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중 가장 기분 좋은 시간(길고양이와의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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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6-02-21 17:32:50
2016년입니다! 하고 한지 벌써 한 달도 지나고 이젠 구정 연휴를 앞두고 있네요. 참 세월이 빠르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요 며칠 동안 매니아 내에서는 흔히 말하는 '헬조선'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오고, 모두 힘든 상황들을 공유하면서 조금은 게시판의 분위기가 무거웠던 것 같습니다.
물론, 저 역시도 힘들게 살고 있습니다. 행복한가 묻는다면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 행복하지 않겠지만 저 혼자만의 행복을 찾자면 행복하다고 말을 하고 싶습니다.
힘들고, 지친 일상, 박장대소는 커녕 어쩌면 미소 한 번 짓고 지나치기 어려울 수도 있을 정도로 팍팍한 현실 속에서도 그 속에서 작은 행복을 찾기 위해서 저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조금이나마 여러분들의 얼어붙은 마음, 힘든 일상에 잔잔한 미소를 드릴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싶어서 최근에 제가 하루 중에 가장 기분 좋은 시간, 마음 터놓고 대화를 하는 시간을 여러분께 공유해보고자 합니다.
최근에는 몸이 조금 좋지 못해서 게시물 포스팅을 많이 하진 못하고 있지만, 펀 게시판에 저는 동물관련한 자료들을 정말 많이 올렸습니다. 개나 고양이를 좋아합니다. 그 외에도 동물들이라면 다 좋아하고, 항상 어디 여행이나 관광지를 가도 동물원이 있는지를 먼저 찾아보곤 합니다. 작년부터 계속 부모님께 고양이 한 마리 키우면 안될까 하고 허락을 맡아보려 했지만 누군가 식구로 맞이하고, 책임을 져야한다는 것, 생명을 거두는 것을 그렇게 가벼이 해선 안된다는 말씀과 함께 털 및 배설물 등 그런데 아주 민감하신 어머니께서는 보는 것은 좋으나 키우는 것은 늘 반대를 하셨습니다. 아버지한테 슬쩍 여쭈어봐도 아버지도 반대가 심하셨습니다.
사실, 제가 초등학교 때부터 이사오기 전까지 개를 키웠고, 중간에 햄스터도 키우는 등 동물은 많이 키웠으나 나중엔 결국 부모님의 일거리가 되는 그런 일이 많다보니 제가 당시에 너무 무책임 했다는 것을 느끼고는 했습니다. 지금은 이제 책임을 지고 키우겠다고 말씀을 드려도 책임 문제보다도 위생 등의 문제가 더 걸림돌이 되고 있네요.
그렇게 저는 고양이가 키우고 싶은 마음을 고양이 사진 등을 보면서 해소하고, 인스타그램이나 이런 곳에서도 예쁜 고양이 사진 자주 올려주는 사람들 팔로우 해놓고 챙겨보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파트 놀이터에 저녁에 나가봤는데요, 고양이 한 마리가 있더라구요. 뭔가 아그작 아그작 먹고 있던데 누군가 사료를 주고 갔나봅니다. 우리 아파트에도 길고양이가 있구나 하는 것과 먹이를 주는 캣맘이라 불리는 사람도 있구나 동시에 알게 됐습니다. 주말 아침에 나갔다가 고양이를 마주쳤는데요, 이 고양이는 사람을 잘 따르더라구요. 저는 딱히 먹이를 준 적도 없고 한데 사람 주변에 슬쩍 와서 떠보는 그런 움직임을 보이더라구요. 어떻게 현관까지 고양이가 따라왔습니다. 먹이도 따로 챙겨가지 않았고, 집에 갔다오면 이미 가버리고 없을 것 같고 집으로 가면 맛있는거 줄게 가자 하고 손짓과 아무리 따뜻하게 불러도 좀처럼 들어오지 못하고 꼭 자동문이 닫히려고 할 때 들어오려다가 문에 놀라서 도망가고 그런 일을 반복했습니다.
어머니께 전화해서 멸치 몇 마리 챙겨서 내려오시라고 전화를 드렸고, 처음으로 먹이를 줘봤습니다. 손으로 주는 것은 잘 안먹고 바닥이 놓은 것만 먹다가 한 두 마리 먹더니 마음을 열었는데 손에 있는 것도 잘 받아먹었습니다.
개랑은 친하게 지내본 적이 많지만 고양이하고 친해본 적이 없어서 이상하게 그 고양이의 마음을 얻고 싶다,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고양이에게 먹이를 종종 챙겨줘보자 하는 마음을 먹게 됐고, 마트에 갔다가 고양이 통조림을 2개 정도 사게 됐습니다. 저녁시간이나 낮시간이나 한 번씩 지날 때 고양이가 자주 나오던 곳에 가봐도 좀처럼 만나지지가 않더군요. 2~3일 정도는 거의 못만났습니다.
그럼에도 그 통조림을 어디 다른 곳에 두고 오진 않았습니다. 저는 고양이가 좋아서 먹이를 주는 것이지만 다른 사람들은 고양이를 싫어할 수도 있고, 그 고양이가 아닌 다른 고양이들이 그 먹이를 먹는다면 주변에 다른 고양이들이 몰려 들어서 그 고양이마저도 살 곳을 잃어버리는, 미움을 받는 존재가 될까 싶어서 꼭 만나면 주려고 했습니다.
접시와 통조림을 늘 챙겨다녔는데요, 어느날 만나서 드디어 밥을 줬습니다. 처음 먹어보는 통조림이라 그런지 정말 맛있게 먹는데, 괜히 기분이 좋았습니다.
한 번 이렇게 먹이를 주기 시작하니 뭔가 갑자기 의무감이 생기더군요. 내가 밥을 주지 않으면 고양이가 굶을지도 모른다 그런 마음에 시간이 날 때 마다 나가봤는데, 저 말고도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는 아저씨, 아주머니가 계셨습니다. 이미 더 오래전부터 먹이를 주신 것 같았습니다. 괜히 제 마음이 조금 안심이 됐습니다. 내가 아니면 굶어죽는다 생각했는데 누군가 챙겨주는 사람이 있구나, 제법 사랑받는 녀석이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길고양이와 인연을 맺은지 지금 거의 3달이 됐습니다. 이제는 멀리서 저만 다가가도 알아보고 야옹 하면서 쫒아 뛰어오고 벤치에 앉아있으면 그저 좋다고 다리에 와서 비비고, 헤딩하고 배를 보이면서 누워서 만져달라고 그러고 집에 갈 때면 가지말라고 발을 잡기도 하고, 집 앞까지 고양이가 배웅도 나오고, 가끔은 무릎 위로도 올라오기도 하면서 교감을 나눈 제법 친한 친구가 됐습니다.
최근에 엄청 추웠던 적이 있었고, 갑작스럽게 입원을 해서 며칠 못보고 그랬는데요, 다시 찾아가니 왜 이제왔냐는 듯 더 반갑게 맞아주고 하는 모습을 보니 괜히 제 마음이 짠해지고, 이것도 정이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군가 저를 기다려준다는 것이 이렇게 기쁜 일이라는 것을 느끼기도 했구요. 걔는 못알아듣겠지만, 먹이먹고 옆에 앉아서 쉴 때 이런 저런 이야기들 그냥 고양이한테 털어놓으면 알아듣는지, 못듣는지 모르지만 한 번씩 아이컨택하고 야옹~ 해주고 그러니깐 제 기분도 괜히 후련해지고 그렇더라구요.
그래서 요즘도 저는 저녁먹고 산책도 할 겸 가끔은 멸치를, 마트에 갈 일이 있으면 한 두개 사왔던 통조림을 만나서 주고 있습니다. 거의 매일 매일 만날 수 있는, 나름 그 시간의 루틴이 된 것 같습니다. 저나 고양이나 둘 다요.
한 가지 걱정인 것은 어머니께서 고양이 보시더니 처음 볼 때랑 다르게 배가 많이 부른게 이게 수상하다고 새끼 아무래도 가진 것 같다고 그러던데 괜히 걱정입니다. 이 추운 날에 제대로 된 보금자리는 있는지도 모르겠고, 제가 봤을 땐 얘도 아직 어려보이는데 엄마가 된다니 자기 배 채우기도 힘든데 이제 새끼까지 책임을 져야하는 현실을 잘 이겨낼 수 있을지 말예요.
슬쩍슬쩍 농담삼아 이 고양이를 집으로 데려오자고 어머니께 설득을 하고 있습니다만, 쉽진 않네요. 어머니도 이 고양이 귀여운놈 이렇게 말씀하시고 보는 것은 좋아하시는데 아무래도 키우는 것은 좀 그러신 것 같아요.
어찌됐든 고양이와 처음으로 교감을 이뤄내서 그런지 신기합니다. 그래서 하루 중에 가장 기다리는 시간이 이 고양이를 만나러 가는 시간이고, 또 가장 기분 좋은 시간이기도 합니다. 고양이도 저 보면 반가워하니깐 그래도 나름 기다리는 시간이 아닐까 싶네요.
어느 날 갑자기 저 고양이는 아파트에서 사라질 수도 있고, 예고도, 인사도 없이 작별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키우지 않는 이상에는 언제든 감당해야 할 일인데요, 그 날이 오기 전에는 그래도 친하게 지내고, 돌볼 수 있다면 돌보려고 합니다. 고양이가 오랫동안 아파트에서 건강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요즘 같은 팍팍한 세상, 여유롭지 못한 세상 속에서 각자 작은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보는 것 이것이 정말 건강에 좋은 것 같습니다. 저는 그게 지금은 이 고양이와의 인연이고, 다른 분들은 또 다른 형태로의 행복을 찾으신다면 휴식같은 시간, 기분 좋은 시간을 하루에 조금이라도 가지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바쁘고 여유롭지 않으신 일상이시겠지만, 작은 행복을 찾기 위해서 시선을 한 번 쯤 돌려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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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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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글인데,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