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 이야기 4 - 일하면서 처음 울었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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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벌써 6년 전이네요.
고객센터에서 사무실로 전화가 왔어요.
인기가 많은 영화를 예매 오픈 시작했는데 어떤 고객이 자기는 지금 어플로 예매가 안된다며
내가 이 영화 못 보면 니들 가만 안 둔다고 난리를 치고 있다고 하더라구요.
흠. 방법이 없었어요.
이미 매진이었거든요.
근데 고객은 꽤나 화가 난 상태였고 핸드폰의 네트워크 상태의 불안정보다는 우리의 어플 문제이니 너희가 책임지라 했죠.
흐음....
정말 곤란했는데....
매진이긴 했으나 몇몇 자리에는 그 상영관에서 상영이 끝난 후 시작될 행사를 위해 기계들을 위해 미리 안 팔리도록 해놓은 자리였거든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기계를 하나 치우고 앉히기로 했어요.
고객에게 그렇게 전달하고는 통화 끝.
하지만 그러지 말았어야 한다는 걸 깨달은 건 너무 늦었죠.
30여명의 고객이 전화가 왔어요.
자기도 그런 식으로 영화 예매를 못 했다.
나 영화 못 보게 되면 그냥 두지 않겠다.
네.
맨 처음 그 고객은 “영화를 사랑하는 모임”의 회원이었어요.
그리고 영화를 너무 사랑했으나 예매 못 한 그 모임의 회원들은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는.
고객센터로 전화를 하기 시작한거죠.
그리고 저를 포함한 동료들은 뭐가 죄송한지도 모른채 그저 죄송하다고 하고 있었어요.
어떤 분은 점장 나오라그래 를 시전하시며 본사의 서비스 담당자의 개인 연락처까지 달라고 하며 사과하라고 이야기했죠.
방법 있나요.
그저 우리가 죄인이죠.
사실 그렇게까지 심한 사람은 많진 않거든요.
점장님도 그냥 당신이 통화하겠다 하시며 개인연락처를 고객에게 전달했고
본사 서비스 담당자님의 개인연락처 또한 고객에게 전달했죠.
2. 다음 날.
어제의 폭풍이 지나가고나서 똑같이 출근을 했어요.
매점에서 연락이 왔는데 어떤 고객이 영화가 16시 시작인데 15시 57분에 핫도그 15개를 주문했다고 하네요.
(통상 핫도그를 15개 정도씩 준비해두진 않아요. 각 영화관도 시간대별로 얼마나 팔릴지 데이터가 있으니까 그에 맞춰서 준비해두죠)
서둘러 가봤어요.
고객이 매점에서 소리를 질러요.
내가 영화를 얼마나 깊이 있게 보는 사람인데.
내가 이거 기다리다가 앞부분 놓치면 니들 알아서 하라고.
말씀드렸죠.
“고객님 그렇다면 영화가 시작될테니 일단 좌석에 앉아계시면 일행분들 것까지 가져다드리겠다.”
고객도 오케이 하고 일행들과 함께 들어갔죠.
영화는 시작됐고 핫도그가 조리되는대로 가져다줬어요.
2시간 정도 지났나요.
매표소에서 연락이 와요.
가봤어요.
아까 그 고객이 영화를 환불해달라고 해요.
그리고 핫도그도 환불해달래요.
왜냐고 물었더니 영화 시작하고나서 제가 핫도그 가져다주느라 상영관을 왔다갔다 하느라 집중을 못 했대요.
핫도그는 너무 늦게 나와서 다 식어서 맛이 없었대요.
와....
그럴 수 있구나.
시간이 지난 건은 환불이 어렵다. 도중에 나오신 것도 아니고 다 보고 나오지 않으셨느냐.
매점 제품도 다 드시지 않으셨냐.
소리 질러요.
니가 영화에 대해 뭘 아냐고.
모르니까 영화관에서 일하고 있지, 알면 영화촬영장소에서 일하고 있겠죠....
정말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화가 났지만.
그냥. 뭐 어쩌겠어요.
그냥 사무실로 들어왔죠.
3. 다음 날
사람인지라 오기가 생겨서 어떤 모임인지 한번 궁금해졌어요.
좀 찾아봐요.
금방 나오더라구요.
포털사이트 카페였는데.
우리 영화관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간략하게 적혀있어요.
고객의 입장에서.
경악을 금치 못 했던 건.
거기에 점장님의 핸드폰 번호, 본사 서비스 담당자의 핸드폰 번호가 그대로 노출돼있어요.
그 밑에 써있는 말은 더 가관이예요.
“앞으로 무슨 일 있으면 고객센터에 전화하지 말고 여기다 직접 하세요, 회원님들. 그래야 해결이 빠릅니다.”
근데 그 밑에 댓글들, 어떤 사람도 이렇게 개인정보가 돌아다니면 안된다는 것에 대한 지적이 없어요.
잘했다고 칭찬하기 바빠요.
그 회원은 정말 거의 영웅 대접을 받고 있더라구요.
엄청 큰 퀘스트 하나를 혼자서 해결한 것 처럼요.
4. 눈물
최근 게시물에 이런 글이 있더군요.
“회원님들 영화는 제가 사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여러가지로 쌓인게 많아서 영화관에 복수할 일도 있고 골탕먹일 계획도 있구요”
맞아요.
그 핫도그 주문과 영화를 못 봤다고 환불하라는 모든 것은.
계획적이었어요.
눈물이 나더라구요.
왜지?
이 사람은 뭐 때문에 이렇게 화가 나서 나를 괴롭히는거지?
내가 이 사람한테 뭘 그렇게 잘 못 했나?
우리가 뭐 못 해준 거 있나?
그냥 돈 받고 영화 틀어주고 돈 받고 팝콘 주고.
그게 다인데.
왜 이 사람은 왜 나한테 이렇게 화가 나있지?
정말 벙찌기도 하고 너무 억울하기도, 분하기도.
정말 말로 다 하기 힘든 그런 감정들이 솟구쳐 올랐어요.
그 모든 것을 캡쳐해두고 회사 법무팀을 통해서 이건 정말 문제인 것 같다.
이러면 안되는 것 같다.
법적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없겠느냐 했는데.
점장님도, 법무팀도 그냥 넘어가자고 해요.
그냥. 그냥.... 그냥 그런 사람들이라구요.
그랬어요.
좀 길어졌는데....
오늘도 웬 이상한 고객이 오셨는데 저도 이제 짬이 찬건지.
여유있게 처리하고 들어오면서 회사 생활 하면서 처음 눈물흘렸던 때가 떠올라.
글 써봅니다 ;)
닉스 경기 감상평 안 쓴지도 오래됐는데 다시 좀 써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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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자 입장에서도 뭐라 말하기 힘든 분노가 끓어오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