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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글 : 병권을 친척에 맡긴 위나라, 그리고 촉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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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9 17:45:56

 

1.병권의 중요성

 

본론에 들어가기 앞서 조선시대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조선시대의 관직 체계는 영의정 이하의 3정승, 그리고 이·····공의 6조 판서들이 정국을 이끌어 나가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었다는 것은 아마 다들 알고 계실 겁니다. 6조에서 병조가 군사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라는 것 역시도 그럴 것입니다. 이때 병조가 서열 상으로는 비록 네 번째이지만, ()을 숭상한 조선 중기 이후에도 병조는 그 중요성이 매우 높았습니다. 특히 맹자를 통해 어느 정도 쿠데타가 정당화(!)될 수 있었던 시대적 분위기에서 그 쿠데타를 방지하거나 일으키기 위해 병권은 더 중요할 수밖에 없었을테죠. 실제로 삼정승 중에서 가장 낮은 직위였던 우의정은 병조와 형조를 담당하고 있어 오히려 강력한 권한을 갖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삼국시대는 각국의 입장에서는 토벌할 상대가 계속 존재하는 상황이었고, 이에 원래는 임시직이었던 장군직이 사실상 상설직이 되었으며 병권을 누가 쥐느냐가 정국을 주도하게 됩니다.

 

2.촉나라의 경우

 

위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촉나라에 대한 언급부터 하고 넘어가야 할 듯 합니다. 촉나라를 건국한 유비의 경우, 친족 세력이 없는 셈이었습니다. 평생의 라이벌이었던 조조가 거병 당시부터 소위 말하는 위나라 사천왕(하후돈, 하후연, 조인, 조홍)과 함께였던 반면 유비는 관우, 장비, 그리고 간옹 등 자신을 따르던 수하들 뿐이었죠.

 

여기에 번성 공방전과 이릉대전의 결과로 관우, 장비 등 일군을 이끌만한 장수들이 목숨을 잃고, 황권까지 위나라에 투항하게 되면서 인재난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위연, 오의, 조운등이 있었지만 관우와 장비 등에 비할만큼 커리어를 쌓은 것은 아니었고, 촉 중후반기의 명장들인 왕평, 장익, 장억, 마충, 향총등은 이제 커리어를 막 시작한 상황이었습니다. 스포츠로 치면 프랜차이즈 스타들이 동시에 은퇴하고 나서 세대교체에 실패한 모습이나 마찬가지겠죠.

 

 이런 상황이 문제가 되었던 것일까요. 촉나라의 승상이자 서열 1 제갈량은 맹획 등의 세력에 대해 직접 정벌할 것을 결정하면서 이를 말리는 왕련에게 뭇 장수들의 재능이 자신에게 미치지 못함을 걱정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제갈량의 남정은 단순한 반란 진압 외에교화라는 정치적 목적이 더 컸다는 분석이 많아 좀 다를 수 있지만, 이후 제갈량은 승상 직에 있으면서 병권 역시 함께 장악합니다.

 

 그리고 제갈량의 후계자들 역시 비슷한 코스를 밟아나갑니다. 제갈량이 지목한 첫 후계자였던 장완은 제갈량 사후 녹상서사(내정) 직과 대장군 직을 겸임했고, 죽기 전까지 상용 기습이나 양주자사 강유 등의 나름대로 북벌 계획들을 세우지만 병으로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그 뒤를 이었던 비의 역시 녹상서사와 대장군을 겸임했고, 비유 사후 군권 1인자였던 강유 또한 비의와 녹상서사를 나눠맡았지만 비의가 내정 후임으로 결정한 진지가 상서령을 맡은 후 중앙 정치에서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친위세력인 친족세력이 없었던 촉나라의 경우에는 1인자가 내정과 병권 모두 장악하면서 개인의 카리스마와 능력에 기대 운영되었습니다. 이런 체계는 진지의 사망 전까지는 꽤나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었던 듯하지만, 진지가 오냐오냐했던 상대가 황호라는 것이...

 

 

3.위나라의 경우

 

 한편 위나라는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친족들이 병권을 장악했습니다. 화흠-왕랑-가후 등이 삼공의 지위에 올랐지만 사실상 삼공은 이 시기에는 권한이 없었고, 특히 병권의 경우는 대장군과 대사마가 나누어 갖는 독특한 체계로 운영이 됩니다. 위나라 개국 후 첫 대장군은 하후돈이었지만 얼마 안되어 병사하게 되었고, 대사마인조인이 병권을 독점했습니다.

 

 대사마로서의 조인의 처음이자 마지막 군사행동은 안타깝게도 222년의 유수 전투였는데, 조인은 오나라의 주환에게 박살이 나고 말았습니다. 번성 공방전에서도 그렇게 말년이 뭔가 꼬여버린 조인이었죠. 이후 1년만에 죽게 됩니다.

 

 재밌는 점은 위나라의 개국공신이었던 4인방의 후계는 생각보다 성장하지 못했습니다. 하후돈의 차남이었던 하후무는 연의에서 보여준 만큼 병법마스터(라고 쓰고 병X라고 읽는다)’ 수준의 노답은 아니었지만, 실제로 노답이었고(?) 하후연의 아들이었던 하후패 등도 커리어를 쌓아 나갔지만 조비-조예 등이 미친 듯이 밀어주진 않았습니다. 조인의 아들인 조태는 아버지를 따라 유수 전투에 참전했다가 커리어가 꼬여버렸고요. 이런 상황에서 조비는 자신의 사촌 격이었던 조휴, 조진, 하후상등을 팍팍 밀어줍니다.

 

4.조휴-조진 체제의 종료

 

 226, 조예가 황제에 자리에 오른 후에 오나라 전선에서 활약하던 조휴는 대사마의 직위에 오르고, 촉나라 전선의 조진이 대장군이 되었습니다. 하후상 또한 형주에서 활약하고 있었지만, 조비가 애첩을 살해해버린 이후 정말로 진실로 문자 그대로 맛탱이가 가버려서(...)죽게 되었고요.

 

 그러나 조휴의 대사마 직도 길지 못했습니다. 228, 석정 전투에서 오나라의 주방한테 제대로 낚인 조휴는 대패하고 말았습니다. 이런 패배에도 불구하고 그 때까지 넘나 마음씨 착했던 조예는 집안 어른인 조휴를 위로했지만, 오히려 부끄러운 나머지 조휴가 병에 걸려 죽게 됩니다. 조휴가 죽고 2년이 지난 230년에 조진이 또 대사마가 되었지만, 제갈량의 북벌을 계속 막던 도중 40대의 젊은 나이에 병들어 사망하게 됩니다.

 

 나름대로 조씨-하후씨 일가의 병권 운영+사마의·장합 등의 전선 뛰기라는 체계를 만들어놓았는데도 병권의 1인자만 되면 자꾸 죽었고, 조휴와 조진의 뒤를 이을만한 친족 세력은 만들어두지 못한 상황. 병에 걸린 조예는 죽으면서 자신의 삼촌이었던 조우를 대장군으로 삼아 병권을 맡기려 했지만, 유방 손자(둘 다 본명입니다.)의 반대로 실패하고 맙니다. 그 이후 조상이 대장군이 되었지만... 우리가 아는 결과는 모두와 같습니다.

 

친족 세력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신하에게 세력을 몰아줬지만, 그 신하가 부패하면 흔들릴 수 밖에 없던 촉나라. 능력 덩어리 친척들이 많아서 그들을 몰아줬지만, 정작 그 사람들이 죽고 나면 결국 세력을 빼앗긴 위나라. 그리고 이번 글에선 다루지 않았습니다만 호족 연합체적 성격으로 꼬인 오나라. 다들 갑작스레 생겨났고, 체제를 유지하기엔 군벌적 성격이 매우 커 국가의 체계를 강력하게 유지하긴 어려웠습니다. 그나마 멸망 전까지 체제가 제대로 유지되었던 것이 가장 먼저 멸망한 촉나라라는 건 역사의 아이러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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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2018-08-29 17:55:24

하후상이 조비땜에 죽어서 참 아쉬워요... 하후패와 하후현이 더 클때까지 살아있었다면 어떨까 싶네요.

WR
2018-08-29 21:58:24

조휴,조진,하후상 등의 2세대가 갑작스럽게 죽은 것이 위나라 입장에선 크리티컬했죠.

2
2018-08-29 18:02:32

글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좀 더 힘내서 오나라 편도 써주심 감사하겠습니다

WR
2018-08-29 21:59:12

강동은 너무 복잡해서 제가 감당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한번 다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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