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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글 : 헌제를 위하여 0. 후한 말의 정국, 그리고 원소와 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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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30 12:11:43

 안녕하세요. 어쩌면 처음으로, 아 전국시대 인물소개까지 하면 두 번째로 시리즈글을 시작해보려 합니다. 어제 작성했던 글에 오나라 관련 글도 부탁하셨는데, 그건 아마도 이 시리즈가 끝나면 진행될 것 같습니다.

 

 이 시리즈는 삼국시대의 시작 전, 우리가 게임이나 책의 챕터 제목에서 '군웅할거'라고 나오는 시점에서 관도대전 정도까지의 이데올로기를 다루는 시리즈입니다. 아마도 원소, 원술(?)에 대한 제 개인적 빠심이 꽤나 나타날 수 있는 글이라고 생각을 하고요. 당시 헌제를 놓고 그 시대를 주도했던 군벌이 보였던 스탠스, 그리고 그에 따른 이합집산을 바탕으로 글을 전개해보고자 합니다. 재밌게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P.S-틀린 부분이나 설명이 부족했던 부분에 대해서는 언제든지 지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외척 세력과 환관 세력의 대립

 

 보통 삼국지 관련한 소설이나 만화 등 관련 작품의 가장 첫 시작은 황건적의 난, 그리고 십상시들에 대한 내용이 다뤄지고, 이후 동탁이 나타나서 폭정을 휘두르는 전개가 1권의 모습입니다.

 

 어렸을 때 이 부분을 보면서 "왜 환관, 즉 내시가 권력이 강할까?"에 대해 굉장히 의문을 가졌던 적이 있습니다. 제가 조선시대 사극에서 보던 내시들은 매번 누구 들었사옵니다.”이러면 왕이 나가라하면 나가고 뒤에 졸졸 따라다니는 모습이었기 때문이죠.

 

  이 부분에 대해서는 후한 황실의 상태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역대급 먼치킨 광무제가 후한을 세운 이후, 후한의 황제는 4대 황제인 화제가 등극한 이후부터 외척세력과 환관세력의 대립이 시작됩니다. 화제는 9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황제가 되었는데, 이에 수렴청정을 하던 두태후의 오빠였던 두헌(어디서 많이 보던 테크트리죠?)이 외척으로서 정권을 장악했습니다. 그러나 화제가 나이를 점점 먹어감에 따라 이런 모습을 아니꼽게 여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견제받는 것을 느낀 두헌 측 역시 화제를 살해하고 새로운 황제를 세울 계획을 마련하기 시작하는데, 이를 알아챈 화제가 또한 두헌을 축출할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그리고 이때 화제와 함께 계획을 세운 것이 바로 환관 세력이었습니다. 화제는 결국 환관들을 통해 친위쿠데타에는 성공하고 두헌을 쫓아냈지만 결국 28세라는 젊은 나이에 사망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어린 황제들이 등장할 때마다 외척 세력과 환관 세력은 비슷한 형태의 대립을 이어 나가게 되었고, 결국 영제(황건적의 난이 있던 시기죠.) 때가 되면 아예 황제가 직접 매관매직(!!)을 하면서 나라 시스템 자체부터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2.탁류파와 청류파, 그리고 원소

 

 

 외척과 환관에 더해 후한 말 정계에는 또 다른 세력들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정계에서 멀어진 지방호족, 그리고 내부에서도 유학을 공부하면서 개혁을 원했던 중앙관료들이 환관 세력의 견제와 유교의 충효 기반을 중심으로 한 깨끗한 정치를 주창하면서 세력을 키워나가기 시작합니다, 이들을 청류파라고 하는데요.결국 황제를 통해 강한 권력을 갖고 있던 환관들과 교류했던 탁류파와 유림(선비) 출신으로 그들을 거부했던 청류파의 두 축이 등장하게 됩니다. 물론 권력이 더 강했던 환관 이하 탁류파들은 청류파 세력들을 축출하고자 했고, 많은 청류파 인사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른바 당고의 금이라고 하는 사건을 통해 연일 환관들을 비판하던 청류파 세력들이 1차 당고의 금을 통해 관직을 박탈당하거나 관직 진출이 막혔고, 2차 당고의 금으로는 수 백명이 목숨을 잃거나 또 다시 관직을 잃게 되면서 박살이 났습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십상시가 나타나 정국을 주도하게 됩니다.

 

  한편, 당시에는 4대가 내려오는 동안 모두가 삼공이라는 한나라의 가장 높은 직위를 역임한 명문가가 하나 있었습니다.바로 그 유명한 사세삼공 아니 사세오공 집안의 원씨 집안인데요. 바로 이 집안이 서로 죽이지 못해 함께 살아갔던 형제, 원소원술의 집안이었습니다.

    

   원소는 어머니가 노비였던 얼자였습니다. 조선시대처럼 서자를 차별하지는 않았지만, 얼자만큼은 종놈 취급했던 당시의 사회상에서 원소는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드러낼 필요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아는 유약하고 우유부단한 이미지와 다르게 평소에는 결단력도 넘치고 자신감도 넘쳤던 원소. 원소는 자신의 적모이자 원술의 친어머니가 죽자 벼슬을 그만두고 여남의 본가로 내려가 시묘살이를 합니다. 이 시묘살이가 상당히 힘든 일인데요. 당시에도 이미 삼년상 전부를 치르지 않고 약식으로 하는 일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원소는 삼년상을 풀로 한 후 바로 연속으로 이미 오래전 죽었던 자신의 친아버지를 위해 삼년상을 연속으로 때립니다. 무려 6년을 시묘살이를 한 원소에 대해 당대의 명사이자 청류파의 일원이었던 하옹이 높게 평가했고, 원소는 그런 이들과 교류하면서 청류파의 젊은 아이콘으로서의 입지를 다져나갔습니다.

 

 

3.십상시의 난의 시작

 

 

 다시 황실로 돌아오면, 황건적의 난을 진압한 대장군 하진의 권세가 올라가기 시작합니다. 이 하진은 영제의 두 번째 황후였던 하태후의 이복오라비로서 백정 출신이었습니다. 그러나 출신의 낮음에도 불구하고 하진은 꽤나 정치적 감각이 있었고, 청류파들과 교류하면서 최강 권력 십상시를 견제할 위치에까지 오르게 됩니다. 당연히 이런 하진을 십상시는 탐탁치 않게 여겼고요. 이런 상황에서 십상시 중 하나이자 영제의 총애를 받던 환관인 건석이 중앙군을 움직여 하진을 공격하려 했지만, 나머지 십상시들이 오히려 건석의 이런 계획을 발설했습니다. 건석을 주살하고 중앙군을 흡수한 하진. 이때부터 하진은 상대적으로 안일한 모습을 보입니다.

 

 그러던 와중 영제는 사망하고, 유변이 황제가 됩니다. 십상시들은 살아남고자 하진의 여동생이었던 하태후, 그리고 남동생 하묘 등에게 거액의 뇌물을 갖다바치며 목숨을 구걸합니다. 그러나 하진의 수하였던 원소 등의 강경파는 이런 모습조차 용납할 수 없었고 모두를 주살할 것을 요구합니다.

 

 원소는 주저하는 하진에게 병사들을 흑산적으로 꾸며 분위기를 살벌하게 만들어 십상시를 쫓아낸 다음 흑산적을 진압하자는 약간은 졸렬한 계책을 입안합니다.노식 등은 이 계책에 대하여 군권을 장악한 하진이 뭐 그럴 필요있는가? 그냥 결단을 내리시라며 반대했지만 누이 등의 활약, 그리고 건석 외에는 십상시들과 사이가 무난했던 하진은 이 계책을 따릅니다. 그리고 이어진 원소의 움직임에 십상시들이 전원 해임되면서 하진과 십상시의 대립은 끝이 났습니다. 아주 잠시 동안은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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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2018-08-30 12:22:07

그러면 두씨가문은 화제때 한번 주살당해도 다시 재기해서 당고의 화에도 한번 더 당한건가요

2
2018-08-30 13:01:28

두헌이 숙청될 때 두씨 가문이 모조리 주살된 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권력 암투기도 했고 역적 누명을 씌우긴 했지만 어쨌든 태후의 집안이었기 때문에 환관들의 눈엣가시였던 두헌 본인과 그 관련 세력들 몇이 해를 입은 정도입니다.

 

그리고 당고의 화에서 큰 피해를 입었던 청류의 대표인 두무 역시 외척이기도 했습니다. 또 화제(4대 황제) 때 두헌과, 환제(11대 황제) 때의 두무는 세대 차이도 좀 나는 인물들이기도 하구요. (황제로 따지면 7대 차이가 나는데 워낙 단명한 황제들이 많기도 했습니다. 죽은 햇수로 따지면 둘이 76년 차이가 납니다.) 

WR
2018-08-30 13:13:46

아래 허슬 플레이어님께서 달아주셨는데, 두헌의 숙청 당시 두헌도 처음에는 쫓아낸 후에 자결을 시켰습니다. 이후 7-80년이 지나 2차 당고의 화 때 두무도 자결을 하게 되고요.

1
2018-08-30 12:25:09

최근 올려주시는 삼국지 글들 읽기 시작했는데 재밌네요

감사합니다.

WR
1
2018-08-30 13:14:20

감사합니다

2
2018-08-30 12:52:20

늘 잘 읽고 있습니다. 근데 3년상은 흔히 알려진 대로 풀로 3년의 기간을 채우는 상은 아닙니다. 실제로는 2년하고도 1개월, 즉 25개월을 지내는 상이죠. 만 3년은 아니지만 그래도 3년에 걸쳐서 치르는 건 맞기에, 3년상이라는 이름이 붙은거죠.

 

즉 3년상을 두 번 잇달아 치렀다면 25+25= 50개월을 상을 치른 게 됩니다. 4년하고 좀 더 되는 기간이죠. 뭐 6년은 아니더라도 어마하게 긴 기간이긴 합니다.

WR
2018-08-30 13:15:49

아 몰랐던 사실인데 감사합니다 4년 씩 치르는 것도 여간 힘든 일은 아니었을테죠. 그러니 당시에도 약식으로 해도 가장 중요한 문제였던 효가 지적받지 않았던 것일테고요. 감사합니다!

1
2018-08-30 12:54:03

원소가 원술의 형이었으나 각자의 어머니가 신분차이가 나서 원술이 원소의 자리를 넘볼 여지가 있었고 그래서 형제간에 갈등이 있었죠.

2
Updated at 2018-08-30 13:08:11

사실상 적자인 원술과 얼자인 원소는 집안에서도 입지가 천지차이였습니다. 다만 원소가 그 뛰어난 능력과 자질로 인정을 받으며 그 위치까지 오른거죠. 가문빨 많이 받은 금수저임에는 분명하나, 오로지 배경만으로 입지한 인물은 아닙니다. 반면에 원술은 진자 가문빨 빼면 시체인 무능지인이었죠.

 

특히 원술이 원소를 평소에 얼마나 무시하고 질시했는지는 안봐도 뻔합니다. 결국 나중에 치고받고 싸우게 되죠. 원술은 얼자에 불과한 원소 따위가 능력 좀 있다고 여러 명사들과 주변 친척들의 칭송을 듣고, 심지어 자기 어머니 3년상까지 치르는 생쑈까지 부리는 걸 무척이나 고까와했을테죠.

WR
1
Updated at 2018-08-30 13:23:40

음... 워낙 적자인 원술과 얼자인 원소의 차이가 커서 제 생각에는 원소의 자리를 원술이 넘본 게 아니라 원술의 자리를 얼자인 원소가 탐했다라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 같습니다. 어차피 원술과는 어머니가 같은 형인 원기라는 사람이 이미 있었으니 장남의 자리를 노린 것도 아니고 말이죠. 원술도 나름대로 효렴으로 천거받으면서 갱생하고 열심히 살긴 했는데, 원소의 퍼포먼스로 자기보다 잘 나가는 모습이 맘에 들지 않았겠죠.

3
Updated at 2018-08-30 13:32:18

효렴은 원래는 재야에 묻힌 훌륭한 인물을 추천받아 파격 등용하는 좋은 취지의 제도였으나, 후한 말에 가면 그냥 고위급 자제들이 손쉽게 관계로 진출하는 통로로 악용되었죠. 원술이 효렴 추천 받은 것도 거의 그런 식입니다. 젊을 때 한량같던 모습에서 좀 정신차리고 사람들을 끌어모으며 영웅 소리를 듣기도 했는데, 솔직히 집안 배경과 재력을 바탕으로 자기 주변에 몰려든 사람들을 맹상군 코스프레를 하며 잘 대접했던 정도죠.

 

동탁, 원술 모두 협기(俠氣)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이 협기가 흔히 생각하는 호걸다운 풍모와는 좀 거리가 있습니다. 오히려 조폭 두목 식의 카리스마로 보면 더 정확하죠. 보스처럼 자기 능력으로 아랫사람들에게 추대되고, 그 밑에 동생들 챙겨주면서 조직 불려가고... 이런데 능했다는 것 뿐입니다. 훗날 이들이 더 큰 권력을 잡았을 때 보인 망나니같은 행적을 돌아본다면, 호걸은 커녕 능력과 배경이 없었음 평민 수준보다도 못한 양아치들일 뿐입니다.

 

원술은 실제로 본다면 딱 베테랑에서 유아인이 연기한 조태오 급의 인간이죠. 뭐 극중 조태오는 오히려 서자이긴 했지만... 원술도 뭐 적자이면서도 얼자인 원소에 대한 질투와 열등감으로 똘똘 뭉친 인간이기에 살짝 비스무레한 처지죠. 

WR
Updated at 2018-08-30 13:43:27

맞습니다. 관리 추천제도의 한계이고, 효렴제도가 명문가의 자제들을 등용하기 쉬운 진로가 된 것도 사실입니다. 제가 원술이 효렴으로 천거된 후 나름대로 갱생했다고 썼던 것도 원술이 효렴이니 잘한것이다 이게 아니라 효렴으로 추천받아 관직에 나간 후에는 그나마 정신을 차린 듯 했다라고 썼던 것이고요. 아마도 헷갈리게 썼지 싶습니다.

 당시의 협 개념 자체도 결국 뭉쳐다니는 것이고 말이죠. 개인적으로 원술이 찌질하기도 하지만, 이번 시리즈에서 헌제에 대한 원소와 원술의 다른 스탠스도 꽤 주목할 것 같습니다. 뭐 그것도 원소에 대한 일단 반발이라면 반발이었겠지만요

1
Updated at 2018-08-30 13:19:39

하진이 너무 무르게 행동했죠

하진이 조금이라도 유능한인물이었다면 

휘하에 장수/책사진이 나름 빠방했는데 

동한이 조금이나마 더 역사에서

살아남지않았을까싶습니다

 

실제로 조조/원소등 서원8교위랑 노식/황보숭/주준등이 하진휘하였고

채옹/정현등 당대 쓸만한 재야인사들도 많았는데 말입니다

심지어 하진이 십상시및 환관세력을 싹 정리했으면 

황건적을 제외하고 견제해야할세력이 동탁/정원/왕광/교모/공손찬정도였죠


 

WR
Updated at 2018-08-30 13:23:23

좀 더 과감했으면 말씀처럼 되었겠지만, 이미 자신의 권력 기반이라 할 수 있는 하태후의 지지가 없는 상황에서 본인도 더 나서긴 어렵지 않았을까 합니다. 대척점에 있던 서원8교위의 리더 건석도 이미 척결한 상태였고요.실상 정원도 저 원소의 흑산적 계책 당시에 불을 지른 사람이었으니 하진의 수하였고, 왕광은 하진의 부관이었으니 동탁이나 공손찬 정도가 문제되었을 것 같아요. 물론 하진이 제압한 후에 누가 나타났을지도 모르긴 합니다만.

결국 외척과 환관이라는 두 황제의 친위세력들이 모두 날아간 상황에서 동탁이 발호할 배경이 생긴 게 십상시의 난이겠죠.

1
2018-08-30 13:26:53

사실 환관이나 그들을 견제하려고했던 청류나 거기서 거기죠. 그냥 권력싸움일 뿐...

어떤 분은 청류니 탁류니 상관없이 그냥 힘있는 갱스터(호족)들이 권력잡기 위한 과정이 삼국지라고 하더라고요.

WR
2018-08-30 13:29:03

맞습니다. 중심보다 더 커지는 느낌이라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았습니다만 결국 같은 정치세력이고 단지 지지층이 달랐던거죠.

1
2018-08-30 16:57:48

삼국지를 몇번 다시 보면서 느낀 것은 무능하다고 알려진 동탁이나 원술이 정말 무능했을까라는 생각이 종종들긴 핮니다. 원소는 난세초반 최강자였으니 말년빼고는 어느정도 능력을 인정 받는데, 동탁은 여포초선이야기만 나오고 포악했다고만 알려져있으니까요.
원술 역시 칭황을 하는 병크를 타는데, 이 칭황이라는 것도 결국 세력이 없으면 안되는 것인데 그 세력이 정말 무능하다면 나올까 싶기도 하구요.

재미있는건 동탁 원소 원술 모두 당대 최강자 자리를 한번씩은 거쳤는데 원소를 제외하고는 한줄의 칭찬도 없을 정도로 혹평인걸 생각하면 새삼 너무 승자의 역사가 아닌가 싶네요.
다음편을 기대합니다~~

WR
2018-08-31 08:43:46

동탁의 경우는 폭정이 너무 심했고, 장수로서의 능력은 어느 정도 인정받긴 했습니다. 원술이야 정치적 감각이나 군재도 많이 부족했죠. 워낙 빵빵한 집안인지라 그 영향력이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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