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글 : 헌제를 위하여 0. 후한 말의 정국, 그리고 원소와 하진
안녕하세요. 어쩌면 처음으로, 아 전국시대 인물소개까지 하면 두 번째로 시리즈글을 시작해보려 합니다. 어제 작성했던 글에 오나라 관련 글도 부탁하셨는데, 그건 아마도 이 시리즈가 끝나면 진행될 것 같습니다.
이 시리즈는 삼국시대의 시작 전, 우리가 게임이나 책의 챕터 제목에서 '군웅할거'라고 나오는 시점에서 관도대전 정도까지의 이데올로기를 다루는 시리즈입니다. 아마도 원소, 원술(?)에 대한 제 개인적 빠심이 꽤나 나타날 수 있는 글이라고 생각을 하고요. 당시 헌제를 놓고 그 시대를 주도했던 군벌이 보였던 스탠스, 그리고 그에 따른 이합집산을 바탕으로 글을 전개해보고자 합니다. 재밌게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P.S-틀린 부분이나 설명이 부족했던 부분에 대해서는 언제든지 지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외척 세력과 환관 세력의 대립
보통 삼국지 관련한 소설이나 만화 등 관련 작품의 가장 첫 시작은 황건적의 난, 그리고 십상시들에 대한 내용이 다뤄지고, 이후 동탁이 나타나서 폭정을 휘두르는 전개가 1권의 모습입니다.
어렸을 때 이 부분을 보면서 "왜 환관, 즉 내시가 권력이 강할까?"에 대해 굉장히 의문을 가졌던 적이 있습니다. 제가 조선시대 사극에서 보던 내시들은 매번 “누구 들었사옵니다.”이러면 왕이 나가라하면 나가고 뒤에 졸졸 따라다니는 모습이었기 때문이죠.
이 부분에 대해서는 후한 황실의 상태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역대급 먼치킨 광무제가 후한을 세운 이후, 후한의 황제는 4대 황제인 화제가 등극한 이후부터 외척세력과 환관세력의 대립이 시작됩니다. 화제는 9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황제가 되었는데, 이에 수렴청정을 하던 두태후의 오빠였던 두헌(어디서 많이 보던 테크트리죠?)이 외척으로서 정권을 장악했습니다. 그러나 화제가 나이를 점점 먹어감에 따라 이런 모습을 아니꼽게 여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견제받는 것을 느낀 두헌 측 역시 화제를 살해하고 새로운 황제를 세울 계획을 마련하기 시작하는데, 이를 알아챈 화제가 또한 두헌을 축출할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그리고 이때 화제와 함께 계획을 세운 것이 바로 환관 세력이었습니다. 화제는 결국 환관들을 통해 친위쿠데타에는 성공하고 두헌을 쫓아냈지만 결국 28세라는 젊은 나이에 사망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어린 황제들이 등장할 때마다 외척 세력과 환관 세력은 비슷한 형태의 대립을 이어 나가게 되었고, 결국 영제(황건적의 난이 있던 시기죠.) 때가 되면 아예 황제가 직접 매관매직(!!)을 하면서 나라 시스템 자체부터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2.탁류파와 청류파, 그리고 원소
외척과 환관에 더해 후한 말 정계에는 또 다른 세력들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정계에서 멀어진 지방호족, 그리고 내부에서도 유학을 공부하면서 개혁을 원했던 중앙관료들이 환관 세력의 견제와 유교의 충효 기반을 중심으로 한 깨끗한 정치를 주창하면서 세력을 키워나가기 시작합니다, 이들을 청류파라고 하는데요.결국 황제를 통해 강한 권력을 갖고 있던 환관들과 교류했던 탁류파와 유림(선비) 출신으로 그들을 거부했던 청류파의 두 축이 등장하게 됩니다. 물론 권력이 더 강했던 환관 이하 탁류파들은 청류파 세력들을 축출하고자 했고, 많은 청류파 인사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른바 ‘당고의 금’이라고 하는 사건을 통해 연일 환관들을 비판하던 청류파 세력들이 1차 당고의 금을 통해 관직을 박탈당하거나 관직 진출이 막혔고, 2차 당고의 금으로는 수 백명이 목숨을 잃거나 또 다시 관직을 잃게 되면서 박살이 났습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십상시가 나타나 정국을 주도하게 됩니다.
한편, 당시에는 4대가 내려오는 동안 모두가 삼공이라는 한나라의 가장 높은 직위를 역임한 명문가가 하나 있었습니다.바로 그 유명한 사세삼공 아니 사세오공 집안의 원씨 집안인데요. 바로 이 집안이 서로 죽이지 못해 함께 살아갔던 형제, 원소와 원술의 집안이었습니다.
원소는 어머니가 노비였던 얼자였습니다. 조선시대처럼 서자를 차별하지는 않았지만, 얼자만큼은 종놈 취급했던 당시의 사회상에서 원소는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드러낼 필요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아는 유약하고 우유부단한 이미지와 다르게 평소에는 결단력도 넘치고 자신감도 넘쳤던 원소. 원소는 자신의 적모이자 원술의 친어머니가 죽자 벼슬을 그만두고 여남의 본가로 내려가 시묘살이를 합니다. 이 시묘살이가 상당히 힘든 일인데요. 당시에도 이미 삼년상 전부를 치르지 않고 약식으로 하는 일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원소는 삼년상을 풀로 한 후 바로 연속으로 이미 오래전 죽었던 자신의 친아버지를 위해 삼년상을 연속으로 때립니다. 무려 6년을 시묘살이를 한 원소에 대해 당대의 명사이자 청류파의 일원이었던 하옹이 높게 평가했고, 원소는 그런 이들과 교류하면서 청류파의 젊은 아이콘으로서의 입지를 다져나갔습니다.
3.십상시의 난의 시작
다시 황실로 돌아오면, 황건적의 난을 진압한 대장군 하진의 권세가 올라가기 시작합니다. 이 하진은 영제의 두 번째 황후였던 하태후의 이복오라비로서 백정 출신이었습니다. 그러나 출신의 낮음에도 불구하고 하진은 꽤나 정치적 감각이 있었고, 청류파들과 교류하면서 최강 권력 십상시를 견제할 위치에까지 오르게 됩니다. 당연히 이런 하진을 십상시는 탐탁치 않게 여겼고요. 이런 상황에서 십상시 중 하나이자 영제의 총애를 받던 환관인 건석이 중앙군을 움직여 하진을 공격하려 했지만, 나머지 십상시들이 오히려 건석의 이런 계획을 발설했습니다. 건석을 주살하고 중앙군을 흡수한 하진. 이때부터 하진은 상대적으로 안일한 모습을 보입니다.
그러던 와중 영제는 사망하고, 유변이 황제가 됩니다. 십상시들은 살아남고자 하진의 여동생이었던 하태후, 그리고 남동생 하묘 등에게 거액의 뇌물을 갖다바치며 목숨을 구걸합니다. 그러나 하진의 수하였던 원소 등의 강경파는 이런 모습조차 용납할 수 없었고 모두를 주살할 것을 요구합니다.
원소는 주저하는 하진에게 병사들을 흑산적으로 꾸며 분위기를 살벌하게 만들어 십상시를 쫓아낸 다음 흑산적을 진압하자는 약간은 졸렬한 계책을 입안합니다.노식 등은 이 계책에 대하여 “군권을 장악한 하진이 뭐 그럴 필요있는가? 그냥 결단을 내리시라”며 반대했지만 누이 등의 활약, 그리고 건석 외에는 십상시들과 사이가 무난했던 하진은 이 계책을 따릅니다. 그리고 이어진 원소의 움직임에 십상시들이 전원 해임되면서 하진과 십상시의 대립은 끝이 났습니다. 아주 잠시 동안은 말이죠.
글쓰기 |
그러면 두씨가문은 화제때 한번 주살당해도 다시 재기해서 당고의 화에도 한번 더 당한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