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4 vs. 1,2,3 vs. 1,2,4 vs. 1,3,5
2000년대 이후의 농구판은 전통적인 의미의 센터의 공급이 원활하지 못한 상태에서 조금 더 낮고, 조금 더 빠른 템포로 진행되어 왔습니다.
4번 두명이 뛰거나, 3,4번이 4,5번의 역할을 수행하며 코트를 넓게 쓰는 형태가 2000년대 중반부터 유행하기 시작했죠.
물론 그 시발점은 피닉스 선즈의 seven seconds or less regime 입니다.
아마레 스타더마이어를 빅맨으로 박아 놓고 내쉬의 게임 운영에 모든 것을 맡기며 코트를 가장 넓게 쓰는 선즈의 이 농구 방식은
2000년대 중반 '스몰볼' 을 전국적으로 유행시켰습니다.
그리고 이런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킨 선즈가 결코 넘지 못한 팀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샌안토니오 스퍼스죠.
스퍼스는 다른 의미에서 '우승이 가능한' 패러다임을 하나 만들어 냅니다.
전통적인 의미의 포인트가드 롤을 파괴시키며 등장한 토니 파커,
전통적인 의미의 슈팅가드 (미드레인지를 장악하는 마이클 조던으로 대표되는..) 의 의미를 파괴시킨 마누 지노빌리,
그리고 4번인지 5번인지 그 구분이 아무런 의미가 없게 만들어 버린, 팀 던컨.
여기세 감초같은 롤 플레이어들이 더해지면서 리그에서 가장 복잡한 공격 옵션을 가능케 하는 시스템이 탄생합니다.
스퍼스는 느리고 단단한 팀이었습니다. (아 물론 지금도 그럽니다)
때로는 빅볼을, 때로는 스몰볼을 자유 자재로 구사하는 팀이었지만 이 팀을 이해하는 코드는 그런 전통적인 포지션 분할 차원에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가장 효율적으로 득점하며 가장 적극적으로 실점을 최소화하는 시스템을 가능케 하는 세 선수의 존재를 먼저 인식해야 하는 것이지요.
자, 레이커스에 대한 이야기를 깜빡했습니다.
그런데 레이커스는 필 잭슨과 트라이앵글 오펜스라는 90년대의 유산을 리그 최강의 센터와 슈팅 가드의 조합으로 부활시킨 팀입니다.
논의에서 제외하도록 하죠.
존중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2000년대와 2010년대 농구를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니까요.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아래와 같습니다.
마이애미 히트.
오클라호마 시티 썬더.
샌안토니오 스퍼스.
시카고 불스.
그리고 이 모든 팀들의 레퍼런스로 자주 등장하게 될 보스턴 셀틱스.
2011-12 시즌을 장악하고 있는 팀들의 레퍼런스 (롤 모델? 조상?) 팀들은 딱 둘입니다. 셀틱스와 스퍼스.
불스는 셀틱스를 기반으로 시작하고 있고요, 썬더는 스퍼스의 양아들이죠.
히트는 과거 라일리 시절의 닉스를 셀틱스 버젼으로 부활시킨 팀이라고 이해하고 싶습니다.
이 모든 팀들의 공통점은 두가지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수비.
그리고 특정 포지션에 대한 의존도.
히트를 먼저 볼까요.
왜냐하면 가장 '핫' 한 팀이고, 또 가장 흥미로운 팀이니까요.
히트는 포인트 가드와 센터 포지션이 매우 취약합니다.
찰머스와 조엘 앤써니가 다른 팀으로 가면 주전으로 뛸 수 있을거라 생각하세요?
노리스 콜은 어떤가요.
2,3,4 번 포지션이 극강인 팀이고, 흔히 말하는 포워드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르브론이 게임 운영을 책임지고 웨이드가 페인트존에서 사투를 벌이며 보쉬는 퍼리미터 미드레인지샷을 점령합니다.
흥미로운 구조이지요.
이 친구들은 전통적인 의미의 포워드가 아닙니다.
르브론은 코트위의 모든 곳에서 슛을 성공시킬 수 있고 모든 포지션의 선수를 막을 수 있습니다.
웨이드는 가드처럼 빠르지만 포워드처럼 단단하고 가끔 센터처럼 블락합니다.
보쉬는 상대방 4번을 밖으로 끌어내어 페인트존에서 스페이싱을 가능케 합니다.
1번과 5번이 없는데도 리그 최강팀으로 군림한다라.
농구를 오래 본 사람일수록 흥미로울 수 밖에 없을 겁니다.
썬더는 극단적으로 퍼리미터 점프슛을 추구하는 팀입니다.
이바카와 퍼킨스는 수비와 허슬에 특화되어 있는 선수들이고, 그들의 득점력은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없는 수준입니다.
웨스트브룩은 토니 파커가 없었다면 탄생할 수 없었을 타입의 선수이고,
수퍼소닉스에 드래프트되지 않았다면 꽤 괜찮은 식스맨정도에서 머물수도 있었을 선수입니다.
그리고 웨스트브룩의 막을 수 없는 돌파가 있기 때문에, 이 극단적인 퍼리미터 게임을 추구하는 팀이 페인트존에서의 경쟁력도 함께 가져갈 수 있게 됩니다.
이것도 파커의 유산이죠.
그리고 웨스트브룩은 3점까지 갖춤으로써 이 프로토타입을 한단계 더 업그레이드시키게 됩니다.
(원조격인 파커가 전성기 시즌을 보내고 있다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질 수 없다는 건가요.)
썬더는 스퍼스와 매우 흡사하죠.
제임스 하든은 마누 지노빌리와 판박이입니다.
던컨이 공수에서 했던 역할은 이바카-퍼킨스와 듀란트가 나누어서 합니다.
이 팀은 알면서도 막지 못하는 공격 옵션을 둘이나 가지고 있고,
이 둘을 보좌하면 서브 옵션도 너무 강력한 선수를 보유하고 있죠.
1,2,3번에서 극단적인 공격력을, 4,5번에서 안정적인 수비력을 가진 팀입니다.
스퍼스는 할말이 정말 많은데요.
왜냐하면 현재 NBA 의 모든 트렌드는 이 팀으로부터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셀틱스도 있습니다만,
대니 에인지가 스퍼스 모델을 참고하지 않았다고... 확언할 수 있을까요?
3점과 에이 패스가 없는, 하지만 필드골 성공률 50% 를 상회하며 페인트존 득점이 평균보다 훨씬 높은 이상한 타입의 1번, 토니 파커.
미드 레인지 점퍼가 전혀 없지만 웨이드를 비롯한 많은 선수들의 가장 발전된 형태의 드라이브인 동작의 시초를 만들어 냈으며 풀업 점퍼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블락을 거의 당하지 않는 정확한 3점슛을 보유한, 정말 신기한 타입의 마누 지노빌리.
그리고 감독이 원하는 모든 것을 하는, 하일라잇 필름 분쇄기 팀 던컨.
결과적으로 놓고 보면 스퍼스는 코트 위의 모든 곳에서 득점을 가장 효율적으로 하는 팀이며,
리그에서 트랜지션 디펜스가 가장 좋은 팀임과 동시에,
점프슛에 대한 컨테스트가 가장 좋은 팀입니다.
전통적인 의미에서 1,2,4번에 대한 의존도가 크다고 할 수 있지만,
사실 이러한 분석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든 팀이기도 하지요.
마지막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불스입니다.
이 팀은 셀틱스의 수비 시스템을 만든 티보도가 만든 팀입니다.
리그에서 가장 수비를 잘하고요.
수비에서 모멘텀을 찾는 팀이죠.
위의 세팀 모두 수비가 아주 좋은 팀이지만, 수비에서 게임 흐름을 바꾼다고는 할 수 없는 팀들입니다.
하지만 불스는 수비만으로 게임을 지배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리그에 존재하는 거의 유일한 팀이고,
그래서 더더욱 포지션에 의한 분석을 애매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더더욱 데릭 로즈라는 수퍼 에이스의 존재가 부각될 수 밖에 없는 것이죠.
수비에서 모멘텀을 만들어 낸 뒤 그 흐름을 득점으로 연결시키는 역할은, 알면서도 못막는 돌파를 가진 로즈가 수행합니다.
로즈가 공격에서 첨병 노릇을 한다면 수비에서는 뎅과 노아가 있습니다.
노아의 역할은 요즘 깁슨과 아식으로 많이 대체가 됩니다만, 노아가 팀에 주는 에너지와 허슬은 대체 불가하다고도 할 수 있겠지요.
뎅은 리그에서 손꼽히는 락다운 디펜더이자 동 포지션 대비 가장 뛰어난 리바운더, 그리고 솔리드한 퍼리미터 슈터의 역할까지 담당합니다.
1,3,5 번에서 모멘텀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이 팀을 1,3,5 라고 불러도 크게 무리는 아니겠지요.
그리고 보스턴이 있습니다.
스퍼스가 2000년대 초중반 시스템을 완성하고 다른 팀들에게 패러다임의 시초를 알렸다면,
이를 적극적으로 완성시킨 팀이 바로 셀틱스라고 생각합니ㅏㄷ.
오늘 히트와의 홈경기 혹시 보셨나요?
닥 리버스는 경기 내내 아주 극단적인 작전을 펼쳤죠.
마치 풋볼에서 쿼터백과 네명의 와이드 리시버, 혹은 타이트 엔드의 호흡을 보는 것과 같은,
탑에 론도 하나 딱 밖아 놓고 나머지 네명은 전원 위크 사이드로 내려가 스크린 앤 롤로 스페이싱을 만들어 냅니다.
이건 전적으로 론도의 패싱 능력에 의존했기 때문에 가능한 작전이었는데요,
론도라는 패서가 아주 작은 공간만 만들어져도 바로 패스를 할 수 있게끔만 선수들이 움직이는 것이었습니다.
론도.
저는 현재 농구판에서 가장 이질적인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아주 전통적인 의미의 포인트가드이고요,
아마 리그에서 스티브 내쉬, 크리스 폴과 함께 순간적으로 전체적인 그림을 읽는 능력은 가장 뛰어날 겁니다.
"read the court" 라고 하죠. 볼을 잡고 하프 코트를 넘어 오기도 전에 이미 전체적인 그림을 다 그려 놓습니다.
그리고 아주 정확하게 패스하죠.
자유투가 부정확해도, 3점슛이 없어도 상관없는 이유입니다.
자신이 그것을 메이드하지 못해도 동료들로 하여금 더 효율적인 공격을 가능케 하면 그것으로 된 것이니까요.
그리고 론도는 이 능력 - 동료들을 스탭업시켜주는 힘 - 에 있어서 리그에서 가장 뛰어난 선수입니다.
론도는 이제 "론도 버리기" 작전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질 정도의 수준이 되었습니다.
자신의 게임 운영 하나만으로 게임을 지배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달까요.
그래서 전 현재의 보스턴은 "빅3" 가 뭉칠 당시의 보스턴과 완전히 다른 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일종의 진화로 보고 싶은데요,
만약 리버스와 베테랑들이 과거의 영광에 집착해 2008년 당시의 게임 플랜을 고수했다면 지금 셀틱스는 리빌딩하고 있어야 할겁니다.
하지만 셀틱스는 예의 그 강력한 수비 시스템 위에
"빅3 + 론도" 가 아닌 "론도 + 네명의 베테랑 롤플레이어" 라는 시스템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가넷의 회춘이 저는 여기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생각하구요,
가넷에게 적절한 스페이싱과 론도의 꿀맛 패스가 계속 공급되는 이상, 그는 계속 좋은 스탯을 찍어줄 겁니다.
피어스도 마찬가지고요,
레이 앨런도 마찬가지의 롤 체인지를 경험하게 될 겁니다.
이쯤되니 제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저도 잘 모르겠네요.
결론은 이겁니다.
트렌드를 한번 보자는 겁니다.
이제 포지션에 의한 분석은 거의 무의미해졌습니다.
포인트가드와 센터로부터 시작한 "탈포지션화" 는 포워드 포지션으로까지 전이되고 있습니다.
포인트가드는 더이상 패스에만 신경쓰지 않아도 됩니다. (역설적으로 론도와 셀틱스를 주목해서 봐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골밑에는 더이상 7풋의 거인이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슈팅 가드는 3점을 던지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포인트가드가 포스트업을 해도 되고, 아니 하면 더 좋습니다.
파워 포워드가 3점슛을 던져도 됩니다.
포인트가드를 센터가 막아도 막기만 하면 됩니다. (이 스위치 전술은 덴버로부터 발전되었습니다.)
각 포지션이 무엇을 해야 한다, 이런 개념이 사라진 겁니다.
중요한 건 상대팀보다 더 많은 득점을 넣고, 상대팀에게 허용하는 점수를 최소화시키자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코트 위 모든 곳에서 슛을 성공시킬 수 있어야 하고,
코트 위 모든 곳에서 상대팀의 슛을 컨테스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의 기초는 샌안토니오 스퍼스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로즈, 웨스트브룩은 모두 파커라는 동일한 '조상' 으로부터 출발하는 유형의 선수들입니다.
어쩌면 론도 역시 패스라는 주무기 위에 페인트존 공략으로 다득점 경기를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 파커를 참고했다고도 볼 수 있겠죠.
웨이드의 드라이브인 스탭은 전적으로 지노빌리의 그것을 발전시킨 겁니다.
이건 하든에게서도 공통적으로 발견될 수 있고,
흥미롭게도 불스가 공격에서 상대적으로 고전하는 이유도 지노빌리 타입의 수비를 찢는 선수를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겠죠.
던컨이요? 말도 마세요.
모든 팀이 던컨을 흉내내고 싶어합니다.
그렇게 못할 뿐이죠.
히트, 불스, 썬더, 스퍼스.
양 컨퍼런스의 1,2위 팀들입니다.
그리고 이 리그 최강팀들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뛰어난 수비 시스템 (뭐 이건 모든 강팀들의 공통점이군요;)
그리고 탈 포지션화.
수퍼스타가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요?
히트를 제외하면 "만들어진 팀" 은 없습니다.
전부 "길러진 팀", 혹은 "성장한 팀" 입니다.
그래서 더 의미가 크다고 생각하고요.
파커와 지노빌리는 로터리픽 출신이 아닙니다.
깁슨과 아식, 부저도 마찬가지고요. (아, 부저... )
여기서 한발자국 더 나아갈 수 있을까요?
예를 들어 5년뒤 리그 최강팀이 어떻게 될지 맞춰 보는 겁니다.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유타 재즈, 혹은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그 누가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최소한 우리는 현재의 트렌드를 목격하고 있고,
이 트렌드가 단기간내에 변하지 않는다면, 어떤 팀이 "성장" 할지 정도는 예상할 수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