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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A, 이것을 알고 싶다! : NBA 선수들과 별명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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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3-02-13 00:09:46
다음의 I love nba 카페에 올렸던 글의 재업하는 글로 오래 된 탓에 수정을 덧입힌 글입니다. 오타나 오류가 있을 수 있으므로 알려주시면 즉시 수정하겠습니다. nba mania에도 올린 적이 있지만 서버 오류로 지워진 탓에 다시 올립니다. 보신 글이라면 skip해주셔도 좋지만 추가적인 정보도 삽입했으므로 읽어주시면 감사하지요.
 
숫자) 적힌 부분은 최하단에 추가 설명있으니 연계한 부분 같이 읽어 보시길 권장합니다.
   
략적 제휴라는 단어는 마케팅이 부의 창출을 위한 가장 훌륭한 수단임을 시장이 인지하고 나서부터 대두된 신조어중 하나이다. 전략적 제휴란, 특정 계약을 통해 계약의 이해관계에 얽혀 있는 투자자 및 관계자들(stakeholder)이 이익창출을 도모하기 위해 벌이는 경제활동이다. 근래 들어 국내에서는 이러한 전략적 제휴를 통한 소비자들의 구매활동 및 소비활동을 촉진시키는 경향이 외국의 그 어떠한 국가보다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쉽게 느낄 수 있다. 예컨대 각 이동통신사의 멤버쉽카드 혹은 신용카드를 통한 구매에 대해 판매자가 추가 할인 시행한다던지 혹은 더 많은 적립금을 적축해주는 방식으로 더 많은 소비자들의 소비를 촉진시키고, 고정 거래 고객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아니, 무슨 농구글의 초장부터 새크라멘토 킹스랑 워싱턴 위저즈가 파이널에서 만나는 소리를 하냐고 하실 수도 있겠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어떠한 선수들이 다양한 이해관계에 얽혀있는 투자자 혹은 관계자들과 어떠한 전략적 제휴를 맺어 얻은 별명을 어떤 식으로 이용하며 살아가는지 한번 알아보려고 한다. 
  
 
든 프로스포츠는 "프로"라는 두 단어가 말해주듯이 창출되는 모든 돈이 가장 중요한 이유이자 목적이 된다. NBA 또한 마찬가지이다. 물론 미국의 국민들을 넘어 전세계의 많은 농구팬들에게 훌륭한 경기를 통해 오락성을 선물하는 것도 중요한 목적이 되지만 프로스포츠의 본질인 이윤창출이 그 본질인만큼 이윤창출에서 어려움을 느끼는 팀들은 연고팬들의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가차 없이 사라질 수 있는 냉혹한 현실을 가지고 시작하는 바자니스라는 사실을 절대 망각할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지난 수십년간 우리는 우리가 열렬히 사랑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윤창출이 되지 않는 적자운영의 연속으로 인해 우리는 두 해전 사랑하는 연고팀을 잃는 지역의 주민들은 볼 수 있었다. (물론, 이들이 연고팀을 잃은 유일한 팀은 아니다만 최근 10년 사이에는 보지 못 했던 사정이다.)
 아무튼 Nate Mcmillan, Fred Brown, Lenny Wilkins, Spencer Haywood, Slick Watts, Shawn Kemp, Gary Payton, Ray Allen, Rasheed Lewis에서 데뷔 후 신인왕을 거머쥔 이후 MJ 이후의 최초이자 리그가 생긴 이래 두번째인 3연속 득점왕의 위용을 뽐내는 리그의 슈퍼스타인 Kevin Durant와 그의 단짝 Russel Westbrook까지 수많은 일급 신인 선수를 보유했던 Seattle Supersonics는 10년간 만년 적자에서 허덕이다가 결국에 Oklahoma City로 연고를 옮기면서 Seattle의 자랑이었던 Supersonics라는 이름 또한 Thunder로 바뀌며 자신들의 NBA팀을 완벽하게 잃게 되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Seattle SuperSonics가 Thunder로 바뀐 이후 매해마다 Durant는 올스타급에서 슈퍼스타 급의 선수의 기량으로 성장했고, Jeff Green(現 Boston Celtics), Thabo Shefolosha, Russel Westbrook, Serge Ibaka, James Harden(現 Houston Rockets) 등의 선수 전반이 포텐셜을 폭발시키며 Wild Wild West에서 꿋꿋이 살아남은 경쟁력있는 팀으로 성장하며 인기몰이도 제대로 하며 새로운 프랜차이즈 팀을 적자에서 벗어나게 만들어 주었다는 점이다.
 
 (시애틀은 시애틀시 인구와 주변의 퓨젯사운드 근교 인구까지 340여만명(시애틀 자체 인구는 대략 58만명)으로 미국에서 15번째로 큰 대도시권을 형성하여 적자운영은 얼마든지 피할 수 있었는데도 면치 못 하였고, 대략 54만명의 추산 인구가 살고 있는 Oklahoma City는 도시권 인구가 100만명 안팎인데도 시애틀이 겪었던 적자경영에서 피할 수 있게 되었다.
 
시애틀의 오클라호마 시티 이전에는 두 가지 재미있는 사건이 연계되어 있는데 한가지는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뉴올리언스에 강타했을때 오클라호마 시티는 연고구장인 포드센터를 뉴올리언스 호넷츠의 임시 구장으로 임대해주었고, 당시 오클라호마 시티에서는 호넷츠의 경기를 보러 평균 1만8300명의 평균관중을 유치하는 모습을 보였다. 오클라호마 시티가 석유를 발견하며 미국의 중남부 대표도시로 자리잡으며 안정적인 수익을 가진 고정 인구가 고향에 프로스포츠 팀을 유치하여 즐기기 위해 응원을 했고, 늘어난 스포츠 팬 인구의 응원에 힘입어 오클라호마 주가 지속적으로 NBA에 연고팀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두번째는 시애틀의 전 구단주이자 스타벅스의 회장이었던 하워드 슐츠 회장이 1962년도에 지어진 시애틀의 낡은 구장, 키아레나 개보수를 위해 2억5000만달러(한화 추산 2900억)을 요구했는데 시애틀시 재정이 얕아질 수 있다는 위기감에 시에서 일언지하에 거절했던 것이 슐츠 회장의 기분을 상하게 한 것이었다. 이후 슐츠 회장은 LLC의 회장이었던 클레이튼 베넷에 즉각 매각했고, 의욕이 앞선던 베넷 역시 시애틀시에 지속적인 키아레나 보수를 거절당한 것에 화가 나 미련없이 시애틀의 연고도, 슈퍼소닉스라는 전통의 이름도 다 지우고 새 이름으로 가게 된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반전은 언제나 뜻하지 않은 곳에 있는지 릭 아델만 감독의 모션 오펜스를 팀의 방향으로 잡고 모든 스타터와 벤치 플레이어들의 패싱 센스를 기반으로 그야말로 아름다운 농구를 구사하며 밀레니엄 킹스를 선보이며 유타 재즈의 EnergySolutions Arena와 더불어 가장 소란한 응원 열기를 자랑해온 Arco Arena의 주인이었던 Sacramento Kings가 올해를 끝으로 Seattle로 연고지를 이전하기로 결정하며 California 연고의 팀 하나가 사라지며 Seattle이라는 도시를 다시금 잠 못 드는 도시로 만들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렇듯 NBA의 리그 역사를 돌아 보면 그 이전에도 오래 되었지만 유수의 팀이 초라한 수익률을 이유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던 안타까운 일들이 발생했다. 이렇듯 프로는 실력과 흥행이라는 요소를 갖추지 못 한다면 냉정하게도 언제든 그 수명을 다 할 수 있다는 냉혹한 현실을 리스크로 가지고 운영되어진다. 그렇다, NBA를 포함한 모든 프로스포츠들인 모두에게 이윤창출은 오락성보다도 더욱 중요한 목적이다. 그러한 이유로 글의 머릿말에 언급한 전략적 제휴는 리그가 모든 스폰서와 흥행을 위해 꾸준히 시도하고 있는 이윤창출의 전략으로 사용되고 있음의 또 다른 이름임을 알리려고 한다. 이러한 전략적 제휴를 통해 리그의 각팀들의 에이스들은 자신만의 개별이름을 얻게 되었고, 이들의 이름을 가지고 각 팀은 홍보와 광고를 통해 더 많은 부가 가치를 얻었고, 리그는 이러한 이름을 다시 잘 포장하며 마케팅을 시도하고 있다. 스포츠라는 이름 속에 포함되어 있던 Business의 본질이 이러한 전략적 제휴를 가능케 했다. 
 
 
어떠한 이름이 어떻게 사용되었을까?

NBA는 농구며, 농구가 곧 마이클 조던이고, 조던이 곧 농구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His Airness, Air Jordan, and MJ
위의 나열된 세 단어는 Michael "Jeffrey" Jordan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Air Jordan이라는 별명은 정말 딱히 말이 필요없는 마이클 조던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그는 수차례 하늘을 날랐고, 많은 이들은 그에게서 "인간도 아주 잠시라도 날 수 있을 것이란" 환상을 가지게 되었다. 그에게는 그래서 Air라는 단어가 항상 수식어로 따라 나오게 되었다.
 
 
색상이 들어있는 신발의 시초였던 나이키의 Air Jordan 1
 
1*1) 크리스챤 문화를 기반으로 시작된 다수의 영어권 국가에서 신(god)과 결부된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금기시되는 일이었기에는 당연한 일이었기에 국내 유수의 팬들이 "농구의 신"이라고 칭하는만큼 빈도 높게 "신"이라는 칭호를 쓰는 경우는 없기에 조던의 별명 혹은 칭호에 대한 언급이 있을때면 언제나 air(공기)라는 단어가 소개되어져 왔다. 그리고 air라는 이 칭호는 그의 시그네쳐슈즈 덕분에 더욱 더 유명세를 타며 빛을 보았다.
 
 
때론 이런 단순한 방법이 큰 변화를 만들어 낸다는 사실을 몸소 보여준 NIKE.
 Just Do it 정신의 NIKE社가 Air Jordan 신발에 색상을 집어 넣고, 조던에게 신기는 그야 말로 "Just Do It"(그냥 하라!) 정신을 가지고 당시 리그가 가지고 있던 "모든 선수들은 단색 신발 밖에 신을 수 없다."는 규율을 무시하고, 매경기 벌금을 내면서까지 조던에게 신발을 신겼고, 그로 인해 흰색 신발들 사이에서 빛나던 흰빨검(現 Fire Red 버젼) 신발은 많은 팬들에게 주인 Michael Jordan과 함께 각인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케팅을 위해 만들었던 그의 이름 Air Jordan은 곧 그 이름처럼 훨훨 날개를 달고,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나이키의 Just Do It 정신과 마이클 조던의 유래없는 스포츠 분야의 선수 개인의 장악력 덕분이었다. (물론, Air Jordan이 뜬 것은 조던이 신었기에 가능했던 것이지만 Air Jordan이 아니었다면 그의 별칭 및 마케팅 이름은 어떻게 되었을지 정말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나이키와 조던의 결합은 어느 분야의 사업을 이야기해도 가히 최고의 윈윈결과를 얻어낸 전략적 제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당시 조던이 흰색의 평범한 조던을 신었더라면 여러분은 아마도 아주 최근에서야 각기 다른 색의 농구화를 구경하셨을지도 모를 일이다. 당시 조던과 그의 Air Jordan은 농구 코트의 패션 선각자였다.
 
 
조던은 절대로 의미가 작은 별명을 가진 적은 없었다.  : 필연....
그의 또 다른 별명인 His Airness를 봐도 알 수 있다.
이 별명은 도대체 무엇일까?라고 하시는 분들 분명 계실 것이다. 이 별명은 Highness(높음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 앞에 His가 붙었을때 상대방에게 "전하, 폐하" 혹은 "고결하신 높은 분"이라는 뜻을 가진 His Highness에서 Highness 대신 조던의 또 다른 이름이라 할 수 있었던 Air를 넣어 "날아다니시는 전하"이라는 정도의 어감을 가진 조던만을 위한 새로운 단어로 변모하여서 쓰인 것이다. His airness란 단어를 검색하면 마사장님만 나온다.>
 
 
 실 그토록 강력한 마케팅의 힘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나이키는 마케팅을 위해 이러한 권위가 갖춰진 Highness라는 호칭을 함부로 쓸 수 없었는데 그의 플레이를 본 많은 저널리스트가 "좀 더 자극적이고, 창조적인 기사와 그의 별명을 만들기 위해" 기사에 몇번 사용되고 사회가 이 단어의 권위에 대해 지나치게 인정하기 보다 조던에게만큼은 잘 어울린다는 우호적 반응을 보이자 곧 쉬이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미국 사회가 용인해주기 전에 그에게 "His Airness"라는 별명을 붙이는 일은 마치 한국의 어떤 뛰어난 여성 저명인사에게 "한국의 오프라 윈프리"라고 쉬이 붙여주는 격이 될만큼이나 쉽지 않은 일이었으니 조던이란 이름 앞에 용인되는 것은 제법 많았음을 우리는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하지만 당시 마이클 조던이라는 존재는 영어권 국가를 떠나 범세계적인 관심을 받는 위치였으니 His Airness라는 그의 별칭을 붙이는 것은 별 문제가 없었을듯 보였을 것이다. 그렇게 세계는 조던에 관심을 표명했다.
 
 
Barcelona olympic 남자 농구팀 우승팀이 세레모니할때 모두 다른 기자들이 찍은 사진,
 
이 선수를 중심으로 찍은 사진이 가장 많았다. 바로 옆에 서있는 스코티 피펜과 클라이드 드렉슬러는....... 짤렸다!!! 2008 Beijing 올림픽 남자 농구 결승전이 열리기 전 Magic "Earvin" Johnson은 이렇게 말한다. "현재 중국에서의 코비의 인기는 실로 엄청난 것이지만 92년도의 조던의 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가 바로셀로나에 갔을때 모두가 우리를 Dream Team이라 불렀지만 사실 모든 기자들은 우리를 Jordan Team이라 여겼어요, 그들은 마치 우리를 조던과 나머지쯤(Jordan and the others or what)으로 여기더군요. 당시 Dream Team은 조던과 함께 있다는 dream을 현실로 만든 이들이 모여있는 팀과 같다는 느낌이었어요. 그때 우리 상대팀 선수들은 우리와 경기가 끝나면 조던에게 싸인을 요청하고, 사진을 찍자고 난리도 아니어서 나와 래리, 그리고 찰스는 너무 부끄러웠고, 미국이 그리웠어요. 미국이었다면 우리도 좀 더 좋은 대우를 받았을테니까요." [기사 찾아 번역하다가 매직존슨의 조던 찬양에 혀를 내두른 필자...., 은퇴한 조던이 다시 리그로 돌아 오라고 TV에서 무릎을 꿇었던 역대 최고의 포인트가드 1위에 뽑혔던 매직존슨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 여담이지만 Barocelona Olympic 당시의 다큐를 보면 길거리에서 드림팀 티셔츠를 입고 돌아 다니는 여성에게 가드인 존 스탁턴이 캠코더로 촬영을 하며 미국인이냐며 물으며 농구도 즐겨보냐고 묻는다. 여성은 농구를 좋아한다고 말하며 자신의 미국팀이 우승할 것이라고 외치지만 그 질문을 하는 존 스탁턴을 전혀 알아 보지 못 한다. 보다 못한 존 스탁턴의 어린 아들은 드림팀 티셔츠에 그려진 존 스탁턴을 가리키며 "이 사람이 우리 아빠에요."라고 하는데 그제서야 여성은 자신에게 드림팀을 질문했던 이 또한 드림팀의 멤버라는 것을 알게 된다.
 
 
 당시 역사를 중시하고, 그 동안 이어왔전 전통을 굉장히 아끼는- 그래서 용어의 오, 남용에 대해 냉정한 미국 사회는 마이클 조던으로 인해 크나 큰 전통을 양보하며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그 가운데서 NBA 리그는 아무런 홍보와 노력 없이 13%의 관중 증가 및 세계적인 이목집중, 더 나아가 전에 없던 인기를 얻게 된다. (모든 회사들은 당시 마이클 조던에게 광고를 부탁하려 정신없었고, 자신들이 무슨 광고를 하던 간에 에어조던이라는 이미지와 이름마저 쓸 준비가 되어 있다고들 했으니 말이다. 그는 다년간 연간 수천억달러의 기업이윤을 도모하는데 한몫하며 그 자신도 수억달러의 부자로 만들었다. 제 아무리 뛰어난 스포츠 선수라도 이전에는 도무지 상상할 수도, 존재할 수도 없을 것 같던 이익을 조던은 만들어 갔고, 그 가운데서 성공을 거두지 못한 대상은 조던의 라이벌들 뿐이었다.
(사견이지만 당시 뉴욕 거주자였던 필자는 모든 스포츠에서 MJ의 과도한 관심에 불만이 많았다. 메디슨 스퀘어 가든의 경기에서도 너무나 쉽게 조던 져지를 입은 팬들을 볼 수 있었기에 곧 필자는 뉴욕에 거주하는 불스 팬이 되어 버렸다.) 
 
 
결국, 그는 커리어가 끝난 지금까지도 Air Jordan(나이키 브랜드를 통해 만들어진 이름으로 다른 분야의 마케팅때까지 고루 사용되었음), MJ(언론매체와 대중- 이외의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그를 지칭하는 이름), His Airness(코트 내에서 플레이중 가장 자주 불렸던 이름) 세 가지의 별명 아니, 칭호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조던이 나타나기 전까지 일리노이州의 시카고는 알카포네(Al capone)와 같은 갱으로 더 알려진 도시였다. 규모만 봐서는 뉴욕과 LA 다음으로 나와야 하는 것이 맞지만 도시 자체가 2*2) 조금 어둡고, 암울한 이미지가 걷히지 않았으며 뛰어난 성적을 거두지도 못 하여 열기는 뉴욕과 LA의 그것과 도무지 비교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런 농구 변방 도시이던 시카고는 조던의 등장으로 'NBA는 시카고 불스'라는 식의 발상까지 생겨나는 기현상까지 창출해냈고, 결국 조던은 어떠한 칭호로도 별명이 가능한 인사(스포츠 스타가 아닌 유명인사)가 되었다. 조던이 뛰면 일리노이 상원의원(Barack Obama 현 미합중국 대통령)마저도 경기장을 찾아 환호했고, 대통령(Bill Clinton)도 환호했다. 그의 이름은 그리고 그의 호칭은 전세계 어디에서도 사용되었고, 그것이 곧 NBA 리그의 영향력이었다.
 
 
 (농구와 관계 없는 이야기지만 몇해 전 George W. Bush 대통령은 교황인 베네딕토 16세를 만나 교황을 부를때 써야할 존칭인 "His highness" 대신에 Mr.라는 호칭을 써서 자국언론과 국민뿐이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이라는 욕을 들어야만 했다. 무례한 부시 대통령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지만 그만큼 highness라는 칭호에는 힘이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낄 수 있는 대목 아닌가?)
  
 
에서 언급한 마이클 조던의 별명처럼 어느 순간부터 리그는 자신의 이름의 일부나 이니셜만으로 불리우는 선수들이 하나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중 단연 선두주자라 할 수 있는 선수들은 LBJ(물론, 그는 King James로 더욱 더 잘 알려져 있다.), Melo, CP3, D.Will, Sheed, A.I, D.Howard, TmacKG, J.Kidd 등이 있다. 이렇게 줄임말 이름을 호칭으로 얻은 선수들의 특징은 그 줄임말만으로도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킬 수 있는 1. 리그 최정상급 실력2. 상상을 초월하는 인기를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금 호명된 선수들의 별명에는 팬들의 공로나 아나운서들의 공로보다는 선수 개인을 스폰서해주는 NBA 4대 메이져 업체인 나이키, 조던, 아디다스, 리복과의 긴밀한 협조에 의해 만들어졌다. 제 아무리 훌륭한 실력이라도 흥행성을 포함한 인기가 없다면 이런 줄임말 이름을 가지기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이 좋다. (다만 워낙 자신의 실력이나 능력이 출중한 선수들의 경우에는 이러한 이름보다 더 예쁜 이름이 붙기도 한다.) 르브론 제임스를 제일 잘 나타내는 별명은 King James이지만 그는 워낙에 LBJ로도 알려져 있어서 그의 신발은 LBJ가 언제나 세겨져 나온다. 뭐, 오직 제임스, 그 혼자뿐이 그러한 호사를 누리겠는가? 나이키와 그 子회사인 Air Jordan은 최고의 선수 중에서도 최고의 실력과 최고의 인기를 갖춘 Melo와 CP3에게만큼은 특별히 자신의 신발과 줄임말 별명을 부여해주었다.
 
 
 그들의 주인공이었던 Michael "His Airness" Jordan이 은퇴하여 더 이상 신발을 신겨줄 수 없게된 Air Jordan社에게 당장의 특별한 변화는 필요없는 듯 보였다. 클래식 조던은 이미 십수년간 캐쥬얼과 힙합의 경계선없이 최고의 상품으로 인기를 구가해왔고, 앞으로도 이러한 인기는 지속될 듯 보였으니까... 참고로 조던시리즈중 1에서 9까지는 캐쥬얼까지 커버할 수 있는 최고의 신발이라는 극찬을 받으며 시대를 아우르는 최고의 패션 아이템 100개중에서 무려 7개나 올리는 쾌거를 거두었다.(1, 2, 3, 4, 5, 6, 9 Low)
 
 
 그러한 상황에서 그들이 굳이 Melo1.5를 필두로 Carmelo Anthony의 개인 신발과 CP3의 시그네쳐의 신발을 만들어준 이유는 무엇일까? 조던은 그의 져지넘버 23 이후에도 계속 신발을 만들어낼 것인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조던을 있게 해준 숫자인 23은 이미 조던의 상징성을 가진 숫자였기에 조던 24라는 신발은 조던을 통한 마케팅에 대해서 딜레마에 빠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Melo와 CP3는 23이라는 상징성을 가진 조던브랜드가 마케팅의 딜레마에 빠질때 즈음 나타난 영웅이었다. 그들의 실력은 이미 그들에게 이런 짧은 이름을 수여받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일만큼 타고난 것이었기에...
  그리고, 그들은 조던의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 연도수를 딴 모델(2k9, 2010)을 만들기에 이르렀는데 이 신발의 홍보를 해줄 다이나믹한 선수로 Chicago 출생의 젠틀한 남자, D.Wade를 영입하여 신겼다. 
 
 
 
  2003 드래프트에서 Cleveland Cavaliers가 King James를 잡는 것을 목표로 할때 Nike社는 그를 나이키의 대표모델로, Carmelo Anthony를 Air Jordan社의 대표모델로 삼는 것을 목표로 정하고 있었다. 르브론 제임스는 언젠가 노쇠화할 코비와 한동안 최고의 선수로 브랜드를 이끌다가 완벽히 교체 가능한 최고의 선수라 자부하고 있었으며 카멜로 앤써니는 조던의 브랜드를 새로이 변모시켜줄 선수라 믿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멜로는 당시 "최고의 슛터치와 월등한 야투 성공률, 게다가 더 좋은 하드웨어를 갖추고 있는 찰스바클리"라는 평가를 가지고 있었기에 이만한 선수를 가지기란 것도 여간 힘든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이런 선수는 몇십년에 한번 나올지 모를 선수입니다. 그의 진가는 LeBron James라는 선수에게 묻히긴 했지만 그의 포텐셜과 잠재력은 매해 드래프트에 나오는 우수한 선수들의 것과는 다소 차원이 다른 경기죠, 저는 감히 카멜로 앤써니와 비교할 선수로 찰스 바클리를 뽑고 싶습니다. 이 선수는 그만큼 가치가 있는 선수죠. - David Aldridge
 
 
 러한 이유로 역대 팀조던 선수들중 그 누구도 누려보지 못한 Air Jordan 브랜드로 본인의 시그네쳐 슈즈를 받은 첫 선수로 Carmelo Anthony가 낙점되었고, 그 신발과 앞으로 그의 마케팅時 사용될 이름으로 "Melo"가 낙점되었고, 지금까지 그 공식은 아주 잘 맞아 떨어져 나이키와 Carmelo Anthony와의 전략적 제휴는 아주 훌륭한 윈윈효과를 거두었다고 평가 받는다.
 
Oh~ Melo~
 
 
Christopher "CP3" Paul이라는 선수는 어떠한가? 그는 리그에 입문하기 한참 전부터 이미 "좀 더 완숙한 Jason Kidd" 혹은 "업그레이드된 T.J Ford"라는 평가와 함께 항상 들어왔던 것이 바로 "Hoop Genius"(농구천재, 이건 저기 일본의 빨간 원숭이건데...-_-:: 암튼~)였다.
 
 그는 스몰포워드에서 파워포워드를 커버하는 10년에 한번 나오기도 힘들다던 거물인 Carmelo Anthony의 바통을 이어 받아 Air Jordan Brand에서 자신의 신발을 선물받은 두번째 선수가 되었다. 그 신발 이름은 "CP3"가 따라 나오는데 이미 리그가 붙여준 최고의 별명이었던 것이었다. CP3라는 이름은 "최고 포인트가드"라는 또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CP3의 신발 뒤에 세겨진 61이라는 숫자는 다시금 그의 가치를 빛나게 하고 있다. (61의 의미가 궁금하신 분은 본인의 Chris Paul 칼럼을 올려 드릴테니 읽어 보시길 권장합니다.)
 
 
 왕좌 위치의 유지냐, 변혁의 시작이냐라는 기로에 서있던 에어조던 브랜드는 결과적으로 이 두 선수를 통해 도전을 예상보다도 훨씬 더 훌륭한 성공으로 거두었고, 두 선수의 별명은 자신들의 본명 이상으로 널리 퍼지며 자신의 또 다른 이름으로서 충실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렇게 브랜드와의 전략적 제휴에 성공적이었던 경우, 선수는 브랜드와 장기 계약을 하기 마련이지만 Kevin Garnett만큼은 그 예외가 되어 버렸다.)
 
 
D.Will, Sheed(Rasheed Wallace가 Nike의 모델로 적극 기용되었던 이유를 아시는가?
젊은 그는 플래그런트, 테크니컬 파울을 달고 사는 최고의 악동이었음에도 불구하고 Nike가 그를 모델로 기용했던 이유프로선수라면 도통 거친 코트에서 신고 뛰지 않을 Air Force one을 신고 뛰었기 때문이다. 오죽 고마웠으면 25주년때 Sheed Force를 25주년 팩중에서도 최고가 제품으로 만들었을까? 물론 포스하이라서 인기는 떨어졌다만...), KG(나이키의 최고로 남기를 바랬건만 그 놈의 역마살이... OTL), 그리고 J.Kidd(J.Kidd라는 이름은 Zoom Flight 95 시리즈에서 Zoom Turbine이라는 이름의 신발을 낼때까지 가장 활발했다, 중간에 Kidd는 Team Jordan의 일원으로도 활약했다. - 이거슨 과거형) 또한 대중매체의 영향이 있기 전에 나이키에 의해서 다시 태어난 이름이었다.
 
  인기나 실력으로나 Chris Paul이라는 선수가 선수로서 활약하는 동안 반드시 따라 다닐 수 밖에 없는 완벽한 라이벌, 다른 선수들처럼 폴의 작은 움직임에도 모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길목을 완벽히 차단한 후에 체인지 오브 페이스나 크리스 오버와 같은 속임수 동작에 잘 넘어가지 않는 폴의 훌륭한 라이벌, D.Will 또한 크리스폴보다 한 순위 먼저 지목받은 선수였다. 그러한 훌륭한 포인트가드를 나이키가 마케팅 대상으로 뽑지 않을리가 없지 않은가?  
 
 
 (나이키가 여타 브랜드와 다르게 계약 맺는 선수들중 가장 많이 보는 세가지는 실력, 인기 그리고 선수 개인의 내구성이다. 갑작스런 부상이 생기면 어떡하냐고? 포틀랜드에 위치한 나이키 본사에서 연구원들이 해야하는 가장 큰 일 중 하나가 자신들이 키울 선수의 부상여부와 빈도, 재활을 통한 실력 여부, 리그 적응도이다. 나이키가 이렇게 No1에 올 수 있었던 이유라는 뜻이다.- 그러한 통계를 통해서 나이키의 선수들 중에는 부상으로 자신의 포텐셜을 다 표현해내지 말고 져버린 선수가 별로 없다. - 허나 페니.... 허헝흐엉 흐엉 흙흙
 
이 모습을 다시 보고 싶었으나 그는 해변의 도시에서 웨이브 당했다.
 
 
이키와 아디다스의 전략은 다르지만 본질적인 마케팅 이름은 그 능력과 상품성을 가진 나이키 선수들의 완승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아디다스와 함께 제약을 맺은 선수중 가장 마케팅이 되는 선수는 K.G, D.Howard 그리고 Chancy이다.  (속상한 사실은 아디다스가 Tmac과 종신 계약을 맺어 Mcgrady에게 바치는 돈이 어마어마하다는 사실, 허나 그의 신발은 그저 Team signature의 판매력에도 미치지 못 한다. 그가 코트에서 뛰는 날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사실중 하나는 Adidas는 Kevin Garnett의 홍보를 할때 Nike의 이미지가 남아 있는 KG라는 이름 대신 Garnett이라는 이름을 사용한다는 것, 요건 모르셨죠지?)
 
 
에 반해서 Dwyane WadeAllen Iverson은 자신들의 스폰서들로부터 제대로 된 이름을 선물받지 못 하고, 외려 빈약한 스폰서社들이 그들의 이름을 통해 빛을 보는 자체 발광을 해야하는 운명을 얻었다.(물론 웨이드는 하차하고 더 좋은 것을 탔지만...) 다만 지금껏 너무나 큰 것들을 이루어 놓은 Allen Iverson은 경기에서 A.I라는 줄임말 이름으로 소개받는데 이 이름 덕분에 Andre Iguodala 또한 A.I라는 별명을 얻을 수가 있었다. 이 두 명의 No 3는 자신의 개인 능력을 통해 각각 The AnswerThe Flash라는 진짜배기 별명을 만들어냈다. 둘의 별명은 다음 편에.... (그리고, Detroit Pistons에서 Philly로 이적한 Iverson은 더 이상 현역도 아닐 것 같지만 아직 우리는 그 3번에 가슴설레고 있지 않은가?) 
 
 
 
선수들의 별명편 다음 편에 계속.....
 
  
Copyright James Choi. All Rights Reserved
  
  
 

각주 1 

  1. *1) taboo words and swearwords (550) - A number of words connected with the Christian religion (e.g. the names Christ, God) are considered holy by some people. These people prefer to use such words only in formal and respectful contexts, and they may be upset or shocked by their 'careleass' use. - Practical English Usage, Oxford University Press 2000 Michael Swan금기어와 속어 - 개신 종교(이하 그리스도교)와 연관된 유수의 단어, 예컨대 그리스도 이름 자체, 혹은 God과 같은 단어는 일부의 사람들로부터 신성시되어진다. 그들은 이런 개신교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단어들을 오로지 격식있고, 공손한 상황에서만 이러한 단어 사용을 선호한다. 그리고 그들은 이거한 단어의 부중의한 사용에 있어서 당혹스러워한다. - Practical English Usage, Oxford University Press 2000 Michael Swan

각주 2

*2) Batman 영화의 배경지 Gotham City는 짐짓 무정부, 치안불능, 범죄의 도시로 그려지는데 이 배경이 바로 Chicago이다. 어둡고, 암울한 범죄 도시의 이미지는 영화 베트맨의 배경인 Gotham City에 큰 영감을 주어 잭 니콜슨이 조커를 맡아 열연했던 시기부터 08년, 히스 레져가 조커 역할을 했던 The Dark knight의 배경까지 모조리 Chicago가 촬영장소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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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WR
2013-02-11 23:40:03
이미지 첨부를 위해 골라내는 작업과 다양한 수정 절차로 인해 길어져 글이 다소 어색한 부분이 존재할 수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수정이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지적해주시고, 너그러이 이해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2013-02-12 02:04:50

글을 정말 즐겁게 정독했습니다.

WR
2013-02-12 23:15:41

동일한 주제를 사랑하는 동호회에선 그 어떤 이슈도 즐거울 수 있기에 이렇게 긴 글도 호호아님께도 잠시나마 즐거울 수 있는 시간을 전했던 것 같아 쓴 입장에서도 즐겁고 또한 감사드리게 됩니다. 좋은 밤 되세요.

2013-02-12 10:57:44

이건뭐 논문급이네요 

잘읽었습니다!
WR
2013-02-12 23:14:31
감사합니다. 오래 된 글을 조금씩 손보며 쓰다 보니 어색한 부분도 적지 않습니다만 이해해주시고 좋은 평가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밤 되세요.
2013-02-12 13:09:48

오.... 직접쓰신건가요

다음 글도 기대하고있겠습니다 
WR
2013-02-12 23:16:23

네, 종종 써왔지만 최근 마니아에 동일한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긴 글인데 즐거이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좋은 밤 되세요. :)

Updated at 2013-02-12 21:55:55
재밌는글 잘 읽었습니다.

나이키가 조던1을 신게하고 문 벌금이 경기당 1000달러 라는 곳도 있고

5000달러 라고 하는 곳도 있는데 글쓰신 분께서는 정확히 아시나요???
WR
Updated at 2013-02-12 23:39:41
잘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조던 1은 정확히 말하자면 백색의 신발(white shoes)가 아닌 그 어떤 신발 착용도 허락되지 않았던 리그의 dress code 위반으로 리그에서는 당시 복수의 색상이 들어간 air jordan을 신고 경기에 임했던 조던에게 매 경기 5,000달러의 벌금을 물렸습니다. (관련 자료를 재확인했습니다. 확실히 5,000달러가 맞습니다.) 나이키가 마이클 조던에게 조던 1을 착용시켰던 1985년 당시 5000달러가 실로 거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지속적으로 신발을 신겼던 이유는 '마케팅 차원'에서였습니다. 리그의 융통성이 없는 딱딱한 rule을 파괴하면서까지 혁신적인 색상과 디자인을 한 신발을 신김으로써 나이키는 소비자와 농구팬들에게 하나의 이미지를 각인시켰습니다. '에어조던을 신는다는 것은 단순히 화려한 색상을 신발을 신는 것이 아니라 불공평한 세상의 속박과 룰 속에서 자신만은 색상을 갖추는 개성과 용감함을 갖춘다는 것'이라는 이미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나이키는 이런 벌금을 적극적인 홍보 도구로 활용함으로써 비단 농구화 시장뿐만이 아니라 스포츠 용품 시장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 넣기 시작했습니다. 후에 작성할 농구화 관련 이야기에도 다시 언급하겠지만 나이키는 100여년의 전통을 가지고 있던 메이저 스포츠 용품 업체인 Converse, Adidas, Reebok보다 약 70여년이 족히 뒤쳐진 70여년 대에 시작한 후발 업체였습니다.
 
일본의 육상 신발 제작업체였던 오니츠카 타이가 상사로부터 육상화를 수입해서 판매하던 것으로 수익을 냈던 창업자였던 필 나이트가 오레곤 주립대의 육상 선수 출신이었던 탓에 처음에는 육상화에 적극적인 판매를 했지만 그는 너무나도 도전적이어서 후에 오니츠카 타이가 상사에 다양한 신발 제작을 요구하였다가 전통적으로 - 혁신에 둔감한 전형적인 오니츠카 상사와 결별을 하며 독립기업이었던 블루 리본 스포츠로 재탄생하였는데 이 시점이 70년대였습니다. 실험 정신이 강했던 필립 나이트와 그의 육상부 코치였던 빌 바워만은 이것, 저것 실험을 하며 바닥의 미끄럼을 막기 위해서 신발 깔창을 와플 기계에서 찍어 보기도 하는등 - 당시에는 그야말로 미쳤다(insane)는 소리를 듣기에 좋은 행위도 서슴치 않았습니다. 물론 그러한 도전으로 후에 나이키는 와플 레이서라는 패션용 캐쥬얼화로서도 인기가 좋은 4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신발을 만들 수 있었지요.
 
이 혁신적인 두 사람은 마이클 조던에게 투자하는 모든 것을 마케팅이라 생각하였는데 이는 스포츠 브랜드가 마케팅으로 홍보를 하지 않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더욱 독보적인 효과를 낼 수 있었습니다. 컨버스는 척 테일러 신발이 1930년대부터 농구화의 시작이었다는 점을 들어 혁신적인 모델 생산에 다소 소극적이며 80년대까지 동일한 모델을 제공하다 후반에 웨폰이라는 신발을 제공하여 처음으로 리그의 최고 선수들에게 신기는 변모를 꾀했는데 이것이 파격적이긴 했지만 이미 이러한 광고 효과는 에어조던이 견제 불가능한 괴물로 성장하는 가운데서 이뤄진 것으로 조던 브랜드를 막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아디다스와 리복은 본디 독일과 영국 브랜드로 미국의 진취적이고, 무모할 정도로 도전적인 방식과 달리 유럽의 전통적인 조심스러운 투자 방식으로 마케팅에 다소 소극적이었는데 결과적으로 보자면 스포츠 용품 시장의 파이가 커가는 가운데서 나이키가 제 1의 브랜드로 넘어가는 모멘텀을 넘겨준 꼴이 되었습니다. 결국 리복은 아디다스에게, 컨버스는 나이키에게 인수되었으니 말이죠.
 
참!! 빌 바워만과 필 나이트의 도전 정신을 그다지 반기지 않았던 오니츠카 타이가 상사는 현재 ASICS라는 브랜드 명을 가지고 육상화와 배구화, 그리고 몇몇 농구화 모델을 제작하는 업체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
2013-02-14 00:37:04

짧은 질문에도 좋은 답변 감사드립니다

2013-02-13 00:07:00
좋은글 잘 봤습니다.
2편도 부탁드려요.
WR
2013-02-13 09:41:46
즐거이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 자주 뵙겠습니다.
2013-02-13 12:18:59

멜로1.5, 5.5, M4, 조던올림피아 오랜만에 보네요^^

Updated at 2013-02-14 05:13:18

재미있는 글 잘 봤습니다. 언제 만나러 오실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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