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 그 선수』 신들린 듯한 자유투, 아이돌 매직의 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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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이 선수의 팀"이 어린 선수들이 주축이 된 팀이었다고는 해도..
그들이 가진 에너지라면 경험의 차이쯤은 가볍게 뛰어넘을 것 같았습니다..
프랜차이즈 최초의 파이널 무대, 1차전..
승부는 박빙으로 흐르고 있었지만 어린 그들은 너무나 잘 싸워주고 있었습니다..
아니.. 조금씩 승기를 잡아가고 있었습니다..
파이널 1차전이 가지고 있는 의미의 크기를 생각해본다면..
조금씩 우승이 가까워지는것만 같았습니다..
"어린 팀이었던 그들"만큼이나 어린 팬이었던 저는,
속으로 그들이 새로운 왕조를 만들어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4쿼터 종료 10초 전..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다재다능하며
샤프한 슈터이기도 했던 "그 선수"가 자유투를 얻어냈습니다..
1구 실패..
조금 긴장했던 탓일까요.. 첫 자유투를 놓쳤습니다..
2구 실패..
자유투가 강한 선수는 아니었지만.. 소심한 선수는 절대 아닌데..
조던의 공을 뺐었던 선수였는데.. 역시 파이널의 부담감은 엄청난가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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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직 후, 또 다시 "그 선수"가 자유투를 얻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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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구 실패..
급기야 선수 본인의 얼굴도 일그러지기 시작합니다..
뭔가 불안해지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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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구 실패..
이제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그들은 자유투로만 4점의 공격을 실패하며
노련한 상대팀에게 추격을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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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4쿼터 종료 직전 케니 스미스에게 동점 3점포를 얻어맞은 그들은
그렇게 흐름을 잃은채 연장전에서 완패를 당하며 파이널 1차전을 내줬고..
이 후 내리 3연패하며 4-0 스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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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그들의 처음이자 마지막 파이널 무대는 끝이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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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화려하고 강렬했던.. 그리고 그만큼 짧았던..
그래서 마치 꿈만 같았던 그들의 챔피언 도전기는 그렇게 끝이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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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정말 만약에..
"그 선수"가 던진 4개의 자유투 중,
단 한 개의 슛이라도 그물을 갈랐다면 애초에 연장전이 없었을테고..
그랬다면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제가 머릿속에 그리던 왕조의 탄생이 가능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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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만나볼 『그 때 그 선수』는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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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 앤더슨 (Nick Anderson)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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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올랜도 매직 최초의 프랜차이즈 플레이어!
.닉 앤더슨은 일리노이 대학의 스타 플레이어였습니다..
2년간 플레이를 하며 팀을 파이널 4까지 이끌었고
졸업반 시즌 평균 18득점 7.9리바운드를 기록하며 전미에 이름을 알립니다..
얼리 엔트리를 신청하여 NBA의 문을 두드리게 된 것은 1989년의 일이었습니다..
운명의 드래프트 데이..
닉 앤더슨의 이름은 11번째로 호명되었는데..
그를 지명한 팀은 바로 올랜도 매직이었습니다..
당시 올랜도 매직은 막 창단된 신생팀으로
프랜차이즈 역사상 최초의 드래프트에 나선 상황이었고..
닉 앤더슨은 올랜도 매직 최초의 프랜차이즈 플레이어로 기록되며
NBA 무대에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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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NBA 최고의 아이돌 팀, 올랜도 매직 결성!
모든 신생팀들이 그러하 듯,
올랜도 매직 역시 창단 초기에는 "동네북" 수준의 팀이었습니다..
앤더슨은 스캇 스카일스, 데니스 스캇 등과 함께 팀을 이끌었고
1991-1992시즌 평균 19.9득점 6.4리바운드,
1992-1993시즌 평균 19.9득점 6리바운드를 각각 기록하며
팀 내 에이스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하지만 앤더슨과 올랜도 매직에게 있어 하이라이트의 시작은
1992드래프트에서부터 출발합니다..
1992년 드래프트, No.1 픽을 갖게 된 매직은
훗날 "MDE"가 될 괴물센터 샤킬 오닐을 영입합니다..
오닐의 영입 이 후 앤더슨의 평균 득점은 크게 떨어졌지만(평균 15.8득점)
오닐의 조력자로 훌륭한 모습을 보이며
프랜차이즈 역사상 최초의 5할 승률(41승41패) 시즌을 보내는데 한 몫 합니다..
.이듬 해 1993년 드래프트에서 거짓말처럼 2년 연속 No.1 픽을 얻은 매직은
크리스 웨버를 뽑은 뒤에 페니 하더웨이와 트레이드 합니다..
코치 자리에는 브라이언 힐 감독이 합류합니다..
"페니-앤더슨-스캇-오닐" 로 이어지는 영건들의 라인업은
서서히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인기를 얻기 시작합니다..
시즌 50승 고지를 점령하며 프랜차이즈 사상 최초의 PO 진출도 해냈습니다..
페니-오닐이라는 젊은 가드-센터 콤비와 함께
앤더슨은 조금씩 팀을 위로 위로 끌어올렸습니다..
1994년의 여름, 올랜도 매직은
시카고 불스로부터 호레이스 그랜트를 영입하기에 이릅니다..
결국 1994-1995시즌 최고의 팀은 단연 올랜도 매직이었고
무려 57승을 기록하며 정규시즌을 마칩니다..
당시 올랜도 매직은 NBA 최고의 아이돌 팀이었으며
페니와 샤크는 이미 리그의 미래와 현재를 대표하는 수퍼스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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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명의 어린 수퍼스타와 외곽슛을 책임지던 데니스 스캇,
팀의 블루칼라 워크를 도맡았던 호레이스 그랜트 사이에서..
다재다능했던 앤더슨은 모두의 가교 역할을 하는 만능 가드로 대활약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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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비상과 함께 찾아온 자유투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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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시즌 PO 1라운드에서 보스턴 셀틱스를 만난 그들은
시리즈 스코어 3-1을 기록하며 간단히 1라운드를 통과했고..
PO 2라운드에서 만나게 된 팀은 바로 시카고 불스였습니다..
당시 불스는 매직 못지 않은 관심의 대상이었는데..
그 이유는 바로 "I'm back." 을 외치며 돌아오신 "그 분" 때문이었습니다..
언론에서는 "사실상의 결승전이다..",
"NBA의 현재와 미래의 대결이다.." 등등의 이야기거리를 양산하며
관심을 집중했고..
패기의 올랜도는 몸이 풀리지 않은 "그 분"과 시카고 불스를 4승 2패로 가볍게 제압하며
결과적으로 파이널 무대까지 진출하게 됩니다..
특히 조던과 매치업이 되었던 앤더슨은
조던의 볼을 뒤에서 스틸하며 팀의 역전승을 이끌어 내는 명장면을 연출하기도 했고
"45번의 그를 막는 것은 23번의 그를 막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는 인터뷰로 조던을 자극해,
결국 벌금을 물면서까지 조던이 23번 유니폼을 입으며 투지를 불태우게끔 하기도 했습니다..
비록 "45번의 조던" 이었지만 그를 훌륭히 막아서며 팀의 승리에 일조한 앤더슨은
어린 팀이었던 올랜도 매직을 이끌며 프랜차이즈 최초의 파이널 무대를 선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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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널 상대는 휴스턴 로케츠..
조던의 은퇴와 함께 비어있던 NBA 왕좌를 차지한 올라주원과 그 동료들은
2년 연속 NBA 챔피언 자리에 올라 왕조를 건설하려 했습니다..
노련미, 경험이라는 측면에서는 분명 휴스턴을 따라갈 수 없었던 올랜도 매직이었지만
당시 매직의 우세함을 점치는 사람들도 굉장히 많았습니다.. 아니 더 많았습니다..
PO를 치르는 동안 그들에게서 경험의 부족이 가져오는 약점들을
전혀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호레이스 그랜트와 함께 팀 내 리더 역할을 충실히 해오던
닉 앤더슨의 공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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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시작된 파이널..
올랜도의 홈에서 열린 1차전은 엄청난 박빙이었습니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었던 경기였습니다..
하지만.. 글의 서두에서 말씀드린 그 사건이 벌어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닉 앤더슨의 신들린 듯한 자유투로 인해 1차전을 내어준 매직은
그대로 스윕 당하며 최초의 파이널을 그렇게 허무하게 마감합니다..
하지만 올랜도의 팬들은 슬퍼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아직 어린 팀이었고,
NBA의 미래는 올랜도 매직의 것이라는데에
반론을 제기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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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번과 3번을 오가며 플레이 했던 앤더슨은 3점슛과 포스트 업 능력을 모두 가지고 있었습니다..샤크나 페니가 더블팀을 당했을 때, 킥아웃 패스를 받아 외곽슛을 성공시켰으며
드리블을 통해 직접 돌파를 성공시킬 수 있는 선수이기도 했습니다..
세련된 포스트 업과 준수했던 퍼스트 스텝, 스핀 무브도 훌륭했고
골밑 공략을 위한 드랍스텝 등의 파워무브에도 능한 선수였습니다..
그의 수비는 데뷔 당시부터 그 탄탄함을 인정받았습니다...
체격과 스피드가 뛰어났던 그는 훌륭한 1:1 디펜더였고
파울관리에도 능했습니다..(생애통산 평균 1.9개)
패싱레인을 읽는 눈이 좋아 스틸에도 능했고(생애통산 평균 1.4개)
매우 감각적인 수비수라는 평을 듣곤 했습니다..
골밑에 자리 잡은 샤크에게 넣어주는 앤트리 패스에도 능했으며,
속공을 위해 달려가는 페니에게 롱패스를 정확하게 날려줄 수 있는 선수이기도 했습니다..
스크린을 타고 돌아나가는 움직임도 훌륭했던 선수였습니다..
하지만 돌파에 이어지는 패싱아웃이나
더블팀, 트랩 디펜스에 빠졌을 시 공을 빼내는데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고..
애초에 2번 포지션 선수치고 자유투가 정확하지 못하다는 약점을 가진 선수이기도 했지만,
"파이널에서의 자유투 미스" 이 후로는
더욱 불안해진 자유투 성공률을 보이며 약점으로 지적받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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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깨져버린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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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람들의 기대는 단 1년만에 산산조각이 나버리고 말았습니다..
시범경기에서 맷 가이거와의 충돌로 손가락이 부러진 샤킬 오닐은 시즌의 절반을 결장하게 됩니다..
이런 위기의 상황에서 빛을 발한 것은 페니 하더웨이였습니다..
페니가 조던에 버금가는 대활약을 펼치며 팀은 위기를 딛고 시즌 60승을 기록합니다..
하지만 PO 동부 결승에서 "23번의 조던"에 의해 4-0 스윕을 당합니다..
실망스러움이 그들을 찾아왔지만 더 큰 위기는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리그 최고의 스타로 자리잡은 페니 하더웨이와
부상으로 주춤한 시즌을 보냈던 샤킬 오닐이 주도권 다툼을 하는 사이..
FA였던 샤크가 LA 레이커스로 팀을 옮겨버린 것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매직은 샤크가 아닌 페니를 선택했고..
페니를 중심으로 팀을 재편하려 했습니다..
지금에와서 생각해본다면 이 선택이 얼마나 큰 판단미스였는지를 알 수 있지만,
당시만해도 매직의 결정은 "미래를 위한 과감한 선택"이었다는 평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일은 거짓말처럼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팀의 중심으로 점찍은 페니가 부상의 늪에 빠져버렸습니다..
팀의 부진이 이어지면서 데니스 스캇과 호레이스 그랜트도 팀을 떠났습니다..
남겨진 앤더슨은 고군분투 해보지만,
팀의 상황을 반전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노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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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1999년의 여름, 올랜도는 리빌딩을 준비하며
페니 하더웨이와 함께 닉 앤더슨을 포기하기에 이릅니다..
올랜도 매직의 1세대가 막을 내리던 순간이었습니다..
앤더슨은 당시 모션 오펜스로 센세이션을 일으키던
새크라멘토 킹스로 이적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킹스 열풍의 중심에 있던 제이윌의 훌륭한 멘토가 되어주던 앤더슨은
킹스에서의 두 번째 시즌, 부상을 당하며 단 21경기 출장에 그쳤고
2001-2002시즌 멤피스 소속으로 단 15경기만을 치룬 뒤 커리어를 마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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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니-샤크로 대표되었던 올랜도 매직은 최고의 아이돌 팀이었습니다..
그들은 어느 곳에서도 사랑받는 팀이었고,
그런 올랜도 매직의 리더이자 최초의 프랜차이즈 플레이어였던 닉 앤더슨이었습니다..
비록 결과론적으로 "자유투 사건"으로 인해 팀과 본인의 꿈이 깨져버리게 되었지만,
앤더슨의 활약이 없었다면 매직의 파이널 진출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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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 앤더슨의 커리어는 올랜도 매직의 그것과 굉장히 닮아 있는 것 같습니다..
리그의 최약체 팀에서 순식간에 파이널 리스트가 되었던 올랜도 매직과 같이,
데뷔 이 후 계속해서 훌륭한 동료들을 만나며 위를 향해 달리기만 했던 닉 앤더슨이었습니다..
팀의 주축들이 매직을 떠나자마자 허무하리만치 급속도로 무너져내렸던 올랜도 매직과 같이,
올랜도를 떠나자마자 급속도로 무너져내리며 커리어를 마감했던 닉 앤더슨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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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저는 페니 하더웨이의 광적인 팬입니다..
해서 아직도 닉 앤더슨이라는 이름이 나올 때면 씁쓸함을 감추기 어려워집니다..
"그 때 자유투만 넣었더라면.. 샤크-페니의 올랜도가 NBA의 역사에 그들의 이름을 남길 수 있었을텐데 "
하는 아쉬움이 생기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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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너무나도 부질없는 "만약에.." 지만..
너무나 결정적인 순간에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러버린 그였지만
올랜도 최초의 프랜차이즈 플레이어이자 10시즌이라는 시간동안 팀에 헌신했던,
올랜도의 살아있는 역사와도 같은 선수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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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게 있어 너무나 큰 아쉬움을 안겨준 선수..
.『그 때 그 선수』, 오늘의 주인공은 닉 앤더슨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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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ck Anderson (1990-2002)
생애통산 800경기 출장(636 선발)
평균 14.4득점, 5.1리바운드, 2.6어시스트, 66.7%(자유투 성공률)
앤더슨.. 정말 자유투 언제봐도 너무 아쉬웠어요 ㅠ
참 그리운 선수네요 요 선수도.. 조던 막는거 영상으로 잠깐 봤는데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