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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기록 (5) -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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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6-12-18 07:43:08
 
 안녕...
 음... 이제 뭐라고 불러야 되나, 첫사랑이라고 해야 될까?
 그럼 다시 한 번 할게.

 안녕, 내 첫사랑.

 우리가 알아온 13년 동안 너는 나에게 참 많은 편지를 줬어. 말은 못했지만 크고 작은 애정부터 서운한 감정, 그리고 영원한 사랑의 약속과 진심이 담긴 그 편지들을 잊지 못할거야.
 날 조르며 손으로 쓴 편지를 받고 싶다는 네게, 악필인 내가 줄 수 있는 편지는 너무 초라했지. 훈련소 이후로 누군가에게 손편지를 써본 적이 없었으니까. 미리 글을 타이핑하고, 한자 한자 최대한 바르게 눌러써서 네게 무뚝뚝하게 내민 조잡한 손편지. 그 한 장에 감동받던 너와 함께할 수 있어서 행복했어.
 첫사랑... 넌 내 인생에서 첫 여자친구도 아니고, 처음 짝사랑한 사람도 아니야. 그렇지만 같이 사랑을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해준 첫 사랑이자, 아직은 유일한 사람이야. 모르겠다. 그냥 이 말을 먼저 하고 싶었어.
 새로운 남자친구와 함께있는 네 모습이 행복해 보여. 원래 SNS가 다 그런 곳이지만 그 사람이 널 챙겨주는걸 보며, 부럽고 원망스럽기도 하지만 다행이란 마음도 들어. 내 마지막 말 기억나?
 ‘나 너무 힘들어서 그러는데 먼저 일어날게. 음... 나보다... 좋은 남자 만나길 바래.’

 등 뒤로 들려오던 네 구두소리가 아직도 날 괴롭히긴 하지만, 난 괜찮아 지려고 노력하고 있어. 넌 우리가 사귀는 도중에도 나와의 이별을 생각하고 준비했지만, 나는 4개월이 지난 이제야, 너와의 이별을 힘들지만 조금씩 받아들이려해.
 처음에는 무시하고, 다음은 망가지고, 그리고는 그리워하다가, 이제 이별이 실감돼. 또 우리가 지독하게 사랑했다는 내 착각도... 다시는 순수한 사랑을 믿지 못할까봐 겁나긴 하지만, 어쩌겠어. 지금도 가슴이 찢어지게 아프지만 이건 나의 문제야.

 우리의 시작은 어린 나이, 순수했던 사랑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종종 현실에 무너지고 점점 달라져갔어. 사실 그러면서도, 심지어 우리가 이 전에 헤어졌을 때도 네가 아닌 사람과의 사랑과 결혼은 상상할 수도 없었어.
 마지막 연애는 힘든 시간을 보내는 네가 날 찾아왔지. 그리곤 내가 상대적으로 부족해지니 넌 날 떠났어. 물론 내가 무능력하고 미래의 준비가 없는 한심한 놈인게 크게 작용했겠지.
 내 탓이고 넌 아름다운 사람이야. 내가 나아지면 우리는 다시 아름다운 사랑을 할 수 있다고 순진하게 믿고 싶었어.
 그런데 이번에 사귀는 동안 처음에도 있었고, 마지막이 가까워지며 더 심해지던 네 이야기들이 귓가를 지금도 맴돌아. 가족, 회사는 모르길 바라는 내 존재 같은 이야기들 말야. 뭐... ‘난 그렇게 못살아.’ 같이 직접적인 이야기도 떠오르지만, 그런 불평과 불만 이야기는 다 괜찮았어.
 그런데 헤어지기 한달전쯤 ‘자기 성격은 참 매력이 있어.’ 라는 말, 그건 헤어지는 날까지 널 잡지 못하게 계속 날 무너트렸어. 그리고 지금, 널 내게서 분리시킬 확신을 갖게 해줘.

 진심으로 좋은 남자 만나길 바라고 있어. 너에게 좋은 환경을 제공해줄 수 있는 남자여도 좋고, 거기에 널 진심으로 사랑해주는 사람이면 더 좋아.
 솔직하고 아름답고 순수했던 네가 내게 걸었던, 로미오가 될 수 없는 저주처럼, 내 사랑은 실패했지만 순수하고 정직했으니까. 지금도, 아니면 언젠가 알게 될거야. 너와 내가 ‘우리’가 아니게 되면서 쏟아져버려, 다시는 주워 담을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사실 네가 평생 몰라도 괜찮아.

 난 여전히 아프고, 슬프고, 함께였던 우리를 그리워하지만, 이제 그건 지금의 네가 매꿀 수 있는건 아닐거야.

 등 뒤로 들려오던 네 구두소리가 아직도 날 괴롭히긴 하지만, 난 괜찮아 지려고 노력하고 있어. 그건 내 부족들 때문에 쏟아져도 받아들여야 하는... 온전히 내 자신의 문제야. 세상에 완벽하게 아름다운 이야기는 없어. 미천한 내가, 지금 누리는 작은 행복과 편의도 누군가의 노력과 고통, 숭고한 희생이나 배려 혹은 추악한 욕심 위에서 이루어지고 있지.
 우리 사귀던 날들 보다, 조금 더 부지런하게 조금 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위해 살아가고 있어. 그 시작은 너 때문이지만 앞으로도 너 때문은 아니야. 다른 방법, 다른 방향으로 내가 바뀔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고마워하고 있어.

 이 헤어짐을 받아들이는 것은 너무 고통스러워. 그래도 쏟아진 게 무엇인지 알고 있으니까 난 다시 채울 수 있을거라 믿어. 시간이 좀 걸려도 난 더 좋아질거야.
 능력있고, 솔직하고, 당당하고, 매력있는 너니까 사실 걱정은 안 해. 다만 나이가 먹어도 여전히 많은 눈물과 스스로 만족할 때까지 자신을 몰아치는 것이 계속 널 힘들게 할 것 같아. 현명하고 멋진 여자가 되길 바래. 너는 내 줄리엣이 아니고, 나도 네 로미오가 되진 못했지만, 서로의 어린왕자로 남았으면 해.

 그럼 안녕, 내 첫사랑.

 

 음... 우선... 고백을 하려고 합니다.
 저번 글을 올리고 추천해주신 시, 음악들과 한 분이 보내주신 쪽지를 읽고, 저도 편지를 써본다고 생각하니까. 펑펑까지는 아니더라도 엉엉 울었습니다. 헤어지고 나서 처음으로 소리내 울어본 것 같습니다. 울고나니까 마음도 한결 편해지고... 다 큰 남자놈이 엉엉 운 이야기 하려니까 여간 쑥스러운게 아니네요.
 하여튼 감사드린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오늘 편지글은 초고의 사적인 내용들이나 디테일한 부분은 아주 조금 삭제했습니다.
 글쓰기가 좋은 심리 치료이자, 정신건강을 위한 취미가 되고 있는것 같습니다. 대충 머릿 속에 떠오르는 생각들로 정리가 많이 이루어졌지만 완결성을 갖는 글쓰기로 마무리 해야하고, 이제 나아가 솔직한 제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는게 목표 입니다.

 마지막 어린왕자 이야기는 매니아 창에서 퇴고하면서 감정에 젖어 넣었는데 지금 보니까 오글거리고 과한거 아닌가 싶네요. 그래도 그런 생각이 있었어서 결국 적은거니까 그냥 두겠습니다.

 너무 감성적이고 우울한 글만 쓰긴 하지만... 전 나름 개그욕심도 있고, 실없고 멍청합니다. 이별기록 글에 마이너스가 될 수 있지만, 중간 중간 환기할 수 있는 다른 글감을 찾아서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미리 질러놔야 빼도 박도 못해서 그냥 혼자 다짐하고 있는겁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즐겁고 평안한 일요일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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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16-12-18 11:25:45

첫 글부터 다시 다 읽고 왔네요.

공감했고, 생각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WR
2016-12-18 17:43:12
첫 글부터 읽어주시고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무쪼록 연말 따뜻하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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