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커스 수비에 관하여
들어가며
최근 레이커스 경기를 보며 수비적으로 문제되는 부분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고 싶어서 글을 씁니다. 마침 네츠전이 좋은 교보재가 되어줬네요. 맥기가 없었지만, 있었더라도 마찬가지의 결과가 나왔을 겁니다. 이유는 뒤에 서술하겠습니다.
네츠전 3쿼터 4분 동안 벌어진 일들
보다시피 기본 마크맨 설정으로 쿠즈마는 러셀(핸들러), 론조는 쿠룩스, 하트는 조 해리스를 마크합니다. 로테이션이 꼬인 게 아니고 하프타임에 마크맨을 수정하고 나온 겁니다. 이후 이어지는 포제션에서도 쿠즈마는 러셀을 수비하거든요. 이건 두가지 이유로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첫번째로 전반에 보여준 론조-챈들러의 2:2 수비가 맘에 들지 않았다는 것, 두번째로 론조를 위크사이드 디펜더로 쓰면서 헬프디펜스(태깅)에 더 치중하도록 조정하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이 두가지 이유는 가드의 1선 수비(스크린 수비) 문제와 빅맨들의 제한적인 수비사용법 문제 때문에 생기는 일입니다. 쉽게 말해, 현재 레이커스 수비의 제일 큰 문제점은 챈들러/맥기가 드랍백 수비 밖에 잘하는 게 없는 상황에서 가드들의 스크린 수비 역시 썩 좋지 않기 때문에 레이커스의 수비가 붕괴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네츠가 레이커스를 공략한 4분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러셀이 전반에 스크린 타자마자 3점을 때리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니, 러셀이 2:2 를 시도하면 챈들러는 헷지를 나갈 수 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챈들러는 발이 느린 빅맨이라 헷지 후 스크리너의 롤링에 대한 리커버리가 당연히 안되고 누군가는 롤러에 대한 커버(태깅)을 해줘야 됩니다. 여기선 론조가 해주고 있죠. 론조를 위크사이드 헬프디펜더로 쓰는 이유 중 하나인데, 이런 수비에 대한 기본기가 상당히 훌륭한 편입니다. 소위 낄끼빠빠가 좋은 타입이죠. 조쉬 하트는 수비 센스가 론조만 못하고, 르브론은 종종 게으른 수비를 보여주기 때문에 론조만큼 좋은 헬프디펜스를 펼치고 있지 못합니다. 특히 하트는 지난 샌안 원정에서 태깅을 제대로 하지 못해 팀 패배에 일조한 일등 공신이기도 합니다. 아무튼 위 장면에선 러셀의 빠른 판단과 정확한 패스로 3점을 내줬습니다만
그 다음 수비에선 빅맨의 질주 동선을 적절히 방해하며 러셀의 무리한 돌파를 유도해내는데 관여합니다.
1쿼터에 있었던 비슷한 2:2 상황에서 롤링해 들어가는 앨런에 대한 수비를 보시면 차이가 확 와닿으실 겁니다. 아무도 방해동작을 하지 않으니 자렛 앨런이 아주 여유있게 돌진하는 모습입니다.
아무튼 이 포제션 이후 레이커스 수비가 바뀌었다는 걸 눈치 챈 네츠는 2:2 에서 3:3 공격으로 전환합니다.
조 해리스의 루프컷 이후 바로 말아들어가는 움직임에 조쉬하트가 당하는 모습입니다. 이런 움직임이 가능했던 근본적인 이유는 챈들러가 러셀의 2:2 수비 때문에 위로 올라와있어 안이 비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쿠룩스가 오프볼 움직임으로 론조의 시선을 끌며 헬프를 가지 못하도록 한 것도 주효했습니다. 르브론의 시선처리가 상당히 안 좋았다는 것도 비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기선 무조건 커버해줬어야 합니다. 어쨌거나 이 장면이 시사하는 점은 레이커스의 빅맨을 끌어내면 안을 공략하기가 매우 수월하다는 점입니다.
이후 챈들러는 드랍백으로 다시 전환했는데 핸들러를 적절히 체이스하며 압박을 준 쿠즈마의 좋은 수비를 볼 수 있습니다. 론조에서 쿠즈마로 러셀 수비를 변경한 타당성을 찾을 수 있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챈들러가 헷지를 포기하고 다시 드랍백으로 주저 앉기 시작하자 네츠가 그걸 다른 방식으로 제대로 공략해냈다는 점입니다. 챈들러가 어차피 처져있을 걸 알고 스태거 스크린으로 하트를 떨궈놓고 사실상 와이드오픈을 만드는 장면입니다. 르브론은 이 장면 이후 챈들러에게 어필합니다. 헷지 안 나가면 3점 먹힌다 이거죠. 이와 유사한 패턴으로 챈들러의 드랍백 포지션을 공략하는 장면은 사실 네츠전에서 처음 나온 것이 아니고 샌안전에서도 나온 장면입니다.
챈들러가 깊숙히 주저 앉을 걸 알고 베르탕스가 스크린 한번 받은 후 정면에서 별다른 방해없이 슛을 쏘는 장면입니다. 짤방엔 안 나와있지만 위와 마찬가지로 이 장면 이후에도 르브론이 수비에 문제가 있다고 벤치에 어필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수비 위치를 깊숙히 잡으면 조 해리스가 스크린 한두번 받고 오픈 찬스를 만들기 때문에 챈들러는 커버하러 나오지만, 불쌍하게도 이번엔 조 해리스는 미끼였고 자렛 앨런의 폭발적인 슬립에 무참히 당하게 됩니다. 론조의 태깅 타이밍이 살짝 아쉽긴 하지만 앨런 같은 빅맨이 롤링해 들어가는 동작에서 볼이 제대로 전달만 된다면 신장 차이가 있는 론조로 무한정 커버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이 포제션 이후 한번의 실점을 더 허용하고 챈들러는 더이상 코트에 나오지 못했습니다. 스몰라인업으로 전환한 것이죠.
맥기가 있었다면 달랐을까
공격에선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만, 적어도 이 글의 주제인 수비에 있어선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비슷한 상황이었던 샌안전에서 유추해 볼 수 있는데요. 샌안전에서 챈들러가 4쿼터 시작부터 유사한 패턴으로 털리고 나서 맥기가 투입됐습니다. 맥기는 고작 1분 정도를 버티다 다시 교체됐고 스몰로 전환하게 됩니다. 챈들러로 안되는 수비는 맥기로도 안된다는 것이죠. 맥기가 레이커스에 가져다주는 이점은 분명 대단한 것입니다. 에너지, 블락, 풋백 득점을 비롯한 확률 높은 골밑 득점 등등. 그러나 적어도 수비에 있어선 챈들러보다 뛰어난 선수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커리어 내내 지적받던 BQ 의 문제는 레이커스에서도, 특히 수비쪽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말로 설명드릴 필요도 없이 맥기와 챈들러의 드랍백을 보면 확연히 차이가 난다는 걸 한두경기만 보셔도 아실 겁니다. 심지어 코칭스텝이 맥기에겐 헷지를 잘 시키지도 않습니다. 헷지 앤 리커버리 동선이 너무 구려서 쓰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거든요. 웬만해선 드랍백, 뒤로 쳐지는 수비만 시키죠. 즉, 상대가 레이커스의 드랍백을 집중 공략하는 상황에선 맥기도 해답이 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샌안전 4쿼터에 1분만 뛰고 교체 아웃 된 이유도 그것이고 네츠전에서 맥기가 별 도움이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유추할 수 있는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스트레치 빅을 쓰며 코트를 벏게 벌린 워싱턴전도 아마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스몰라인업이 답인가
레이커스의 스몰라인업이 강력한 수비력을 가졌냐고 묻는다면 그건 절대 아니라고 자신있게 답할 수 있습니다. 레이커스 경기를 보신 분들이라면 모두 동의하실 겁니다. 문제는 스몰을 돌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나온다는 데 있습니다. 올랜도전, 샌안전, 네츠전 그리고 일시적이었지만 워싱턴전, 마이애미전까지 모두 빅 라인업이 파훼되자, 혹은 도저히 버틸 수 없게 되자 스몰라인업으로 돌릴 수 밖에 없었던 겁니다. 이 팀들이 레이커스의 드랍백을 공략한 방법은 유사합니다.
(1) 스크린을 잘 타는 빠른 가드+스트레치 빅의 조합은 골밑을 판다.
(2) 스크린을 잘 타고 풀업 점퍼가 가능한 가드는 미드레인지를 유린해 레이커스 빅맨에게 헷지를 강제하고 다시 안을 판다.
(3) 스트레치 가능한 5번이 있는 팀은 코트를 넓혀 레이커스 빅맨을 위로 끌어 올리고 빈 공간을 가드들이 (온볼이든 오프볼이든) 유린한다.
(4) 스트레치 빅이 없는 팀은 (샌안,네츠) 슛되는 3, 4번에게 스크린을 걸어 드랍백으로 처져있는 챈들러 쪽에서 오픈샷을 만들어낸다. (위에 베르탕스, 조 해리스 움짤)
(레이커스는 이렇게 패면 된다는 것을 보여준 올랜도 매직의 혼 더블 하이 포메이션. 빅맨을 끌어올려 안을 비우고 후벼파면 된다는 것을 제대로 보여준 경기. 스몰로 전환하니 부세비치가 안에서 무쌍을 시전. 상성 그 자체.)
이런 경향이 나오는 이유는 역시 가드들의 스크린 수비의 문제점과 빅맨들이 드랍백 외엔 수비가 잘 안된다는 점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부분을 집중 공략 당하면 레이커스는 스크린 수비 상황 자체를 거세할 목적으로 스몰라인업, 즉 올 스위치 디펜스를 펼치게 되는 겁니다. 남들이 공격력을 위해 스몰을 돌리는 것에 반해 우리는 수비를 위해 궁여지책으로 스몰을 돌리고 있으니 웃픈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스몰라인업을 돌릴 때 매냐에 올라오는 글과 댓글을 보면 스몰라인업으로 이득도 못보는데 왜 돌리는지 모르겠다는 의견을 종종 접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최근 몇경기 상대에게 빅 라인업이 집중 공략 당했던 시점부터 스몰라인업이 끝난 시점까지 빅 라인업과 스몰라인업의 수비레이팅을 비교해보겠습니다.
네츠전 3쿼터 시작부터 8분 17초까지 수비 레이팅 125.0-> 그 후 끝날 때까지 스몰라인업 수비레이팅95.6
워싱턴전 시작부터 2쿼터 2분 46초까지 120.0 -> 2쿼터 2분 46초부터 1분 58초까지 100.0
히트전 4쿼터 시작부터 9분 19초까지 140.0 -> 그 후 3분 55초까지 88.9
샌안전 4쿼터 시작부터 5분 16초까지 173.3 -> 그 후 1분 7초까지 200.0
보다시피 스몰이라고 안 좋은 결과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좋은 결과도 있었고요. 샌안전은 173.3 이라는 기이한 수치를 보셔서 짐작하시겠지만 이미 챈들러, 맥기가 코트에 있을 때부터 신나게 두들겨 맞았습니다. 스몰 돌려서 200 찍어버렸지만 173.3 에서 그냥 놔두는 것은 감독으로서 직무유기라고 할 수 있으니 그 때의 스몰볼은 그야말로 궁여지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것도 저것도 다 안되는 상황이었던 거죠.
아리자 영입설이 가지는 의미
이미 끝난 이야기지만 아리자 영입전에 참전했던 이유는 명확하다고 봅니다. 현재 시점에서 빠르고 수비 커버 범위가 넓은 센터는 구하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런 선수들은 소속팀에서 대접받고 잘 뛰고 있을테니까요. 또한 상대의 스크린을 다 뚫어버리는 수비팀급 가드도 구하는 게 불가능 할 겁니다. 같은 이유지요. 그럼 레이커스가 수비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방법은 하나, 윙디펜더를 구해 스몰라인업을 강화하는 것 뿐입니다. 그것이 아리자 영입설이 가지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마치며
현재까지 레이커스의 성적이 좋았던 이유는 상대적으로 쉬웠던 스케쥴 덕분도 있겠지만 뭐니뭐니 해도 챈들러 영입 효과를 빼놓고 이야기 할 수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뭐든지 약빨이 떨어지는 시기는 옵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올랜도전을 기점으로 샌안 원정을 거치면서 다른 팀의 스카우터들에게 레이커스의 약점이 파악된 것 같습니다. 비슷한 패턴의 공략이 계속 나오고 있다는 점이 매우 우려스러운 부분입니다. 물론 약점이 노출됐다고 무조건 지고 그러진 않을 겁니다. 잉그램이 돌아오고 론도가 돌아오면 수비적으로 나아지는 부분도 있을테고 또 모든 상대팀이 레이커스의 약점을 공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여전히 팀 에너지는 상위 레벨이고 공격력도 제법 괜찮습니다. 하지만 레이커스의 약점을 제대로 후벼 팔 수 있는 팀을 만나면 스몰라인업에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계속 생길테고,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한 수정/보완은 긴 시즌을 치르기 위해 그리고 포스트시즌 진출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부분입니다.
영입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 아니면 가진 자원만으로 해결 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문제지만 (후자는 기대가 안됩니다만) 어쨌거나 구단 차원에서 문제 인식을 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에 기대를 가져 봅니다.
박수가 나오는 글이네요. 감사합니다.
이제 아리자는 워싱턴으로 갔고...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해야 하는 시점이 된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