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즈의 로스터 살펴보기] 5.Cleveland Cavali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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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28 17:05:57
안녕하세요~ 다섯번째 글로 인사올립니다.
ABC 순서에 따라 다섯번째 팀은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입니다.
글
순서는 경력이 가장 긴 선수- 경력이 가장 짧은 선수(이번 드래프트의 신인들이 되겠군요.)-드래프트 순위가 가장 낮았던
선수(언드래프티는 제외)- 드래프트 순위가 가장 높았던 선수-외국출신인 선수-나를 빼놓으면 섭하지(그 전 코너에서 다뤄지지
못했지만 꼭 한번 짚고 넘어가야 할 선수)의 순으로 진행 될 예정입니다.
본 글의 정보 출처는 해당 팀의 공식 홈페이지와 미국 야후 스포츠, 그리고 영문 위키피디아를 참고로 하였습니다. 본 글의 정보 대부분은 영문 위키피디아가 될 것입니다.
아무쪼록 부족하고 못난 시리즈 아껴주시고 사랑해주셨으면 하는 부탁을 드리면서 글을 시작하겠습니다.
[경력이 가장 긴 선수]
샤크가 있었다면 샤크였겠지만 그가 팀을 옮긴 지금 가장 경력이 긴 선수는 이 선수입니다.
네 바로 앤트완 재미슨입니다. 12년차군요.
98년 1라운드 4번으로 토론토의 지명을 받았습니다.
재미슨은 중학교 때부터 농구와 풋볼을 했다고 합니다.
그가 태어난 곳은 루이지애나 주였지만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노스 캐롤라이나 주의 샬럿에서 다녔습니다.
그 영향 탓인지 재미슨은 대학교도 노스 캐롤라이나 대학으로 갑니다.
그는 여기서 세 시즌을 뛰었는데 뛰어난 시즌을 보냈습니다.
Naismith 상과 Wooden 상을 모두 거머쥔 재미슨의 뛰어난 활약에 그는 모교에서 7번째로 영구 결번된 선수가 되게 됩니다.
재미슨은 98년 드래프트에 참가하여 1라운드 4번으로 토론토의 지명을 받았지만 그에 대한 권리는 곧바로 골든스테이트로 트레이드됩니다.
그의 트레이드 상대는 그와 같은 대학동기이자 그의 대학시절 팀 동료이기도 했으며 또한 같은 드래프트 동기이면서 절친한 친구 사이이기도 했던 빈스 카터였습니다.(카터는 1라운드 5번)
그로부터 그는 5년을 골든스테이트에서 보내게 되는데 실망스러웠던 그의 루키 시즌에도 불구하고 그는 조명을 받지 못하는 팀에서 유일하게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선수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그는 2003년 댈러스로 트레이드가 됩니다.
댈러스 시절 그는 처음으로 플레이오프 무대를 밟아보게 됩니다.
이러한 그의 활약에 그는 식스맨 상 을 수상하기도 합니다.
댈러스에서의 한 시즌에 끝나자 그는 워싱턴으로 트레이드 되어 자신의 농구 인생에 큰 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는 커리어 처음으로 올스타 팀에 선정이 되기도 했으며 미국 국가대표팀으로 선정되어 FIBA 월드 챔피언쉽에도 출전하게 됩니다.
그는 워싱턴에서 빅 3 중에 한명으로 불리웠습니다. 길버트 아레나스, 카론 버틀러 와 함께 워싱턴을 이끌며 플레이오프에 여러번 진출하는 등 활약했습니다.
2010년 2월 17일 그는 삼각 딜을 통해 클리블랜드로 팀을 옮기게 됩니다.
클리블랜드에서는 부진하기는 했지만 다시 한 번 플레이오프 무대를 밟아보기도 하는 등 나름의 성과도 있었습니다.
그는 자선 사업에도 많은 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는 이러한 활동들에 대해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프로 운동선수로서 나는 어려운 이들을 도와줘야 할 책무가 있다. 나는 지역 사회에 공헌하고 누군가의 얼굴에서 웃음을 지을 수 있게 하는 위치에 있다는 것을 정말 즐기고 있다."
[경력이 가장 짧은 선수]
루키 소개 시간입니다. 클리블랜드의 루키는 2명이 있습니다.
첫번째는 바로 이 선수입니다.
크리스티안 에옌가 입니다. 콩고민주공화국의 수도인 킨샤사 출신입니다.
2009년 1라운드 30번으로 클리블랜드의 지명을 받았습니다.
그가 드래프트 되었을 때 그는 스페인 리그에서 뛰고 있었기 때문에 클리블랜드에 2010년에야 합류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2010년 7월 23일에 클리블랜드와 2년 계약을 맺게 됩니다.
슈팅가드와 스몰 포워드를 모두 볼 수 있는 선수라고 합니다.
두번째 선수는 이 선수입니다.
사마르도 사무엘스입니다. 자메이카의 트릴라니 출신입니다.
사무엘스는 미국으로 건너와 뉴저지 주의 성 베네딕트 예비 학교를 다니게 됩니다.
그는 고등학교에서 맥도날드 올 어메리칸에 드는 활약을 펼칩니다.
사무엘스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루이즈빌 대학에 입학합니다.
그는 매 경기 출장하며 팀의 리딩 스코어러와 리바운더로 활약했습니다.
그는 대학을 더 다니는 것을 포기하고 2010년 NBA 드래프트에 참가하기로 결정합니다.
사무엘스는 이 드래프트에서 선택을 받지 못하여 언드래프티가 되었지만 섬머리그에 초청을 받아 평균 12.6득점과 7.4 리바운드를 기록합니다.
이에 클리블랜드가 그와 3년 계약을 맺게 됩니다.
[드래프트 순위가 가장 낮았던 선수]
클리블랜드에서 드래프트 순위가 가장 낮았던 선수는 바로 이 선수입니다.
라몬 세션스입니다. 2007년 2라운드 56번으로 밀워키의 지명을 받았습니다.
그는 네바다 대학에서 3년동안 뛰면서 478 어시스트를 기록하였습니다.
네바다 대학에서의 마지막 시즌에서는 각각 평균 12.3득점, 4.7어시스트, 4.7리바운드, 0.9 스틸을 기록하였습니다.
그는 드래프트 전의 올랜도에서의 캠프에서 좋은 플레이를 펼쳤고 그에 따라 그는 드래프트에 그대로 남아 참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스카우트들에 의하면 그는 매우 뛰어난 볼핸들러이자 패서이고 공격을 잘 이끌어나가는 능력은 있지만 그의 운동능력과 NBA급의 득점 능력이 있는지는 의문부호였습니다.
세션스는 밀워키 산하 D-리그 팀인 툴사 식스티식서스에 보내집니다.
D-리그에서 그는 뛰어난 활약을 하며 NBA의 문을 두드립니다.
그는 2008년 1월에 밀워키로 콜업이 되는데 손목 부상 때문에 그의 데뷔는 늦춰지게 됩니다.
마침 주전 가드 모 윌리엄스와 후보 선수인 찰리 벨이 부상으로 결장이 불가피해지자 그의 출장시간은 늘어납니다.
그는 4월 2일에 워싱턴을 상대로 승부를 결정짓는 베이스라인에서의 점퍼를 성공시키며 드라마틱한 승리를 일궈냅니다.
4월 14일에는 시카고를 상대로 밀워키 프랜차이즈 기록인 24어시스트를 기록하였으며 이 때 20득점도 기록하며 20-20을 달성하게 됩니다.
2009년에는 첫 트리플 더블도 기록하는 등 자신의 재능을 유감없이 뽐냅니다.
그는 09-10 시즌에는 미네소타로 팀을 옮겼는데 이 곳에서 그는 루키 쟈니 플린과 함께 백업을 맡게 됩니다.
2010년 그는 이번에 클리블랜드로 트레이드가 되어 세번째 팀에서의 시즌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드래프트 순위가 가장 높았던 선수]
르브론 제임스가 없는 관계로 앤트완 재미슨이 1라운드 4번으로 지명된 기록이 가장 높은 기록이 되겠습니다.
재미슨은 2회 출연입니다.
[외국에서 온 선수]
총 3명이 있는데 이 중 2명은 루키로 앞선 코너에서 소개된 바 있습니다.
크리스티안 에옌가가 콩고민주공화국 출신이고 사마르도 사무엘스가 자메이카 출신이었습니다.
마지막 남은 선수는 바로 이 선수입니다.
바레장도 사복사진이 있군요. 앤더슨 바레장입니다.
브라질의 상투 에스피리투 주의 콜라티나 출신입니다.
그는 03-04시즌까지 미국 이외의 지역에서 선수생활을 합니다.
98년부터 2001년까지 그는 상 파울루의 프란카 바스켓볼 클럽에서 선수생활을 합니다.
프란카는 브라질 농구의 수도라고 불리울 만큼 전통이 있는 팀이었습니다.
이 곳에서 그의 실력은 진일보했고 그는 스페인의 FC 바르셀로나와 계약을 맺게 됩니다.
바르셀로나에서의 세 시즌동안 그는 점점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런 그를 올랜도가 2004년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30번으로 지명을 합니다.
그러나 그는 곧 클리블랜드로 트레이드되었고 첫 NBA 커리어를 클리블랜드에서 시작하게 됩니다.
그는 이 곳에서 Wild Thing 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는데 그의 거친 헤어스타일과 에너지 넘치고 끈질긴 플레이스타일이 빚어낸 별명이었습니다.
그는 루키시즌에 54게임을 출장하여 평균 4.9득점과 4.8리바운드를 기록합니다.
그는 11월과 2월에 부상이 찾아오며 경기를 결장하게 됩니다.
두번째 시즌에서는 재미있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2006년 2월 21일 입장한 퀴큰 론스 아레나의 클리블랜드 관중 20562명은 바레장의 독특한 헤어스타일을 기념하기 위해 그의 헤어스타일과 같은 가발을 쓰기로 했습니다.
기네스 기록 중에 단일 장소에서 많은 사람들이 가발을 착용하는 기록이 있는데 그 행사 자체는 성공적이었지만 정식으로 인정이 되지 않아 아쉽게도 오르지는 못했습니다.
그는 인사이드에서 솔리드하게 플레이해주며 클리블랜드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선수가 되었습니다.
2007년에 그는 제한적인 FA가 되었고 클리블랜드와 재계약에 실패하며 샬럿과 계약을 맺었지만 NBA 거래 룰에 의거하여(무슨 내용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클리블랜드에게 재계약을 위한 한 주가 더 주어졌고 클리블랜드는 그 기간 내에 바레장을 만족시키는 계약을 체결하여 그를 다시 지킬 수 있었습니다.
그는 07-08 시즌에서 평균 출장시간, 평균 리바운드, 평균 공격 리바운드, 평균 어시스트에서 모두 커리어 하이를 기록했고 여러번 커리어 하이를 갱신하는 등 쏠쏠한 활약을 펼쳤습니다.
08-09 시즌이 끝난 후 클리블랜드는 6년 계약을 맺으며 그를 다시 한번 클리블랜드 선수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09-10 시즌에는 여러 분야에서 커리어 하이와 동률 또는 그 것을 상회하는 기록을 올리며 활약했습니다.
[나를 빼놓으면 섭하지]
저는 이 선수를 한 번 선정해보고자 합니다.
모리스 윌리엄스, 줄여서 모 윌리엄스입니다.
그는 2003년 2라운드 47번으로 유타의 지명을 받았습니다.
모윌은 앨라배마 대학을 다녔는데 첫 시즌에 포인트 가드로 출장하여 평균 10.4득점과 4.5어시스트를 기록합니다.
그 역시 대학을 다 끝마치지 않고 도중에 드래프트에 참가하게 됩니다.
당시 그가 참가했던 2003년 드래프트는 르브론 제임스, 드웨인 웨이드, 카멜로 앤서니, 크리스 보쉬 등 쟁쟁한 멤버들이 가득했습니다.
그를 지명했던 유타는 첫 시즌동안 그를 출전시킨 뒤 다음 시즌에 그를 방출합니다.
그에게 밀워키가 접근했고 그는 밀워키와 계약을 맺게 됩니다.
마침 밀워키는 주전 포인트 가드인 T.J.포드가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해있던 터라 그 것을 메우기 위해 모윌을 선택한 것이었습니다.
모윌은 밀워키에서의 첫 시즌에서 평균 10.2득점과 6.1 어시스트를 기록했으며 여러 롤을 옮겨 다니며 활약했습니다.
2006년 오프 시즌에서 T.J.포드가 트레이드로 빠져나가자 그는 주전 라인업에 포함되었습니다.
그는 여러 분야에서 커리어 하이를 기록하며 자신의 진가를 드러냅니다.
2006년 12월 20일에는 마이애미와의 경기에서 자신의 첫 트리플 더블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19득점 11리바운드 10어시스트)
2008년 그는 삼각 딜을 통해 클리블랜드로 트레이드가 됩니다.
그는 클리블랜드로 와서 자신의 등번호를 바꾸게 되는데 그가 이제까지 달았던 25번이 클리블랜드에서는 영구 결번된 등번호이기 때문이었습니다.(마크 프라이스의 25번)
그는 25번에서 2번으로 자신의 등번호를 교체합니다.
2009년에는 올스타에 참가하기도 했고 2월 11일에는 피닉스 선즈를 상대로 자신의 득점 커리어하이인 44득점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르브론 제임스가 마이애미로 팀을 옮기며 모윌은 클리블랜드의 중요한 핵심선수가 되었습니다.
그와 함께 뛰었던 시절 르브론 제임스는 그에게 The Silent Assassin(조용한 암살자)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는데 그가 중요한 고비 때마다 득점을 올려주는 점에서 떠올렸다고 합니다.
[후기]
대단한 글은 아니고 너무나도 부끄러운 글이긴 하지만 글을 한 번 쓰고 나면 기력이 다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글을 쓸 때는 한번에 쫙 쓰는 것이 아니라 중간 중간에 임시저장하고 쉬기도 하고 때로는 적어놓고서 임시저장만 시켜놓고 다음에 쓰자 하고 쓴 적도 있습니다.
여튼 댓글로 좋은 말씀 해주시는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다음 글은 ABC 순서에 의해 댈러스 매버릭스가 될 예정입니다.
그리고 이 글 전의 시리즈 글들입니다.
1. 애틀랜타 호크스- /g2/bbs/board.php?bo_table=maniazine&wr_id=72769
2. 보스턴 셀틱스- /g2/bbs/board.php?bo_table=maniazine&wr_id=72885
3. 샬럿 밥캐츠- /g2/bbs/board.php?bo_table=nbatalk&wr_id=927004&sca=&sfl=&stx=&sst=&sod=&spt=0&page=2
4. 시카고 불스- /g2/bbs/board.php?bo_table=maniazine&wr_id=72976
98년 1라운드 4번으로 토론토의 지명을 받았습니다.
재미슨은 중학교 때부터 농구와 풋볼을 했다고 합니다.
그가 태어난 곳은 루이지애나 주였지만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노스 캐롤라이나 주의 샬럿에서 다녔습니다.
그 영향 탓인지 재미슨은 대학교도 노스 캐롤라이나 대학으로 갑니다.
그는 여기서 세 시즌을 뛰었는데 뛰어난 시즌을 보냈습니다.
Naismith 상과 Wooden 상을 모두 거머쥔 재미슨의 뛰어난 활약에 그는 모교에서 7번째로 영구 결번된 선수가 되게 됩니다.
재미슨은 98년 드래프트에 참가하여 1라운드 4번으로 토론토의 지명을 받았지만 그에 대한 권리는 곧바로 골든스테이트로 트레이드됩니다.
그의 트레이드 상대는 그와 같은 대학동기이자 그의 대학시절 팀 동료이기도 했으며 또한 같은 드래프트 동기이면서 절친한 친구 사이이기도 했던 빈스 카터였습니다.(카터는 1라운드 5번)
그로부터 그는 5년을 골든스테이트에서 보내게 되는데 실망스러웠던 그의 루키 시즌에도 불구하고 그는 조명을 받지 못하는 팀에서 유일하게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선수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그는 2003년 댈러스로 트레이드가 됩니다.
댈러스 시절 그는 처음으로 플레이오프 무대를 밟아보게 됩니다.
이러한 그의 활약에 그는 식스맨 상 을 수상하기도 합니다.
댈러스에서의 한 시즌에 끝나자 그는 워싱턴으로 트레이드 되어 자신의 농구 인생에 큰 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는 커리어 처음으로 올스타 팀에 선정이 되기도 했으며 미국 국가대표팀으로 선정되어 FIBA 월드 챔피언쉽에도 출전하게 됩니다.
그는 워싱턴에서 빅 3 중에 한명으로 불리웠습니다. 길버트 아레나스, 카론 버틀러 와 함께 워싱턴을 이끌며 플레이오프에 여러번 진출하는 등 활약했습니다.
2010년 2월 17일 그는 삼각 딜을 통해 클리블랜드로 팀을 옮기게 됩니다.
클리블랜드에서는 부진하기는 했지만 다시 한 번 플레이오프 무대를 밟아보기도 하는 등 나름의 성과도 있었습니다.
그는 자선 사업에도 많은 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는 이러한 활동들에 대해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프로 운동선수로서 나는 어려운 이들을 도와줘야 할 책무가 있다. 나는 지역 사회에 공헌하고 누군가의 얼굴에서 웃음을 지을 수 있게 하는 위치에 있다는 것을 정말 즐기고 있다."
[경력이 가장 짧은 선수]
루키 소개 시간입니다. 클리블랜드의 루키는 2명이 있습니다.
첫번째는 바로 이 선수입니다.
크리스티안 에옌가 입니다. 콩고민주공화국의 수도인 킨샤사 출신입니다.
2009년 1라운드 30번으로 클리블랜드의 지명을 받았습니다.
그가 드래프트 되었을 때 그는 스페인 리그에서 뛰고 있었기 때문에 클리블랜드에 2010년에야 합류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2010년 7월 23일에 클리블랜드와 2년 계약을 맺게 됩니다.
슈팅가드와 스몰 포워드를 모두 볼 수 있는 선수라고 합니다.
두번째 선수는 이 선수입니다.
사마르도 사무엘스입니다. 자메이카의 트릴라니 출신입니다.
사무엘스는 미국으로 건너와 뉴저지 주의 성 베네딕트 예비 학교를 다니게 됩니다.
그는 고등학교에서 맥도날드 올 어메리칸에 드는 활약을 펼칩니다.
사무엘스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루이즈빌 대학에 입학합니다.
그는 매 경기 출장하며 팀의 리딩 스코어러와 리바운더로 활약했습니다.
그는 대학을 더 다니는 것을 포기하고 2010년 NBA 드래프트에 참가하기로 결정합니다.
사무엘스는 이 드래프트에서 선택을 받지 못하여 언드래프티가 되었지만 섬머리그에 초청을 받아 평균 12.6득점과 7.4 리바운드를 기록합니다.
이에 클리블랜드가 그와 3년 계약을 맺게 됩니다.
[드래프트 순위가 가장 낮았던 선수]
클리블랜드에서 드래프트 순위가 가장 낮았던 선수는 바로 이 선수입니다.
라몬 세션스입니다. 2007년 2라운드 56번으로 밀워키의 지명을 받았습니다.
그는 네바다 대학에서 3년동안 뛰면서 478 어시스트를 기록하였습니다.
네바다 대학에서의 마지막 시즌에서는 각각 평균 12.3득점, 4.7어시스트, 4.7리바운드, 0.9 스틸을 기록하였습니다.
그는 드래프트 전의 올랜도에서의 캠프에서 좋은 플레이를 펼쳤고 그에 따라 그는 드래프트에 그대로 남아 참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스카우트들에 의하면 그는 매우 뛰어난 볼핸들러이자 패서이고 공격을 잘 이끌어나가는 능력은 있지만 그의 운동능력과 NBA급의 득점 능력이 있는지는 의문부호였습니다.
세션스는 밀워키 산하 D-리그 팀인 툴사 식스티식서스에 보내집니다.
D-리그에서 그는 뛰어난 활약을 하며 NBA의 문을 두드립니다.
그는 2008년 1월에 밀워키로 콜업이 되는데 손목 부상 때문에 그의 데뷔는 늦춰지게 됩니다.
마침 주전 가드 모 윌리엄스와 후보 선수인 찰리 벨이 부상으로 결장이 불가피해지자 그의 출장시간은 늘어납니다.
그는 4월 2일에 워싱턴을 상대로 승부를 결정짓는 베이스라인에서의 점퍼를 성공시키며 드라마틱한 승리를 일궈냅니다.
4월 14일에는 시카고를 상대로 밀워키 프랜차이즈 기록인 24어시스트를 기록하였으며 이 때 20득점도 기록하며 20-20을 달성하게 됩니다.
2009년에는 첫 트리플 더블도 기록하는 등 자신의 재능을 유감없이 뽐냅니다.
그는 09-10 시즌에는 미네소타로 팀을 옮겼는데 이 곳에서 그는 루키 쟈니 플린과 함께 백업을 맡게 됩니다.
2010년 그는 이번에 클리블랜드로 트레이드가 되어 세번째 팀에서의 시즌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드래프트 순위가 가장 높았던 선수]
르브론 제임스가 없는 관계로 앤트완 재미슨이 1라운드 4번으로 지명된 기록이 가장 높은 기록이 되겠습니다.
재미슨은 2회 출연입니다.
[외국에서 온 선수]
총 3명이 있는데 이 중 2명은 루키로 앞선 코너에서 소개된 바 있습니다.
크리스티안 에옌가가 콩고민주공화국 출신이고 사마르도 사무엘스가 자메이카 출신이었습니다.
마지막 남은 선수는 바로 이 선수입니다.
바레장도 사복사진이 있군요. 앤더슨 바레장입니다.
브라질의 상투 에스피리투 주의 콜라티나 출신입니다.
그는 03-04시즌까지 미국 이외의 지역에서 선수생활을 합니다.
98년부터 2001년까지 그는 상 파울루의 프란카 바스켓볼 클럽에서 선수생활을 합니다.
프란카는 브라질 농구의 수도라고 불리울 만큼 전통이 있는 팀이었습니다.
이 곳에서 그의 실력은 진일보했고 그는 스페인의 FC 바르셀로나와 계약을 맺게 됩니다.
바르셀로나에서의 세 시즌동안 그는 점점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런 그를 올랜도가 2004년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30번으로 지명을 합니다.
그러나 그는 곧 클리블랜드로 트레이드되었고 첫 NBA 커리어를 클리블랜드에서 시작하게 됩니다.
그는 이 곳에서 Wild Thing 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는데 그의 거친 헤어스타일과 에너지 넘치고 끈질긴 플레이스타일이 빚어낸 별명이었습니다.
그는 루키시즌에 54게임을 출장하여 평균 4.9득점과 4.8리바운드를 기록합니다.
그는 11월과 2월에 부상이 찾아오며 경기를 결장하게 됩니다.
두번째 시즌에서는 재미있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2006년 2월 21일 입장한 퀴큰 론스 아레나의 클리블랜드 관중 20562명은 바레장의 독특한 헤어스타일을 기념하기 위해 그의 헤어스타일과 같은 가발을 쓰기로 했습니다.
기네스 기록 중에 단일 장소에서 많은 사람들이 가발을 착용하는 기록이 있는데 그 행사 자체는 성공적이었지만 정식으로 인정이 되지 않아 아쉽게도 오르지는 못했습니다.
그는 인사이드에서 솔리드하게 플레이해주며 클리블랜드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선수가 되었습니다.
2007년에 그는 제한적인 FA가 되었고 클리블랜드와 재계약에 실패하며 샬럿과 계약을 맺었지만 NBA 거래 룰에 의거하여(무슨 내용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클리블랜드에게 재계약을 위한 한 주가 더 주어졌고 클리블랜드는 그 기간 내에 바레장을 만족시키는 계약을 체결하여 그를 다시 지킬 수 있었습니다.
그는 07-08 시즌에서 평균 출장시간, 평균 리바운드, 평균 공격 리바운드, 평균 어시스트에서 모두 커리어 하이를 기록했고 여러번 커리어 하이를 갱신하는 등 쏠쏠한 활약을 펼쳤습니다.
08-09 시즌이 끝난 후 클리블랜드는 6년 계약을 맺으며 그를 다시 한번 클리블랜드 선수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09-10 시즌에는 여러 분야에서 커리어 하이와 동률 또는 그 것을 상회하는 기록을 올리며 활약했습니다.
[나를 빼놓으면 섭하지]
저는 이 선수를 한 번 선정해보고자 합니다.
모리스 윌리엄스, 줄여서 모 윌리엄스입니다.
그는 2003년 2라운드 47번으로 유타의 지명을 받았습니다.
모윌은 앨라배마 대학을 다녔는데 첫 시즌에 포인트 가드로 출장하여 평균 10.4득점과 4.5어시스트를 기록합니다.
그 역시 대학을 다 끝마치지 않고 도중에 드래프트에 참가하게 됩니다.
당시 그가 참가했던 2003년 드래프트는 르브론 제임스, 드웨인 웨이드, 카멜로 앤서니, 크리스 보쉬 등 쟁쟁한 멤버들이 가득했습니다.
그를 지명했던 유타는 첫 시즌동안 그를 출전시킨 뒤 다음 시즌에 그를 방출합니다.
그에게 밀워키가 접근했고 그는 밀워키와 계약을 맺게 됩니다.
마침 밀워키는 주전 포인트 가드인 T.J.포드가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해있던 터라 그 것을 메우기 위해 모윌을 선택한 것이었습니다.
모윌은 밀워키에서의 첫 시즌에서 평균 10.2득점과 6.1 어시스트를 기록했으며 여러 롤을 옮겨 다니며 활약했습니다.
2006년 오프 시즌에서 T.J.포드가 트레이드로 빠져나가자 그는 주전 라인업에 포함되었습니다.
그는 여러 분야에서 커리어 하이를 기록하며 자신의 진가를 드러냅니다.
2006년 12월 20일에는 마이애미와의 경기에서 자신의 첫 트리플 더블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19득점 11리바운드 10어시스트)
2008년 그는 삼각 딜을 통해 클리블랜드로 트레이드가 됩니다.
그는 클리블랜드로 와서 자신의 등번호를 바꾸게 되는데 그가 이제까지 달았던 25번이 클리블랜드에서는 영구 결번된 등번호이기 때문이었습니다.(마크 프라이스의 25번)
그는 25번에서 2번으로 자신의 등번호를 교체합니다.
2009년에는 올스타에 참가하기도 했고 2월 11일에는 피닉스 선즈를 상대로 자신의 득점 커리어하이인 44득점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르브론 제임스가 마이애미로 팀을 옮기며 모윌은 클리블랜드의 중요한 핵심선수가 되었습니다.
그와 함께 뛰었던 시절 르브론 제임스는 그에게 The Silent Assassin(조용한 암살자)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는데 그가 중요한 고비 때마다 득점을 올려주는 점에서 떠올렸다고 합니다.
[후기]
대단한 글은 아니고 너무나도 부끄러운 글이긴 하지만 글을 한 번 쓰고 나면 기력이 다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글을 쓸 때는 한번에 쫙 쓰는 것이 아니라 중간 중간에 임시저장하고 쉬기도 하고 때로는 적어놓고서 임시저장만 시켜놓고 다음에 쓰자 하고 쓴 적도 있습니다.
여튼 댓글로 좋은 말씀 해주시는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다음 글은 ABC 순서에 의해 댈러스 매버릭스가 될 예정입니다.
그리고 이 글 전의 시리즈 글들입니다.
1. 애틀랜타 호크스- /g2/bbs/board.php?bo_table=maniazine&wr_id=72769
2. 보스턴 셀틱스- /g2/bbs/board.php?bo_table=maniazine&wr_id=72885
3. 샬럿 밥캐츠- /g2/bbs/board.php?bo_table=nbatalk&wr_id=927004&sca=&sfl=&stx=&sst=&sod=&spt=0&page=2
4. 시카고 불스- /g2/bbs/board.php?bo_table=maniazine&wr_id=72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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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우승하러 왔다가 그야말로 ''새''된 재미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