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드리지는 샌안토니오로!
잠시 시간을 돌려 2003년 여름으로 돌아가 보자. 당시 샌안토니오 스퍼스는 4연패에 도전하던 LA 레이커스의 우승을 저지하고 두 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팀의 주축 팀 던컨은 2001-02 시즌과 2002-03 시즌에 연속으로 리그 MVP를 차지한 27세의 선수였고, 샌안토니오는 토니 파커와 마누 지노빌리라는 미래에 코어가 될 만한 조각들을 가지고 있었다. 거기에 2003년 당시 스퍼스는 던컨, 지노빌리, 파커, 보엔, 말릭 로즈, 케빈 윌리스 이렇게 단 6명 이외에는 다른 모든 선수의 계약이 만료되는 이상적인 샐러리 구조를 가진 상태였기 때문에 FA 선수들에게 최대 연봉을 줄 수 있었다.
스퍼스는 비어있는 샐러리캡을 이용해 당시 FA로 풀린 제이슨 키드에게 맥시멈 오퍼를 던졌다. 이전 시즌 던컨에 이어서 MVP 투표에서 2등을 한 선수가 바로 키드였던 만큼 키드가 스퍼스에 왔다면 샌안토니오는 이전 시즌 우승 팀인 동시에 미래가 가장 밝은 팀으로 왕조를 구축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키드는 샌안토니오행을 거절했고 그 이유는 돈도 아니고 스퍼스의 미래가 불투명해서도 아닌, 당시 와이프 주마야 키드가 샌안토니오가 시골이라는 이유로 반대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스퍼스는 두 번째 타깃이었던 저메인 오닐 영입마저 실패하고 거대한 샐러리캡을 라쇼 네스테로비치(오닐을 막는 것 이외엔 별로 쓸모가 없었던...)와 히도 터클루(04 플옵에서 포크레인으로 삽질), 론 머서(39경기 뛰고 방출...) 등을 영입하는데 그쳤다.
대표적인 예로 2003년 오프시즌을 들었지만 샌안토니오는 지금까지 대형 FA들에게 전혀 매력적인 선택지가 아니었다. 샌안토니오와 같은 시골에서는 전국적인 인기와 그에 따른 광고를 얻어내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퍼스도 2003년 이후 어차피 오지도 않을 FA를 노리는 대신 알짜배기 선수들과 해외 유망주들을 노리는 방식으로 팀 운영을 해 왔다.
그런데 이번 오프시즌에 마침내 샌안토니오 역사상 가장 높은 레벨의 선수를 자유계약 시장에서 차지했다. 샌안토니오는 라마커스 알드리지와 4년 80M(마지막 해는 플레이어 옵션) 계약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스퍼스는 어떻게 알드리지를 잡을 수 있었을까? 알드리지는 원 소속팀인 포틀랜드의 전력에 한계를 느끼고 다른 팀으로 옮길 것을 결정했다. 하지만 챔피언십에 도전할 만한 팀들 가운데 맥시멈을 던질 수 있는 샐러리캡을 가지고 있는 팀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보통 샐러리캡이 비어있는 팀들은 당장의 성적을 장담할 수 없고, 가지고 있는 코어들도 몇 년이 지나야 전성기에 접어들만한 유망주들로 구성되어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스퍼스는 현재와 미래를 모두 가지고 있는 점이라는 게 가장 컸을 것이다. 던컨, 파커가 있는 현재에도 우승에 도전할 수 있음은 물론이고 이제 겨우 24세의 카와이 레너드와 함께 한다면 언제든 대권에 도전할 수 있는 팀이기에 스퍼스는 알드리지와 계약할 수 있었다.(1. 닉스와 레이커스가 뛰어든 FA 경쟁에서 샌안토니오가 승리하는 날이 올 줄이야! 2. 우리는 알드리지를 통해 이것을 알 수 있었다. FA를 앞둔 선수가 시즌 중 인터뷰에서 원 소속 팀에 남을 것이라고 말하는 인터뷰는 아무 의미가 없음을.)
스퍼스는 알드리지 영입을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해야만 했다. 알드리지를 영입할 캡 스페이스를 확보하기 위해 티아고 스플리터를 애틀랜타로 트레이드했고, 벨리넬리, 베인즈, 조셉(QO 포기)과의 계약을 포기했으며 샐러리를 쥐어짜기 위해 1라운드 픽 마저 유럽 알박기용 선수를 뽑는데 사용했다.
다행히 원래 맥시멈을 받을 선수였던 레너드는 알드리지 계약을 위해서 그 시점을 최대한 미루어 주었고 그린은 4년 45M의 초염가 계약(그린 정도의 플레이어가 연평균 10M 이상을 받는 게 오버페이라고 생각한다면 다른 계약을 살펴보길 권한다. 아킬레스건을 다친 메튜스가 4년 47M, 캐롤이 4년 60M, 레지 잭슨이 5년 80M을 받는게 지금의 FA 시장이다.) 을 맺어주었다. 던컨은 다음 시즌에도 뛸 것을 발표해 6M 정도의 연봉을 받을 것으로 보이고 지노빌리 또한 은퇴를 고려하고 있지만 돌아올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확정된 다음 시즌 로스터는 다음과 같다.
포인트가드 : 파커, 밀스
스윙맨 : 그린, 레너드, 앤더슨
빅맨 : 알드리지, 디아우, 던컨
여기에 다음 시즌에 뛸 가능성을 언급한 보너와 지노빌리를 포함시키면 10인의 로스터가 완성되지만 던컨의 림 프로텍팅 역할을 맡아줄 백업 빅맨과 파커의 백업 가드, 그린의 백업으로 나올 슈터 정도가 더 필요한 상황이다. 문제는 더 이상 샐러리가 남지 않아서 트레이드가 아니라면 베테랑 미니멈의 연봉밖에 제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마레 스타더마이어, 데이빗 웨스트, 캐론 버틀러, 케빈 세라핀 등등의 선수들에게 관심을 보이고는 있지만 많은 돈을 제시할 수 없기에 원하는 선수를 충분히 영입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브루클린의 알렌 앤더슨을 잡았으면 하지만 역시 돈 문제 때문에 쉽지는 않아 보인다.
지난 2년간, 특히 우승 시즌에 리그 최고의 생산성을 보여준 벤치이기에 로스터의 뎁쓰가 약해지는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나에게 스플리터, 벨리넬리, 조셉, 베인즈, 코리 조셉과 알드리지를 선택하라면 난 무조건 알드리지를 선택할 것이다. 이번 플레이오프에서 부진하긴 했지만 알드리지는 불과 1년전 플레이오프에서 아식과 하워드를 상대로 46점을 퍼붓던 선수였다. 던컨과 로빈슨조차 플레이오프에서 46점 이상을 기록한 적은 단 한번도 없다.
https://www.youtube.com/watch?v=dtsf8S154Cw
던컨의 빅맨 파트너를 찾는 일은 로빈슨 이후로 샌안토니오에서 꾸준히 골머리를 앓아왔던 부분이었다. 던컨 데뷔 이후에 던컨과 함께 뛴 모든 빅맨(제독 제외)중 플레이오프 평균 득점 10점 이상을 기록한 시즌 횟수의 총합은 단 2회이다. (02 말릭 로즈, 15 디아우) 전성기의 던컨은 모하메드, 오베르토 정도의 빅맨을 데리고도 우승시킬 수 있는 괴물이었지만 이젠 그도 농구 선수로써 팔순을 넘긴 나이라 훌륭한 빅맨을 동반하지 않고서는 챔피언십까지 이끌 수는 없다. 알드리지의 통산 플레이오프 평균 득점은 무려 22.1점이다. 물론 야투율이 빅맨 치고는 아까운 것은 사실이지만, 포틀랜드와 샌안토니오는 근본적으로 공격 전술이 다르기에 같은 야투율을 유지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알드리지는 전통적인 빅맨과는 전혀 다르게 미드레인지 샷의 비중이 엄청나게 높은 선수이다. 작년 시즌 무려 55.7%의 슛을 미드레인지에서 시도하였는데 리그에서 빅맨으로 이렇게 미드레인지 점퍼의 비중이 높은 선수는 노비츠키 이외에는 없다.
여러모로 노비츠키와는 상당히 닮은 선수이고, 샌안토니오는 오펜스 전술 자체를 전면 수정해야 할 것이며 내가 볼 때 알드리지는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는 선수이다. 기존의 스퍼스 전술에서도 알드리지가 찾아갈 곳은 이미 존재하는데 그것은 2년 전만 해도 던컨이 자주 시도했던 픽앤팝 형태의 빅맨 역할을 맡는 것이다. 알드리지는 이미 릴라드와의 픽앤팝을 수년간 시도해 왔기 때문에 파커와의 픽앤팝 호흡도 그다지 나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알드리지 영입의 또 다른 낙수 효과는 알드리지가 미드레인지를 던져주는 역할을 함으로써 던컨이 본래 정말 잘 하는 것 - 블루 칼라 워커로써의 빅맨 역할 - 을 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애초에 알드리지는 인터뷰를 통해서 센터로 뛰는 것을 매우 싫어함을 밝힌 바 있었다. 따라서 알드리지의 영입은 던컨과 알드리지 모두에게 윈-윈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포포비치가 항상 말하듯, NBA에서 우승을 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것은 좋은 로스터를 꾸리는 것만으로는 불가능하며, 어느 정도의 운도 필요하다. (부상자가 거의 없었던 골든 스테이트가 이번 플레이오프에서 마주친 팀의 선수들 중 콘리, 토니 앨런, 베벌리, 몬티유나스, 러브, 어빙은 부상으로 아예 나오지 못하거나 제 컨디션이 아니었다는 걸 기억하자.) 알드리지를 영입했지만 스퍼스가 우승으로 가기 위해선 아직도 먼 길이 남아있다. 하지만 운이 따르기 전에 훌륭한 로스터 없이는 절대로 우승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구단 역사상 FA 최대어를 잡은 이번 오프시즌은 구단 역사상 1997년, 1987년에 이은 세 번째로 훌륭한 오프시즌이 될 것이다.
어머니, 여기는 여전히 전쟁터입니다.
좋은 글 잘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