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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king Of An MVP 챕터 10-'Rookie of the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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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1-05-25 19:02:59
브라이언 윈드호스트와 테리 플루토가 쓴 르브론의 전기 'The Making Of An MVP'  열한 번째 번역을 계속하겠습니다.
 
앞 장에서 성공적인 데뷔 경기를 치른 르브론이 이기적인 동료가 가득한 팀에서 첫 시즌 동안 어떤 문제를 겪었고 어떤 도움을 받았는지, 어떻게 신인왕에 선정됐는지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먼저 소개드린 내용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NBA에 온 것을 환영한다: 르브론 제임스는 나흘 동안 세 경기를 치르며 그의 루키 시즌을 시작하려 하고 있었다. 캐벌리어스는 그들의 시즌 개막전을 새크라멘토에서 치른 후 전용기를 타고 다음 행선지-애리조나 주 피닉스로 향했다.
 피닉스에서 가진 아침 슛 훈련 시간 동안, 몇몇 선수들은 벌써부터 그날 밤 어디로 파티하러 갈 지 얘기하고 있었다. 경기 당일 아침 슛 훈련은 무엇보다 정신자세를 가다듬는 훈련이고, 감독들은 선수들이 경기 중에 쓸 여러 가지 전략들을 소화하도록 한다. 지난 훈련을 다시 돌아보는 시간이고, 선수들이 각자의 그날 경기 매치 업 상대들을 떠올려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똑똑하고 헌신적인 선수들은 이 시간에 집중해서 임한다. 하지만 몇몇 캐벌리어스 선수들의 마음 속에는 다른 것이 떠오르고 있었다. 캐벌리어스가 경기 후 피닉스에서 밤을 보내기로 했기 때문에, 리키 데이비스의 전화는 경기 후 몇몇 동료 선수들을 경기장에서 클럽으로 실어 나를 리무진을 섭외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르브론은 그 파티에 초대받지 못한 나머지 선수들 중 한 명이었다. 어쨌든 너무 어려서 클럽을 갈 수 없기도 했지만, 이 시점의 르브론은 팀에 친구가 거의 없었던 것이다.
 
 경기 시간이 되면 대부분 캐벌리어스 선수들의 마음은 이미 경기 후 가질 파티에 가 있는 것 같았다. 최종 점수 95-86으로 진 경기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고, 사실은 관심 비슷한 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르브론은 21점 12리바운드와 여덟 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커리어 두 번째 경기에서 벌써 트리플 더블에 근접한 기록을 내고 있었던 것이다. 조던과의 비교가 항상 르브론을 따라다녔지만, 이날 경기는 온전한 포인트 가드 경기인 매직 존슨 타입의 경기에 더 가까웠다. 폴 사일러스 감독은 르브론이 일곱 개의 턴오버를 저지른 것에도 조금 신경을 썼지만, 그보다는 팀의 조잡한 경기력과 선수들 정신상태에 더 화가 났다. 사일러스가 절대 원하지 않을 일이 있다면 NBA를 파티를 열 멋진 핑계거리나 자격증 정도로 아는 선수들에게 르브론이 끌려다니는 것이었다.
2003-2004 시즌 초반 캐벌리어스 선발 선수들. 왼쪽부터 대리어스 마일즈, 리키 데이비스, 카를로스 부저, 지드루너스 일가우스카스, 르브론 제임스
 
 다음 행선지는 오레건 주 포틀랜드였는데, 르브론과 캐벌리어스는 이곳에서 불량한 선수들이 가득한 트레일 블레이저스와 경기를 가질 예정이었다. 몇몇 언론들은 그들을 ‘제일(Jail: 감옥) 블레이저스’라 불렀는데, 법적인 문제가 있는 선수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포틀랜드 팬들은 그들의 팀에서 마음이 떠나고 있었지만 아무튼 만원을 기록했다. 르브론을 보러 온 것이었다.
 
 이날 경기는 캐브스의 슬픈 현실이 확실히 사일러스와-그리고 르브론에게 닥쳐온 순간이었다. 경기 초반 르브론은 리키 데이비스가 자기에게 볼이 와야 한다고 생각했을 때 다른 선수에게 패스 두 번을 했다. 데이비스는 타임아웃 시간에 벤치로 향하는 르브론에게 고함을 질렀다. 대부분의 포틀랜드 선수들이 그것을 들었다. 데이비스는 볼을 원했고 슛을 원했다. 르브론에게 향하는 세상의 관심에 명백히 화를 내고 있었다. 요컨대 데이비스는 자신이 이 팀의 ‘더 맨’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르브론이 아직 고등학교도 졸업하기 전인 지난 시즌 캐브스에서 경기당 21점 가까이를 올렸다. 그런데 그 팀이 겨우 17경기만을 이겼다면 어떨까? 데이비스는 캐브스가 그 17경기 중 7경기를 자신 없이 이긴 것을 운이 좋아서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가 지난 시즌 그 20득점 경기를 할 때마다 홈 팬들에게서 들은 소리라고는 캐브스가 얼마나 르브론을 원하는지 뿐이었다. 이제 캐브스는 르브론을 가지게 됐지만, 그건 더 좋지 않았다. 온 리그가 이 꼬맹이를 떠받들기 시작한 것이다. 사일러스는 르브론을 팀에 적응시키고 다른 선수들의 재능을 르브론과 융화시키는 데 훨씬 애를 쓰고 있었다. 그러는 대신, 사일러스는 르브론의 경기를 데이비스에게 맞춰야 했다. 최소한 데이비스의 관점에서는 말이다. 피닉스에서 데이비스는 25개의 슛을 던져 르브론보다 1점 많은 22점을 넣었다. 그는 명백히 매 경기 르브론보다 더 많이 넣으려 했다.
 
 르브론은 단 한 번도 이기적인 선수였던 적이 없었다. 고등학교에서는 패스를 하고자 하는 의지를 높이 평가받았다. 졸업반 때는 경기당 31점을 올렸고, 원하기만 한다면 50득점 경기도 손쉽게 할 수 있었다. 그는 데이비스가 슛을 던지지 못해 벌인 난폭한 짓거리에 깜짝 놀랐다. 르브론은 소극적인 선수가 됐다. 기본적인 패스만 했고, 8득점 6어시스트에 그쳤다. 경기 후 르브론과 알고 지내던 포틀랜드의 데릭 앤더슨은 캐브스 라커룸 앞에서 르브론에게 이렇게 쓰인 쪽지를 보냈다. “야, 고개 들어.”
 
 캐브스는 포틀랜드에게 104-85로 졌다.
 
 “다음날 아침 저희 팀 버스가 8시 30분에 공항으로 떠날 예정이었어요.” 캐벌리어스 단장 짐 팩슨의 회상이다. “몇몇 선수가 늦어서 8시 38분에 출발했죠. 폴(사일러스)이 버스 뒷좌석으로 가서 선수들을 노려보며 약속 시간에 늦거나 사라지는 걸 용납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정말로 화가 났어요. 그것이 바로 우리가 원하던 감독이기도 했죠.”
 
 캐브스는 클리블랜드로 돌아와 덴버와의 홈 개막전을 치르게 됐다. 관중석에는 야구 선수 켄 그리피 주니어와 래퍼 제이 지, 클리블랜드의 다른 팀에 소속된 여러 프로 선수들과 나이키 CEO 필 나이트까지 자리했다. 이날 경기에선 르브론이 3학년, 오크힐 고등학교의 카멜로 앤써니가 4학년때 둘이 치렀던 전설적인 고등학교 맞대결 후 처음으로 만날 예정이었다. 당시 경기에서는 르브론이 36점, 앤써니가 34점을 올려 두 선수가 70점을 올렸었다. 그 다음 시즌 앤써니는 시라큐스 대학교로 진학해 오렌지멘 팀을 NCAA 우승으로 이끌었고 르브론은 세인트 빈센트-세인트 메리 고등학교로 돌아와 팀을 (USA 투데이 선정) 전미 랭킹 1위로 이끌었다. 2003년 드래프트에서 르브론은 1순위 지명을 받았고 앤써니는 세 번째로 지명됐다.
 
고등학교 시절 르브론과 앤써니의 맞대결 모습
 
 이 경기는 심지어 전국 방송으로 중계되기까지 했다. 방송국은 앤써니 대 르브론 라이벌리를 래리 버드 대 매직 존슨에 비교하며 이들의 맞대결을 부각시키려 했다. 사실 NBA나 TV 방송국의 관례에 비춰 보면 이런 비교는 과장된 것이었다. 존슨과 버드는 NCAA 결승에서 만났고, 버드는 보스턴에, 존슨은 레이커스에 입단해 얘깃거리가 많은 프랜차이즈에서 뛰었다. 르브론과 앤써니는 고등학교 정규 시즌 토너먼트에서 만났고, 지금은 전 시즌 양팀 합계 34승 130패를 기록한 암울한 팀에서 뛰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사실은 시청률에 혈안이 된 방송국을 가로막지 못했다.
 
 시즌이 시작되기 전, 배우이자 영화 감독이자 자칭 농구 전문가인 스파이크 리는 AP와의 인터뷰에서 르브론의 루키 시즌 개막에 맞춰 입을 열었다. “그는 경기장에서 보여줘야 해요 그 어린 선수에게 많은 부담이 지워져 있죠. 사람들은 그가 겨우 18살이란 이유만으로 면죄부를 주려 하지 않을 겁니다. 사람들이 (르브론이 어리다는 걸) 잊어버리는 이유는 그가 나이에 비해 성숙했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그를 만나보기 전까지는 얼마나 커다란지 실감이 안 날 겁니다. 평균적인 18살짜리들보다 훨씬 크죠. 하지만 제 생각에 사람들이 그에게 감명받을 부분은 그의 바스켓볼 IQ입니다. 굉장히 날카로워요.”
 
 하지만 르브론은 여전히 18살에 불과했다. NBA에선 여전히 신참이었던 것이다. 여전히 신인이고, 여전히 3/12 야투와 포틀랜드에서 데이비스가 고함을 지른 일로 마음 아파하고 있었다. 그것은 르브론의 프로 첫 번째 부진이었고, 그는 그걸 잘 떨쳐버리지 못했다.
 
 그의 점프슛은 새크라멘토와 피닉스 경기에서 그의 가장 좋은 친구였지만, 포틀랜드 원정에서는 사라져 버렸다. 르브론이 그의 첫 정규 시즌 홈 경기 코트에 발을 올렸을 때도 점프슛은 여전히 실종된 채였다. 한 번도 스스로 말한 적은 없지만, 데이비스와의 충돌이 그를 끌어내리고 있었다. 경기 초반 르브론은 몇 개의 슛을 던졌는데 모두 끔찍하게 빗나갔다. 그 중 하나는 림에서 5피트 떨어진 곳에서 날린 에어볼이었다. 그는 7득점과 3/11 야투에 그치며 경기를 마쳤다. 성공한 야투 중 두 개는 덩크였고 한 개는 레이업이었다. 앤써니는 14점을 올렸다.
 
 캐브스는 무승 4패가 됐고 그들은 위기에 빠졌다.
 
 “제가 르브론에게 요청한 것(르브론의 포지션을 스몰포워드에서 포인트가드로 바꾸는 것)은 5년차 베테랑에게나 요청할 만한 것이었어요.” 사일러스의 말이다. “포인트가드로 뛰게 할 생각은 없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죠. 르브론은 한 번도 불평하지 않았어요. 제 말을 주의 깊게 듣고, 포인트가드 플레이를 배우고, 그저 이기고 싶을 뿐이라고 계속 말해줬죠.”
 
 르브론은 베테랑 코치의 일을 쉽게 만들어주려 노력했다. 르브론이 포지션 변경을 끔찍하게 생각했다면 프론트 오피스에게 가서 “저 사람들이 나를 내 포지션에서 내몰고 있는데요” 라고 말할 수도 있었다. 기자들 앞에 가서 자기에게 포인트가드를 시킨다며 사일러스를 비난하거나, 데이비스가 이기적이라는 것을 폭로할 수도 있었다. 데이비스의 뒤에서 험담을 하며 데이비스 편과 팀 플레이를 하려는 편으로 편가르기를 할 수도 있었다. 철없는 18살짜리처럼 행동할 수도 있는 나이였지만, 르브론은 감독을 믿고 감독의 말에 귀를 기울이려 했다. 사일러스는 제임스에게 말해줬던 것이다. “그냥 네 경기를 해. 슛을 던져야겠으면 던져. 골밑으로 가야겠으면 돌파를 하면 돼. 다른 녀석들이 말하는 건 걱정하지 마.”
 
 르브론은 다음 경기에서 23점을 넣었다. 하지만 캐브스는 인디애나에게 또 지며 전적은 무승 5패가 됐다. 르브론은 그때까지 다섯 경기를 연속으로 져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여름 농구 캠프나 유소년 농구 교실에서조차 말이다.
 
 몇 주 후, 데이비스가 타임아웃 시간에 사일러스가 내린 작전 지시를 무시했다. 첫 번째 공격 옵션이 아니었지만 팀 동료들을 전혀 보지 않았다. 그냥 혼자서 슛을 던지고, 실패했다. 일주일 후 데이비스는 또다시 게임 플랜을 따르지 않았고, 사일러스는 애틀랜타 원정 4쿼터 내내 데이비스를 벤치에 앉혀 뒀다. 그 날이 지나기 전에 사일러스는 데이비스를 훈련에서 빼버린 후 뉴올리언즈로 향하는 전용기에도 태우지 않았다. 그리고 데이비스에게 한 경기 출장 정지 징계를 내렸다. 애틀랜타전 패배 후 데이비스가 라커룸에서 기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라 뉴블과 고함을 지르며 말싸움을 벌였던 것이다.
 
 이런 야단법석이 나중에 르브론이 MVP가 되는 데 어떤 도움을 줬을까? 그것은 그에게 NBA의 어두운 면을 보여줬다. 무엇이 팀을 분열시키고 침몰시키는지에 대한 빠르고 고통스러운 교훈이었다. 그는 더 이상 슈팅스타즈 선수도 아니었고, 5학년 이래로 함께 해오며-성장 환경이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이기심을 누르고 이타적인 농구를 했던 친구들이랑 함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르브론은 드루 조이스 3세, 로미오 트래비스, 시안 코튼, 윌리 맥기, 그리고 다른 세인트 빈센트-세인트 메리 동료들이 NBA의 몇몇 선수들보다 훨씬 성숙했음을 깨달았다. 공식적으로 말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고등학교 시절 은사 키스 댐브럿이 코치로 있는 애크런 대학교에서 1학년 시절을 보내고 있는 조이스 3세와 트래비스를 부러워한 때가 있었다.
 
 “팩스(짐 팩슨)에게 선수들 중 몇몇 녀석을 내보내야겠다고 얘기했어요.” 사일러스의 말이다. “르브론을 위해서라도 그렇게 해야 했습니다. 팀의 기강을 세우기 위해서도요.”
 
 르브론은 캐브스 선수들 중 한 명과 우정을 키워가고 있었다. 상대는 2002년 클리퍼스에서 트레이드돼 온 후로 줄곧 외톨이처럼 지내온 대리어스 마일즈였다. 그는 클리블랜드를 좋아하지도 않았고 사일러스가 그의 앞에서 소리를 지르는 것이나 자신의 커리어가 정체돼 있는 것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마일즈는 여름 AAU 시스템의 산물로, 2000년 드래프트에서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에게 3순위로 지명된 6-9의 포워드였다. 여러 면에서 마일즈는 르브론 만큼 신체적으로 축복받은 선수였다. 하지만 그에게는 르브론 만큼의 규율이나 팀의 일부가 되려는 마음가짐이 부족했고 그것이 그의 가장 큰 약점이었다.
 NBA에서 가장 잘 달리고 점프하고 덩크할 수 있었기 때문에, 마일즈는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또한 농구화 계약과 NBA에서의 첫 계약을 통해 18살의 나이에 2천만 달러를 받게 됐다. 그것이 마일즈에게서 수준 이하의 점퍼를 향상시키기 위해 체육관에서 추가 훈련을 할 의지를 앗아가 버렸다. 그는 또한 자신의 들쭉날쭉한 볼 핸들링을 향상시키기 위한 어떤 대단한 의지도 보이지 않았다. 림으로 돌진해 파울을 얻어낼 수 있었지만 그는 59%짜리 자유투 선수였다-NBA 평균인 74%보다는 한참 낮은 수치다. 그런 것도 그를 전혀 걱정시키지 못했다. 많은 면에서 마일즈는 10대 선수들이 고등학교에서 NBA로 직행해서 잠재력을 다 발휘해보지도 못하게 할 수 있는 여러 유혹의 본보기가 돼버렸다. 르브론도 같은 함정에 빠질 수 있었다. 리그를 떠돌아다니며, 시즌 평균 10에서 15득점 정도를 올리고, 두꺼운 돈다발(2003-2004 시즌에 4백만 달러)이 들어올 예정이기 때문에 막장 팀에서 뛰면서도 분해할 일이 전혀 없는 삶 말이다. 하지만 그런 건 르브론이 아니었다.
 
 분명 르브론이 먼저 마일즈에게 접근하기는 했다. 르브론은 마일즈가 그냥 수줍음을 많이 탄다고 여겼다. 르브론은 팀의 많은 어른 동료들 속에서 편안함을 느끼지 못했고, 그건 캐브스에서 2003-2004 시즌을 맞을 때 겨우 22살에 불과했던 마일즈도 마찬가지였다. 둘은 함께 비디오 게임을 하며 놀았다. 르브론은 특별히 매든 2004 NFL 게임을 좋아했고, 클리블랜드 브라운즈를 코치하며 팀 코치와 켈리 홀콤브를 쿼터백으로 쓰겠다고 말하곤 했다.
 
캐벌리어스 시절의 마일즈

 캐브스는 6승 19패로 시즌을 시작했고, 사일러스는 르브론을 포인트가드로, 데이비스를 슈팅가드로, 마일즈를 내시경 검사를 앞둔 사람처럼 안절부절 못하며 계속 기용하는 문제로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그동안 르브론은 11월에 동부 컨퍼런스 이달의 신인에 선정됐고 이후 매달 이 상을 휩쓸었다.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어느 날 아침 가진 훈련에서 사일러스는 센터 크리스 밈과 데이비스가 NFL 선수 조 혼이 터치다운 패스를 성공시킨 후 핸드폰을 받는 세리머니를 하는 것을 흉내내며 놀고 있는 것을 봤다. 감독은 데이비스와 밈이 경기장 골대 쿠션 속에 핸드폰을 숨겨놨다가 이 세리머니를 하는 걸 의논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은 농담을 하고 있었지만 사일러스는 격노했다. 그는 짐 팩슨 단장에게 가서 선수 몇 명을 내보내야겠다고 말했다. 팩슨은 몇몇 트레이드 작업을 진행 중이었는데, 이 사건이 그를 더 밀어붙였다. 그날 안으로 데이비스, 밈, 마이클 스투어트가 보스턴의 에릭 윌리엄스, 토니 배티와 트레이드됐다. 새로 캐벌리어스 선수가 된 두 선수는 스타가 아니었지만 둘 다 NBA에서 뛰는 게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열심히 농구하는 베테랑 선수들이었다. 그들은 감독과 동료들을 존경했고, 그것은 캐브스가 르브론의 본보기로 원했던 그 모습이었다.
 
 한 달 후인 2004년 1월 21일, 마일즈가 포틀랜드 포인트가드 제프 맥기니스와 트레이드됐다. 팩슨은 르브론이 팀에서 가장 친한 친구를 트레이드했다고 화를 내지 않을까 걱정했고, 트레이드가 발표되기 전에 르브론에게 트레이드 사실을 알려주려 했다. 그는 비디오 게임을 하고 있는 르브론을 찾아내 마일스가 맥기니스와 트레이드됐다고 말했다. 팩슨에 따르면, 르브론은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우리는 포인트가드가 필요해요.” 그러고 나서 르브론은 다시 게임을 해도 되냐고 말했다.
 
 르브론은 포인트가드로 뛰면서 평균 20점을 올리고 있었지만, 리그 최다에 가까운 턴오버를 저지르고 있었다. 사일러스는 르브론을 이전까지 데이비스가 맡고 있던 슈팅가드 자리로 옮겼다. 르브론이 고등학교 내내 뛰었던 윙에서 대부분 뛰는 자리였다. 맥기니스가 공격을 리드했다. 캐브스는 갑자기 견실한 팀이 됐다.
 
 캐브스는 35승 47패로 시즌을 마쳤다-대단친 않지만 6년 만에 가장 좋은 성적이었고, 17승에 그쳤던 지난 시즌보다는 두 배도 더 이긴 시즌이었다. 르브론은 압도적인 득표로 신인왕에 올랐다. 그는 NBA서 한 경기에 40득점(역자 주: 이 기록은 2009-2010 밀워키의 브랜든 제닝스에 의해 깨짐)과 한 히즌 1,000득점을 올린 가장 어린 선수가 됐다. 그는 평균 20.9득점 5.9어시스트 5.5리바운드를 기록했는데, 한 시즌 평균 20-5-5를 기록한 세 번째 신인이 됐다. 나머지는 누구냐고? 르브론이 도달하기 전 이 명예를 지니고 있던 두 명의 명예의 전당 헌액자, 마이클 조던과 오스카 로버트슨과 한 문장에 언급되는 건 어떤가(역자 주: 신인 시즌 20-5-5는 2009-2010 시즌 새크라멘토의 타이릭 에반스가 네 번째로 기록)?
 
 르브론은 올 스타 팀에는 선정되지 못했는데, 한 편으로는 시즌 초반 포인트가드로 뛰며 턴오버 문제를 보였기 때문이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올스타 휴식기까지 캐브스가 20승 33패에 그쳤기 때문이기도 했다. 슬램 덩크 콘테스트에는 초청받았지만 사양했고, 이는 프런트와 코치들을 기쁘게 했다. 르브론은 피로가 쌓여 있었고 콘테스트 내내 덩크를 거듭하다가 부상당할 것을 걱정했다. 캐브스 팀은 그 결정이 르브론의 엄청난 성숙함을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나이키와 NBA가 르브론에게 참가를 재촉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나이키는 그것이 르브론 제임스 농구화를 좀더 팔아 치울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했다. NBA는 르브론이 어떤 덩크를 하든 TV 시청률은 올라갈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르브론은 이렇게 말했다. “저는 저 자신을 덩커가 아니라 농구선수라고 생각합니다. 제 무대는 덩크 콘테스트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는 그의 커리어 6년 동안 같은 내용의 초대를 번번이 거절해왔다.
 
 캐브스 방송 캐스터인 조 테이트는 사일러스가 그의 신인 선수에게 갖는 가장 큰 고민은 이랬다고 한다. “르브론이 따분해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죠. 워낙 똑똑한 친구라 폴의 작전을 바로 알아들었어요. 그 뒤로도 폴은 다른 선수들을 데리고 같은 훈련을 지겹게 반복해야 했죠. 르브론의 인내심이 필요한 시간이었죠. 어떤 움직임을 보여야 할지 이미 다 알고 있었거든요.”
 
 캐벌리어스의 홈 관중 수는 르브론 입단 전 11,497명에서 입단 후 18,288명으로 껑충 뛰어올랐다. 20,562석의 관중이 18번이나 매진됐고, 이는 팀 역사상 두 번째로 많은 횟수였다. 르브론은 13경기에서 30득점 이상을 올렸다. 그는 뉴저지를 상대로 40득점과 13어시스트를 올렸다. 2003년 12월 30일까지는 19살도 되지 않은 나이였다. 그는 또한 캐브스가 르브론과 함께 뛰고 싶어하고, 사일러스의 말을 잘 들으며, 진지한 프로 정신을 보여줄 12명의 선수를 찾기 위해 무려 21명의 돌려본 걸로도 주목받았다. 파워포워드 카를로스 부저는 르브론과 함께 뛰면서 나중에 스타가 될 기미를 보였다. 베테랑 센터 지드루너스 일가우스카스는 르브론에게서 진정한 존경을 받았다.
 
 “르브론은 엄청난 신인 시즌을 치렀어요.” 사일러스의 회상이다. “제가 르브론에게 좀더 슛을 많이 던지고 자기 의견에 고집을 갖고 동료들에게 경기 중에 좀더 지시를 많이 내리라고 주문해야 했던 때가 있었어요. 시즌 끝날 무렵엔 그 말대로 하고 있었죠. 두 번째 시즌을 맞아 제게 돌아왔을 때는 저희 플레이 북에 있는 작전을 이미 모조리 익혀가지고 왔더군요. 자기 작전뿐 아니라, 모든 선수들의 모든 작전을 다 말입니다. 굉장히 드문 선수들만이 그런 숙제를 해오는데, 작전을 익히는데 시간이 걸리게 마련이죠, 하지만 르브론은 다릅니다. 그게 제가 르브론이 언젠가는 MVP가 되고 언젠가는 역대 최고 선수 중 한 명이 될 거라 생각했던 이유입니다.”
 
르브론의 루키 시즌 플레이 탑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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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11-05-24 13:23:53
헬턴트님 덕분에 르브론의 데뷔시즌떄부터못본한을 글로나마 알수있게되어서 정말 감사합니다 ..흑
최고에요!!!!!
2011-05-24 13:25:37
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이 글을 읽고나니 헬탄트님 같이 대단한 필력을 지닌 한국 팬이 있는 르브론이 부러워지는군요. 르브론은 헬탄트님께 언젠가 밥을 한번 사야될 꺼 같습니다.  
2011-05-24 13:59:48
얼굴만 성숙한 친구인줄 알았는데.. 이미 모든 레벨에서 성인 이상이었군요.
"~척"하는 선수가 아니라 진짜로 하는 선수였군요. 생각해 보면 직장이든. 단체이든.
가장 중요한건 팀웍이죠. 분위기. 그속에서 좋은 결과가 나올려면 역시 화합과 단결.
르브론의 성숙한 마음가짐은 정말 귀감이 되네요.
2011-05-24 14:28:58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챕터 밑에 빨간색글 nba에 온것울  이거 오타 아닌가요 
WR
1
2011-05-25 19:02:04
수정했습니다.
 
새벽에 잠이 안 와서 불 꺼놓고 번역하다 보니 오타가 꽤 나왔네요. 지적 감사합니다.
2011-05-24 20:36:03

좋은 글 잘 봤습니다~

킹의 데뷔시즌을 좀 더 잘 알게 되었네요

마지막 바로 위문단에서

13경기에서 3득점이라고 하셨는데

30점이 아닌가요???

WR
1
2011-05-25 19:02:27

네, 30점이 맞습니다. 수정하겠습니다. 지적 감사합니다.

2011-05-25 15:25:02

헬텐트님 이글 원본은 어디서 읽을 수있나요? 링크좀 쪽지로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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