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p
자동
NBA Maniazine
/ / / /
Xpert

『그 때 그 선수』 신들린 듯한 자유투, 아이돌 매직의 리더!

 
15
  7047
2008-05-22 18:32:14
그것은 정말 믿을 수 없는 장면이었습니다..

.
비록 "이 선수의 팀"이 어린 선수들이 주축이 된 팀이었다고는 해도..
그들이 가진 에너지라면 경험의 차이쯤은 가볍게 뛰어넘을 것 같았습니다..


프랜차이즈 최초의 파이널 무대, 1차전..
승부는 박빙으로 흐르고 있었지만 어린 그들은 너무나 잘 싸워주고 있었습니다..
아니.. 조금씩 승기를 잡아가고 있었습니다..
파이널 1차전이 가지고 있는 의미의 크기를 생각해본다면..
조금씩 우승이 가까워지는것만 같았습니다..

"어린 팀이었던 그들"만큼이나 어린 팬이었던 저는,
속으로 그들이 새로운 왕조를 만들어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4쿼터 종료 10초 전..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다재다능하며
샤프한 슈터이기도 했던 "그 선수"가 자유투를 얻어냈습니다..

1구 실패..
조금 긴장했던 탓일까요.. 첫 자유투를 놓쳤습니다..

2구 실패..
자유투가 강한 선수는 아니었지만.. 소심한 선수는 절대 아닌데..
조던의 공을 뺐었던 선수였는데.. 역시 파이널의 부담감은 엄청난가봅니다..
.
.
.
.


그 직 후, 또 다시 "그 선수"가 자유투를 얻어냈습니다..
.

1구 실패..
급기야 선수 본인의 얼굴도 일그러지기 시작합니다..
뭔가 불안해지기 시작합니다...
.

2구 실패..
이제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그들은 자유투로만 4점의 공격을 실패하며
노련한 상대팀에게 추격을 허용합니다..

.

결국 4쿼터 종료 직전 케니 스미스에게 동점 3점포를 얻어맞은 그들은
그렇게 흐름을 잃은채 연장전에서 완패를 당하며 파이널 1차전을 내줬고..
이 후 내리 3연패하며 4-0 스윕..
.

그렇게 그들의 처음이자 마지막 파이널 무대는 끝이 났습니다..
.

너무나 화려하고 강렬했던.. 그리고 그만큼 짧았던..
그래서 마치 꿈만 같았던 그들의 챔피언 도전기는 그렇게 끝이 났습니다...
.

.

만약에.. 정말 만약에..

"그 선수"가 던진 4개의 자유투 중,
단 한 개의 슛이라도 그물을 갈랐다면 애초에 연장전이 없었을테고..
그랬다면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제가 머릿속에 그리던 왕조의 탄생이 가능했을까요?

.
.
.
.
.
.
.
.
.
.
.
.
.
.
.
.
.
오늘 만나볼 『그 때 그 선수』는 바로
.
.
.
.
.
.
.
.
.
.
.
닉 앤더슨 (Nick Anderson) 입니다 !!

.

.

.

.

.

.

.

.

.

.

1. 올랜도 매직 최초의 프랜차이즈 플레이어!

.닉 앤더슨은 일리노이 대학의 스타 플레이어였습니다..

2년간 플레이를 하며 팀을 파이널 4까지 이끌었고
졸업반 시즌 평균 18득점 7.9리바운드를 기록하며 전미에 이름을 알립니다..
얼리 엔트리를 신청하여 NBA의 문을 두드리게 된 것은 1989년의 일이었습니다..

운명의 드래프트 데이..
닉 앤더슨의 이름은 11번째로 호명되었는데..
그를 지명한 팀은 바로 올랜도 매직이었습니다..

당시 올랜도 매직은 막 창단된 신생팀으로
프랜차이즈 역사상 최초의 드래프트에 나선 상황이었고..
닉 앤더슨은 올랜도 매직 최초의 프랜차이즈 플레이어로 기록되며
NBA 무대에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

.

.

.

.

.

.

.

.

.

.

2. NBA 최고의 아이돌 팀, 올랜도 매직 결성!

모든 신생팀들이 그러하 듯,
올랜도 매직 역시 창단 초기에는 "동네북" 수준의 팀이었습니다..

앤더슨은 스캇 스카일스, 데니스 스캇 등과 함께 팀을 이끌었고
1991-1992시즌 평균 19.9득점 6.4리바운드,
1992-1993시즌 평균 19.9득점 6리바운드를 각각 기록하며
팀 내 에이스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하지만 앤더슨과 올랜도 매직에게 있어 하이라이트의 시작은
1992드래프트에서부터 출발합니다..

1992년 드래프트, No.1 픽을 갖게 된 매직은
훗날 "MDE"가 될 괴물센터 샤킬 오닐을 영입합니다..
오닐의 영입 이 후 앤더슨의 평균 득점은 크게 떨어졌지만(평균 15.8득점)
오닐의 조력자로 훌륭한 모습을 보이며
프랜차이즈 역사상 최초의 5할 승률(41승41패) 시즌을 보내는데 한 몫 합니다..

.이듬 해 1993년 드래프트에서 거짓말처럼 2년 연속 No.1 픽을 얻은 매직은
크리스 웨버를 뽑은 뒤에 페니 하더웨이와 트레이드 합니다..
코치 자리에는 브라이언 힐 감독이 합류합니다..

"페니-앤더슨-스캇-오닐" 로 이어지는 영건들의 라인업은
서서히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인기를 얻기 시작합니다..
시즌 50승 고지를 점령하며 프랜차이즈 사상 최초의 PO 진출도 해냈습니다..
페니-오닐이라는 젊은 가드-센터 콤비와 함께
앤더슨은 조금씩 팀을 위로 위로 끌어올렸습니다..

1994년의 여름, 올랜도 매직은
시카고 불스로부터 호레이스 그랜트를 영입하기에 이릅니다..
결국 1994-1995시즌 최고의 팀은 단연 올랜도 매직이었고
무려 57승을 기록하며 정규시즌을 마칩니다..

당시 올랜도 매직은 NBA 최고의 아이돌 팀이었으며
페니와 샤크는 이미 리그의 미래와 현재를 대표하는 수퍼스타였습니다..

.

.

.두 명의 어린 수퍼스타와 외곽슛을 책임지던 데니스 스캇,
팀의 블루칼라 워크를 도맡았던 호레이스 그랜트 사이에서..
다재다능했던 앤더슨은 모두의 가교 역할을 하는 만능 가드로 대활약했습니다..

.


.

.

.

.

.

.

.

3. 비상과 함께 찾아온 자유투 사건

.
1995시즌 PO 1라운드에서 보스턴 셀틱스를 만난 그들은
시리즈 스코어 3-1을 기록하며 간단히 1라운드를 통과했고..

PO 2라운드에서 만나게 된 팀은 바로 시카고 불스였습니다..

당시 불스는 매직 못지 않은 관심의 대상이었는데..
그 이유는 바로 "I'm back." 을 외치며 돌아오신 "그 분" 때문이었습니다..

언론에서는 "사실상의 결승전이다..",
"NBA의 현재와 미래의 대결이다.." 등등의 이야기거리를 양산하며
관심을 집중했고..

패기의 올랜도는 몸이 풀리지 않은 "그 분"과 시카고 불스를 4승 2패로 가볍게 제압하며
결과적으로 파이널 무대까지 진출하게 됩니다..

특히 조던과 매치업이 되었던 앤더슨은
조던의 볼을 뒤에서 스틸하며 팀의 역전승을 이끌어 내는 명장면을 연출하기도 했고
"45번의 그를 막는 것은 23번의 그를 막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는 인터뷰로 조던을 자극해,
결국 벌금을 물면서까지 조던이 23번 유니폼을 입으며 투지를 불태우게끔 하기도 했습니다..


비록 "45번의 조던" 이었지만 그를 훌륭히 막아서며 팀의 승리에 일조한 앤더슨은
어린 팀이었던 올랜도 매직을 이끌며 프랜차이즈 최초의 파이널 무대를 선사합니다..


.

.

.파이널 상대는 휴스턴 로케츠..
조던의 은퇴와 함께 비어있던 NBA 왕좌를 차지한 올라주원과 그 동료들은
2년 연속 NBA 챔피언 자리에 올라 왕조를 건설하려 했습니다..

노련미, 경험이라는 측면에서는 분명 휴스턴을 따라갈 수 없었던 올랜도 매직이었지만
당시 매직의 우세함을 점치는 사람들도 굉장히 많았습니다.. 아니 더 많았습니다..

PO를 치르는 동안 그들에게서 경험의 부족이 가져오는 약점들을
전혀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호레이스 그랜트와 함께 팀 내 리더 역할을 충실히 해오던
닉 앤더슨의 공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
그렇게 시작된 파이널..
올랜도의 홈에서 열린 1차전은 엄청난 박빙이었습니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었던 경기였습니다..

하지만.. 글의 서두에서 말씀드린 그 사건이 벌어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닉 앤더슨의 신들린 듯한 자유투로 인해 1차전을 내어준 매직은
그대로 스윕 당하며 최초의 파이널을 그렇게 허무하게 마감합니다..

하지만 올랜도의 팬들은 슬퍼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아직 어린 팀이었고,
NBA의 미래는 올랜도 매직의 것이라는데에
반론을 제기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 없었습니다..


.

.

.

2번과 3번을 오가며 플레이 했던 앤더슨은 3점슛과 포스트 업 능력을 모두 가지고 있었습니다..
샤크나 페니가 더블팀을 당했을 때, 킥아웃 패스를 받아 외곽슛을 성공시켰으며
드리블을 통해 직접 돌파를 성공시킬 수 있는 선수이기도 했습니다..

세련된 포스트 업과 준수했던 퍼스트 스텝, 스핀 무브도 훌륭했고
골밑 공략을 위한 드랍스텝 등의 파워무브에도 능한 선수였습니다..

그의 수비는 데뷔 당시부터 그 탄탄함을 인정받았습니다...
체격과 스피드가 뛰어났던 그는 훌륭한 1:1 디펜더였고
파울관리에도 능했습니다..(생애통산 평균 1.9개)

패싱레인을 읽는 눈이 좋아 스틸에도 능했고(생애통산 평균 1.4개)
매우 감각적인 수비수라는 평을 듣곤 했습니다..

골밑에 자리 잡은 샤크에게 넣어주는 앤트리 패스에도 능했으며,
속공을 위해 달려가는 페니에게 롱패스를 정확하게 날려줄 수 있는 선수이기도 했습니다..
스크린을 타고 돌아나가는 움직임도 훌륭했던 선수였습니다..


하지만 돌파에 이어지는 패싱아웃이나
더블팀, 트랩 디펜스에 빠졌을 시 공을 빼내는데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고..
애초에 2번 포지션 선수치고 자유투가 정확하지 못하다는 약점을 가진 선수이기도 했지만,
"파이널에서의 자유투 미스" 이 후로는
더욱 불안해진 자유투 성공률을 보이며 약점으로 지적받기도 했습니다..

.

.

.

.

.

.

4. 깨져버린 꿈

.
그러나.. 사람들의 기대는 단 1년만에 산산조각이 나버리고 말았습니다..


시범경기에서 맷 가이거와의 충돌로 손가락이 부러진 샤킬 오닐은 시즌의 절반을 결장하게 됩니다..
이런 위기의 상황에서 빛을 발한 것은 페니 하더웨이였습니다..
페니가 조던에 버금가는 대활약을 펼치며 팀은 위기를 딛고 시즌 60승을 기록합니다..

하지만 PO 동부 결승에서 "23번의 조던"에 의해 4-0 스윕을 당합니다..
실망스러움이 그들을 찾아왔지만 더 큰 위기는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리그 최고의 스타로 자리잡은 페니 하더웨이와
부상으로 주춤한 시즌을 보냈던 샤킬 오닐이 주도권 다툼을 하는 사이..
FA였던 샤크가 LA 레이커스로 팀을 옮겨버린 것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매직은 샤크가 아닌 페니를 선택했고..
페니를 중심으로 팀을 재편하려 했습니다..
지금에와서 생각해본다면 이 선택이 얼마나 큰 판단미스였는지를 알 수 있지만,
당시만해도 매직의 결정은 "미래를 위한 과감한 선택"이었다는 평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일은 거짓말처럼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팀의 중심으로 점찍은 페니가 부상의 늪에 빠져버렸습니다..
팀의 부진이 이어지면서 데니스 스캇과 호레이스 그랜트도 팀을 떠났습니다..
남겨진 앤더슨은 고군분투 해보지만,
팀의 상황을 반전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노력이었습니다..

.

.결국 1999년의 여름, 올랜도는 리빌딩을 준비하며
페니 하더웨이와 함께 닉 앤더슨을 포기하기에 이릅니다..
올랜도 매직의 1세대가 막을 내리던 순간이었습니다..

앤더슨은 당시 모션 오펜스로 센세이션을 일으키던
새크라멘토 킹스로 이적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킹스 열풍의 중심에 있던 제이윌의 훌륭한 멘토가 되어주던 앤더슨은
킹스에서의 두 번째 시즌, 부상을 당하며 단 21경기 출장에 그쳤고
2001-2002시즌 멤피스 소속으로 단 15경기만을 치룬 뒤 커리어를 마감합니다..


.

.

.

.

.페니-샤크로 대표되었던 올랜도 매직은 최고의 아이돌 팀이었습니다..
그들은 어느 곳에서도 사랑받는 팀이었고,
그런 올랜도 매직의 리더이자 최초의 프랜차이즈 플레이어였던 닉 앤더슨이었습니다..

비록 결과론적으로 "자유투 사건"으로 인해 팀과 본인의 꿈이 깨져버리게 되었지만,
앤더슨의 활약이 없었다면 매직의 파이널 진출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

.

.닉 앤더슨의 커리어는 올랜도 매직의 그것과 굉장히 닮아 있는 것 같습니다..
리그의 최약체 팀에서 순식간에 파이널 리스트가 되었던 올랜도 매직과 같이,
데뷔 이 후 계속해서 훌륭한 동료들을 만나며 위를 향해 달리기만 했던 닉 앤더슨이었습니다..

팀의 주축들이 매직을 떠나자마자 허무하리만치 급속도로 무너져내렸던 올랜도 매직과 같이,
올랜도를 떠나자마자 급속도로 무너져내리며 커리어를 마감했던 닉 앤더슨이었습니다..

.

.

사실 저는 페니 하더웨이의 광적인 팬입니다..
해서 아직도 닉 앤더슨이라는 이름이 나올 때면 씁쓸함을 감추기 어려워집니다..

"그 때 자유투만 넣었더라면.. 샤크-페니의 올랜도가 NBA의 역사에 그들의 이름을 남길 수 있었을텐데 "
하는 아쉬움이 생기기 때문이죠..

.

.

.

물론 너무나도 부질없는 "만약에.." 지만..
너무나 결정적인 순간에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러버린 그였지만
올랜도 최초의 프랜차이즈 플레이어이자 10시즌이라는 시간동안 팀에 헌신했던,
올랜도의 살아있는 역사와도 같은 선수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

.

.


제게 있어 너무나 큰 아쉬움을 안겨준 선수..

.『그 때 그 선수』, 오늘의 주인공은 닉 앤더슨이었습니다..

.

.

.

.

Nick Anderson (1990-2002)

생애통산 800경기 출장(636 선발)
평균 14.4득점, 5.1리바운드, 2.6어시스트, 66.7%(자유투 성공률)









17
Comments
2008-05-22 19:27:00

앤더슨.. 정말 자유투 언제봐도 너무 아쉬웠어요 ㅠ

참 그리운 선수네요 요 선수도.. 조던 막는거 영상으로 잠깐 봤는데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2008-05-22 21:40:41

파이널 자유투 안습.

그 뒤로 슈팅가드 포지션인 선수가 자유투 60%대를 기록했던걸로 기억.

정신적인 부분이 무너졌던 거 같더군요.

여러모로 그 때 자유투 사건 비포어 애프터로 닉 앤더슨의 커리어도 나뉘는거 같아요.

2008-05-22 22:19:42

이분은 자유투 때문에 너무 묻히는 감이 있죠...
쩝... 농구도 멘탈?

2008-05-22 22:38:03

언제나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그때 그 선수' 시리즈....
오늘도 좋은 글 잘 봤습니다.

덧붙여 말씀드리자면, 당시 파이널은 올랜도의 약간 우세가 아니라 완전우세 로 예상되었던 듯 합니다.
그만큼 당시 올랜도의 위력은 대단했고,
(제가 유잉을 좋아했기에 더더욱 기억이 납니다. 유잉에게 인유어 페이스를 먹이던 페니.... -_-)
파이널까지 오긴 했지만 서부 6위였던 휴스턴은 상대적으로 열세인 것으로 보였죠.

그리고 1차전 역시 올랜도가 전반에만 20점 차 정도 큰 리드를 잡다가 슬금슬금 점수차를 까먹었고,
다시 리드를 잡았지만 마지막에 앤더슨의 자유투 사건으로 연장으로 가는 빌미를 제공하고 말았죠.
당시 경기를 결정짓는 버저비터 탭슛을 넣는 올라주원의 모습이 선하네요.
"슛을 하는 순간 온 세상이 정지해있는 것 같았다." 뭐 이런 인터뷰를 했던 것 같습니다.

좋은 글 올려주신 포인트가드 님 감사합니다~~

2008-05-23 01:55:38
추억의 선수네요... 닉 앤더슨...
귀신에 홀린 듯 자유투를 모두 날려버린 후 미칠 듯이 허공을 향하던 그의 표정...
저는 정말 평생토록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 처참한 심정 잘 알거든요... 전 제 플레이에 대한 압박감이 상당한 편이라서~
동농만 하더라도 그 부담감이 장난이 아닐 때가 많았는데...
내 플레이가 나빠서 우리 팀이 패했다... 그 자책감이란 정말 엄청난 고통입니다.
닉 앤더슨도 자유투 사건 이후 오래도록 그 악몽에 시달렸다고 알고 있습니다.
아니, 그 후 커리어 전체를... 은퇴한 후 지금까지도, 아니 어쩌면 평생을...
일종의 '치명적 데미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평생토록 완전히 치유하기 어려운, 너무나도 어마어마한 데미지...
뇌의 일부분이 회복불능의 손상을 입게 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요.
그리고... 제 개인적 생각이긴 합니다만, 자유투 넷 중 하나를 넣었다고 한다면 그 1차전은 거의 잡았겠지만...
그 시리즈 전체를 잡아내고 우승할 수 있었을까... 그 부분은 이렇다 저렇다 확언하기 어렵지 않나 싶습니다.
물론, 1차전을 잡아냈다면 상황은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좋아졌을 테지만...
젊은 팀이었던 만큼 1차전 분패의 충격이 어느 정도였을까~ 그 부분도 알 것 같긴 합니다...
그 분을 함부로 자극하면 진짜 좋을 게 없다는 건 새삼 말할 필요도 없는...
닉의 그 인터뷰 이후 23번으로 돌아오신 그 분이 분노의 (두 번째)쓰리핏을 달성해내고야 말았던 그걸 생각하면, 참;;
2번의 마지막 문장 '미래라와 현재를' 오타가 있네요...
오늘도 멋진 글 너무 잘 봤습니다...
선정하는 플레이어들마다 어쩌면 그리도 탁월하신지...
잘 보고 갑니다 추천!!!
2008-05-23 03:15:53

올란도 프랜차이즈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이였던, 이 시리즈는 그야말로 닉엔더슨이 시리즈 전체를 말아먹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였조. 한골차 패배를 당했던 1차전에서는 그래도 마지막 4연속 자유투 미스를 하기 전까지는 훌륭한 활약을 보여주었죠, 아마 당시 리그에서 가장 위력적인 3옵션이였을 겁니다. 하지만 나머지 2,3,4 차전에서는 완전 난사모드... 2차전과 3차전에서는 1차전의 책임을 만회하려고 했는지 엄청나게 던져대면서도 이미 평정심을 잃어서인지 하나도 안들어가더군요, 특히 2차전에서는 매치업이 샘카셀이였는데, 그날 샘카셀이 제대로 터지는 날이기도 했지만, 엔더슨이 수비에서 너무 어리버리하게 했죠,결국 4차전에서는 풀이죽어서 경기내내 소극적인 플레이만 하더군요,

이시리즈가 경기결과는 4:0이지만, 경기내용 자체는 접전이였기때문에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1차전은 그야말로 한골차 승부였는데, 엔더슨의 4연속 자유투 실패가...정말 4개중에 한개만 넣었어도, 올란도가 승리를 가져갈수 있는 상황이였는데...2차전도 잘싸웠지만, 정말 요즘의 오비완모드의 마누를 연상케하는 샘카셀의 대폭주를 도저히 막을수가 없었고, 3차전도 정말 명승부였는데, 역시 한골차싸움이였조, 솔직히 이경기는 정말 올란도가 가져갈줄 알았습니다, 종료 20초정도 남겨놓고 하더웨이 to 샤크 앨리웁나오면서 분위기 완전 올란도로 가져왔는데, 종료 10초남겨놓고 오리

2008-05-23 03:42:40

아 그리고 보니 그때 파이널은 데니스 스캇과 케니 스미스, 조지아테크 에이스 선후배 출신의 맞대결로도, 흥미를 끌었었죠, 결과적으로 데니스 스캇은 이때 포크레인 뜨면서 큰경기에 약한게 아니냐는 지적을 받더니, 다음해에 컨파에서 피펜에게 제대로 발리면서 새가슴of새가슴, 인증을 받았었죠.

2008-05-23 13:25:24

아아... 기억난다.. 닉 앤더슨! 좋은 글엔 추천 꽉!

2008-05-23 14:17:50

또 감동의 갈.... 닉 앤더슨. 불즈를 응원하던 제게는 악몽과 같았던 재간꾼이었죠....

2008-05-23 15:31:28

항상 포인트가드님의 이글을 보면 솔직히 부럽습니다.
저는 2000년대에서야 엔비에이를 접했기에 90년대는 사실 다운받아 본게 다거든요.
그래서 포인트가드님의 이 시리즈를 볼때마다 생각합니다 '나도 10년뒤엔 이시리즈를 해봐야지!'라고요
각설하고 매번 좋은글 정말정말 감사드립니다.

2008-05-23 18:04:50

닉 엔더슨...

45번의 조던은 하나도 무섭지 않다라는 그의 인터뷰를 보고 "누구냐 넌" 했었던 저였지요.
포인트 가드님 글 처럼,
당시의 올랜도는 딱히 안티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물론 저는 오닐의 괴물스런 모습과 상대적으로 안스러웠던 패트릭 때문에 오닐은 그다지 좋아하진 않았지만, 정말 페니의 안티는 정말 없었다고 기억되네요.
아마 페니의 엄청난 인기도 올랜도 프론트가 페니를 선택한 요인 중 하나라고 봅니다.

당시 그의 자유투는 두고두고 기억되고 있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2008-05-23 19:36:59

좋은 글 감사합니당~~

영화를 보는거 같은 글이네용

2008-05-24 01:29:22

닉 앤더슨....게임속에서 잘 써먹고 정작 경기는 한두번 밖에 못봤다는.....;;;;;;;;;;;;;;
afkn을 위주로 nba를 봐야했던 그 시절에는 사실 잘 챙겨보질 않았었습니다.
어렴풋이 기억나네요. 좋은 글 감사드리면서 추천한방을 날리고 갑니다. ^^

2008-05-25 17:13:20

제가 알기론 샤크와 페니의 주도권싸움때문이 없었던걸로 압니다..
페니가 한창 잘나갈때 샤크가 부상에서 돌아온다면 자긴 자기 본 역활에 충실하고싶다..라고 인터뷰 했었죠..
올랜도측에선 샤크가 아닌 페니를 선택한게 아닙니다
올랜도측의 구애에도 불구하고 샤크가 LA와 계약한걸로 알고있습니다..
그당시 샤크가 농구보다는 헐리우드 영화 진출에 더관심이 많다..
말들이 많았었죠..욕도 많이 얻어먹었고
당연히 재계약을 확신하고있었기에..하지만 의외에 LA재계약
우승을 원한다면 올랜도에 남았을것이다..
하지만 우승이 아닌 샤크에겐 농구보다도 영화에 더흥미를 느끼는거같더라
그당시 기사 많이 되었습니다.
물론 그후 리그 3연패를 했지만..과거 왜곡은 바로 되어야된다 봅니다..

WR
2008-05-25 17:46:27

과거 왜곡이라..;;
그냥 잘못 알고 있는 것 같다고 말씀해주셨으면 좋았을텐데;; 왜곡;;

1. 저는 샤크와 페니의 주도권 싸움이 없었다고 보지 않습니다.. (훗날 이런저런 일화들을 많이 들을 수 있었죠)

2. 매직이 샤크에게 재계약을 타진한 것도 사실이고, 샤크가 헐리우드의 LA로 떠난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매직이 레이커스 수준의 계약을 오퍼한 것은 아닙니다..
매직이 '기를 쓰고' 잡으려 했다면 잡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 샤크는 루키 계약이 막 끝난 제한적 FA 상태였습니다..
최초 올랜도 매직은 샤크에게 7년 1억 1천5백만의 계약을 제시합니다만
레이커스가 샤크에게 7년 1억 2천만의 계약을 오퍼합니다..

매직이 매치시켰다면 샤크는 7년간 올랜도 매직 소속으로 플레이해야 했던 것이죠..
하지만 매직은 그 정도 수준의 계약은 샤크에게 오버페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큰 부상으로 고생을 한 뒤라 현지 포럼에서는 '먹튀' 가능성까지 제기 됐었고,
샤크에게 그런 대형 계약을 안겨주면 페니를 잡지 못할 것이라는 반대 여론도 드셌습니다..

결국 매직은 레이커스의 계약에 매치시키는 오퍼를 던지지 않았습니다.. 놔준거죠..

당시에 헐리웃을 동경하여 샤크가 떠난다는 논조의 기사들이 많이 올라오기도 했지만,
이 후에 샤크가 LA에서 3연패를 할 무렵에는
"매직이 샤크의 가치를 너무 저평가했다" 는 논조의 기사들도 많이 올라왔었죠...
"페니가 아닌 샤크를 선택했어야 했다" 는 논조의 기사들도 심심찮게 찾을 수 있었구요...

그리고 왜곡이라는 단어는 어째 듣기가 조금 거북한 것이 사실이네요.. ^^;
왜곡이라는 단어는 사실과 다른 해석이라는 의미와 그릇된 해석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단어입니다..

좀 더 부드러운 단어를 선택해주셨으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2008-05-26 03:22:30

왜곡이라는 단어 선택이 부적절했네요...
역활 - > 역할

2008-05-26 13:19:28

좋은 글 잘보고 갑니다.. 그

2008-05-26 22:14:52

드디어 나왔군요~ 이재밌고 좋은 글~

앤더슨선수 참 좋은 선수였죠. 스캇과 함께 두 쌍포가 얼마나 위력적이였는지
실감나게 해준 선수였죠..

아쉽게도. 파이널때의 자유투로...
뭐 그래도. 스윕만 면했을 꺼라는 견해입니다;

95-96시즌 이후에는 올랜도에 페니때문에 관심을 두긴 했지만.
제 자신에게 많이 잊혀졌었는데..
새삼 새록새록 떠올르게 해주시네요~

감사드려요~

*** 다음 연재글을 기다리며~

2008-05-30 18:29:50

매직은 그 후에도 티맥을 놓치는 어이없는... - _-;;;

denlal
34
7183
24-05-02
denmin
103
6789
24-05-01
denlal
47
6731
24-04-30
ncaa
87
16218
24-04-30
denlal
67
6212
24-04-30
min
70
8606
24-04-30
bos
43
3951
24-04-29
75
9794
24-04-29
bosmia
54
3706
24-04-29
cleorl
40
3739
24-04-28
cleorl
36
3950
24-04-27
dengsw
54
6211
24-04-26
bosmia
97
7889
24-04-25
minphx
45
4872
24-04-25
nyk
68
6109
24-04-23
nykphi
34
3883
24-04-21
miaphi
43
7803
24-04-18
bos
81
10434
24-04-16
min
85
15476
24-04-16
atlbkn
41
6948
24-04-13
검색 대상
띄어쓰기 시 조건









SERVER HEALTH CHECK: 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