말년에 그녀의 형편은 부족하지도 풍족하지도 않았던 걸로 전해집니다.


배정자는 첫 남편 전재식과의 사이에서 전유화를 낳았는데, 배정자의 친일 행각에 비해 전유화가 받은 혜택은 별로 없었던 것으로 알려집니다. 전유화는 배정자보다 먼저 사망했습니다.


30살 연상인 귀족 윤치오와 결혼한 전유화의 딸 현송자는 몇년 후 4세 아래인 연희전문 학생 이철을 만나 불륜관계에 빠져 이혼했습니다. 이혼 당시 돈이 제법 많았다고 알려집니다. 이혼 후 이철과 결혼해 이철과 함께 1933년 오케 레코드사를 출범시켰습니다. 당대의 최고 가수 이난영, 남인수, 김정구, 장세정, 백년설 등이 오케 레코드 전속이었고 작곡가 박시춘, 손목인 등이 작곡가로 활동했습니다.


1
2016-07-20 08:22:36

사연없는사람은없죠 이완용도...

WR
1
2016-07-20 15:24:21

그렇다고 사연을 무시해선 안되겠지요. 사연을 무시하고 국가의 입장에서만 생각하면 헬조선 외치는 사람은 전부 반역자인가요?

4
2016-07-20 08:25:55


동정은 가지만, 과오가 너무 크기에 용서는 되지 못하는 인물인 듯 합니다.

그리고, 스스로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가 빨리 이런 분들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해서,

보다 나은 사회적 환경이 만들어 졌으면 합니다.


최근에 뉴스에 우울한 기사들이 많은데

매니아 와서 좋은 글들 보면서 위안을 받습니다.



WR
2016-07-20 15:24:44

공감합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2
2016-07-20 08:39:47

동정 하기에는 너무 큰 죄악을 저질렀습니다.

수많은 죄없는 사람들을 지옥으로 보낸 책임을 그 대가를 치러어야 하는데 참

WR
2016-07-20 15:26:05

말씀처럼 그녀의 행동은 너무 심했습니다.

2016-07-20 16:20:14

인생스토리가 드라마틱 하긴 하지만...우리민족을 위태롭게 했다는 점에서

추호에 옹호도 할수없는 죽어서도 용서할수없는 민족 반역자일 뿐이네요
요즘 같은 시대야 살기 힘들어 해외이민도 흔한 일이고 영주권자 시민권자들도 넘쳐나지만...
아무리 그래도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삼은 범죄국가의 1급 친일 스파이 노릇이라니...
이완용하고 크게 다르다고 볼순없겠죠
WR
2016-07-21 01:02:17

말씀처럼 이해될 만한 선을 확실히 넘은 게 맞습니다.

24-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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