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 농구와 탤런트 농구, 그리고 마이애미 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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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4-05-30 15:08:47
올시즌 동/서부 컨퍼런스 파이널 진출 팀은 페이서스, 히트, 스퍼스, 썬더 입니다.
이 중 히트는 지난 3년간 매년, 썬더와 스퍼스는 두 번, 페이서스는 작년에 컨파에 진출했었죠. 각 팀마다 각각의 특징이 있지만 이 팀들을 보면 시즌 중에 상위 시드를 놓고 순위 싸움을 할 때도 그런 얘기가 있었는데 시스템 농구와 탤런트 농구로 구분되고, 또 그런 특징 때문에 서로간의 상성 비슷한 것이 보이며 그런 부분에 대한 얘기도 NBA 게시판에 심심찮게 나왔던 기억이 있네요.
딱 시스템/탤런트 농구로 가를 수는 없지만 이 네 팀을 구분해 본다면 우선 샌안과 오클은 딱 시스템 농구와 탤런트 농구의 양 축에 있는 듯한 인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명장 포포비치 감독 아래에서 오랜 시간에 걸쳐 축적되고 다듬어진 전술 위에 지금은 노장이 된 던컨, 마누, 파커의 빅3 와 새로 떠오르는 카와이 레너드, 그리고 확고한 시스템에 맞춰 움직이는 롤플레이어들. 샌안은 철저한 시스템 농구를 하고 있습니다.
반면 썬더는 듀란트와 웨스트브룩, 그리고 이바카의 빅3 를 중심으로 한 탤런트 농구죠. 팀 전술이 부족하다는 뜻은 아니지만 전술 그 자체보다는 듀란트와 웨스트브룩의 재능에 더 좌지우지되는 팀이라고 할 수 있죠. 실제로 올해 시즌 중에 웨스트브룩이 아웃되고 플옵 중에 이바카가 아웃됐을 때, 듀란트가 하드캐리를 하긴 했지만 시스템적으로 보완되는 모습이 없다는 점을 많은 분들이 지적하셨죠.
그리고 인디애나 페이서스는 작년 컨파에서 히트와 7차전까지 가는 접전을 펼치고, 시즌 초반에 돌풍을 일으키며 대적할 상대가 없는 동부 1위를 달렸지만 후반으로 가면서 무너졌죠. 이 팀은 시스템 농구에 가깝다고 봅니다. 폴 조지라는 에이스가 있지만 이 팀의 전술의 핵심은 수비죠. 돌파 옵션이 약하고 점퍼 위주의 플레이를 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공격에 있어 기복이 있을 수밖에 없는 폴 조지인데, 이 점을 보완해 줄 만한 무기가 팀의 수비력이죠. 조지의 슛감이 좋지 않더라도 강한 수비력을 바탕으로 접전으로 이끌어가는 능력이 있고 그 때문에 안풀리는 날은 진흙탕 농구, 흑마법 농구란 얘기도 듣고 있는 거라고 봅니다.
하지만 이 팀의 문제는 이런 시스템이 주전들에게 국한되어 있다는 점이라고 봅니다. 샌안의 시스템의 가장 큰 힘은 주전과 벤치가 같은 시스템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로테이션이 바뀌어도 전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이죠. 오랜 세월동안 시스템이 축적되고 수정되어 온 샌안과 달리 인디의 시스템은 이제 막 구축이 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주전들은 시스템에 잘 녹아드는 반면에 벤치 멤버들은 그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죠. 거기다 시즌 중에 그레인저-터너를 골자로 한 트레이드가 행해지면서 더욱 안좋은 방향으로 흘러갔다는 느낌이 듭니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쓰게 된 이유인 히트에 대해서 얘기해 보자면, 현재 히트의 농구는 분명 시스템 농구라고 봅니다. 빅3 가 뭉치고 나서 첫 시즌은 파이널에서 노비의 매버릭스에게 고배를 마셨고 이후 두 시즌을 연속해서 우승합니다. 그 때 상대했던 팀이 위에 언급된 썬더와 스퍼스였고, 동부 컨파에서 페이서스를 이기고 올라갔었죠.
빅3 가 뭉친 첫 시즌은 분명히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습니다. 수비에 대한 컨셉은 그 때도 있었지만 지금처럼 완성된 시스템은 분명 아니었죠. 거의 로스터가 통째로 바뀌어버린 시즌이라 손발을 맞추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게 당연했고, 두번째 시즌부터 히트의 수비 시스템은 거의 완성단계에 올라갔습니다. 바쉬가 스몰라인업의 센터 롤을 늘려가기 시작했던 것도 이 시즌이었던 걸로 기억하고, 백코트의 압박 강도를 높이며 상대의 턴오버를 더 많이 유발하기 시작했죠. 10-11 시즌과 그 이후를 보면 10-11 시즌에는 평균 13.2 개로 전체 24위를 기록했던 상대팀 턴오버가 이후 시즌부터는 16개 가량으로 훌쩍 뛰어 오르며 순위도 3위-5위-2위로 올라가게 됩니다. 스몰 라인업으로 가면서 리바운드는 해가 갈수록 줄어들지만 반대로 상대 턴오버 유발로 이를 커버하는 스타일이 완성되어 가죠.
공격 시스템 역시 첫번째 시즌은 시스템이라고 할 만한 게 없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기억하시는 르브론과 웨이드의 너한번 나한번이었죠. 그랬던 것이 두번째 시즌부터 웨이드가 조력자가 될 것을 자처하고 시스템을 뜯어고치게 됩니다. 철저한 온볼 플레이어였던 웨이드가 컷인을 주력하게 되고, 보쉬는 더욱 바깥으로 빠지며 공간을 넓혔으며 그 나머지 공간을 르브론이 활용하게 되죠. 이런 시스템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고, 빅 3 세번째 시즌인 12-13 시즌에 완성이 되었습니다. 두 번째 시즌에도 괜찮은 공격 효율을 보였지만 세 번째 시즌은 레이 앨런의 영입과 함께 3점 옵션이 더욱 강해졌으며, 히트의 코너 3점은 리그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로 작용했습니다. 실제로 11-12 시즌에 비해 12-13 시즌 히트의 3점 시도 및 성공률은 훌쩍 높아졌고, 그로 인해 넓어진 골밑에서는 르브론과 웨이드의 공격 효율 역시 덩달아 높아져 팀 필드골 성공률이 5할에 육박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죠. 11-12 시즌의 히트가 수비의 완성이었다면 12-13 시즌의 히트는 공격의 완성이었고, 팀의 공격/수비 지표에서도 그런 모습은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팀의 ORtg/DRtg 를 보면 11-12 시즌에는 리그에서 7위/4위 였지만 12-13 시즌에는 2위/9위로 변화하죠.
올 시즌에는 그런 시스템의 완성을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웨이드의 부상이 고질적인 문제를 일으키며 앞선 두 시즌만큼의 강력함은 보여주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껏 다듬어 온 시스템을 바탕으로 동부 2위로 마감을 했죠.
이러한 히트의 시스템은 샌안의 시스템과는 느낌이 다른데 그것은 탤런트의 차이라고 봅니다. 샌안 역시 탤런트가 있는 팀이긴 하지만 팀의 코어가 되는 주전 선수들의 노쇠화로 인해 탤런트로 대표되는 오클 같은 팀에 대면 체력이나 에너지가 부족한 게 사실이죠. 반면에 히트는 면면을 보면 탤런트 농구를 하는 것이 맞다 싶은 선수들입니다. 매번 언급되는 리그 PER 1, 2, 4위가 뭉쳤으니 당연한 거죠. 하지만 이 선수들이 철저한 시스템 안에서 농구를 하고 있습니다. 본인의 옵션이 줄고, 스탯이 떨어지는 것을 감안하고 팀의 승리를 위해 뛰고 있죠. 온볼 플레이어인 웨이드가 컷인에 주력하고, 페이스업에 있어 리그 탑클래스의 빅맨이었던 보쉬가 중장거리 점퍼에만 주력하고 이제는 3점까지 장착했죠. 이런 부분이 히트를 강팀으로 만들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시스템 안에서 롤에 충실하고 있지만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자신의 탤런트를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죠.
플옵 무대에서는 갖춰 나온 시스템이 무용지물이 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좀 더 치열해지는 플옵 무대의 특성상 슈퍼스타 에이스의 존재가 가지는 의미가 정규 시즌에 비해서 훨씬 커지죠. 듀란트, 르브론, 노비츠키 같은 슈퍼 에이스들이 터지는 날은 시스템으로 완전히 제어할 수 없는 선수들입니다. 가지고 있는 시스템이 안먹힐 수도 있는 거죠. 그런 것이 정규 시즌에는 그 경기를 버리고 다음 경기에서 이기면 된다는 생각이 먹히겠지만 플옵에서 셧아웃 위기에 시스템이 먹히지 않는 상대를 만난다면 방법이 없죠. 그런 상황에서 탤런트를 폭발시켜 줄 수 있는 르브론, 웨이드, 보쉬의 존재가 히트에 있어서는 정말 크고 상대하는 팀 입장에서는 얼마나 껄끄러운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차이들이 히트를 3년 연속 파이널에 진출시켰고, 또 2년 연속으로 우승을 차지하고 올해 역시 대권에 도전하고 있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탤런트 농구를 해도 충분할 선수들이 시스템 농구를 하고 있는, 그것이 현 히트의 모습을 잘 나타내 주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에 마이애미에서 빅3 가 뭉쳤을 때, 선수들에 비해 감독이 약하다는 말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첫 시즌에 파이널에 갔을 때도 감독에 대한 불만이나 선수빨 얘기가 많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리그에서 가장 잘 나가던 선수들 중 셋을 모아서 각자가 가장 잘 하는 것을 하기 보다 팀이 이기는 방향으로 시스템을 짜 주고 그 안에서 불평 없이 뭉칠 수 있게 만든 스포 감독의 공은 빅3 못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좋은 선수들을 모아놔도 규합하지 못하는 감독들이 많죠. 첫 시즌의 탤런트 농구를 계속했다면 지금의 팀이 되지 못했을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지난 몇 년간 스포 감독과 선수들이 참 좋은 팀을 만들어준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처음 빅3 가 뭉쳤을 때였던가 첫 파이널에서 고배를 마신 후였던가 모르겠는데 '히트의 무서움은 지금이 아니라 이 팀이 해가 거듭할 수록 더욱 강해질 거라는 사실이다' 라는 평가가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작년과 재작년 우승을 통해서 그것을 선수들과 스포 감독이 현실로 만들어주고 있다고 느꼈고, 올해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05-06 첫 우승 이후로 하위권에서 멤돌고 웨이드가 혼자서 아무리 날뛰어도 1라운드도 못 넘던 시절에도 응원하던 팬 입장에서는 빅 3 이후의 관심과 리그의 악의 축 비슷하게 여겨지는 지금이 아직도 조금 어색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응원하는 팀의 가장 빛나는 순간을 라이브로 보고 있다는 것이 정말 축복받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내일 있을 컨파 6차전도 잘 치러주고, 올해도 파이널에 올라가서 한번 더 그들이 리그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습니다.
Let's go Heat!
이 게시물은 Macchiato님에 의해 2014-05-30 15:05:44에 'NBA-Talk' 게시판으로 부터 이동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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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좋은 글 잘 읽고 추천 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