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양이와의 인연 [오랜만의 근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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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
2016-07-14 10:50:44
지난 연말부터해서 자주 전해드렸던 아파트 뒤의 길고양이와의 인연에 대한 글을 오랜만에 남기게 됐습니다. 그동안 글을 쓰지 않았지만 꾸준히 계속 만나고 친분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첨에는 저랑 어떤 중년 부부, 아주머니 한 분 이 정도가 먹이를 챙겨줬는데요, 오랜 시간이 지나고, 요즘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추운 겨울보다 놀이터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먹이를 챙겨주는 사람들도 부쩍 늘었습니다. 제가 파악하고 있는 먹이주는 사람들만 해도 현재 7명 정도가 되는 것 같아요.
얘는 워낙에 사람에게 붙임성이 좋고, 살아가는 법을 잘 알고 있다보니 예쁨을 받는 것 같습니다. 현재 저희 아파트 뒤에서 볼 수 있는 고양이만 해도 5마리 정도가 되는 것 같은데 사람과 친하게 지내는 고양이는 이 아이 하나 밖에 없습니다. 나머지는 어떻게 다가가려 해도 쉽게 마음을 열지 않네요.
최근의 모습입니다. 이름은 각자 부르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부산 쪽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어르신들이 고양이를 부를 때 '살진이' 이렇게들 많이 부르더라구요. 저희 어머니도 그렇게 부르시기도 하고 뭔가 입에도 좀 붙어서 살진아, 진아 이렇게 부르고는 합니다. 몇 개월 사이에 조금 더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네요. 당시에 추운 겨울에 출산을 했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글을 남기지 않았었는데요, 그 이후로 5~6개월이 지난 시점에 처음으로 새끼까지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조금 마음이 아픈 것이 분명히 새끼를 한 마리만 낳지는 않았을텐데 확인된 새끼는 저 한 마리 뿐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열악한 환경 속에서 지내면서 새끼를 여러마리 잃지 않았나 이렇게 보고 있습니다. 그러고보면 중간에 며칠이나 갑자기 자취를 감추고 보이지 않았던 적도 있었습니다. 4~5일만에 나타나서는 평소와는 다르게 아주 경계하는 모습으로 사람들을 대하고 그런 적들이 있었는데요, 아마도 그 시기에 새끼를 한 마리씩 잃고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끝까지 죽은 새끼 옆을 지키다가 나중에 그 죽음을 인정하고 나서야 세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래서 인지 그때는 평소 알던 살진이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적이 4~5번은 됐던 것 같은데 지레짐작일 뿐이지만 한 마리씩 새끼들을 잃어가면서 혼자 그 상처를 짊어지지 않았나 생각을 해봅니다.
그럼에도 살진이는 한 마리 남은 새끼를 끝까지 잘 돌봐서 저만큼 키워냈습니다. 진짜 열악한 환경과 안정적인 먹이수급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젖을 물리며, 이제는 사람들이 사료를 주는 것을 먹이면서 저렇게 예쁜 새끼를 키워냈어요.
https://youtu.be/KY3Uobhxfrw
상처는 있었겠지만, 이제는 일상으로 돌아와 건강히 잘 지내고 있습니다. 여전히 저희 가족을 만나면 와서 애교를 부리고 그저 무릎 위에 올라와서 조금이라도 더 쉬고 가려고 하고 그렇습니다.
https://youtu.be/29VjJHK80-I
이건 2일 전에 찍은 영상이에요. 어머니께서 집에 먹이를 가지러 잠깐 가신 사이에 저랑 둘이서 기다린다고 있었는데, 뒹굴거리면서 먹이를 기다리는 모습입니다. 새끼에겐 듬직한 엄마겠지만, 여전히 저희 가족에게는 애교를 부리는 그런 고양이입니다.
어제는 오는 길에 좀처럼 잘 보이지 않던 어미와 새끼가 같이 있는 모습을 보고 집에 얼른가서 통조림을 가져와서 줬는데요, 엄청난 모성애를 느낄 수 있는 장면을 봤습니다. 저 통조림 살진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이거든요. 냄새맡으면 진짜 좋아 죽는 못참을 정도로 좋아하는건데, 어제는 거들떠도 보지 않고 새끼 먹으라고 자기는 아래에 내려가서 경계태세를 하고 딱 지켜주고, 새끼가 조심스럽게 그릇에 다가가서 통조림을 아마도 처음 먹어봤을텐데 한 통을 깨끗하게 마치 그릇을 설거지라도 해둔 것처럼 깔끔하게 비워냈습니다.
https://youtu.be/1T0fjc9Jayc
어미도 얼마나 먹고 싶었을까 생각이 들었는데,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새끼에게 완전하게 다 양보하고 나중에 자기는 사료를 먹는 모습에서 역시 엄마는 강하다 이런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혼자서 바람쐬러 나갔다가 살진이를 만나면 둘이 앉아서 대화를 합니다. 물론, 대화라기 보다는 제가 일방적으로 하는 이야기겠죠. 재미있는 것이 살진이가 알아듣는지 모르겠지만, 일정한 타이밍에 항상 야옹~ 하고 대답을 하고, 서로 눈빛을 맞추고 고양이가 저를 보고 눈을 한 번 감았다 뜨고 그런 행동을 하더라구요. 이게 알고보니 소통을 하고, 좋아요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라고 하던데 아마도 제 마음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기는 합니다.
주로 하는 이야기는 이런 이야기입니다. 추운 날에 만났는데 이제 더운 날이 됐네. 몇 번이나 여름을 겪어봤는지, 다시 추워질 때까지, 그리고 또 더워질 때까지 계속해서 여기서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해줍니다. 차조심하고, 아무 사람이나보고 다가다가는 해코지 당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는 당부도 하고, 새끼 건강하게 잘 키우라는 이야기도 늘 해줍니다.
추운겨울 만큼이나 장마도 길 위에서 살아가는 고양이들, 아니 길 위에 있는 모든 생명들에겐 살기 힘들 것입니다. 그럼에도 각자만의 방식으로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고, 열심히 살아가는 것을 보면 저는 너무 보드랍게 살고 있으면서 작은 것에 불평하고, 힘들어하고, 이겨내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나 이런 생각도 갖게 되네요.
이 다음에 다시 근황 전할 수 있으면 전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살진이와 새끼가 건강하게 지낼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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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경남에 살아서 그런지 고양이를 부를 때 '살찐아' 이렇게 부르는 걸 자주 들었는데 오랜만에 들으니 이상하게 기분이 좋네요. 제가 어릴때 집에서 기르던 고양이도 무늬가 딱 저랬는데 늙어서 죽을때까지 키웠었었죠. 그 놈(암컷?)도 애교가 많고 사교성이 좋았는데...요즘 밤엔 아파트 촌에서 고양이들의 전쟁소리가 막 들려요. 암투나 세력전쟁이나 교미를 위한 싸움같은데 비명소리같은 울음이 얼마나 우렁찬지 정말 저러다 여럿죽겠다 싶더라구요. 길고양이들은 수명이 3년정도라는데 저 녀석도 새끼 잘 키우고 잘 살길 빌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