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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엄청난 여정이었어" by 리차드 제퍼슨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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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9-02-04 02:18:44

 

나는 팀 전용기에 앉아서 창밖을 멍하니 보며 울기 직전이었어. 

 

파이널 7차천 이야기냐고?  

 

아니, 아직 파이널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야.

 

이건 아직 토론토에서 있었던 일이야.

 

아직 동부 컨퍼런스 결승을 치루고 있었던 때이지. 

 

나는 36살의 다 큰 어른이었고, 토론토에서 컨퍼런스 파이널 4차전을 끝내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울기 직전인 상태였지. 

 

나는 그정도로 절실하게 원했어...

 

나는, 너무 너무 너무 너무나 간절하게 원했어.

 

시리즈는 이제 2-2로 동률인 상태였고, 비행기가 이륙하자 내 머릿속은 완전 미쳐 날뛰고 있었지. 나는 "클리브랜드에서 지면 모든게 끝이야. 3-2로 뒤진 상태로 토론토로 돌아가면 우린 100% 질꺼야. 나는 이짓거리를 다시 할 순 없어. 또 다시 이렇게 트로피에 가깝게 도달했다가, 내 눈앞에서 트로피를 빼앗길 수는 없어. 말 그대로 그런일이 벌어지면 난 완전히 무너질꺼야..." 

 

우승 반지가 나는 너무나도 간절한 상태였어. 지금 생각하면 웃기지. 사람들은 나에게 "요 제퍼슨, 그때 캐벌리어스와 보낸 시즌, 정말 재미있었지?" 라고 물어 보거든. 

 

그럼 나는 바로 이렇게 말하지. "절대로.. 절대로 재미있지 않았어..."

 

나는 그 플레이오프 기간 동안 1초도 '재미있는' 상태였던 적이 없었어. 결승전 7차전 종료를 알리는 버저가 울리기 직전까지 내 마음은 새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었거든. 우리가 토론토를 결국에 떨쳐내고 NBA 파이널에 갔을 때도, 나는 매일 밤 불면증에 시달리며, 먹지도 못하고,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지.

 

내가 이런 말을 하면 믿어줘... NBA 우승을 위해 필요한 정신척/신체적 스트레스는 '평범한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야.

 

나는 우리가 우승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 하지 않았어.

 

우리가 0-1로 지고 있을때도 

 

더더욱이 우리가 0-2로 지고 있을때도

 

그리고 우리가 1-3으로 지고 있을때는 더더더더더욱 우리가 이길 거라고 생각 하지 않았지.

 

우린 망했어. 모든게 끝난거라고 생각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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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NBA 파이널 무대를 밟기 까지 13년이란 시간이 걸렸어. 

 

13 년... 7개의 다른 소속 팀... 그리고 916번의 농구 경기... 상상이 되?

 

이게 대단한건지, 슬픈건지, 아님 미친건지, 아님 어떻게 느껴질지 모르겠어. 하지만 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어. 리그에서 나 정도로 오래 버티고 있다 보면 사람들은 마치 내가 무슨 '수도승'이라도 된 것 처럼 날 바라봐.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내가 처음 NBA에 입성했을 때, 그 루키 시절의 나는 NBA에서 오래 살아 남을 수 있을 만한 선수가 아니었어.

 

우리가 금요일 경기에서 승리했다? 그럼 파티 타임

 

우리가 금요일 경기에서 패배했다? 그래도 파티 타임. 단 조금 자제해야지.

 

그때의 나는 인생을 즐기고 있었지. 

 

한마디로 그때의 나는 경기에 목메지 않았어. 나는 80년대 초반, 경제 상황과 지역 상황 모두 최악인 시기에 중남부 LA에서 태어났지. 가끔 사람들이, "리차드, 그 당시 중남부에서 자라난다는 것이 어땠어? 엄청 과장되게 나쁜 얘기만 들었는데"

 

그럼 난 말하지. "솔직히 말해서, 네가 들은 것 보다 더 심했지"

 

차를 타고 가면서 총을 쏘고, 거리에는 마약 딜러들이 돌아다녔어. 이게 내가 기억나는 내 인생 가장 초반의 기억들이야. 내 아버지는 당시 마약 중독에 알콜 중독이었는데, 그 당시 얼마나 많은 마약들이 우리 지역으로 흘러 들어오고 있었는지 회상하면, 그다지 이상한 일도 아니었지. 하지만 다행인 점은 네기 아주 대가족에서 자라났고, 그랬기 때문에 아버지의 부정적인 영향으로부터 날 지켜줄 수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었어. 그리고 정말 내가 너무나도 존경하는 나의 어머니는, 나와 내 두 형제들이 그런 똥통 같은 환경에서 벗어 날 수 있도록 당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셨어. 

 

어머니는 나와 내 형제들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희생하셨어.

 

절대 과장 하는 것 없이, 어느날 밤 우리 동네 주민 절반 정도가 중남부 LA를 떠나는 싸구려 고속버스를 타고 떠난거야. 내 어머니와 우리 형제들을 포함해서 그 버스안에 타고 있었던 사람들은 말그대로 큰 가방안에 가져 갈 수 있는 것 뭐든 쑤셔넣고, 피닉스행 편도 티켓을 끊은 거야. 그게 다야.

 

피닉스가 특별히 대단한 곳이어서도 아니었어. 그냥 마약과 살인이 없는 젊은 도시였지. 우리에겐 '기회의 도시' 였어.

 

내 어머니는 홀로 어린 사내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정말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셨어. 아직 철이 없었던 나는 총 맞을 걱정 없이 거리에서 놀 수 있다는 것에 즐거워했어. 내 고향이었던 중남부 LA에서 나와 내 형제들이 할 수 있었던 거라곤, 집 안에서 같은 슈퍼마리오 게임을 10,000 번 정도 깨는 것 뿐이었어. 하지만 피닉스에서는, 죽음을 걱정하지 않고 거리에서 뛰어 놀 수 있었지. 그건 나에겐 '충격적'인 사실이었어. 그렇게 나는 농구에 대한 사랑을 키웠지. 동네 공원 농구장에서 내가 농구 영화 주인공이라고 상상하며 낮 밤 가리지 않고 친구들과 농구를 하면서 말이야.

 

            

 

나는 15살이 되기 전까지는 제대로 농구를 배우지도 못했어. 내가 NBA에서 뛰게 될 것이라고는 정말 상상도 하지 않았지. 당시의 나는 농구 그 자체를 즐겼을 뿐이고 농구 하면서 트래쉬 토킹 하는 것이 재미있었거든. 

 

내가 갑자기 키가 확 커서 제대로 고등학교 농구 팀에서 활동하게 되었을 때, 웃기게도 내 어머니께선 별로 관심도 없으셨지. 당시 어머니께서는 학업과 생계활동을 병행하시며, 우리 가족이 좀 더 편하게 살 수 있도록 노력하고 계셨기 때문에, AAU니, 대학 농구니, 뭐 그런 것에 대해 정말 아무것도 모르셨거든. 

 

내 고등학교 경기에 하루 오신 어머니에게 코치님이 가셔서 어색하게 "음... 어머니... 그거 아세요? 리차드가 농구를 정말 잘한답니다" 라고 말하셨고 

 

어머니께서는, "아 그래요? 잘됐네요" 하고 끝이었지.

 

그러자 코치님께서는, "제 말을 잘 이해 못하신 것 같은데, 리차드는 정~~말 잘합니다" 라고 말하셨고

 

어머니께서는 바로, "매일 그렇게 공원에 나가서 공부는 안하고 농구만 해대니, 그럴만도 하네요" 라고 하셨지. 

 

그러자 코치님은 더이상 참지 못하시고, "아니요, 어머니. 제가 하려는 말은, 리차드가 프로 농구 선수가 될 수도 있을 정도로 잘한다고요" 라고 말씀하셨지. 

 

우리 가족 중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으로 바로 진학한 것은 내가 최초였어. 농구가 나에게 그런 소중한 기회를 준거야. 내가 이런것을 계획하고 상상하면서 농구를 시작한 것은 아니었어. 요즘 젊은 선수들은 17살이면 미래에 대한 블루프린트가 확실하게 있고, 거의 준프로와 같은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지만, 내가 처음 아리조나 대학 신입생으로 입학했을 시기에는 그렇지 않았거든.

 

나는 간단한 인터뷰 하는 방법 조차 배우지 못한 상태였어.

 

나는 얼간이(idiot) 이었어.

 

그리고 내 주변에도 얼간이들이 가득했지. 

 

그땐 완전 다른 세대였다는 것을 이해해 줬으면 좋겠어. 지금이랑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거든. 그때는 1999년 이었고, 인터넷이 막 세상에 소개된 때였어. 인터넷에 접속하려면 대학교 컴퓨터 실에 가야만 했던 시기였어.

 

컴퓨터 실로 가기 위해 대학을 가로질러가면서 애들이, "요, 어디가" 라고 물어보고

 

나는, "나는 접속 하러 간다" 라고 대답했던 때야.

 

"접속" 하러 정말로 어딘가를 "가야"했던 때였어.

 

 

내가 이런 얘기를 자세하게 하는 이유는, 당시 주변 상황이 어땠는지 느낄 수 있게 해주고 싶어서야. 왜냐면 내가 여기서 당시 "아리조나 와일드캣 팀" 선수들 모두가 얼간이었다고 말하면, 정말 그 선수들이 얼마나 얼간이었는지 이해했으면 좋겠거든. 요즘은 인스타그램이나 스탭챗에서 버튼 하나만 잘못 누르면 얼간이가 쉽게 될 수 있지.

 

하지만 1999년 그당시에는, 진정한 얼간이가 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을 해야했어. 정말 창의적으로 생각해야 했지.

 

내 룸메이트였던, 루크 월튼, 좋은 녀석이야. 정말 정말, 좋은 녀석이야. 그 당시에는? 얼.간.이.

 

마이클 라이트? 대단한 인물이지. 얼.간.이.

 

길버트 아레나스?

 

길버트 아-레-나-스? 

 

이봐. 정말 길버트 아레나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

 

좋아, 말해줄게. 

 

나는 길버트 아레나스에 대한 이야기를 수천개 쯤 가지고 있어. 그런데 문제는 그 이야기의 97% 정도는 19금 딱지를 붙이지 않으면 들려 줄 수 없다는 거야.

 

AC.

 

GV.

 

WTF.

 

하지만 나는 길버트 아레나스에 대해 조금 다른 얘기를 하고 싶어. 그는 정말 특별한 사람이었지.

 

그는 천재적인 악마 (eveil genius) 였어.

 

악명높은 2001년 가족 방문 주간. 그때 길버트의 천재적인 악마성이 빛을 발휘했지. 

 

당시 상황을 그려 볼게.

 

때는 날씨 좋은 평범한 투손(도시 이름)의 오후야. 전국에서 너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엄마, 아빠, 할머니, 강아지, 그리고 조카들이 대학을 방문했지. 아주 아름다운 오후였어. 

 

농구 선수 기숙사에서 우린 여럿이서 시간을 보내다가 내가 갑자기 배가 고파졌어. 그래서 학생회관에 뭐좀 먹으러 가겠다고 말했지.

 

길버트가 말하길, "내가 태워줄게"

 

그런데 길버트의 얼굴에 장난끼 가득한 웃음이 있었어. 그 미친 과학자 같은 웃음. 아, 그를 따라가지 말았어야 하는데. 그러지 말았어야 하는데. 하지만 나는 그의 차를 타고 말았지.

 

자, 기억해. 이건 2001년이었어. 그당시 쿨한 사람들은 모두 자동차에 엄청난 음향 시스템을 설치했다고. 엄청난 우퍼에 DVD 플레이어도 연결해서 100개가 넘는 CD를 차안에 가지고 다니던 때지.

 

물론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던 때는 아니었지. 하지만 당시에는 모두가 그랬다고! 그리고 당연히 길버트는 차에 미국에서 가장 거대한 음향 시스템을 설치해 두었던 상태였어. 그렇게 나와 길버트는 음악 볼륨을 최대로 높히고, 창문을 내린채로, 멋지게 대학 내를 드라이브 하고 있었어. 당연히 대학내 모든 사람은 이 시끄럽고 화려한 자동차가 길버트 아레나스의 자동차라는 것도 알고 있었지. 학생들, 학부모들, 할머니들 -- 모두가 알고 있었다고. 

 

베이스 소리가 엄청난 노래를 틀고 우린 대학을 가로 질렀어. 내 얼굴 살이 흔들릴 정도로 큰 소리였어. 날은 화창하고, 대학에는 가족들이 바글 바글 했고, 우린 정말 멋졌어.

 

그런데 뜬금없이, 길버트가, "잠깐만. 노래를 좀 바꾸자. 네가 좋아할 만한 걸로" 라고 하더라고.

 

그러더니 차 안의 100개의 CD랙을 뒤적이더니, DVD 하나를 꺼내서 재생버튼을 누르더라고. 

 

어떤 영화가 재생되었고... 물론 풀-베이스로 엄청나게 큰 스트레오 소리로 울러퍼졌지.

 

그 영화는... 뭐라고 해야하나...

 

그냥 그 영화가... '성인 전용' 이였다고만 말해둘게. 

 

매우 매우 '성인 전용' 이었어. 이런 젠장...

 

 

대학내 모든 사람들이 우리 차를 쳐다봤지. 소리가 얼마나 컸냐면... 그냥 지금 상상하고 있는 것 그 이상으로 시끄러웠다고 생각하면 되. 완전 똥 바보처럼 시끄러웠어. 2001년에 어울리게 시끄러웠어...

 

나는 너무 쪽팔려서, 조수석에 신생아 처럼 웅크렸어. 

 

하지만 길버트는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었어. 그는 창문을 열고 모두에게 인자하게 손을 흔들었지. 할아버지, 아이들, 교수들... 모두에게 마치 대선에 출마하는 사람마냥 손을 흔들었다고. 

 

그는 의기양양 했지. 

 

그녀석은 진정한 천재적인 악마였어.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이 뭐냐면, 그는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는 거야. 우리 팀의 모든 선수들은 좋은 사람이었어. 이게 그때 시대의 문제 였는지, 아니면 아직 인터넷이 널리 퍼지지 않아서 그랬는지, 아님 뭐였는지 모르지만, 그당시 우리들은 '어린애들'이었어. 

 

우리는 NBA에 준비된 상태가 아니었어. 우리는 NBA가 우리에게 줄 돈, 라이프 스타일, 그리고 압박감에 전혀 준비가 된 상태가 아니었어. 우리는 모두 '얼간이' 같은 어린애들 이었어. 이제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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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서, 나는 긴 NBA 시즌을 잘 치뤄낼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어. 한 시즌도 힘든 상태였는데 17시즌은 어불성설이지. 데이비드 스턴 총재가 드래프트 날, 무대위에서 내 이름을 불렀을때도, 나는 그저 눈을 감고 "뭐, 이제 NBA에서 경기 하게 되었나보군" 이라고 생각했을 정도야.

 

고등학교, 대학교때처럼 농구 하고 즐겁게 놀면 될 줄 알았어 -- 그냥 "농구"만 하면 된다고. 하지만 NBA는 "농구" 그 이상이었어. 나에게 닥칠 정말 수많은 것들에 난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어. 단순한 "농구" 가 아니라 이건 "인생" 이었어. 게다가 나의 루키 시즌은 NBA 역사상 가장 '비현실적' 이고 '가슴아픈' 시즌이었거든... 

 

모두들 2001년 9월 11일, 자신이 어디에 있었는지 기억할꺼야. 나는 지역 초등학교에 있었어. 좀 이상한 장소이지만, 나는 부쉬 대통령이 그날 아침 했던 것과 같은 일을 하고 있었지. 나와 몇 몇 Nets 소속 선수들이 초등학교 2학년 교실에서 책을 읽어 주고 있었거든. 우리가 그 행사를 마치고 버스에 올라 팀 훈련시설로 돌아가는데, 라디오에서 그 뉴스를 들었지...

 

"비행기가 세계 무역 센터에 충돌했습니다!"

 

처음에는 무슨일이 일어났는지 잘 몰랐어.

 

"오, 정말 안됐다. 작은 경비행기가 실수로 충돌했나?" 

 

몇분이 지나고, 추가 소식을 들려왔어.

 

"두번째 비행기가 건물로 돌진했습니다"

 

이런 소식을 '듣는 것'과 '보는 것'은 완전 달랐어.

 

9월 11일, 그날 뉴욕이나 뉴저지에 있었던 사람이라면 고개를 들어서 까만 연기가 새어오르는 트레이드 센터 건물을 올려다보던 그 순간을 기억할꺼야. 현실 같지 않았어. 사실 지금도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 믿기지 않아. 버스가 우리 팀 훈련 시설에 도착했을때 아직은 모든 것이 혼란스러운 상황이었고, 코치님들은 선수들은 훈련을 하면서 기다리라고 말해주셨어. 

 

그 당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거든.

 

               

 

무역 센터가 완전히 무너졌을 때 우리는 훈련 시설 안에 있었어.

 

그 이후의 기억은 사실 좀 흐릿해.

 

하지만 나는 그날 집으로 돌아가면서, 수많은 자동차들이 맨하탄쪽으로 향하는 고속도로 위에 버려져 있는 모습을 본 것을 잊지 못할 거야. 뉴욕이 폐쇄되었어. 뉴욕이 완전히 폐쇄된거야. 난 아직도 이때를 떠올리면 온몸에 소름이 돋아. 

 

만약 그 당시 뉴욕이나 뉴저지에 있지 않았다면, 그때 우리가 느꼈던 감정을 100% 이해하는 것은 어려울거야. 그해 10월 우리의 첫 홈 경기 시작 전에 뉴 저지 소속의 구급대원들과 소방대원들을 경기장으로 초대해서, 다 함께 묵념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그 순간은 아직도 내 인생에서 가장 감정적이었던 순간 중 하나야. 

 

그 모든 일들이 벌어지고 나서 이런 생각을 했던게 기억나. "진심으로, 우리 이제 농구를 해야 하는거야?"

 

하지만 당시 뉴 저지는 우리를 필요로 했어. 당시에는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좀 알 것 같아. 그해 시즌 우리가 경기 하고, 또 양키스 야구 팀이 선전하면서, 뉴저지와 뉴욕의 시민들은 적어도 하루 몇시간은 그 끔직한 비극을 생각하지 않아도 되었거든. 진부한 표현일지 모르겠지만, 그 당시를 실제로 경험한 나는, 정말로 스포츠는 하나의 중요한 '탈출구'가 될 수 있다고 믿어. 

 

내가 실제로 경험했거든.

 

아직도 그때 그 사건에서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지만, 농구는 아직도 내가 힘들때면 나에게 힘이 되어 줘.

 

몇 주 전에, 내가 LA에서 저녁 식사 후 내 자동차를 가져 오길 기다리고 있는데, 내 옆에서 다른 누군가가 그의 차를 기다리고 있는거야. 그런데 그 사람을 보니까 뭔가 낯이 익더라고. 자세히 보니, 그는 Saturday Night Live 쇼의 피트 데이비드슨 인거야!

 

그래서 난 본능적으로 그에게, "오 맨, 저는 당신의 팬이에요. 당신 정말 웃겨요" 라고 말했지.

 

나는 그가 날 알아볼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어. 그냥 진심으로 나는 그의 팬이었을 뿐이었거든. 그런데 그가 갑자기 나에게 이러더라. "와 말도 안돼! 리차드 제퍼슨! 나는 당신의 엄청난 팬이에요. 당신과 Kerry Kittle이 내가 어렸을 때 나를 방문해 주었거든요. 기억나요?"

 

나는 그럴 멍하니 쳐다보면서, 뭐? 말도안돼, 라고 생각했지. 

 

나는 피트의 아버지가 9/11 테러에서 순직한 소방관 중 한분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고, 또 과거 Nets 선수단이 테러로 가족을 잃은 아이들을 위로 방문했던 것은 기억 했지만... 내가 방문했던 아이 중 한명이 그라는 것은 전혀 모르고 있었거든.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지.

 

그는 내게, "오 맨, 그때 당신이 와줘서 큰 힘이 되었어요. 아마 당신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요. 나는 Nets 팀을 정말 좋아했거든요" 라고 말하더라.

 

 

 

우리는 각자의 자동차가 도착 하기 전까지 농구 이야기를 조금하고 헤어졌고, 그게 다야. 하지만 그건 나에게 정말 의미가 깊은 순간이었어. 왜냐면 당시에 나도 인생에서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었거든. 1주일 전에 아버지께서 LA에서 총에 맞아 돌아가셨었거든. 하지만 그 순간, 나는 그와 농구 얘기를 하면서 내 슬픔을 잠시 잊을 수 있었어. 

 

아직도 난 그 당시 우리가 뉴저지에 NBA 챔피언 트로피를 선물하지 못한 것이 괴로워...

 

요즘 사람들은 2000년대 초반 우리 Nets 팀을 거의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아. 우리가 얼마나 다듬어 지지 않았고, 공격적이었는지 기억을 못하지. 만약 과거로 돌아가서 우리의 경기를 본다면, 당시 우리는 그 시절 마지막 런-앤-덩크 팀이었다는 것을 알게 될거야. 슛을 쏠 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 하지만 우리는 수비를 잘했고, 림으로 적극적으로 돌진했고, 우리는 싸울 줄 알았어. 

 

요즘 선수들은 진정으로 싸우고 싶어 하지 않아. 내 말은, 드레먼드 그린, 너는 내 형제 같고, 나는 널 사랑하지만... 난 네 얼굴에 직접 대놓고 말할 수 있어. "너는 정말로 싸우고 싶어 하지는 않아"

 

근데 캐년 마틴은? 그 친구는 언제나 싸울 준비가 되어있었지. 

 

그 친구는 90kg의 슈팅 가드가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어. 그는 태어날때부터 싸움을 잘하게 태어났어. 내가 그걸 어떻게 아냐면, 내가 Nets 라커룸에서 그와 싸워봤거든. 내 루키 시즌, 우리 팀이 디트로이트에게 완전 처참하게 지고 있는 도중이었어. 그리고 내 문제 중 하나는, 난 닥쳐야 할 때를 모른다는 거야.

 

그래서 여느때처럼 나는 투덜 투덜 거리고 불평 불만을 쏟아내고 있었어.

 

그리고 캐년은 그의 자리에 앉아서 아무 말도 안하고, 나를 조용히 쳐다보고 있었어.

 

그래서 내가 그에게 몇마디를 했고

 

그리고 그가 나에게 뭐라고 했던지, 아니면 그냥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났을 수도 있겠다. 에런 윌리엄스가 캐년이 날 죽이려고 한다는 것을 알고, 그를 뒤에서 붙잡았어.

 

나는 캐년을 향해 펀치를 날렸는데 캐년이 숙여서 피하면서 그를 붙잡고 있던 에런의 얼굴을 때리고 말았어. 코에 직빵으로. 에런은 쌍코피를 흘리면서 쓰러졌어. 바로 다음 캐년이 나를 향해 펀치를 날렸지... 완전 난장판이었어. 

 

그날 우린 '정말' 싸움을 했어. 

 

정말 웃긴게 뭐냐면, 이게 뉴스가 되지도 않았어. 아무도 그 사건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어. 요즘 같았으면 바로 그 순간 인터넷이 우리 둘의 싸움 이야기로 폭발했겠지.

 

 

하지만 이건 100% 진실이야 = 승리하는 팀에는 싸움이 일어나. 꼭 슈퍼스타가 아니더라도, 팀에 누군가는 싸운다는거야. 내가 뛰었던 모든 팀들에서 하나도 빠짐 없이 한두번 정도는 텐션을 해소 시키기 위해서 싸움이 있었거든. 

 

그날 싸움 이후, 나와 캐년은 형제 처럼 가까워졌어. 싸우고 나서 사이가 더 좋아졌지. 우리는 각자 승리를 원했을 뿐이란 것을 알았기 때문에, 서로를 존중했고, 서로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남겨 두지 않았어. 

 

그게 NBA의 전부야. 승리하거나 f***ing 도태되거나. 

 

내가 17년 동안 NBA에서 뛰면서 확실하게 말 할 수 있는 것은, 일반 사람들은 얼마나 "경쟁심"이 투철해야지 NBA 결승에 올라 갈 수 있는지 모른다는 거야. 지금 내 말을 듣고 머릿속에 상상을 할텐데, 무조건 그 이상으로 투쟁심과 경쟁심이 투철해야만 해. 거의 인간의 수준을 넘어선 경쟁심을 가지고 있어야지만 NBA 결승에 진출 할 수 있는 기회라도 생기는거야. 결승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완전 미친 수준이지. 내 육체, 멘탈, 감정 모든 것이 망가지는 수준이라고. 

 

우리가 2002년 처음으로 결승에 진출해서 레이커스에게 졌을때, 나는 망가졌어. 

 

그리고 2003년 다시 파이널에 진출했고 우리가 스퍼스에게 졌을때, 나는 망가진 것 이상으로 엉망이 되었지.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봐... 내년에 다시 도전하면 되지. 다시 기회가 있을거야" 라고 위로했어.

 

하지만 13년 동안 NBA 파이널에 가지 못했어.

 

내가 클리브랜드로 가기 전에는 말이야...

 

 

내 NBA 커리어의 마지막 종착지... 클리브랜드.

 

사람들은 말했어, "오 리차드, 너 우승반지를 쫒아 가는구나?" 

 

그러면 나는 말하지, "당연하지! 나는 우승반지를 간절히 원해"

 

나는 평생을 농구를 했고, 평생을 훈련을 했고, 수 많은 미친 순간들을 보냈지만, 가장 중요한 한가지가 없었어... 

 

우승 반지 말이야.

 

내가 그런 마음이었기 때문에, 컨퍼런스 파이널 4번째 경기를 마치고 토론토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미치기 일보 직전이었던 거야.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우리는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승리했고, 그 보상으로 NBA 역사상 가장 많은 재능을 보유했던 팀과 대결하게 되었지.

 

산 넘어 산이지?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차라리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 왜냐면 100년이 지나도 농구 팬들은 2016년 NBA 파이널에 대해서 이야기 할 것 같거든.

 

농구가 어떤 식으로 진화 하든

 

클리브랜드 캐벌리에서가 어떻게 되든

 

오하이오 스테이트가 어떻게 되든

 

워리어스가 앞으로 4, 5, 6, 7, 8, 9, 10 개의 우승 트로피를 더 수집하더라도 

 

한가지 바뀌지 않는 사실이 있어.

 

NBA 파이널에서 1-3으로 지고 있는 팀이 이길 순 없는거야. 

 

1대 망할 3... 

 

우린 다 죽은 상태였어. 내 농구 이야기는 끝났지. 새드 엔딩이야. 이제 모두 집으로 돌아가세요. 즐거운 농구 인생이었습니다.

 

끝.

 

그런데, 그때 카이리 어빙과 르브론 제임스가 나타났지...

 

 

카이리 어빙. 그리고 르브론 제임스.

 

41 점. 그리고 41점. 원정 경기에서.

 

원정 경기에서.

 

우리는 게임 6을 위해 클리브랜드로 돌아왔고, 르브론이  41점을 득점했어. 

 

인간이 아니야. 미친거야. 말도 안되.

 

7차천, 골든 스테이트의 홈 구장. 

 

들어봐, 정말 솔직하게 말할게. 난 이제 은퇴했으니까 솔직해도 되잖아. 나는 7차천 하프타임에 락커룸에 앉아서 바닥을 멍하니 쳐다보면서, 이 모든 순간이 갖는 중요성을 떠올리며, 바로 그 자리에서 펑펑 울지 않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하고 있었어. 

 

나는 우승을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원하고 있었지.

 

물론 내 의견이 편향 되었을 수 있겠지만, 내 생각에는 그날 7차천 4쿼터에는 NBA 파이널 역사상 최고의 플레이가 3번 일어났어.

 

르브론이 이궈달라의 슛을 블록했을 때 나는 골대에서 1.5미터 떨어진 지점에 서있었어. 나는 수천만번의 농구 경기를 하면서 많은 플레이를 보았지만, 이궈달라의 그 슛을 막을 수 없을 것 같았어. 불가능해. 나는 골든 스테이트가 속공 플레이를 하는 것을 봤고, 속으로 "와.. 이건 못막겠네. 제기랄! 저건 득점이야" 라고 생각했지. 

 

이궈달라가 레이업을 위해 올라가는데, 뭔가 흐린 검은 형체가 내 눈에 보였어. 마치 영화에서 슈퍼맨이 음속의 속도로 날라가는 것 같았어. 정말 농담이 아니야. 너무 빨라서 흐릿 하게 보였어. NBA 코트 위에서 정말 별 미친 플레이들을 많이 보았고, 괴물 같은 운동능력을 가진 선수들을 많이 보았지. 하지만 그날 내가 본 것은 그 이상이었어. 르브론이 물리 법칙을 무시한 것 같았어. 

 

카이리가 경기 종료 1분 전 비수와 같은 3점을 성공시켰을 때도 나는 코트위에 있었어. 그리고 그 순간은 내 농구 인생에서 아마 내가 유일하게 마치 TV를 보고 있는 농구 팬 처럼 느껴졌던 순간이야. 

 

... 슛 하려나...

 

... 자.. 잠깐. 정말 슛 하려나?

 

... 와 미친! 저녀석 정말 슛 하려나봐!

 

... 우와와아아!! 들어갔어!

 

카이리 어빙의 그 3점 슛은 내가 본 가장 대담한 슛 중 하나였어. 그날 그런 경기에서 그런 슛을 던지다는 것 말이야.

 

그리고 케빈 러브를 빼놓을 수 없지.

 

케빈 러브, 내 형제.

 

 

케빈 러브, NBA 트로피가 걸린 상황에서 커리와 1:1 상황이었어. 러브의 어깨 위에는 NBA 역사의 무게가 그를 누르고 있었지. 

 

그가 그날 한 플레이는 충분한 인정을 받지 못할거야. 케빈은 커리를 한번이 아니라 무려 두번이나 완벽하게 막아내면서 커리가 들어 갈 수 없는 슛을 던지게 만들었어. 

 

내게 있어서, 그날 러브가 보여준 플레이는 농구의 정수라고 생각해. 그 플레이 이전에 있었던 모든 것은 제쳐 둬. 그날 경기 전체, 플레이오프 시리즈 전체, 시즌 전체, 50년 동안 우승 트로피를 기다려온 클리브랜드 전체를 잠시 제쳐 두자. 


모든 것은 그 10초에 결정된거야. 

 

커리는 목숨을 걸고 오픈 찬스를 만들어 내려 했어. 

 

그리고 케빈도 목숨을 걸고 수비를 했지. 

 

(내가 케빈에게 그때의 심정을 물었을 때, 정신을 잃었던 것 같다고 아무런 기억이 안난다고 하더라)

 

경기 종료를 알리는 버저가 울리고, 우리가 챔피언이 되었을 때, 나는 그 자리에 주저 앉아서 엉엉 울기 시작했어. 나는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도 없었어. 

 

내 아내는 아직도 날 놀리곤 해. "나는 이해가 안되. 당신은 우리 결혼식 때도 그렇게 울지 않았잖아. 우리 아이가 태어났을 때도!"

 

그러면 나는 그녀에게 솔직하게 말해주지.

 

얼간이도 결혼을 할 수 있고. 얼간이도 아버지가 될 수 있어. 하지만 NBA 타이틀? 이건 다른거야. 이건... 울어도 되는거야. 

 

좀 웃긴게 뭔지 알아? 이 일을 겪은 이후임에도, 날 아직도 열받게 하는 게 뭐냐면, 우리가 다음 해에 우승하지 못한거야. 우승 반지가 두개가 될 수도 있었는데!

 

(케빈 듀란트, 너가 너무 밉다)

 

하지만 어쨌든, 정말 엄청난 농구 선수로서의 여정이었어. 

 

NBA에서 17년동안 뛰면서 정말 소중한 추억들을 많이 만들었어. 좋은 친구들도 많이 만났고. 맛있는 맥주도 많이 마신 것 같아. 그리고 미성숙한 어린 아이에서 어느정도 사회적으로 기능 할 수 있는 어른이 되었고, 소중한 가족과 심적 평온함을 얻었어. 

 

이 모든 것은 나에게 너무나도 소중한 것들이야...

 

하지만 많은 것들 중에서, 나에게 가장 의미가 깊은 것이 있어. 그건 NBA 역사에서도 오직 몇명만이 직접 느껴본 것이라고 생각해. 

 

종종, 거리에서나 공항에서 누군가 나에게 다가와서 말을 걸 때가 있어. 같이 사진 찍자는 것도 아니고, 사인을 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농구에 대해서 이야기 하려는 것도 아니야. 

 

그저 나에게 다가와서 내 손을 꼭 잡으면서, "감사합니다. 당신들이 우리를 위해 이뤄준 일에 대해...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곤 해.

 

이거야.

 

감사의 표시...

 

나는 그 사람이 어디 출신이고,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 바로 알수 있지... 

 

나는 NBA 타이틀을 클리브랜드라는 도시로 가져오는 데 기여했어. 우승 반지를 가진 선수들을 많지... 하지만 내가 경험하고 이뤄낸 일을 해낸 선수들이 얼마나 더 있을까? 

 

그래, 우리는 우승을 한번밖에 하지 못했어. 하지만 우리는 "바로 그" 우승 (THE one)을 차지한거야.

 

어떤 우승은... 때로는 다른 우승들 보다 큰 의미를 갖는 거 같아. 그게 사실이야. 나도 알고 있고, 너도 알고 있지. 아마 골든 스테이트도 알고 있을껄? 

 

그리고 클리브랜드는, 분명히 알고 있을거야.

 

어떤 우승은...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어. 

 

그러니, 이제 다시 떠나기전에, 이 말을 하고 싶어.

 

Thank you... Ohio...

 

27
Comments
3
2019-02-03 21:07:33

잘봤습니다. 감동적이에요.

6
2019-02-03 21:16:24

https://youtu.be/DXswcWGGpec
이 영상에서도 7차전 마지막 심경이 나오는데 글에서는 더 자세하게 말해줬네요.
긴 글인데 번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1
2019-02-03 23:54:20

바로 눈물 핑도네요

11
2019-02-03 21:17:49

전에도 느꼈지만 RJ 글빨 죽이네요

1
2019-02-03 21:24:17

어느 순간 은퇴해서 섭섭했었는데
이 아저씨 말도 재밌고 위트있게 잘하고 그덕에 자주 볼 수 잇어서 참 좋네요

5
2019-02-03 21:26:21

글인데도 읽으면서 몇번이나 울컥했네요
농구가 선수들의 인생에서도 돈벌이 이상의 큰 의미라는 걸 알게 될 때 참 좋더라구요

3
2019-02-03 21:29:05

7차전 경기종료 휘슬이 울리고 클블선수들 모두가 코트로 달려나갈때, 제퍼슨만은 혼자 자리에 앉아서 울었었죠....

2019-02-03 21:44:19

이 글을 읽으니까 우승을 얼마나 선수들이 하고 싶어하는지 좀 와닸네요. 우승을 위해서 올스타들이 모이는 것도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2019-02-03 21:56:44

선수로서 우승반지를 들어올린다는게 그엄청난 덩어리들이 우승하고 아이들처럼 엉엉하고 운다는게 어떤의미인지 약간은 알것같은 기분입니다.
좋은글 감사해요.

2019-02-03 22:38:14

제 평생 가장 감동적인 우승 직전의

긴박했던 순간들이 또다시 생생하게 떠오르네요.

RJ의 멋진 글에 걸맞는 완벽한 번역 감사드립니다.

4
2019-02-03 22:58:23

네츠 시절에 대한 언급이 좀 적네요..

현 시점에서야,제퍼슨 개인에게 가장 인상적인 순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제퍼슨은 클블 우승 시즌의 모습이겠지만..

사실 퇴물 취급 받으며 저니맨으로 떠돌다 클블로 간 거였고.. 

최고 전성기를 보내며 인기를 얻은건 네츠 시절인데...

 

키드-카터-제퍼슨 트리오는

인사이더 자원들이 조금만 좋았다면,

동부 재패는 한번은 할만한 팀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네나드 크리스티치 부상당하는 순간이 기억납니다..

저 트리오를 받쳐줄 인사이더로는 딱이었는데..

키드도,카터도 트리오 결성되고 두 시즌 정도는 전성기를 유지했구요..

 

키드 옆에서,루키 시즌과 소포모어 시즌에 2번의 파이널을 치루었고..

두번째 시즌부터는 붙박이 스타팅 스몰포워드였죠..

당시엔 서고동저가 심해도 너무 심할 때라,

사실 팀이 그리 강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당시에 팀의 중심은 누가 뭐래도 키드와 마틴이었고,

글에서도 뉴저지 시절 얘기는 마틴과 관련된 거네요.. 

 

좀 투박하고 거칠긴 했지만,

키드의 패스를 받아줄 파트너로 잘 뛰어주었고..

강한 몸과 뛰어난 운동능력으로 우격다짐 돌파옵션도 있었습니다.. 

 

전성기가 좀 짧았던 감은 있습니다..

밀워키까지는 괜찮았는데..

샌안토니오로 가면서,급격히 폼이 떨어졌어요...

2019-02-04 17:45:01

네나드도 사실 폼 좋을때라고 해도 수준 이하였습니다. 네츠 빅맨 중에 그나마 구실을 하다 부상으로 폼이 완잔히 죽은거죠. 센터 기근 시대기도 했지만 해도 너무 하는 빅맨진이었습니다. 히트에 브라이언 그랜트나 크리스 윌칵스 정도 만 있었어도 하는 생각 많이 했습니다. 걍 빅맨 스런 빅맨 하나가 없어서 하무하게 무너진 경기들이 너무 많았죠.

2019-02-04 20:32:24

어떻게 보면 넷츠 시절이 그의 리즈시절이자 전성기가 될 것 같았는데 밀워키로 가서 에이스 노릇도 하고 커리어하이도 찍고 했죠. 물론 달랑 1년이었고.. 샌안으로 가서는 말씀대로 아직 쌩쌩할 나이인데 팀에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그 이후론 별 족적을 남기지 못했네요. 그래도 말년 클블 시절 활약은 제법 인상적이었습니다. 회춘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줄 때가 있었죠.

2019-02-03 23:01:41

클블 우승에서 공헌도가 매우 컸죠..

숀 리빙스턴에게 찰거머리처럼 붙어서 

자폭해버리는 역할..

 

커리도 정상이 아니고,돌발변수가 속출하던 워리어스 입장에서,

리빙스턴의 포스트업과 컷인 옵션이 꼭 필요했는데...

제퍼슨이 모든걸 걸고 리빙스턴의 득점 지원을 무력화시키고..

어짜피 제퍼슨 본인이야 공격에서는 큰 역할 없던 상태.. 

2019-02-03 23:05:19

진짜 감동입니다

2019-02-03 23:25:39

저도 말하고싶네요.
내 생에 가장 감동적인 우승을 볼 수 있게 해줘서 감사합니다 RJ..

5
Updated at 2019-02-03 23:36:46

2019-02-04 00:15:31

아, 이 글을 보니 또 울컥 하네요
아마 개인적으로 힘들었던 그 시절, 오전마다 클리블랜드가 한 걸음씩 차근 차근 플레이오프에서 나아가고, 마지막 파이널 1-3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어떻게 나아갔는지를, 지구 반대편에서나마 생방송으로 목격한 산 증인으로써 너무 그 때의 추억과 그 우승순간의 감정들이 복받치는 것만 같아서 행복하네요
고마워요 리차드 형! 2016년, 여러번의 우승이 아니였어도, 위대한 그 한 번의 우승으로 인해 정말 행복했습니다. 킹도 카이리도 케빈,델리도 이만도 jr도 tt도 채닝형도 모즈고프도 단테도 존스도 moe도 그리고 리차드형도..
Thank you Cavaliers!

2019-02-04 00:17:37

클리블랜드라는 도시에 그 우승트로피 하나가 얼마나 큰 가치인지 다시한번 느꼈습니다. 나중에 해설위원으로라도 꼭 캡스에 돌아왔으면 좋겠네요. 우리는 당신의 5,6차전 투혼을 잊지 못합니다. Thank you RJ

2019-02-04 07:10:58

그깟농구가 뭐라고 이렇게 눈물나게만드는지
자꾸 그때 생각하면 감정이 참.....

2019-02-04 14:07:23

좋아요! 즐겁게 읽었습니다.

2019-02-04 16:55:05

 덕분에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2019-02-04 20:20:53

이걸 전부 제퍼슨이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서 쓴 건가요. 정말 재밌게 읽었고 정말 잘 쓴 글이네요. 클리블랜드와 제퍼슨에 대해 그렇게 큰 관심을 가져본 적 없었지만 완전히 빠져들어서 읽었습니다.

WR
2019-02-04 23:54:46

저도 번역 하면서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2016년 파이널을 직접 보진 못했는데, 아쉽더라고요.

2019-02-05 03:42:48

스퍼스에 마침내 "운동능력 좋은 스윙맨이 왔다"고 큰 기대를 받았던 리차드 제퍼슨이네요.

아쉽게도 스퍼스에서는 우승하지 못했지만요.

길버트 아레나스랑 대학 시절 팀메이트였는지는 몰랐네요.

그리고 이렇게 재미나게 글을 쓰는지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2019-02-05 11:31:54

하이라이트 한번 더 보러갑니다...

2019-02-05 18:29:23

저는 아직도 17년 크리스마스 매치에서 클레이 탐슨을 포스터라이징 해버리는 엄청난 덩크가 잊혀지지 않습니다.. 은퇴 번복한 선수한테 저런 탄력이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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