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9 & R1, 로즈와 호나우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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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4-12-24 10:13:41
예전부터 생각하고 있던 건 데 문득 생각이 나서 적어봅니다.
처음 NBA 를 접하면서 좋아하게 되었고,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선수인 페니 하더웨이가 그랬고, 가장 좋아하는 팀인 히트에서 지금도 열심히 뛰어주고 있는 웨이드가 그랬구요. 그 사이에 빈스 카터나 티맥, NCAA 파이널을 보고 엄청 기대했던 제이 윌리암스 같은 선수들도 있었는데, 다들 부상의 악령에서 벗어나지 못했네요. 그나마 많이 좋아했던 선수들 중에는 앤써가 큰 부상은 없이 커리어를 마치긴 했군요.
어쨌든 이런 징크스가 있어서, 젊고 유망한 선수들을 좋아하기가 참 부담되는데, 그러면서도 또 어쩔 수 없이 끌리는 건 막을 방법이 없네요. 로즈 또한 처음 봤을 때 받은 느낌이 '페니 같다' 였습니다. 물론 플레이 스타일은 전혀 다르지만, 아마도 제가 받은 느낌은 온몸을 부딪히는 플레이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네요. 위태롭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만큼 더 빛나는 플레이들이요.
그래서 로즈에 대해 정말 관심이 가면서도 징크스가 두려워 팬이 되려고는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로즈가 MVP 를 따고 슈퍼스타로 빛나기 시작했을 때, '이제는 괜찮겠구나' 하는 생각에 매니아에 글도 좀 쓰고 팬질을 했더니 아니나다를까 큰 부상으로 지금까지 고생하고 있네요.
서론이 길었는데, 지금의 로즈의 모습을 보면서 오버랩되는 선수가 있어서 글을 써 볼까 합니다.
그 선수는 농구 선수가 아닌 축구 선수 인데요.
90년대~00년대를 수놓았던 스타들 중에서도 가장 빛났던 Il Fenomeno, 브라질의 호나우두가 바로 그 선수입니다.
90년대 후반, 농구에는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이 있다면 축구에는 축구 황제 호나우두가 있었죠. 특히나 유명했던 것은 지금도 메씨와 호날두 등을 얘기할 때 간간히 회자되는 호나우두의 바르샤 시절인데, 팀의 공격의 거의 전부를 혼자서 이끌었다고 할 만한 시기였죠. 별다른 공격 작업 없이 하프라인부터 공을 잡은 호나우두가 대여섯명의 수비수를 벗겨내면서 골까지 만들어내는 장면은 전 세계의 축구 팬들을 열광하게 만들었고, 이러한 전성기는 당시 공격수들의 무덤이라고 불리던 세리에로 무대를 옮기고 나서도 이어졌죠. 그리고 그가 이뤄낸 것은 약관 20세의 나이에 FIFA 올해의 선수상 수상, 이듬해에는 발롱도르까지 수상하면서 최연소 수상 기록을 갈아치웠던 것이었습니다.
로즈 또한 비슷했습니다. 08년 드래프트에서 매직 존슨, 앨런 아이버슨 이후 처음으로 1픽으로 뽑힌 가드로 엄청난 주목을 받으며 데뷔해서 신인왕을 받고, 매년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며 데뷔 3년 째에 팀을 전체 1위로 만들며 MVP 에 등극했습니다. 이때 나이가 고작 22세, 역대 최연소 MVP 였죠.
두 선수의 행보는 이후에 무릎 부상이라는 크나큰 시련을 맞이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부상의 이면에는 그들의 플레이 스타일이 깊게 관여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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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호나우두의 플레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골.
영상에서 보이듯, 그는 너무나 빠르고, 또 강하고, 스킬풀하고, 골 결정력까지 갖춘 스트라이커였고, 그렇기 때문에 힘으로도 기술로도 막을 수 없었던 선수였습니다. 공을 몰고 달려도 수비들 보다 빠르고, 속도를 늦추지도 않은 채 방향전환과 플립플랩을 하고 골키퍼까지 속이며 골을 넣어버리는, 그야 말로 공격수가 갖춰야 할 모든 것을 갖춘 선수였고, 누구도 막을 수 없을 걸로 보였죠.
이 시절 호나우두의 전매특허와 같은 움직임은 드리블 시에 붙는 수많은 페인트 동작들과 플립플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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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공간에서 만들어내는 수많은 페인트 동작들. 호나우두는 알까기의 달인이었죠.
하지만 그런 그에게 부상이 찾아왔고, 부상 이후의 그에게는 이런 말이 따라왔습니다.
신은 그에게 최고의 재능을 주었지만, 그것을 버텨낼 신체를 주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로즈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로즈의 플레이의 대단함을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지만 단적으로 얘기해 보자면 'Too big too strong too fast too good' 이라는 멘트죠. 이 멘트를 호나우두에게 갖다 붙여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로즈의 MVP 시즌 하이라이트
로즈의 플레이 중에 개인적으로 가장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공중에서의 바디밸런스와 지상에서의 Change of direction 입니다. 드리블 스킬만 보면 그보다 더 대단한 선수도 있고, 스피드 또한 그와 비슷하거나 더 빠른 선수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로즈를 대단하게 만들어 주었던 것은 최고 가속도가 붙은 상태에서의 Change of direction 이라고 생각합니다. 로즈의 돌파를 보면 유로스텝 같은 방향전환도 아니고, 수비수 앞에 둔 상태에서 드리블로 앵클 브레이킹을 하는 게 아니라 3점 라인에서부터 기어를 올리면서 최고 속도로 들이받을 듯 하면서 순간적으로 방향을 좌우로 전환하며 수비를 찢어내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플레이들은 호나우두의 그것과 꽤 닮아 있죠.
두 선수가 공통적으로 당한 부상부위는 무릎이었습니다. 사람은 참 많은 관절 부위를 가지고 있습니다만 그 중에서 운동능력과 체중 지탱에 가장 중요한 관절 중 하나가 무릎 관절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무릎 관절은 기본적으로 Hinge type 으로 앞뒤로 움직이도록 만들어진 관절이죠. 그리고 이 관절의 움직임을 잡아주는 인대가 전/후방 십자인대입니다. 두 개의 인대가 관절면에 X 자 모양으로 붙어서 장딴지 부위가 앞쪽으로 과하게(180 도 이상) 펴지지 않도록 해 주는 동시에 좌우로 뒤틀리지 않도록 잡아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무릎 관절과 십자인대의 모식도. 옆에서 본 모양도 X 자로 교차하고 있지만 아래위에서 본 모양 또한 X자로 교차하고 있습니다. 위쪽, 허벅지뼈를 기준으로 전방 십자 인대는 뒤에서 앞으로,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붙어 있고 후방 십자인대는 앞에서 뒤로,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붙어 있죠.
호나우두와 로즈의 움직임을 보면, 호나우두의 페인트 동작이나 플립플랩, 그리고 로즈의 방향전환 시에 무릎의 뒤틀림을 보면 정상적으로 앞뒤로 움직이는 무릎의 움직임과는 상반되는 움직임을 보여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순간적인 움직임이긴 하지만 앞쪽을 향하고 있는 신체의 진행방향을 억지로 좌 또는 우로 이동시키기 위해서 발을 디딘 상태에서 무릎을 뒤틀고, 다음 발에 그 방향으로 몸을 이동시켜 나갑니다. 그리고 그걸 한번만 하는 게 아니라 순간적으로 두 세번, 혹은 그 이상 해서 상대방을 속이는 거죠.
위에서 언급했던 '신은 그에게 최고의 재능을 주었지만, 그것을 버텨낼 신체를 주지는 않았다' 라는 말처럼 아주 젊은 시절부터 너무나 좋은 스킬을 가졌지만 오히려 그 스킬 때문에 이 두 스타의 무릎은 상상하기 힘든 혹사를 당했고, 그 결과 인대가 버티지 못하고 끊어져 버렸던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다른 요소들도 있겠지만, 그들의 플레이 스타일 자체가 부상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움직임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신이 그들에게 더욱 강한 인대, 더욱 강한 신체를 함께 주었다면 그야말로 올타임 No. 1 이 될 수도 있었을 재능이지만, 그들의 몸은 그것을 버텨낼 만큼 강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가 치명적인 부상을 당한 이후의 행보도 어찌 보면 비슷하다는 느낌입니다. 호나우두는 인테르에서 무릎 부상으로 반년을 날리고 그라운드에 복귀하지만, 복귀 경기에서 또다시 무릎을 부여잡고 쓰러지고, 고스란히 2년이란 시간을 부상 때문에 날려버리게 되죠. 로즈 역시 부상 복귀 후 단 10경기만에 다시 무릎 부상으로 쓰러지며 2년의 시간을 부상으로 날려버리게 됩니다.
호나우두의 이후 행보는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 다들 기억하실 한일 2002년 월드컵, 그 중심에 있는 것이 두 번의 커다란 부상에서 회복한 호나우두였고, 예전만큼 화려한 플레이는 아니었지만 월드컵에서 최고의 활약을 보여주며 발롱도르를 수상하기에 이릅니다. 이후에는 레알 갈락티코 1기의 멤버로써, 그리고 밀란에서 황혼기를 보내고 브라질로 돌아가게 되죠.
호나우두의 커리어로 미뤄봤을 때 로즈의 앞으로의 커리어에 있어 지금이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두 번의 큰 부상으로 운동능력이 떨어지지 않을 수는 없고, 또한 부상에 대한 우려와 같은 심리적인 영향으로 플레이가 위축이 되거나, 똑같은 플레이를 하더라도 무릎을 의식하다 보면 힘이 들어가서 다른 부위의 부상이 발생할 수도 있구요. 하루아침에 플레이 스타일이 확 바뀔 수는 없지만, 조금씩이라도 부상 우려가 적은 스타일로 바꿔 나가야 할 거라 생각합니다.
최연소 MVP 의 주인공인 로즈가 2002 한일 월드컵의 영웅이었던 호나우두처럼 화려하게 다시 날아오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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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치기 쉬운 스타일인걸 알기때문에 더욱 빠져드는 선수들이죠... 신체의 내구성을 매개체로 플레이 하는만큼 그 간지나 위용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